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풀어 읽기 · 11장
이 장의 자리 · 10–28장 · 둘로 갈라진 나라
돌아가는 군대, 찾아오는 사람들
왕국이 둘로 갈라졌을 때, 르호보암에게는 아직 군대가 있었습니다. 그는 18만 명의 전사를 모아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군대를 적에게 보내지 않으시고 집으로 돌려보내셨습니다.
르호보암이 전쟁으로 되찾으려 했던 북쪽 이스라엘에서 사람들이 스스로 남쪽으로 내려옵니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자신들의 땅을 버리고 예루살렘으로 오고, 하나님을 찾기로 마음먹은 사람들도 모든 지파에서 그 뒤를 따릅니다.
군대로는 되찾을 수 없었던 이스라엘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기 위해 스스로 찾아온 것입니다.
사람들이 어디로 가는지, 그리고 무엇 때문에 움직이는지를 따라 읽으면, 분열된 왕국을 바라보는 역대기 저자의 시선이 드러납니다.
하나님이 멈추게 하신 전쟁
르호보암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가장 먼저 한 일은 군대를 모으는 것이었습니다. 유다와 베냐민에서 전사 18만 명을 모았고, 목표도 분명했습니다. 이스라엘과 싸워 왕국을 자기 손에 되찾는 것입니다.
르호보암에게 왕국의 분열은 되돌려야 할 정치적 손실이었습니다. 아버지 솔로몬이 다스리던 나라가 자신의 통치 아래 갈라졌으므로, 군사력으로라도 원래의 상태를 회복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의 계획을 전혀 다른 방향에서 중단시키십니다.
하나님의 사람 스마야에게 말씀이 주어집니다.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한다. 너희 형제들과 싸우러 올라가지 마라. 저마다 자기 집으로 돌아가라. 이 일은 나에게서 비롯되었다.』」 그들은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듣고 여로보암을 치러 가는 일을 그만두고 돌아갔습니다.역대하 11:4 · 두루새김
르호보암은 북쪽 이스라엘을 되찾아야 할 영토로 바라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곳의 사람들을 여전히 유다와 베냐민의 형제들이라고 부르십니다. 정치적으로는 다른 왕을 세웠지만, 이스라엘이라는 공동체의 역사와 하나님 앞에서의 관계까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분열이 자신의 뜻 안에서 일어났다고 말씀하시면서, 그 분열을 되돌리기 위한 전쟁을 금하십니다. 르호보암이 정당한 왕위를 주장한다고 해서, 형제들의 생명을 희생시키며 왕국을 되찾을 권리까지 갖는 것은 아닙니다.
앞 장에서 르호보암은 백성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왕과 군대가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듣고 행동을 멈춥니다. 왕국을 분열시킨 장면에서는 거절이 있었고, 분열 이후의 첫 장면에서는 순종이 있었습니다.
역대하 11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처음 이루어 낸 일은 전쟁의 승리가 아니라 전쟁의 중단이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앞 장에서 여로보암에게 왕국이 넘어간 것은 르호보암의 잘못된 판단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백성의 고통을 덜어 달라는 요구를 거절했고, 더 무거운 멍에를 지우겠다고 위협했습니다(10:4–15). 그런데 이제 하나님은 그 분열이 자신에게서 비롯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르호보암의 판단이 옳았다거나, 여로보암의 모든 행동이 정당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열왕기상 11:29–39에서 하나님은 이미 솔로몬의 불순종을 이유로 왕국이 나뉠 것을 예고하셨습니다. 사람들의 실제 선택과 잘못이 왕국 분열의 과정에 있었지만, 그 사건은 하나님의 판단과 무관하게 일어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잃어버린 땅 대신 남은 땅을 세우다
전쟁을 포기한 르호보암은 예루살렘에 머물면서 적의 공격을 막을 성읍들을 세웁니다.
6절부터 10절까지는 열다섯 성읍의 이름이 이어집니다. 베들레헴과 드고아, 헤브론처럼 익숙한 곳도 있고, 아둘람과 라기스와 아세가처럼 이스라엘의 이전 역사에 등장했던 곳들도 있습니다. 열다섯 지명이 세 개씩 다섯 묶음으로 배열되고, 마지막에 「이 성읍들은 유다와 베냐민 지역에 있었으며, 적의 공격을 막도록 튼튼하게 지어졌습니다」라는 말로 정리됩니다.
