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테르기 (그리스어) 풀어 읽기 · 1장
이 장의 자리 · 1장 · 모르드개의 꿈
한 사람의 거절 앞에 선 왕
에스테르기 그리스어 본문은 뜻밖의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페르시아 왕궁의 화려한 잔치가 아니라, 유대 사람 모르드개가 꾼 불길한 꿈입니다.
두 마리의 커다란 용이 싸우려 하고, 온 민족들이 전쟁을 준비합니다. 의로운 민족은 멸망을 눈앞에 두고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그런데 그 절망의 한가운데에서 작은 샘이 솟아나 큰 강을 이루고, 어둠을 밀어내며 해가 떠오릅니다.
그런데 이처럼 거대한 구원의 전망을 보여 준 다음, 이야기는 갑자기 아주 세속적인 사건으로 방향을 바꿉니다. 왕이 잔치를 열고, 왕후를 불러 자신의 권세를 보여 주려 하지만, 왕후는 오지 않습니다. 왕은 분노하고, 관리들은 불안해하며, 마침내 한 여인의 거절을 처리하기 위해 온 제국에 법령이 내려집니다.
인도에서부터 백스물일곱 지방을 다스리는 왕도 자기 궁정에서 일어나는 일을 마음대로 통제하지 못한다면, 이 거대한 제국 안에서 한 민족의 미래는 과연 누구의 손에 달려 있습니까?
그리스어 에스테르기 1장은 이 질문에 곧장 대답하지 않습니다. 대신 하나님의 계획을 암시하는 꿈과 자기 권력을 확신하는 왕의 모습을 나란히 놓습니다.
포로의 후손이 제국의 한가운데 서다
이야기가 시작되는 때는 아닥사스다 왕이 다스린 지 둘째 해, 니산월 첫날입니다.
니산월은 유대 달력에서 봄에 해당하며, 출애굽의 구원을 기억하는 유월절이 속한 달입니다(출애굽기 12:2–6). 본문이 첫날을 언급한다고 해서 모르드개의 꿈이 유월절 사건과 직접 연결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출애굽의 기억을 가진 독자에게, 이 달에 새로운 민족적 위기의 꿈이 시작된다는 것은 의미 있는 배경이 됩니다.
꿈을 꾸는 사람은 베냐민 지파 출신 모르드개입니다. 그의 족보는 야일, 시므이, 기스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특히 기스라는 이름은 사무엘상 9:1–2에서 사울의 아버지 이름으로도 등장합니다. 같은 베냐민 지파라는 점까지 겹치므로 이 족보는 사울 왕가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다만 이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두 기스를 같은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모르드개는 수산 도시에서 왕의 궁정에서 일하는 지위 높은 사람으로 소개됩니다. 수산은 페르시아 왕국의 중요한 왕궁이 있던 곳입니다. 그런데 그가 누구인지 설명하는 마지막 문장은 그의 현재 지위보다 더 오래된 역사를 불러옵니다.
그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유대 왕 여고냐와 함께 예루살렘에서 사로잡아 온 포로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1:103 · 두루새김
여고냐, 곧 여호야긴 왕이 바벨론으로 끌려간 사건은 열왕기하 24:10–16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스어 본문은 모르드개를 그 포로 공동체에 속한 사람으로 묘사합니다.
그는 왕궁에서 일하는 사람이지만, 동시에 예루살렘에서 쫓겨난 백성의 역사에 속한 사람입니다. 페르시아 권력의 중심에 들어와 있으면서도 자기 민족의 상실과 유배라는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바로 이 사람에게 장차 제국 전체를 뒤흔들 사건의 꿈이 주어집니다.
조금 더 깊이
이 말을 모르드개 자신이 직접 포로로 끌려갔다는 뜻으로 읽으면 바벨론 유배와 페르시아 궁정 시대 사이의 긴 시간 때문에 연대상 어려움이 생깁니다. 포로 공동체의 후손이라는 소속을 나타낸 것으로 이해할 여지도 있지만, 본문 자체가 그 문제를 분명하게 풀어 주지는 않습니다.
