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풀어 읽기 · 43장

이 장의 자리 · 37–50장 · 요셉과 이집트

눈앞의 자비를 알아보지 못한 사람들

요셉의 형들은 두 번째로 이집트에 내려갑니다. 이번에는 막내 베냐민도 함께입니다. 그들은 곡식을 사야 하지만, 이집트의 통치자가 자신들을 어떻게 대할지 알 수 없습니다. 지난번에 곡식 자루에서 발견된 은 때문에 도둑으로 몰릴 수도 있고, 베냐민마저 빼앗길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집트에 도착하자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납니다.

그 무서운 통치자가 형제들을 자기 집으로 초대하고, 짐승을 잡아 음식을 준비하라고 명령한 것입니다.

형들은 이것을 환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형들은 자신들을 해칠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하는 사람에게서 실제로는 환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환대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한 가족의 상처와 두려움이 그들의 판단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는 굶주림 때문에 다시 길을 떠나는 가족에게서 시작해,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 채 같은 식탁에 앉는 형제들의 모습으로 끝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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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근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창세기 43:1–7 본문 →

야곱이 미루어 온 결정

지난번에 형들이 가져온 곡식도 이제 다 먹었습니다. 가족은 다시 이집트로 가야 합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지난번처럼 간단히 떠날 수 없습니다. 이집트의 통치자가 막내 동생을 데려오지 않으면 자신을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보내 주지 않으시면 저희도 내려가지 않을 거예요. 그 사람이 저희에게 『너희 동생을 데려오지 않으면 나를 만나지 못한다.』라고 했으니까요.」창세기 43:5 · 두루새김

야곱은 베냐민을 잃지 않으려고 그를 집에 머물게 했습니다. 그런데 베냐민을 계속 붙들고 있으면 온 가족이 굶주릴 수 있습니다. 그를 보호하려는 행동이 오히려 가족 전체의 생존을 위험에 빠뜨리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야곱의 두려움은 근거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이미 요셉을 잃었다고 믿고 있고, 시므온도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에게 베냐민을 보내는 일은 너무나 위험해 보입니다.

그러나 이제 흉년이 그 선택을 다시 요구합니다.

위험을 피하려는 결정이 더 이상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는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아버지는 왜 아들들을 탓하는가

이스라엘이 말했습니다. 「왜 동생이 더 있다고 그 사람에게 말해서 나를 이렇게 괴롭게 하느냐?」창세기 43:6 · 두루새김

야곱의 관심은 자신이 베냐민을 보내기 어려워진 이유에 있습니다. 그는 이집트 통치자가 왜 베냐민을 요구했는지보다, 아들들이 어째서 막내의 존재를 알려 주었는지 묻습니다.

아들들이 대답했습니다. 「그 사람이 저희와 저희 가족에 대해 꼬치꼬치 물었어요. 『너희 아버지는 아직 살아 계시느냐? 형제가 더 있느냐?』라고 해서 묻는 대로 대답했을 뿐이에요. 그 사람이 동생을 데리고 내려오라고 할 줄을 저희가 어떻게 알았겠어요?」창세기 43:7 · 두루새김

앞 장에서는 요셉이 형들에게 어디서 왔는지 묻고 정탐꾼이라고 몰아붙이는 대화가 중심이었습니다. 여기서는 형들이 자신들이 받았던 가족에 관한 질문을 더 자세히 떠올립니다. 두 설명이 서로 다르다고 해서 형들이 반드시 거짓말하고 있다고 판단할 필요는 없습니다. 앞선 이야기에서 빠진 대화의 일부를 여기서 전달했을 수도 있습니다.

독자는 그가 왜 그런 질문에 관심을 가졌을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형들은 아직 그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그들에게는 이집트의 낯선 통치자가 자기 가족의 사정을 꼬치꼬치 묻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일 뿐입니다. 반대로 야곱은 이 질문 때문에 자신이 베냐민을 잃을 위험에 처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정보를 가진 사람들이 같은 사건을 전혀 다르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유다는 무엇을 약속하고 있는가

창세기 43:8–10 본문 →

가족 전체를 바라보는 유다

이번에는 유다가 아버지를 설득합니다.

유다가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말했습니다. 「그 애를 저와 함께 보내 주세요. 저희가 바로 떠날게요. 그래야 저희도 아버지도 저희 아이들도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어요.」창세기 43:8 · 두루새김

「저희도 아버지도 저희 아이들도」라는 표현은 세대를 아우릅니다. 형제들뿐 아니라 늙은 아버지와 아직 어린 자녀들까지 모두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베냐민 한 사람에게 닥칠 위험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베냐민을 보내지 않을 때 모든 가족에게 닥칠 위험을 보여줍니다.

