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풀어 읽기 · 24장

이 장의 자리 · 21–24장 · 기근·노래·용사·인구 조사

백성을 세던 왕이 백성을 위해 제단을 세우다

사무엘하의 마지막 장은 이상한 명령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향해 분노하시고, 다윗을 부추겨 백성의 수를 세게 하십니다. 그런데 다윗이 실제로 백성을 세자, 그는 자신이 큰 죄를 지었다고 고백합니다. 결국 전염병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습니다.

하나님이 시키신 일인데 왜 다윗이 죄인이 됩니까? 왕이 잘못했는데 왜 백성이 죽어야 합니까? 하나님은 왜 재앙을 내리셨다가 도중에 멈추십니까?

본문은 이런 질문에 모두 분명한 답을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불편한 사실들을 그대로 남겨 둔 채 이야기를 진행합니다.

처음에 백성은 왕이 조사해야 할 대상이었습니다. 나중에 백성은 왕이 자신의 생명을 내놓아서라도 지키고 싶어 하는 양 떼가 됩니다.

이 장에서 다윗이 배워 가는 것은 백성이 얼마나 많은가 하는 사실보다, 백성의 생명이 얼마나 귀한가 하는 사실입니다.

앞선 23장은 의롭게 다스리는 왕이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이제 마지막 장은 실제 왕의 잘못이 백성에게 어떤 재앙을 가져올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재앙 앞에서 왕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읽는 시간 22분소단락 1124장 본문 읽기 →

하나님이 다윗을 부추기셨다는 말

사무엘하 24:1 본문 →

여호와야훼께서 다시 이스라엘에게 분노하셨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다윗을 이스라엘에게 맞서도록 부추기며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수를 세어라.」사무엘하 24:1 · 두루새김

이야기의 첫 문장에서 가장 먼저 행동하시는 분은 다윗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왜 분노하셨을까요? 본문은 이유를 말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겼거나, 다윗에게 반역했거나, 어떤 특정한 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분노하셨다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다시」라는 표현은 이전에 있었던 하나님의 분노를 떠올리게 합니다. 사무엘하 21장에서는 사울이 기브온 사람들을 죽인 일 때문에 다윗 시대에 먹을 것이 부족해지는 재앙이 일어났습니다. 21장에서 먹을 것이 부족해진 일과 24장의 전염병은 그 원인과 진행 과정이 다르지만, 둘 다 왕의 시대에 일어난 재앙이 온 백성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24장에서는 한층 어려운 문제가 등장합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부추기셨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향해 분노하시고, 그들에게 맞서는 일의 한 과정으로 다윗을 움직이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윗에게 인구조사를 하도록 부추기셨는데, 다윗은 그 일 때문에 죄를 지었다고 고백합니다. 이 긴장을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은 단지 허용하셨을 뿐 실제로 부추기지는 않으셨다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무엘하의 문장은 단순한 허용보다 적극적인 행동을 나타냅니다.

같은 사건을 전하는 역대상은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에 맞서고 다윗을 부추겨 인구조사를 하게 했다고 기록합니다. 역대상은 사탄의 행동을 앞세우고, 사무엘하는 하나님의 분노와 행동을 앞세웁니다. 둘을 하나의 사건에 대한 서로 다른 신학적 서술로 읽을 수 있지만, 사무엘하가 말하지 않은 사탄을 24:1에서 부추긴 숨겨진 존재로 끌어와서는 안 됩니다.

사무엘하는 다윗이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에서 이 일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과, 그 일을 실행한 다윗이 자신의 죄를 인정했다는 사실을 함께 말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스리시면서도 사람이 어떻게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는지에 대한 체계적인 설명은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야기는 하나님의 행동과 인간의 책임 사이의 긴장을 지우지 않은 채, 그 안에서 벌어진 일을 보여 줍니다.

왜 백성의 수를 세는 일이 죄가 되었을까

사무엘하 24:2–4 본문 →

다윗은 요압에게 명령합니다.