두 마리의 용과 작은 샘: 멸망의 꿈이 구원의 꿈으로 바뀌다
모든 민족을 전쟁으로 몰아넣는 두 마리의 용
꿈은 처음부터 혼란스럽습니다.
요란한 소리가 들리고 천둥과 지진이 일어나며, 커다란 용 두 마리가 싸울 준비를 합니다.
그 소리를 듣고 모든 민족이 의로운 사람들의 민족과 싸우려고 전쟁을 준비했습니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1:106 · 두루새김
꿈의 중심은 용 자체가 아닙니다. 용들의 싸움 때문에 위협받는 민족입니다.
여기서 의롭다는 말은 그 민족의 모든 구성원에게 죄가 없다는 뜻이라기보다, 꿈이 묘사하는 갈등에서 공격받는 백성의 위치를 나타냅니다. 그들은 다른 민족을 공격하는 쪽이 아니라 공격의 대상이며, 폭력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의롭다는 이름이 붙었다고 해서 위기가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1:108에서 그들은 두려워하며 멸망을 맞을 각오까지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은 고난을 겪지 않는다는 보증으로 제시되지 않습니다.
인간의 무력함이 드러난 자리에서 시작되는 변화
꿈이 방향을 바꾸는 순간은 1:109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러자 그 부르짖음에서, 마치 작은 샘에서 솟아나듯 물이 넘치는 큰 강이 생겨났습니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1:109 · 두루새김
용들의 소리는 전쟁을 일으키고, 백성의 부르짖음에서는 강이 생겨납니다.
여기서 백성은 스스로 거대한 군대를 일으키거나 용을 무찌르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닥친 위험을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그리고 예상할 수 없었던 작은 시작이 풍성한 물의 근원이 됩니다.
이는 출애굽기 2:23–25의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이 고통 때문에 부르짖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소리를 들으시고 조상들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셨습니다.
두 본문 모두에서 구원의 출발점은 억눌린 백성의 군사력이나 정치적 영향력이 아닙니다.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는 하나님입니다.
다만 이 꿈을 「간절히 기도하면 반드시 원하는 결과가 이루어진다」는 일반적인 법칙으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앞으로 벌어질 특정한 구원 사건을 상징하는 꿈입니다.
작은 샘 다음에는 해가 떠오른다
빛이 비치고 해가 떠올랐습니다. 낮은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높아져, 이름을 떨치던 사람들을 집어삼켰습니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1:110 · 두루새김
「낮은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높아져」라는 표현은 한나의 노래를 떠올리게 합니다. 사무엘상 2:7–8에서 하나님은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유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 분으로 찬양받으십니다.
1:110은 단순히 신분 상승을 말하지 않고 「집어삼켰습니다」라는 강한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 꿈에는 구원과 함께 적대 세력의 패배라는 거친 역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꿈에서 중요한 것은 높은 자리가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지금은 이름을 떨치는 사람들이 무너질 수 있고, 멸망을 맞을 각오를 하던 사람들이 다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제 모르드개가 잠에서 깨어납니다.
그는 이것이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과 관계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 계획이 어떻게 이루어질지는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꿈을 마음에 간직하고」 그 뜻을 알아내려고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아는 것과 그 계획이 이루어질 경로를 아는 것은 다릅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그 경로를 곧장 설명하지 않은 채 왕궁의 음모로 넘어갑니다.
조금 더 깊이
두 용이 누구인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므로 이 시점에서 각각을 어떤 초자연적 존재로 규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니엘 7장에서 짐승들이 지상의 왕국과 권력을 상징하듯, 여기서도 거대한 생물의 모습은 개인과 집단을 넘어서는 파괴적인 갈등을 표현합니다. 다만 두 본문의 상징이 반드시 같은 방식으로 해석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니엘 2장과 7장에서는 꿈과 환상을 통해 왕국들이 일어서고 무너지는 일과 하나님의 통치가 드러납니다. 다니엘은 꿈의 의미를 하나님께서 밝혀 주셔야 한다는 사실을 압니다(다니엘 2:27–28). 제국의 역사 한복판에 있는 사람이 제국의 권력보다 더 큰 하나님의 계획을 마주한다는 점에서 두 이야기는 중요한 주제로 이어집니다.
