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풀어 읽기 · 28장
이 장의 자리 · 28–31장 · 사울의 마지막 싸움
대답은 얻었지만 돌아갈 길은 얻지 못한 사울
사울은 오랫동안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자신이 가장 절박하게 말씀을 필요로 하는 순간, 여호와야훼께서 대답하지 않으십니다.
사울이 그토록 듣고 싶었던 하나님의 대답은 새로운 지침이 아니라, 그가 오래전에 듣고도 따르지 않았던 말씀을 다시 확인해 주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사울이 죽음을 통보받는 장면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사울이 땅에 쓰러지자 그를 일으켜 세우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사울 자신이 이스라엘에서 없앴던 사람들과 같은 일을 하는,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여자입니다.
블레셋 왕의 호위병이 된 다윗 — 첫 장면이 남기는 질문
이 장은 사울이 아니라 다윗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이려고 군대를 모으자, 가드 왕 아기스가 다윗에게 말합니다.
그 무렵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군대를 모았습니다. 아기스가 다윗에게 말했습니다. 「분명히 알아 두어라. 너와 네 부하들도 나와 함께 전쟁에 나가야 한다.」사무엘상 28:1 · 두루새김
앞 장에서 아기스는 다윗이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미움을 샀으므로 영원히 자신의 종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27:12). 아기스는 다윗을 단순한 피난민으로 대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군대에 속한 사람으로 여기고, 이스라엘과의 전쟁에 참여하도록 요구합니다.
다윗이 아기스에게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임금님의 종인 제가 무엇을 할지 임금님께서 아시게 될 것입니다.」 아기스가 다윗에게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너를 언제나 내 목숨을 지키는 사람으로 삼겠다.」사무엘상 28:2 · 두루새김
다윗은 자신이 이스라엘 사람들과 싸우겠다고 분명히 약속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전쟁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거절하지도 않습니다. 아기스는 그 말을 충성의 표현으로 받아들입니다.
「내 목숨을 지키는 사람」은 왕을 보호하는 호위 임무를 가리킵니다. 사울의 추격을 피하려고 적국으로 갔는데, 이제는 자기 백성과 싸우는 전쟁에 참여하라는 요구를 받고 있습니다. 그가 실제로 어떤 행동을 할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습니다. 그 문제는 다음 장에서 다시 다루어집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이야기는 사울에게로 옮겨갑니다.
한쪽에서는 이스라엘의 미래 왕이 블레셋 군대에 속해 있습니다.
다른 쪽에서는 현재의 이스라엘 왕이 블레셋 군대 앞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사무엘은 죽었고, 여호와야훼는 대답하지 않으셨다
본문은 갑자기 이미 알려진 사실을 다시 이야기합니다.
사무엘은 이미 죽었고, 온 이스라엘이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그의 고향 라마에 그를 묻었습니다. 사울은 죽은 사람의 영을 불러내는 사람들과 영에게 묻는 사람들을 그 땅에서 없앴습니다.사무엘상 28:3 · 두루새김
사무엘의 죽음은 25장 첫머리에서 이미 기록되었습니다. 사울이 가장 절박하게 찾게 될 사람이 이미 죽었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은 살아 있을 때 사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를 왕으로 세우는 일에 참여했고, 그의 불순종을 꾸짖었으며, 그의 왕권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갈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사울에게 사무엘은 단순히 미래를 알려 주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왕권을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판단했던 예언자였습니다.
사울은 죽은 사람의 영을 통해 정보를 얻으려는 행위를 금지하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율법과 관련됩니다. 레위기 19:31은 죽은 사람의 영을 불러내거나 영에게 묻는 행위를 금지합니다. 신명기 18:10–12 역시 죽은 사람에게 묻는 행위를 이스라엘이 따라서는 안 될 관습 가운데 포함합니다.
이러한 금지의 중요한 배경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는 방식을 다른 민족들의 점치는 행위와 구별해야 한다는 데 있습니다. 사울은 적어도 겉으로는 이러한 금지 규정을 실행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가 자신이 없애 버린 사람을 찾으려고 합니다.