왕이 자기와 함께 있던 군대 지휘관 요압에게 말했습니다.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를 두루 다녀라. 너희는 백성의 수를 조사하여라. 내가 그 수를 알아야겠다.」사무엘하 24:2 · 두루새김

「단에서 브엘세바까지」라는 표현은 이스라엘 땅의 북쪽과 남쪽을 아우를 때 흔히 쓰는 지리 표현입니다(사무엘상 3:20). 다윗은 왕국 전체의 인구를 조사하려 합니다.

민수기 1장에서는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의 수를 세도록 명령하십니다. 민수기 26장에서도 인구조사가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성경이 사람의 수를 세는 행위 자체를 언제나 금지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조사는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그는 제사장이나 일반 행정 관리가 아니라 군대 지휘관 요압에게 명령합니다. 그리고 9절에서 보고되는 숫자도 단순한 전체 인구가 아닙니다. 「칼을 들고 싸우는 용사」의 수가 보고됩니다.

다윗이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군사력을 확인하려 했다는 해석은 이 점에서 근거를 얻습니다. 왕이 자기 힘을 확인하고 그것에 의지하려 했다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다윗의 마음속 동기를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하나님보다 군사력을 더 신뢰했기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또 하나의 가능성은 출애굽기 30:11–16과 관련됩니다. 그곳에서는 인구조사를 할 때 각 사람이 자기 생명을 위해 하나님께 돈을 드리도록 명령합니다. 이 돈을 속전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인구조사 때문에 백성에게 재앙이 닥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사무엘하 24장에서도 인구조사와 재앙이 연결된다는 점에서 두 본문은 주목할 만합니다. 그러나 사무엘하에는 속전을 거두었는지, 거두지 않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습니다. 따라서 속전을 내지 않았기 때문에 전염병이 퍼졌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 장에서 인구조사의 잘못을 가장 먼저 알아차리는 인물은 뜻밖에도 요압입니다.

요압이 왕에게 말했습니다. 「왕의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백성을 지금의 백 배로 늘려 주시고, 제 주인이신 왕께서 그것을 직접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왕께서는 왜 이 일을 하려 하십니까?」사무엘하 24:3 · 두루새김

요압이 백성의 번영을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백성이 더 많아지는 것을 축복으로 여깁니다. 그런데도 그는 다윗이 왜 굳이 인구조사를 하려는지 묻습니다.

요압은 사무엘서에서 언제나 도덕적으로 올바르게 행동한 사람이 아닙니다. 아브넬을 죽였고(3:27), 압살롬을 죽이지 말라는 다윗의 명령도 어겼습니다(18:14–15). 그런 요압이 이번에는 왕의 결정을 막으려 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듣지 않습니다.

그러나 왕은 요압과 군대 지휘관들에게 자기 명령을 따르게 했습니다. 요압과 지휘관들은 이스라엘 백성의 수를 조사하려고 왕 앞에서 물러나 길을 나섰습니다.사무엘하 24:4 · 두루새김

「자기 명령을 따르게 했습니다」라는 표현은 왕이 다른 사람들의 반대를 누르고 자신의 결정을 실행하게 했다는 사실을 잘 드러냅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다른 사람의 반대를 무시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 판단이 옳다는 증거가 아닙니다.

다윗은 요압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습니다. 왕은 자기 명령을 따르게 하는 것으로 그 질문을 눌러 버립니다.

이후의 비극은 바로 이 결정에서 전개됩니다.

아홉 달 이십 일 동안 무엇을 세었는가

사무엘하 24:5–9 본문 →

요압과 군대 지휘관들은 전국을 돌아다닙니다.

그들은 요단강을 건너 아로엘에서 출발하여 길르앗을 지나고, 북쪽의 단야안과 시돈 방향으로 이동합니다. 두로와 가나안 지역을 거쳐 남쪽 네게브와 브엘세바에 도달합니다. 특히 요단강 동쪽에서 북쪽으로, 다시 서쪽과 남쪽으로 이동하는 서술은 넓은 지역에 걸쳐 조사가 이루어졌음을 강조합니다.

다만 다딤홋시와 단야안처럼 위치를 정확히 확인하기 어려운 지명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 기록을 오늘날의 지도에 정확한 이동 경로로 그려 낼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 긴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명이 아니라 시간입니다.

