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딧기 풀어 읽기 · 12장
이 장의 자리 · 10–14장 · 적진으로 들어간 유딧
같은 잔치, 서로 다른 기다림
유딧은 적군의 총사령관 홀로페르네스의 신뢰를 얻었습니다. 그는 그녀에게 자신의 음식을 먹이고 포도주를 마시게 하려 합니다. 그러나 유딧은 정중하게 거절합니다. 자신이 가져온 음식만 먹겠다는 것입니다.
며칠 뒤 상황은 달라집니다. 홀로페르네스는 특별한 술자리를 마련하고 유딧을 초대합니다. 이번에는 그녀가 초대를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두 사람이 기대하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홀로페르네스는 유딧을 자기 여자로 만들 기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유딧은 자신이 계획한 일을 이루기 위해 그의 곁에 머물고 있습니다.
유딧기 12장은 적군의 힘이 외부의 공격을 받기 전에, 그 힘을 가진 사람의 마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여 줍니다.
유딧은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홀로페르네스의 음식을 거절하지만, 그의 초대에는 응합니다. 그의 권력 아래 있는 것처럼 행동하면서도 자신의 식생활과 기도 시간을 지킵니다. 그리고 그의 욕망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가 있는 자리로 들어갑니다.
그녀가 지키는 것과 양보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 차이를 따라가면 이 장의 조용하지만 치밀한 전개가 드러납니다.
은그릇이 놓인 식탁에서 음식을 거절하다
홀로페르네스는 자기 은그릇들이 놓여 있는 곳으로 그녀를 데리고 들어가라고 명령했다. 또 자기 요리를 그녀에게 차려 주고 자기 포도주를 마시게 하라고 지시했다.유딧기 12:1 · 본디새김
은그릇과 특별히 준비한 음식, 지휘관 자신의 포도주는 그의 부와 지위를 드러냅니다. 유딧에게 자신의 음식을 내어 주는 것은 그녀를 후하게 대접하는 행동입니다.
그러나 이 대접에는 권력의 관계도 담겨 있습니다.
홀로페르네스는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마실지 지시하는 사람입니다. 유딧은 그의 진영 안에서 그의 허락을 받아 머무는 사람입니다. 그가 자신의 식탁에 유딧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녀를 자기 보호와 지배 아래 두는 행동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유딧은 그 제안을 거절합니다.
유딧이 말했다. 「걸림돌이 생기지 않도록 저는 그것들을 먹지 않겠습니다. 그 대신 제 먹을 것은 제가 가져온 것으로 마련될 것입니다.」유딧기 12:2 · 본디새김
그녀는 홀로페르네스의 음식 가운데 정확히 어떤 것이 문제가 되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방인의 음식을 먹는 일 자체를 모두 금지하는 율법 조항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유딧이 알 수 없는 재료와 조리 방식으로 준비된 음식 가운데는 이스라엘의 음식 규정에 맞지 않는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유딧은 적군의 지휘관에게 접근하기 위해 자신의 외모를 바꾸고, 그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식생활까지 그의 방식에 맞추려 하지는 않습니다.
그녀는 홀로페르네스의 호의를 얻는 것과 그의 생활 방식을 전부 받아들이는 것을 구별합니다.
이 모습은 다니엘 1:8–16을 떠올리게 합니다. 다니엘은 바벨론 왕궁에서 교육받는 삶을 받아들이지만, 왕의 음식과 포도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겠다고 결심합니다.
다니엘과 유딧은 서로 다른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다니엘은 포로로 왕궁에 들어갔고, 유딧은 자기 계획에 따라 적진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둘 다 이방 권력의 공간에 있으면서 자신이 먹는 음식을 구별합니다.
홀로페르네스가 그녀에게 말했다. 「네가 가지고 온 것이 떨어지면, 우리가 어디서 그와 같은 것을 내어다 네게 주겠느냐? 우리 가운데는 네 민족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유딧기 12:3 · 본디새김
이 질문은 유딧을 계속 자기 진영에 머물게 할 생각과 잘 어울립니다. 그녀가 가져온 음식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오래 머문다면 언젠가는 떨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유딧은 그 미래를 다르게 보고 있습니다.
