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풀어 읽기 · 11장
이 장의 자리 · 10–12장 · 광야 길의 시작
고기를 얻고도 잃어버린 것
민수기 11장에는 서로 다른 두 가지 간절한 요청이 나옵니다.
백성은 고기를 달라고 울부짖습니다. 모세는 더 이상 백성을 감당할 수 없다며 자신을 죽여 달라고 호소합니다.
모세에게는 백성의 짐을 함께 질 장로 일흔 명을 세워 주십니다. 백성에게는 원하는 고기를 주십니다. 그런데 하나의 응답은 공동체를 살리는 방향으로 이어지고, 다른 응답은 참혹한 재앙으로 끝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배고픈 사람들이 고기를 먹고 싶어 했다는 것 자체가 죄였을까요? 그리고 모세 역시 자신의 처지를 원망했는데, 왜 그의 호소에는 다른 응답이 주어졌을까요?
민수기 10장에서 이스라엘은 시나이산을 떠나 첫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앞서 가시는 행렬은 질서 있게 움직였습니다. 그런데 11장에 들어서자, 그 아름답게 조직된 공동체 안에서 전혀 다른 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은 나팔 대신 불평과 울음소리입니다.
무엇을 불평했는지도 모르는 첫 번째 사건
백성이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그 불평을 듣고 나쁘게 여겨 분노하셨습니다. 여호와야훼의 불이 그들 가운데 타올라 진영 가장자리를 태웠습니다.민수기 11:1 · 두루새김
무엇이 불만이었을까요? 광야의 더위 때문이었을까요? 긴 이동으로 지쳤기 때문이었을까요? 음식이나 물이 부족했을까요?
본문은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1절은 백성이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보다 그들의 불평이 여호와야훼께 어떻게 들렸는지에 초점을 맞춥니다. 「여호와야훼께서 그 불평을 듣고 나쁘게 여겨」라는 자리에서 히브리어는 백성의 불평이 여호와야훼의 귀에 나쁘게 들렸다는 식으로 말합니다. 원문에서는 이어서 여호와야훼가 들으셨다는 말이 다시 나옵니다.
불평의 구체적인 내용은 생략되었지만, 그 소리를 들으시는 분이 누구인지는 강조됩니다.
불은 진영 가장자리를 태웁니다. 이것이 단순히 천막과 물건들을 태웠다는 뜻인지, 사람들의 피해까지 포함하는지는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백성은 모세에게 부르짖고, 모세는 여호와야훼께 기도합니다. 그러자 불이 가라앉습니다.
그는 불평하는 백성에게 맞서 자신의 권위를 지키려 하지 않습니다. 백성이 도움을 요청하자 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이후 그곳은 「타브에라」라고 불립니다. 히브리어 타브에라(תַּבְעֵרָה)는 불타다라는 의미의 동사와 연결되는 지명입니다.
하나의 장소가 그곳에서 일어난 사건을 기억하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첫 사건에서는 백성이 무엇을 불평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두 번째 사건에서는 그들이 무엇을 원했는지 너무나 생생하게 들립니다.
이집트의 생선은 기억하면서 노예 생활은 잊다
백성 가운데 모여든 무리가 먹을 것을 몹시 탐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말했습니다.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먹여 주겠어?」민수기 11:4 · 두루새김
무언가를 먹고 싶다는 단순한 바람을 넘어, 강렬한 욕구가 그들을 사로잡았다는 인상을 줍니다. 본문은 처음에 「백성 가운데 모여든 무리」가 먹을 것을 탐냈다고 말합니다. 이 무리를 특정 민족이나 출신 집단으로 확정할 근거는 이 구절에 없습니다.
갈망은 무리의 일부에서 시작되지만 곧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의 소리가 됩니다.
그런데 그들의 불평은 단순히 고기를 먹고 싶다는 말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집트에서 공짜로 먹던 생선이 생각나. 오이와 수박과 부추와 양파와 마늘도 생각나.」민수기 11:5 · 두루새김
그들이 그리워하는 이집트는 출애굽기 1–2장에서 이스라엘이 고된 노동에 시달리며 부르짖던 바로 그 땅입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억압을 받았고, 남자아이들의 생명까지 위협받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들을 이집트에서 구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이 떠올리는 이집트에는 생선과 채소만 남아 있습니다.
