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풀어 읽기 · 30장

이 장의 자리 · 27–30장 · 복과 저주

하나님께 돌아오면 다시 모으십니다

신명기 30장은 이스라엘이 가장 두려워해야 할 일이 이미 일어난 뒤의 상황에서 시작합니다.

약속의 땅을 잃었습니다. 백성은 여러 민족 가운데 흩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결과로 경고받았던 저주가 현실이 되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저버린 하나님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모세는 이 장면을 마지막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이미 언약을 어긴 백성에게 다시 돌아갈 길이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스스로 깨뜨린 사람이 어떻게 다시 그 관계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까?

모세는 백성이 마음만 고쳐먹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다시 모으시고, 불쌍히 여기시고, 심지어 백성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실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백성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을 듣고 따르며, 생명을 선택하라고 요구합니다.

하나님이 마음을 바꾸어 주셔야 한다면, 사람은 왜 스스로 돌아와야 합니까? 사람이 돌아오기로 선택할 수 있다면, 하나님은 왜 마음에 할례를 베푸셔야 합니까?

이 장은 두 개의 커다란 움직임으로 전개됩니다. 1–10절에서는 먼 땅으로 흩어진 백성이 하나님께 돌아오고 하나님이 그들을 다시 모으시는 미래를 바라봅니다. 11–20절에서는 아직 요단강을 건너지 않은 백성에게 시선을 돌려, 바로 오늘 그들 앞에 놓인 선택을 제시합니다.

먼 미래의 회복에서 시작하여 오늘의 결단으로 돌아오는 구성입니다.

그리고 그 두 장면을 연결하는 것이 ‘마음’과 ‘말씀’입니다.

읽는 시간 21분소단락 530장 본문 읽기 →

가장 먼 곳에서도 돌아올 수 있다

신명기 30:1–5 본문 →

돌아가는 길은 마음에서 시작된다

「내가 너희 앞에 놓은 이 모든 일, 곧 복과 저주가 너희에게 닥친 뒤,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너희를 몰아내신 여러 민족 가운데서 너희가 이 일들을 마음에 되새기고,」신명기 30:1 · 두루새김

앞선 장들에서 복과 저주는 이스라엘 앞에 놓인 두 가지 미래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 모든 일이 실제로 닥친 뒤의 상황을 가정합니다. 신명기 28:64와 29:28에서 경고한 땅으로부터의 추방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단순히 잊었던 사실을 다시 기억한다는 말보다 적극적인 표현입니다. 지나온 일을 마음속으로 다시 가져와 그 의미를 받아들이는 행위를 나타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동사가 ‘돌아오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어근 슈브(⁨שׁוּב⁩)에서 나왔다는 점입니다. 다음 절에서 백성이 하나님께 「돌아와」라고 할 때도 원문에서는 같은 어근이 사용됩니다.

먼저 지나온 일을 마음으로 되돌리고, 그다음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에게 일어난 재앙을 그저 불행한 사건으로만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자신들을 공격한 민족들을 원망하거나, 잃어버린 땅을 그리워하며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들이 자신들의 역사를 다시 읽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왜 그들을 구원하셨고, 어떤 관계 안에 세우셨으며, 그들이 그 관계를 어떻게 저버렸는지를 되새겨야 합니다.

이것은 고통을 겪으면 반드시 자신의 죄 때문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일반적인 가르침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이미 언약의 복과 저주에 관해 구체적으로 경고받았습니다. 모세는 그 말씀에 비추어 자신들의 역사를 돌아보는 상황을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와 너희 자녀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 돌아와,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모든 것에 따라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그분의 말씀을 듣고 따르면,」신명기 30:2 · 두루새김

아직 백성은 여러 민족 가운데 흩어져 있습니다. 지리적으로는 약속의 땅에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그들이 먼저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다고 말합니다.

땅으로 돌아가기 전에 하나님께 돌아오는 일이 먼저입니다.

그리고 그 돌아옴은 감정적인 후회에 머물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삶으로 나타납니다.

또한 모세는 「너희와 너희 자녀」를 함께 언급합니다. 한 세대가 언약을 어겨 재앙을 경험했더라도, 다음 세대는 그 역사에서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을 배울 수 있습니다.

과거의 실패가 다음 세대의 미래를 반드시 같은 실패로 고정하지는 않는다는 가능성이 여기서 열립니다.

