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딧기 풀어 읽기 · 11장
이 장의 자리 · 10–14장 · 적진으로 들어간 유딧
진실을 말하면서 진실을 감추다
홀로페르네스는 유딧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왕을 섬기는 사람은 결코 해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딧이 자기 백성을 떠나 이곳으로 왔으니 이제 목숨을 구했다고 선언합니다.
그런데 유딧이 이 자리에서 가장 먼저 약속하는 것은 뜻밖에도 정직입니다.
독자는 이미 유딧이 적을 속일 계획을 세웠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께 자신의 입술과 속임을 통해 적을 무너뜨려 달라고 기도했습니다(9:10, 13). 그런데 지금 적군의 총사령관 앞에서는 거짓을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합니다.
유딧은 어떻게 이런 말을 만들어 냅니까? 그녀는 진실과 거짓을 어떻게 엮고 있으며, 홀로페르네스는 왜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합니까?
같은 말을 듣고도 무엇을 믿게 되는지는 듣는 사람의 욕망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너는 구원에 이르렀다」 — 홀로페르네스가 이해하는 구원
홀로페르네스가 그녀에게 말했다. 「여자여, 안심해라. 마음으로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온 땅의 왕 느부갓네살을 섬기기로 선택한 사람을 해친 적이 없다.」유딧기 11:1 · 본디새김
홀로페르네스는 친절한 말로 대화를 시작합니다. 유딧이 위험한 곳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므로 그녀를 안심시키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친절에는 분명한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복종하는 사람에게는 안전을 약속하지만, 복종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러한 약속을 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그는 바로 다음 절에서 베툴리아 주민들을 공격하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산지에 사는 네 백성만 해도, 나를 업신여기지 않았다면, 나는 그들을 향해 내 창을 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스스로 이런 일을 불러들였다.」유딧기 11:2 · 본디새김
여기서 홀로페르네스는 자신의 군사 행동에 대한 책임을 공격받는 사람들에게 돌립니다. 이 논리는 강대한 제국의 통치 방식과 잘 어울립니다. 복종하는 사람에게는 평화를 약속하고, 복종하지 않는 사람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그들이 자초했다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앞선 장들에서 아시리아 군대가 여러 민족을 굴복시키고, 베툴리아의 물 공급을 차단하여 주민들을 극심한 고통에 빠뜨렸다는 사실을 이미 보여 주었습니다. 따라서 홀로페르네스의 말은 그 행동을 정당화하려는 그의 자기 설명으로 읽어야 합니다.
「이제 무슨 까닭으로 그들에게서 달아나 우리에게 왔는지 말해라. 너는 구원에 이르렀다. 안심해라. 너는 오늘 밤에도, 앞으로도 살아 있을 것이다.」유딧기 11:3 · 본디새김
홀로페르네스가 사용하는 ‘구원’은 자신의 권력 아래 들어와 목숨을 보존하는 것입니다. 그가 보기에 유딧은 패배할 백성을 버리고 승리할 세력으로 옮겨 온 사람입니다.
그러나 독자가 알고 있는 유딧의 목적은 다릅니다.
유딧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공동체를 버린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구하기 위해 적진으로 들어왔습니다.
홀로페르네스는 유딧이 아시리아의 보호 아래 들어왔다고 믿습니다. 유딧은 아시리아의 힘을 무너뜨릴 기회를 찾기 위해 그곳에 왔습니다. 홀로페르네스는 이 차이를 알지 못한 채 유딧에게 말할 기회를 줍니다.
그리고 유딧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습니다.
「제 주인」은 누구인가 — 두 방향으로 들리는 말
유딧은 홀로페르네스에게 말을 시작하면서 자신을 반복해서 ‘여종’이라고 부릅니다.
유딧이 그에게 말했다. 「나리의 여종이 드리는 말을 받아 주십시오. 나리의 여종이 나리 앞에서 말하게 해 주십시오. 저는 오늘 밤 제 주인께 거짓을 알리지 않겠습니다.」유딧기 11:5 · 본디새김
유딧은 자신이 홀로페르네스보다 낮은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그에게 명령하거나 도전할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말합니다.
