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풀어 읽기 · 5장

이 장의 자리 · 1–11장 · 이집트의 종살이

구원을 말했는데, 고통이 더 깊어졌다

모세와 아론이 파라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이후 이스라엘 백성의 삶은 더 나빠졌습니다.

이 장에서 가장 당혹스러운 것은 파라오가 하나님의 요구를 거절했다는 사실만이 아닙니다. 그 거절 때문에 고통받게 된 사람들이 결국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고, 모세마저 하나님께 항의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불과 얼마 전 백성은 하나님이 자신들의 고난을 보셨다는 소식을 듣고 믿으며 몸을 굽혀 엎드렸습니다(출애굽기 4:31). 그러나 그 믿음이 곧바로 삶의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았습니다.

출애굽기 5장은 그 모순을 피하지 않습니다.

이 말을 성급하게 믿음 없는 사람의 불평으로 처리하면, 출애굽기 5장이 독자에게 보여 주려는 것을 놓치게 됩니다. 모세가 왜 이런 말을 하게 되었는지, 파라오의 명령이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무너뜨렸는지 따라가 보아야 합니다.

읽는 시간 19분소단락 75장 본문 읽기 →

「여호와야훼께서 누구시기에」 — 두 권위가 마주 서다

출애굽기 5:1–5 본문 →

파라오 앞에서 처음 선포된 말씀

모세와 아론은 파라오에게 말합니다.

그 뒤 모세와 아론이 파라오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백성을 보내어 광야에서 나를 위한 축제를 열게 하여라.』」출애굽기 5:1 · 두루새김

이것은 권위를 가진 분의 명령을 전달하는 형식입니다. 모세와 아론은 자기 권위가 아니라 자신들을 보내신 분의 권위로 말합니다.

그런데 그 명령은 파라오의 통치를 근본적으로 흔듭니다.

이스라엘은 지금 파라오의 명령에 따라 노동하고 있습니다. 파라오는 그들의 시간과 노동력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는 그들을 자신의 백성이라고 부르시며 보내라고 명령하십니다.

따라서 이 요구는 단지 며칠 동안 일을 쉬게 해 달라는 요청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이스라엘이 결국 누구에게 속해 있으며, 누구의 말씀에 따라 살아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하기 때문입니다.

축제는 왜 파라오에게 위협이 되었는가

하나님이 요구하신 것은 광야에서 축제를 여는 일입니다.

축제는 하나님 앞에 모인 공동체의 기쁨과 기념을 포함하는 넓은 행위이고, 짐승을 잡아 제사를 드리는 일은 그 가운데 이루어지는 구체적인 예배 행위입니다. 그런데 파라오는 그것을 노동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로만 이해합니다. 왕에게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자기 나라의 노동 체계를 방해하는 행동으로 보입니다.

같은 사건을 두고 한쪽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로, 다른 한쪽은 노동력의 손실로 바라봅니다.

「나는 여호와야훼를 알지 못한다」

파라오가 대답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누구시기에 내가 그분의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 주어야 하느냐? 나는 여호와야훼를 알지 못한다. 이스라엘도 보내 주지 않겠다.」출애굽기 5:2 · 두루새김

왕은 자신이 왜 그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지를 묻습니다. 여호와야훼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말과 이스라엘을 보내지 않겠다는 말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파라오는 여호와야훼가 누구이신지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앞으로 일어날 사건들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될 것입니다. 출애굽기 7:5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손을 이집트 위에 뻗으실 때 이집트 사람들이 자신이 여호와야훼임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아직 파라오는 그 대답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전염병이나 칼을 당할까 두렵다

모세와 아론은 한 번 더 요청합니다.

