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딧기 풀어 읽기 · 13장
이 장의 자리 · 10–14장 · 적진으로 들어간 유딧
장군의 칼이 주인의 목을 향하다
아시리아 군대의 총사령관 홀로페르네스가 자기 침대에 엎어져 있습니다. 그는 술에 취했고, 종들은 모두 물러갔습니다. 천막 안에는 유딧만 남았습니다.
그러나 이 장의 중심은 단지 약한 여인이 강한 장군을 죽였다는 반전에 있지 않습니다.
이야기는 홀로페르네스의 죽음에 전체 20절 가운데 앞부분만을 사용합니다. 나머지는 유딧이 성으로 돌아와 사람들에게 자신의 행동을 알리고, 공동체가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녀를 축복하는 장면입니다.
왜 이야기의 무게중심이 이렇게 이동할까요?
그래서 이 장은 두 장소를 오갑니다. 아무도 남지 않은 어두운 천막과, 사람들이 불을 밝히고 모여드는 성문입니다.
천막 안에서 한 사람이 죽습니다. 성문 앞에서는 한 공동체가 다시 목소리를 얻습니다.
모두가 떠난 장막 — 권력자가 혼자 남는 순간
홀로페르네스는 자신이 바라던 상황을 맞이한 것처럼 보입니다.
술자리는 끝났고, 종들은 모두 떠났습니다. 바고아스는 천막을 닫아 다른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그가 원한 것은 유딧과 단둘이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앞 장에서 그는 유딧과 잠자리를 갖지 못하면 체면이 손상될 것이라고 말했고, 그녀를 속일 기회를 노리고 있었습니다(12:12, 16).
그런데 이야기는 그가 기대한 것과 정반대의 상황을 보여 줍니다.
천막에는 유딧만 남았습니다. 홀로페르네스는 술에 몹시 취해 자기 침대에 엎어져 있었습니다.유딧기 13:2 · 두루새김
그는 유딧을 자신의 권력 아래 두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자신의 몸조차 제대로 다스리지 못합니다. 이야기는 이 역전을 과장하지 않습니다. 단지 두 사람의 상태를 나란히 놓습니다.
유딧은 깨어 있습니다. 홀로페르네스는 술에 취해 누워 있습니다.
유딧은 자신의 계획을 알고 있습니다. 홀로페르네스는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려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는 군대의 지휘관이지만, 이 순간에는 아무에게도 명령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출구를 확보한 유딧
유딧은 곧바로 칼을 집어 들지 않습니다.
유딧은 기도하러 나가겠다며 몸종에게 침실 밖에 서서 늘 하던 대로 자신이 나오는 것을 지켜보라고 말했습니다. 바고아스에게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유딧기 13:3 · 두루새김
그녀는 이미 사흘 동안 밤마다 진영 밖으로 나가 기도했습니다(12:7–8). 홀로페르네스는 경호병들에게 그녀의 출입을 막지 말라고 명령해 두었습니다. 따라서 유딧이 그날 밤 천막을 나가더라도, 경비병들에게는 특별히 이상한 행동으로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녀의 실제 기도가 진실했다는 사실과, 그 기도 습관을 자신의 계획에 활용했다는 사실은 함께 성립합니다. 그녀는 신앙을 버리고 속임수를 택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자신의 경건한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일지도 계산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빠져나갈 길을 마련한 뒤에야 홀로페르네스의 침대 곁으로 다가갑니다.
침상 곁에서 드린 짧은 기도
사람들은 모두 물러갔고, 지위가 낮든 높든 시중드는 사람은 아무도 침실에 남지 않았습니다. 유딧은 홀로페르네스의 침대 곁에 서서 마음속으로 기도했습니다. 「주님, 모든 능력의 하나님, 예루살렘이 높아지도록 지금 제가 하는 일을 살펴보아 주십시오.」유딧기 13:4 · 두루새김
「지위가 낮든 높든」 시중드는 사람이 아무도 남지 않았다는 표현은 완전히 비어 있는 상태를 강조합니다. 9장에서 그녀는 조상들의 역사와 하나님의 다스리심, 아시리아의 교만을 길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모든 설명이 사라집니다.
