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풀어 읽기 · 14장
이 장의 자리 · 12–24장 · 아브라함의 길
사람들을 되찾고 재산은 거절한 아브람
창세기 14장은 지금까지의 이야기와 전혀 다른 분위기로 시작합니다.
왕들의 이름이 쏟아지고, 나라들이 전쟁을 벌이며, 군대가 먼 지역까지 쳐들어갑니다. 아브람의 가족을 중심으로 움직이던 이야기가 갑자기 여러 왕국이 충돌하는 국제적인 전쟁 이야기로 확대됩니다.
아브람이 적들을 물리치고 포로와 재산을 되찾아 돌아왔을 때, 두 왕이 그를 맞이합니다. 한 왕은 아브람의 승리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말하고, 다른 왕은 그 승리로 얻은 것을 어떻게 나눌지 말합니다.
그리고 아브람은 재산을 가지라는 제안을 거절합니다.
아브람은 전쟁에서 무엇을 되찾았는가? 그리고 승리한 뒤, 무엇을 자신의 것으로 삼지 않기로 했는가?
네 왕과 다섯 왕 — 롯이 살던 곳까지 밀려온 전쟁
이 전쟁은 왜 시작되었을까?
1–2절에는 아홉 명의 왕이 등장합니다.
한편에는 시날의 암라펠, 엘라사르의 아리옥, 엘람의 그돌라오멜, 고임의 디드알이 있습니다. 다른 한편에는 소돔의 베라, 고모라의 비르사, 아드마의 시느압, 스보임의 시므에벨, 벨라 곧 소알의 왕이 있습니다.
다섯 왕은 12년 동안 그돌라오멜을 섬겼지만, 13년째 되는 해에는 그의 지배에 맞서 들고일어났습니다.창세기 14:4 · 두루새김
12년 동안 그를 섬겼다는 말은 정치적으로 그의 지배를 따르고 있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조공을 바치거나 여러 의무를 지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은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4년째에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한 왕들이 군대를 이끌고 내려옵니다. 기존의 지배에 맞서 들고일어난 왕들과, 그 지배를 다시 세우려는 왕들의 충돌입니다.
네 왕의 연합군 가운데 실제로 지배 관계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은 그돌라오멜입니다. 1절에서는 암라펠이 먼저 언급되지만, 4절에서는 다섯 왕이 그돌라오멜을 섬겼다고 말하고, 5절에서도 그돌라오멜이 연합군을 이끌고 등장합니다.
연합군은 왜 반란을 일으킨 왕들에게 곧장 가지 않았을까?
5–7절을 보면 그돌라오멜의 군대가 반란을 일으킨 다섯 왕에게 곧바로 쳐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들은 르파임 사람들과 주짐 사람들, 에밈 사람들과 호리 사람들을 차례로 공격합니다. 세일 산지와 광야 가장자리를 지나 가데스와 하사손다말에 이르는 지역에서도 전투를 벌입니다.
그돌라오멜의 군대는 한 도시만 공격하는 작은 부대가 아닙니다. 여러 지역을 지나며 많은 집단을 공격할 수 있는 군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원정을 반란 지역 주변의 여러 세력을 무너뜨리고 지배력을 되찾으려는 군사 행동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각 집단을 공격한 구체적인 전략적 이유는 본문에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이 설명은 아브람이 나중에 상대하게 될 적이 얼마나 강력한 세력인지를 미리 보여 줍니다. 아브람은 단순히 롯을 납치한 몇 사람과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 지역을 연이어 무너뜨리고 반란을 진압하러 온 왕들의 연합군을 상대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거대한 전쟁에 아브람이 끼어드는 이유는 정치적 야망이나 영토 확장에 있지 않습니다. 그는 아직 전쟁에 등장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를 전쟁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한 가족 구성원의 불행입니다.
풍요로운 들판이 약탈의 현장이 되다
소돔의 패배와 역청 구덩이
8–9절에서 마침내 두 연합군이 싯딤 골짜기에서 맞붙습니다.
싯딤 골짜기에는 역청 구덩이가 곳곳에 있었습니다. 소돔 왕과 고모라 왕은 달아나다가 그 구덩이에 빠졌고, 나머지 사람들은 산지로 달아났습니다.창세기 14:10 · 두루새김
본문은 전투의 자세한 전술을 설명하지 않지만, 도망치는 군대가 험한 지형 속에서 무너지는 장면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이 장면은 바로 앞 장과 묘한 대조를 이룹니다.
