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풀어 읽기 · 18장
이 장의 자리 · 10–28장 · 둘로 갈라진 나라
진실을 듣고도 다른 길을 선택한 왕
아합 왕은 미가야에게 진실을 말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이 말만 들으면 아합은 진실을 중요하게 여기는 왕처럼 보입니다. 그는 다른 예언자들의 말과 똑같이 들리는 미가야의 첫 대답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진실을 말하라고 다시 요구했고, 결국 자신이 전쟁터에서 죽게 될 것이라는 예언까지 들었습니다.
그런데 아합은 그 말을 들은 뒤에도 전쟁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미가야를 감옥에 가두고, 자신은 다른 사람처럼 차림을 바꾼 채 전쟁터로 향했습니다.
아합에게는 진실을 들을 기회가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진실을 듣고도 자신이 원하는 결론을 바꾸지 않았던 것입니다.
역대하 18장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그리고 그 말씀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 사이에 얼마나 큰 거리가 생길 수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이 이야기는 세 공간을 오가며 전개됩니다. 사마리아 성문에서는 두 왕과 수백 명의 예언자가 마주합니다. 미가야의 환상에서는 하늘의 왕좌와 그 주변에 선 존재들이 등장합니다. 마지막 전쟁터에서는 왕의 옷을 입은 사람이 죽을 위기에 처하고, 차림을 바꾼 왕이 화살을 맞습니다.
세 장면을 연결하는 질문은 하나입니다.
누가 사건을 실제로 이끌고 있습니까? 왕들의 계획입니까, 예언자들의 말입니까, 아니면 그들이 듣고도 외면한 여호와야훼의 말씀입니까?
이미 결정한 일을 하나님께 묻다
번영한 왕에게 찾아온 새로운 관계
여호사밧은 큰 부와 명예를 누렸습니다. 그는 아합의 집안과 혼인으로 친척 관계를 맺었습니다.역대하 18:1 · 두루새김
앞 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여호사밧은 강력한 군대와 풍성한 재물을 가진 왕으로 등장했습니다. 18장은 그가 누리던 부와 명예를 다시 언급하면서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군대나 성읍이 아니라 혼인 관계가 중심에 놓입니다.
역대하 21:6은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이 아합의 딸과 결혼했음을 전합니다. 따라서 두 왕가 사이에 이루어진 혼인 관계는 단순한 개인적 결혼이 아니라 왕실을 연결하는 정치적 관계이기도 했습니다.
몇 해 뒤에 여호사밧은 사마리아에 있는 아합을 찾아 내려갔습니다. 아합은 여호사밧과 그와 함께 온 사람들을 대접하려고 양과 염소와 소를 많이 잡았습니다. 그리고 여호사밧을 부추겨 라못길르앗으로 함께 올라가자고 했습니다.역대하 18:2 · 두루새김
라못길르앗은 요단강 동쪽 길르앗 지역의 성읍이었습니다. 군사적·교통적 중요성을 지닌 곳으로, 열왕기상 22:3에 따르면 아합은 그 성읍이 이스라엘에 속하지만 아람 왕의 지배 아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아합은 그곳을 되찾으려 했습니다.
왕실의 혼인 관계가 있었다고 해서 모든 군사적 행동까지 함께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아합의 요청에 적극적으로 응답합니다.
이스라엘 왕 아합이 유다 왕 여호사밧에게 물었습니다. 「저와 함께 라못길르앗으로 가시겠습니까?」 여호사밧이 대답했습니다. 「임금님과 저는 한편이고, 임금님의 백성과 제 백성도 한편입니다. 전쟁에서 임금님과 함께하겠습니다.」역대하 18:3 · 두루새김
두 왕국은 여전히 별개의 나라였지만, 여호사밧은 이 전쟁에서 두 나라의 운명을 함께하겠다고 약속한 셈입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 그가 덧붙입니다.
여호사밧이 이스라엘 왕에게 말했습니다. 「먼저 여호와야훼께서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물어봐 주십시오.」역대하 18:4 · 두루새김
그는 먼저 전쟁에 함께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여호와야훼께서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물어보자고 했습니다.
본문은 여호사밧이 왜 이러한 순서로 행동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가 단순히 외교적 예의를 차렸는지, 실제로 전쟁 참여를 확정한 뒤 하나님의 승인을 구하려 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여호사밧은 말씀을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이 자신의 결정을 바꾸도록 준비되어 있었는지는 이후의 행동을 통해 드러날 것입니다.