「지금 제가 하는 일」에 기도가 집중됩니다.
원문에서 유딧은 하나님께서 자기 손이 하는 일을 보아 달라고 요청합니다. 유딧은 자기 행동이 하나님께 보이지 않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금 자신이 하려는 일을 하나님께서 보시기를 구합니다.
그리고 그 행동의 목적을 「예루살렘이 높아지도록」이라는 말로 설명합니다. 현재 유딧이 있는 곳은 아시리아 진영이고, 구해야 할 주민들은 베툴리아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기도는 예루살렘을 향합니다.
그녀에게 홀로페르네스와의 싸움은 작은 산지 도시의 생존만을 위한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머무는 성소와 이스라엘 공동체의 운명에 관련된 일입니다.
「지금이야말로 당신의 소유인 백성을 도우실 때입니다. 저희에게 맞서 일어난 원수들을 제 계획으로 꺾어 주실 때입니다.」유딧기 13:5 · 두루새김
「당신의 소유인 백성」은 하나님께 속한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속한 백성이라는 신앙은 신명기 9:26, 29와 시편 28:9 등에서도 나타납니다.
그녀는 자기 계획이 반드시 성공한다고 선언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계획이 원수들을 무너뜨리는 일이 되게 해 달라고 구합니다. 그 계획을 세운 사람은 유딧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결과를 이루는 힘을 하나님께 구합니다.
물론 기도가 기록되었다는 사실만으로 그녀가 선택한 모든 수단을 하나님께서 직접 명령하셨다고 결론 내려서는 안 됩니다. 본문에는 하나님께서 유딧에게 장군을 죽이라고 명령하시는 장면이 없습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이야기는 기도에서 행동으로 급격하게 전환됩니다.
장군의 머리맡에 걸린 칼
유딧은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맡에 있는 침대 기둥으로 다가가, 거기에 걸린 그의 짧은 칼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침대 가까이 가서 그의 머리카락을 움켜잡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오늘 제게 힘을 주십시오.」유딧기 13:6–7 · 두루새김
홀로페르네스는 자신이 소유한 무기를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군대는 창과 활과 방패를 가지고 있었고, 그는 수많은 병사를 지휘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를 죽일 무기는 자기 곁에 있습니다.
이 장면에서 주도권은 분명하게 뒤집힙니다. 홀로페르네스는 여전히 군대의 최고 지휘관이라는 지위를 가지고 있지만, 그 지위는 침대 곁에 서 있는 유딧의 행동을 막지 못합니다.
앞선 기도에서 유딧은 자신이 하는 일을 하나님께서 살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이제는 「제게 힘을 주십시오」라고 구합니다. 유딧은 압도적인 힘을 가진 사람으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힘이 필요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구합니다.
유딧은 온 힘을 다해 칼을 두 번 휘둘러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었습니다.유딧기 13:8 · 두루새김
원문에도 「두 번」(δίς)이라는 횟수가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한 번의 가벼운 동작으로 모든 일이 이루어진 것처럼 묘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힘을 구했다는 고백과 유딧이 실제로 자기 손으로 행동했다는 사실이 나란히 놓입니다.
다만 이 장면의 폭력을 아름답게 꾸며서는 안 됩니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벤 일은 분명한 살해 행위입니다. 본문은 그것을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려 한 적군의 우두머리를 제거하는 구원 이야기 안에 놓지만, 이 장면만으로 신앙적 목적을 위해 개인이 폭력을 행사해도 된다는 일반 원칙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침상에서 떨어진 몸과 떼어 낸 모기장
유딧은 홀로페르네스의 시신을 침대에서 굴려 떨어뜨리고 모기장을 떼어 냅니다.
이 모기장은 단순한 침구가 아니었습니다. 10:21에서 자주색 천에 금과 에메랄드와 값비싼 돌을 짜 넣은 화려한 물건으로 소개되었습니다. 홀로페르네스의 부와 지위를 보여 주던 장식이었습니다.
머리는 그의 몸에서 떨어졌고, 모기장은 침대를 꾸미던 기둥에서 떨어졌습니다.