롯은 물이 넉넉한 요단 들판을 보고 그 지역을 선택했습니다. 그 땅은 하나님의 동산과 이집트 땅에 견주어 묘사되었습니다(13:10).
그러나 지금 그 풍요로운 지역은 전쟁의 현장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풍요로운 땅이라고 해서 안전한 땅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군사적으로 강한 세력이 쳐들어오자, 풍요로운 지역에 모여 있던 재산과 먹을 것이 한꺼번에 전리품으로 바뀝니다.
네 왕은 소돔과 고모라의 재산과 먹을 것을 모두 빼앗아 떠났습니다.창세기 14:11 · 두루새김
이 장면에서 전쟁은 승리한 왕들의 권력을 과시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그 지역에 살아가던 사람들이 먹고살 기반까지 무너뜨립니다.
그리고 그 약탈 속에 롯이 포함됩니다.
롯은 어떻게 전쟁 포로가 되었을까?
그들은 소돔에 살던 아브람의 조카 롯도 사로잡고 그의 재산을 빼앗아 갔습니다.창세기 14:12 · 두루새김
13장에서는 롯이 소돔까지 천막을 옮겨 갔다고 했습니다. 이제 14장은 그가 소돔에 살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앞선 선택이 가져온 새로운 상황입니다.
그러나 롯이 전쟁 포로가 된 것을 그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직접적인 형벌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그렇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롯은 전쟁에서 패배한 지역에 살고 있었고, 승리한 군대가 그곳을 약탈하면서 그도 사로잡혔습니다.
아홉 왕의 정치적 충돌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마침내 롯이라는 한 사람에게 도착합니다. 왕들에게 롯은 수많은 포로 가운데 하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람에게 롯은 그렇게 취급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바로 그 차이가 다음 장면을 움직입니다.
조금 더 깊이
원문에서는 역청 구덩이에 빠졌다는 뜻으로 읽을 수도 있고, 그곳에서 쓰러졌다는 뜻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소돔 왕이 나중에 다시 등장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그가 이때 죽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도망치는 과정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본문이 더 밝히지 않습니다.
「조카 롯」 — 전쟁에 뛰어드는 아브람
아브람은 왜 롯을 구하러 갔을까?
13절에서 도망쳐 나온 사람이 아브람에게 소식을 전합니다.
이때 아브람은 「히브리 사람 아브람」이라고 소개됩니다. 이 이름이 역사적으로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본문에서는 아브람을 다른 지역 사람들과 구별해 소개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는 아모리 사람 마므레의 테레빈나무들 곁에 살며, 마므레와 그의 형제들인 에스골과 아넬과 서로 힘을 합치기로 약속한 사이입니다. 그는 하나님에게 약속을 받았지만 주변 사람들과 아무런 관계 없이 고립되어 살아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웃과 관계를 맺고, 서로 돕기로 약속하며, 자기 집안의 사람들을 조직할 수 있는 인물입니다.
아브람은 조카 롯이 사로잡혔다는 말을 듣고, 자기 집에서 태어나 훈련받은 사람 318명을 불러내어 단까지 뒤쫓았습니다.창세기 14:14 · 두루새김
두 사람은 이미 서로 갈라져 살고 있습니다. 아브람은 롯이 자신의 집안에서 떠났다는 이유로 그를 외면하지 않습니다. 자기 몫을 선택해 떠난 사람이므로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함께 살지 않기로 한 결정이 서로에 대한 책임까지 끝낸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브람은 관계를 지키기 위해 롯과 갈라졌습니다. 그러나 롯이 위험에 빠지자 그 관계 때문에 다시 움직입니다.
삼백십팔 명의 의미
본문은 아브람이 318명을 불러냈다고 구체적으로 기록합니다.
이야기에서는 아브람이 실제로 동원할 수 있는 사람들의 규모를 보여 줍니다. 더 중요한 설명은 그 사람들이 「자기 집에서 태어나 훈련받은 사람」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아브람의 집안은 단순히 아브람과 사래, 몇몇 친족만으로 이루어진 작은 가정이 아닙니다. 그에게는 가축과 재산을 돌보고, 필요할 때 무장한 전투에 참여할 수 있는 상당한 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13절에는 서로 힘을 합치기로 약속한 사람들이 소개되어 있고, 24절에서는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가 함께 간 사람들로 등장합니다. 아브람은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여 전투를 치렀습니다.