모세와 아론이 말했습니다. 「히브리 사람들의 하나님께서 저희를 만나셨습니다. 부디 저희가 광야로 사흘 길을 가서 저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 짐승을 잡아 제사를 드리게 해 주십시오. 그러지 않으면 그분께서 전염병이나 칼로 저희를 치실까 두렵습니다.」출애굽기 5:3 · 두루새김

여기서는 처음의 명령보다 한층 간청하는 표현이 사용됩니다. 이 요청은 하나님이 앞서 모세에게 전하도록 하신 말씀과 연결됩니다(출애굽기 3:18).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을 만났다는 사실이 얼마나 중대한 일인지 파라오에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단순한 취미나 선택적인 종교 행사일 수 없습니다. 그것은 자신들의 생명과 관련된 중대한 의무입니다.

그러나 파라오는 그 말에서 아무런 무게도 느끼지 못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대신 노동이 중단될 가능성을 문제 삼습니다. 파라오에게 모세와 아론의 말은 하나님의 명령이 아니라 노동을 방해하는 말입니다.

파라오가 또 말했습니다. 「지금 이 땅에 백성이 이렇게 많은데, 너희가 그들을 일하지 않고 쉬게 하는구나.」출애굽기 5:5 · 두루새김

파라오는 노동을 멈추는 일을 통치 질서에 대한 위협으로 봅니다. 반면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은 훗날 이스라엘에게 종과 가축까지 쉬게 하는 안식의 질서를 명령하십니다(출애굽기 20:8–11, 23:12).

조금 더 깊이

여기서 파라오가 여호와야훼라는 이름을 전혀 들어 본 적이 없었다고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장의 흐름을 보면 그가 문제 삼는 것은 단순한 지식의 부족만이 아닙니다. 이 문맥에서 「알지 못한다」는 말에는 여호와야훼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태도가 드러납니다. 고대의 왕에게 다른 권위자의 말을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소리를 듣는 일이 아닙니다. 그 말에 따라 행동하는 일과 연결됩니다. 본문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와 같은 위협을 직접 말씀하셨다고 기록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이미 그런 재앙을 내리겠다고 명령하셨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 「일하지 않고 쉬게 하는구나」에는 샤바트(⁨שָׁבַת⁩)와 연결되는 동사가 사용됩니다. 일을 그치게 하다, 중단시키다라는 뜻입니다. 훗날 이스라엘이 지켜야 할 안식일과도 같은 어근입니다. 물론 이 장에서 안식일 계명이 주어진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파라오가 이미 안식일 제도를 반대한 것이라고 읽을 수는 없습니다.

짚은 주지 않고 벽돌은 그대로 만들라고 하다

출애굽기 5:6–9 본문 →

왕의 대답은 말로 끝나지 않았다

파라오의 거절은 즉시 새로운 노동 명령으로 이어집니다.

그날 파라오는 백성에게 일을 시키는 감독들과 작업 책임자들에게 명령했습니다.출애굽기 5:6 · 두루새김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전한 바로 그날, 파라오는 노동을 더욱 무겁게 만드는 명령을 내립니다.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요구가 다시 나오지 못하도록 노동 조건 자체를 바꿉니다.

「이제 백성에게 벽돌 만드는 데 쓸 짚을 전처럼 주지 마라. 그들이 직접 가서 짚을 모으게 하여라.」출애굽기 5:7 · 두루새김

파라오는 생산량을 줄이지 않습니다. 필요한 재료를 얻기 위해 드는 시간과 노력만 노동자들에게 추가로 떠넘깁니다.

왕은 노동의 목표를 바꾸지 않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조건만 악화시킵니다.

짚을 없앤 것이 아니라, 짚을 구하는 책임을 떠넘겼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진흙을 이용한 벽돌이 건축에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짚이나 식물성 재료를 진흙과 섞는 일은 벽돌을 단단하게 뭉치고 말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 정책이 특별히 가혹한 이유는 그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을 때 벌을 받는 사람 역시 노동자들이기 때문입니다. 파라오는 새로운 조건 아래에서 생산량을 채울 수 있는지 묻지 않습니다. 그저 이전과 동일한 수량을 요구합니다.

「그들은 게으르다」

파라오는 자신이 왜 이런 명령을 내리는지도 밝힙니다.