하나님도 다시 움직이신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너희 형편을 회복시키시고 너희를 불쌍히 여기실 것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너희를 흩으신 모든 민족 가운데서 너희를 다시 모으실 것이다.」신명기 30:3 · 두루새김

히브리어의 ‘형편을 회복하다’는 관용 표현은 포로 상태를 되돌리는 일에 사용될 수도 있고, 더 넓게 처지를 회복시키는 일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는 곧바로 흩어진 백성을 다시 모으는 장면이 이어지므로 포로 상태에서 돌아오는 의미가 강하게 드러납니다. 그러나 회복의 의미를 단순한 귀환에만 한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3절에는 슈브라는 동사가 두 번 나옵니다. 앞에서는 하나님이 백성의 형편을 ‘돌이키신다’는 표현에 사용되고, 뒤에서는 하나님이 ‘다시’ 백성을 모으신다는 표현에 사용됩니다. 앞선 1–2절에서 백성이 마음을 돌리고 하나님께 돌아왔다면, 이제 3절에서는 하나님이 그들의 형편을 돌이키시고 다시 모으십니다.

회복은 단순히 언약의 조건이 충족되어 자동으로 실행되는 기계적인 절차처럼 묘사되지 않습니다. 모세는 백성을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행동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이 돌아오는 것은 자신들이 당한 모든 손실을 보상받을 권리가 생겼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자비를 베푸셔서 그들을 다시 모으시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레위기 26:40–45와 이어지는 주제가 있습니다. 그곳에서도 백성이 자기 죄를 인정하고 낮아지는 상황에서 하나님은 조상들과 맺으신 언약을 기억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의 불성실함은 심판을 불러올 만큼 심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불성실함이 하나님의 언약과 자비를 완전히 무효로 만들었다고 선언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늘 끝에 있는 사람도 찾아오신다

모세는 하나님의 회복을 설명하면서 거리를 극단적으로 늘립니다.

「너희가 쫓겨나 하늘 끝에 있다 해도,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거기에서 너희를 모으시고 데려오실 것이다.」신명기 30:4 · 두루새김

「하늘 끝」은 사람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가장 먼 곳을 떠올리게 하는 표현입니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먼 거리까지 쫓겨난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모으시는 일에서 제외되지 않는다는 강조입니다.

이스라엘이 흩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지만, 그 심판이 하나님의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장소를 만들어 내지는 않습니다.

5절에서는 그들을 조상들이 차지했던 땅으로 데려오실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또한 조상들보다 더 잘되게 하고 수가 더 많아지게 하시겠다고 합니다. 여기서 회복은 단순한 과거의 복구에 그치지 않습니다. 잃어버린 땅으로 돌아가는 것과 함께, 앞으로 다시 살아갈 수 있는 풍성함까지 약속됩니다.

백성이 땅을 잃어버린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군사력이 부족해서만은 아니었습니다. 경작할 땅이 좁아서만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저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땅을 돌려받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될까요? 다시 같은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다시 같은 길로 들어서지 않겠습니까?

바로 이 질문 때문에 6절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이 회복시키시는 것은 땅만이 아니다

신명기 30:6–10 본문 →

마음에 할례를 베푸시는 하나님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너희 마음과 너희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실 것이다.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사랑하고, 그리하여 살게 하시려는 것이다.」신명기 30:6 · 두루새김

지금까지 하나님이 회복시키시는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삶의 조건이었습니다. 흩어진 백성을 모으시고, 조상의 땅으로 데려오시며, 다시 번성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다루십니다.

할례는 아브라함과의 언약에서 중요한 표지였습니다. 창세기 17:9–14에서 할례는 하나님과 그의 후손들 사이에 세워진 언약의 표시로 제시됩니다. 신명기 10:16에서 모세는 백성에게 마음의 할례를 행하고 더 이상 목을 뻣뻣하게 하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런데 30:6에서는 그 명령의 주체가 바뀝니다.

10장에서는 이스라엘이 자신의 마음에 할례를 행해야 했습니다. 30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실 것입니다. 오히려 이스라엘이 오랫동안 이루지 못했던 일이 하나님 자신의 행동으로 약속된 것입니다.