유딧이 그에게 말했다. 「나리, 나리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합니다. 뜻하신 일을 제 손으로 이루실 때까지 나리의 여종은 제가 가지고 온 것을 다 쓰지 않을 것입니다.」유딧기 12:4 · 본디새김
두 사람은 체류 기간을 전혀 다르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홀로페르네스는 유딧이 자신의 진영에서 앞으로도 지낼 사람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딧은 자신의 행동에 끝이 있을 것을 예상합니다.
홀로페르네스는 유딧에게 음식을 공급할 미래를 생각하지만, 유딧은 그에게 음식을 받을 필요가 없어질 미래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뜻하신 일을 제 손으로 이루실 때까지」라는 표현에서 그리스어에는 퀴리오스, 주인·주라는 말이 사용됩니다. 홀로페르네스는 자기 앞에서 말하는 유딧의 ‘주’를 자신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독자는 유딧이 하나님께 자신의 손을 통해 일을 이루어 달라고 기도했던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9:9–10). 따라서 홀로페르네스에게는 자기의 계획이 유딧의 손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약속처럼 들릴 수 있지만, 유딧의 실제 목적과 연결하면 전혀 다른 의미가 나타납니다.
밤마다 골짜기로 나가는 여인
홀로페르네스의 시종들은 유딧을 장막으로 데려갑니다. 유딧은 한밤중까지 잠을 자다가 새벽 경계 시간 무렵에 일어납니다.
홀로페르네스에게 사람을 보내 말했다. 「제 주인께서는 나리의 여종이 기도하러 나가는 것을 허락하라고 명령해 주십시오.」유딧기 12:6 · 본디새김
이 요청은 앞서 그녀가 홀로페르네스에게 설명했던 계획과 연결됩니다. 유딧은 밤마다 골짜기로 나가 하나님께 기도하겠다고 말했습니다(11:17).
그러나 이제 그 말이 실제 행동으로 옮겨집니다.
홀로페르네스는 경호병들에게 유딧의 출입을 막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유딧은 적군에게 붙잡혀 그들의 호위를 받으며 진영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밤마다 진영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군영을 드나드는 자유가 그녀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그가 왜 허락했는지는 앞선 대화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유딧은 하나님께 기도하여 베툴리아 주민들이 죄를 짓는 시점을 알게 되면 알려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따라서 홀로페르네스에게 유딧의 기도는 자신의 군사적 성공에 도움이 되는 일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본문이 보여 주는 기도의 내용은 다릅니다.
그녀는 올라오면 주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에게 그의 백성의 자녀들이 일어서도록 자기 길을 곧게 이끌어 달라고 간청했다.유딧기 12:8 · 본디새김
홀로페르네스는 유딧의 기도가 이스라엘의 멸망을 알려 줄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그러나 유딧의 실제 기도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향합니다. 홀로페르네스가 믿고 있는 그 설명을 이용하여, 자기 백성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할 시간을 얻습니다.
적군의 샘물에서 몸을 씻다
홀로페르네스는 경호병들에게 그녀를 막지 말라고 명령했다. 그녀는 진영에 사흘 동안 머물렀다. 밤마다 베툴리아 골짜기로 나가 진영에 있는 샘물에 몸을 담그곤 했다.유딧기 12:7 · 본디새김
유딧은 씻은 뒤 하나님께 기도하고, 깨끗해져서 장막으로 돌아옵니다. 음식을 구별하는 일과 몸을 정결하게 하는 일,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이 모두 이어집니다.
베툴리아 주민들은 물이 부족하여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아시리아 군대는 물 공급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도시를 압박했습니다(7:7, 17–22).
그런데 유딧은 바로 그 아시리아 진영에 있는 샘물에서 몸을 씻습니다.
본문은 유딧이 사용하는 물이 베툴리아에 공급되던 바로 그 수원이라고 명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물을 차지한 군대와 물이 부족한 도시 사이의 대조는 분명합니다.