유딧의 말을 듣는 홀로페르네스는 ‘제 주인’을 자연스럽게 자신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녀가 바로 자기 앞에 서서 자신을 ‘나리’라고 부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독자는 유딧이 실제로 누구에게 충성을 바치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녀에게 궁극적인 주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입니다.
중요한 것은 유딧이 상대에게 들리는 의미와 독자가 알고 있는 자신의 충성 사이의 간격을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거짓을 말하지 않겠다는 약속의 역설
5절의 「거짓을 알리지 않겠습니다」는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그런데 유딧은 곧 자기 백성이 자신들의 율법을 어길 계획을 세웠다고 주장합니다. 그 주장 가운데 일부는 이야기의 다른 장면에서 확인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유딧의 말을 모두 문자 그대로 참이라고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 그녀가 하는 모든 말이 거짓인 것도 아닙니다. 그녀는 실제 사실과 신앙적 진술, 아직 확인되지 않은 주장과 의도적인 암시를 한 연설 안에 엮습니다.
유딧은 진실한 내용을 말하면서도 듣는 사람이 잘못된 결론에 이르도록 이끌 수 있습니다.
「나리의 여종이 하는 말을 따르시면, 하나님께서 나리와 함께 일을 온전히 이루실 것이며, 제 주인은 자신의 계획에서 실패하지 않으실 것입니다.」유딧기 11:6 · 본디새김
홀로페르네스는 이 말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듣습니다. 유딧의 조언을 따르면 하나님이 자신의 군사 작전을 성공시키실 것이고, 자신의 계획이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딧은 앞서 하나님께 자신의 계획을 이루도록 힘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녀가 말하는 ‘일’과 ‘계획’을 독자가 이미 알고 있는 유딧의 목적과 연결하면, 홀로페르네스가 듣는 의미와 전혀 다른 가능성이 나타납니다.
그는 자신이 승리하기를 원합니다. 유딧은 바로 그 기대를 건드립니다.
온 땅의 왕을 찬양하다
7–8절에서 유딧의 아첨은 더욱 커집니다.
「온 땅의 왕 느부갓네살께서 살아 계시고 그 권세가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합니다. 그는 모든 생명을 바로 세우도록 나리를 보내셨습니다. 사람들만 나리 때문에 그를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들의 짐승들과 집짐승들과 하늘의 새들도 나리의 힘으로 느부갓네살과 그의 온 집안을 위해 살 것입니다.」유딧기 11:7 · 본디새김
들짐승과 집짐승, 하늘의 새들은 창세기 1:26–28과 시편 8:6–8에서 인간에게 맡겨진 피조세계의 통치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유딧은 지금 그 세계 전체가 느부갓네살의 권세 아래 있는 것처럼 말합니다.
유딧은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의 주인이시며 물들과 모든 것을 지으신 왕이시라고 고백했습니다(9:12). 그런데 홀로페르네스 앞에서는 느부갓네살을 ‘온 땅의 왕’이라고 부릅니다. 그는 느부갓네살이 온 땅을 다스리는 왕이라고 믿습니다. 유딧은 그 믿음을 거스르지 않습니다.
8절에서는 홀로페르네스의 지혜와 교묘한 꾀, 전쟁 수행 능력을 칭찬합니다. 그녀는 그를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칭찬하면서, 바로 그 칭찬으로 그의 판단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다음에야 그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를 꺼냅니다.
조금 더 깊이
그리스어 호 퀴리오스(κύριος) 무는 ‘나의 주인’, ‘나의 주’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퀴리오스는 사람인 주인이나 군주에게도 사용되고, 하나님을 가리킬 때도 사용됩니다. 원문이 모든 ‘제 주인’을 반드시 하나님만을 가리키는 암호로 사용했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실제 대화의 문맥에서는 홀로페르네스를 가리키는 것이 자연스러운 자리도 있습니다.
아키오르의 말은 옳았다 — 그러나 유딧은 그 말을 어디로 이끄는가
9절에서 뜻밖의 인물이 다시 등장합니다.