할례는 몸에서 어떤 부분을 제거하는 행위입니다. 이것이 마음에 적용될 때는 하나님께 대한 고집과 불순종을 버리는 마음의 변화를 가리킨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신명기 10:16에서 마음의 할례가 목을 뻣뻣하게 하지 말라는 명령과 연결된다는 점이 이 이해의 근거입니다.

그러나 30:6은 그 의미를 단순히 고집을 버리는 일로 한정하지 않습니다. 할례의 목적을 명확하게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마음을 변화시키시는 목적은 백성이 그분을 사랑하며 살게 하려는 것입니다.

신명기 6:5에서 요구한 온 마음과 온 생명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 이제 하나님이 친히 이루실 마음의 변화의 목적으로 나타납니다. 백성은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명령을 이미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사랑에 충실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 사랑이 가능하도록 그들의 마음에 일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여기서 회복은 잃어버린 것을 다시 얻는 일보다 깊어집니다.

돌아와야 하는가, 변화시켜 주셔야 하는가?

2절에서는 백성이 하나님께 돌아와 그분의 말씀을 듣고 따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6절에서는 하나님이 그들의 마음을 변화시키셔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어느 쪽이 먼저입니까?

문장의 전개만 놓고 보면, 백성이 돌아오는 일이 먼저 나오고 하나님의 마음의 할례가 나중에 나옵니다. 따라서 회개가 하나님이 마음을 변화시키시는 일보다 먼저라는 식으로 읽을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순서를 모든 시대에 적용되는 구원의 단계로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모세는 이미 회개와 순종을 말한 뒤에 하나님의 마음의 할례를 약속하고, 다시 8절에서 순종을 이야기합니다. 즉, 백성이 돌아오는 일과 하나님이 마음을 변화시키시는 일이 서로를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회복 과정 안에서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백성의 응답을 중요하게 여기시지만, 그 응답이 지속될 수 있도록 그들의 마음에도 일하십니다.

이러한 관계는 이후 예언서에서도 나타납니다. 예레미야 31:33에서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백성의 마음에 기록하시겠다고 약속하고, 에스겔 36:26–27에서는 새 마음과 새 영을 주어 하나님의 규정을 따라 살아가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본문들은 신명기 30:6과 동일한 표현을 사용하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 충실하게 살아가는 데 하나님이 마음을 변화시키시는 일이 필요하다는 주제를 이어 갑니다.

다시 기뻐하시는 하나님

마음의 할례에 이어 모세는 회복된 삶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백성을 괴롭혔던 원수들에게 저주가 돌아가고, 이스라엘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며 그분의 명령을 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9절에서 일상생활의 풍성함이 약속됩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너희 손으로 하는 모든 일을 잘되게 하시고, 너희가 낳는 자녀와 가축이 낳는 새끼와 땅에서 거두는 수확물을 풍성하게 하실 것이다. 여호와야훼께서 너희 조상들을 잘되게 하기를 기뻐하셨듯이, 다시 너희를 잘되게 하기를 기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신명기 30:9 · 두루새김

이스라엘의 회복은 단순히 종교적인 의식에 다시 참여하는 일이 아닙니다. 언약 안에서 살아가는 일상의 삶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앞선 저주의 경고와 나란히 놓고 읽을 때 더욱 강렬합니다. 신명기 28:63에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시는 일을 기뻐하셨던 것처럼 그들을 멸망시키는 일도 기뻐하실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30장은 그 심판이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으로만 남는 것은 아님을 보여 줍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다시 자신의 백성을 잘되게 하기를 기뻐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10절은 이 회복의 약속을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는 일과 연결합니다.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듣고 따라, 이 가르침의 두루마리에 기록된 그분의 명령과 규정을 지키면, 그분께서 너희를 다시 잘되게 하기를 기뻐하실 것이다.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 돌아올 때 그렇게 될 것이다.」신명기 30:10 · 두루새김

모세는 회복의 출발점과 도착점을 모두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 놓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먼 곳에 있지 않다

신명기 30:11–14 본문 →

누가 하늘에 올라가야 하는가?

여기서 모세의 말은 새로운 방향으로 전개됩니다.

