사무엘상 풀어 읽기 · 29장
이 장의 자리 · 28–31장 · 사울의 마지막 싸움
적들의 불신이 열어 준 길
다윗은 지금 누구와 싸우러 가고 있는가?
블레셋 군대가 이스라엘을 공격하려고 모였습니다. 그런데 그 군대의 맨 뒤에는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있습니다.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블레셋과 싸워 이름을 떨쳤던 사람이 이제 블레셋 왕 아기스와 함께 이스라엘을 향해 행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장의 역설은 다윗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결정이 오히려 다윗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 준다는 데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어떻게 드러내는가? 그리고 다윗은 이 사건에서 과연 어떤 사람으로 나타나는가?
블레셋 군대의 맨 뒤에 선 다윗
본문은 두 군대의 위치를 보여 주며 시작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모든 군대를 아벡으로 모았습니다. 이스라엘 군대는 이스르엘에 있는 샘 곁에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사무엘상 29:1 · 두루새김
아벡의 정확한 위치는 확정하기 어렵지만, 이스르엘은 이스라엘 북부의 넓은 평야와 연결되는 지역입니다. 앞 장에서는 블레셋 군대가 수넴에, 사울의 군대가 길보아에 진을 친 모습이 나타났습니다(28:4).
29장은 28장 끝의 사울 이야기를 시간순으로 곧장 이어 가기보다는, 28장 1–2절에 등장했던 다윗과 아기스의 문제로 돌아갑니다. 독자는 이미 사무엘이 사울에게 죽음을 예고한 말을 들었습니다(28:19). 이제 그 전쟁을 향해 다윗이 함께 행군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블레셋 통치자들은 군사들을 100명, 1,000명 단위로 이끌고 지나갑니다. 이것은 단순한 소규모 습격이 아니라 여러 지휘관이 참여하는 조직적인 군사 행동입니다.
그런데 그 맨 뒤에서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아기스와 함께 지나갑니다.
아기스는 앞서 다윗을 자신의 호위 책임자로 삼겠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28:2). 따라서 다윗이 아기스 가까이에 있다는 것은 아기스가 그를 상당히 믿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하지만 다른 지휘관들의 눈에는 전혀 다르게 보입니다.
블레셋 지휘관들이 물었습니다. 「이 히브리 사람들은 왜 여기 있는 거야?」 아기스가 블레셋 지휘관들에게 대답했습니다. 「이 사람은 이스라엘 왕 사울의 종 다윗 아니야? 그가 나와 함께 지낸 지 여러 날이나 여러 해가 되었어. 그가 내게 넘어온 날부터 오늘까지 나는 그에게서 아무 잘못도 찾지 못했어.」사무엘상 29:3 · 두루새김
이 질문은 다윗의 이름을 몰라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뒤이어 그들은 다윗이 과거 전쟁에서 세운 공까지 정확히 언급합니다.
문제는 그가 누구에게 속한 사람인가입니다.
그들은 다윗 일행을 아기스의 부하로 받아들이기보다 「히브리 사람들」이라고 부릅니다. 블레셋 군대에 합류해 있지만, 그들이 원래 어느 백성에 속한 사람인지가 더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아기스는 다윗을 믿고 있으면서도 그를 「이스라엘 왕 사울의 종 다윗」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는 사울에게서 도망쳐 아기스의 보호를 받고 있지만, 이스라엘 왕을 섬겼던 사람이라는 사실 자체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아기스는 이어서 자신이 다윗에게서 아무 잘못도 찾지 못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독자는 아기스가 모르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27장에서 다윗은 그술 사람들과 기르스 사람들과 아말렉 사람들을 공격하면서, 아기스에게는 유다와 그 주변 지역을 공격한 것처럼 보고했습니다(27:8–12). 아기스는 그 말을 믿고 다윗이 자기 백성에게 미움을 받게 되었으므로 영원히 자신의 종이 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아기스의 문제는 다윗에게서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본 것만으로 다윗을 다 안다고 생각했다는 데 있습니다.
그의 확신은 곧 다른 지휘관들의 반발과 충돌합니다.
다윗을 구해 내는 과거의 전쟁 노래
블레셋 지휘관들은 아기스의 설명에 화를 냅니다.
