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딧기 풀어 읽기 · 10장
이 장의 자리 · 10–14장 · 적진으로 들어간 유딧
모두가 보았지만 알아보지 못한 유딧
유딧기 10장에는 이상할 만큼 많은 사람이 유딧을 바라봅니다.
베툴리아의 지도자들은 그녀의 달라진 모습을 보고 놀랍니다. 성문에 서 있던 남자들은 그녀가 산 아래로 사라질 때까지 바라봅니다. 아시리아의 전초 부대는 그녀의 얼굴을 유심히 살핍니다. 군영의 병사들은 몰려와 그녀를 에워싸고, 마침내 홀로페르네스와 그의 시종들까지 그녀의 아름다움에 놀랍니다.
모두가 그녀를 봅니다. 그러나 누구도 그녀가 무엇을 하러 왔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유딧은 숨거나 변장하여 적진에 침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도록 철저하게 준비합니다. 그리고 그 시선 속에서 아무런 의심 없이 적군의 중심으로 들어갑니다.
유딧이 바꾸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을 보게 될 방식입니다.
기쁨의 옷을 다시 꺼내 입다
유딧이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외치기를 그치고 이 말을 모두 마치자, 엎드렸던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 몸종을 부르고, 안식일과 명절에 지내던 집으로 내려갔다.유딧기 10:1–2 · 본디새김
기도하는 사람에서 행동하는 사람으로 옮겨 가는 과정에 별도의 설명이 들어 있지 않습니다. 유딧은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과 자신이 준비한 일을 실행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연결합니다.
유딧은 남편이 죽은 뒤 지붕 위에 마련한 장막에서 애도하며 지냈지만, 안식일과 명절에는 그와 구별되는 생활 공간을 사용했습니다(8:5–6; 10:2). 본문은 그 집의 구조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녀가 애도하는 삶과 절기 생활을 구별해 유지해 왔다는 사실은 알 수 있습니다.
그녀는 이제 그 공간에서 옷을 갈아입습니다.
그녀는 입고 있던 굵은 베옷을 벗고, 과부의 옷도 벗었다. 물로 몸을 씻고 진한 향유를 바른 다음, 머리카락을 정돈하고 머리에 관을 얹었다. 그리고 남편 므낫세가 살아 있을 때 차려입던 기쁨의 옷을 입었다.유딧기 10:3 · 본디새김
그녀는 자신이 오래 유지해 온 과부의 외형을 의도적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새 옷을 마련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남편이 살아 있을 때 입었던 옷을 다시 꺼냈다고 말합니다. 유딧의 옷은 지금 입고 있는 애도의 옷과 대조됩니다.
그녀는 자신의 삶에 이미 있던 것을 새로운 목적에 맞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그녀의 옷은 공동체 안에서 과부로 살아가는 삶을 드러냈습니다. 이제 그녀의 옷은 공동체를 위해 적진에 들어가는 계획의 일부가 됩니다.
같은 사람이지만, 그녀가 입은 옷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아름다움은 계획의 일부다
발에는 신을 신고, 발목 고리와 팔찌와 반지와 귀고리와 자기의 모든 장신구를 걸쳤다. 그녀를 보는 남자라면 누구든 눈길을 빼앗기도록 무척 아름답게 단장했다.유딧기 10:4 · 본디새김
남자들의 눈을 속이거나 현혹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아름다워 보이려고 치장했다는 말보다 적극적입니다. 유딧은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지를 계산하고 있습니다.
유딧은 자신의 입술에서 나올 속임이 적들에게 상처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9:10, 13). 앞 장에서는 입술을 통한 속임을 구했습니다. 이번 장에서는 눈을 통한 속임을 준비합니다.
그녀는 사람들이 듣는 말뿐 아니라 보는 모습까지 이용하려 합니다.
유딧은 자신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속이고 있지 않습니다. 실제로 그녀는 아름다운 여인으로 소개되었으며(8:7), 이 장에서도 여러 사람이 그 아름다움에 놀랍니다.
속임은 그녀의 얼굴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그 얼굴을 보고 그녀의 의도까지 알아냈다고 생각하게 되는 데 있습니다.