「내가 오늘 너희에게 전하는 이 명령은 너희에게 너무 어렵지도 않고 멀리 있지도 않다.」신명기 30:11 · 두루새김

지금까지는 먼 미래에 흩어진 백성이 돌아오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모세는 현재 백성 앞에 있는 말씀을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이 인간이 다가갈 수 있는 범위 밖에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 명령은 하늘에 있지 않다. 그러니 『우리가 그 명령을 지킬 수 있게, 누가 하늘로 올라가 우리에게 가져와 들려줄까?』 하고 말할 필요가 없다.」신명기 30:12 · 두루새김
「바다 건너편에 있지도 않다. 그러니 『우리가 그 명령을 지킬 수 있게, 누가 바다 건너편으로 가서 우리에게 가져와 들려줄까?』 하고 말할 필요도 없다.」신명기 30:13 · 두루새김

하늘과 바다 건너편은 인간이 쉽게 도달할 수 없는 곳을 나타냅니다. 말씀을 얻으려면 누군가 하늘에 올라가야 한다거나, 거대한 바다를 건너 먼 곳에서 가져와야 한다면, 사람들은 말씀을 지키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백성에게 필요한 말씀을 이미 주셨습니다.

4절에서는 백성이 하늘 끝까지 흩어진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모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12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얻기 위해 하늘에 올라갈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백성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먼 곳까지 쫓겨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백성에게서 멀리 감추어진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멀리 흩어진 백성을 찾아오실 수 있고, 백성은 이미 가까이 주어진 말씀을 통해 그분께 응답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것을 하나님의 명령은 언제나 쉽게 지킬 수 있으며 인간의 마음에는 아무런 어려움도 없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바로 앞에서 모세는 하나님이 백성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셔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11–14절이 강조하는 것은 명령을 완전히 지키는 일이 인간의 힘만으로 가능하다는 주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 멀리 있어 알 수 없다는 핑계를 댈 수 없다는 점입니다.

이미 입과 마음에 있는 말씀

「그 말씀은 너희에게 아주 가까이 있다. 너희가 지켜 행하도록 너희 입에 있고 너희 마음에 있다.」신명기 30:14 · 두루새김

원문에서는 말씀이 입에 있고, 마음에 있으며, 그것을 행하도록 주어졌다고 합니다. 입에 있다는 것은 백성이 그 말씀을 말하고 되풀이할 수 있을 만큼 이미 전달받았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합니다. 마음에 있다는 것은 그 말씀을 생각하고 기억하며 받아들일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목적은 「지켜 행하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신명기 6:6–7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은 마음에 두고 자녀들에게 가르치며 일상생활 속에서 되풀이해야 하는 것으로 제시됩니다. 따라서 말씀의 가까움은 단순히 종교적 정보를 많이 알고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들은 말씀이 삶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나님이 이미 그것을 백성에게 맡기셨다는 뜻입니다.

1절에서 백성은 자신들에게 일어난 일을 마음에 되새깁니다. 6절에서 하나님은 그들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십니다. 그리고 14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가까이 있고 그들의 마음에 있다고 합니다.

마음은 지난 일을 다시 생각하는 자리이면서, 하나님이 변화시키시는 자리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자리입니다.

말씀이 가까이 있지만, 그 말씀에서 마음이 돌아설 가능성도 있습니다. 실제로 17절에서 모세는 바로 그 위험을 경고합니다. 백성은 하나님의 뜻을 알려면 어디론가 떠나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들은 말씀 앞에서 자신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조금 더 깊이

신약에서 바울은 로마서 10:6–8에서 신명기 30:12–14의 ‘하늘에 올라갈 필요가 없으며 말씀이 가까이 있다’는 표현을 직접 가져와 그리스도에 관한 믿음의 말씀에 적용합니다. 이는 신명기 원래의 문맥이 곧바로 그리스도의 사건을 설명한다는 뜻이 아니라, 이미 가까이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에 응답한다는 주제를 그리스도 중심으로 다시 읽는 것입니다.

오늘 너희 앞에 놓인 생명과 죽음

신명기 30:15–20 본문 →

생명과 복된 삶, 죽음과 재앙

모세는 이제 더 이상 미래의 회복 장면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현재 백성 앞에 두 가지 길을 놓습니다.