밤에 기습하고, 끝까지 뒤쫓다
아브람은 밤에 종들과 함께 여러 무리로 나뉘어 그들을 공격했습니다. 그는 다마스쿠스 북쪽에 있는 호바까지 그들을 뒤쫓았습니다.창세기 14:15 · 두루새김
본문이 구체적인 작전 계획을 알려 주지는 않지만, 정면에서 맞붙는 큰 전투보다 밤에 갑자기 공격하고 뒤쫓는 일이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앞서 여러 지역을 무너뜨린 강력한 연합군이 이제 아브람에게 공격을 받고 물러납니다.
본문은 아브람의 실제 군사 행동을 기록합니다. 하나님이 승리를 주셨다는 신학적 해석은 뒤이어 등장하는 멜기세덱의 말에서 제시됩니다.
아브람이 되찾은 것은 재산만이 아니었다
아브람은 빼앗긴 재산을 모두 되찾아 왔습니다. 조카 롯과 그의 재산도 되찾아 왔고, 여자들과 다른 사람들도 데려왔습니다.창세기 14:16 · 두루새김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복을 주시며, 그가 복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12:2–3). 그런데 이 전쟁에서 아브람의 행동이 유익을 가져온 사람들은 단지 그의 가족만이 아닙니다.
창세기 13장은 소돔 사람들이 하나님을 거슬러 크게 죄를 지었다고 말했습니다(13:13). 그러나 아브람은 소돔 사람들이 악하다는 이유로 그들의 포로와 재산을 버려두지 않았습니다.
물론 아브람이 처음부터 소돔 사람들까지 모두 구하겠다는 목적을 품었다고 본문이 분명히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의 행동을 일으킨 직접적인 이유는 롯이 사로잡혔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결과는 롯의 구출을 넘어섭니다.
아브람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복이 전해진다는 약속이 이 장에서는 매우 구체적인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잃어버린 재산이 돌아오고, 사로잡힌 사람들이 돌아옵니다.
다만 이 전쟁 장면을 근거로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어진 일반적인 전쟁 명령을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본문에는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전쟁을 명령하셨다는 말이 없습니다. 이것은 특정한 상황에서 아브람이 친족을 구하려고 행동한 이야기입니다.
그 행동의 결과를 두고 이제 전혀 다른 두 왕이 아브람에게 다가옵니다.
조금 더 깊이
원문에서는 아히브, 그의 형제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아브람과 롯이 실제 친형제라는 뜻이 아니라, 가까운 혈족 관계를 강조하는 말입니다. 이 표현은 13:8에서 아브람이 롯에게 다투지 말자고 했던 이유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때 아브람은 두 사람이 한 핏줄이므로 다투지 말자고 했습니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아브람을 맞이한 두 왕
소돔 왕이 등장한 순간, 다른 왕이 끼어든다
17절에서 소돔 왕이 아브람을 맞으러 나옵니다.
그런데 그가 아브람에게 무엇을 말했는지는 바로 나오지 않습니다. 대신 18절에서 살렘 왕 멜기세덱이 등장합니다.
살렘 왕 멜기세덱은 빵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는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제사장이었습니다.창세기 14:18 · 두루새김
소돔 왕이 아브람을 만나러 나왔다는 말과 그가 실제로 아브람에게 말하는 장면 사이에 멜기세덱의 행동과 축복이 들어가 있습니다. 독자는 먼저 멜기세덱의 말을 들은 다음에야 소돔 왕의 제안을 듣게 됩니다.
왕이면서 제사장인 멜기세덱
이전에도 아브람은 제단을 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지만, 제사장이라는 직함을 가진 인물이 이렇게 등장한 적은 없었습니다. 멜기세덱은 이스라엘의 제사장 제도가 세워지기 훨씬 이전의 이야기 속에서 왕이자 제사장으로 등장합니다.
그러나 멜기세덱이 어떤 가문 출신인지, 어떻게 제사장이 되었는지, 살렘에서 어떤 방식으로 예배했는지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가 나중에 등장할 이스라엘의 제사장 제도와 똑같은 질서를 따랐다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두 번의 축복, 그러나 서로 다른 대상
멜기세덱은 먼저 아브람에게 복을 빕니다.