모두가 같은 말을 할 때
사백 명의 예언자가 약속한 승리
이스라엘 왕은 예언자 400명을 모으고 물었습니다. 「우리가 라못길르앗으로 싸우러 가야겠느냐, 아니면 내가 그만두어야겠느냐?」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올라가십시오. 하나님께서 적들을 임금님 손에 넘겨주실 것입니다.」역대하 18:5 · 두루새김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승리를 약속했습니다. 이어지는 11절에서는 「여호와야훼께서 적들을 임금님 손에 넘겨주실 것입니다」라고까지 말합니다. 이들을 모두 바알의 예언자라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여호사밧이 물었습니다. 「여기에 우리가 물어볼 만한 여호와야훼의 예언자가 더 없습니까?」역대하 18:6 · 두루새김
그가 왜 이들의 말에 의문을 품었는지 본문은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들이 아합의 뜻에 맞추어 말하고 있음을 알아차렸을 수도 있고, 이들과 다른 예언자의 증언을 듣고 싶었을 수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여호사밧이 수백 명의 일치된 대답을 최종적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스라엘 왕이 여호사밧에게 대답했습니다. 「여호와야훼께 물을 수 있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습니다.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를 미워합니다. 그는 제게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예언하지 않고 언제나 나쁜 일만 예언합니다.」 여호사밧이 말했습니다. 「임금님, 그렇게 말씀하지 마십시오.」역대하 18:7 · 두루새김
그는 미가야가 거짓말을 한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미가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 못한다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그가 미가야를 미워하는 이유는 자신에게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좋은 일」과 「나쁜 일」은 진실과 거짓의 구분이 아닙니다. 왕에게 유리한 말입니까, 불리한 말입니까의 구분입니다.
아합에게 예언은 자신이 알아야 할 진실이기 전에, 자신이 듣고 싶은 결과를 알려 주는 말이 되어 있었습니다.
성문 앞의 두 왕좌와 쇠뿔
미가야를 데려오는 동안 사마리아 성문 앞에서는 장대한 광경이 펼쳐집니다.
아합과 여호사밧은 왕의 옷을 갖춰 입고 각자의 왕좌에 앉아 있습니다. 그들이 앉은 곳은 성문 입구의 타작마당이고, 수백 명의 예언자가 그들 앞에서 예언하고 있습니다.
성문은 고대 도시에서 사람들이 모이고 공적인 일이 다루어지는 중요한 공간이었습니다. 이 장면은 왕궁의 밀실에서 이루어지는 비밀 회의가 아니라, 두 왕의 권위와 예언자들의 말이 공개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으로 그려집니다.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는 쇠로 뿔을 만들어 놓고 말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이 뿔로 아람을 들이받아 그들을 완전히 멸망시킬 것이다.』」역대하 18:10 · 두루새김
뿔은 힘과 공격 능력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사용될 수 있었습니다. 신명기 33:17에서도 뿔로 민족들을 들이받는 모습이 등장합니다. 두 왕은 승리의 약속을 귀로 들었을 뿐 아니라, 적을 들이받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았습니다.
이러한 상징 행동 자체가 거짓 예언의 증거는 아닙니다. 구약의 참된 예언자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상징 행동을 사용했습니다.
문제는 상징 행동의 화려함이 아니라 그 말씀이 실제로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까 하는 점입니다.
이러한 문제는 신명기 13:1–5에서 이미 제기됩니다. 그곳에서는 표징이나 기적이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다른 신을 따르도록 이끄는 말을 받아들이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역대하 18장은 다른 상황을 다루지만, 같은 원칙을 더 넓게 생각하게 합니다. 놀라운 현상이나 다수의 지지,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를 약속하는 말만으로 하나님의 뜻을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예언자의 입까지 통일하려는 사람들
미가야를 부르러 간 심부름꾼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예언자들이 모두 한목소리로 임금님께 좋은 일이 일어날 거라고 말하고 있어요. 그러니 당신도 그들처럼 임금님께 좋은 일이 일어날 거라고 말해 주세요.」역대하 18:12 · 두루새김
심부름꾼은 미가야에게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셨는지 묻지 않습니다. 다른 예언자들과 같은 말을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히브리어 본문에서 두루새김이 「한목소리로」(פֶּה)라고 옮긴 말은 문자적으로 「한 입으로」라는 표현입니다. 여러 사람이지만 마치 하나의 입을 가진 것처럼 같은 말을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심부름꾼은 미가야에게도 그 하나의 입에 자신의 입을 맞추라고 요구합니다.
