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딧기 풀어 읽기 · 10장
이 장의 자리 · 10–14장 · 적진으로 들어간 유딧
모두가 보았지만 알아보지 못한 유딧
유딧기 10장에는 이상할 만큼 많은 사람이 유딧을 바라봅니다.
베툴리아의 지도자들은 그녀의 달라진 모습을 보고 놀랍니다. 성문에 서 있던 남자들은 그녀가 산 아래로 사라질 때까지 바라봅니다. 군대 앞쪽에서 경계를 서던 아시리아 병사들은 그녀의 얼굴을 유심히 살핍니다. 진영의 사람들은 몰려와 그녀를 에워싸고, 마침내 홀로페르네스와 그의 시중을 드는 사람들까지 그녀의 아름다움에 놀랍니다.
모두가 그녀를 봅니다. 그러나 누구도 그녀가 무엇을 하러 왔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유딧은 숨거나 변장하여 적진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도록 철저하게 준비합니다. 그리고 그 시선 속에서 아무런 의심 없이 적군의 중심으로 들어갑니다.
기쁨의 옷을 다시 꺼내 입다
유딧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드리던 기도를 모두 마쳤습니다. 그리고 엎드렸던 자리에서 일어나 몸종을 부르고, 안식일과 명절에 지내던 집으로 내려갔습니다.유딧기 10:1–2 · 두루새김
기도하는 사람에서 행동하는 사람으로 옮겨 가는 과정에 별도의 설명이 들어 있지 않습니다. 유딧은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는 것과 자신이 준비한 일을 실행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연결합니다.
유딧은 남편이 죽은 뒤 지붕 위에 마련한 천막에서 슬퍼하며 지냈지만, 안식일과 명절에는 그와 구별되는 생활 공간을 사용했습니다(8:5–6; 10:2). 본문은 그 집의 구조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녀가 남편을 잃고 슬퍼하는 삶과 절기를 지내는 생활을 구별해 유지해 왔다는 사실은 알 수 있습니다.
그녀는 이제 그 공간에서 옷을 갈아입습니다.
유딧은 입고 있던 굵은 베옷과 과부의 옷을 벗었습니다. 물로 몸을 씻고 진한 향기름을 바른 뒤, 머리를 손질하고 머리띠를 둘렀습니다. 그리고 남편 므낫세가 살아 있을 때 기쁜 날에 차려입던 옷을 입었습니다.유딧기 10:3 · 두루새김
그녀는 자신이 오래 유지해 온 과부의 겉모습을 의도적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새 옷을 마련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남편이 살아 있을 때 입었던 옷을 다시 꺼냈다고 말합니다. 유딧의 옷은 지금 입고 있는 슬픔의 옷과 대조됩니다.
그녀는 자신의 삶에 이미 있던 것을 새로운 목적에 맞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그녀의 옷은 공동체 안에서 과부로 살아가는 삶을 드러냈습니다. 이제 그녀의 옷은 공동체를 위해 적진에 들어가는 계획의 일부가 됩니다.
같은 사람이지만, 그녀가 입은 옷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아름다움은 계획의 일부다
발에는 신을 신고, 발목 고리와 팔찌, 반지와 귀고리 등 자신의 장신구를 모두 걸쳤습니다. 자기를 보는 남자라면 누구든 눈길을 빼앗기도록 무척 아름답게 꾸몄습니다.유딧기 10:4 · 두루새김
남자들의 눈을 속이거나 현혹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아름다워 보이려고 치장했다는 말보다 적극적입니다. 유딧은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지를 계산하고 있습니다.
유딧은 자신의 입술에서 나올 속임이 적들에게 상처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9:10, 13). 앞 장에서는 입술을 통한 속임을 구했습니다. 이번 장에서는 눈을 통한 속임을 준비합니다.
그녀는 사람들이 듣는 말뿐 아니라 보는 모습까지 이용하려 합니다.
유딧은 자신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속이고 있지 않습니다. 실제로 그녀는 아름다운 여인으로 소개되었으며(8:7), 이 장에서도 여러 사람이 그 아름다움에 놀랍니다.
속임은 그녀의 얼굴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그 얼굴을 보고 그녀의 의도까지 알아냈다고 생각하게 되는 데 있습니다.
유딧은 이미 아름답기 때문에 존중받는 여인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지혜롭게 살아가는 사람으로 소개되었습니다(8:7–8). 이번 장에서는 그 아름다움이 구체적인 전략에 사용될 뿐입니다.