블레셋 지휘관들은 아기스에게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그자를 돌려보내. 네가 머물게 한 곳으로 돌아가게 해. 우리와 함께 전쟁에 나가게 해서는 안 돼. 싸우다가 우리의 적이 되지 않게 해야 해. 이자가 제 주인의 마음에 들려면 무엇을 바치겠어? 바로 우리 군사들의 머리가 아니겠어?」사무엘상 29:4 · 두루새김
사무엘상 14장 21절에는 이전에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있던 히브리 사람들이 전투 중 이스라엘 편에 합류한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블레셋 군대에는 이미 그러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더구나 이번에 함께하는 사람은 보통의 히브리 병사가 아니라 다윗입니다.
여기서 「제 주인」은 사울을 가리킵니다. 아기스가 다윗을 믿는 동안에도 지휘관들은 사울을 다윗의 원래 주인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들의 논리는 단순하지만 날카롭습니다. 다윗이 지금 사울과 원수지간이라는 사실이 앞으로도 사울의 적으로 남으리라는 보장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결정적인 증거로 오래된 노래를 꺼냅니다.
「이 사람이 바로 사람들이 춤추며 노래하던 그 다윗 아니야? 『사울은 수천 명을 쓰러뜨렸고, 다윗은 수만 명을 쓰러뜨렸다』라고 했잖아.」사무엘상 29:5 · 두루새김
처음 등장한 곳은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을 물리치고 돌아왔을 때입니다(18:6–9). 이스라엘 여인들이 춤추며 노래하자 사울은 다윗에게 왕권까지 넘어갈지 모른다고 두려워했습니다. 다윗을 향한 사울의 의심이 커지는 계기였습니다.
두 번째는 다윗이 처음 아기스에게 도망쳤을 때입니다(21:10–12). 그때 아기스의 부하들은 바로 이 노래를 인용하며 다윗이 누구인지 지적했습니다. 다윗은 그 말을 듣고 아기스를 두려워하여 미친 사람처럼 행동했습니다.
이제 세 번째로 같은 노래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바로 그 노래 때문에 블레셋 사람들이 다윗을 경계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 다윗은 이스라엘과 싸울 전쟁터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다윗을 고난에 빠뜨렸던 명성이 이번에는 그를 위험한 선택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아기스는 자신과 함께한 최근의 시간에 주목합니다. 지휘관들은 다윗이 걸어온 오랜 역사를 기억합니다. 아기스에게 다윗은 자신에게 충성해 온 사람입니다. 지휘관들에게 다윗은 블레셋을 수없이 물리친 이스라엘의 전사입니다.
결국 지휘관들의 반대는 받아들여집니다. 한 사람을 믿는 아기스의 판단만으로 여러 블레셋 통치자가 참여하는 군대의 결정을 뒤집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제 아기스는 자신이 믿는 사람에게 떠나라고 말해야 합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우리의 적」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표현에는 사탄(שָׂטָן), 곧 맞서거나 적대하는 사람을 뜻하는 명사가 사용됩니다. 이 문맥에서 그것은 초자연적인 악의 존재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전쟁 중 자신들에게 맞서는 적을 뜻합니다.
「너는 올바른 사람이다」 — 아기스의 진심과 판단의 한계
아기스는 다윗을 따로 불러 말합니다.
아기스가 다윗을 불러 말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한다. 너는 올바른 사람이다. 나는 네가 나와 함께 전쟁에 나갔다 돌아오는 것을 좋게 여긴다. 네가 내게 온 날부터 오늘까지 네게서 악한 일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블레셋의 통치자들은 너를 좋게 보지 않는다.」사무엘상 29:6 · 두루새김
아기스는 다윗 앞에서 이스라엘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자기 말이 진실하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만큼 자신의 평가가 진지하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맹세가 아기스의 믿음이 바뀌었다거나 하나님만을 섬기겠다는 고백이라는 근거는 없습니다. 다윗의 하나님을 알고 그 이름으로 맹세할 수 있다는 사실과, 그 하나님을 자신의 유일한 주로 받아들였다는 것은 구별해야 합니다.
아기스의 눈에는 다윗이 좋지만, 다른 블레셋 통치자들의 눈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반대로 지휘관들도 다윗이 실제로 배신을 계획했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위험 가능성에 근거하여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 장은 어느 쪽의 시각이 다윗의 마음을 정확히 꿰뚫었다고 판정하지 않습니다.
