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풀어 읽기 · 70편
이 장의 자리 · 42–72편 · 둘째 권
하나님, 서둘러 주십시오
시편 70편에는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셨다는 말이 없습니다.
시인은 구원을 구하지만 구원받는 장면을 보여 주지 않습니다. 원수들이 물러나기를 바라지만 그들이 실제로 물러났다는 소식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이 기뻐하기를 바라지만, 그 기쁨이 이루어졌다는 증언도 없습니다.
시편은 「하나님, 서둘러 저를 건져 주십시오」라는 다급한 외침으로 시작하여, 마지막까지 「하나님, 서둘러 저를 도와주십시오」라는 같은 요청을 되풀이합니다. 시인은 그 사이에 무엇이 달라졌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처음보다 마지막이 더 다급하게 들립니다.
그런데 이것은 미완성된 기도가 아닙니다. 시편 70편은 바로 그런 상태의 기도를 한 편의 완전한 노래로 보존하고 있습니다.
시편 69편에서는 고난받는 사람이 자신의 처지를 길게 설명하고,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한 뒤, 마침내 공동체의 회복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70편은 그 긴 과정을 다시 보여 주지 않습니다. 시인은 설명할 여유조차 없는 사람처럼 곧바로 하나님을 부릅니다.
시편 70편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충분히 설명할 수 없는 순간에도,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기도가 온전한 기도일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그 짧은 외침 안에는 원수들의 행동,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의 기쁨, 자신의 가난과 부족함,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신뢰가 모두 담겨 있습니다.
오래된 기도가 다시 불린다
시편의 표제는 짧습니다.
지휘자를 위한 다윗의 시입니다. 기억하게 하려는 시입니다.시편 70:1 · 두루새김
히브리어 레하즈키르(זָכַר)는 「기억하게 하다」, 「상기시키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의 형태입니다. 시편 38편의 표제에도 같은 표현이 나옵니다.
그런데 누가 무엇을 기억해야 한다는 뜻일까요?
하나님께 시인의 처지를 기억하시도록 요청한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예배하는 공동체가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기억하도록 하는 노래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고대 예배의 특정한 의식과 관계된 표제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표제만으로 그 대상과 사용 방식을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 표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시편 70편 자체의 독특한 위치에 있습니다.
시편 70편은 시편 40편의 마지막 부분과 거의 동일합니다. 시편 40:13–17에 나오는 기도가 몇몇 표현의 차이를 지닌 채 독립된 시편으로 등장합니다.
시편 40편은 하나님께서 시인을 깊은 구덩이와 진창에서 건져 주셨다는 회상으로 시작합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자기 발을 반석 위에 세우셨으며, 새로운 노래를 입에 넣어 주셨다고 고백합니다(시편 40:2–3). 그러나 그 노래의 뒷부분에서 시인은 다시 어려움에 빠져 구원을 요청합니다.
과거에 구원받았던 사람이 또다시 구원을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 70편은 바로 그 간구를 별도의 노래로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 번 응답받은 기도라면 이제 반복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시편은 이전에 구원을 경험한 사람도 다시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지난날의 구원이 오늘의 어려움을 없애 주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도우셨다는 기억과, 하나님께서 지금 다시 도와주셔야 한다는 요청은 서로 모순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전의 구원을 기억하기 때문에 같은 하나님을 다시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반드시 새로운 말이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같은 고통이 다시 찾아올 때, 같은 하나님을 다시 부를 수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원문에서 표제를 절로 계산하면 시편 40편의 해당 부분은 40:14–18입니다. 이것이 어떤 구체적인 편집 과정을 거쳐 이루어졌는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두 시편에 같은 기도가 보존되어 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첫 문장부터 숨 가쁘게 하나님을 부른다
하나님, 나를 건지러, 여호와야훼여, 나를 도우러 서둘러 주십시오.시편 70:2 · 두루새김
두루새김은 이 요청을 두 문장으로 풀어, 「서둘러 저를 건져 주십시오」와 「서둘러 저를 도와주십시오」로 옮겼습니다. 두 요청에 모두 같은 말이 들어 있습니다.
「서둘러.」
시인은 하나님께 단지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도움이 오는 시간까지 문제 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언젠가 오는 도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시인에게는 지금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기도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드리는 기도일까요?
본문은 오히려 반대 방향을 보여 줍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도우실 능력이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도우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에, 그분께 서둘러 달라고 간구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설득하기 위해 자신의 공로나 의로움을 나열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상황이 얼마나 급한지를 길게 증명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자신을 구원하실 수 있는 분께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런 점에서 「서둘러 저를 도와주십시오」라는 말에는 두 가지가 함께 담겨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의 위기가 절박하다는 인식이고, 다른 하나는 그 위기 속에서 하나님이 자신을 도우실 수 있다는 신뢰입니다.