자신의 아들을 내놓는 것과 자신이 책임지는 것

「제가 그 애를 책임질게요. 그 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제게 책임을 물으세요. 제가 그 애를 데려와 아버지 앞에 세우지 못하면, 평생 아버지께 죄를 지은 사람으로 남을게요.」창세기 43:9 · 두루새김

르우벤은 베냐민을 돌려보내지 못하면 자기 두 아들을 죽여도 좋다고 말했습니다(42:37). 르우벤의 제안에서는 약속을 어겼을 때 대가를 치를 사람이 그의 두 아들입니다. 유다의 약속에서는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 유다 자신입니다.

유다는 자신이 모든 위험을 통제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다만 결과에 대한 책임을 자신에게 물으라고 합니다.

그때 요셉을 팔자는 제안을 먼저 한 사람이 유다였습니다(37:26–27). 유다는 동생을 죽이지는 말자고 하면서 그를 상인들에게 팔아넘기는 방법을 제안했습니다.

그런 유다가 이제는 다른 동생을 책임지겠다고 나섭니다.

유다가 과거의 잘못을 모두 인정하고 회개했다는 직접적인 고백은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과거에는 동생이 가족에게서 떨어져 나가는 일에 관여했고, 지금은 동생을 반드시 아버지에게 데려오겠다고 약속합니다. 이 변화가 얼마나 깊은 것인지는 이후의 행동에서 더 분명해질 것입니다.

선물과 은, 그리고 엘 샤다이께 드리는 기도

창세기 43:11–15 본문 →

야곱이 다시 결정을 내리다

유다의 말을 들은 야곱은 마침내 베냐민을 보내기로 합니다.

아버지 이스라엘이 아들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여라. 이 땅에서 나는 좋은 것들을 자루에 담아 그 사람에게 선물로 가져가라. 발삼 조금과 꿀 조금, 향료와 향기 나는 나무 진, 피스타치오와 아몬드를 가져가거라.」창세기 43:11 · 두루새김

곡식이 부족하다고 해서 그 땅에서 나는 모든 것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야곱은 여전히 가지고 있는 것 가운데 가치 있는 물품을 골라 선물로 보내려 합니다. 이 선물은 상대의 호의를 얻기 위한 외교적인 행동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32장에서 야곱은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형 에서를 만나기 전에 많은 선물을 준비했습니다(32:13–21). 그때에도 그는 상대가 자신을 어떻게 대할지 두려워했습니다. 지금도 야곱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강한 권력을 가진 사람을 만나야 하는 상황에서 선물을 보냅니다.

돌아온 은도 반드시 가져가라

야곱은 은에 대해서도 지시합니다.

「은은 두 배로 챙겨 가라. 너희 자루 입구에 도로 들어 있던 은도 가져가서 돌려주어라. 어쩌면 실수였을지도 모른다.」창세기 43:12 · 두루새김

이 지시는 가족이 느끼는 두려움과 연결됩니다. 그들은 지난번에 은을 발견했을 때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떨었습니다. 여기서 「은은 두 배로 챙겨 가라」는 말에 돌려줄 은이 포함되는지는 본문의 표현만으로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곡식을 살 은과 돌려줄 은을 준비한다는 뜻은 분명합니다.

야곱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합니다.

선물을 준비하고, 은을 챙기며, 베냐민을 형들과 함께 보냅니다.

그런데 그 모든 준비 뒤에 그는 마지막으로 기도합니다.

「엘 샤다이께서 그 사람이 너희를 불쌍히 여기게 해 주시기를 빈다」

「엘 샤다이께서 그 사람이 너희를 불쌍히 여기게 해 주시기를 빈다. 그래서 너희의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 주기를 빈다. 나야 자식을 잃으면 잃는 것이지.」창세기 43:14 · 두루새김

후손을 번성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께, 야곱은 자신의 자녀들을 잃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야곱은 하나님께 받은 약속을 모두 잊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약속을 알고 있다고 해서 지금의 두려움이 사라진 것도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면서 동시에 자신이 자식을 잃을 가능성을 인정합니다.

그는 여전히 두렵지만 베냐민을 보냅니다.