그들은 온 땅을 두루 다닌 뒤, 아홉 달 이십 일이 지나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사무엘하 24:8 · 두루새김

다윗의 명령은 단순한 순간적 충동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군대 지휘관들이 오랜 시간 전국을 돌아다니는 국가적 사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요압이 숫자를 보고합니다.

요압은 조사한 백성의 수를 왕에게 보고했습니다. 이스라엘에는 칼을 들고 싸우는 용사가 팔십만 명이었고, 유다에는 남자가 오십만 명이었습니다.사무엘하 24:9 · 두루새김

이 숫자는 전체 주민 수와 구별해야 합니다. 특히 이스라엘의 경우 「칼을 들고 싸우는 용사」라는 표현이 사용되었습니다. 여성과 어린이 등을 포함한 전체 인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왕은 알고 싶었던 숫자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는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납니다.

숫자를 얻은 뒤에야 마음이 찔리다

사무엘하 24:10 본문 →

다윗은 백성의 수를 센 뒤 마음에 찔림을 느꼈습니다. 다윗이 여호와야훼께 말했습니다. 「제가 이 일을 하여 큰 죄를 지었습니다. 여호와야훼, 이제 주님의 종인 제 죄를 없애 주십시오. 제가 참으로 어리석게 행동했습니다.」사무엘하 24:10 · 두루새김

그는 요압의 반대를 듣고도 아홉 달이 넘도록 인구조사를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결과가 나온 뒤에야 마음에 찔림을 느낍니다.

다윗은 핑계를 대지 않습니다.

요압이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백성이 문제였다고 주장하지도 않습니다.

다윗의 고백은 전염병이 시작되기 전에 나옵니다.

그는 백성이 죽기 시작한 뒤에야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것이 아닙니다. 재앙이 선포되기 전에 이미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런데도 재앙은 닥칩니다.

이는 회개가 곧바로 모든 결과가 사라지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다윗이 잘못을 인정했다는 사실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가 이미 내린 왕의 명령은 오랫동안 실행되었고, 이야기는 이제 그 결정이 가져올 결과를 향해 진행됩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표현은 다윗의 마음이 그를 쳤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 표현은 사무엘상 24:5에서도 나타납니다. 그곳에서 다윗은 사울의 겉옷 자락을 벤 뒤 마음에 찔림을 느꼈습니다. 사울을 죽일 기회가 있었지만, 다윗은 그를 해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겉옷 자락을 벤 일만으로도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았습니다.

세 가지 재앙과 다윗의 선택

사무엘하 24:11–14 본문 →

다음 날 아침, 하나님이 예언자 갓에게 말씀하십니다.

갓은 다윗의 선견자로 소개됩니다. 그는 사무엘상 22:5에서도 다윗에게 말씀을 전했던 사람입니다. 이제 갓은 다윗에게 세 가지 재앙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첫째는 칠 년 동안 먹을 것이 몹시 부족해지는 일입니다. 둘째는 석 달 동안 적에게 쫓기는 것입니다. 셋째는 사흘 동안 전염병이 퍼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것을 택하든 백성이 고통을 겪게 됩니다.

다윗이 잘못했지만, 재앙은 다윗 혼자에게만 닥치지 않습니다. 왕은 자신이 받을 벌의 형태를 선택할 수 있는 자리에 있지만, 그 선택의 결과는 백성에게도 미칩니다.

다윗의 대답은 절박합니다.

다윗이 갓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몹시 괴로워요. 여호와야훼께서는 자비가 크시니, 우리가 여호와야훼의 손에 떨어지면 좋겠어요. 하지만 나는 사람의 손에는 떨어지지 않기를 바라요.」사무엘하 24:14 · 두루새김

여기서 「나는 몹시 괴로워요」는 자신이 여러 선택지 사이에서 궁지에 몰렸음을 표현합니다. 어느 길로 가도 고통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구체적으로 사흘 동안의 전염병을 선택하겠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바로 다음 절에서 전염병이 시작되므로, 이야기의 흐름에서는 이 대답이 전염병으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다윗이 정확히 어떤 계산으로 그 재앙을 선택했는지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손에 떨어지는 것이 고통스럽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재앙을 내리실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하나님의 자비에 희망을 둡니다.