아기스는 결국 이렇게 명령합니다.
「그러니 이제 평안히 돌아가라. 블레셋 통치자들의 눈에 거슬리는 일을 하지 마라.」사무엘상 29:7 · 두루새김
다윗에게 이 명령은 군사적 불신에 따라 쫓겨나는 일이지만, 동시에 전쟁에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는 통보입니다. 아기스는 다윗을 내보내는 것이 그에게 어떤 의미가 될지 완전히 알지 못합니다. 그는 블레셋 지휘관들과의 갈등을 해결하려 하고 있을 뿐입니다.
다윗은 사울이 자신을 죽이려 하는 동안에도 사울을 직접 죽일 기회가 왔을 때 그를 해치지 않았습니다(24:6–7; 26:9–11). 사울이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왕이라는 사실을 존중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다윗이 이제 블레셋 군대에 속해 사울과 전쟁을 벌이는 상황에 놓인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어느 군대에 속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전에 스스로 지켜 왔던 원칙을 어떻게 이어 갈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문제를 다윗이 결단하거나 설명하기 전에 블레셋 지휘관들이 그의 출전을 막아 버립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에서는 두 평가가 모두 누군가의 ‘눈’에 어떻게 보이는가를 나타내는 방식으로 표현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이 이새의 아들들 가운데 왕이 될 사람을 찾을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을 보지만, 하나님은 마음을 보신다.」 (16:7의 의미) 29장에서 이 말씀을 직접 인용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서로 다른 사람들이 다윗을 바라보며 내리는 상반된 판단은 그 말씀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장에서 다윗의 내면에 대한 직접적인 판정을 내리지 않으십니다.
다윗은 정말 블레셋을 위해 싸우려 했는가?
아기스가 돌아가라고 하자 다윗은 순순히 물러서지 않습니다.
다윗이 아기스에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무엇을 했습니까? 제가 임금님을 섬긴 날부터 오늘까지 임금님의 종인 제게서 무슨 잘못을 찾으셨습니까? 제가 왜 저의 임금님의 원수들과 싸우러 나가지 못합니까?」사무엘상 29:8 · 두루새김
확실한 것은 다윗이 자신의 속마음을 끝내 밝히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사무엘상은 이 시기의 다윗을 언제나 단순하고 분명한 영웅으로만 그리지 않습니다. 그는 목숨을 지키려고 위험한 선택을 했으며, 적국의 왕을 속이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의 행동에는 용기와 지혜뿐 아니라 두려움과 불확실성도 함께 나타납니다.
다윗이 어떤 의도를 가졌든, 상황은 그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아기스가 다윗에게 대답했습니다. 「알고 있다. 내가 보기에 너는 하나님의 천사처럼 좋은 사람이다. 하지만 블레셋 지휘관들이 『그가 우리와 함께 전쟁에 나가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사무엘상 29:9 · 두루새김
「하나님의 천사처럼」이라는 표현도 그가 다윗을 매우 높이 평가한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다만 이 말을 하는 사람이 블레셋 왕이므로, 여기서 어떤 신을 구체적으로 생각했는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이 비유를 하나님께서 직접 다윗의 의로움을 보증하신 선언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이 장에서 다윗을 가장 강하게 칭찬하는 사람이 그에게 속아 온 아기스라는 사실은 여전히 아이러니합니다.
아기스는 다윗을 믿지만, 자신의 믿음을 군대 전체의 결정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 다윗 역시 자신의 입장을 주장하지만, 결정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다윗이 전쟁에서 빠지는 일은 확정되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한쪽으로 읽으면 다윗은 아기스에게 실제로 충성을 바치려 했으며, 자신에 대한 불신에 진심으로 항의합니다. 다윗은 오랫동안 아기스의 보호를 받았습니다. 이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다면, 출전을 거절당한 일을 모욕으로 받아들였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쪽으로 읽으면 다윗은 자신의 진짜 의도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아기스 앞에서 충성스러운 부하의 역할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앞서 다윗은 아기스에게 자신의 군사 행동을 사실과 다르게 보고했습니다(27:10–12). 또 아기스가 출전을 요구했을 때에도 다윗은 자신이 정확히 누구와 어떻게 싸우겠다고 분명히 밝히지 않은 채, 아기스가 자신의 행동을 보게 될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28:2). 「저의 임금님」이라는 표현은 대화의 직접적인 상대는 아기스이므로 자연스럽게 아기스를 높여 부르는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원문에서는 이 표현에도 ‘주인’이라는 말이 들어 있습니다. 바로 앞에서 블레셋 지휘관들은 사울을 다윗의 「제 주인」이라고 불렀습니다(29:4). 따라서 독자는 이 표현을 들으면서 다윗에게 과연 누가 주인인가 하는 질문을 다시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다윗이 여기서 의도적으로 사울을 가리켰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말의 직접적인 문맥은 아기스에게 향해 있으며, 본문은 다윗의 숨은 의도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윗이 틀림없이 블레셋을 배신하려 했다고 주장하면 본문이 제공하지 않는 계획을 만들어 내는 셈입니다. 반대로 그가 처음부터 이스라엘을 공격할 생각이었다고 확정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번 내려진 새벽의 명령
아기스의 마지막 명령에는 같은 말이 되풀이됩니다.