아버지가 구한 것은 무엇인가

그는 그 사람이 자기 아들들을 불쌍히 여겨 주기를 구합니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그 사람의 마음이 자비로 움직이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엘 샤다이라는 이름은 앞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자신을 나타내실 때 사용되었고(창세기 17:1), 이삭이 야곱을 축복할 때에도 등장했습니다(28:3). 야곱 자신도 벧엘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이 이름을 들었습니다(35:11). 특히 창세기 35:11에서 엘 샤다이의 말씀은 야곱의 번성과 후손에 관한 약속과 연결됩니다. 「나야 자식을 잃으면 잃는 것이지」라는 말은 깊은 신뢰의 선언으로도 읽힐 수 있고, 오랫동안 자식을 잃는 아픔을 겪은 사람이 더 이상 다른 선택지가 없어 내뱉는 체념으로도 읽힐 수 있습니다. 본문은 야곱의 마음을 어느 한쪽으로 확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가 기도하면서도 위험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행동한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환대가 위협으로 보이는 사람들

창세기 43:16–18 본문 →

요셉은 베냐민을 먼저 본다

요셉은 베냐민이 함께 온 것을 보고 자기 집안을 관리하는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들을 집으로 데려가라. 짐승을 잡고 음식을 준비하라. 오늘 낮에 이 사람들이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창세기 43:16 · 두루새김

본문은 요셉이 베냐민을 보았다는 사실과 식사 초대가 이어서 일어났다고 말합니다. 다만 왜 요셉이 이런 방식으로 형제들을 대접하기로 했는지 그 뜻을 직접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지난번에는 형들을 정탐꾼이라고 몰아붙이고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이번에는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함께 먹을 음식을 준비합니다.

같은 사건이 정반대의 의미를 갖다

형제들은 요셉의 집으로 안내받자 두려워하며 서로 말했습니다. 「지난번에 우리 자루에 도로 들어 있던 은 때문에 데려가는 거야. 그 일을 우리 탓으로 돌리고 우리를 덮쳐서 노예로 삼고, 나귀들도 빼앗으려는 거야.」창세기 43:18 · 두루새김

형들이 예상하는 것은 폭력을 당하고 노예가 되는 일인데, 실제로 준비되고 있는 것은 식사와 환대입니다. 그들에게 이집트 통치자의 집은 안전한 장소가 아닙니다. 그 사람은 자신들을 정탐꾼이라고 몰아붙였으며, 형제 하나를 인질로 남겨 둔 사람입니다. 따라서 초대를 곧바로 호의로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형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앞으로 일어날 일만이 아닙니다. 이미 경험했던 일이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과거에 겪은 일이 사람의 기대와 판단을 얼마나 강하게 지배할 수 있는지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사실이 모든 낯선 호의를 무조건 믿으라는 뜻은 아닙니다. 형들이 경계한 데에는 실제적인 이유가 있었고, 요셉도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장을 사람을 무조건 신뢰하라는 교훈으로 바꾸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집 문간에서 시작된 평안

창세기 43:19–25 본문 →

집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그들은 요셉의 집안을 관리하는 사람에게 다가가 집 문간에서 말을 걸었습니다.창세기 43:19 · 두루새김

그들은 아직 집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먼저 은에 관한 문제를 설명하려 합니다. 형들은 지난번에 자신들이 먹을 것을 사러 왔고, 실제로 은을 지불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묵는 곳에서 자루를 열었더니 은이 그대로 돌아와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먹을 것을 살 은도 따로 가지고 왔어요. 누가 저희 은을 자루에 넣었는지는 몰라요.」창세기 43:22 · 두루새김

독자는 요셉이 그렇게 명령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42:25). 그러나 형들은 아직 그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상황을 숨기지 않고 설명합니다.

이것은 앞 장에서 자신들을 정직한 사람들이라고 주장했던 모습과 연결됩니다. 다만 여기서는 막연하게 정직하다고 주장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실제로 은을 다시 가져왔고, 그것을 돌려주려고 합니다.

「안심하세요. 두려워하지 마세요」

집안을 관리하는 사람은 뜻밖의 대답을 합니다.

그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안심하세요. 두려워하지 마세요. 여러분의 하나님, 곧 여러분 아버지의 하나님께서 자루에 보물을 넣어 주셨어요. 여러분이 낸 은은 제가 받았어요.」 그러고는 시므온을 그들에게 데리고 나왔습니다.창세기 43:23 · 두루새김

이 사람은 은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적어도 형들이 곡식 값을 지불하지 않은 것으로 취급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힙니다. 동시에 그는 자루 안에 있던 은을 하나님이 주신 보물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독자는 이미 요셉이 은을 돌려 넣으라고 명령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의 말을 하나님이 실제로 초자연적인 방식으로 은을 만들어 넣으셨다는 사건 설명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시므온이 돌아오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만 들은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잃었던 형제 하나가 그들에게 돌아옵니다. 그 후 형들은 집 안에서 물을 받아 발을 씻고, 집안을 관리하는 사람은 나귀들에게 먹이를 줍니다.