미가야가 대답했습니다. 「살아 계신 여호와야훼를 두고 맹세해요. 저는 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만 말하겠어요.」역대하 18:13 · 두루새김
다수와 반대되는 말을 한다고 해서 언제나 참된 예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미가야가 자신을 구별하는 기준은 소수라는 사실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히 따르는 데 있습니다.
이제 이 한 사람의 말이 사백 명의 말과 마주하게 됩니다.
왕은 진실을 알아들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미가야의 뜻밖의 첫 대답
미가야가 도착하자 아합은 같은 질문을 반복합니다.
미가야가 왕에게 오자 왕이 물었습니다. 「미가야, 우리가 라못길르앗으로 싸우러 가야겠느냐, 아니면 내가 그만두어야겠느냐?」 미가야가 대답했습니다. 「두 분 다 올라가 승리하십시오. 적들이 두 분의 손에 넘어갈 것입니다.」역대하 18:14 · 두루새김
왕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여호와야훼의 이름으로 내게 진실만 말하겠다고 내가 몇 번이나 너에게 맹세하게 해야 하느냐?」역대하 18:15 · 두루새김
평소에는 자신에게 나쁜 일을 예언한다는 이유로 미가야를 미워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미가야가 좋은 일을 예언하자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며 다시 말하라고 요구합니다.
문제는 그가 그 다른 대답을 듣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였습니다.
목자 없는 양 떼
미가야는 마침내 자신이 본 환상을 전합니다.
미가야가 말했습니다. 「저는 온 이스라엘이 목자 없는 양 떼처럼 산에 흩어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들에게는 주인이 없다. 저마다 자기 집으로 평안히 돌아가게 하라.』」역대하 18:16 · 두루새김
이 장면은 시드기야가 만들었던 쇠뿔과 대조됩니다. 시드기야는 강한 짐승이 뿔로 적을 들이받는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미가야는 목자를 잃은 양들이 산에 흩어지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흔히 백성을 돌보는 목자의 역할을 맡은 사람으로 이해되었습니다. 민수기 27:16–17에서 모세는 자신을 이을 지도자를 세워 달라고 하나님께 요청하면서, 공동체가 목자 없는 양 떼처럼 되지 않도록 해 달라고 말합니다.
양 떼가 목자를 잃었다는 것은 이스라엘 군대가 지휘자를 잃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아합이 전쟁터에서 죽는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 환상의 의미는 더욱 선명해집니다.
그런데 미가야의 환상에는 죽음만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예언의 초점은 왕의 몰락에 있지만, 그 왕을 따라 전쟁에 나간 모든 사람이 함께 멸망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지도자를 잃은 백성이 저마다 자기 집으로 평안히 돌아가는 모습을 말씀하십니다.
아합은 전쟁에서 승리하여 나라를 강하게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미가야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전쟁을 끝내고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방향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 왕이 여호사밧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이 사람은 제게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예언하지 않고 나쁜 일만 예언합니다.」역대하 18:17 · 두루새김
왕은 백성이 목자를 잃을 것이라는 경고를 들었지만, 그 경고를 자기에게 불리한 말로만 받아들였습니다.
조금 더 깊이
가장 자연스러운 해석 가운데 하나는 미가야가 다른 예언자들의 말을 반어적으로 되풀이했다는 것입니다. 왕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이 바로 이것 아니냐는 뜻으로 같은 내용을 말했고, 아합은 그 말투나 상황을 통해 그 의도를 알아차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본문은 미가야가 어떤 말투로 대답했는지 기록하지 않습니다. 다른 예언자들의 확신을 그대로 들려주면서 왕에게 그 말의 문제를 드러내려 했다는 읽기도 가능합니다. 원문에서는 미가야가 두 왕을 향해 복수형으로 올라가라고 명령하고, 그들이 두 왕의 손에 넘겨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누구를 가리켜 「그들」이라고 했는지 문장 자체는 명시하지 않습니다. 두루새김은 이를 「두 분 다 올라가 승리하십시오. 적들이 두 분의 손에 넘어갈 것입니다」라고 풀어 옮겼습니다. 그러므로 미가야의 첫 대답을 실제 승리의 약속으로 확정하거나, 반대로 그 문장만으로 모든 반어적 의미를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땅의 두 왕좌와 하늘의 한 왕좌
사마리아에서 보이지 않던 왕좌
미가야의 예언은 여기서 더 깊은 차원으로 나아갑니다.