왕을 구한 충성이 자기 백성을 위험하게 만들다
모르드개의 꿈 다음에 등장하는 사건은 왕의 암살 음모입니다.
모르드개는 궁정을 지키는 두 내시 가바타와 타라가 왕을 해치려 한다는 사실을 알아냅니다. 그는 그 음모를 왕에게 알리고, 왕은 두 사람을 불러 죄를 따져 묻습니다. 음모자들이 자기들이 꾸민 일을 털어놓으면서 사건은 마무리됩니다.
이 사건은 얼핏 보면 충성스러운 신하가 왕을 구하고 보상받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두 절이 상황을 완전히 뒤집습니다.
왕은 모르드개에게 선물을 주고 궁정에서 일하도록 명령합니다. 그러나 왕에게 높이 인정받던 하만은 모르드개와 그의 민족을 해치려 합니다. 본문은 그 이유를 두 내시의 사건과 연결합니다.
하만이 두 내시와 정확히 어떤 관계였는지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들을 구하려 했는지, 그들의 음모에 관련되어 있었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로 모르드개에게 원한을 품었는지 이 장만으로는 확정할 수 없습니다.
모르드개가 왕의 생명을 구한 사건이, 역설적으로 모르드개와 그의 백성을 해치려는 적의를 불러왔습니다.
왕에게 충성하는 것과 궁정에서 안전을 보장받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닙니다. 왕에게 인정받는 사람이더라도 다른 권력자의 적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앞서 꿈에서 두 용의 싸움이 민족 전체의 위기로 번졌듯, 이제 왕궁 안에서 시작된 개인적인 적의가 한 민족을 향하고 있습니다.
마음에 간직한 꿈과 왕궁에 기록된 사건
1:111에서 모르드개는 꿈을 마음에 간직합니다. 반면 1:115에서 왕은 음모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 기록으로 남기며, 모르드개도 그 일을 기록합니다.
하나는 아직 뜻이 밝혀지지 않은 꿈이고, 다른 하나는 이미 발생한 사건의 기록입니다.
왕궁은 사람의 행동을 조사하고 기록하며, 충성을 보상하고 반역을 처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드러난 사실을 기록하는 것만으로 미래의 모든 위험을 막지는 못합니다.
그리스어 도입부가 특별히 드러내는 것은 모르드개와 하만의 적대 관계가 이미 왕후 와스디의 사건보다 앞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독자는 하만이 품은 적의를 알고 있지만, 왕은 자신이 다스리는 궁정 안에서 어떤 갈등이 자라고 있는지 충분히 알지 못합니다.
왕의 부와 권세를 보여 주는 잔치
1:1에서 이야기는 다시 시작하는 듯한 모습을 보입니다.
이 일들이 있은 뒤, 아닥사스다 왕이 다스리던 때의 일입니다. 아닥사스다는 인도에서부터 백스물일곱 지방을 다스렸습니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1:1 · 두루새김
그리스어 본문의 도입부에 해당하는 1:101–117은 히브리어 에스더기에 없는 「첨가 A」입니다. 따라서 1:1은 본래 히브리어 이야기의 첫 절에 해당하지만, 그리스어 본문에서는 앞선 사건들에 이어지는 자리가 됩니다.
왕의 잔치를 처음 읽는 사람은 막강한 제국의 영광에 압도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모르드개의 꿈과 하만의 적의를 읽은 사람은 그 화려함 아래 아직 보이지 않는 위험이 놓여 있음을 압니다.
왕이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싶었던 것
그는 다스린 지 셋째 해에 가까운 신하들과 여러 다른 민족 사람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과 지방 통치자들의 우두머리들을 위해 잔치를 엽니다. 이어서 백팔십 일 동안 자신의 부와 화려함을 보여 줍니다.
