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풀어 읽기 · 17장
이 장의 자리 · 10–28장 · 둘로 갈라진 나라
나라를 강하게 만든 또 하나의 힘
여호사밧은 강한 나라를 만들었습니다. 성채를 세우고, 군대를 배치하고, 물자를 비축했습니다. 주변 나라들은 그를 두려워했고, 어떤 나라들은 선물과 조공까지 가져왔습니다. 장의 마지막에는 백만 명이 넘는 군사들이 지휘관별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장에서 가장 특별한 장면은 군사력을 키우는 일이 아닙니다.
여호사밧은 나라 곳곳에 군대를 배치했을 뿐 아니라, 관리들과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을 보내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게 했습니다. 성채를 세우는 일과 백성을 가르치는 일이 한 왕의 통치 안에서 나란히 이루어졌습니다.
이 두 가지는 어떤 관계일까요? 강한 군대가 있는 나라에서 굳이 율법책을 들고 모든 성읍을 돌아다녀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역대하 17장이 보여 주는 여호사밧의 강한 세력은 군사력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이 장은 나라가 무엇을 통해 굳게 서는지를 군대와 율법책이라는 두 장면을 통해 보여 줍니다.
아버지가 남긴 왕국을 지키는 일
여호사밧의 첫 행동은 국경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아사의 아들 여호사밧이 아버지를 이어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에 맞서 자기 세력을 키웠습니다.역대하 17:1 · 두루새김
아사 시대에 유다와 북왕국은 라마를 둘러싸고 대립했습니다. 여호사밧은 그러한 긴장 속에서 왕위를 물려받았습니다. 그는 유다에서 방어 시설을 갖춘 성읍들에 군대를 배치하고, 유다 전역과 아사가 점령했던 에브라임의 성읍들에 그곳을 지킬 군대를 두었습니다.
에브라임은 북왕국의 중심 지역이었지만, 아사 시대에 일부 성읍이 유다의 지배 아래 들어왔습니다. 역대하 15:8은 아사가 에브라임 산지에서 점령한 성읍들을 언급합니다.
여호사밧은 새롭게 정복 전쟁을 벌였다는 말보다, 아버지가 확보한 지역들을 유지하고 방어했다는 말로 소개됩니다.
왕위 계승은 단순히 왕관을 물려받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국경의 긴장, 방어해야 할 성읍, 백성의 안전을 함께 책임지는 일이었습니다.
다윗의 길을 걷는 왕
두 나라를 구별한 것은 정치적 국경만이 아니었다
역대기는 여호사밧의 신앙을 네 가지 행동으로 묘사합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여호사밧과 함께하셨습니다. 여호사밧이 조상 다윗이 처음에 보여 준 본을 따르고 바알들을 찾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버지의 하나님을 찾으며 그분의 명령을 지켰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는 대로 하지 않았습니다.역대하 17:3–4 · 두루새김
그는 바알들에게서 도움을 구하지 않고 아버지의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바알은 고대 가나안 지역에서 숭배되던 신으로, 특히 비와 풍요와 관련이 깊었습니다. 농경 사회에서 비와 풍요는 생존과 바로 연결되었기에, 바알 숭배는 단순한 취향이나 문화적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삶의 안전과 번영을 어디에서 구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연결되었습니다.
여호사밧은 그 문제에서 분명한 방향을 선택했습니다.
본문의 「이스라엘」은 여기서 북왕국을 가리킵니다. 앞서 1절에서는 군사적으로 맞서는 대상이었고, 4절에서는 종교적 행동을 본받지 말아야 할 대상으로 등장합니다.
이것은 북왕국에 속한 모든 사람이 똑같이 바알을 숭배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여호사밧 시대 북왕국의 왕실을 비롯한 종교적 현실에 대한 평가입니다. 특히 뒤이어 등장할 아합 왕가의 바알 숭배가 중요한 배경을 이룹니다(열왕기상 16:30–33).
그렇다고 남왕국 유다의 모든 관습이 저절로 옳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여호사밧은 유다 안에 남아 있던 산당들과 아세라 나무 기둥들까지 없애야 했습니다.
여호사밧이 따르려는 기준은 북왕국에 대한 적대감이나 남왕국의 전통 자체가 아니라, 여호와야훼의 명령이었습니다.
다윗의 길은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는 길이 아니었다
3절은 여호사밧이 「조상 다윗이 처음에 보여 준 본」을 따랐다고 말합니다.