「공짜로 먹던」 그 음식들을 실제로 대가 없이 얻었는지는 본문만으로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은 지금 이집트에서의 삶을 먹거리가 풍족했던 시절로 기억합니다. 음식의 대가로 얼마를 지불했느냐와 별개로, 이집트에서의 삶은 자유로운 삶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먹었던 음식을 기억하면서, 그 땅에서 자신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는 잊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건 이 만나뿐이야」
「그런데 이제 우리는 기운이 다 말라 버렸어. 아무것도 없어. 눈에 보이는 건 이 만나뿐이야.」민수기 11:6 · 두루새김
아무것도 없는 것과, 원하는 것이 없다는 것은 같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만나가 있습니다. 그러나 만나가 더 이상 만족스러운 음식으로 여겨지지 않습니다. 이때 본문의 서술자가 끼어들어 만나가 어떤 음식인지 설명합니다.
만나는 고수 씨와 비슷했고, 겉모습은 브돌라흐와 같았습니다.민수기 11:7 · 두루새김
이어 8절에서는 만나를 주워 맷돌에 갈거나 절구에 찧고, 솥에 익혀 둥근 빵으로 만들었다고 설명합니다. 그 맛은 「기름진 별미와 같았습니다」라고 합니다.
백성의 눈에는 만나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서술자의 설명에는 그 만나가 어떻게 주어지고, 어떻게 음식이 되는지가 나타납니다.
밤에 진영에 이슬이 내리면, 만나도 그 이슬 위에 내리곤 했습니다.민수기 11:9 · 두루새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먹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이집트에서 가져온 식량이 충분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만나가 반복해서 내려왔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16:4에서 여호와야훼는 하늘에서 양식을 내려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민수기 11장에서는 그 양식이 계속 공급되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만나의 가치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백성이 만나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는 데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광야에서 자신들을 먹이시는 방식을 불충분한 것으로 여기며, 이집트에서의 삶을 더 좋은 것으로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울음소리는 지도자인 모세에게 쏟아집니다.
조금 더 깊이
만나를 묘사하는 말 가운데 「브돌라흐」가 정확히 어떤 물질을 가리키는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창세기 2:12에도 등장하는 이름으로, 나무에서 나오는 수지의 일종으로 이해하는 견해가 있지만 이 구절은 만나의 겉모습을 비유할 뿐입니다. 8절의 맛은 기름의 풍부한 맛을 뜻하는지, 기름을 사용한 특정 음식의 맛을 뜻하는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신명기 8:2–3에서 모세는 광야의 만나를 돌아보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낮추시고 시험하셨다고 설명합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것으로 산다는 가르침도 그 문맥에서 등장합니다.
「제가 그들을 낳았습니까?」
10절에서 모세는 백성의 울음소리를 듣습니다.
모세는 백성이 씨족별로 저마다 자기 천막 입구에서 우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크게 분노하셨고, 모세도 그 일을 좋지 않게 여겼습니다.민수기 11:10 · 두루새김
앞에서는 일부 무리에서 갈망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제는 씨족별로, 저마다 자기 천막 입구에서 사람들이 울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백성을 향해 먼저 책망하지 않습니다.
모세가 여호와야훼께 말했습니다. 「왜 주님의 종인 저를 괴롭게 하십니까? 어째서 저를 좋게 보지 않으시고, 이 모든 백성을 책임지는 짐을 제게 지우십니까?」민수기 11:11 · 두루새김
그는 자신이 맡은 일을 영광스러운 사명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일이 자신에게 고통이 되었다고 호소합니다.
「제가 이 모든 백성을 배었습니까? 제가 그들을 낳았습니까? 그런데 왜 저더러 아이를 돌보는 사람이 젖먹이를 안듯 그들을 품에 안고 주님께서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데려가라고 하십니까?」민수기 11:12 · 두루새김
그에게 백성은 단순히 명령만 내리면 움직이는 군대가 아닙니다. 끊임없이 돌보아야 하고, 먹여야 하며, 달래야 하는 아이들처럼 느껴집니다.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구원하시고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땅으로 데려가시는 분은 여호와야훼입니다. 모세는 그 일을 맡은 종입니다. 그러나 백성의 요구는 마치 모세가 자신들의 모든 필요를 책임져야 하는 사람인 것처럼 그에게 향합니다.
「이 모든 백성에게 줄 고기를 제가 어디서 구합니까? 그들은 제게 울면서 『고기를 먹게 해 주십시오』라고 합니다.」민수기 11:13 · 두루새김
백성은 고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모세에게는 그만한 고기를 마련할 방법이 없습니다.