아키오르는 홀로페르네스의 군사 회의에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설명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죄를 지으면 패배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호하실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5:17–21). 홀로페르네스는 이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키오르를 베툴리아 사람들에게 넘겨주었습니다(6:10–13).
그런데 이제 유딧이 홀로페르네스 앞에서 바로 그 말을 꺼냅니다.
「그러므로 주인이신 나리, 그의 말을 흘려듣지 마시고 마음에 담아 두십시오. 그 말은 참됩니다. 저희 민족이 자기들의 하나님께 죄를 짓지 않는 한, 벌을 받지 않으며 큰 칼도 그들을 이기지 못합니다.」유딧기 11:10 · 본디새김
그녀는 그가 이미 거부했던 주장을 옳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홀로페르네스의 군사력에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는 말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가 듣고 싶어 할 내용만은 아닙니다.
아키오르의 경고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죄를 짓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호하신다는 것입니다. 유딧은 그 조건을 그대로 받아들인 뒤, 이제 이스라엘 사람들이 죄를 지으려 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이 연설의 결정적인 전환입니다.
아키오르는 이스라엘을 공격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말했습니다. 유딧은 같은 말을 이용하여 언제 공격하면 되는지 알려 주겠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홀로페르네스가 아키오르의 경고를 무시하지 않고도 자신이 원하는 승리를 기대할 수 있게 만듭니다.
문제는 11절부터입니다.
「이제 제 주인이 쫓겨나 아무 성과도 거두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죽음이 그들을 덮칠 것입니다. 죄가 그들을 사로잡았으니, 그들이 그릇된 짓을 저지를 때 그 죄로 자기들의 하나님을 성나게 할 것입니다.」유딧기 11:11 · 본디새김
그러나 앞서 이야기에서 확인된 베툴리아의 문제는 심각한 갈증과 지도자들의 잘못된 맹세였습니다. 유딧은 그 맹세를 비판했지만, 주민 전체가 음식 규정을 어기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은 지금까지 서술되지 않았습니다.
아키오르가 했던 말은 이미 이야기 속에서 제시된 신앙적 판단입니다. 그러나 베툴리아 주민들이 어떤 죄를 지으려 한다는 구체적인 정보는 이 장에서 유딧의 입을 통해 처음 등장합니다. 그 정보가 사실이라고 이야기의 서술자가 확인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유딧은 확인 가능한 과거의 진술에 새로운 정보를 덧붙여, 그 전체가 신뢰할 만한 설명처럼 들리게 합니다.
굶주림이 죄가 되는 순간을 기다리게 하다
유딧은 이제 베툴리아 사람들이 어떤 죄를 지으려 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그들에게 먹을 것이 떨어지고 물도 모두 모자라게 되자, 그들은 자기들의 집짐승에 손을 대기로 의논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율법으로 먹지 말라고 그들에게 단단히 이르신 것들을 모두 먹어 치우기로 결정했습니다.」유딧기 11:12 · 본디새김
베툴리아는 식량과 물이 부족합니다. 아시리아 군대는 바로 그 부족을 이용하여 도시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유딧은 그 사실에서 출발합니다.
이스라엘의 음식 규정은 레위기 11장과 신명기 14:3–21 등에 나타납니다. 모든 가축을 먹는 것이 금지된 것은 아니지만, 먹을 수 있는 동물과 먹을 수 없는 동물을 구별하는 규정이 있었습니다.
13절에서는 그 문제가 더욱 심각해집니다.
「또 곡식의 첫 열매와 포도주와 기름의 십분의 일도 모조리 먹어 치우기로 작정했습니다. 이것들은 예루살렘에서 저희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제사장들을 위해 거룩하게 구별하여 보관해 둔 것으로, 백성 가운데 누구에게도 손으로 만지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것들입니다.」유딧기 11:13 · 본디새김
그녀는 식량 부족을 단지 군사적 위기로 설명하지 않고,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가 깨지는 위기로 설명합니다. 아시리아 군대가 직접 성소를 파괴하지 않더라도, 굶주린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게 되면 하나님의 보호를 잃는다는 논리입니다.