다윗은 여호사밧의 직접적인 아버지가 아니라 왕조의 조상입니다. 여호사밧의 아버지는 아사였지만, 역대기는 그의 통치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다윗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처음에 보여 준 본」이라는 표현은 다윗의 초기 행동을 특별히 강조합니다. 그러나 이 표현만으로 다윗의 생애를 초기의 순종과 후기의 전면적인 불순종으로 나눌 수는 없습니다. 역대기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찾고 예배 질서를 세운 왕조의 중요한 본보기입니다.
역대기는 왕이 왕조를 올바르게 잇는지를 혈통으로만 평가하지 않습니다.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났는가뿐 아니라 다윗이 걸었던 하나님을 향한 길을 실제로 걷는가를 묻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여호사밧이 다스리는 왕국을 굳게 세우셨습니다. 온 유다가 여호사밧에게 선물을 가져왔고, 그는 큰 부와 명예를 누렸습니다.역대하 17:5 · 두루새김
여호사밧은 왕이 되자마자 스스로 세력을 키웠습니다. 그런데 역대기는 왕국을 실제로 굳게 세우신 분이 여호와야훼라고 말합니다.
왕이 행동했다는 사실과 하나님이 일하셨다는 사실이 함께 기록됩니다.
높아진 마음이 교만이 아니라 담대함이 되다
그는 여호와야훼의 길을 따르는 데 마음이 굳세어졌습니다. 또 유다에서 산당들과 아세라 나무 기둥들을 없앴습니다.역대하 17:6 · 두루새김
와이그바 리보는 글자 그대로 옮기면 그의 마음이 높아졌다는 뜻입니다. 구약에서 마음이 높아진다는 표현은 교만이나 자신을 지나치게 믿는 태도를 나타낼 때도 사용됩니다. 역대하 26:16에서는 웃시야의 세력이 강해졌을 때 마음이 높아져 결국 악을 행하게 되었다고 기록합니다.
그런데 여호사밧에게는 같은 종류의 표현이 긍정적으로 사용됩니다.
원문에서 여호사밧의 마음이 높아진 방향은 두루새김의 「여호와야훼의 길을 따르는 데」에 해당합니다. 그 결과는 자신의 권한을 과시하거나 다른 사람들을 억압하는 행동이 아니라, 산당들과 아세라 나무 기둥들을 없애는 일이었습니다. 원문의 독특한 표현이 보여 주듯, 문제는 자신감이나 담대함의 크기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무엇을 향하고 있는가 하는 데 있습니다.
산당들은 높은 곳이나 지방의 성소에 마련된 예배 장소들이었습니다. 아세라 나무 기둥들은 가나안의 여신 아세라와 관련된 종교적 상징물이었습니다. 이러한 시설들을 없애는 일은 단순히 몇 가지 물건을 치우는 데서 끝나지 않고, 지역에 자리 잡은 오랜 종교 관습을 바꾸는 일이었습니다.
왕의 결단이 있었다고 해서 백성의 오래된 관습까지 즉시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여호사밧은 산당을 없애는 데서 멈추지 않고, 백성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역대하 17:6은 여호사밧이 산당들을 없앴다고 하지만, 역대하 20:33은 산당들이 없어지지 않았다고 기록합니다. 열왕기상 22:43에도 산당들이 남아 있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여호사밧이 일부 산당을 없앴지만 모든 산당을 없애지는 못했을 수 있습니다. 아세라 숭배와 결합한 산당은 없앴지만, 여호와야훼를 예배하면서도 중앙 성소 밖에 남아 있던 산당은 계속 있었을 수 있습니다. 또는 개혁 이후 일부 관습이 다시 나타났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어느 설명이 확실한지는 본문만으로 결정하기 어렵습니다.
왕이 보낸 사람들은 무기가 아니라 율법책을 가지고 있었다
왕궁의 관리들이 가르치는 사람으로 파견되다
여호사밧은 왕이 된 지 3년째 되는 해에 자기 관리들을 보내 유다 성읍들에서 백성을 가르치게 했습니다. 그 관리들은 벤하일과 오바댜와 스가랴와 느다넬과 미가야였습니다.역대하 17:7 · 두루새김
먼저 다섯 명의 왕실 관리들이 등장합니다. 그다음에는 아홉 명의 레위 사람들과 두 명의 제사장이 이름을 올립니다. 관리들은 왕의 행정적 권한을 대표했고,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은 이스라엘의 예배와 율법 교육에 관련된 일을 맡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왕은 이들을 함께 보냈습니다.
여호사밧은 율법 교육을 종교 지도자들만의 일로 남겨 두지 않고, 왕국의 통치와 연결된 공적인 과제로 삼았습니다. 왕실의 관리들이 참여함으로써 이 활동은 왕의 공식적인 정책이 되었습니다.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이 참여함으로써 교육의 내용은 여호와야훼의 율법에 뿌리를 두게 되었습니다.