미가야가 말을 이었습니다. 「그러니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저는 여호와야훼께서 왕좌에 앉아 계시고 하늘의 모든 군대가 그분의 오른쪽과 왼쪽에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역대하 18:18 · 두루새김
땅에서는 두 왕이 예언자들의 말을 듣고 있습니다. 하늘에서는 여호와야훼께서 왕좌에 앉아 계시고 하늘의 군대가 그 앞에 서 있습니다.
사마리아의 왕들은 라못길르앗 전쟁을 자신의 계획에 따라 진행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미가야의 환상은 그 전쟁의 결과가 이미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여 있음을 보여 줍니다.
이와 비슷한 하늘의 회의 장면은 욥기 1:6–12와 2:1–6에서도 나타납니다. 그곳에서도 하나님 앞에 하늘의 존재들이 서고, 인간의 삶에 관한 일이 논의됩니다. 이사야 6:1–8 역시 하늘 왕좌와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부르심을 보여 줍니다.
다만 미가야가 본 환상을 하늘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의 구조를 그대로 보여 주는 상세한 기록으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이것은 예언자가 본 환상이며, 아합에게 닥칠 심판의 의미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전해집니다.
문제는 그 환상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거짓말하는 영을 보내셨다는 말은 무엇인가
「여호와야훼께서 물으셨습니다. 『누가 이스라엘 왕 아합을 꾀어 라못길르앗으로 올라가 쓰러져 죽게 하겠느냐?』 그러자 하나는 이렇게 말하고 다른 하나는 저렇게 말했습니다.」역대하 18:19 · 두루새김
여러 존재가 의견을 제시하다가 한 영이 나섭니다.
「그 영이 대답했습니다. 『제가 나가서 그의 모든 예언자의 입에서 거짓말하는 영이 되겠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그를 꾀어내는 데 성공할 것이다. 나가서 그렇게 하라.』」역대하 18:21 · 두루새김
미가야는 단순히 하나님이 거짓 예언을 막지 않으셨다고만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여호와야훼의 왕좌 앞에서 거짓말하는 영을 통해 아합을 꾀어내는 일이 논의되고 허락되는 환상을 보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22절에서는 여호와야훼께서 예언자들의 입에 거짓말하는 영을 넣으셨다고 직접 선언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역할을 단순히 지켜보기만 하신 것으로 줄이면 본문의 표현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합니다. 동시에 이것을 하나님이 모든 거짓말을 명령하시며 인간에게는 아무런 책임도 없다는 일반 원칙으로 확대해서도 안 됩니다.
아합은 이미 자신에게 불리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미가야를 미워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진실보다 자신이 듣고 싶은 좋은 말을 더 좋아했습니다. 사백 명의 예언자는 아합이 추진하려는 전쟁을 지지했습니다.
아합은 자신이 듣고 있는 승리의 예언이 거짓이라는 경고를 직접 들었습니다. 미가야는 단순히 전쟁에서 패배할 것이라고 말하지 않고, 왜 다른 예언자들이 승리를 약속하는지까지 설명했습니다.
그는 거짓된 확신을 주는 말과 그 거짓을 드러내는 말을 같은 자리에서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많이 반복된다고 해서 그 말이 반드시 하나님의 뜻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조금 더 깊이
하나님이 진실을 말씀하시는 분이라면 어떻게 거짓말하는 영을 보내실 수 있습니까? 하나는 이 장면을 하나님의 적극적인 심판 행위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아합이 거짓된 확신을 따라 전쟁터로 나아가도록 하나님이 영을 보내셨다는 미가야의 선언을 강조합니다. 다른 하나는 이를 예언적 환상이 사용하는 법정의 언어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진실을 거부하는 왕을 그의 잘못된 선택에 내어주시는 심판을, 하늘 회의와 거짓말하는 영의 활동으로 드러낸다는 해석입니다. 본문은 아합의 몰락이 단순한 우연이나 군사적 실수만은 아니며,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여 있다고 말합니다. 동시에 하나님이 거짓 예언을 허용하거나 보내셨다는 말과, 하나님이 모든 거짓의 근원이시라는 주장은 구별해야 합니다. 이 환상 하나만으로 하나님과 악의 관계 전체를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그 영을 사탄이라고 밝히지 않습니다. 욥기의 하늘 회의 장면과 비슷하다고 해서 두 본문에 등장하는 존재를 곧바로 같은 존재로 볼 수는 없습니다.