「하지만 벽돌은 전과 똑같은 수만큼 만들게 하여라. 수를 줄여 주지 마라. 그들은 게으르다. 그래서 『가서 우리 하나님께 짐승을 잡아 제사를 드리자.』라고 외치는 것이다.」출애굽기 5:8 · 두루새김

백성이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말하는 것은 시간이 남아돌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여유가 있으므로 그런 요구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일을 더 많이 시키면 그런 말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 사람들에게 더 힘든 일을 시켜라. 일에 매달려 거짓말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게 하여라.」출애굽기 5:9 · 두루새김

여기서 「거짓말」은 모세와 아론이 전한 요구를 파라오가 규정하는 방식입니다.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짓말이라고 인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노동은 파라오에게 유용합니다. 그러나 그 노동은 동시에 그들이 다른 삶을 생각하거나 하나님을 섬길 수 없게 만드는 수단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대답이 더 무거운 노동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파라오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출애굽기 5:10–14 본문 →

누구의 말씀이 현실을 결정하는가

감독들과 작업 책임자들이 나가서 백성에게 말했습니다. 「파라오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너희에게 짚을 주지 않겠다.』」출애굽기 5:10 · 두루새김

1절에서 모세와 아론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두 선언은 비슷한 형식을 사용합니다. 하나는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전하고, 다른 하나는 파라오의 말씀을 전합니다.

여호와야훼는 이스라엘을 보내라고 하십니다.

파라오는 짚을 주지 않겠다고 합니다.

여호와야훼는 광야에서 자신을 위한 축제를 열게 하라고 하십니다.

파라오는 백성이 더 힘든 일을 하게 하라고 합니다.

두 권위의 충돌이 이제 백성의 일상 속으로 들어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아직 이스라엘의 노동 조건을 바꾸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파라오의 말은 그날부터 즉시 시행됩니다.

출애굽기 5장은 이 간격을 감추지 않습니다.

노동자들이 이집트 전역으로 흩어지다

백성은 곡식을 베고 남은 마른 줄기를 모아 짚으로 쓰려고 이집트 온 땅으로 흩어졌습니다.출애굽기 5:12 · 두루새김

이제 노동자들은 벽돌을 만드는 장소에만 머무를 수 없습니다. 짚으로 사용할 재료를 구하기 위해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합니다. 그런데 감독들은 여전히 이전의 생산량을 요구합니다.

감독들은 백성을 재촉했습니다. 「짚을 받던 때처럼 그날그날 정해진 일을 다 마쳐라.」출애굽기 5:13 · 두루새김

노동자들에게 주어진 부담은 단지 전체 생산량을 언젠가 채우라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 정해진 수량을 채워야 합니다. 이것은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력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감독들은 그 어려움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맞는 사람은 누구인가

파라오의 감독들은 자기들이 세운 이스라엘 사람 작업 책임자들을 때리며 물었습니다. 「왜 어제도 오늘도 전처럼 정해진 수만큼 벽돌을 만들지 않았느냐?」출애굽기 5:14 · 두루새김

이 장에서 작업 책임자들은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 세워진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파라오의 감독들 아래에서 백성의 노동을 관리하는 중간 위치에 놓여 있습니다. 파라오의 명령을 전달하고 생산량을 관리해야 하지만, 실제로 벽돌 수가 부족해지면 자신들이 매를 맞습니다.

제도를 만든 사람이 아니라 그 제도 아래에 있는 사람이 벌을 받습니다.

본문은 단순히 파라오가 잔인했다고 평가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그가 내린 명령이 어떻게 전달되고, 누구의 노동을 늘리며, 누구의 몸에 매질로 돌아오는지 보여 줍니다. 그 결과 독자는 폭정이 한 사람의 분노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명령과 감독과 생산 기준과 처벌을 통해 일상적으로 실행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왜 임금님의 종들인 저희에게 이렇게 하십니까?」

출애굽기 5:15–19 본문 →

모세와 아론이 아니라 파라오에게 부르짖다

이스라엘 사람 작업 책임자들은 결국 파라오에게 갑니다.