이들이 가르친 세부 내용이나 돌아다닌 경로는 전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역대기는 그들의 이름을 기억합니다.
성전 안에 있던 말씀이 성읍들로 나아가다
그들은 여호와야훼의 율법책을 가지고 유다에서 가르쳤습니다. 유다의 모든 성읍을 두루 다니며 백성을 가르쳤습니다.역대하 17:9 · 두루새김
왕에게는 명령할 권한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호사밧은 왕의 명령만으로 백성의 삶을 이끌려 하지 않았습니다. 백성이 왕보다 높은 권위를 지닌 하나님의 가르침을 배우도록 했습니다.
이것은 신명기 17:18–20에서 제시된 왕의 모습과 이어집니다. 거기서 왕은 율법을 자신의 곁에 두고 평생 읽으며 여호와야훼를 경외하는 법을 배우도록 명령받습니다. 왕이 백성 위에 있는 통치자라고 해서 하나님의 율법 위에 있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백성이 찾아오기를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유다의 성읍들로 직접 나아갔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종교 생활에서 예루살렘 성전은 중요한 중심지였지만, 백성의 일상은 각 지역의 성읍과 마을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농사를 짓고 물건을 거래하며 가정을 이루고 분쟁을 해결하는 곳은 사람들이 실제로 살아가는 지역이었습니다.
여호사밧의 정책은 바로 그곳으로 율법 교육을 가져갔습니다.
신명기 31:9–13은 온 백성이 율법을 듣고 배우도록 할 것을 명령합니다. 남자와 여자, 어린이와 공동체 안에 거주하는 외국인까지 말씀을 듣고 여호와야훼를 경외하는 법을 배우도록 하는 것이 그 목적이었습니다.
역대하 17장의 순회 교육은 그 명령과 같은 주제로 이어집니다. 다만 두 본문이 같은 방식의 교육 제도를 묘사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명기는 정기적인 공동체의 율법 낭독을 명령하고, 역대기는 왕이 사람들을 지방으로 보내 가르치게 한 일을 기록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은 단순히 같은 땅에 살고 같은 왕을 섬긴다는 사실만으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워야 합니다.
무엇을 없애느냐보다 무엇을 배우느냐
잘못된 예배의 장소나 상징물을 없앨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에 남아 있는 생각과 습관을 단순히 시설을 없애라는 명령만으로 바꾸기는 어렵습니다.
백성이 왜 바알을 찾지 않아야 하는지, 여호와야훼의 명령은 무엇인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배우지 못한다면, 겉으로 드러난 변화가 계속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본문이 여호사밧의 구체적인 교육 의도를 이렇게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산당을 없앤 일에 이어 율법 교육이 기록된 순서를 보면, 역대기가 단순한 시설 정비보다 깊은 차원의 개혁을 보여 준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가르침은 명령보다 느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명령으로 없앤 것만이 아니라, 백성이 앞으로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에 영향을 미칩니다.
여호사밧은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를 원했을 뿐 아니라, 그 말씀을 알 수 있도록 했습니다.
전쟁이 없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주변 나라들이 두려워한 대상
율법 교육의 이야기가 끝나자 갑자기 국제 정세에 관한 보고가 나옵니다.
유다 주변의 모든 나라가 여호와야훼를 몹시 두려워하게 되어, 여호사밧과 전쟁을 벌이지 않았습니다.역대하 17:10 · 두루새김
본문은 아직 여호사밧의 거대한 군대 명단을 보여 주지 않았습니다. 먼저 왕의 신앙과 율법 교육을 설명한 다음, 주변 나라들이 유다와 전쟁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록합니다.
주변 나라들이 전쟁을 벌이지 않은 이유를 본문은 유다의 군사력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여호와야훼를 몹시 두려워하게 되어」 전쟁을 벌이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비슷한 장면은 역대하 14:14에도 나옵니다. 아사의 군대가 구스 군대를 물리친 뒤 주변 성읍들에 여호와야훼로 인한 두려움이 닥쳤습니다.
그런데 17장에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여호사밧이 대규모 전쟁에서 승리한 다음 주변 나라들이 두려워한 것이 아닙니다. 이 장에는 그러한 전쟁 자체가 없습니다.