「저 혼자서는 이 모든 백성의 짐을 질 수 없습니다. 제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무겁습니다.」민수기 11:14 · 두루새김
백성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해 울고 있습니다. 모세는 그 백성 전체가 자신에게 너무 무거운 짐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는 죽음을 요청하기에 이릅니다.
「주님께서 저를 이렇게 대하시려면, 부디 저를 죽여 주십시오. 저를 좋게 보신다면, 제가 이런 비참한 처지를 더는 겪지 않도록 그렇게 해 주십시오.」민수기 11:15 · 두루새김
본문은 모세가 실제로 감당할 수 없는 지점에 이르렀음을 보여 줍니다. 그가 얼마나 혼자라고 느끼고 짓눌렸는지 그의 말에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백성의 불평과 모세의 호소는 무엇이 다른가?
백성은 이집트가 좋았다고 말하며 자신들을 그곳에서 나오게 하신 일을 문제 삼기 시작합니다. 반면 모세는 자신의 짐이 너무 무겁다고 말하면서도 여호와야훼를 향해 호소합니다. 그는 하나님이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땅을 언급하고, 바로 그 땅으로 백성을 데려가는 일을 감당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기보다 그 뜻을 따르는 자신의 한계를 털어놓고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물론 모세의 말이 모든 면에서 모범적인 기도라고 본문이 선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의 요청은 매우 극단적이고, 그 자신도 하나님의 능력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곧 드러냅니다.
모세는 백성의 짐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고 인정합니다. 하나님은 그 고백을 무시하지 않으십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아이를 돌보는 사람」이라는 표현은 실제로 젖을 먹이는 어머니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젖먹이를 품에 안고 돌보는 보호자나 양육자의 모습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고기보다 먼저 짐을 나눌 사람들을 마련하신다
모세는 두 가지 어려움을 호소했습니다.
백성을 혼자 감당할 수 없다는 것과, 그들에게 줄 고기를 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먼저 모세와 함께 일할 장로들을 세우라고 하십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장로들 가운데 일흔 명을 나를 위해 모아라. 네가 백성의 장로이며 관리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그들을 만남의 천막으로 데려와 너와 함께 서게 하여라.」민수기 11:16 · 두루새김
이스라엘에는 이미 공동체를 이끌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출애굽기 18:21–26에서도 모세는 백성의 재판을 돕도록 여러 지도자를 세웠습니다. 다만 그때의 관리들과 지금의 일흔 명을 같은 집단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민수기 11장은 이번에 세워지는 장로들에게 특별히 하나님의 영이 임한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내가 내려가 거기서 너와 말하겠다. 네 위에 있는 영을 나누어 그들 위에도 두겠다. 그들이 너와 함께 백성의 짐을 질 것이니, 네가 혼자 그 짐을 지지 않아도 될 것이다.」민수기 11:17 · 두루새김
모세는 「저 혼자서는 이 모든 백성의 짐을 질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여호와야훼는 「그들이 너와 함께 백성의 짐을 질 것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문의 같은 이미지가 서로 맞물립니다.
장로들이 모세의 일을 나누어 맡는 것은 맞지만, 그들이 그 일을 감당하게 되는 근거는 하나님이 그들 위에 영을 두시는 데 있습니다. 모세의 지도력은 그 자신의 뛰어난 능력만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다른 장로들도 하나님의 영에 의해 공동체를 섬기는 일에 참여합니다.
여기서 「네 위에 있는 영을 나누어」라는 표현을 모세의 영적 능력이 줄어드는 것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원문은 모세 위에 있는 영으로부터 취하여 장로들 위에 두신다고 표현하지만, 그 결과 모세가 무엇을 잃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더 강해져서 모든 짐을 견디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그 짐을 함께 질 사람들을 세워 주십니다.
원하는 것을 주시되, 그 욕망을 드러내신다
18절에서 여호와야훼는 백성에게 고기를 주겠다고 선언하십니다.
그러나 그 말씀은 기쁨의 약속으로만 이어지지 않습니다.