유딧은 이미 아름답기 때문에 존중받는 여인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지혜롭게 살아가는 사람으로 소개되었습니다(8:7–8). 이번 장에서는 그 아름다움이 구체적인 전략에 사용될 뿐입니다.
조금 더 깊이
유딧이 자신의 외모와 행동을 세심하게 준비하는 장면은 에스더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에스더는 자기 민족의 멸망을 막기 위해 왕 앞에 나아갑니다. 그 과정에는 궁중의 복식과 외모, 왕의 호의를 얻는 일, 위험을 감수하고 권력자에게 접근하는 일이 등장합니다(에스더 2:12–17; 5:1–3). 에스더는 이미 왕궁 안에서 살아가는 왕후이며,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을 한동안 드러내지 않습니다(에스더 2:10). 반면 유딧은 적진 밖에서 직접 들어가며, 처음 만난 병사들에게 자신이 히브리 사람들의 딸이라고 밝힙니다. 에스더는 궁중의 권력 구조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사용합니다. 유딧은 그 구조 안에 들어갈 위치를 스스로 만들어 냅니다. 이것은 두 사람의 행동이 모든 면에서 같거나, 그들이 택한 모든 수단이 자동으로 정당화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구약의 이야기들이 권력과 구원을 다룰 때 전쟁을 지휘하는 남자들만을 중심에 놓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화려한 장신구와 정결한 빵
유딧의 화려한 단장을 묘사한 직후, 이야기는 뜻밖의 물건들로 시선을 돌립니다.
그녀는 몸종에게 포도주가 든 가죽 술부대와 기름이 든 작은 병을 주었다. 자루에는 볶은 보릿가루와 무화과 뭉치와 정결한 빵을 가득 담고, 자기 그릇들을 모두 싸서 몸종에게 지웠다.유딧기 10:5 · 본디새김
고대 이스라엘의 음식 규정에서는 무엇을 먹을 수 있는지뿐 아니라 부정한 것과의 접촉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도 중요했습니다(레위기 11장). 유딧은 이방 군대의 진영에 들어가면서도 자신이 먹을 음식과 사용할 그릇을 따로 준비합니다. 따라서 이 목록은 단순한 여행 준비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보여 줄 모습은 적극적으로 바꿉니다. 하지만 자신이 먹을 음식과 사용할 그릇은 따로 챙깁니다.
유딧은 자신의 신분을 감추기 위해 히브리인이 아니라는 거짓말을 할 생각도 없습니다. 뒤에서 그녀는 자신이 히브리 사람들의 딸임을 직접 밝힙니다(10:12).
적이 자신을 보는 방식은 바꾸지만,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의 관계까지 버리지는 않습니다.
몸종은 단순히 유딧을 따라가는 배경 인물이 아닙니다. 식량과 그릇을 지고 위험한 길을 함께 나섭니다. 유딧의 계획이 실제로 실행되기 위해 필요한 일을 맡습니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유딧이 있지만, 실제 행동에는 또 다른 여인의 노동과 동행이 함께합니다.
조금 더 깊이
이 구별은 다니엘 1:8–16의 이야기와도 통합니다. 다니엘과 친구들은 바벨론 왕궁에서 교육받고 생활하지만, 왕의 음식과 포도주로 자신들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식생활을 구별합니다. 두 이야기가 같은 상황을 다루는 것은 아닙니다. 다니엘은 포로로 왕궁에 들어갔고, 유딧은 자신의 계획으로 적진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이방 권력의 공간 안에 있으면서도 이스라엘 사람으로서의 생활을 유지하려 한다는 점에서 주제적 연결이 있습니다.
성문이 열리고,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지다
준비를 마친 유딧과 몸종은 베툴리아 성문으로 갑니다.
그곳에는 웃시야와 카브리스와 카르미스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유딧을 보자 놀랍니다.
그들은 얼굴이 달라지고 옷을 갈아입은 유딧을 보고, 그녀의 아름다움에 몹시 크게 놀라 그녀에게 말했다.유딧기 10:7 · 본디새김
지도자들은 유딧을 알고 있습니다. 그녀의 경건함과 지혜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달라진 얼굴과 옷을 보자 놀랍니다.