조금 더 깊이

다윗은 먼저 「우리가 여호와야훼의 손에」라고 말한 뒤, 「나는 사람의 손에는」이라고 말합니다. 첫 표현에서는 자신과 백성을 함께 바라보고, 둘째 표현에서는 자신의 바람을 말합니다. 이 인칭 변화만으로 다윗의 마음 상태를 자세하게 그려 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다윗의 선택이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운명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문장 속에 드러납니다.

칠만 명이 죽었을 때, 하나님의 손이 멈추다

사무엘하 24:15–16 본문 →

여호와야훼께서 아침부터 정해진 때까지 이스라엘에 전염병을 내리셨습니다.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백성 가운데 칠만 명이 죽었습니다.사무엘하 24:15 · 두루새김

이 숫자는 이야기에서 가장 무거운 숫자입니다.

다윗이 인구조사를 통해 확인했던 것은 칼을 들고 싸우는 용사들의 수였습니다. 이제 백성의 숫자는 군사력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죽은 사람들의 수를 나타냅니다.

천사가 예루살렘을 파괴하려고 그곳을 향해 손을 뻗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그 재앙을 두고 마음을 돌이켜, 백성을 죽이고 있던 천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충분하다. 이제 손을 거두어라.」 여호와야훼의 천사는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 곁에 있었습니다.사무엘하 24:16 · 두루새김

처음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해 분노하셨습니다. 이제 그분은 재앙을 멈추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천사에게 손을 거두라고 명령하시는 장면은 다윗이 17절에서 백성을 위해 간절히 호소하기 전에 나옵니다. 또한 다윗이 제단을 세우고 제사를 드리는 일보다도 먼저 일어납니다. 재앙을 멈추게 하시는 하나님의 자비는 다윗이 마지막 제사를 드린 뒤에야 처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16절은 파괴를 향해 뻗은 손이 멈추는 순간이고, 25절은 이스라엘에 내린 재앙이 그쳤다는 결말입니다.

그 사이에서 다윗은 자신의 죄를 더욱 깊이 마주합니다.

조금 더 깊이

「아침부터 정해진 때까지」라는 표현의 「정해진 때」는 사흘의 끝을 가리킬 수도 있고, 하루 중 특정한 시각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전염병이 정확히 사흘 동안 지속되었다거나 단 하루 만에 칠만 명이 죽었다고 확정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마음을 돌이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동사 바인나헴(⁨נָחַם⁩)은 나함에서 나옵니다. 이 동사는 문맥에 따라 뉘우치다, 마음을 돌리다, 유감스럽게 여기다, 가엾게 여기다 등의 의미로 쓰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앞서 내리신 판단이 잘못이었다고 인정하셨다는 뜻으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마음과 행동에 아무 변화도 없었다고 말하는 것도 본문 표현을 충분히 존중하는 읽기는 아닙니다. 본문은 하나님이 진행 중이던 재앙을 멈추셨다고 말합니다.

「이 양 떼는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

사무엘하 24:17 본문 →

다윗은 백성을 치는 천사를 보고 여호와야훼께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죄를 지은 사람은 저입니다. 잘못한 사람도 저입니다. 이 양 떼는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 부디 주님의 손으로 저와 제 아버지의 집안을 쳐 주십시오.」사무엘하 24:17 · 두루새김

10절에서 다윗은 자신의 행동이 죄였다고 말하며 용서를 구했습니다. 이제 17절에서는 자신의 죄 때문에 고통받는 백성을 바라봅니다. 처음에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고백이었습니다. 이제는 백성에게 닥친 재앙 앞에서 자신에게 책임을 돌리는 간절한 호소입니다.

다윗은 원래 목자였습니다.