한때 그의 권세를 드러내던 물건이 이제 그의 몰락을 증명할 물건으로 바뀝니다.
조금 더 깊이
사무엘상 17장에서 다윗은 골리앗을 무너뜨린 뒤 그의 칼로 머리를 자릅니다(17:50–51). 그보다 앞서 다윗은 전쟁의 승패가 단지 칼과 창에 달려 있지 않다고 말합니다(17:45–47). 유딧 역시 적군의 장군을 그의 칼로 죽입니다. 인간이 가진 군사적 힘의 크기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실 수 있는 가능성을 결정하지 않습니다.
음식 자루에 담긴 장군의 머리
그의 시신을 침대에서 굴려 떨어뜨리고, 기둥에 걸린 모기장을 떼어 냈습니다. 잠시 뒤 밖으로 나가 몸종에게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건넸습니다. 몸종은 그 머리를 자기 음식 자루에 넣었습니다. 두 사람은 늘 하던 대로 함께 밖으로 나갔습니다. 진영을 지나 골짜기를 돌아서 베툴리아 산으로 올라가 성문에 이르렀습니다.유딧기 13:9–10 · 두루새김
그 음식 자루는 유딧이 적진에 들어올 때부터 몸종에게 들려 보냈던 물건입니다(10:5). 처음 그 자루에는 볶은 보릿가루와 무화과 뭉치, 정결한 빵이 들어 있었습니다. 유딧은 아시리아의 음식을 먹지 않기 위해 자기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같은 자루가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감추는 데 사용됩니다.
유딧이 준비한 평범한 생활용품이 적진에서 탈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물론 본문은 유딧이 처음부터 머리를 담기 위해 그 자루를 준비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몸종이 유딧과 함께 적진에 들어가 위험을 감수했고, 이제 탈출에도 직접 참여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녀는 단지 유딧의 물건을 운반하는 배경 인물이 아닙니다. 유딧의 행동이 실제로 완성되기 위해 필요한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가장 위험한 길이 가장 익숙한 길이 되다
두 여인은 특별한 탈출 작전을 벌이는 것처럼 움직이지 않습니다. 이전 사흘 동안 반복했던 행동을 그대로 이어 갑니다. 적군의 진영에서는 유딧이 밤에 기도하러 나가는 일이 이미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따라서 홀로페르네스의 머리가 담긴 자루를 가지고 나가는 순간에도 그들의 이동은 평소의 기도 시간과 연결됩니다. 유딧은 빠져나갈 때까지 자신이 만든 일상적인 행동의 틀을 유지합니다.
처음에는 베툴리아에서 산을 내려가 적군의 진영으로 들어왔습니다. 이제는 적군의 진영에서 골짜기를 돌아 산을 올라 베툴리아로 돌아갑니다.
같은 길이지만 상황은 전혀 다릅니다.
내려갈 때는 홀로페르네스가 살아 있었습니다. 올라갈 때는 그의 머리가 음식 자루 안에 있습니다. 적군은 아직 자신들의 지휘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두 여인은 그 사실을 가지고 성문 앞에 도착합니다.
닫혔던 성문이 다시 열린다
유딧은 베툴리아 성문에 도착하자 멀리서 소리칩니다.
유딧이 멀리서 성문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외쳤습니다. 「열어 주십시오! 어서 성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나님,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오늘 하신 것처럼 이스라엘 가운데서 다시 힘을 드러내시고, 우리 원수들을 이기는 능력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유딧기 13:11 · 두루새김
10:9에서 유딧은 지도자들에게 성문을 열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처음에는 자신이 하기로 한 일을 이루러 나가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그 일을 통해 힘을 드러내셨다고 선포합니다.
처음 성문이 열릴 때에는 도시 사람들이 그녀가 돌아올 수 있을지 알지 못했습니다. 이제 성문 밖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도시의 남자들은 유딧의 목소리를 듣자 서둘러 성문으로 내려갔고, 도시의 장로들을 불러 모았습니다.유딧기 13:12 · 두루새김
적진에서 유딧에게서 가장 먼저 관심을 끈 것은 아름다운 얼굴이었습니다. 아시리아 병사들은 그녀의 외모에 놀랐고, 홀로페르네스도 그녀의 얼굴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그러나 베툴리아 사람들은 유딧의 목소리를 듣고 반응합니다.