그렇지만 지도자들의 반응은 아름다움에 대한 감탄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께서 당신이 호의를 얻게 해 주시고, 당신의 계획을 완성하시어 이스라엘 자손의 자랑이 되고 예루살렘을 드높이는 일이 되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유딧은 하나님께 엎드려 절했다.유딧기 10:8 · 본디새김
지도자들은 유딧의 계획을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그녀가 무엇을 하려는지 캐묻지 말라는 요청을 받아들인 상태입니다. 그런데도 그녀를 위해 기도하고 성문을 열 준비를 합니다.
유딧은 곧 적군을 만나야 합니다. 그들의 의심을 피하고 지휘관에게 접근하려면 상대의 호의가 필요합니다. 그녀가 실제로 마주할 상황에 필요한 도움을 구하는 축복입니다.
그녀는 지도자들의 축복을 자신에 대한 찬사로 받아들이는 대신,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으로 응답합니다.
성문을 여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리고 그들에게 말했다. 「저를 위해 성문을 열라고 명령해 주십시오. 여러분이 저와 나누신 말을 이루러 나가겠습니다.」 그들은 말한 대로 젊은이들에게 그녀를 위해 문을 열라고 명령했다.유딧기 10:9 · 본디새김
도시의 지도자들은 앞서 백성의 요구에 밀려 항복의 기한을 정했습니다. 이제 그들은 유딧의 요청에 응하여 성문을 열도록 명령합니다.
닫힌 성문은 그동안 외부의 적을 막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문을 열어야 유딧이 적에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도시를 지키기 위해 문을 닫는 것이 필요했다면, 지금은 도시를 지키려는 행동을 위해 문을 여는 일이 필요해진 것입니다.
남겨진 사람들의 시선
젊은이들은 그렇게 했다. 유딧이 나갔고, 그녀의 여종도 함께 나갔다. 그 도시의 남자들은 그녀가 산을 내려갈 때까지, 골짜기를 지나 더는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녀를 멀리서 바라보았다.유딧기 10:10 · 본디새김
시선은 베툴리아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것입니다.
그들은 유딧을 지켜보지만 따라가지 않습니다. 그녀가 어디까지 걸어가는지는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어떤 일을 겪게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도시의 운명은 지도자들의 결정과 적군의 움직임에 달려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사람들은 한 여인이 자신들을 대신하여 산을 내려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딧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순간, 이야기의 시점이 바뀝니다.
이제 아시리아 사람들의 눈앞에 그녀가 나타납니다.
적군은 유딧의 말을 듣기보다 그녀를 보고 판단한다
유딧과 몸종이 골짜기를 지나자 아시리아의 전초 부대가 두 사람을 붙잡습니다.
그들은 그녀를 붙잡고 물었다. 「너는 어느 백성에 속하느냐?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느냐?」 그녀가 말했다. 「저는 히브리 사람들의 딸입니다. 그들을 피해 달아나는 중입니다. 그들이 여러분에게 먹이로 넘겨질 참이기 때문입니다.」유딧기 10:12 · 본디새김
첫 번째 말은 사실입니다. 그녀는 히브리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다음 말은 그녀의 실제 의도와 다릅니다.
유딧은 자기 백성을 버리고 도망쳐 나온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을 지키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적진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적들이 믿고 싶어 할 만한 설명을 내놓습니다.
베툴리아는 이미 물이 부족하고 주민들은 항복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아시리아가 자신들을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도망쳐 나왔다는 이야기는 병사들에게 그럴듯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유딧은 자기 백성이 적군에게 먹이가 될 것처럼 말합니다. 자신을 붙잡은 병사들이 베툴리아 주민들을 어떻게 바라볼지를 이용하는 표현입니다.
참된 말을 전하겠다는 속임
「저는 참된 말을 전하러 여러분 군대의 총사령관 홀로페르네스 앞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가 나아가 온 산지를 지배할 길을 그의 앞에서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의 부하들 가운데 몸 하나도, 생명의 숨 하나도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유딧기 10:13 · 본디새김
유딧은 단순히 보호해 달라고 요청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홀로페르네스에게 필요한 사람이라고 주장합니다.
