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풀어 읽기 · 7장
이 장의 자리 · 1–9장 · 솔로몬과 성전 건축
불로 받아 주신 성전과 버리실 수 있는 성전
성전을 바치는 예식은 놀라운 광경으로 절정에 이릅니다.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제물을 태우고, 여호와야훼의 영광이 성전을 가득 채웁니다. 온 백성은 땅에 엎드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런데 같은 장의 마지막에서 하나님은 뜻밖의 말씀을 하십니다.
불로 응답하신 하나님이 성전을 버리실 수도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그 성전에 자신의 이름을 영원히 두셨다고 선언하신 직후에 이런 경고가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두 말이 함께 성립할 수 있을까요?
하늘에서 내려온 불 — 하나님은 무엇을 받아 주셨는가?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번제물과 잡아 바친 제물들을 태웠습니다. 여호와야훼의 영광이 성전을 가득 채웠습니다.역대하 7:1 · 두루새김
솔로몬은 앞 장에서 하나님께 자신의 기도를 들어 주시고, 성전을 향해 기도하는 백성의 간절한 요청에도 응답해 달라고 구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실제로 응답하십니다.
이스라엘의 성경에서 불은 하나님께서 계심과 그분의 거룩함을 나타내는 중요한 표지입니다. 출애굽기 3:2에서는 불타는 떨기나무 가운데 하나님이 모세에게 나타나시고, 출애굽기 19:18에서는 여호와야훼께서 불 가운데 시내산에 내려오십니다.
그러나 역대하 7장과 더욱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장면은 레위기 9:23–24입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제사장으로서 일을 시작할 때, 여호와야훼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났고 여호와야훼 앞에서 불이 나와 제단의 제물을 태웠습니다. 백성은 소리를 지르며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습니다.
역대하 7장에서도 같은 요소들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영광, 제물을 태우는 불, 그리고 땅에 엎드리는 백성입니다. 이렇게 닮은 장면은 성전을 바치는 예식이 단순히 새 건물을 여는 행사가 아님을 보여 줍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의 예배를 받아 주셨던 하나님이 이제 예루살렘 성전에서도 백성의 예배를 받아 주십니다.
역대상 21:26에서도 하늘에서 불이 내려온 적이 있습니다. 다윗이 인구 조사를 한 뒤 이스라엘에 재앙이 닥쳤을 때, 다윗은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 여호와야훼께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곳에서 번제물과 화목 제물을 드리자 여호와야훼께서 하늘에서 불을 내려 제단 위에 응답하셨습니다. 그리고 역대하 3:1은 솔로몬이 성전을 지은 곳을 바로 그 오르난의 타작마당과 연결합니다.
다윗의 시대에는 죄로 인해 재앙이 닥친 자리에서 불이 내려왔고, 그 이후 재앙이 그쳤습니다(역대상 21:26–27). 솔로몬의 시대에는 그 장소에 세워진 성전을 바칠 때 다시 불이 내려옵니다. 하나님의 불은 이곳에서 단순히 인간을 파괴하는 불이 아니라, 그분이 제물을 받아 주셨다는 응답의 표지가 됩니다. 죄와 재앙의 기억이 있는 장소가 하나님께서 백성을 만나시는 장소로 세워진 것입니다.
이 연결을 생각하면 뒤이어 하나님이 재앙과 회개와 용서를 말씀하시는 이유도 더 분명해집니다. 성전은 죄가 없는 사람들만을 위해 세워진 장소가 아닙니다. 죄를 범한 백성이 다시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도록 그분이 마련해 주신 장소입니다.
그런데 불이 내려온 뒤 뜻밖의 일이 벌어집니다.
제사장들은 여호와야훼의 성전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여호와야훼의 영광이 성전을 가득 채웠기 때문입니다.역대하 7:2 · 두루새김
성전은 제사장들이 맡은 일을 하도록 세심하게 마련되었지만, 성전에서 가장 결정적인 사건은 제사장들의 능력이나 계획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곳에 오셨습니다.