진실을 말한 사람은 감옥으로, 전쟁을 원한 왕은 전쟁터로
시드기야의 질문에는 대답이 필요했다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가 다가와 미가야의 뺨을 때리며 말했습니다. 「여호와야훼의 영께서 나를 떠나 어느 길로 가셔서 네게 말씀하셨다는 거냐?」역대하 18:23 · 두루새김
시드기야는 자신이 여호와야훼의 영을 통해 말한다고 생각하거나 주장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미가야의 예언은 그에게 단순히 다른 의견이 아닙니다. 미가야의 말이 참이라면 시드기야가 전한 승리의 약속은 거짓된 예언이 됩니다.
그의 질문은 반어적인 도전입니다. 여호와야훼의 영이 자신에게서 떠나 미가야에게 갔다면 그 길이 어디냐는 것입니다.
미가야는 이에 대해 길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미가야가 대답했습니다. 「네가 숨으려고 가장 안쪽 방으로 들어가는 날, 그때 알게 될 것이다.」역대하 18:24 · 두루새김
그날에 정확히 어떤 사건이 일어나 시드기야가 숨게 되는지는 이 장에서 기록하지 않습니다. 시드기야는 지금 자신이 옳다는 것을 힘으로 주장합니다. 미가야는 앞으로 일어날 사건이 누구의 말이 참된 것인지 드러낼 것이라고 말합니다.
예언이 참인지 거짓인지는 지금 누가 더 큰 권위를 갖고 있는지, 누가 더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는지, 누가 상대방을 때릴 수 있는지에 따라 결정되지 않습니다.
왕은 자신의 귀에 들린 진실을 감옥에 가둔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명령했다고 전해라. 『이자를 감옥에 가두어라. 내가 평안히 돌아올 때까지 빵과 물도 조금씩만 주어라.』」역대하 18:26 · 두루새김
미가야는 왕의 죽음과 양 떼의 흩어짐을 예고했습니다. 그러나 아합은 감옥에 갇힌 예언자를 자신이 돌아와 다시 처리할 수 있을 것처럼 말합니다. 이 말은 미가야에게 주는 위협인 동시에, 자신이 살아남으리라는 아합의 확신을 드러냅니다.
미가야가 말했습니다. 「임금님께서 정말 평안히 돌아오신다면, 여호와야훼께서 저를 통해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또 말했습니다. 「모든 민족들아, 들어라!」역대하 18:27 · 두루새김
미가야는 왕에게 자신을 믿으라고만 요구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벌어질 사건을 통해 자신의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 판단하라고 합니다.
신명기 18:21–22는 여호와야훼의 이름으로 전한 말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를 통해 그 말씀이 참된 예언이 아님을 가려내는 기준을 제시합니다. 미가야의 선언은 바로 이러한 예언의 책임과 연결됩니다.
왕들이 자신의 권력을 앞세우고, 수백 명의 예언자가 하나의 결론을 주장하는 자리에서, 미가야는 모든 민족을 향해 들으라고 외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왕의 명령으로 감옥에 가둘 수 있는 종류의 말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는 장면입니다.
두 왕은 모든 말을 듣고도 처음의 계획을 실행했습니다.
특히 여호사밧의 침묵이 두드러집니다.
그는 이 논쟁을 시작하게 만든 사람이었습니다. 먼저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물어보자고 했고, 다른 예언자를 찾자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미가야의 경고가 주어졌을 때 어떻게 반응했는지는 기록되지 않습니다.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말씀을 구하는 일에는 적극적이었지만, 그 말씀을 들은 뒤 자신의 결정을 바꾸지는 않았습니다. 여호사밧이 무엇을 생각했는지는 본문이 밝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두 왕은 결국 같은 전쟁터로 향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원문에서 사용된 「고통의 빵」과 「고통의 물」이라는 표현은 그가 먹을 것이 부족하고 가혹한 대우를 받게 될 것임을 드러냅니다.