「보아라. 내가 오늘 너희 앞에 생명과 복된 삶, 죽음과 재앙을 놓았다.」신명기 30:15 · 두루새김

여기서 「생명」과 「죽음」에 짝지어진 히브리어는 문자적으로 ‘좋음’과 ‘나쁨’을 나타낼 수 있는 단어들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단순히 선한 행동과 악한 행동이라는 도덕적 선택지를 제시하는 데 머물지 않습니다. 이어지는 16–18절에서 생명과 복된 삶은 땅에서 오래 살고 수가 많아지는 것으로, 죽음과 재앙은 멸망하고 그 땅에서 오래 살지 못하는 것으로 설명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어떤 생활 방식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약속의 땅에서 어떤 삶을 누리게 될지를 제시하는 언약의 선언입니다.

「내가 오늘 명령하는 대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사랑하고, 그분의 길을 따르며 그분의 명령과 규정과 법을 지켜라. 그러면 너희가 살고 수가 많아질 것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너희가 차지하러 들어가는 땅에서 너희에게 복을 주실 것이다.」신명기 30:16 · 두루새김

사랑과 삶의 방향과 구체적인 순종이 서로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에 관한 좋은 감정을 갖는 것만이 아닙니다. 그분이 보여 주신 길을 따르며 그분의 말씀에 맞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규정을 지킨다는 것은 단지 겉으로 정해진 행동을 반복하는 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행동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관계 안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마음이 돌아서는 순간

그러나 17절에서 모세는 반대의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너희 마음이 돌아서서 말씀을 듣지 않고, 다른 길로 이끌려 다른 신들에게 엎드리고 그들을 섬기면,」신명기 30:17 · 두루새김

모세는 이스라엘이 독립적인 판단으로 다른 신을 선택하는 일만을 경고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돌아선 뒤, 다른 대상에게 끌려가는 모습도 보여 줍니다. 여기서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은 단순히 종교적인 예배 대상을 바꾸는 일이 아닙니다. 삶의 방향과 충성의 대상을 바꾸는 일입니다.

「내가 오늘 너희에게 분명히 말한다. 너희는 반드시 멸망할 것이다. 너희가 요단강을 건너 들어가 차지하려는 그 땅에서 오래 살지 못할 것이다.」신명기 30:18 · 두루새김

모세는 이미 땅을 잃어버린 미래를 앞에서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말을 듣고 있는 사람들은 아직 요단강 동쪽에 서 있습니다. 그들의 미래가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예언된 재앙의 가능성이 현재의 순종을 무의미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심판의 경고가 주어지는 이유는 백성이 그 길을 피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부르다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너희에 대한 증인으로 세운다. 나는 너희 앞에 생명과 죽음, 복과 저주를 놓았다. 너희와 너희 자손이 살도록 생명을 선택하여라.」신명기 30:19 · 두루새김

모세는 언약을 맺는 자리에서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부르는 법정의 엄숙한 언어를 사용합니다. 하늘과 땅은 이스라엘의 한 세대보다 오래 지속되는 창조 세계입니다. 모세는 그 세계를 증인으로 불러 지금 주어지는 언약의 말씀이 얼마나 엄중한지를 보여 줍니다.

지금의 선택은 다음 세대가 살아갈 삶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자신의 선택이 다음 세대와 무관한 것처럼 살아갈 수 없습니다. 부모 세대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살아가느냐는 자녀들에게 전해지는 신앙과 공동체의 삶에 영향을 미칩니다.

물론 이것을 부모의 신앙적 선택이 자녀의 모든 삶을 기계적으로 결정한다는 뜻으로 확대해서는 안 됩니다. 신명기 30장 자체가 이전 세대의 실패를 겪은 후손들에게도 다시 하나님께 돌아갈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너희 생명이시다

모세의 마지막 말씀은 이 장 전체를 다시 읽게 만듭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을 듣고 따르며 그분께 굳게 붙어 있어라. 그분이 너희 생명이시고 너희를 오래 살게 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너희는 여호와야훼께서 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겠다고 맹세하신 땅에서 살게 될 것이다.」신명기 30:20 · 두루새김

하나님께 붙어 있으라는 것은 그분을 자신의 삶에서 떼어 놓을 수 없는 분으로 여기며 충실하게 살아가라는 요청입니다.

모세가 말하는 생명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분리된 독립적인 소유물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땅을 차지하고 오래 살고 번성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 모든 삶의 근거는 자신들을 구원하시고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께 있습니다. 15절에서는 생명과 복된 삶이 인간 앞에 놓인 선택의 결과처럼 제시되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절에서는 그 생명이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주어진다는 사실이 분명해집니다.