아시리아는 물을 통제함으로써 도시를 굴복시키려 합니다. 유딧은 그 군대의 영역에 있는 물을 사용하여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처음에 유딧은 베툴리아 안에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이제 그녀는 적군의 진영과 그 주변을 드나들면서 같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기도의 장소가 달라졌어도 기도가 향하는 대상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사흘 동안 반복된 일
그동안 특별한 사건이 일어났다는 설명은 없습니다. 유딧은 밤마다 나가 몸을 씻고 기도한 뒤 돌아와, 저녁 무렵 자기 음식을 먹습니다.
이 반복은 이야기의 속도를 늦춥니다.
독자는 유딧이 적진에 들어간 뒤 곧바로 행동에 나설 것으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서두르지 않습니다.
이 반복에는 서사적으로 중요한 결과가 있습니다. 유딧이 밤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일이 진영 안에서 허용되는 일상적인 행동이 된다는 것입니다.
유딧은 계획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이 걸어갈 길을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셔야 한다고 기도합니다. 계획은 자신이 무엇을 하려는지 보여 줍니다. 기도는 그 행동의 결과와 길을 자신만이 결정할 수 있다고 여기지 않는 태도를 보여 줍니다.
이렇게 사흘이 지나고, 넷째 날이 찾아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유딧이 먼저 움직이지 않습니다.
홀로페르네스가 움직입니다.
조금 더 깊이
본문은 그녀가 씻고 깨끗해졌다는 사실을 알려 주지만, 어떤 부정이 발생했으며 어떤 율법 조항에 따라 씻었는지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유딧기 12장에는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장면이 없습니다. 본문이 보여 주는 것은 유딧의 기도와 준비, 홀로페르네스의 선택과 욕망, 그리고 그 사이에서 서서히 달라지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서술자는 하나님께서 홀로페르네스의 마음에 욕망을 심으셨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가 많은 술을 마시도록 하나님께서 강제하셨다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성급하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미리 조종하셨다고 설명하면, 홀로페르네스 자신의 욕망과 책임이 흐려집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돌보심을 향한 유딧의 기도를 단지 심리적인 위안으로만 이해하면, 이 이야기가 그 기도에 부여하는 의미를 놓치게 됩니다.
「그냥 보내면 우리 체면에 부끄러운 일이다」
넷째 날에 홀로페르네스는 자기 종들만을 위한 술자리를 마련했고, 업무를 맡은 사람들은 아무도 그 자리에 부르지 않았다.유딧기 12:10 · 본디새김
이것은 군사 회의나 공식적인 통치 행사가 아닙니다. 그의 가까운 시종들과 함께하는 사적인 술자리입니다.
홀로페르네스는 바고아스에게 유딧을 설득하여 그 자리에 데려오라고 명령합니다. 바고아스는 홀로페르네스의 모든 일을 관리하는 내시입니다. 따라서 단순히 심부름하는 하인이 아니라 그의 사적인 생활과 업무에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인물입니다.
「보아라, 이런 여자와 잠자리도 하지 않고 그냥 보내면 우리 체면에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가 이 여자를 꾀어내지 않으면 이 여자는 우리를 비웃을 것이다.」유딧기 12:12 · 본디새김
그에게 유딧은 자신과 동등한 의사를 가진 사람이기보다, 자신의 지위와 매력을 확인하는 대상이 되어 있습니다. 그는 유딧이 자신을 원하지 않을 가능성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녀를 꾀어내지 못한다면 자신이 조롱받을 것이라고 여깁니다.
앞서 그는 베툴리아 주민들이 자신에게 저항했기 때문에 공격을 자초했다고 말했습니다(11:2). 이제는 아름다운 여인과 잠자리를 갖지 못하면 자신의 체면이 손상된다고 생각합니다.
두 경우 모두 다른 사람의 독립적인 선택을 자신의 권위에 대한 문제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나타납니다.
따라서 이 장면을 단순한 연애나 유혹의 이야기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유딧은 적군의 진영 안에 있으며, 홀로페르네스는 그 군대의 지휘관입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압도적인 권력의 불균형이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홀로페르네스가 자신의 체면을 이유로 유딧과 성관계를 맺으려 한다는 것은 성적 강압의 위험을 드러냅니다.