왕은 자신의 부를 단순히 소유하는 데 만족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인정하게 만듭니다.
잔치는 음식을 먹고 즐기는 행사이지만, 동시에 권력을 드러내는 자리입니다. 여러 지방의 지도자들을 모아 왕국의 풍요와 위엄을 보여 주는 행위는 자신이 얼마나 강력한 통치자인지를 알리는 정치적 역할도 합니다.
고운 천과 자주색 줄, 금과 은, 대리석과 보석, 화려한 긴 의자와 꽃무늬 장식이 쉼 없이 등장합니다. 이 절의 그리스어 원문은 완결된 동사를 반복하기보다 명사와 분사를 길게 이어 궁정의 모습을 펼쳐 놓습니다. 마치 독자의 눈앞에 장식품을 하나씩 계속 늘어놓는 듯합니다.
무엇을 보아야 할지 모를 만큼 화려한 공간입니다.
그 화려함은 왕이 누리는 권세를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표현합니다. 왕의 손에는 지방뿐 아니라 부와 사람, 잔치와 명예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는 듯 보입니다.
풍요로운 잔치에서 뜻밖에 강조되는 자유
이 술잔치는 정해진 법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왕이 그렇게 하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왕은 잔치를 맡은 관리들에게 자신과 잔치에 온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하라고 명령했습니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1:8 · 두루새김
잔치에서는 정해진 규범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 왕의 관대함과 풍요를 보여 줍니다. 왕은 사람들이 즐거워할 수 있도록 법을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잠시 뒤 왕후가 자신의 명령을 따르지 않자, 왕은 즉시 법과 판결을 요구합니다.
왕은 즐거움을 위해서는 법의 제약을 느슨하게 만들지만, 자신의 권위가 거절당하자 법의 권위를 동원합니다.
이야기가 이 대조를 직접 비판하지는 않지만, 두 장면을 이어 놓음으로써 왕의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을 독자가 보게 합니다.
이제 이야기의 초점은 왕궁의 화려한 물건들에서 한 사람에게로 옮겨 갑니다.
조금 더 깊이
1:5의 「혼인 잔치」라는 표현에는 번역상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리스어 가모스(γάμος)는 일반적으로 혼인이나 혼인 잔치를 뜻하지만, 앞부분에는 결혼을 치렀다는 설명이 없습니다. 따라서 실제 혼인 행사였는지, 앞서 열린 큰 잔치를 가리키는 표현인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와스디와 왕의 결혼식을 이때 열었다고 단정할 근거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왕후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라는 명령과 거절
1:9에서 왕후 와스디도 여자들을 위해 별도의 술잔치를 엽니다.
왕은 자신의 잔치를 열고 있고, 왕후 역시 자신의 잔치를 열고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왕궁에서 행사를 맡아 진행하고 있지만, 그들의 위치가 같지는 않습니다.
일곱째 날 왕은 기분이 좋아져 일곱 내시에게 왕후를 데려오라고 명령합니다.
왕이 원하는 것은 왕후가 오는 것 자체만이 아닙니다.
왕은 왕후에게 왕관을 씌우고 자기 앞으로 데려와 왕후로서 모습을 드러내게 하라고 했습니다. 높은 관리들과 여러 민족 사람들에게 왕후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려는 것이었습니다. 왕후는 아름다운 사람이었습니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1:11 · 두루새김
앞서 왕이 자기 나라의 부와 화려한 생활을 보여 주었다면, 이제는 왕후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려 합니다. 두 장면을 이어 읽으면 왕후는 왕의 권세를 드러내는 존재로 등장합니다. 화려한 왕궁과 귀한 잔들에 이어 아름다운 왕후까지 사람들 앞에 나타난다면 왕이 가진 모든 것이 완벽하게 전시되는 셈입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멈춥니다.