수넴과 길보아에 마주 선 두 군대
블레셋 사람들은 수넴에 진을 칩니다. 사울은 이스라엘 군대를 모아 길보아에 진을 칩니다. 수넴은 이스르엘 평야 주변에 있고, 길보아산은 그 남쪽에 자리합니다. 블레셋 군대가 이스라엘의 북부 지역으로 나아온 상황입니다.
사울은 블레셋 진영을 보고 두려워했고, 마음이 몹시 떨렸습니다.사무엘상 28:5 · 두루새김
사울이 두려워했다는 사실 자체가 그의 죄는 아닙니다. 실제로 블레셋의 군사적 위협은 심각했습니다.
문제는 그 두려움 속에서 사울이 어떤 길을 선택하는가입니다.
사울이 여호와야훼께 물었지만, 여호와야훼께서는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예언자들을 통해서도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사무엘상 28:6 · 두루새김
꿈과 우림, 예언자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통로입니다. 꿈은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말씀을 전달하시는 방식으로 성경 여러 곳에 등장합니다.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이나 왕에게 전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림은 제사장이 하나님의 뜻을 구할 때 사용하는 수단과 관련됩니다(출애굽기 28:30; 민수기 27:21). 다만 우림을 실제로 어떻게 사용했는지는 성경이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침묵은 무엇을 뜻하는가
사울은 이번 전쟁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미 사울의 왕권에 관해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무엘상 15장에서 사무엘은 사울이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거부했기 때문에 그의 왕권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갈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15:22–28).
본문은 하나님의 침묵을 사울의 이전 불순종과 연결하여 이해하도록 이끌지만, 모든 침묵이 반드시 이와 같은 심판이라는 일반적인 법칙을 가르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경험은 여러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시편의 탄식 가운데에는 하나님께서 대답하지 않으시는 상황에서도 그분을 신뢰하며 부르짖는 기도가 있습니다(시편 22:1–2; 88:13–14).
사울은 이미 왕권에 관한 심판의 말씀을 들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 말씀을 전했던 사무엘마저 죽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해요」 — 사울이 자기 금지령을 뒤집다
사울은 신하들에게 명령합니다.
사울이 신하들에게 말했습니다. 「죽은 사람의 영을 불러내는 여자를 찾아라. 내가 그 여자에게 가서 물어보겠다.」 신하들이 대답했습니다. 「엔돌에 죽은 사람의 영을 불러내는 여자가 있습니다.」사무엘상 28:7 · 두루새김
사울은 다른 옷으로 갈아입어 모습을 숨기고 두 사람을 데리고 밤에 찾아갑니다. 사울은 왕으로서 공개적으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낮에는 이스라엘을 지휘하는 왕이지만, 밤에는 자신이 금지했던 행위를 몰래 부탁하는 사람이 됩니다.
여자가 사울에게 말했습니다. 「사울이 한 일을 아시잖아요. 그는 죽은 사람의 영을 불러내는 사람들과 영에게 묻는 사람들을 이 땅에서 없애 버렸어요. 그런데 왜 저를 함정에 빠뜨려 죽게 하려 하세요?」사무엘상 28:9 · 두루새김
사울은 여호와야훼를 두고 여자에게 맹세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해요. 이 일 때문에 당신이 벌을 받는 일은 결코 없을 거예요.」사무엘상 28:10 · 두루새김
사울은 여호와야훼의 율법이 금지하는 행위를 요청하면서, 여호와야훼의 이름으로 그 행위에 대한 처벌을 막아 주겠다고 맹세합니다. 그는 자신의 왕권을 이용하여 여자에게 안전을 보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일을 왕의 맹세로 정당하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사울은 여호와야훼의 이름을 부르고 있지만, 그 이름을 부르는 방식 자체가 여호와야훼의 말씀과 충돌하고 있습니다.