이스라엘 사람 작업 책임자들이 파라오에게 가서 호소했습니다. 「왜 임금님의 종들인 저희에게 이렇게 하십니까?」출애굽기 5:15 · 두루새김

그들은 자신들이 파라오의 종이라는 관계를 근거로 왕에게 보호를 요청합니다. 자신들은 임금님의 종인데 왜 이렇게 대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들은 지금 여호와야훼가 자기들을 구하겠다고 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노동 조건이 악화되자 자신들을 도와 달라고 찾아간 사람은 파라오입니다.

지금 그들에게 직접 고통을 주는 제도의 명령권자가 파라오이기 때문입니다. 짚을 다시 공급하거나 생산 기준을 바꿀 권한도 그에게 있습니다. 그들은 그 권한을 가진 사람에게 부당함을 호소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왕에게 호소하는 방식은 자신들이 얼마나 깊이 파라오의 통치 질서 안에 묶여 있는지도 드러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자유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임금님의 종으로서 조금 더 공정하게 대우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잘못은 누구에게 있는가

그들은 파라오에게 상황을 설명합니다.

「저희에게 일을 시키는 사람들은 임금님의 종들에게 짚은 주지도 않으면서 『벽돌을 만들어라.』라고 합니다. 보십시오. 이렇게 임금님의 종들이 매를 맞고 있습니다. 잘못은 임금님의 백성인 이집트 사람들에게 있습니다.」출애굽기 5:16 · 두루새김

그들은 자신들에게 맡겨진 일을 하지 않겠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일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하지 않으면서 이전과 똑같은 결과를 요구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호소합니다.

그런데 파라오는 그 주장에 대답하지 않습니다.

두 번 반복된 「게으르다」와 「게을러」

파라오가 대답했습니다. 「너희는 게으르다. 게을러! 그래서 『가서 여호와야훼께 짐승을 잡아 제사를 드리자.』라고 하는 것이다.」출애굽기 5:17 · 두루새김

그들은 짚을 구하러 다녔고, 벽돌을 만들려고 했으며, 정해진 수량을 채우지 못해 매를 맞았습니다. 그런데 왕은 그들을 게으르다고 부릅니다. 이 표현은 현실을 객관적으로 설명하는 말이 아니라,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파라오의 판단입니다.

왕은 재료 공급이 끊겼다는 사실을 문제 삼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요구를 게으름의 증거로 사용합니다.

노동자들이 아무리 자신들의 어려움을 설명해도, 왕은 그 어려움을 해결할 이유를 찾지 않습니다. 이미 그들을 게으른 사람들로 규정했기 때문입니다.

작업 책임자들은 자신들이 어려운 처지에 빠졌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들이 파라오를 찾아가 호소했지만, 왕은 자신의 명령을 거두지 않았습니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생산 기준과 매질의 위협입니다.

조금 더 깊이

마지막에 나오는 「임금님의 백성인 이집트 사람들」은 두루새김이 원문의 「임금님의 백성」이 가리키는 대상을 풀어 옮긴 표현입니다. 히브리어 원문에서는 이 말이 누구를 가리키는지, 앞의 잘못을 나타내는 표현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해석이 갈립니다. 두루새김처럼 이집트 쪽 관리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읽기가 자연스럽지만, 원문 문장의 세부 구조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당신들이 한 일을 보시고 심판하시기를 바랍니다」

출애굽기 5:20–21 본문 →

백성의 원망이 향하는 곳

작업 책임자들은 파라오에게서 나오다가 모세와 아론을 만납니다.

모세와 아론은 그들을 만나려고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만난 작업 책임자들의 반응은 매우 격렬합니다.

작업 책임자들이 모세와 아론에게 말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당신들이 한 일을 보시고 심판하시기를 바랍니다. 당신들 때문에 파라오와 그 신하들이 우리를 역겨워하게 되었습니다. 당신들이 그들의 손에 우리를 죽일 칼을 쥐여 준 것입니다.」출애굽기 5:21 · 두루새김

그때 백성은 여호와야훼가 자신들의 고난을 보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작업 책임자들은 여호와야훼께서 모세와 아론이 한 일을 보시고 심판하시기를 바랍니다.