이스라엘을 당장 공격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먼저 죄를 지을 때를 기다리면 됩니다.
예루살렘의 허락을 기다린다는 말
14절에는 더욱 기묘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그들은 원로회의 허락을 자기들에게 전해 올 사람들을 예루살렘으로 보냈습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도 이런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유딧기 11:14 · 본디새김
하나님께서 율법으로 금하신 행동이라면, 예루살렘의 원로회가 허락한다고 해서 그 명령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유딧은 이 문제를 자세히 해명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예루살렘에서 허락을 받아 올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는 이야기를 만듭니다.
그녀는 홀로페르네스에게 군사 작전의 새로운 시간표를 제시하고 있는 셈입니다.
특히 예루살렘 주민들까지 이미 비슷한 일을 했다는 주장과 원로회의 허락을 얻기 위해 사람을 보냈다는 주장은 지금까지의 이야기에서 확인되지 않습니다. 유딧은 실제로 존재하는 식량 위기를 토대로, 그 뒤에 일어날 법한 종교적 위기를 만들어 제시하고 있습니다.
유딧은 홀로페르네스에게 이스라엘의 약점이 무엇인지 알려 주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실제로는 그의 군사적 판단을 하나님의 뜻에 관한 자신의 설명에 종속시키고 있습니다. 그가 유딧의 말을 받아들이면, 공격할 때를 결정하는 사람은 더 이상 홀로페르네스 혼자가 아닙니다.
그는 유딧이 알려 주는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조금 더 깊이
민수기 18:12–13은 처음 거둔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 가운데 하나님께 바치는 몫을 제사장에게 주도록 규정합니다. 민수기 18:21–24는 십일조를 레위 사람들과 연결합니다. 다만 모든 종류의 십일조가 동일하게 제사장만의 몫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신명기 14:22–29에는 예배와 공동체의 식사, 레위인과 사회적 약자를 위한 십일조 규정도 나옵니다. 여기서 ‘허락’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아페시스(ἄφεσις)는 문맥에 따라 풀어 줌, 면제, 허락 등을 뜻할 수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죄의 용서보다 어떤 행동을 허용하는 결정을 가리키는 것으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밤마다 골짜기로 나가겠습니다」 — 신앙을 말하며 행동할 길을 열다
이제 유딧은 앞서 내놓은 설명을 구체적인 제안으로 발전시킵니다.
「그래서 나리의 여종인 저는 이 모든 일을 알고 그들 앞에서 달아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리와 함께 일들을 이루도록 저를 보내셨습니다. 그 일들을 듣는 온 땅의 사람마다 놀라 넋을 잃을 것입니다.」유딧기 11:16 · 본디새김
그는 유딧이 패배할 백성을 버리고 강한 편으로 넘어왔다고 생각합니다. 유딧은 거기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내셨다는 설명까지 덧붙입니다.
홀로페르네스는 온 땅의 사람들이 놀라 넋을 잃을 것이라는 말을 자신의 위대한 승리가 온 세상에 알려질 것이라는 약속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딧은 자기 행동을 통해 적군을 무너뜨리려 하고 있습니다. 온 땅이 놀랄 만한 일이 일어난다는 말 자체는 어느 방향으로도 이해될 수 있습니다. 놀라움의 원인이 무엇인지가 아직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러 나가는 사람
17절에서 유딧은 자신의 경건함을 다시 강조합니다.
「나리의 여종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밤낮으로 하늘의 하나님을 섬깁니다. 이제 저는 나리 곁에 머물겠습니다, 나리. 나리의 여종은 밤마다 골짜기로 나가 하나님께 기도하겠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언제 죄를 저질렀는지 하나님께서 제게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유딧기 11:17 · 본디새김
유딧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경건하게 살아왔다는 사실은 이미 8장에서 확인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베툴리아 주민들의 죄를 그녀에게 특별히 알려 주시겠다는 것은 아직 본문에서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유딧은 이미 적진에 들어온 상태입니다. 이제 그녀가 자유롭게 움직이려면 홀로페르네스의 허락이 필요합니다. 그녀는 그 자유를 기도라는 이유로 요청합니다.