멜기세덱은 아브람에게 복을 빌며 말했습니다. 「아브람이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지극히 높은 하나님께 복을 받기를 바랍니다.」창세기 14:19 · 두루새김
그리고 곧이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당신의 적들을 당신 손에 넘겨주신 지극히 높은 하나님께서 찬양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브람은 멜기세덱에게 모든 것의 10분의 1을 주었습니다.창세기 14:20 · 두루새김
아브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찬양을 받으실 분입니다. 원문에서는 같은 표현이지만 의미의 방향은 다릅니다.
아브람은 사람들을 모았고, 밤에 여러 무리로 나뉘었으며, 적을 공격하고 뒤쫓았습니다. 그의 행동과 준비가 이야기에서 지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멜기세덱은 그 승리를 아브람의 능력만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는 아브람이 이겼다는 사실보다 먼저, 하나님이 적들을 그의 손에 넘겨주셨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아브람이 승리의 주인공이라는 평가에서 하나님이 승리의 근원이시라는 고백으로 시선이 옮겨 갑니다.
「하늘과 땅의 주인」이라는 표현이 중요한 이유
멜기세덱은 하나님을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지극히 높은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주인」으로 옮긴 말은 코네(קָנָה)로, 얻거나 소유한다는 의미와 더불어 창조한다는 의미로도 이해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표현은 하늘과 땅을 소유하시는 분이라는 뜻으로 읽을 수도 있고, 하늘과 땅을 지으신 분이라는 뜻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칠십인역은 이 부분을 창조의 의미로 표현합니다.
어느 쪽으로 읽어도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하나님의 권한이 특정한 지역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앞에서 왕들은 여러 지역을 정복했습니다. 그돌라오멜은 다른 왕들을 자기 지배 아래 두려고 했습니다. 전쟁이 끝나자 사람들과 재산을 누가 차지할 것인지가 문제가 됩니다.
그런 이야기 가운데 멜기세덱은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말합니다.
왕들은 한 도시나 지역을 다스립니다. 그러나 멜기세덱이 찬양하는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주인이십니다.
아브람은 왜 십분의 일을 주었을까?
아브람은 멜기세덱에게서 복을 받고, 하나님이 승리를 주셨다는 선언을 들은 뒤 10분의 1을 줍니다. 이야기의 흐름에서 그 행동은 승리의 성과를 자신의 힘만으로 얻은 것으로 여기지 않는 태도와 연결되어 읽힙니다.
또한 「모든 것」이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지도 본문은 설명하지 않습니다. 아브람이 전쟁에서 되찾은 재산 가운데 10분의 1을 주었다고 읽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이를 그의 평생 재산 전체의 10분의 1이라고 단정할 근거는 없습니다.
이 장면을 근거로 이후의 모든 신자에게 적용되는 정기적인 십일조 제도를 직접 끌어내는 것도 본문의 범위를 넘어섭니다. 여기서는 전쟁에서 돌아온 아브람이 왕이자 제사장인 멜기세덱과 만나는 특별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아브람은 또 다른 왕에게서 재산을 받으라는 제안을 듣습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원문에는 10분의 1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이름이 분명하게 반복되어 있지 않습니다. 앞뒤의 문맥을 따라 아브람이 멜기세덱에게 준 것으로 읽는 것이 전통적이며, 히브리서 7:2–4도 그렇게 이해합니다. 그러나 원문의 문법만으로 이 해석을 완전히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멜기세덱이 아브람에게 주었다는 반대 방향의 읽기도 제기될 수 있습니다. 칠십인역의 주요 본문 역시 주고받는 사람을 대명사로 표현하지만, 일부 전승에서는 아브람의 이름을 명시합니다. 시편 110:4에서는 왕적 인물에게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른 영원한 제사장이라는 선언이 주어집니다. 신약의 히브리서 7장은 이 연결을 더욱 발전시킵니다. 멜기세덱의 이름과 그의 제사장직을 해석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을 설명하는 데 사용합니다. 이는 창세기 14장의 멜기세덱을 후대의 성경 본문이 신학적으로 다시 해석하고 발전시키는 사례입니다. 그러나 이 후대의 의미를 창세기 14장에 그대로 되돌려 놓아서는 안 됩니다. 창세기에서 멜기세덱은 먼저 실제 이야기 속의 왕이자 제사장으로 등장합니다. 그의 빵과 포도주를 곧바로 예수님의 마지막 만찬과 동일시할 근거는 이 본문에 없습니다.
「실 한 오라기나 신발 끈 하나라도」 — 아브람이 거절한 것
소돔 왕의 제안은 무엇이었을까?