조금 더 깊이
유딧이 자신의 겉모습과 행동을 세심하게 준비하는 장면은 에스더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에스더는 자기 민족의 멸망을 막기 위해 왕 앞에 나아갑니다. 그 과정에는 궁중의 옷차림과 겉모습, 왕이 자신을 좋게 보아주도록 하는 일, 위험을 감수하고 권력자에게 다가가는 일이 등장합니다(에스더 2:12–17; 5:1–3). 에스더는 이미 왕궁 안에서 살아가는 왕후이며, 자신이 어느 민족 사람인지를 한동안 드러내지 않습니다(에스더 2:10). 반면 유딧은 적진 밖에서 직접 들어가며, 처음 만난 병사들에게 자신이 「히브리 여자」라고 밝힙니다. 에스더는 궁중의 권력 구조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사용합니다. 유딧은 그 구조 안에 들어갈 위치를 스스로 만들어 냅니다. 이것은 두 사람의 행동이 모든 면에서 같거나, 그들이 택한 모든 수단이 자동으로 옳아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구약의 이야기들이 권력과 구원을 다룰 때 전쟁을 지휘하는 남자들만을 중심에 놓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화려한 장신구와 정결한 빵
유딧의 화려한 단장을 묘사한 직후, 이야기는 뜻밖의 물건들로 시선을 돌립니다.
유딧은 몸종에게 포도주가 든 가죽 부대와 기름이 든 작은 병을 주었습니다. 자루에는 볶은 보리와 무화과를 눌러 뭉친 것, 정결한 빵을 가득 담았습니다. 또 자기 그릇을 모두 싸서 몸종에게 짊어지게 했습니다.유딧기 10:5 · 두루새김
특히 「정결한 빵」이라는 표현과 자기 그릇을 가져간다는 사실이 눈에 띕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음식 규정에서는 무엇을 먹을 수 있는지뿐 아니라 부정한 것과의 접촉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도 중요했습니다(레위기 11장). 유딧은 다른 민족 군대의 진영에 들어가면서도 자신이 먹을 음식과 사용할 그릇을 따로 준비합니다.
사람들에게 보여 줄 모습은 적극적으로 바꿉니다. 하지만 자신이 먹을 음식과 사용할 그릇은 따로 챙깁니다.
이 구별은 다니엘 1:8–16의 이야기와도 통합니다. 다니엘과 친구들은 바벨론 왕궁에서 교육받고 생활하지만, 왕의 음식과 포도주로 자신들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먹는 것을 구별합니다.
두 이야기가 같은 상황을 다루는 것은 아닙니다. 다니엘은 포로로 왕궁에 들어갔고, 유딧은 자신의 계획으로 적진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다른 민족의 권력이 미치는 공간 안에 있으면서도 이스라엘 사람으로서의 생활을 유지하려 한다는 점에서 주제가 이어집니다.
적이 자신을 보는 방식은 바꾸지만,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의 관계까지 버리지는 않습니다.
몸종은 단순히 유딧을 따라가는 배경 인물이 아닙니다. 식량과 그릇을 지고 위험한 길을 함께 나섭니다. 유딧의 계획이 실제로 실행되기 위해 필요한 일을 맡습니다.
본문은 몸종의 이름이나 생각을 알려 주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녀가 어떤 마음으로 동행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유딧이 있지만, 실제 행동에는 또 다른 여인의 수고와 동행이 함께합니다.
성문이 열리고,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지다
준비를 마친 유딧과 몸종은 베툴리아 성문으로 갑니다.
그곳에는 웃시야와 도시의 장로들인 카브리스와 카르미스가 서 있습니다. 그들은 유딧을 보자 놀랍니다.
그들은 얼굴 모습도 달라지고 옷도 갈아입은 유딧을 보았습니다. 그 아름다움에 몹시 놀라며 유딧에게 말했습니다.유딧기 10:7 · 두루새김
지도자들은 유딧을 알고 있습니다. 그녀의 경건함과 지혜도 알고 있습니다. 적군의 병사들뿐 아니라 유딧을 잘 아는 사람들조차 그녀의 새로운 모습에 강한 반응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도자들의 반응은 아름다움에 대한 감탄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당신을 좋게 보아주게 하시고, 당신의 계획을 이루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 일이 이스라엘 자손의 자랑이 되고 예루살렘을 드높이기를 바랍니다.」 유딧은 하나님께 엎드려 절했습니다.유딧기 10:8 · 두루새김
지도자들은 유딧의 계획을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그녀가 무엇을 하려는지 캐묻지 말라는 요청을 받아들인 상태입니다. 그런데도 그녀를 위해 기도하고 성문을 열 준비를 합니다.