전초 부대의 병사들에게 아름다운 여인은 흥미로운 존재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총사령관에게 데려갈 이유가 되려면 군사적으로 가치 있는 정보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유딧은 바로 그 이유를 제공합니다.
앞 장에서 유딧은 자신이 속임을 사용할 것이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장에서는 적군 앞에서 참된 말을 전하러 왔다고 주장합니다. 다만 현재 장면에서 확실한 것은 그녀가 진정한 목적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말과 얼굴을 함께 본 사람들
그 남자들은 그녀의 말을 듣고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들 눈에 그 얼굴은 몹시 아름다워 놀라웠다. 그들은 그녀에게 말했다.유딧기 10:14 · 본디새김
이것은 처음에 유딧이 준비했던 계획과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반응입니다. 물론 본문은 병사들이 오직 아름다움 때문에 그녀를 믿었다고 직접 말하지 않습니다. 군사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도 그들의 결정에 영향을 주었을 수 있습니다.
「너는 우리 주인 앞으로 서둘러 내려와 네 목숨을 구했다. 이제 그의 장막으로 가거라. 우리 가운데 몇 사람이 너를 그의 손에 넘겨줄 때까지 데려다줄 것이다.」유딧기 10:15 · 본디새김
병사들은 유딧이 위험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믿지만, 유딧은 자신의 계획을 실행할 수 있는 가장 위험한 장소를 향해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어서 그들은 그녀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하고, 홀로페르네스가 잘 대해 줄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앞서 홀로페르네스의 군대는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려 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군대의 병사들이 이제 유딧을 안심시키고 보호하며 지휘관에게 데려다주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병사들은 백 명을 골라 그녀를 호위하게 합니다. 이 숫자는 유딧과 몸종, 단 두 사람을 데려가는 데 동원되는 인원으로는 매우 큽니다.
그들은 두 여인을 보호할 수도 있고, 감시할 수도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본문은 그들의 구체적인 의도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유딧이 자신의 뜻대로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그녀는 붙잡혔고, 병사들이 정한 경로를 따라 홀로페르네스에게 인도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것이 그녀가 원하던 방향입니다.
유딧은 적의 통제를 완전히 벗어난 것이 아니라, 적의 통제가 자신을 원하는 장소로 데려가게 만들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그녀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스스로 믿는지, 자신의 말에 어떤 이중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지, 또는 의도적으로 거짓된 기대를 심고 있는지는 앞으로의 설명까지 살펴야 더 분명해집니다.
「이 백성을 누가 업신여기겠는가?」 — 감탄 속에 드러나는 폭력
유딧이 홀로페르네스의 장막에 도착하자 군영 전체에 소문이 퍼집니다.
사람들이 몰려와 그녀를 에워쌉니다. 처음에는 전초 부대가 그녀를 붙잡았고, 이제는 군영의 군중이 그녀를 둘러쌉니다.
그들은 그녀의 아름다움에 놀랐고, 그녀 때문에 이스라엘 자손에게도 놀랐다. 저마다 곁에 있는 사람에게 말했다. 「이런 여자들이 있는 이 백성을 누가 업신여기겠는가? 그들 가운데 남자 하나라도 남겨 두는 것은 좋지 않다. 그들을 놓아두면 온 땅을 속일 수 있을 테니 말이다.」유딧기 10:19 · 본디새김
감탄이 존중이나 관용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멸절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말로 이어집니다.
자신들이 지배하려는 민족에게 훌륭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도, 그들은 그 민족과 함께 살아갈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뛰어남을 위협으로 해석합니다.
유딧은 실제로 속임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군영에 있는 사람들이 그녀의 의도를 알아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병사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온 땅을 속일 수 있을 만큼 위험하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속임의 가능성을 말로는 정확히 지적합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들의 눈앞에서 그 가능성이 현실이 되고 있다는 사실은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병사들의 말이 모든 면에서 옳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들은 한 여인의 아름다움과 자신들이 품은 두려움을 근거로 민족 전체를 의심하고 죽이려 합니다. 그들의 판단은 대상에 대한 이해가 아니라 자기들의 지배 욕망에 의해 왜곡되어 있습니다.