바고아스가 바꾸어 전하는 초대
바고아스는 유딧을 찾아가 홀로페르네스의 초대를 전합니다. 그런데 그가 사용하는 언어는 홀로페르네스의 솔직한 욕망과 다릅니다.
바고아스는 홀로페르네스 앞에서 물러나 그녀에게 들어가 말했다. 「이 아름다운 아가씨께서는 망설이지 말고 제 주인께 와서 그분 앞에서 영예를 얻으십시오. 저희와 함께 즐겁게 포도주를 마시게 될 것입니다. 오늘 느부갓네살의 집에서 섬기는 아시리아 사람들의 딸 가운데 하나처럼 되십시오.」유딧기 12:13 · 본디새김
그는 홀로페르네스의 욕망을 유딧에게 주어질 특권으로 표현합니다. 권력자의 욕망이 명령이나 강요로 나타나지 않고, 상대에게 베푸는 영광처럼 포장됩니다.
하지만 유딧은 처음부터 자신을 히브리 사람들의 딸이라고 밝혀 왔습니다. 지금도 자기 음식을 먹고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따라서 바고아스의 제안은 유딧을 아시리아의 세계 안으로 더 깊이 받아들이려는 초대입니다.
유딧의 대답에 남겨진 두 의미
유딧은 초대를 거절하지 않습니다.
유딧이 그에게 말했다. 「제가 누구라고 제 주인께 거슬러 말하겠습니까? 그분의 눈에 드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서둘러 하겠습니다. 이것이 제가 죽는 날까지 저의 큰 기쁨이 될 것입니다.」유딧기 12:14 · 본디새김
홀로페르네스는 유딧이 자신의 욕망을 받아들였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유딧은 그가 기대하는 행동을 구체적으로 약속하지 않은 채 초대를 받아들입니다. 그녀는 적의 지휘관 가까이 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그가 자신을 환영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의 기대를 받아들이는 것과 그의 욕망에 실제로 응하는 것은 다릅니다.
조금 더 깊이
‘제 주인’은 문맥상 홀로페르네스를 가리키는 말로 들립니다. 바고아스가 바로 그를 만나러 오라고 권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유딧이 하나님을 자신의 참된 주로 섬기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아는 독자에게는 다른 의미도 가능합니다. 그렇다고 원문이 ‘제 주인’을 오직 하나님만 가리키도록 명시했다고 주장할 수도 없습니다. 이 문장의 힘은 오히려 홀로페르네스에게 자연스럽게 들리는 의미와 독자가 알고 있는 유딧의 의도 사이의 간격에 있습니다. 「죽는 날까지 저의 큰 기쁨」이라는 말에서 홀로페르네스는 자신과 함께하는 일이 그녀에게 평생의 영광이 될 것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딧이 자신의 백성을 위한 일을 이루게 된다면, 바로 그것이 그녀에게 오래도록 기억할 기쁨이 될 것입니다.
잔치의 자리에 누가 무엇을 준비하는가
유딧은 다시 한번 몸을 꾸밉니다.
유딧은 일어나 옷과 여자가 쓰는 온갖 장신구로 몸을 꾸몄다. 그녀의 여종은 앞서 가서 홀로페르네스 맞은편 땅바닥에 그녀를 위해 양가죽들을 깔았다. 그 양가죽들은 그녀가 날마다 그 위에 기대어 누워 먹도록 바고아스에게서 받은 것이었다.유딧기 12:15 · 본디새김
이 단장은 적진에 처음 들어왔을 때의 준비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처음에는 낯선 병사들의 의심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이제는 홀로페르네스의 사적인 초대에 응하기 위해 단장합니다.
이미 홀로페르네스는 그녀를 가까이 두고 싶어 합니다. 이제 유딧은 그 욕망이 실제로 어떤 행동을 불러올지 마주해야 합니다.
고대 지중해 세계의 연회에서는 자리에 기대어 음식을 먹는 방식이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본문도 유딧이 홀로페르네스 맞은편에 기대어 눕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이는 유딧이 단순히 서서 음식을 받는 손님이 아니라, 잔치에 참여하는 사람으로 자리를 잡았음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그 자리를 준비한 사람은 유딧의 몸종입니다.