유딧은 곧 적군을 만나야 합니다. 그들의 의심을 피하고 지휘관에게 다가가려면 상대가 자신을 좋게 보아주어야 합니다. 따라서 이것은 막연하게 복을 빌어 주는 말만은 아닙니다. 그녀가 실제로 마주할 상황에 필요한 도움을 구하는 축복입니다.
지도자들은 그 도움이 하나님께로부터 오기를 바랍니다. 그녀는 지도자들의 축복을 자신에 대한 칭찬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으로 응답합니다.
성문을 여는 사람은 누구인가
유딧이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나갈 수 있도록 성문을 열라고 명령해 주십시오. 여러분이 저와 나누신 말이 이루어지도록 나가겠습니다.」 지도자들은 유딧의 말대로 젊은이들에게 성문을 열라고 명령했습니다.유딧기 10:9 · 두루새김
도시의 지도자들은 앞서 백성의 요구에 밀려 항복의 기한을 정했습니다. 이제 그들은 유딧의 요청에 따라 성문을 열도록 명령합니다.
닫힌 성문은 그동안 외부의 적을 막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문을 열어야 유딧이 적에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도시를 지키기 위해 문을 닫는 것이 필요했다면, 지금은 도시를 지키려는 행동을 위해 문을 여는 일이 필요해진 것입니다.
남겨진 사람들의 시선
젊은이들이 문을 열자 유딧은 몸종과 함께 밖으로 나갔습니다. 도시의 남자들은 유딧이 산을 내려가 골짜기를 지나고, 더는 보이지 않을 때까지 멀리서 바라보았습니다.유딧기 10:10 · 두루새김
시선은 베툴리아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것입니다.
그들은 유딧을 지켜보지만 따라가지 않습니다. 그녀가 어디까지 걸어가는지는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어떤 일을 겪게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도시의 운명은 지도자들의 결정과 적군의 움직임에 달려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사람들은 한 여인이 자신들을 대신하여 산을 내려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베툴리아 사람들의 눈앞에서는 유딧이 사라졌습니다.
이제 아시리아 사람들의 눈앞에 그녀가 나타납니다.
적군은 유딧의 말을 듣기보다 그녀를 보고 판단한다
유딧과 몸종이 골짜기를 걸어가자 군대 앞쪽에서 경계를 서던 아시리아 병사들이 유딧과 마주쳐 그녀를 붙잡습니다.
병사들은 유딧을 붙잡고 물었습니다. 「너는 어느 민족 사람이냐?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느냐?」 유딧이 대답했습니다. 「저는 히브리 여자입니다. 제 민족에게서 달아나는 중입니다. 그들이 곧 여러분의 먹잇감으로 넘겨질 것이기 때문입니다.」유딧기 10:12 · 두루새김
첫 번째 말은 사실입니다. 그녀는 히브리 여자입니다. 하지만 그다음 말은 그녀의 실제 의도와 다릅니다. 유딧은 자기 백성을 버리고 도망쳐 나온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을 지키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적진으로 들어왔습니다. 베툴리아는 이미 물이 부족하고 주민들은 항복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아시리아가 자신들을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도망쳐 나왔다는 이야기는 병사들에게 그럴듯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유딧은 자기 백성이 적군에게 먹잇감이 될 것처럼 말합니다. 자신을 붙잡은 병사들이 베툴리아 주민들을 어떻게 바라볼지를 이용하는 표현입니다.
그녀는 적군이 자신들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그 확신에 어울리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참된 말을 전하겠다는 속임
「저는 참된 말을 전하러 여러분 군대의 총사령관 홀로페르네스께 가고 있습니다. 그분이 온 산지를 차지할 수 있도록 가실 길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분은 병사를 한 사람도 잃지 않으실 것입니다.」유딧기 10:13 · 두루새김
유딧은 단순히 보호해 달라고 요청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홀로페르네스에게 필요한 사람이라고 주장합니다.
경계를 서던 병사들에게 아름다운 여인은 흥미로운 존재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총사령관에게 데려갈 이유가 되려면 군사적으로 가치 있는 정보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유딧은 바로 그 이유를 제공합니다.