그러나 왕후 와스디는 내시들과 함께 오라는 왕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왕은 마음이 상하고 화가 났습니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1:12 · 두루새김
본문은 거절의 이유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왕후가 술에 취한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거부했는지, 자기 존엄을 지키려 했는지, 왕에게 개인적인 불만이 있었는지, 혹은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와스디를 용감한 저항의 영웅으로만 설명하는 것도, 교만하여 왕의 권위를 무시한 사람이라고 단정하는 것도 본문보다 앞서 나가는 해석입니다.
방금까지 세상의 부와 영광을 마음대로 보여 주던 왕이, 이제는 자기 왕후 한 사람을 사람들 앞에 나오게 할 수 없습니다.
왕의 권세가 가장 분명하게 한계를 드러내는 순간은 외국 군대가 침입할 때가 아니라, 자기 명령이 궁정 안에서 거절당할 때입니다.
왕후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려던 왕은 오히려 자기 권위의 약함을 드러냅니다.
이제 왕의 개인적인 감정이 제국 전체의 문제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조금 더 깊이
그리스어에는 왕후를 왕후로 나서게 한다는 표현이 들어 있습니다. 두루새김은 이를 「왕후로서 모습을 드러내게」 하라는 말로 옮겼습니다. 이를 이미 왕후인 와스디가 공식적으로 왕후의 모습을 드러내도록 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도 있고, 왕후의 지위를 새롭게 확인한다는 뜻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한 사람의 거절이 제국 전체의 위협으로 확대되다
왕후가 실제로 한 말은 무엇인가?
1:13에서 왕은 가까운 신하들에게 법과 판결을 요구합니다.
왕은 가까운 신하들에게 말했습니다. 「와스디가 이렇게 말했으니, 이 일을 두고 법을 세우고 판결을 내려라.」에스테르기 (그리스어) 1:13 · 두루새김
지금까지 와스디가 실제로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1:12는 그녀가 「왕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라고만 말합니다. 그런데 1:13에서 왕은 「와스디가 이렇게 말했으니」라고 표현하고, 이어지는 1:17에서는 와스디가 왕에게 「말대꾸했는지」가 이야기됩니다. 이것이 반드시 와스디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본문이 그녀의 직접적인 발언을 전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처음에는 왕후가 오지 않았다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왕과 관리들의 논의 속에서는 그것이 왕에게 말대꾸하고 권위를 업신여긴 사건으로 다루어집니다.
왕후의 거절은 권력자들의 입을 거치면서 개인적인 불복종에서 모두가 지켜야 할 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확대됩니다.
특히 므무간의 주장이 그렇습니다.
그는 와스디가 왕에게만 잘못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왕의 모든 관리와 지도자들에게도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입니다. 이 판단은 실제 피해에 대한 보고라기보다,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예측에 근거합니다. 관리 부인들이 와스디의 행동을 듣고 자기 남편들도 업신여기게 될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본문에는 실제로 관리 부인들이 남편을 업신여겼다거나, 제국 안에서 가정 질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 가능성을 근거로 새로운 법령을 제안합니다.
권력의 불안이 법의 언어를 입다
1:19에서 므무간은 와스디가 다시 왕 앞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명령하고, 왕후의 자리를 다른 여자에게 주라고 권합니다.
여기서 「그보다 나은 여자」라는 표현은 주목할 만합니다.
본문은 와스디보다 더 나은 여성이 실제로 누구인지 말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기준으로 더 낫다고 판단하는지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 표현은 관리의 제안 속에 들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를 하나님이나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이 와스디의 인격을 판정한 말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므무간의 입장에서 더 나은 왕후는 적어도 왕의 명령에 순종하고, 왕의 권위를 떨어뜨리지 않을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의 주장에서 짐작할 수 있는 기준이지, 본문이 분명히 밝힌 여성의 가치 기준은 아닙니다.
그런데 제안은 와스디를 왕후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폐하께서 정하신 법을 온 나라에 알리십시오. 그러면 모든 아내가 남편이 가난하든 부유하든 자기 남편을 존중할 것입니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1:20 · 두루새김
여기서 정치적 권력과 가정의 질서가 하나로 묶입니다.