이야기에서 몸종은 말을 거의 하지 않지만, 계속해서 유딧의 행동을 돕습니다. 음식을 준비하고, 필요한 물건을 지고 다니고, 잔치 자리까지 마련합니다. 유딧의 계획이 개인의 용기와 지혜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에서 돕는 사람의 구체적인 행동을 통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서로 속이려는 두 사람
유딧이 들어와 자리를 잡고 기대어 누웠다. 홀로페르네스는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겼고, 그의 속은 뒤흔들렸다. 그는 그녀와 동침하기를 몹시 갈망했고, 그녀를 본 날부터 그녀를 속일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유딧기 12:16 · 본디새김
이제 독자는 두 사람이 모두 속임을 계획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됩니다.
유딧은 적군을 무너뜨리기 위해 홀로페르네스를 속이려 합니다.
홀로페르네스는 유딧과 동침하기 위해 그녀를 속일 기회를 노립니다.
홀로페르네스는 자신이 지닌 권력을 배경으로 여인을 성적으로 차지하려 합니다. 유딧은 자신과 공동체를 위협하는 권력자에게 맞서기 위해 위험한 계획을 실행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두 사람이 모두 속임을 계획한다고 해서 같은 종류의 행동을 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유딧의 속임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는 여전히 질문으로 남지만, 홀로페르네스의 의도는 서술자가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그는 유딧의 동의를 존중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그녀를 속일 기회를 찾는 사람입니다.
두 사람은 같은 잔치 자리에 누워 있지만, 서로 다른 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을 더 가깝게 만드는 것이 포도주입니다.
조금 더 깊이
에스더도 자기 민족을 위협하는 권력자에게 접근하기 위해 잔치를 마련합니다(에스더 5:4–8; 7:1–6). 에스더는 자신이 마련한 잔치에 왕과 하만을 초대합니다. 그리고 적절한 순간에 자신과 자기 민족에게 닥친 위험을 드러냅니다. 반면 유딧은 홀로페르네스가 마련한 잔치에 초대받습니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실제 목적을 밝히지 않습니다. 에스더는 왕의 판단을 바꾸기 위해 진실을 드러내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유딧은 적군의 지휘관이 자신의 목적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하면서 행동할 기회를 찾습니다. 잔치라는 공간이 권력자의 뜻을 일방적으로 집행하는 장소로만 남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공간에서 권력자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준비됩니다.
「오늘 제 삶이 더 커졌습니다」 — 두 사람이 맞이한 서로 다른 날
홀로페르네스는 유딧에게 말합니다.
홀로페르네스가 그녀에게 말했다. 「자, 마시고 우리와 함께 즐거워해라.」유딧기 12:17 · 본디새김
이 짧은 말에는 홀로페르네스가 원하는 분위기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자 유딧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유딧이 말했다. 「마시겠습니다, 나리. 오늘 제 안에서 제 삶이, 제가 태어난 뒤의 그 어느 날보다도 더 커졌기 때문입니다.」유딧기 12:18 · 본디새김
홀로페르네스에게 오늘은 욕망을 이룰 수 있는 날입니다.
유딧에게 오늘은 자기 백성을 위해 준비한 일이 중대한 국면에 들어선 날입니다.
유딧은 무엇을 마셨는가
그녀는 자기 여종이 준비한 것을 받아 그의 맞은편에서 먹고 마셨다.유딧기 12:19 · 본디새김
유딧은 홀로페르네스가 제공한 음식을 거절하고 자신이 가져온 것을 먹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잔치 자리에서도 몸종이 준비한 것을 먹습니다.
그녀는 잔치에 참여하지만 자신의 음식에 관한 구별을 유지합니다.