앞 장에서 유딧은 자신이 속임을 사용할 것이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장에서는 적군 앞에서 참된 말을 전하러 왔다고 주장합니다. 다만 현재 장면에서 확실한 것은 그녀가 진정한 목적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말과 얼굴을 함께 본 사람들
병사들은 유딧의 말을 듣고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들 눈에 유딧의 얼굴은 놀라울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그들이 유딧에게 말했습니다.유딧기 10:14 · 두루새김
병사들은 먼저 그녀의 말을 듣습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서술은 그들이 말이 사실인지 확인했다는 사실을 알려 주지 않습니다.
물론 본문은 병사들이 오직 아름다움 때문에 그녀를 믿었다고 직접 말하지 않습니다. 군사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도 그들의 결정에 영향을 주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야기가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은 그들이 유딧의 얼굴에 사로잡혔다는 사실입니다.
「너는 우리 주인께 서둘러 내려와 목숨을 구했구나. 이제 그분의 천막으로 가거라. 우리 가운데 몇 사람이 너를 그분께 데려다줄 것이다.」유딧기 10:15 · 두루새김
병사들은 유딧이 위험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믿지만, 유딧은 자신의 계획을 실행할 수 있는 가장 위험한 장소를 향해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어서 그들은 그녀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하고, 홀로페르네스가 잘 대해 줄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앞서 홀로페르네스의 군대는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려 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군대의 병사들이 이제 유딧을 안심시키고 보호하며 지휘관에게 데려다주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병사들은 백 명을 골라 유딧과 몸종에게 붙여 줍니다. 이 숫자는 유딧과 몸종, 단 두 사람을 데려가는 데 동원되는 인원으로는 매우 큽니다.
그들은 두 여인을 보호할 수도 있고, 감시할 수도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본문은 그들의 구체적인 의도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유딧이 자신의 뜻대로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그녀는 붙잡혔고, 병사들이 정한 길을 따라 홀로페르네스에게 이끌려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것이 그녀가 원하던 방향입니다.
유딧은 적의 통제를 완전히 벗어난 것이 아니라, 적의 통제가 자신을 원하는 장소로 데려가게 만들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그녀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스스로 믿는지, 자신의 말에 어떤 이중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지, 또는 의도적으로 거짓된 기대를 심고 있는지는 앞으로의 설명까지 살펴야 더 분명해집니다.
「이런 여자들이 있는 민족을 누가 업신여길 수 있겠어?」 — 감탄 속에 드러나는 폭력
유딧이 홀로페르네스의 천막에 도착하자 진영 전체에 소문이 퍼집니다.
사람들이 몰려와 그녀를 에워쌉니다. 처음에는 경계를 서던 병사들이 그녀를 붙잡았고, 이제는 진영의 사람들이 그녀를 둘러쌉니다.
그들은 유딧의 아름다움에 놀랐고, 유딧을 보고 이스라엘 백성도 놀랍게 여겼습니다. 저마다 곁에 있는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이런 여자들이 있는 민족을 누가 업신여길 수 있겠어? 저들의 남자는 한 명도 남겨 두지 않는 게 좋겠어. 살려 두면 온 세상을 꾀로 속여 넘길 수 있을 테니까.」유딧기 10:19 · 두루새김
감탄이 존중이나 너그러움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모두 없애야 한다는 말로 이어집니다.
자신들이 지배하려는 민족에게 훌륭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도, 그들은 그 민족과 함께 살아갈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뛰어남을 위협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말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표현이 있습니다.
「살려 두면 온 세상을 꾀로 속여 넘길 수 있을 테니까.」
유딧은 실제로 속임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진영에 있는 사람들이 그녀의 의도를 알아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속임의 가능성을 말로는 정확히 지적합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들의 눈앞에서 그 가능성이 현실이 되고 있다는 사실은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병사들의 말이 모든 면에서 옳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들은 한 여인의 아름다움과 자신들이 품은 두려움을 근거로 민족 전체를 의심하고 죽이려 합니다. 그들의 판단은 상대에 대한 이해가 아니라 자기들의 지배 욕망에 의해 뒤틀려 있습니다.
유딧은 바로 그런 사람들 사이에 서 있습니다.
그녀는 그들이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에 끌리는지를 이용하지만, 폭력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그들의 생각을 신뢰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녀는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보고도 상대를 한 사람으로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용합니다.
자주색 모기장 아래의 홀로페르네스
유딧이 진영에 들어온 뒤,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은 홀로페르네스의 천막 안으로 옮겨 갑니다.