여자는 자신의 목숨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사울은 자신의 미래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사울은 여자의 안전을 보장해 주겠다고 말하고, 여자는 그의 요청을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이 만남은 어느 쪽에게도 참된 안전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조금 더 깊이
오브는 죽은 사람의 영과 관련하여 점을 치거나 영을 불러내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됩니다. 다만 이 단어가 본래 특정한 영적 존재를 가리키는지, 그러한 존재를 불러내는 수단이나 기능을 가리키는지에는 해석상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 여자가 어떤 의식을 치르는 사람이었는지 구체적인 방법이나 맡은 역할까지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여자가 본 것은 누구였는가 — 사무엘의 출현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여자는 사무엘을 불러 달라는 요청을 받은 뒤 갑자기 큰 소리로 외칩니다.
여자는 사무엘을 보고 크게 소리쳤습니다. 여자가 사울에게 말했습니다. 「왜 저를 속이셨습니까? 사울 임금님이시지 않습니까!」사무엘상 28:12 · 두루새김
왕이 여자에게 말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무엇을 보았느냐?」 여자가 사울에게 대답했습니다. 「신들이 땅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습니다.」사무엘상 28:13 · 두루새김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는 여자가 한 노인을 묘사합니다.
사울이 물었습니다. 「그는 어떤 모습이냐?」 여자가 대답했습니다. 「한 노인이 올라오는데, 겉옷을 두르고 있습니다.」 사울은 그가 사무엘임을 알아차리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했습니다.사무엘상 28:14 · 두루새김
본문은 여자가 본 것을 묘사하고, 사울이 그 모습에 관해 질문했다고 기록합니다. 사울이 직접 그 모습을 보았다고 분명히 말하지 않습니다.
겉옷을 두른 노인
사무엘상에서 이 겉옷은 사무엘의 모습과 관련된 중요한 물건입니다. 사무엘상 15장에서 사울은 떠나려는 사무엘의 겉옷 자락을 붙잡았고, 그 옷이 찢어졌습니다. 사무엘은 그 사건을 사울의 왕권이 찢겨 다른 사람에게 넘어갈 것이라는 선언과 연결했습니다(15:27–28).
물론 사울이 바로 그 옷자락이 찢어졌던 사건을 떠올렸다고 본문이 직접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서 전체를 읽는 독자는 이 옷과 왕권을 잃는다는 선언을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 있습니다. 곧이어 사무엘은 바로 그 왕권을 잃는다는 말씀을 다시 선언합니다.
겉옷을 두른 사무엘의 모습은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전에 사울에게 주어진 말씀으로 독자를 되돌립니다.
정말 사무엘이 나타난 것인가
첫 번째 읽기는 본문이 서술하는 그대로 실제 사무엘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읽기는 여자가 보거나 불러낸 존재가 사무엘인 척한 다른 영적 존재였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본문의 초점을 출현의 초자연적인 작동 원리에 두기보다 사울이 사무엘의 마지막 심판 선언을 듣는 이야기 장면에 두는 읽기도 가능합니다.
본문의 가장 직접적인 서술은 나타난 인물을 사무엘이라고 부릅니다. 반면 그가 어떤 과정을 통해 나타났는지, 여자가 실제로 어떤 능력을 발휘한 것인지, 하나님께서 이 출현을 어떤 방식으로 허락하셨는지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사건을 근거로 죽은 사람의 영을 불러내는 행위가 정당하다거나, 사람이 원하는 때에 죽은 사람을 불러낼 수 있다고 결론 내려서는 안 됩니다.