여기에 포함된 성읍들은 유다 산지와 그 주변 지역의 여러 중요한 방어 지점에 걸쳐 있었습니다. 르호보암은 예루살렘만 지키려 한 것이 아니라, 왕국의 여러 방향을 방어할 수 있도록 성읍들을 강화했습니다.
본문에서 「세웠습니다」라는 말도 모두 새로운 성읍을 처음 건설했다는 뜻으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이미 존재하던 성읍에 방어 시설을 갖추고 정비하는 일까지 포함할 수 있습니다.
성읍에는 지휘관이 배치되고, 식량과 기름과 포도주가 모아지며, 큰 방패와 창이 갖추어집니다. 방어 시설을 갖춘 성읍은 성벽과 무기만으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공격을 받아 외부의 공급이 끊어져도 견디려면 먹을 것이 있어야 합니다. 르호보암은 단순히 병력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방어와 보급을 함께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4절에서 금지된 것은 형제들을 향한 공격이었습니다. 5–12절의 행동은 남은 영토를 방어하기 위한 준비로 묘사됩니다. 적어도 역대기 저자는 이 두 행동을 구별하고 있습니다.
르호보암은 북쪽을 되찾으려던 계획을 포기했지만, 자신에게 남겨진 왕국을 다스리고 보호할 책임까지 포기하지는 않았습니다.
또 성읍마다 큰 방패와 창을 갖추어 방어를 아주 튼튼하게 했습니다. 유다와 베냐민은 그의 다스림 아래 있었습니다.역대하 11:12 · 두루새김
첫 절에서 르호보암은 이스라엘 전체를 다시 자기 손에 되찾으려 했습니다. 그의 왕권이 미치는 범위는 이전보다 작아졌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왕국을 안정시키려는 노력이 이어집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장면은 왕국의 힘이 군사적 방어에서만 생겨나는 것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모든 지파에서 예루살렘으로 온 사람들
13절부터 이야기의 중심이 르호보암에게서 다른 사람들로 옮겨갑니다.
이스라엘 온 땅에 있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각 지역에서 나와 르호보암의 편에 섰습니다.역대하 11:13 · 두루새김
그런데 이 이동에는 대가가 있었습니다.
14절은 레위 사람들이 「가축을 먹이던 풀밭과 자기 땅을 버려두고」 유다와 예루살렘으로 왔다고 말합니다. 레위 사람들은 다른 지파처럼 하나의 독립된 지파 영토를 나누어 받지 않았지만, 이스라엘 여러 지역에 성읍과 가축을 먹일 풀밭을 가지고 있었습니다(민수기 35:1–8; 여호수아 21장). 그곳은 가족이 살아가는 터전이자 생계의 기반이었습니다. 그들이 그것을 버린 이유는 여로보암과 그의 아들들이 그들을 여호와야훼의 제사장 자리에서 물러나게 했기 때문입니다.
정치적 분열이 종교적 분열로 이어진 것입니다.
여로보암은 북쪽 왕국에 새로운 예배 체계를 세우고 있었습니다. 열왕기상 12:26–33에 따르면, 그는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예배하러 갔다가 르호보암에게 마음을 돌릴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세우고 예루살렘과 별개의 예배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여로보암은 자기를 위해 따로 제사장들을 세웠습니다. 그들은 산당에서 숫염소 귀신들과 여로보암이 만든 송아지 우상들을 섬겼습니다.역대하 11:15 · 두루새김
여로보암이 제사장들을 세운 일은 단순한 예배 방식의 변경이 아니었습니다. 본문은 그것을 왕 자신의 목적을 위해 종교 제도를 바꾸는 일로 묘사합니다. 왕은 백성을 다스릴 수 있지만,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제도를 만들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로보암에게 예배는 왕국을 유지하기 위한 정치적 수단이 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뒤따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모든 이스라엘 지파 가운데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찾기로 마음먹은 사람들도 그들을 따라 예루살렘으로 왔습니다. 자기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야훼께 제물을 잡아 바치려는 것이었습니다.역대하 11:16 · 두루새김
히브리어 표현은 마음을 두어 여호와야훼를 찾는다는 뜻으로, 단순한 감정이나 막연한 종교적 관심보다 스스로 뜻을 정하는 결단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그 결단은 실제 행동으로 이어졌습니다.