왕의 권위가 왕후에게서 존중받지 못하면 관리들의 권위도 존중받지 못하고, 결국 모든 남편의 권위가 흔들릴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이렇게 왕궁에서 일어난 사건 하나가 제국의 모든 가정에 적용할 규범을 만드는 근거가 됩니다.
왕과 관리들은 와스디의 행동을 이해하려고 질문하지 않습니다. 왕후의 입장을 확인하거나 거절의 이유를 조사하는 과정도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그 행동이 자신들의 권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위협이 실제로 얼마나 큰지 확인하기보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이 국가적인 문제의 규모를 결정합니다.
왕은 법을 세울 수 있는 권력을 지녔습니다. 그러나 그 권력을 행사하는 판단이 반드시 지혜롭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왕의 명령은 집집마다 이르지만, 왕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왕과 관리들은 므무간의 제안을 마음에 들어 합니다.
왕은 곧바로 그 말대로 행동합니다. 왕은 백스물일곱 지방을 다스립니다. 그 거대한 영토가 이제 법령을 전달하는 통로가 됩니다.
제국의 규모가 다시 강조되지만, 그 규모가 사용되는 목적은 뜻밖입니다. 수많은 민족과 지역에 왕의 명령을 전달하는 행정 체계가 한 왕후의 거절에서 비롯된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움직입니다.
왕은 온 나라의 각 지방에 그곳 사람들이 쓰는 말로 명령을 보냈습니다. 집집마다 남편을 두려워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1:22 · 두루새김
여기서 왕이 원하는 질서는 자발적인 이해나 신뢰의 회복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법령이 지방마다 전달되어 가정 안에서 권위에 대한 두려움을 만들어 내는 방식입니다.
그럼에도 이 법령이 이미 발생한 일을 되돌리지는 못합니다.
와스디는 여전히 왕 앞에 나타나지 않았고, 왕의 명령은 여전히 거절된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왕은 한 사람의 자발적인 응답을 얻지 못했지만, 그 거절에 대응하는 법령을 온 제국에 강요할 수는 있었습니다.
법령이 성공적으로 전달된다는 사실과 왕의 권위가 진정으로 확립되었다는 사실은 같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포본 아우토이스에서 원문의 「그들」이라는 표현은 두려움이 향하는 대상일 수도 있고, 두려움을 느끼는 주체일 수도 있습니다. 앞의 문맥은 아내들이 남편에게 존중을 표하게 하려는 내용이므로, 두루새김이 「집집마다 남편을 두려워하게」로 옮긴 것처럼 남편들이 두려움의 대상이 되도록 했다는 해석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문법만으로 그 방향이 완전히 확정되지는 않습니다.
맺으며: 거절당한 왕의 명령, 아직 밝혀지지 않은 하나님의 계획
모르드개는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일을 마음에 간직하지만, 왕은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을 견디지 못하고 법령을 내립니다. 이 장에서 독자가 붙들어야 할 희망은 모르드개가 왕보다 더 현명하게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아직 이해할 수 없는 위기 속에서도 하나님이 구원을 계획하신다는 꿈의 약속에 있습니다.
본문은 하나님이 와스디에게 거절하도록 명령하셨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왕에게 분노를 일으키셨다고도 하지 않습니다. 므무간의 법령을 하나님이 직접 조종하셨다고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는 믿음과 권력자의 행위가 모두 정당하다는 판단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그 약속은 당장 눈앞에서 실현되지 않습니다.
꿈속에서는 작은 샘이 솟아나 큰 강을 이루고, 빛이 비치고 해가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현실의 왕궁에서는 여전히 금과 은이 빛나고, 왕은 분노하며, 관리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왕의 명령이 제국의 모든 지방으로 보내집니다.
왕은 자기 뜻이 온 나라에 전해지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독자는 왕이 알지 못하는 또 하나의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 화려한 궁정 어딘가에, 아직 뜻을 알지 못하는 꿈을 마음에 간직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