「『너희는 하루나 이틀이나 닷새나 열흘이나 스무 날만 먹을 것이 아니다.』」 「『한 달 내내 먹을 것이다. 고기가 너희 코에서 나오고 역겨워질 때까지 먹을 것이다. 너희 가운데 계신 여호와야훼를 거부하고, 그분 앞에서 도대체 왜 이집트에서 나왔느냐며 울었기 때문이다.』」민수기 11:19–20 · 두루새김
이 표현은 고기를 지나치게 많이 먹어 결국 역겨워하게 되는 모습을 강렬하게 그립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히 많이 먹으면 질린다는 일반적인 경험을 설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백성의 욕망이 얼마나 잘못된 방향으로 향해 있는지 드러냅니다.
문제는 고기 자체가 아닙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실제로 고기를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출애굽기 16:13에서도 이미 메추라기가 이스라엘의 진영을 덮은 적이 있습니다. 고기를 먹는다는 행위 자체가 금지된 것도 아닙니다.
문제는 백성이 이집트에서 나온 일을 후회하며, 자신들 가운데 계신 여호와야훼를 거부했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주시지만, 그 응답은 단순한 선물이 아니라 그들의 태도를 드러내는 심판과 연결됩니다. 이 긴장은 마지막 장면에서 비극적으로 드러납니다.
「나 여호와야훼에게 그럴 능력이 없겠느냐?」
모세는 하나님의 약속을 듣고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모세가 말했습니다. 「제가 함께 있는 백성 가운데 걸어서 행군하는 군인이 60만 명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내가 그들에게 고기를 주어 한 달 내내 먹게 하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민수기 11:21 · 두루새김
이스라엘의 규모를 생각하면 모든 사람에게 한 달 동안 고기를 먹인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는 가능한 자원을 떠올립니다.
「그들을 위해 양과 염소와 소를 잡은들 충분하겠습니까? 바다의 물고기를 모두 모아 준들 충분하겠습니까?」민수기 11:22 · 두루새김
백성은 생선을 그리워합니다. 모세는 바다의 물고기를 모두 모아도 충분하겠느냐고 묻습니다. 그는 실제로 동원할 수 있는 자원과 필요한 양을 비교하며 계산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 여호와야훼에게 그럴 능력이 없겠느냐? 이제 내 말이 네게 이루어지는지 아닌지 보게 될 것이다.」민수기 11:23 · 두루새김
그는 백성을 혼자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인식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백성에게 고기를 먹일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도 자신의 계산 범위 안에서 이해하려 합니다.
모세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은 옳은 방향이었지만, 그 한계를 하나님의 한계로 생각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17절에서는 하나님이 모세의 한계를 인정하시고 장로들을 세우십니다. 23절에서는 하나님이 모세의 계산을 넘어서는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한계를 무시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인간의 한계가 하나님의 능력을 규정하게 하지도 않으십니다.
조금 더 깊이
원문에서는 손이 짧으냐고 묻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에 한계가 있느냐는 뜻으로, 두루새김은 「나 여호와야훼에게 그럴 능력이 없겠느냐?」라고 옮겼습니다.
모세의 영이 장로들에게 임하다
24절에서 모세는 장로 일흔 명을 모아 만남의 천막 둘레에 세웁니다.
25절에서는 여호와야훼께서 구름 속에 내려오셔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고, 모세 위에 있는 영을 나누어 장로들 위에도 두십니다. 그 결과 장로들이 예언하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예언의 구체적인 내용은 기록되지 않습니다. 그들이 미래에 관한 예언을 했는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는지, 어떤 형태로 하나님의 영에 감동받은 모습을 드러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예언은 하나님의 영이 그들에게 임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사건이고, 그들에게 주어진 계속적인 책임은 공동체를 섬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본문은 예상 밖의 두 사람을 등장시킵니다.
천막 밖에서도 하나님의 영이 임하다
그런데 엘닷과 메닷이라는 두 사람이 진영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들도 명단에 이름이 올라 있었지만 천막으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 두 사람 위에도 그 영이 머물렀고, 그들은 진영에서 예언했습니다.민수기 11:26 · 두루새김
왜 그곳에 가지 않았는지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허락 없이 자신을 지도자로 내세운 사람들이 아닙니다. 명단에 포함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임하는 일이 만남의 천막 앞이라는 장소에만 제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한 젊은이가 달려가 이 사건을 모세에게 알립니다. 여호수아는 즉시 말합니다.