왕의 옷을 입은 사람과 왕의 옷을 벗은 사람
변장은 누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는가
전쟁터에 도착하자 아합은 여호사밧에게 말합니다.
이스라엘 왕이 여호사밧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처럼 차림을 바꾸고 싸움터에 들어가겠습니다. 임금님께서는 왕의 옷을 입으십시오.」 이스라엘 왕은 차림을 바꾸었고, 두 왕은 전투에 나섰습니다.역대하 18:29 · 두루새김
고대 전쟁에서 왕은 중요한 공격 대상이었습니다. 왕이 죽거나 붙잡히면 군대를 지휘하는 체계가 무너지고 전투의 결과가 바뀔 수 있었습니다.
왕의 옷은 권위의 상징이지만, 이제는 적의 눈에 띄는 표지가 됩니다.
아람 왕은 자기 병거 지휘관들에게 이렇게 명령해 두었습니다. 「지위가 낮든 높든 다른 누구와도 싸우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 왕하고만 싸워라.」역대하 18:30 · 두루새김
아합이 차림을 바꾼 것은 실제로 적이 그를 알아보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문에 왕의 옷을 입고 있던 여호사밧이 공격 대상이 됩니다.
병거 지휘관들은 여호사밧을 보고 말했습니다. 「저 사람이 이스라엘 왕이다!」 그들은 여호사밧과 싸우려고 그를 에워쌌습니다. 여호사밧이 소리쳐 부르짖자 여호와야훼께서 그를 도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여호사밧에게서 물러나게 하셨습니다.역대하 18:31 · 두루새김
아합은 자신이 누구인지 감추어 위험을 피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드러내고 있던 여호사밧은 실제로 이스라엘 왕이 아닌데도 이스라엘 왕으로 잘못 여겨집니다.
여호사밧의 부르짖음
본문은 여호사밧이 정확히 무엇이라고 부르짖었는지 밝히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차원에서는 병거 지휘관들이 상대방을 잘못 알아보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뒤쫓기를 그만두었습니다. 그러나 역대기는 그 일이 일어나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여호사밧을 도우셨다고 말합니다.
처음에 아합은 여호사밧을 움직여 전쟁터로 끌어들였습니다. 마지막에 하나님은 그를 에워싼 적들을 움직여 물러나게 하셨습니다.
아합의 권유로 시작된 위험한 길에서 여호사밧이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아합의 보호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의지하여 전쟁에 나선 동맹 왕은 정작 자신이 누구인지 감추고 있었습니다.
여호사밧을 도우신 분은 여호와야훼였습니다.
이것이 여호사밧의 선택을 무조건 옳게 만든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음 장인 역대하 19:2에서는 그가 아합을 도왔다는 사실에 대해 꾸지람을 받습니다. 따라서 이 장면을 하나님이 여호사밧의 동맹 정책을 승인하셨다는 증거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여호사밧은 잘못된 위험 속에 들어갔지만, 하나님은 그를 죽음의 위기에서 도우셨습니다.
조금 더 깊이
아합이 차림을 바꾸기로 한 것은 이러한 위험을 피하려는 군사적 조치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아합이 어떤 이유로 차림을 바꾸었는지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특히 여호사밧을 일부러 미끼로 사용하려 했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여호사밧이 여호와야훼께 도움을 구했다고 이해할 여지는 있습니다. 앞서 그가 하나님을 찾는 왕으로 묘사되었고, 바로 이어 여호와야훼께서 그를 도우셨다고 기록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누구를 향해 부르짖었는지 명시되어 있지 않으므로, 그의 입에서 어떤 기도가 나왔는지를 만들어 낼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 역대하의 서술은 같은 사건을 다루는 열왕기상 22:32–33과 차이를 보입니다. 열왕기는 아람의 지휘관들이 여호사밧이 이스라엘 왕이 아님을 알고 물러났다고 기록합니다. 역대기는 여기에 여호와야훼께서 여호사밧을 도우셨고 하나님이 적들을 물러나게 하셨다는 설명을 더합니다.