아시리아 사람들에게 유딧은 눈을 사로잡는 낯선 여인이었습니다. 베툴리아 사람들에게 그녀는 이미 알고 있는 공동체의 일원입니다.
비었던 장막과 가득 찬 성문
13절은 앞부분의 장면을 뒤집습니다.
유딧이 돌아온 것은 뜻밖의 일이었습니다.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모두 달려와 성문을 열고 두 사람을 맞아들였습니다. 사람들은 불을 피워 주위를 밝히고 두 사람을 둘러쌌습니다.유딧기 13:13 · 두루새김
4절에서는 「지위가 낮든 높든」 홀로페르네스의 침실에서 모두 떠났습니다. 이제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베툴리아의 성문으로 모두 달려옵니다.
홀로페르네스의 천막은 비어 있었습니다. 베툴리아의 성문은 사람들로 가득 찹니다.
거기에는 술에 취해 쓰러진 권력자가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목소리를 높여 돌아온 여인이 있습니다.
천막에서는 문을 닫고 사람들을 내보냈습니다. 성문에서는 문을 열고 사람들을 맞아들입니다.
유딧과 몸종은 밤에 돌아왔습니다. 그들의 손에는 아직 사람들이 보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공동체는 불을 밝히고 두 여인을 둘러쌉니다.
이제 어둠 속에서 준비되고 이루어진 일이 사람들 앞에 드러날 차례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 머리를 보여 주기 전에 한 말
유딧은 모인 사람들에게 먼저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보여 주지 않습니다.
유딧이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찬양하십시오! 이스라엘 집안에서 자비를 거두지 않으시고, 오늘 밤 저를 통해 우리 원수들을 꺾으신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유딧기 13:14 · 두루새김
베툴리아 주민들은 갈증과 포위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도우실지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지도자들은 닷새 안에 도움이 오지 않으면 항복하겠다고 했습니다. 유딧은 그 위기의 한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셨다고 선언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자비」는 단순히 하나님께서 그들을 가엾게 여기신다는 감정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본문에서 그 자비는 실제로 원수의 힘이 꺾이는 사건과 연결됩니다.
행동한 사람은 유딧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사건을 하나님의 행동으로 고백합니다. 그녀는 분명히 「저를 통해」라고 말합니다. 원문에서는 자신의 손을 통해 이루어진 일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머리와 모기장, 두 가지 증거
이어서 유딧은 자루에서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꺼냅니다.
유딧은 자루에서 머리를 꺼내 보여 주며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아시리아 군대의 총사령관 홀로페르네스의 머리입니다. 이것은 그가 술에 취해 누워 있던 모기장입니다. 주님께서 한 여자의 손으로 그를 치셨습니다.」유딧기 13:15 · 두루새김
머리는 그의 죽음을 직접 증명합니다. 모기장은 그가 누렸던 권력과 사치의 공간을 떠올리게 합니다. 특히 유딧은 그 모기장을 소개하면서 홀로페르네스가 「술에 취해 누워 있던」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의 부와 권세를 드러내던 침대의 장식이 이제 그가 무력하게 쓰러졌던 상태를 기억하게 하는 물건이 됩니다.
또 유딧은 자신의 손을 「한 여자의 손」이라고 부릅니다. 유딧은 하나님께 여자의 손으로 적의 높은 기세를 부수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9:10). 이제 그 요청과 맞닿은 표현으로 자신의 행동을 설명합니다.
아시리아의 총사령관은 군사적으로 자신보다 훨씬 약한 위치에 있는 여인의 손에 죽었습니다. 그의 힘이 무너진 것은 더 큰 군대가 나타났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가 자신보다 약하다고 여겼을 법한 사람의 손을 통해서입니다.
속인 얼굴, 지켜진 몸
16절에서 유딧은 한 가지 사실을 더 밝힙니다.