온 이스라엘 백성은 불이 내려오는 것과 성전 위에 있는 여호와야훼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돌을 깐 바닥에 얼굴을 대고 엎드려 경배하며 여호와야훼께 감사했습니다. 「그분은 선하시다. 그분의 한결같은 사랑은 영원하다.」역대하 7:3 · 두루새김
백성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압도적인 불을 보았지만, 그 불을 경험한 뒤 고백한 것은 하나님의 위대함이나 두려운 능력만이 아닙니다. 그 불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 주는 동시에, 백성의 예배를 받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냅니다.
하나님의 거룩함 앞에서 백성은 엎드렸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알았기에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백성의 찬양이 이어지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온 뒤 왕과 온 백성은 하나님께 제물을 잡아 바칩니다.
솔로몬 왕은 소 2만 2천 마리와 양과 염소 12만 마리를 제물로 잡아 바쳤습니다. 이렇게 왕과 온 백성이 하나님의 성전을 바치는 예식을 치렀습니다.역대하 7:5 · 두루새김
본문은 그 숫자를 통해 성전을 바치는 예식의 규모가 얼마나 컸는지 보여 줍니다. 성전 건축을 이끈 사람은 솔로몬이지만, 성전을 바치는 예식은 왕과 백성이 함께하는 일이었습니다.
제사장들은 맡은 자리에 서 있었고, 레위 사람들은 여호와야훼를 찬양하는 악기를 들고 있었습니다. 다윗 왕이 「그분의 한결같은 사랑은 영원하다.」 하고 여호와야훼께 감사하려고 만든 악기들이었습니다. 이 악기들은 다윗이 레위 사람들을 통해 찬양할 때 쓰던 것이었습니다. 제사장들은 그들 맞은편에서 나팔을 불었고, 온 이스라엘 백성은 서 있었습니다.역대하 7:6 · 두루새김
다윗은 성전을 직접 건축하지 못했지만, 성전 예배의 준비에는 깊이 참여했습니다. 역대상 23–25장에는 그가 레위 사람들이 맡을 일을 정하고 찬양을 위한 조직을 마련한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준비하고 솔로몬이 완성한 일이, 이제 백성 전체의 예배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6절에는 앞서 백성이 외친 「그분의 한결같은 사랑은 영원하다」라는 찬양이 다시 나타납니다. 이 고백은 역대하 5:13에서 언약궤가 성전에 들어올 때에도 이미 울려 퍼졌습니다.
반복되는 것은 제물의 규모나 건물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한결같은 사랑을 베푸시는 분이라는 고백입니다.
이 찬양은 시편 136편에서도 반복되는 후렴입니다. 그 시편은 창조에서 출애굽과 광야의 인도, 땅을 주신 일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기억하며 같은 고백을 되풀이합니다. 따라서 이 찬양은 그날 느낀 감정을 표현하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오랜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행동하셨는지를 기억하는 고백입니다.
7절에서는 엄청난 제물의 규모가 예배 공간 자체에 영향을 미칩니다. 솔로몬이 만든 청동 제단에 제물들을 다 올려놓을 수 없자, 그는 성전 앞뜰 한가운데를 제물을 바칠 거룩한 곳으로 따로 정하여 그곳에서도 제물을 바치게 합니다.
성전의 기쁨이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다
성전을 바치는 예식은 하루 만에 끝나지 않았습니다.
솔로몬은 온 이스라엘과 함께 7일 동안 명절을 지켰습니다. 참석한 사람들은 하맛 어귀에서 이집트 개울까지 온 땅에서 모여들었습니다(7:8).
하맛 어귀는 이스라엘 영토의 북쪽 경계를 나타낼 때 사용되는 표현이며, 이집트 개울은 남쪽 경계를 나타내는 지리적 표현입니다. 역대기 기자는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는 사실을 통해 성전을 바치는 예식이 이스라엘 전체의 사건임을 강조합니다.