「그러니 너와 함께 온 네 주인 사울의 종들과 함께 아침 일찍 일어나라. 너희는 아침 일찍 일어나 날이 밝는 대로 떠나라.」사무엘상 29:10 · 두루새김
아기스는 다윗 일행이 지체하지 않고 떠나기를 원합니다. 이미 다른 지휘관들과 충돌이 일어난 만큼 더는 이 문제를 끌고 갈 여유가 없습니다.
여기서 「네 주인 사울의 종들」이라는 표현도 앞선 대화와 이어집니다. 두루새김은 주인이 사울임을 밝혀 옮겼습니다. 다윗과 그의 부하들을 여전히 사울에게 속했던 사람들로 인식하는 말입니다.
다윗과 부하들은 블레셋 땅으로 돌아가려고 아침 일찍 일어났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르엘로 올라갔습니다.사무엘상 29:11 · 두루새김
처음에는 다윗이 블레셋 군대의 맨 뒤에서 함께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이제 두 무리의 길이 갈라집니다.
그들은 같은 곳에서 출발했지만 더는 같은 전쟁을 향해 가지 않습니다.
사울과 요나단이 있는 이스라엘 군대와 다윗이 직접 싸우는 상황을 피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 했던 사울에 대한 원한을 블레셋의 전쟁을 통해 해결하는 위치에 서지 않게 됩니다.
조금 더 깊이
그리고 훗날 사울이 죽은 뒤에도 다윗이 사울의 죽음을 자신의 승리로 기뻐하지 않고 애도하는 모습(사무엘하 1:11–27)은 이 장면과 의미 있게 연결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선택하셨습니다(16:1–13). 사울에게는 왕권이 지속되지 않으리라고 선언하셨습니다(13:13–14; 15:26–28). 이것을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보호로 이해하는 것은 본문 전체에 근거한 신학적 해석입니다. 다만 본문 자체가 그 결정의 뒤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개입하셨는지를 설명하지 않는다는 한계도 함께 인정해야 합니다. 창세기 50장 20절에서 요셉은 자신을 해치려 했던 형들의 행동이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의 생명을 지키는 일과 연결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의도를 분명히 고백하지만, 사무엘상 29장은 그렇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인간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행동한 일이 그 목적과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두 본문은 주제적으로 연결됩니다.
맺음 — 같은 군대에서 갈라진 두 길
다윗은 아기스에게 신뢰받는 데 성공했지만, 그 성공이 그를 곤란한 전쟁으로 끌어들이고 있었습니다. 반대로 블레셋 지휘관들에게 신뢰받는 데 실패했지만, 그 실패가 그를 그 전쟁에서 빼내었습니다. 이 사건이 보여 주는 것은 다윗이 자신의 길을 완전히 통제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며, 더 넓은 이야기 속에서는 그 통제 밖의 사건마저 왕권의 역사를 이어 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모든 거절이 하나님의 특별한 인도라는 공식으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이 본문은 그런 약속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택하셨다는 사실은 다윗의 모든 판단이 옳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윗에게 닫힌 전쟁터의 길이, 그가 계속 걸어가야 할 다른 길을 남겨 놓았습니다.
아침 햇살 아래 블레셋 군대는 이스르엘을 향해 올라가고, 다윗과 그의 부하들은 반대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본문은 그들이 멀어져 가는 모습만 남겨 둔 채 조용히 끝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