소돔 왕이 아브람에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내게 주고, 재산은 네가 가져라.」창세기 14:21 · 두루새김
아브람은 위험을 무릅쓰고 전쟁에 참여했고, 적들을 물리쳤으며, 빼앗긴 재산을 되찾았습니다. 따라서 소돔 왕의 제안은 승리한 사람이 재산을 보상으로 가져갈 수 있다는 전쟁 이후의 현실적인 협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브람은 이 제안을 듣고 뜻밖의 대답을 합니다.
아브람은 하나님께 손을 들어 맹세한다
아브람이 소돔 왕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여호와야훼, 곧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지극히 높은 하나님께 손을 들어 맹세합니다.」창세기 14:22 · 두루새김
멜기세덱이 하나님을 부른 표현을 아브람이 그대로 받아 사용하면서, 그분이 자신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멜기세덱은 그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승리를 주셨다고 찬양했습니다. 아브람은 이제 그 하나님을 자신의 맹세의 증인으로 부릅니다.
「실 한 오라기나 신발 끈 하나라도, 왕의 것은 아무것도 받지 않겠습니다. 왕이 『내가 아브람을 부자로 만들었다』라고 말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창세기 14:23 · 두루새김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미 아브람은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부유함이 누구에게서 왔다고 말할 수 있는지, 그의 미래를 누가 결정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소돔 왕이 아브람에게 전리품을 주고 나중에 자신이 그를 부자로 만들었다고 말한다면, 아브람의 부유함은 소돔 왕의 호의나 보상에 연결되어 설명될 수 있습니다. 아브람은 바로 그 가능성을 막으려 합니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뿐 아니라, 자신이 가진 것의 근원을 누구에게 돌릴 것인가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멜기세덱의 말과 소돔 왕의 말 사이에서
이제 두 왕의 말이 선명하게 대조됩니다.
멜기세덱은 하나님이 아브람의 적들을 그의 손에 넘겨주셨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아브람은 소돔 왕이 훗날 자신을 부자로 만들었다고 말하는 상황을 거부합니다.
아브람은 어느 설명 아래 살아갈 것인지를 선택합니다.
여기서 아브람이 멜기세덱에게 10분의 1을 준 행동과 소돔 왕에게 재산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행동은 서로 연결됩니다. 아브람은 전쟁에서 얻은 모든 성과를 아무런 조건 없이 자신의 것으로 삼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다른 사람들의 몫까지 포기시키지 않는다
「제 몫은 받지 않겠습니다. 젊은이들이 이미 먹은 것은 예외로 하고, 저와 함께 간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는 자기 몫을 가져가게 해 주십시오.」창세기 14:24 · 두루새김
아브람은 자신이 세운 원칙을 다른 사람들에게 무조건 강요하지 않습니다. 함께 위험을 감수하고 전쟁에 참여한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몫이 있습니다.
그는 자기 몫에 관해서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함께한 사람들의 몫까지 같은 방식으로 결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의 행동은 전리품을 받는 일 자체가 모든 사람에게 죄라는 선언이 아닙니다. 자신에게 적용할 결정을 하면서, 함께한 사람들의 정당한 몫은 남겨 두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자신이 받지 않겠다는 자유를 행사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받아야 할 몫까지 빼앗지 않습니다.
맺으며 — 승리한 사람의 손에 남은 것
그는 포로가 된 사람들을 되찾는 데 힘을 사용했고, 자신에게 돌아올 이익은 거절했으며, 함께한 사람들의 몫은 남겨 두었습니다. 아브람의 승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자기 손에 넣었는가보다, 그 손으로 누구를 되찾았고 무엇을 붙잡지 않았는가를 통해 드러납니다.
아브람이 318명을 동원하여 강대한 연합군에 승리했다고 해서, 그 전술을 믿음의 승리 공식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또한 아브람이 전리품을 거절했다고 해서 모든 보수와 재산을 거절하는 것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태도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아브람은 소돔 왕에게 실 한 오라기나 신발 끈 하나라도 왕의 것은 아무것도 받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는 자기 몫을 가져가게 하라고 합니다.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손을 들어 맹세한 사람이, 전쟁으로 얻은 작은 물건 하나도 자기 이름을 높이는 근거로 삼지 않으려 합니다. 그리고 자기 곁에서 함께 싸운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몫을 남겨 둡니다.
창세기 14장은 그렇게, 강한 왕들의 전쟁에서 시작하여 아브람이 받지 않을 것과 다른 사람들이 받아야 할 것을 구별하는 말로 끝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