생명을 선택한다는 것은 단순히 오래 사는 길을 선택하는 일이 아니라,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붙어 있는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문장에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신 땅의 약속이 다시 등장합니다. 모세는 추상적인 영적 생명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조상들에게 약속된 땅에서 살아가는 구체적인 미래로 돌아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께 붙어 있는 삶은 그들에게 실제로 주어진 역사와 장소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조금 더 깊이

원문에서 이 절의 첫머리에 놓인 연결어는 앞 문장을 설명하는 방식으로도, 뒤의 약속을 조건절과 연결하는 방식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차이는 문장의 세부적인 연결에 영향을 주지만, 전체 뜻은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길을 따라 살아가는 일과, 그 땅에서 생명을 누리는 일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20절의 「굳게 붙어 있어라」에서 히브리어 동사 다바크(⁨דָּבַק⁩)는 ‘붙다’, ‘밀착하다’, ‘굳게 결합하다’라는 뜻을 가집니다. 창세기 2:24에서 남자가 아내와 결합하는 일을 묘사할 때도 같은 동사가 사용됩니다. 물론 신명기 30:20에서 그 동사가 혼인 관계와 완전히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표현은 단순히 명령을 기억한다거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존중한다는 말보다 강하게 맺어진 관계를 나타냅니다. 「그분이 너희 생명이시고」에는 해석상 두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나는 두루새김처럼 앞에 언급된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으로 읽는 것입니다. 이 경우 하나님 자신이 이스라엘의 생명이며 오래 살게 하시는 근거라는 뜻이 됩니다. 다른 하나는 앞에서 말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을 듣고 따르며 붙어 있는 삶 전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읽는 것입니다. 이 경우 그런 관계 안에서 충성하고 순종하는 삶이 이스라엘에게 생명과 오랜 날들을 가져온다는 의미가 됩니다. 히브리어의 ‘그’라는 대명사는 남성 단수형이지만, 원문에서 여호와야훼와 앞의 부정사구를 받는 읽기에 모두 들어맞습니다. 두 해석 모두 앞뒤 문맥에서 뒷받침됩니다.

끝맺으며 — 요단강 앞에 놓인 두 길

신명기 30:1–20 본문 →

신명기 30장의 끝에 이르면 다시 모압 평야가 보입니다.

신명기 30장은 이 두 움직임의 철학적 관계를 체계적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순종을 요구하시는 분이면서, 그들이 자신을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마음을 변화시키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하나님이 이미 행하신 일과 주신 말씀에 응답하도록 부름받습니다.

이스라엘은 아직 요단강을 건너지 않았습니다. 강 건너편에는 조상들에게 약속된 땅이 있습니다. 모세는 그들에게 아주 먼 미래까지 보여 주었습니다. 약속의 땅을 잃고 여러 민족 가운데 흩어지는 날, 모든 것을 잃은 뒤 자신들의 역사를 마음에 되새기는 날, 그리고 하나님이 그들을 다시 모으시는 날까지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미래를 말한 뒤, 모세는 다시 현재로 돌아옵니다.

「보아라. 내가 오늘 너희 앞에 생명과 복된 삶, 죽음과 재앙을 놓았다.」

모세는 백성에게 하늘로 올라가 말씀을 가져오라고 하지 않습니다. 바다를 건너 어디에선가 하나님의 뜻을 찾아오라고 하지도 않습니다.

말씀은 이미 가까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지식이나 특별한 장소가 아니라, 그 말씀 앞에서 하나님께 응답하는 일입니다. 생명의 길이 중요한 까닭은 그 길 끝에 좋은 것들이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 길에서 백성이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요단강은 아직 그들 앞에 흐르고 있습니다.

강을 건너는 일은 앞으로 일어날 것입니다. 그 땅에서 얼마나 오래 살아갈지도 아직 알 수 없습니다. 그들의 자손들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들에게 지금 선택할 수 있는 것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멀리 있는 하늘도 아니고, 건너갈 수 없는 바다도 아닙니다. 지금 그들 앞에 놓인 생명입니다.

「너희와 너희 자손이 살도록 생명을 선택하여라.」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