젊을 때부터 모세를 곁에서 돕던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말했습니다. 「저의 주인 모세님, 그들을 막아 주십시오.」민수기 11:28 · 두루새김
본문은 그의 구체적인 동기를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모세의 대답을 보면 여호수아가 모세의 권위와 특별한 지위를 지키려 했다는 해석이 자연스럽습니다.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나를 위해 질투하느냐? 여호와야훼께서 온 백성 위에 자신의 영을 두셔서, 여호와야훼의 백성 모두가 예언자가 되면 좋겠다.」민수기 11:29 · 두루새김
조금 전까지 모세는 혼자 백성의 짐을 지는 것이 너무 무겁다고 호소했습니다. 이제 그는 모든 백성이 하나님의 영을 받아 예언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는 자신의 특별한 지위를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영이 다른 사람들에게 임하는 일을 막으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많은 사람이 그 영을 받기를 바랍니다.
모세의 위대함은 하나님의 영을 혼자 소유하려는 데 있지 않고, 모든 백성이 그 영에 참여하기를 바라는 데서 드러납니다.
본문은 앞으로 이스라엘 전체가 실제로 모두 예언자가 되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모세가 표현한 것은 소망입니다.
조금 더 깊이
25절의 마지막 표현은 해석이 갈리는 곳입니다. 두루새김은 「그러나 그 뒤에는 다시 예언하지 않았습니다」라고 옮겼습니다. 히브리어 벨로 야사푸는 말 그대로 더하지 않았다는 표현입니다. 이 문맥에서는 예언을 다시 하지 않았다는 뜻으로 자연스럽게 읽을 수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어 칠십인역은 다시 계속하지 않았다는 방향으로 읽습니다. 반면 일부 고대 유대교 해석 전통은 이 표현을 예언이 그치지 않았다는 뜻으로 이해했습니다. 따라서 예언이 얼마나 오래 이어졌는지 단정하는 데에는 주의가 필요합니다. 모세가 「여호와야훼의 백성 모두가 예언자가 되면 좋겠다」고 말한 소망은 요엘 2:28–29에서 다양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이 부어지는 약속과 주제적으로 연결됩니다. 신약 사도행전 2장은 요엘의 그 약속을 직접 인용하지만, 민수기 11장 자체는 모세의 소망이 그의 시대에 완전히 이루어졌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같은 '루아흐'가 장로들에게 임하고 메추라기를 몰아온다
31절에서는 다시 고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보내신 바람이 불어와 바다 쪽에서 메추라기들을 몰아다가 진영에 흩어 놓았습니다. 메추라기들은 진영 둘레 이쪽으로도 하루 길쯤, 저쪽으로도 하루 길쯤 퍼져 있었고, 땅 위로 두 암마쯤 되는 높이에 있었습니다.민수기 11:31 · 두루새김
앞서 하나님이 장로들에게 주신 「영」(רוּחַ)과 지금 메추라기들을 몰아온 「바람」은 히브리어로 같은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문맥에 따라 바람, 숨, 영을 뜻합니다. 한쪽은 사람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영이고, 다른 한쪽은 자연 속에서 움직이는 바람입니다.
모세에게 필요한 것은 백성의 짐을 함께 질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영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백성이 요구한 것은 고기였습니다. 하나님은 바람을 일으켜 메추라기들을 가져오셨습니다.
두 사건 모두 사람이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없었던 결과를 하나님이 이루십니다.
이것은 23절의 「나 여호와야훼에게 그럴 능력이 없겠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실제 응답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백성에게 필요한 고기를 마련하실 수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공동체를 이끌 사람들에게 자신의 영을 주실 수도 있습니다.
엄청난 양의 메추라기
백성은 나서서 그날 온종일, 밤새도록, 또 이튿날 온종일 메추라기를 모았습니다. 가장 적게 모은 사람도 열 호메르를 모았습니다. 그들은 모은 메추라기를 진영 둘레에 널리 펼쳐 놓았습니다.민수기 11:32 · 두루새김
조금 전까지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먹여 주겠어?」라고 울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요구한 것을 하나님이 실제로 주셨습니다.
그러나 바로 다음 절에서 모든 분위기가 뒤집힙니다.
조금 더 깊이
메추라기들이 땅 위 두 암마쯤 되는 높이로 날고 있었다는 뜻일 수도 있고, 메추라기들이 그만큼 두껍게 쌓였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본문은 어느 한쪽을 확정할 만큼 구체적인 동작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호메르는 부피를 재는 단위입니다. 여기서는 가장 적게 모은 사람조차 매우 많은 양을 모았음을 강조합니다.