그들이 지킨 명절은 일곱째 달에 열리는 초막절입니다. 역대하 7:9는 제단을 바치는 예식을 7일 동안 치른 다음, 명절을 7일 동안 지켰다고 설명합니다. 이어서 여덟째 날 모임을 열고, 일곱째 달 23일에 백성을 돌려보냈다고 기록합니다.
초막절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살던 시절을 기억하는 명절이었습니다(레위기 23:42–43). 과거 이스라엘은 이동하며 광야에서 살았고,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하셨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자기 땅에 자리 잡고 성전을 완성했습니다. 삶의 조건은 크게 달라졌지만, 백성이 하나님께 의존한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일곱째 달 23일에 솔로몬은 백성을 각자의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백성은 여호와야훼께서 다윗과 솔로몬과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좋은 일들 때문에 마음 가득 기뻐하며 돌아갔습니다.역대하 7:10 · 두루새김
기쁨의 중심이 인간이 이룬 일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옮겨 갑니다.
온 백성이 한곳에 모여 성전을 바친 뒤 다시 자신이 살아가는 자리로 흩어집니다. 성전을 바치는 예식의 기쁨은 예루살렘 안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백성은 그 기쁨을 지니고 각자의 삶으로 돌아갑니다.
이제 이야기는 또 한 번 전환됩니다.
축제가 끝나고 백성이 떠난 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십니다. 모두가 보는 가운데 내려온 불에 이어, 이번에는 밤에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이 성전의 미래를 결정적으로 밝힙니다.
조금 더 깊이
원문에서는 각자의 천막으로 돌아간다고 표현합니다. 이는 집이나 거처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전을 받아들이셨다. 그러나 그것은 무조건적인 보증이 아니다
솔로몬은 여호와야훼의 성전과 왕궁을 완성했습니다. 여호와야훼의 성전과 자기 왕궁에서 하려고 마음먹은 모든 일을 성공적으로 이루었습니다.역대하 7:11 · 두루새김
역대하 8:1은 이 두 건축 사업을 마치는 데 20년이 걸렸다고 기록합니다. 따라서 11절은 단지 성전을 바치는 예식 직후의 상황만을 설명하기보다 솔로몬의 건축 사업 전체를 정리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 여호와야훼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밤에 솔로몬에게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네 기도를 들었다. 이곳을 나에게 제물을 바치는 성전으로 선택했다.」역대하 7:12 · 두루새김
이것은 앞 장의 긴 기도에 대한 직접적인 응답입니다. 성전은 백성이 기도하는 곳이며, 동시에 제물을 바치는 곳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일이 단순히 마음속의 생각이나 소망을 표현하는 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언약 관계 안에서 죄와 용서, 거룩함과 화해의 문제를 포함한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여기서 성전의 성격을 결정하는 분은 솔로몬이 아닙니다.
솔로몬은 성전을 지었지만, 하나님은 그곳을 선택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성전의 의미는 이제 하나님 자신의 말씀으로 설명될 것입니다.
건축은 끝났지만, 하나님과 그 백성 사이의 관계는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합니다.
조금 더 깊이
「나에게 제물을 바치는 성전」의 원문의 표현은 베트 자바흐로, 제사를 드리는 집 또는 희생 제사의 장소라는 뜻을 가집니다.
하늘을 닫으시는 하나님이 땅을 고치겠다고 말씀하시다
하나님은 성전을 받아 주셨다고 말씀하신 뒤 곧바로 어려움의 상황을 제시하십니다.
「내가 하늘을 닫아 비가 내리지 않게 하거나, 메뚜기에게 명령해 땅을 먹어 치우게 하거나, 내 백성 가운데 전염병을 보낼 때,」역대하 7:13 · 두루새김
이 세 가지는 모두 사람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재앙입니다. 이스라엘이 맺은 언약의 관점에서 하나님은 백성의 삶을 판단하시고, 그들이 잘못된 길에서 돌아오도록 재앙을 허락하시거나 내리시는 분으로도 나타나십니다.