같은 하나님의 시선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요청됩니다.

작업 책임자들은 여호와야훼의 이름으로 모세와 아론을 고발합니다. 그들은 여호와야훼가 판단하시는 분이라는 생각 아래 말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하나님의 판단이 자기들을 구하러 왔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내리기를 요청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구원을 전하러 온 사람들이 오히려 고통의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역겨워하게 되었다는 말

그들은 자신들의 생명이 위협받는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앞서 파라오는 노동 조건을 악화시켰고, 작업 책임자들은 매를 맞았습니다. 따라서 이들의 말은 근거 없는 과장으로만 취급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폭력이 이미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짚 공급을 끊고, 생산량을 유지하며, 매질을 명령한 사람은 파라오입니다. 그러나 작업 책임자들은 지금 자신들의 고통이 모세와 아론이 찾아온 뒤에 시작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모세와 아론이 오지 않았더라면 적어도 노동이 이렇게까지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의 처지에서 이해할 수 있는 반응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억압이 만들어 낸 또 다른 비극을 보여 줍니다. 파라오가 가한 폭력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 사이에 서로를 원망하는 관계가 생겼습니다.

억압은 사람의 몸에만 상처를 남기지 않습니다. 사람들 사이의 신뢰까지 무너뜨립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표현에는 자신들의 냄새가 파라오와 그의 신하들의 눈앞에서 역겨운 것이 되었다는 비유가 담겨 있습니다. 그들이 파라오와 신하들에게 매우 혐오스럽고 미움받는 존재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두루새김은 이 뜻을 「파라오와 그 신하들이 우리를 역겨워하게 되었습니다」라고 풀어 옮겼습니다. 다만 본문은 파라오가 이 시점에 이스라엘 전체를 죽이라는 새로운 명령을 내렸다고 기록하지 않습니다. 「칼」은 작업 책임자들이 느끼는 죽음의 위협을 드러내는 비유입니다.

「왜 이 백성을 괴롭게 하셨습니까?」

출애굽기 5:22–23 본문 →

모세는 어디로 돌아갔는가

작업 책임자들의 비난을 들은 모세는 여호와야훼께 돌아갑니다.

모세가 여호와야훼께 돌아가 말했습니다. 「주님, 왜 이 백성을 괴롭게 하셨습니까? 도대체 왜 저를 보내셨습니까?」출애굽기 5:22 · 두루새김

그는 작업 책임자들에게 길게 반박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받은 부르심이 정당하다고 논쟁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의 비난을 듣고 하나님께 묻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자신을 보내신 이유를 묻습니다. 그런데 그 질문은 하나님이 자신을 보내셨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자신을 보내셨기 때문에 생긴 문제를 하나님께 묻는 말입니다.

파라오가 괴롭혔는데, 왜 하나님께 책임을 묻는가

「제가 주님의 이름으로 말하려고 파라오에게 간 뒤로, 파라오는 이 백성을 괴롭혔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주님의 백성을 조금도 구해 주지 않으셨습니다.」출애굽기 5:23 · 두루새김

모세는 파라오가 이 백성을 괴롭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도 왜 이 백성을 괴롭게 하셨느냐고 묻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내셨고, 그 결과 백성의 고통이 더 깊어졌기 때문에 하나님께도 그 이유를 묻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과 눈앞의 현실이 충돌하는 데서 나온 항의입니다.

모세의 항의는 백성의 고통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지도자로 인정받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보다, 자신이 전한 말씀 이후 백성의 삶이 더 나빠졌다는 사실을 문제 삼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는 사실이 다른 사람의 고통을 가볍게 여길 수 있는 면허가 되지는 않습니다.