「제가 다녀온 길에서 저를 지켜 주신 주님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합니다. 제 얼굴이 그를 속여 죽음에 이르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저와 잠자리를 같이하여 저를 더럽히고 수치스럽게 하는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유딧기 13:16 · 두루새김
그녀는 처음 적진으로 나갈 때 남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몸을 꾸몄습니다(10:4). 그리고 홀로페르네스는 그녀의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그 얼굴은 홀로페르네스의 욕망을 자극했지만, 동시에 그의 판단을 흐리게 만들었습니다.
그가 유딧에게 속을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그녀의 얼굴이 아름다웠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는 유딧을 자기 욕망을 만족시킬 대상으로 바라보았고, 그 기대 속에서 그녀의 실제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유딧은 홀로페르네스가 자신에게 성적인 해를 가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켜 주신 일과 연결합니다. 유딧은 단지 목숨을 잃을 위험만 겪은 것이 아닙니다. 홀로페르네스는 그녀와 잠자리를 갖기 위해 속일 기회를 노리고 있었습니다(12:16).
그렇다고 이 구절을 성폭력 피해자가 더럽혀지거나 하나님께 보호받지 못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일반화해서는 안 됩니다. 이 표현은 고대 이야기 안에서 유딧이 겪지 않은 특정한 사건을 설명하는 것이지, 폭력 피해자의 가치나 책임에 관한 보편적 판정이 아닙니다.
그녀는 자신이 거쳐 온 길을 하나님께서 지켜 주셨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이제 공동체는 그 고백에 응답합니다.
「모든 여자보다 더 복을 받은 분」 — 유딧을 축복하는 사람들
온 백성은 몹시 놀랐습니다. 그들은 몸을 굽혀 하나님께 절하고 한마음으로 말했습니다. 「저희 하나님, 오늘 당신 백성의 원수들을 보잘것없게 만드신 당신은 찬양받으실 분입니다.」유딧기 13:17 · 두루새김
그들은 홀로페르네스가 얼마나 강한 사람이었는지 알고 있습니다. 바로 그 강한 사람이 이제 목숨을 잃었습니다. 따라서 「보잘것없게 만드신」이라는 말은 군사력의 크기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힘이 마지막까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권세가 아니라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웃시야가 유딧에게 말했습니다. 「딸이여, 당신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이 땅의 모든 여자보다 더 복을 받은 분입니다. 하늘과 땅을 지으신 주 하나님께서도 찬양받으실 분입니다. 그분께서 당신을 이끄셔서 우리 원수들의 지휘관의 머리를 치게 하셨습니다.」유딧기 13:18 · 두루새김
유딧에게 복이 있고, 그녀를 이끄신 하나님께도 찬양이 있다는 것입니다. 유딧의 행동이 존중받는다고 해서 하나님에 대한 감사가 줄어들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해서 유딧이 감수한 위험과 용기가 사라지지도 않습니다.
「당신이 품은 희망은 하나님의 능력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마음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유딧기 13:19 · 두루새김
그녀는 홀로페르네스를 죽이는 것 자체만을 목표로 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리라는 희망을 품고 행동했습니다. 웃시야는 바로 그 희망이 공동체의 기억에 남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유딧의 기억과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기억이 연결됩니다.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은 사람
마지막으로 웃시야는 유딧이 감수한 위험을 분명하게 인정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로 당신을 영원히 높이시고, 좋은 것들로 당신을 돌보시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우리 민족이 겪는 수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고, 우리 하나님 앞에서 곧은 길로 나아가 무너져 가는 우리를 위해 나서셨기 때문입니다.」 온 백성이 말했습니다.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유딧기 13:20 · 두루새김
그녀는 자기 민족이 겪는 위기를 자신의 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생명을 위험에 노출시켰습니다.
「목숨을 아끼지 않고」라는 말은 그녀가 죽음을 원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살기 위해 필요한 주의를 포기했다는 뜻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녀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 가능한 준비를 했습니다. 기도할 시간을 확보했고, 적의 신뢰를 얻었으며, 진영을 빠져나갈 길도 마련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준비를 했다고 해서 위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녀는 실패하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일을 감수했습니다. 웃시야는 그것을 자기 공동체가 겪는 수치에 맞서 나선 행동으로 이해합니다.