사무엘상 16장에서 그는 양을 돌보던 사람으로 처음 등장합니다. 사무엘하 5:2에서는 하나님이 다윗에게 이스라엘을 돌보는 목자가 되게 하셨다는 말이 나옵니다. 이제 왕이 된 다윗은 자기 백성을 양 떼라고 부릅니다.

목자는 양의 수를 셀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목자의 가장 중요한 책임은 양의 숫자를 아는 데 있지 않습니다. 양들을 지키고 돌보는 데 있습니다.

왕은 백성의 힘을 자신의 것으로 계산하는 사람이 아니라, 백성의 생명을 돌보도록 세워진 사람입니다.

다윗은 이제 재앙이 자신과 자기 집안에 닥치기를 바랍니다. 그는 다른 사람이 고통받는 대신 자신이 고통받기를 요청합니다. 다만 이 요청이 실제로 받아들여져 다윗과 그의 집안만 심판받았다고 기록되지는 않습니다. 본문은 다윗의 호소를 전한 뒤, 갓이 제단을 세우라는 말씀을 가져왔다고 이어 갑니다.

왕의 명령으로 백성 전체를 조사했던 사람이 이제 백성을 위해 자기 자신과 자기 집안을 내놓습니다.

조금 더 깊이

「이 양 떼는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 이 질문은 백성이 전혀 죄가 없었다는 역사적 선언일까요? 1절은 하나님이 이미 이스라엘에게 분노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분노의 원인을 밝히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17절을 근거로 이스라엘이 어떤 죄도 짓지 않았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동시에 1절의 분노를 근거로 전염병으로 죽은 칠만 명에게 각각 죽어 마땅한 죄가 있었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본문은 그들의 구체적인 죄를 제시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말은 우선 자신이 저지른 인구조사의 책임을 다른 사람들에게 돌리지 않으려는 간절한 호소로 이해해야 합니다.

재앙이 멈춘 자리는 왜 타작마당이었을까

사무엘하 24:18–21 본문 →

하나님의 천사는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 곁에 있었습니다.

그날 갓이 다윗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올라가서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 여호와야훼를 위한 제단을 세우십시오.」사무엘하 24:18 · 두루새김

타작마당은 특별한 궁전이나 성전이 아닙니다. 곡식을 수확한 뒤 낟알과 겨를 분리하는 일터입니다. 그런데 이 평범한 일터가 재앙을 멈추게 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이 주어지는 장소가 됩니다.

다윗의 명령은 왕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명령을 받은 군대 지휘관들은 전국을 돌아다녔습니다. 재앙은 온 이스라엘에 퍼졌고, 백성을 죽이던 천사는 예루살렘을 향해 손을 뻗었습니다.

그러다가 이야기는 도시의 한 타작마당에 멈춥니다.

그 장소는 다윗의 소유도 아니었습니다.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이었습니다. 여부스 사람들은 다윗이 예루살렘을 점령하기 전에 그곳에 살던 주민들이었습니다(사무엘하 5:6–9).

다윗은 그곳에 제단을 세우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곧바로 자신의 땅인 것처럼 차지하지 않습니다. 그는 아라우나를 찾아갑니다. 20절에서는 아라우나가 왕과 그의 신하들이 오는 것을 보고 밖으로 나와 절합니다.

아라우나가 물었습니다. 「제 주인이신 왕께서 무슨 일로 종인 저에게 오셨습니까?」 다윗이 대답했습니다. 「당신에게서 타작마당을 사려고 왔어요. 여호와야훼를 위한 제단을 세워 백성에게 내린 재앙이 그치게 하려는 거예요.」사무엘하 24:21 · 두루새김

다윗은 자신이 죄를 용서받기 위해 제사를 드리겠다는 말만 하지 않습니다. 백성에게 닥친 재앙을 끝내기 위해 제단을 세우겠다고 합니다.

「거저 얻은 것으로 번제를 바치지 않겠어요」

사무엘하 24:22–24 본문 →

아라우나는 다윗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내놓겠다고 합니다.