조금 더 깊이
그녀가 무엇 때문에 크게 놀랐는지는 본문이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광경 때문에 놀랐을 수도 있고, 자신이 상대하고 있는 사람이 사울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두려워했을 수도 있습니다. 둘 다 가능한 맥락이지만 어느 하나로 확정할 근거는 없습니다. 특히 그녀가 사울의 신원을 어떻게 알아차렸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엘로힘은 문맥에 따라 하나님을 가리키기도 하고, 신적인 존재들을 가리키기도 하는 말입니다. 여기서는 동사적 표현까지 복수형이므로 여러 존재가 올라오는 것으로 번역할 근거가 있습니다. 13절의 복수 표현과 14절의 단수 묘사가 정확히 어떤 관계인지 본문은 설명하지 않습니다. 여자가 여러 존재를 보았으나 그 가운데 한 사람을 설명한 것인지, 신적인 존재를 가리키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실제로는 한 모습을 묘사한 것인지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첫 번째 읽기는 서술자가 여자가 사무엘을 보았다고 말하고, 이어서 사무엘이 직접 사울에게 말하는 것으로 기록한다는 점이 중요한 근거입니다. 두 번째 읽기는 죽은 사람의 영을 불러내는 행위에 대한 율법의 금지와 이 사건의 성격을 함께 고려하는 해석입니다. 그러나 이런 해석들을 모두 똑같이 본문에서 직접 확인되는 사실로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왜 내게 묻느냐?」 — 사울이 얻은 대답은 이미 들었던 말이었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묻습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말했습니다. 「왜 나를 불러 올려 괴롭히느냐?」 사울이 대답했습니다. 「저는 몹시 어려운 처지에 놓였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저와 싸우고, 하나님께서는 저를 떠나셔서 예언자들을 통해서도 꿈으로도 더는 대답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제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려 주시도록 당신을 불렀습니다.」사무엘상 28:15 · 두루새김
그는 행동할 방법을 원합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그가 원하는 방식으로 대답하지 않습니다.
사무엘이 말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너를 떠나 네 적이 되셨는데, 왜 내게 묻느냐?」사무엘상 28:16 · 두루새김
사무엘의 권위는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전하는 데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야훼께서 이미 사울의 왕권을 판단하셨다면, 사무엘에게 묻는다고 해서 그 판단이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침묵을 돌아갈 통로를 찾았지만, 결국 그 통로에서도 하나님의 이전 말씀이 다시 들려옵니다.
「왕권을 찢어 내어 네 이웃 다윗에게 주셨다」
「여호와야훼께서는 나를 통해 말씀하신 일을 자신을 위해 이루셨다. 여호와야훼께서는 네 손에서 왕권을 찢어 내어 네 이웃 다윗에게 주셨다.」사무엘상 28:17 · 두루새김
사무엘상 15:28에서 사무엘은 사울에게 왕권이 찢겨 다른 사람에게 주어졌다고 선언했습니다. 이번에는 그 다른 사람의 이름이 분명히 나옵니다. 사울이 그동안 죽이려고 추격했던 바로 그 사람입니다.
사울은 다윗을 없애면 자신의 왕권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며 행동해 왔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의 말은 그 생각 자체를 뒤집습니다.
사울이 왕권을 잃는 것은 다윗이 사울을 공격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이미 그의 왕권을 거두기로 하셨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다윗은 사울에게서 왕권을 빼앗으려고 먼저 반란을 일으킨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왕권을 주실 사람으로 선택하신 인물입니다. 사울이 다윗을 없애려고 한 행동은 결국 하나님께서 정하신 왕권의 미래에 맞서는 일이었습니다.
「네가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듣지 않고」 — 사울의 마지막 밤에 다시 등장한 아말렉
사무엘은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듣지 않고 그분의 불타는 분노에 따라 아말렉을 벌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호와야훼께서 오늘 네게 이런 일을 하신 것이다.」사무엘상 28:18 · 두루새김
사울이 지금 맞서야 하는 적은 블레셋입니다.
그런데 사무엘은 아말렉 이야기를 꺼냅니다.
사무엘상 15장에서 사울은 아말렉과 싸우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각을 살려 두고 좋은 가축들을 남겼습니다. 사울은 자신이 여호와야훼의 말씀에 순종했다고 주장했지만, 사무엘은 그의 행동이 명령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때 사무엘이 했던 말이 있습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입니다(사무엘상 15:22의 의미). 사울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뒤 그 행동을 제사와 연결하여 정당화하려 했던 상황에서 나온 말입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일이 제사를 드린다는 명분보다 중요하다고 선언했습니다.
사울의 근본적인 문제는 하나님께서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을 때 사울이 듣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이것을 사울이 이제부터 무엇을 하든 아무 의미가 없다는 일반적인 운명론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사울의 이전 행동과 현재의 심판 사이에 구체적인 역사적 관계가 있다고 말합니다.