레위기 26장과 신명기 28장에는 언약을 어길 때 땅과 수확, 건강과 안전에 재앙이 닥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옵니다. 역대하 7:13도 그 언약의 배경 안에 있습니다.
그 상황에서 하나님은 백성이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지 알려 주십니다.
「내 이름으로 불리는 내 백성이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며 내 얼굴을 찾고, 자기들의 악한 길에서 돌아서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용서하며 그들의 땅을 고쳐 주겠다.」역대하 7:14 · 두루새김
그들은 스스로 하나님을 선택하여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이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으로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따라서 회개의 출발점은 그들이 새로운 신앙적 자격을 얻는 일이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께 속한 사람으로서 자신들의 삶이 그 관계에 맞았는지 돌아보는 일입니다.
첫째, 스스로 낮추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자신을 무가치한 존재로 여기는 태도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잘못과 한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풍요와 안전을 당연한 권리처럼 여겼던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다시 깨닫는 일입니다.
둘째,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필요한 것을 요구하는 행위이지만, 여기에서는 자신들의 무력함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행위로 나타납니다.
셋째,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두루새김의 「나를 찾고」는 원문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찾는다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찾는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의 도움이나 능력만을 구하는 것보다 넓은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시고 호의를 베풀어 주시기를 구하며 그분과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태도를 나타냅니다.
백성은 비가 다시 내리고 메뚜기가 사라지는 것만을 바라서는 안 됩니다. 그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넷째, 악한 길에서 돌아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단지 잘못을 인정하는 감정이나 말만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악한 길에서 실제로 떠나는 행동을 말씀하십니다.
이 네 가지는 서로 독립된 종교적 절차라기보다 하나의 온전한 회개를 여러 측면에서 보여 줍니다.
그다음 하나님은 자신이 행하실 일을 세 가지로 말씀하십니다. 하늘에서 들으시고, 죄를 용서하시며, 땅을 고쳐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앞 절에서 하나님은 비가 내리지 않는 일과 메뚜기가 땅의 곡식을 먹어 치우는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땅을 고쳐 주신다는 약속은 재앙으로 황폐해진 백성의 삶의 터전을 회복시키시겠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 회복의 중심에 죄의 용서가 놓여 있다는 사실입니다. 백성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생활 조건이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특히 7:14의 「그들의 땅을 고쳐 주겠다」는 말씀은 이스라엘과 맺으신 언약, 땅에 닥치는 재앙, 그리고 백성의 회개라는 맥락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어떤 나라에서 재난이 발생했다고 해서 특정한 사람들의 죄 때문에 하나님이 그 재난을 내리셨다고 단정하거나, 어떤 집단이 정해진 방식으로 기도하면 반드시 재난이 사라진다고 보장하는 근거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잘못을 심판하시는 분이지만, 그 심판을 말씀하시는 자리에서도 백성이 돌아올 길을 열어 두시는 분입니다. 회개는 하나님의 마음을 억지로 바꾸기 위한 방법이 아닙니다. 이미 백성에게 돌아올 길을 알려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과 귀, 그리고 마음이 성전을 향한다
하나님은 이제 솔로몬이 앞서 드렸던 기도에 더욱 직접적으로 응답하십니다.
「이제 나는 눈을 열어 살피고, 이곳에서 드리는 기도에 귀를 기울이겠다.」역대하 7:15 · 두루새김
솔로몬은 6:20과 6:40에서 하나님께 성전을 향해 눈을 여시고 이곳에서 드리는 기도에 귀를 기울여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왕의 기도에 사용된 표현이 하나님의 응답에서 다시 등장합니다.
그러나 다음 절에서 하나님은 솔로몬이 요청했던 것보다 더 풍성하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나는 이 성전을 선택하여 거룩하게 구별했고, 내 이름이 영원히 이곳에 있게 했다. 나는 언제나 이곳을 눈여겨보며 마음을 두겠다.」역대하 7:16 · 두루새김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기도를 보고 들어 주시기를 바랐습니다. 하나님은 그 요청에 응답하시면서 언제나 그곳에 마음을 두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눈과 귀와 마음은 사람의 신체 기관을 그대로 하나님께 적용한다기보다, 하나님께서 주의를 기울이시고 관심을 가지시며 자신의 뜻을 두신다는 사실을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곳을 자신의 뜻과 관심이 향하는 장소로 선택하셨다는 뜻입니다.