아라우나가 다윗에게 말했습니다. 「제 주인이신 왕께서 좋게 여기시는 것을 가져다 바치십시오. 보십시오. 번제로 바칠 소들이 있습니다. 타작 썰매와 소를 부리는 도구들은 땔감으로 쓰십시오.」사무엘하 24:22 · 두루새김

고대의 타작마당은 바람을 이용해 겨를 날려 보낼 수 있도록 열린 장소에 마련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소가 곡식을 밟거나 타작 도구를 끌어 곡식을 처리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소는 제물이 되고, 타작 도구들은 제물을 태우는 데 필요한 땔감이 될 수 있습니다.

아라우나 왕은 이 모든 것을 왕에게 내놓았습니다. 아라우나가 왕에게 말했습니다. 「왕의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왕을 기쁘게 받아 주시기를 바랍니다.」사무엘하 24:23 · 두루새김

그런데 다윗은 거절합니다.

왕이 아라우나에게 말했습니다. 「아니에요. 반드시 당신에게 값을 치르고 사겠어요.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야훼께 거저 얻은 것으로 번제를 바치지 않겠어요.」 다윗은 은 오십 세겔을 주고 타작마당과 소들을 샀습니다.사무엘하 24:24 · 두루새김

흔히 이 구절을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에는 반드시 자신의 희생이 들어가야 한다는 교훈으로 읽습니다. 그런 적용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이 구절의 의미를 거기에만 한정하면 이야기의 중요한 맥락을 놓칩니다.

다윗은 지금 자신의 죄 때문에 일어난 재앙 앞에 서 있습니다. 그가 제단을 세우는 목적은 백성에게 내린 재앙이 그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제단을 세우는 데 필요한 모든 비용을 아라우나가 부담하게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왕의 잘못을 처리하는 데 드는 비용을 다른 사람이 대신 감당하는 셈이 됩니다.

본문은 다윗이 바로 그런 생각 때문에 값을 치렀다고 직접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앞에서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고 백성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던 다윗의 행동과 연결하여 읽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행위가 진실하려면, 자신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왕은 자신보다 약한 사람에게서 원하는 것을 빼앗을 수 있는 권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사무엘하 11장에서 다윗은 왕의 권력을 잘못 사용하여 우리아의 아내를 데려왔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왕이 자신의 권력으로 필요한 것을 가져가는 대신 정당한 값을 치릅니다. 앞선 사건의 죄를 갚으려는 직접적인 행동이라고 본문이 설명하지는 않지만, 두 장면은 왕이 다른 사람의 것을 어떻게 대하는지에서 뚜렷하게 대조됩니다.

이 대목은 창세기 23장에서 아브라함이 막벨라 굴과 밭을 사는 이야기와도 비교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헷 사람들에게서 땅을 그냥 받지 않고 값을 치러 샀습니다(창세기 23:9–20). 아브라함은 사라를 묻을 땅을 마련했고, 다윗은 여호와야훼께 제사를 드릴 제단의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이 공통점이 반드시 글을 쓴 이의 직접적인 의도를 뜻하지는 않지만, 두 이야기는 중요한 장소가 정당한 거래를 통해 마련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기록합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문면에도 「왕」이라는 말이 나타나지만, 이를 아라우나의 칭호로 읽을 것인지, 뒤따르는 문장과 연결해 이해할 것인지에는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따라서 아라우나가 실제로 여부스 사람들의 왕이었는지, 왕족 또는 높은 지위에 있던 사람이었는지 이 구절만으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는 역대상 21:25와의 차이가 있습니다. 역대상에서는 다윗이 그 장소를 위해 금 육백 세겔을 지불했다고 기록합니다. 두 기록을 서로 맞추기 위해 사무엘하의 은 오십 세겔은 타작마당과 소들의 값이고 역대상의 금 육백 세겔은 더 넓은 땅 전체의 값이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두 본문이 그러한 구분을 직접 밝히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확정적인 해결책으로 제시할 수 없습니다.

재앙의 자리가 예배의 자리가 되다

사무엘하 24:25 본문 →

다윗은 그곳에 여호와야훼를 위한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바쳤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 땅을 위한 기도를 받아들이셨고, 이스라엘에 내린 재앙이 그쳤습니다.사무엘하 24:25 · 두루새김

사무엘하 전체의 마지막 문장입니다.