그녀가 포도주를 전혀 마시지 않았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습니다. 다만 어떤 음식을 먹고 무엇을 마셨는지에 관해서는 몸종이 준비한 것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
반면 홀로페르네스의 음주에 대해서는 훨씬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홀로페르네스는 그녀 때문에 기뻐하며 포도주를 아주 많이 마셨다. 태어난 이래 하루에 그만큼 마신 적은 한 번도 없었다.유딧기 12:20 · 본디새김
유딧은 자기 삶이 태어난 이래 어느 날보다 커졌다고 말했습니다. 이 두 표현은 서로를 비추는 구조를 이룹니다. 한 사람에게는 삶의 크기가 강조되고, 다른 사람에게는 포도주의 양이 강조됩니다.
홀로페르네스는 유딧과 가까워졌다는 기쁨 때문에 더욱 많은 포도주를 마십니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독자는 그가 유딧의 실제 목적을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바로 이 차이 때문에 홀로페르네스의 기쁨은 불안하게 들립니다.
가장 강한 사람의 판단력이 흔들리기 시작하다
홀로페르네스는 거대한 군대를 통제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명령하고, 이동을 제한하고, 도시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자기 욕망은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가 유딧을 처음 본 뒤로 계속 그녀를 속일 기회를 노렸다는 사실과, 그날 잔치에서 지나치게 많은 포도주를 마셨다는 사실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녀를 자기 뜻대로 차지할 수 있다는 기대가 그의 행동을 이끌고 있습니다.
군대를 지휘하는 능력과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능력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홀로페르네스의 가장 큰 약점은 힘이 부족하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자신이 가진 힘으로 원하는 것을 모두 얻을 수 있다고 믿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유딧은 바로 그 믿음이 그를 어디로 이끄는지 지켜보고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홀로페르네스는 자신과 함께하는 잔치가 유딧에게 특별한 영광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아시리아 군대의 최고 지휘관이며, 유딧은 그의 초대를 받은 여인입니다. 그러나 독자는 유딧이 무엇을 위해 이곳에 왔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자기 백성을 구하려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따라서 ‘오늘 제 삶이 더 커졌다’는 말은 자신의 사명이 결정적인 순간을 맞이했다는 의미로도 읽힙니다. 물론 본문은 유딧이 이 말을 하면서 구체적으로 어떤 장면을 생각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홀로페르네스의 모습은 잠언 16:32의 지혜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곳에서는 노하기를 더디 하는 사람이 용사보다 낫고,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이 성을 빼앗는 사람보다 낫다고 말합니다. 유딧기는 이 말씀을 직접 인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홀로페르네스의 모습은 그 지혜를 이야기로 보여 주는 듯합니다.
태어난 이래 가장 많은 포도주를 마신 날
그녀는 홀로페르네스의 식탁에 접근하지만, 그 식탁에 자신을 전적으로 내맡기지는 않습니다. 그 점에서 이 장의 신앙은 거리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로 나타납니다. 어디에 머무르는가보다 누구를 향해 기도하고, 어떤 목적을 위해 행동하는가가 중요하게 드러납니다.
12장은 유딧의 성공을 선언하며 끝나지 않습니다.
적군이 패배하지도 않았고, 베툴리아의 포위가 풀리지도 않았습니다. 유딧이 자신의 계획을 완성했다는 말도 없습니다. 다만 홀로페르네스가 평생 어느 날보다 많은 포도주를 마셨다는 사실이 마지막 문장에 남습니다.
독자는 이미 홀로페르네스가 유딧을 속일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술자리는 즐거운 환대의 공간이 아니라 유딧에게 위험한 공간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유딧에게도 이 자리는 오랫동안 준비해 온 계획이 결정적인 국면에 들어서는 곳입니다.
한 사람은 자신이 준비한 음식을 먹고 있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자신이 가진 포도주를 평생 어느 날보다 많이 마시고 있습니다.
은그릇과 화려한 음식으로 시작된 이야기가 이제 포도주의 양으로 끝납니다.
그가 지휘하는 군대는 아직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그의 장막도 그대로 서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장막 안에서, 모든 사람을 자기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 믿는 한 사람이 스스로의 욕망에 휘둘리고 있습니다.
유딧은 그의 맞은편에 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그가 마지막 잔을 내려놓는 순간조차 보여 주지 않은 채, 그날 마신 포도주가 평생 어느 날보다 많았다는 말에서 멈춥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