사무엘은 새로운 해결책을 주지 않는다
사무엘의 말에는 사울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작전이 없습니다. 대신 이미 선언되었던 왕권 상실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말합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이스라엘도 너와 함께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겨주실 것이다. 내일 너와 네 아들들은 나와 함께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 군대도 여호와야훼께서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겨주실 것이다.」사무엘상 28:19 · 두루새김
그가 이끄는 군대의 패배는 왕 한 사람의 실패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군사들과 그 가족들, 백성의 삶에 커다란 재앙이 됩니다. 왕의 불순종이 왕 개인의 운명뿐 아니라 그가 다스리는 공동체 전체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보여 주는 장면입니다.
본문의 초점은 다음 날이 되면 사울과 그의 아들들이 더 이상 살아 있지 않을 것이라는 눈앞에 닥친 죽음의 선언입니다.
사울은 그동안 다윗을 자기 손에 넣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스라엘 군대가 블레셋의 손에 넘겨질 것이라고 선언됩니다. 사울이 다른 사람의 생명을 자기 손으로 통제하려 했던 이야기의 끝에서, 자신의 군대와 운명조차 자기 뜻대로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내일 너와 네 아들들은 나와 함께 있을 것이다」라는 말은 죽음을 예고하는 표현으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이 구절을 근거로 사울과 사무엘이 죽음 이후에 같은 영적 상태나 구원의 운명을 누리게 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왕이 땅에 길게 쓰러지다 — 사울에게 남은 힘은 없었다
사무엘의 말을 들은 사울은 곧바로 무너집니다.
사울은 곧바로 땅바닥에 길게 쓰러졌습니다. 사무엘의 말 때문에 몹시 두려웠던 것입니다. 또 낮과 밤 내내 음식을 먹지 않아 기운도 없었습니다.사무엘상 28:20 · 두루새김
조금 전 사울은 사무엘이라고 알아차린 존재 앞에서 엎드려 절했습니다. 그때는 자신이 상대방을 알아보고 의식적으로 예를 표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두려움과 기운이 다 빠진 탓에 쓰러집니다.
그에게는 전쟁을 앞둔 왕으로서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자기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합니다.
사울은 외모가 뛰어나고, 백성 가운데 누구보다 키가 큰 인물로 소개되었습니다(사무엘상 9:2). 백성은 그를 보고 왕으로서의 위엄을 기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큰 몸이 땅에 길게 쓰러져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왕관이나 창을 앞세우는 강한 지도자의 모습이 아니라, 두려움에 짓눌려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으로 묘사됩니다. 사울은 자기 앞에 놓인 재앙을 듣고 무너진 것입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그를 쓰러진 채로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이제 임금님께서도 부디 이 여종의 말을 들어 주십시오」 — 마지막으로 사울을 일으킨 목소리
사울이 땅에 쓰러지자 여자가 다가옵니다.
여자는 사울에게 다가가 그가 몹시 겁에 질린 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임금님의 여종인 저는 임금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목숨을 걸고 임금님께서 제게 하신 말씀을 따랐습니다.」사무엘상 28:21 · 두루새김
「그러니 이제 임금님께서도 부디 이 여종의 말을 들어 주십시오. 제가 빵 한 조각을 드릴 테니 잡수십시오. 그래야 길을 가실 때 힘을 내실 수 있습니다.」사무엘상 28:22 · 두루새김
사울은 거절하며 말했습니다. 「먹지 않겠다.」 그러나 신하들과 여자가 거듭 권하자 그들의 말을 받아들였습니다. 사울은 땅에서 일어나 침대에 앉았습니다.사무엘상 28:23 · 두루새김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자의 말을 받아들입니다.
그렇다고 여기서 여자의 권유에 따르는 것이 잘못이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녀는 음식을 먹고 기운을 차리라고 권했습니다. 그것은 사울의 생명을 돌보는 행동입니다.