홀로페르네스의 입장에서는 이 제안이 유익해 보입니다. 유딧이 기도하여 이스라엘이 죄를 지은 시점을 알아내고, 자신에게 알려 주겠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유딧의 입장에서는 매일 밤 군영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물론 이 장에서 홀로페르네스가 실제로 밤마다 외출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는 서술은 아직 나오지 않습니다. 17절은 유딧의 요청이자 제안입니다.
그녀는 적의 보호를 받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자신의 행동을 위한 공간을 확보하려 합니다.
예루살렘 한가운데 왕의 자리를 놓겠다는 약속
18–19절에서 유딧의 말은 절정에 이릅니다.
그녀는 이스라엘이 죄를 지은 시점을 알려 주고, 홀로페르네스가 그때 군대를 이끌고 나가면 아무도 맞설 수 없을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저는 나리를 이끌고 유대 한가운데를 지나 예루살렘 앞에 이르겠습니다. 그 도시 한가운데 나리의 자리를 놓겠습니다. 나리께서는 목자 없는 양들처럼 그들을 이끄실 것이며, 개 한 마리도 나리 앞에서 제 혀로 으르렁거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 일들은 제가 미리 안 바대로 제게 이야기되고 알려졌으며, 저는 나리께 알려 드리라고 보냄을 받았습니다.」유딧기 11:19 · 본디새김
그 도시 한가운데 홀로페르네스의 자리를 놓겠다는 말은, 그가 이스라엘의 중심부까지 지배하게 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유딧은 자신의 말에 하나님의 권위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홀로페르네스는 그 권위를 의심하기보다 자신에게 유리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 장면은 바로 그 일이 일어났음을 보여 줍니다.
조금 더 깊이
민수기 27:16–17에서 모세는 자신을 대신하여 백성을 이끌 지도자를 세워 달라고 하나님께 구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회중이 목자 없는 양처럼 되지 않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열왕기상 22:17에서도 이스라엘이 목자 없는 양처럼 산에 흩어진 모습이 환상으로 나타납니다. 그 장면은 왕의 패배와 연결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이야기에서 참된 목자의 역할은 단순한 군사적 지배와 같지 않습니다. 백성을 보호하고 돌보는 책임과 연결됩니다. 그는 양들을 돌보는 목자라기보다, 그들을 굶주리게 하여 항복시키려는 군대의 지휘관입니다. 둘째는 ‘개 한 마리도 으르렁거리지 않을 것’이라는 표현입니다. 이것은 흔히 완전한 평온과 저항 없는 통과를 뜻하는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출애굽기 11:7에도 비슷한 표현이 등장합니다. 마지막 재앙이 이집트에 닥칠 때,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개조차 으르렁거리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유딧기 11:19도 개의 혀까지 포함하여 같은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을 묘사하던 언어가 이스라엘을 정복하려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약속처럼 바뀐 것입니다. 다만 본문이 출애굽기의 장면을 의도적으로 뒤집었다고 명시하지는 않습니다.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두 본문이 같은 특징적인 표현을 공유하며, 그 표현이 서로 반대되는 상황에 놓여 있다는 사실입니다. 유딧은 자기에게 어떤 사실들이 미리 알려졌고, 자신이 보냄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원문은 그 일을 알려 준 주체를 명시하지 않는 수동형을 사용합니다. 앞 문맥에는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알려 주실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므로, 홀로페르네스는 이 말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계시와 사명에 관한 진술로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유딧이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홀로페르네스의 승리를 예언하셨다는 장면은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홀로페르네스는 무엇을 믿게 되었는가
그녀의 말은 홀로페르네스와 그의 모든 시종의 마음에 들었다. 그들은 그녀의 지혜에 놀라 말했다.유딧기 11:20 · 본디새김
유딧의 말이 참된 것으로 검증되었다는 서술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에 들었다는 서술입니다. 그들이 이미 원하고 있던 것은 이스라엘을 정복할 수 있다는 확신이었습니다. 유딧은 바로 그 확신을 제공했습니다.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얼굴의 아름다움과 말의 슬기로움에서 이 여자 같은 여자는 없다.」유딧기 11:21 · 본디새김
앞 장에서는 유딧의 아름다움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이번 장에서는 그 아름다움에 말의 슬기로움이 더해집니다. 그녀의 지혜가 실제로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 그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녀를 칭찬하는 말이 오히려 자신들이 얼마나 쉽게 설득되었는지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너를 보낸 것은 잘한 일이다」
22절에서 홀로페르네스는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홀로페르네스가 그녀에게 말했다. 「하나님이 너를 백성보다 앞서 보낸 것은 잘한 일이다. 우리 손에는 힘이 생기고, 내 주인을 업신여긴 자들에게는 멸망이 닥치게 하려는 것이다.」유딧기 11:22 · 본디새김
유딧은 9:9에서 하나님께 자신의 손에 힘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홀로페르네스는 이제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손에 힘을 주시려고 유딧을 보내셨다고 말합니다. 두 사람 모두 하나님의 도움과 손의 힘을 연결합니다.