본문은 이 사람들이 모두 영구적으로 이주했는지까지 밝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정치적 경계를 넘어 예루살렘의 예배에 참여하려 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3절에서 여호와야훼는 유다와 베냐민 사람들까지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부르셨습니다. 13절에서는 북쪽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스라엘 온 땅」에서 나왔다고 말하고, 16절에서는 「모든 이스라엘 지파」 가운데서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이 찾아왔다고 기록합니다.
정치적으로는 이스라엘과 유다가 분리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는 두 왕국의 국경만으로 나눌 수 없었습니다. 역대기 저자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단순히 북쪽 왕국에만 가두지 않습니다.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나님을 찾는 유다 사람들과 북쪽에서 온 사람들 모두를 이스라엘의 이야기 안에 놓고 있습니다.
그들은 유다 왕국을 튼튼하게 하고,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에게 3년 동안 힘을 보탰습니다. 그들이 3년 동안 다윗과 솔로몬의 본을 따라 살았기 때문입니다.역대하 11:17 · 두루새김
12절에서는 성읍의 방어가 튼튼해졌습니다. 17절에서는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이 왕국을 튼튼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그 기간을 특별히 한정합니다.
「3년 동안」이라는 말은 한 절에 두 번 나옵니다. 그들의 신실함과 왕국이 튼튼해지는 일이 특정한 기간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다음 장에서는 르호보암이 왕국을 튼튼하게 한 뒤 여호와야훼의 율법을 버리는 일이 기록됩니다(12:1).
왕국의 분열 이후에도 하나님을 찾는 일은 계속되었고, 북쪽과 남쪽의 사람들이 그 예배 안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잃어버린 영토를 회복하지 않아도 하나님을 향한 공동체의 결속은 깊어질 수 있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숫염소 귀신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스이림(שָׂעִיר)입니다. 본래 숫염소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특정 문맥에서는 숫염소 모양의 숭배 대상이나 귀신을 뜻합니다. 레위기 17:7에서도 이 표현이 이스라엘이 더 이상 제물을 바쳐서는 안 될 대상으로 등장합니다. 정확히 어떤 형상과 의식을 가리켰는지는 확정하기 어렵지만, 역대기 저자가 그것을 여호와야훼를 향한 올바른 예배와 대립시키고 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17절에서 「그들」은 앞에 등장한 사람들을 이어받는 표현으로 읽을 수 있고, 왕국을 이루는 더 넓은 공동체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할 여지도 있습니다. 어느 경우든 이 평가를 르호보암 한 사람의 경건함으로만 좁히기는 어렵습니다. 또한 「다윗과 솔로몬의 본을 따라」 살았다는 말은 역대기가 앞서 서술한 예루살렘 성전의 건립과 여호와야훼 예배의 질서를 떠올리게 합니다. 특히 솔로몬의 삶 전체가 아무 문제 없이 모범적이었다는 뜻보다는, 여기서 강조하는 예배와 순종의 길을 가리킨다고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왕실을 굳건하게 하려는 르호보암
18절부터는 이야기가 뜻밖에도 르호보암의 가정으로 옮겨갑니다.
앞에서는 성읍과 제사장과 예배자들이 등장했는데, 이제는 아내들과 자녀들의 이름이 이어집니다. 얼핏 왕의 가족관계를 기록한 부록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 부분은 왕국을 안정시키려는 르호보암의 또 다른 행동을 보여 줍니다.
르호보암은 먼저 마할랏을 아내로 맞습니다. 그의 가계에는 다윗의 아들 여리못과 이새의 아들 엘리압이 등장합니다. 다윗 왕실과 연결된 혈통이 강조되는 것입니다.
그다음 르호보암은 압살롬의 딸 마아가를 아내로 맞습니다. 그녀에게서 아비야를 비롯한 네 자녀가 태어납니다. 마아가의 출신 역시 다윗 왕실과 연결됩니다.
이 계보들이 중요해지는 것은 곧이어 등장하는 왕위 계승 문제 때문입니다.
21절은 르호보암이 모든 아내와 후궁 가운데 마아가를 가장 사랑했다고 말합니다. 당시 그에게는 아내 18명과 후궁 60명이 있었으며, 아들 28명과 딸 60명이 태어났습니다. 많은 자녀는 왕실의 번성을 나타내지만, 왕위 계승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도 함께 가져옵니다.