사울에게는 아직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했던 결정적인 순간들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사울은 말을 들을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따르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여자는 왜 음식을 준비하는가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울이 지금 이 자리에서 쓰러져 있는 상태를 벗어나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녀는 사울의 두려움을 보고, 그가 기운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립니다. 그리고 먹을 것을 준비합니다.
사울은 이 여자와 같은 사람들을 이스라엘에서 없애려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가 가장 약해진 순간, 그를 돌보는 사람은 바로 그들과 같은 일을 하는 여자입니다.
이것을 여자가 점을 친 행위가 옳았다는 평가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그녀가 금지된 일을 했다는 사실과, 쓰러진 사울에게 음식을 내어 주는 자비로운 행동을 했다는 사실은 구별해야 합니다.
그녀는 사울의 운명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굶주린 사람에게 음식을 줄 수는 있습니다.
그녀는 바로 그 일을 합니다.
조금 더 깊이
28:18에서 사무엘은 사울이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원문에서는 21–23절에서도 이 표현이 반복됩니다. 여자는 자신이 사울의 말씀을 듣고 따랐다는 사실을 밝힙니다. 그리고 이제는 사울이 자기 말을 들어 달라고 합니다. 「그들의 말을 받아들였습니다」(שָׁמַע)의 원문에서는 여기에도 같은 동사가 다시 등장합니다.
살찌운 송아지와 부풀리지 않은 빵 — 이 마지막 식사는 무엇을 말하는가
여자는 집에서 살찌운 송아지를 잡습니다.
여자의 집에는 우리에서 살찌운 송아지가 있었습니다. 여자는 서둘러 송아지를 잡았습니다. 또 가루를 가져다 반죽하여 부풀리지 않은 빵을 구웠습니다.사무엘상 28:24 · 두루새김
준비하는 음식의 규모를 보면 사울과 동행한 신하들까지 먹을 수 있도록 정성껏 마련한 식사임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서둘러」라는 표현은 그녀가 상황을 긴급하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사울은 곧 돌아가야 합니다.
그녀가 내어 주는 식사는 사울에게 다시 살아갈 새로운 미래를 약속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가 지금 다시 일어나 걸을 수 있도록 해 줍니다.
미래를 바꿀 수 없는 상황에서도 사람은 다른 사람의 현재를 돌볼 수 있습니다.
왜 이 장은 식사로 끝나는가
사무엘상 28장을 읽을 때 흔히 가장 강렬하게 기억되는 장면은 죽은 사무엘이 나타나는 사건입니다. 그러나 서술자는 거기서 이야기를 끝내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무엘이 심판을 선언한 뒤 여섯 절을 더 사용하여 사울이 어떻게 음식을 먹고 떠났는지 보여 줍니다.
이야기는 사울의 운명이 선언되었다는 사실을 넘어서, 그 운명 앞에 선 인간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사울은 여전히 왕입니다. 그러나 지금 그에게는 왕권의 위엄보다 한 끼의 음식이 더 절실합니다.
결말 — 밤에 찾아간 왕은 밤에 돌아왔다
사울은 다른 옷으로 갈아입어 모습을 숨기고 밤에 엔돌로 왔습니다. 사울은 다시 걸어갈 힘을 얻었지만, 그가 걸어가야 할 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는 이미 들었습니다. 사울을 일으켜 세운 것은 이름 없는 여자의 음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외면했던 하나님의 말씀은 여전히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여자가 사울과 신하들 앞에 음식을 차려 놓자 그들이 먹었습니다. 그들은 일어나 그날 밤에 떠났습니다.사무엘상 28:25 · 두루새김
사울이 찾아올 때도 밤이었고, 떠날 때도 밤이었습니다. 본문은 그가 밖으로 나선 뒤의 풍경을 묘사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들이 그날 밤 떠났다고 말할 뿐입니다.
그렇게 이스라엘의 왕은 다시 어둠 속으로 걸어갑니다.
그의 배는 채워졌고, 쓰러졌던 몸은 다시 일어섰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의 말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상 28장은 더 이상의 설명 없이, 그가 밤길로 떠나는 자리에서 끝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