다윗의 왕좌가 굳게 서는 조건
하나님은 성전에 관한 말씀에 이어 솔로몬 자신에게 직접 말씀하십니다.
「너도 네 아버지 다윗이 살았던 것처럼 내 앞에서 살며, 내가 네게 명령한 모든 것을 행하고 내 규정과 법을 지키면,」역대하 7:17 · 두루새김
두루새김의 「내 앞에서 살며」(יָלַךְ)는 원문에서 하나님 앞에서 걷는다는 표현입니다. 성경에서 사람이 어떤 길을 걷는다는 말은 그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는지를 나타낼 때 자주 사용됩니다.
다윗은 죄가 없는 왕이 아니었습니다. 역대기 역시 그의 인구 조사와 그 결과로 닥친 재앙을 기록합니다(역대상 21장). 따라서 다윗처럼 산다는 말은 한 번도 잘못하지 않는 완벽한 인간이 되라는 뜻으로 읽기 어렵습니다. 여기서는 하나님께 충성하며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왕의 방향을 가리킵니다.
「네 아버지 다윗에게 『이스라엘을 다스릴 사람이 네 집안에서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고 언약한 대로 내가 네 왕위를 굳게 세우겠다.」역대하 7:18 · 두루새김
사무엘하 7:12–16에서 하나님은 다윗에게 그의 후손과 왕권에 관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 약속은 하나님이 먼저 시작하신 언약이었습니다. 사무엘하 7:14는 다윗의 후손이 잘못할 때 하나님이 그를 징계하실 수 있음을 말합니다. 역대하 7:17–18도 같은 문제를 왕의 순종이라는 관점에서 강조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약속과 인간의 책임은 서로 대립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왕조를 세우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동시에 그 왕조의 왕들은 하나님의 말씀 아래 살아야 합니다.
솔로몬은 성전을 지은 왕입니다. 누구보다 하나님의 일을 크게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성전 건축의 성공이 앞으로의 순종을 대신할 수는 없었습니다.
왕이 가장 큰 업적을 완성한 때에 하나님은 그의 과거가 아니라 그의 앞으로의 길을 말씀하십니다.
성전을 버리겠다는 말씀 — 하나님의 선택은 취소되는가?
하나님은 이제 말씀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십니다.
「그러나 너희가 나에게서 돌아서서 내가 너희에게 준 규정과 명령을 버리고, 가서 다른 신들을 섬기고 그들에게 절하면,」역대하 7:19 · 두루새김
앞에서는 솔로몬에게 「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너희」라고 말씀하십니다. 왕에게 주어진 명령이 이제 백성 전체를 향한 경고로 확장됩니다.
14절에서는 백성이 「자기들의 악한 길에서 돌아서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용서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19절에서는 백성이 「나에게서 돌아서서」 하나님의 규정과 명령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는 상황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 돌아서는 것과 하나님에게서 돌아서는 것이 대조됩니다.
이 장의 핵심 문제는 백성이 단순히 무엇을 믿는다고 말하는가가 아닙니다. 그들이 실제로 어느 방향으로 살아가는가입니다.
「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준 내 땅에서 그들을 뿌리째 뽑아 버리겠다. 내 이름을 위해 거룩하게 구별한 이 성전도 내 앞에서 내던지겠다. 모든 민족이 이 성전을 이야깃거리와 조롱거리로 삼게 하겠다.」역대하 7:20 · 두루새김
성전을 선택하셨다는 말씀은 하나님이 그곳을 자신의 이름을 위한 장소로 삼으셨다는 뜻입니다. 반면 성전을 내던지겠다는 경고는 그 장소가 하나님의 심판에서 제외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셨기 때문에 그 성전은 거룩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 하나님이 심판하실 수 있기 때문에, 백성은 성전을 자신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소유물처럼 여길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받은 땅과 예루살렘 성전은 모두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나 백성이 그 선물을 주신 하나님을 버린다면, 그 선물들을 영원히 자기 것처럼 주장할 수 없습니다.