르호보암은 마아가의 아들 아비야를 형제들 가운데 우두머리로 세웠습니다. 그를 다음 왕으로 삼으려 했기 때문입니다.역대하 11:22 · 두루새김
여기에는 정치적 현실이 있었습니다. 왕의 아들이 많을수록 왕위 계승을 둘러싼 갈등이 생길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다윗의 말년에 아도니야와 솔로몬을 둘러싸고 일어났던 사건은 이미 왕실의 역사에 남아 있었습니다(열왕기상 1장).
르호보암은 슬기롭게 일을 처리하여 아들들 가운데 여러 명을 유다와 베냐민 온 땅의 튼튼한 성읍들에 나누어 보냈습니다. 그들에게 먹을 것을 넉넉히 주고 아내도 많이 구해 주었습니다.역대하 11:23 · 두루새김
5–12절에서 르호보암은 성읍들을 튼튼하게 하고 지휘관과 식량을 배치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튼튼한 성읍들은 단순한 군사 거점만이 아니었습니다. 왕실 구성원들이 각 지역에 자리 잡는 정치적 거점이기도 했습니다.
르호보암이 아들들을 흩어 보낸 정확한 이유는 본문이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후계자를 한 사람으로 정하고 나머지 아들들을 여러 거점에 배치했다는 순서를 보면, 왕위 계승을 안정시키고 지역 통치를 강화하려는 효과가 있었을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본문이 르호보암의 행동을 「슬기롭게 일을 처리하여」라고 평가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렇다고 이 표현을 르호보암의 모든 행동에 대한 무조건적인 칭찬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우선 그의 많은 아내와 후궁들은 신명기 17:17에 나오는 왕에 관한 경고를 떠올리게 합니다. 왕은 아내를 많이 두어 자기 마음이 돌아서지 않도록 해야 했습니다. 솔로몬의 경우에는 많은 아내가 그의 마음을 다른 신들에게로 돌려놓았다고 열왕기상 11:1–8이 분명히 말합니다.
역대하 11장은 르호보암의 혼인 자체가 그의 마음을 돌려놓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솔로몬에게 일어난 일을 그대로 르호보암에게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왕실을 번성하게 하고 왕위를 안정시키는 데 능숙하다는 것과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다는 것은 서로 구별해야 합니다.
조금 더 깊이
다만 18절의 히브리어 문장은 계보 관계가 압축되어 있습니다. 두루새김은 마할랏의 아버지를 여리못으로, 어머니를 아비하일로 풀어 옮겼습니다. 마할랏을 여리못의 딸로 읽는 것은 전통적인 읽기 방식에 근거하지만, 원문에서 아비하일이 마할랏의 어머니인지, 별도로 언급된 여성인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중요한 것은 저자가 이 혼인 관계를 다윗과 이새의 가계 속에 기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다만 「딸」이라는 계보 표현이 반드시 한 세대의 부녀 관계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므로, 압살롬과의 정확한 세대 관계는 단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왕국은 무엇으로 굳건해지는가
이스라엘의 참된 결속은 왕이 얼마나 넓은 땅을 차지하느냐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찾고 그분의 말씀에 응답하는 사람들이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중요합니다. 왕국의 경계와 제도가 굳건해지는 일, 그리고 하나님을 찾는 공동체가 세워지는 일은 서로 관련되지만 동일한 것은 아닙니다.
역대기 저자는 두 집단을 직접 비교하거나 어느 쪽을 칭찬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장 안에서 이들의 이동을 나란히 읽으면, 같은 왕국을 형성하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이유와 조건 속에서 움직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역대하 11장의 마지막에는 르호보암의 아들들이 여러 튼튼한 성읍에 자리 잡습니다. 왕은 그들에게 먹을 것을 넉넉히 마련해 주고 왕실의 미래를 준비합니다. 성벽은 튼튼해졌고, 왕위 계승의 질서도 갖추어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성읍들이 세워지는 동안, 다른 사람들이 걸어온 길도 있었습니다.
가축을 먹이던 풀밭과 자기 땅을 뒤에 남겨 두고 예루살렘으로 향했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그리고 이스라엘의 여러 지파에서 하나님을 찾기로 마음먹고 그 뒤를 따랐던 사람들입니다.
르호보암은 성벽을 세워 왕국을 지키려 했고, 그 사람들은 하나님을 찾기 위해 길을 떠났습니다. 역대기는 그 두 움직임을 함께 기록하면서, 무엇이 이스라엘을 진정으로 굳건하게 하는지를 묻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