홀로페르네스는 모기장 안에 있는 자기 침대에서 쉬고 있었습니다. 모기장은 자주색 천에 금과 에메랄드와 값비싼 보석을 엮어 만든 것이었습니다.유딧기 10:21 · 두루새김
베툴리아 주민들은 물이 부족해 쓰러지고 있습니다. 반면 적군의 지휘관은 값비싼 장식 아래에서 쉬고 있습니다.
유딧의 단장은 적진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였습니다. 홀로페르네스의 사치는 이미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누리는 권력의 표시입니다. 두 사람 모두 화려한 물건에 둘러싸여 있지만, 그 물건들이 이야기에서 하는 역할은 다릅니다.
그리고 바로 그 화려한 천막 안으로 유딧이 들어갑니다.
누가 누구 앞에 엎드리는가
홀로페르네스는 유딧이 왔다는 보고를 받고 천막 앞으로 나옵니다. 그는 은으로 만든 등불들을 앞세웁니다. 이 장면은 권력자의 등장에 어울리는 격식 있는 분위기를 만듭니다.
유딧이 홀로페르네스와 그의 시중을 드는 사람들 앞에 이르자, 모두 유딧의 아름다운 얼굴에 놀랐습니다. 유딧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그에게 절했습니다. 그의 종들이 유딧을 일으켜 세웠습니다.유딧기 10:23 · 두루새김
이 장면은 10장 첫머리를 다시 떠올리게 합니다. 그때 유딧은 하나님께 기도를 마치고 엎드렸던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이제 그녀는 홀로페르네스 앞에 엎드리고, 그의 종들이 그녀를 일으킵니다.
그녀는 지휘관 앞에서 자신이 더 강하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를 향해 공개적으로 맞서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그의 권력을 인정하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조금 더 깊이
자주색 천은 고대 세계에서 값비싼 염료와 연결되었으며, 왕실이나 높은 지위의 사람들이 입는 옷과 장식에 사용되었습니다. 침대를 둘러싼 금과 보석 장식 역시 그의 부와 권력을 보여 줍니다. 흥미롭게도 10:8에서 유딧이 하나님께 엎드려 절할 때와 10:23에서 홀로페르네스에게 절할 때 모두 그리스어 프로스퀴네오라는 동사가 사용됩니다. 이 단어는 하나님께 드리는 경배에도 사용되지만, 사람 앞에 엎드려 예를 표하는 행동에도 사용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같은 동사가 사용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유딧이 홀로페르네스를 신으로 섬겼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유딧이 누구를 자신의 하나님으로 인정하는지는 앞선 기도에서 분명하게 나타났습니다. 지금 홀로페르네스에게 절하는 행동은 적군의 지휘관 앞에서 겉으로 복종하는 몸짓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가장 깊은 곳으로 들어간 사람
겉으로 보면 유딧은 계속해서 다른 사람들의 결정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독자는 그 방향이 처음부터 유딧이 가려고 했던 방향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모든 일을 통제한다고 생각하지만, 바로 그 통제의 과정이 유딧의 계획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있습니다.
이 장의 사건들을 무조건 하나님께서 직접 일으키신 기적으로 설명하면, 본문이 자세히 묘사한 유딧의 판단과 준비가 흐려집니다. 반대로 유딧이 모든 것을 자기 지혜만으로 해냈다고 설명해도 이야기의 한 부분을 놓치게 됩니다. 그녀는 자신의 행동을 하나님께 드린 기도에서 시작했고, 지도자들도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그녀를 좋게 보아주게 하시기를 축복했습니다.
이야기는 하나님의 돌보심을 구하는 신앙과 구체적인 인간의 행동을 함께 놓습니다. 그러나 아직 그 결과에 대한 하나님의 판정은 알려 주지 않습니다. 아직 이것을 완성된 구원이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유딧이 들어간 곳은 실제로 위험한 적진이고, 홀로페르네스는 강대한 군대를 지휘하는 사람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는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립니다.
그 앞에는 값비싼 보석으로 장식한 모기장과 은으로 만든 등불들이 있고, 군대를 거느린 지휘관과 그의 종들이 서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유딧의 아름다움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보고 있는 것은 유딧이 보여 주기로 한 모습입니다.
홀로페르네스의 종들이 그녀를 일으켜 세웁니다. 이제 유딧은 그가 자기 앞에 서도록 허락한 여인이 되었습니다.
천막 밖에는 수많은 군사가 있습니다. 천막 안에는 그 군대의 지휘관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 자신의 실제 목적을 아직 아무에게도 밝히지 않은 유딧이 서 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