아무렇게나 날아간 화살이 찾아낸 왕
변장은 성공했지만 왕은 살아남지 못했다
이제 전쟁 이야기는 아합에게로 돌아옵니다.
아합의 계획은 적어도 한 가지 점에서는 성공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는 적의 집중 공격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이름조차 기록되지 않은 사람이 등장합니다.
한 사람이 특별히 누구를 노리지 않고 활을 쏘았는데, 화살이 이스라엘 왕의 갑옷 이음새 틈을 맞혔습니다. 왕이 병거를 모는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다쳤다. 병거를 돌려 나를 전투 대열 밖으로 데려가라.」역대하 18:33 · 두루새김
아합을 골라 공격하라는 명령을 받은 지휘관들은 그를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특정한 왕을 노리지 않은 화살 하나가 그를 맞혔습니다.
인간의 눈에는 특별한 의도 없이 일어난 사건으로 보이지만, 이야기 전체의 흐름에서는 이미 선포된 하나님의 심판이 이루어지는 사건입니다. 물론 이것을 근거로 모든 우연한 사고를 하나님의 직접적인 형벌이라고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이 본문에는 아합에 대한 구체적인 예언이 먼저 주어졌고, 그 예언과 실제 사건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해가 질 때까지 버틴 왕
하지만 전투는 계속 거세집니다.
그날 전투는 더욱 거세졌습니다. 이스라엘 왕은 저녁까지 병거 위에서 아람 군대를 마주 보며 버티고 서 있었습니다. 그는 해가 질 무렵에 죽었습니다.역대하 18:34 · 두루새김
이 죽음은 앞서 미가야가 말한 목자 없는 양 떼의 환상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는 이스라엘이 목자를 잃고 흩어질 것을 보았습니다. 이제 실제로 이스라엘 왕이 죽었습니다.
열왕기상 22:35–38은 아합의 죽음과 그 뒤의 상황을 더 자세히 전합니다. 그러나 역대하 18장은 해가 질 무렵 아합이 죽었다는 사실에서 멈춥니다.
말씀을 들었던 왕이 어떤 결말을 맞았는지 보여 준 뒤 이야기를 닫습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특별히 누구를 노리지 않고」로 번역된 히브리어 레툼모(תֹּם)는 본래 온전함이나 순전함과 관련된 표현입니다. 이 문맥에서는 특별한 의도나 계산 없이 활을 쏘았다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버티고 서 있었습니다」에 해당하는 동사는 마아미드(עָמַד)로, 무언가를 세우거나 서 있게 한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아합이 자신의 몸을 버티어 세웠다는 뜻으로도, 병거를 전투 대열에 세워 두었다는 뜻으로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서 있는 상태가 유지되었다는 뜻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본문이 누가 어떤 방식으로 그 동작을 했는지 모두 설명하지 않으므로 하나로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가 군대를 지휘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버텼는지, 전투가 격렬하여 물러날 수 없었는지, 또는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진실이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그 말이 내 계획을 지지하는지 확인하는 일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 말이 내 계획을 바꿀 권위를 갖도록 하는 일입니다. 아합과 여호사밧의 이야기는 바로 그 지점에서 갈라지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아합에 대한 심판의 말씀을 이루셨고, 동시에 위험에 빠진 여호사밧을 도우셨습니다.
본문은 여호사밧이 아합보다 도덕적으로 완전했기 때문에 살아남았다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여호사밧 역시 미가야의 경고를 듣고도 전쟁에 참여했습니다. 따라서 두 왕의 서로 다른 결말을 인간의 공로와 잘못을 정확하게 계산한 결과로 단순화할 수 없습니다.
사마리아 성문에서 수백 명의 예언자가 약속했던 승리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쇠로 뿔을 만들어 보이며 적을 들이받을 것이라고 장담했던 말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감옥에 갇힌 미가야의 말이 전쟁터에서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그 화살이 날아가기 오래전에 왕은 자신에게 닥칠 일을 들었습니다. 진실을 말하라고 요구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들은 말씀을 따라 자신의 길을 바꾸지는 않았습니다.
왕의 옷은 벗을 수 있었지만, 자신이 들은 말씀을 없앨 수는 없었습니다.
해가 지고, 아합의 병거에는 더 이상 살아 있는 왕이 서 있지 않았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