유딧은 바로 그런 사람들 사이에 서 있습니다.
그녀는 그들이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에 끌리는지를 이용하지만, 그들의 폭력적인 세계관을 신뢰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녀는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보고도 상대를 온전한 인격으로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용합니다.
자주색 모기장 아래의 홀로페르네스
유딧이 군영에 들어온 뒤,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은 홀로페르네스의 장막 안으로 옮겨 갑니다.
홀로페르네스는 모기장 안에 있는 자기 침상에서 쉬고 있었다. 그 모기장은 자주색 천에 금과 에메랄드와 값비싼 돌들을 짜 넣어 만든 것이었다.유딧기 10:21 · 본디새김
베툴리아 주민들은 물이 부족해 쓰러지고 있습니다. 반면 적군의 지휘관은 값비싼 장식 아래에서 쉬고 있습니다.
유딧의 단장은 적진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였습니다. 홀로페르네스의 사치는 이미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누리는 권력의 표시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화려한 장막 안으로 유딧이 들어갑니다.
누가 누구 앞에 엎드리는가
홀로페르네스는 유딧이 왔다는 보고를 받고 장막 앞으로 나옵니다. 그의 앞에는 은으로 된 등들이 놓인 행렬이 따릅니다.
유딧이 그와 그의 시종들 앞에 이르자, 모두가 그녀의 얼굴이 아름다운 것에 놀랐다. 그녀는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그에게 절했고, 그의 종들이 그녀를 일으켰다.유딧기 10:23 · 본디새김
이 장면은 10장 첫머리를 다시 떠올리게 합니다. 그때 유딧은 하나님께 기도를 마치고 엎드렸던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지금 홀로페르네스에게 절하는 행동은 적군의 지휘관 앞에서 취하는 외적인 복종의 몸짓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녀는 지휘관 앞에서 자신이 더 강하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를 향해 공개적으로 저항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그의 권력을 인정하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조금 더 깊이
자주색 천은 고대 세계에서 값비싼 염료와 연결되었으며, 왕실이나 높은 지위의 사람들의 복식과 장식에 사용되었습니다. 금과 보석으로 장식한 침상 역시 그의 부와 권세를 보여 줍니다. 흥미롭게도 10:8에서 유딧이 하나님께 엎드려 절할 때와 10:23에서 홀로페르네스에게 절할 때 모두 그리스어 프로스퀴네오라는 동사가 사용됩니다. 이 단어는 하나님께 드리는 경배에도 사용되지만, 사람 앞에 엎드려 예를 표하는 행동에도 사용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같은 동사가 사용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유딧이 홀로페르네스를 신으로 섬겼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유딧이 누구를 자신의 하나님으로 인정하는지는 앞선 기도에서 분명하게 나타났습니다. 그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자신의 계획을 이루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가장 깊은 곳으로 들어간 사람
본문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언제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들은 자신이 모든 일을 통제한다고 생각하지만, 바로 그 통제의 과정이 유딧의 계획을 진전시키고 있습니다. 이 반복 속에서 사람들의 시선은 점점 더 강하게 강조되지만, 그 시선이 얻는 이해는 깊어지지 않습니다.
이야기는 하나님의 돌보심을 구하는 신앙과 구체적인 인간의 행동을 함께 놓습니다. 그러나 아직 그 결과에 대한 하나님의 판정은 알려 주지 않습니다. 아직 이것을 완성된 구원이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유딧이 들어간 곳은 실제로 위험한 적진이고, 홀로페르네스는 강대한 군대를 지휘하는 사람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는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립니다.
그 앞에는 값비싼 보석으로 장식한 모기장과 은으로 된 등들이 있고, 군대를 거느린 지휘관과 그의 종들이 서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유딧의 아름다움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보고 있는 것은 유딧이 보여 주기로 한 모습입니다.
홀로페르네스의 종들이 그녀를 일으킵니다. 이제 유딧은 그가 자기 앞에 서도록 허락한 여인이 되었습니다.
장막 밖에는 수많은 군사가 있습니다. 장막 안에는 그 군대의 지휘관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 자신의 실제 목적을 아직 아무에게도 밝히지 않은 유딧이 서 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