고대 근동의 여행 환경에서 발을 씻을 물을 주고 짐승에게 먹이를 주는 것은 손님을 맞이하는 환대의 행동이었습니다. 창세기 18:4, 19:2, 24:32에서도 이와 비슷한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형들은 자신들이 노예가 될까 두려워했지만, 실제로는 손님처럼 대접받고 있습니다.

위협으로 보였던 집이 서서히 환대의 장소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평안을 묻고 동생에게 은혜를 빌다

창세기 43:26–31 본문 →

형제들이 다시 절하다

요셉이 집에 들어오자, 형제들은 가져온 선물을 집 안으로 들여와 요셉에게 주고 땅에 엎드려 절했습니다.창세기 43:26 · 두루새김

앞 장에서 그들이 처음 요셉에게 절했을 때와 비교하면 이번에는 선물을 가지고 왔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누구에게 절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요셉의 관심은 그 선물에 있지 않습니다.

요셉은 그들의 안부를 묻고 말했습니다. 「너희가 말한 늙은 아버지는 잘 계시느냐? 아직 살아 계시느냐?」창세기 43:27 · 두루새김

요셉은 오랫동안 아버지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아버지가 살아 있는지조차 직접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 형들이 눈앞에 있지만, 아버지는 아직 가나안에 있습니다.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나리의 종인 저희 아버지는 잘 계십니다. 아직 살아 계십니다.」 그들은 몸을 굽혀 절했습니다.창세기 43:28 · 두루새김

그는 아직 아버지에게 자신의 생존을 알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은 아버지가 살아 계심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형제들의 말 속에서 아버지의 생존이 확인되지만, 정작 아버지에게 가장 중요한 소식은 여전히 전달되지 않습니다.

「내 아들아, 하나님께서 네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빈다」

이어서 요셉은 베냐민을 바라봅니다.

요셉은 눈을 들어 자기와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동생 베냐민을 보고 말했습니다. 「이 아이가 너희가 내게 말한 막내 동생이냐?」 이어서 베냐민에게 말했습니다. 「내 아들아, 하나님께서 네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빈다.」창세기 43:29 · 두루새김

요셉과 베냐민은 라헬에게서 태어난 형제입니다. 요셉에게 다른 형제들도 모두 가족이지만, 베냐민과는 같은 어머니를 둔 특별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는 아직 베냐민에게 자신이 형이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습니다.

야곱이 구했던 자비가 요셉의 마음에서 일어나다

바로 다음 절에서 요셉은 더 이상 감정을 억누르지 못합니다.

요셉은 동생을 향한 애정이 북받쳐 올라 울고 싶었습니다. 그는 서둘러 방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울었습니다.창세기 43:30 · 두루새김

아버지는 낯선 통치자의 자비를 구했지만, 독자는 그 통치자의 마음속에서 이미 움직이고 있는 형제의 애정을 보게 됩니다.

요셉은 왜 눈물을 감추는가

요셉은 얼굴을 씻고 나와 감정을 억누르며 말했습니다. 「음식을 차려라.」창세기 43:31 · 두루새김

이 장면에서 분명한 것은 요셉이 동생에게 깊은 애정을 느끼면서도, 아직 가족에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로 했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인 식사가 시작됩니다.

조금 더 깊이

「내 아들아」는 나이와 지위가 높은 사람이 젊은 사람에게 사용할 수 있는 다정한 부름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표현만으로 요셉이 자신의 정체를 드러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14절에서 야곱은 엘 샤다이께서 그 사람이 아들들을 「불쌍히 여기게」 해 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원문에서 이 자리에 사용된 말은 라하밈(⁨רַחַם⁩)입니다. 자비나 깊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런데 30절에서 요셉이 동생을 향해 느낀 「애정」에도 원문에서는 바로 이 낱말이 사용됩니다. 이것은 야곱의 기도가 어떤 방식으로 응답되었는지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직접 선언하는 장면은 아닙니다. 그러나 원문에서 같은 낱말이 두 장면에 등장하면서 기도와 현실 사이에 깊은 연결을 만들어 냅니다. 요셉이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는 이유를 본문은 설명하지 않습니다. 가족의 관계를 회복하기 전에 더 확인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형들의 태도를 살피려는 뜻이 있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혹은 복잡한 감정을 당장 감당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하나를 확정할 수 없습니다.