야엘에게 주어진 축복
먼저 사사기 5:24의 야엘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드보라의 노래는 야엘을 여자들 가운데 복 받은 사람이라고 칭찬합니다. 그 이야기에서 가나안 군대의 지휘관 시스라는 패배하여 도망치다가 야엘의 천막으로 들어옵니다. 야엘은 그를 맞아들이고, 그가 잠든 사이 천막 말뚝으로 그의 관자놀이를 쳐서 죽입니다(사사기 4:17–22).
두 여인 모두 적군의 지휘관을 자기 군대의 전투 방식과 다른 방법으로 무너뜨립니다. 두 사건 모두 천막이라는 개인적인 공간에서 일어나며, 적장은 여인이 자신에게 위협이 되리라고 예상하지 못합니다. 또 두 이야기 모두 여인의 행동을 공동체의 구원과 연결하고, 그 여인을 특별하게 축복합니다.
그러나 차이도 있습니다.
야엘의 천막에는 시스라가 도망쳐 들어왔습니다. 반면 유딧은 적군의 천막으로 직접 찾아 들어갔습니다. 야엘의 행동은 전쟁에서 패배한 지휘관을 제거하는 사건이고, 유딧의 행동은 아직 포위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적군의 지휘관을 제거하는 사건입니다.
이러한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사사기 4:9에서 드보라가 주님께서 적장을 여인의 손에 넘겨주실 것이라고 말하는 장면과 유딧의 「한 여자의 손」이라는 표현 사이에는 분명한 주제적 연결이 있습니다. 유딧을 축복하는 웃시야의 말은 이러한 구원의 기억을 다시 불러옵니다.
멜기세덱의 축복과 닮은 말
그런데 웃시야의 축복은 야엘의 노래만 떠올리게 하지 않습니다.
창세기 14:19–20에서 멜기세덱은 전쟁에서 돌아온 아브람을 축복합니다. 그는 아브람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하늘과 땅을 지으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께서 원수들을 아브람의 손에 넘겨주셨다고 말합니다.
웃시야의 축복에도 같은 요소들이 나타납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하늘과 땅을 지으신 하나님, 원수를 무너뜨리게 하신 하나님의 인도입니다. 특히 칠십인역 창세기 14:19의 「하늘과 땅을 지으신」이라는 표현과 유딧기 13:18의 표현은 매우 가깝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원수를 이길 힘을 주셨다는 고백이 이제 한 과부에게도 적용됩니다. 그런데 아브람은 무장한 사람들을 이끌고 싸웠습니다(창세기 14:14–16). 유딧은 자기 몸종과 함께 적진에 들어갔습니다.
두 사람이 가진 힘은 크게 다릅니다. 그러나 웃시야는 둘 모두의 구원을 하늘과 땅의 창조주와 연결하는 언어를 사용합니다.
성문 앞에 모인 사람들
침대 곁에서 시작된 조용한 기도가 성문 앞에서 공동체의 찬양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유딧에게 홀로페르네스의 죽음은 개인적인 승리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버리지 않으셨음을 다시 알게 되는 사건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약한 사람을 통해 일하실 수 있다는 믿음은, 약한 사람이 언제나 승리한다는 보장과 같지 않습니다. 또한 자신의 행동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하는 사람이 언제나 옳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아직 아시리아 군대는 성 밖에 있습니다. 도시의 위기가 끝났다고 선언하기에는 이릅니다.
그러나 성문 앞에 모인 사람들은 더 이상 항복의 날짜만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유딧을 축복하며, 한목소리로 응답합니다. 어둠 속에서 불을 피워 주위를 밝힌 그들의 한가운데에는 유딧과 몸종이 서 있습니다.
한때 적진으로 사라졌던 두 여인이 이제 돌아와 있습니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 절망에 잠겨 있던 사람들의 입에서 같은 말이 두 번 울려 나옵니다.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