고기가 입안에 있는 동안 재앙이 찾아온다
고기가 아직 그들의 이 사이에 있어 미처 씹기도 전에, 여호와야훼께서 백성에게 분노하셨습니다. 매우 큰 재앙으로 백성을 치셨습니다.민수기 11:33 · 두루새김
백성은 자신들이 원했던 고기를 받았지만, 그 일을 기뻐하며 마무리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왜 주신 뒤에 심판하셨을까?
하나님은 이미 고기를 주시기 전에 백성의 문제를 설명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거부하고 이집트에서 나온 일을 후회한 백성의 태도를 심판의 이유로 제시합니다.
따라서 33절의 재앙을 고기에 독이 있었기 때문이라거나, 지나치게 많이 먹어서 병이 생긴 자연적인 결과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본문은 그러한 원인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재앙의 정확한 범위와 죽은 사람들의 수, 재앙이 어떤 방식으로 일어났는지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고기는 그러한 태도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원하는 것을 얻는다고 해서, 그것을 원하게 만든 마음의 문제가 반드시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갈망이 무덤의 이름이 되다
그곳을 키브롯 핫타아와라고 불렀습니다. 먹을 것을 탐내던 백성을 거기에 묻었기 때문입니다.민수기 11:34 · 두루새김
히브리어 키브롯 핫타아와(קִבְרוֹת הַתַּאֲוָה)는 갈망의 무덤들이라는 의미입니다. 4절에서는 사람들이 먹을 것을 「몹시 탐냈습니다」라고 했고, 34절에서는 「먹을 것을 탐내던 백성」을 그곳에 묻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던 갈망이었습니다. 그 갈망이 울음소리가 되었고, 이집트에 대한 그리움이 되었으며, 고기를 향한 집착으로 나타났습니다.
마침내 그 갈망은 사람들이 묻힌 장소의 이름으로 남습니다.
조금 더 깊이
두루새김이 「미처 씹기도 전에」로 옮긴 부분의 핵심 동사는 히브리어로 끊기다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이를 입안의 고기가 아직 씹혀 끊어지기 전이라고 읽을 수 있습니다. 반면 고기가 아직 다 떨어지지 않았을 때라는 의미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첫 번째 해석을 따르면 재앙은 고기를 먹기 시작한 바로 그 순간에 일어납니다. 두 번째 해석을 따르면 고기를 먹는 기간이 아직 끝나지 않았을 때 재앙이 닥쳤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시편 78:18–31과 106:13–15도 광야에서 백성이 음식을 갈망했던 사건을 돌아봅니다. 두 시편은 백성의 욕망과 하나님을 시험한 태도, 그리고 그에 따른 심판을 연결합니다.
두 가지 부족함과 하나님의 두 가지 응답
백성에게 고기를 주시는 일은 심판과 연결됩니다. 모세에게 장로들을 세워 주시는 일은 공동체의 짐을 나누는 방향으로 이어집니다. 백성은 이집트에서 나온 일을 후회하며, 자신들 가운데 계신 하나님을 거부했습니다. 모세의 호소도 극단적이었고, 그의 믿음에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세우신 하나님께 자신의 짐을 가져갔습니다.
물론 이것을 모든 부족함이나 고통을 단지 마음가짐의 문제로 돌리는 교훈으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모세의 고통은 실제였고, 그는 자기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상태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생각을 바꾸기만 하라고 하시지 않고, 실제로 짐을 나누어 질 사람들을 마련하셨습니다.
첫 번째 장소에서는 불이 타올랐습니다. 모세가 기도하자 불이 가라앉았고, 사람들은 그곳을 타브에라라고 불렀습니다.
두 번째 장소에서는 바람이 불어와 메추라기들이 쏟아졌습니다. 백성은 온종일, 밤새도록, 다시 온종일 고기를 모았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죽었고, 그들은 그곳을 키브롯 핫타아와, 갈망의 무덤들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 두 장소 사이에서 하나님은 지친 모세에게 장로 일흔 명을 세워 주셨습니다. 만남의 천막 밖에 있던 엘닷과 메닷에게도 영이 임했고, 모세는 그들을 막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민수기 11장은 이 두 모습을 나란히 남깁니다.
하나는 백성의 짐을 함께 지게 된 사람들입니다.
다른 하나는 자신들이 그토록 원했던 고기를 얻고도 광야에 묻힌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은 이제 그 무덤들을 뒤로하고 하체롯으로 떠납니다. 길은 계속되지만, 그곳의 이름은 남습니다.
키브롯 핫타아와 — 갈망의 무덤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