번제는 제물을 제단 위에서 태워 하나님께 바치는 제사입니다. 레위기 1장에서는 번제의 방법과 하나님 앞에서 받아들여지는 제물의 의미를 설명합니다.

화목제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드리는 제사로, 레위기 3장과 7장에서 그 규정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화목제는 일정한 부분을 하나님께 바친 뒤 제물의 일부를 먹는 방식과 연결되므로, 하나님 앞에서 누리는 관계와 교제의 측면을 드러냅니다.

사무엘하 24장은 왜 두 제사를 모두 드렸는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장의 흐름 속에서 보면, 번제와 화목제는 단순히 재앙을 멈추기 위한 의식으로만 이해되지 않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인정했고, 백성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으며,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제단을 세웠습니다.

앞에서 재앙이 전국에 퍼졌다면, 이제 하나님이 이스라엘 땅을 위한 기도를 받아들이십니다. 이 마지막 표현의 히브리어에는 하나님이 간청을 받으시고 응답하셨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사무엘하 마지막 장은 성전 이야기를 직접 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성전을 세우지 않습니다. 솔로몬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오직 타작마당에 제단을 세운 일과 재앙이 그친 일을 말합니다.

사무엘하의 마지막 관심은 훗날 세워질 건물보다 지금 재앙을 겪는 백성에게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역대상 21장은 같은 사건을 더욱 자세히 기록합니다. 그곳에서도 다윗은 아라우나에 해당하는 인물인 오르난의 타작마당을 사고 제단을 세웁니다. 역대상 21:26에서는 하나님이 하늘에서 불을 내려 번제단에 응답하셨다고 기록합니다. 그리고 역대상 22:1에서 다윗은 바로 그 장소를 가리켜 여호와야훼 하나님의 집이 세워질 곳이라고 선언합니다. 역대하 3:1은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산, 곧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여호와야훼의 성전을 짓기 시작했다고 밝힙니다. 다윗의 잘못으로 시작된 재앙의 이야기 속에서 제단의 장소가 마련되었고, 뒤에 기록된 역대기는 그 장소를 성전이 세워질 자리로 분명하게 연결합니다.

마지막에 남은 타작마당

사무엘하 24:1–25 본문 →

왕은 자신의 뜻을 이루게 할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마지막에는 하나님이 재앙을 멈추어 주시기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왕은 백성 위에 서 있지만, 하나님 위에 서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왕의 권력이 아무리 커도 생명과 죽음의 최종적인 권한까지 자기 것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인간이 하나님의 판단을 모두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특히 왕의 잘못으로 백성이 고통받는 상황에서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어야 했는지는 끝내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윗이 그 사실을 깨닫는 사이 칠만 명이 죽었습니다. 그들의 죽음은 왕이 얻은 교훈을 위한 소품이 아닙니다.

본문은 죽은 사람들을 되살려 주지 않으며, 다윗의 회개가 모든 비극을 없었던 일로 만들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비가 인간의 잘못을 사소한 것으로 만들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이 저지른 잘못의 무게를 그대로 드러내면서도 그 비극이 끝없이 이어지지 않도록 하십니다.

그리고 사무엘하는 마지막에 한 가지 인상적인 장면을 남깁니다.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입니다. 조금 전까지 그곳은 곡식을 타작하는 일터였습니다. 소들이 곡식을 밟고, 사람들은 수확한 곡식을 다듬던 장소였습니다.

그곳에 재앙을 내리는 천사가 멈추어 섰습니다. 그리고 다윗이 올라왔습니다.

왕은 그 땅을 빼앗지 않았습니다. 값을 치르고 샀습니다. 그는 제단을 세우고 제물을 바쳤습니다.

왕은 백성의 수를 알고 싶어 했지만, 사무엘하의 마지막에 이르러 그보다 더 절실한 문제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백성을 어떻게 살릴 것입니까.

그 질문에 다윗은 자신의 군사력이나 왕권으로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제단을 세우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응답하셨습니다.

사무엘서는 왕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거느리고 있었는지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받아들이셨다는 말로 끝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