「조금도 구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모세의 마지막 말은 더욱 강합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보내셨지만, 지금까지 백성에게 실제로 일어난 것은 구원이 아니라 고통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관찰한 현실에 관한 한, 이스라엘의 노동은 더 무거워졌습니다. 백성은 아직 이집트를 떠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이 하나님이 앞으로도 구원하지 못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세는 지금까지 자신이 경험한 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그의 항의를 그대로 기록하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이라고 선언하지 않습니다.

모세가 느끼는 실패는 실제입니다.

그러나 아직 이야기 전체의 결말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왜 대답하지 않으시는가

출애굽기 5장은 모세의 항의로 끝납니다.

독자는 하나님이 앞서 하신 말씀을 기억합니다. 파라오가 쉽게 백성을 보내 주지 않을 것이라고 이미 말씀하셨습니다(출애굽기 3:19). 그런데 모세가 겪는 현실은 예상보다 더 고통스럽습니다.

왕이 거절한다는 사실과 그 거절 때문에 백성이 더 심한 억압을 당한다는 사실은 다르게 경험됩니다. 파라오의 거절이 예고되었다고 해서, 그 결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아픔이 가벼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을 약속하신 하나님은 왜 고통의 악화를 막지 않으셨는가

이 장이 제기하는 신학적 질문은 쉽게 해결되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두고 하나님이 일부러 이스라엘을 더 고통스럽게 하시어 그들의 믿음을 시험하셨다고 설명하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또는 고통이 더 깊어져야만 구원의 기쁨을 제대로 알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런 일을 허락하셨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출애굽기 5장은 그런 목적을 직접 밝히지 않습니다.

본문에서 고통을 악화시킨 직접적인 행위자는 파라오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고통이 악화된 직접적인 원인을 하나님의 숨은 교육 계획으로 설명하는 것은 본문이 분명하게 말하는 내용을 넘어서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약속이 주어졌다고 해서 억압하는 권력이 곧바로 물러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사람이 그 말씀에 따른 고통을 직접 경험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모세는 자신이 하나님께 순종했는데도 상황이 악화되는 경험을 합니다. 이것은 그의 사명이 잘못되었다는 확실한 증거가 아닙니다.

출애굽기 5장은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조금만 참으면 반드시 더 큰 복이 찾아온다는 식의 단순한 위로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장을 오늘의 삶에 연결하려면 먼저 고통받는 사람들의 현실을 정직하게 보아야 합니다. 그들의 어려움을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에 생긴 문제라고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 항의하는 모세의 말을 그대로 남겼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모든 항의가 자동으로 옳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고통 속에서 생겨난 어려운 질문을 신앙 이야기 밖으로 밀어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조금 더 깊이

구한다는 뜻의 동사에서 나온 부정사 절대형과 활용형이 함께 사용되고, 그 사이에 부정이 들어 있습니다. 따라서 단순히 구하지 않으셨다는 말보다 훨씬 강한 표현입니다. 두루새김은 이 강조를 「조금도 구해 주지 않으셨습니다」라고 옮겼습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의 백성을 조금도 구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출애굽기 5:1–23 본문 →

출애굽기 5장의 긴장은 하나님이 고통을 모르신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고통을 아신다고 말씀하셨는데도 그 고통이 계속된다는 데 있습니다. 이것이 모세의 마지막 질문을 단순한 불평보다 훨씬 깊은 질문으로 만듭니다.

파라오의 노동 명령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여전히 벽돌을 만들어야 합니다. 매를 맞은 작업 책임자들의 상처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다시 하나님께 돌아와 있습니다.

그는 파라오에게 말했을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 말할 때에는 백성의 고통을 전합니다. 그는 두 자리 사이에 서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보내신 자리와, 백성이 고통받고 있는 자리 사이입니다.

출애굽기 5장은 그 자리에 선 모세의 질문을 마지막 말로 남깁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약속되었지만 아직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고통은 분명히 보입니다.

모세는 그 간격을 하나님께 묻습니다.

그리고 아직 대답이 들리지 않는 자리에서, 이 장은 끝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