군대가 강해졌다는 사실만큼이나, 그 군대가 싸우지 않아도 되었다는 사실이 왕국의 안전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의 도움은 언제나 극적인 전투나 눈에 보이는 승리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분쟁이 일어나지 않는 평온한 시간 역시 하나님이 주시는 보호의 한 모습으로 기록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신앙이 좋은 나라에는 반드시 전쟁이 없다는 일반 법칙으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여호사밧 자신도 뒤에 큰 전쟁의 위기를 겪습니다(역대하 20:1–30). 17장은 특정한 시기에 여호사밧이 누린 평안을 하나님이 하신 일과 연결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전쟁을 벌이지 않는 나라들이 예물을 가져오다
11절에서는 블레셋 사람들과 아라비아 사람들이 여호사밧에게 선물과 조공으로 바칠 은, 가축을 가져옵니다.
블레셋은 유다 서쪽 해안 평야와 관련된 지역이었고, 아라비아 사람들은 유다 남쪽과 동남쪽의 여러 집단을 가리키는 넓은 명칭이었습니다. 아라비아 사람들이 가져온 숫양은 7,700마리, 숫염소도 7,700마리로 기록됩니다. 양과 염소는 당시 식량과 경제 활동에 중요한 가축이었으며, 대규모 가축의 이동과 제공은 상당한 경제적 가치가 있는 일이었습니다.
이 장면은 여호사밧의 영향력이 유다의 국경 안에 머물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이것이 계속 조공을 바쳐야 하는 의무였는지, 우호적인 관계를 위한 선물 제공이었는지, 또는 여러 정치적 관계가 함께 작용했는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주변 집단들이 여호사밧에게 재물을 가져올 만큼 그의 왕국이 부유하고 힘 있는 나라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5절에서는 「온 유다」가 여호사밧에게 선물을 가져왔습니다. 이제 11절에서는 주변 집단들이 선물과 조공으로 바칠 은을 가져옵니다.
왕국 안에서 인정받는 통치자가 왕국 밖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여호와야훼를 몹시 두려워하게 되어」는 여호와야훼를 향한 두려움으로도, 여호와야훼에게서 비롯되는 두려움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두루새김은 여호와야훼를 두려워하는 대상으로 드러내어 옮겼습니다. 다만 문맥에서는 그 두려움이 여호와야훼에게서 비롯되었다는 의미가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주변 나라들이 여호와야훼를 신앙적으로 경외하게 되었다는 설명이 아니라, 그들에게 닥친 두려움으로 인해 여호사밧과 전쟁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백만 명이 넘는 군대가 보여 주는 것
강해진 왕국의 구체적인 모습
이제 이야기는 여호사밧의 군사적·경제적 성장으로 돌아갑니다.
여호사밧의 세력은 갈수록 더욱 커졌습니다. 그는 유다에 적의 공격을 막을 튼튼한 성채들과 물자를 보관할 성읍들을 세웠습니다.역대하 17:12 · 두루새김
왕은 왕이 될 때부터 방어 시설을 갖춘 성읍에 군대를 배치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자 방어 시설을 유지하는 데서 나아가 새로운 성채들과 물자를 보관할 성읍들을 세웠습니다.
성채는 외부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한 시설이고, 물자를 보관할 성읍은 식량과 물자 등을 확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었습니다. 고대의 전쟁에서는 병사의 숫자만큼이나 군대를 유지할 수 있는 물자와 보급 능력이 중요했습니다. 따라서 물자를 보관할 성읍을 세운 것은 단순한 부의 과시라기보다 왕국의 안정적인 운영과 방어 능력을 강화하는 조치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13절은 여호사밧이 「유다 성읍들에서 많은 일을 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히브리어 멜라카(מְלָאכָה)는 일이나 작업을 가리키지만, 경우에 따라 그 일의 결과로 만들어진 물품이나 저장된 재산을 뜻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이 구절은 유다 성읍들에서 많은 사업이 진행되고 있었다는 뜻으로도, 많은 물자가 확보되어 있었다는 뜻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찾으면서도 성채를 세웠고, 백성에게 율법을 가르치면서도 군대를 조직했습니다.
이 두 모습은 본문에서 충돌하지 않습니다.