한 집 안의 세 식탁

창세기 43:32–33 본문 →

함께 먹지만 같은 식탁은 아니다

사람들은 요셉에게 따로, 형제들에게 따로, 요셉과 함께 먹는 이집트 사람들에게 따로 음식을 차렸습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히브리 사람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일을 역겹게 여겨, 그렇게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창세기 43:32 · 두루새김

이러한 구분에는 사회적 지위와 민족적 관습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요셉은 이집트의 높은 통치자이므로 다른 사람들과 별도의 자리에 앉았을 수 있습니다. 다만 어떤 구체적인 종교 규정이나 음식에 관한 금기가 이러한 태도를 낳았는지는 이 구절만으로 확정할 수 없습니다.

그는 히브리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지금은 이집트의 통치자입니다. 자신의 친형제들과 같은 집에서 음식을 먹으면서도 이집트의 높은 관리라는 신분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형들은 그가 히브리 사람이라는 사실을 모르므로 이 자리의 특별한 의미를 알지 못합니다.

가족은 마침내 한 집 안에 모였지만, 아직 자신들이 하나의 가족으로 모였다는 사실을 함께 알지 못합니다.

누가 나이 순서를 정했는가

이어서 이상한 일이 일어납니다.

형제들은 맏이부터 막내까지 나이 순서대로 요셉 앞에 앉았습니다. 그들은 놀라서 서로를 바라보았습니다.창세기 43:33 · 두루새김

요셉은 형들의 출생 순서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형들은 요셉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본문은 요셉이 직접 자리를 정했다고 분명히 말하지는 않습니다.

앞서 형들은 이집트 통치자가 자신들을 정탐꾼으로 의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그가 자신들에 대해 어떻게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지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독자에게는 요셉이 자신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키고, 형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놀라움을 안기는 장면입니다.

베냐민에게 주어진 다섯 배의 음식

창세기 43:34 본문 →

요셉은 왜 베냐민을 특별하게 대하는가

요셉은 자기 앞의 음식을 형제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베냐민이 받은 몫은 다른 사람이 받은 몫의 다섯 배였습니다. 그들은 요셉과 함께 술을 마시고 취했습니다.창세기 43:34 · 두루새김

고대의 잔치나 식사에서 특정 사람에게 특별히 많은 몫을 주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호의나 특별한 대우를 드러내는 행동일 수 있습니다. 요셉이 베냐민을 특별하게 대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이것은 오래전 야곱의 집에서 일어났던 일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때 야곱은 요셉을 다른 아들들보다 특별히 사랑했습니다. 그에게 특별한 옷을 만들어 주었습니다(창세기 37:3). 형들은 그 차별적인 사랑 때문에 요셉을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요셉의 집에서 다시 한 사람에게 특별한 대우가 주어집니다.

형들은 어떻게 반응했는가

본문은 형들이 분노하거나 베냐민을 공격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함께 술을 마시고 취했다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이것은 식사가 계속되고, 그들이 함께 어울리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음을 보여줍니다. 다만 함께 마셨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의심과 불신이 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특별한 대우를 받은 베냐민을 형들이 마음속으로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는 아직 설명되지 않습니다.

이야기는 그 질문을 열어 둔 채 멈춥니다.

조금 더 깊이

이 장면을 형들의 마음을 시험하는 장치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아버지가 한 아들을 특별히 사랑했을 때 형들이 그를 미워했습니다. 이제 한 형제가 특별한 대우를 받는 모습을 보고 그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살펴보려 했다는 해석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요셉이 그런 뜻으로 베냐민에게 다섯 배의 음식을 주었다고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또한 형들이 베냐민을 질투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분명히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장면을 이미 형들이 시험에 합격했다는 증거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두려움에서 식탁까지, 그러나 아직 남아 있는 거리

창세기 43:1–34 본문 →

이 모든 장면을 통과하면서 이야기는 두려움에서 환대로 움직입니다. 하지만 그 환대가 곧바로 화해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오래된 상처가 있고, 감추어진 진실이 있으며, 아직 확인되지 않은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작은 행동들을 통해 가족이 다시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있습니다.

그 사이 요셉은 얼굴을 씻고 자신의 감정을 감춘 채 통치자의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아버지는 그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형들은 자신들이 동생과 함께 식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그러나 요셉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도, 형들이 누구인지도, 베냐민이 누구인지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기다렸던 동생에게 특별히 많은 음식을 줍니다.

그들은 아직 서로의 진실을 모두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같은 집 안에서 함께 먹고 마시고 있습니다. 자신들을 해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사람은 그들에게 잔치를 베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방금 전까지 혼자 방에 들어가 눈물을 흘리던 그들의 동생입니다.

창세기 43장은 아직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형제들의 식사로 끝납니다. 식탁은 차려졌고, 가족은 한자리에 모였지만, 그 식탁에 앉은 사람들이 서로를 온전히 알아보는 날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