그러나 그 손이 향하는 방향은 정반대입니다.
유딧은 적군을 무너뜨리기 위한 힘을 구했습니다. 홀로페르네스는 유딧이 자기 군대의 힘을 더해 줄 사람이라고 믿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승리를 위해 무엇을 해 주실 수 있는지에 관심을 가집니다. 그에게 유딧의 하나님은 자신의 군사적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되신다면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입니다.
「네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될 것이다」
마지막 23절에서는 그 문제가 더욱 선명해집니다.
「참으로 너는 모습이 아름답고 말도 훌륭하다. 하나님이 네가 말한 대로 행한다면, 네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될 것이다. 너는 느부갓네살 왕의 집에서 살며 온 땅에 이름을 떨칠 것이다.」유딧기 11:23 · 본디새김
홀로페르네스는 유딧이 약속한 성공이 이루어질 경우 그녀의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것입니다.
그의 신앙적 판단은 결과에 달려 있습니다.
유딧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이 원하는 기간 안에 도우시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뜻과 권한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8:15–17). 그러나 홀로페르네스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유리한 결과를 이루어 주신다면 그분을 자기 하나님으로 삼겠다고 말합니다.
홀로페르네스는 하나님을 믿겠다고 말하지만, 아직 그가 믿고자 하는 것은 자신의 승리입니다.
조금 더 깊이
본디새김이 따르는 그리스어 표현은 하나님께서 유딧의 말대로 행하신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반면 다른 그리스어 본문에는 유딧 자신이 말한 대로 행한다는 의미가 분명해지는 동사 형태가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이루시면’이라는 읽기와 ‘네가 행하면’이라는 읽기가 가능합니다. 그러나 어느 쪽으로 읽더라도 이야기의 핵심은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왕궁을 약속받은 여인
처음에 유딧은 자신이 왜 왔는지 설명해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는 홀로페르네스가 그녀의 말을 믿고, 그녀가 제시한 미래를 기대하며, 보상까지 약속하는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그녀는 홀로페르네스의 힘을 정면으로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권세와 지혜를 칭찬했고, 그가 원하는 승리의 모습을 자세히 그려 주었습니다.
본문은 유딧이 적을 속이는 과정을 묘사하며, 그녀의 지혜와 용기를 이야기의 중심에 놓습니다. 그러나 이 장에서 하나님께서 직접 유딧의 모든 말을 승인하셨다고 선언하지는 않습니다. 그녀의 행동을 이해하는 것과 그 행동에서 모든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윤리적 규칙을 만드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홀로페르네스는 유딧에게 하나님과 왕궁을 함께 약속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승리를 도우실 것이고, 유딧은 그 대가로 왕궁의 영광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유딧의 얼굴을 보았고, 그녀의 말을 들었습니다. 이제는 그녀의 지혜까지 인정합니다.
그런데도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여전히 보지 못합니다.
유딧이 원하는 것은 그가 줄 수 있는 왕궁의 자리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홀로페르네스는 자신이 유딧에게 가장 큰 선물을 약속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들은 유딧은 지금, 자신이 무너뜨리려고 찾아온 사람의 바로 앞에 서 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