왜 이렇게 많은 군사의 숫자를 기록했을까
14–18절에는 다섯 지휘관의 이름과 그들에게 속한 군사의 숫자가 기록됩니다.
| 지파 | 지휘관 | 기록된 병력 | | --- | --- | --- | | 유다 | 아드나 | 300,000명 | | 유다 | 여호하난 | 280,000명 | | 유다 | 아마시야 | 200,000명 | | 베냐민 | 엘리아다 | 200,000명 | | 베냐민 | 여호사바드 | 180,000명 | | 합계 | | 1,160,000명 |
이들이 왕을 섬기는 군사들이었습니다. 이들 외에도 왕은 온 유다에서 방어 시설을 갖춘 성읍들에 군사들을 배치해 두었습니다.역대하 17:19 · 두루새김
본문의 숫자를 그대로 합하면 방어 시설을 갖춘 성읍들에 배치한 군사들을 제외하고도 116만 명에 이릅니다. 고대 유다의 땅 크기와 인구를 고려하면, 이 수치를 모두 늘 복무하는 군대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는 실제로 불려 나와 늘 주둔한 인원이라기보다 전쟁 때 동원할 수 있도록 등록된 인원이나 군사 조직의 규모를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고대 군대의 구성 방식과 숫자 표기의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오랜 필사 과정에서 숫자가 달라졌을 가능성도 논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설명이 현재의 숫자를 충분히 풀어 주는지는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기록된 숫자를 더 작은 실제 병력으로 바꾸어 계산할 확실한 방법이 주어져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본문의 숫자를 근거 없이 줄여 계산할 수도 없고, 반대로 116만 명이 항상 예루살렘에 모여 있었다고 확정할 수도 없습니다.
이 목록에서 분명한 것은 여호사밧의 군사력이 유다와 베냐민의 지휘관들 아래 체계적으로 짜여 있었다는 점입니다. 다섯 지휘관의 이름과 병력 규모를 함께 기록함으로써 역대기는 왕국의 강한 군사력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이 긴 명단 가운데 특별히 눈길을 끄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발적으로 자신을 바친 지휘관
그 곁에는 스스로 나서서 여호와야훼께 자신을 바친 시그리의 아들 아마시야가 있었습니다. 그의 지휘 아래 용맹한 군사 20만 명이 있었습니다.역대하 17:16 · 두루새김
다섯 지휘관 가운데 아마시야에게만 독특한 설명이 덧붙습니다. 이 표현이 중요한 까닭은 다른 지휘관들에게는 군사적 능력과 병력 규모가 주로 기록되는 반면, 아마시야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자발적인 헌신이 기록되기 때문입니다.
그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했기에 이런 평가를 받았는지는 본문이 밝히지 않습니다. 어떤 특별한 제물을 드렸는지, 군사적 사명에 자원했는지,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헌신한 것인지는 확정할 수 없습니다.
역대기 저자는 거대한 병력의 숫자 사이에서 한 지휘관의 신앙적 태도를 기록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충실함은 왕이나 종교 지도자들에게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군사적 책임을 맡은 사람의 삶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태도는 중요했습니다.
오늘의 의미 — 사람을 지키는 일과 사람을 가르치는 일
사람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과 그들이 무엇을 따라 살아야 하는지 배우게 하는 것은 서로 다른 일입니다. 강한 성벽은 외부의 침입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벽만으로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올바른 판단을 하거나 정의롭게 행동하도록 만들 수는 없습니다. 왕의 명령은 어떤 행동을 금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무엇이 옳은지 이해하고 자발적으로 따르도록 하는 데에는 가르침이 필요합니다. 그는 나라의 방어를 소홀히 하지 않았지만, 백성을 단순히 보호받아야 할 대상으로만 보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가르침을 듣고 배워야 할 사람들로 대했습니다.
그렇다고 여호사밧의 정책을 현대의 국가 종교 정책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고대 유다는 왕의 통치와 여호와야훼와 맺은 언약에 대한 충실함이 결합된 왕국이었습니다. 현대 사회의 정치적·종교적 질서는 그와 다릅니다.
여호사밧은 실제로 사람들을 보냈습니다.
왕실의 관리 다섯 명, 레위 사람 아홉 명, 제사장 두 명이 함께 유다의 성읍들로 나아갔습니다. 그들은 왕의 위엄을 과시하기 위한 행렬로 소개되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의 율법책을 가지고 백성을 가르치는 사람들로 소개됩니다.
역대하 17장의 마지막에는 거대한 군대가 서 있습니다. 수많은 군사가 지휘관의 명령을 기다리고, 방어 시설을 갖춘 성읍마다 그곳을 지킬 군대가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왕국을 이해하는 데 잊지 말아야 할 또 하나의 장면은 9절에 있습니다.
유다의 성읍들을 두루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손에는 여호와야훼의 율법책이 들려 있습니다. 그들이 찾아가는 곳은 전쟁터가 아니라 백성이 살아가는 성읍들입니다.
왕은 그들에게 무언가를 정복하라고 명령하지 않았습니다.
백성을 가르치라고 명령했습니다.
역대기는 이 조용한 일을 여호사밧의 강한 왕국 한가운데 기록해 놓았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