특히 「뿌리째 뽑아 버리겠다」는 표현은 땅에서 안정적으로 살아가던 백성이 그 삶의 기반을 잃을 수 있음을 강렬하게 드러냅니다. 백성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잃어버리면, 그들이 누리고 있던 삶의 질서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다음 절에서는 경고가 더욱 날카로워집니다.
「높이 솟아 있던 이 성전을 지나가는 사람마다 그 모습을 보고 놀라며 말할 것이다. 『여호와야훼께서 어째서 이 땅과 이 성전에 이런 일을 하셨을까?』」역대하 7:21 · 두루새김
성전은 원래 하나님의 이름을 온 세상에 알리는 장소였습니다. 솔로몬은 앞 장에서 먼 땅에서 온 외국인이 성전을 향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셔서 모든 민족이 하나님의 이름을 알게 되기를 구했습니다(6:32–33).
같은 성전이 서로 정반대의 방식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영광을 알리는 장소가 될 수도 있고, 하나님의 심판을 증언하는 폐허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대답할 것이다. 『그들이 자기들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신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버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른 신들을 붙들고 그들에게 절하며 섬겼다. 그래서 여호와야훼께서 이 모든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신 것이다.』」역대하 7:22 · 두루새김
여기서 「버렸기 때문이다」와 「붙들고」의 대비가 두드러집니다. 자신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버리고, 자신들을 구원하지 않은 다른 신들을 붙든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전을 지켜 낼 능력이 없어서 파괴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불순종을 판단하셨기 때문입니다.
역대하 36:14–19에는 제사장들과 백성이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께 충실하지 않았던 일, 하나님의 사자들을 멸시한 일, 그리고 결국 성전이 불타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장면은 역대하 7장의 경고와 긴밀하게 연결됩니다.
그러나 역대기 전체의 이야기는 폐허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역대하 36:22–23에서는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여호와야훼의 성전을 다시 세우도록 명령하는 장면이 마지막에 놓입니다. 그것은 이 장의 경고가 가볍게 지나가지 않았음을 보여 주는 동시에, 하나님의 심판이 하나님의 모든 약속과 역사의 가능성을 완전히 끝내지는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성전은 파괴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역사를 이끌어 오신 하나님은 그 백성의 불순종으로 인해 무력해지시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14절과 19절의 두 구절에는 같은 히브리어 동사 슈브(שׁוּב)가 사용됩니다. 물론 두 문장의 구체적인 문법 구조는 다르지만, 독자는 같은 돌아섬이 서로 반대되는 방향을 가리킨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결론 — 영원한 것은 성전의 돌이 아니라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이다
백성은 성전이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노래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이 영원하다고 노래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거룩한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하심과 신실하심을 성전 건물 자체와 같은 것으로 여길 수는 없었습니다.
이 장의 처음으로 돌아가 봅니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을 가득 채웁니다. 제사장들도 들어갈 수 없는 그 거룩한 성전 앞에서 백성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립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 순간 백성의 눈앞에는 어떤 재앙도, 성전의 폐허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이 보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그러나 그 영광을 보여 주신 하나님은 훗날 솔로몬에게 말씀하십니다. 자신을 찾고 악한 길에서 돌아오는 백성의 기도를 들으시고, 죄를 용서하시며, 그들의 땅을 고쳐 주시겠다고.
하늘에서 내려온 불이 성전을 받아 주신 하나님의 응답이었다면, 밤에 들려주신 말씀은 그 하나님 앞에서 백성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려 주신 응답이었습니다.
성전을 바치는 예식의 진정한 완성은 불이 내려온 순간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그 불을 보고 하나님께 엎드렸던 백성이, 앞으로도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데 있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