조금 더 깊이
원문에서는 첫 행에 시인을 건지러 오시라는 목적을 나타내는 표현이 있지만, 거기에 직접 연결된 독립된 동사가 없습니다. 두 번째 행에 이르러서야 서둘러 달라는 명령형이 등장합니다. 원문의 이러한 시적 생략을 반드시 시인이 너무 급해서 말을 끝맺지 못한 것으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히브리어 시에서 앞뒤 행이 서로의 문장을 완성하는 방식은 자연스럽게 사용됩니다.
같은 「찾는다」는 행동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향한다
시인은 자신을 위협하는 이들의 수치를 구합니다.
내 목숨을 노리는 자들이 부끄러워하고 수치를 당하며, 내가 해를 입기를 바라는 자들이 뒤로 물러나 모욕을 당하기를 빕니다.시편 70:3 · 두루새김
앞의 사람들은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고, 뒤의 사람들은 그의 고통을 기뻐합니다. 물론 같은 적대자들의 행동을 두 방향에서 묘사했을 수도 있습니다. 시인은 단지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행동만 문제 삼지 않고, 남의 불행을 기뻐하는 마음 역시 하나님 앞에 가져갑니다.
그런데 3절과 5절을 함께 읽으면 본문의 구조가 더 선명해집니다.
3절에는 「제 목숨을 노리는 자들」이 등장하고, 5절에는 「주님을 찾는 모든 사람」이 등장합니다. 두루새김에서는 「노리는」과 「찾는」으로 옮겼지만, 히브리어 원문에서는 두 표현에 모두 바카시(בָּקַשׁ), 곧 「찾다」, 「구하다」라는 동사가 사용됩니다. 3절의 표현은 문맥상 시인의 목숨을 찾아 해치려는 자들을 뜻합니다. 반면 5절의 표현은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원문에서는 같은 동사가 서로 정반대의 목적을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무리는 사람의 생명을 노리고, 다른 무리는 하나님을 찾습니다. 시인은 그 두 방향이 같은 결과에 이르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기뻐하는 자들에게는 수치가 돌아가고,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는 기쁨이 돌아가기를 바랍니다.
이 대조를 더 깊이 이해하려면 4절과 5절에 나오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 보아야 합니다.
두 종류의 입술: 「아하, 아하!」와 「하나님께서 높임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4절에서 시인은 원수들의 말을 그대로 들려줍니다.
「아하, 아하!」 하는 자들이 자기들이 당한 수치 때문에 돌아서기를 빕니다.시편 70:4 · 두루새김
「아하, 아하!」는 승리를 확신하거나 상대방의 불행을 보고 즐거워하는 조롱의 소리입니다. 시인은 원수들이 자신을 비난할 때 어떤 논리를 사용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조롱을 단 두 마디로 남깁니다.
이 짧은 소리는 오히려 긴 비난보다 더 차갑게 느껴집니다.
여기서 「돌아서기를」이라는 말은 반드시 회개하여 하나님께 돌아온다는 뜻으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문맥상 자신들의 부끄러움 때문에 물러나거나 돌아가는 모습을 가리키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원수들이 시인에게 수치를 주려 했지만, 그 수치가 오히려 자신들에게 돌아가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5절에 이르면 전혀 다른 말소리가 들립니다.
당신을 찾는 모든 이가 당신 안에서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당신의 구원을 사랑하는 이들이 「하나님이 높임을 받으시기를!」 늘 이렇게 말하기를 빕니다.시편 70:5 · 두루새김
두 표현은 모두 사람의 입에서 나옵니다. 그러나 한쪽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즐기고, 다른 쪽은 하나님의 구원을 기뻐합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이 잠깐 기뻐하고 끝나기를 바라지 않고, 「늘」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인정하고 찬양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이 찬양은 현실이 이미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에 나오는 승리의 보고가 아닙니다. 5절도 앞선 구절들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기도입니다. 시인은 아직 자신이 구원받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 하나님을 찾는 모든 사람을 기억하고, 그들이 기뻐하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구원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표현에서, 시인은 단순히 구원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구원은 위기를 빠져나가는 유용한 수단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건져 내시는 행동 자체가 사랑하고 기뻐할 일이 됩니다.
시편이 보여 주는 대조는 단순히 적과 아군의 구별이 아닙니다.
무엇을 기뻐하고, 무엇을 찾으며, 자신의 입으로 무엇을 말하는지가 두 무리의 차이를 드러냅니다.
모두가 기뻐하기를 바라지만, 자신은 아직 궁핍하다
5절에서 시인의 기도는 하나님을 찾는 모든 사람에게로 넓어졌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절은 갑자기 다시 한 사람에게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나는 가난하고 쪼들립니다. 하나님, 내게로 서둘러 와 주십시오. 당신은 나의 도움이시며 나를 구해 내시는 분이십니다. 여호와야훼여, 지체하지 마십시오.시편 70:6 · 두루새김
시인은 하나님을 찾는 모든 사람이 즐거워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저는」, 자신은 여전히 가난하고 필요한 것조차 부족합니다. 그가 다른 사람들의 기쁨을 위해 기도했다고 해서 자신의 고통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두루새김은 「가난하고 궁핍한」이라는 뜻의 원문을 「가난하고 필요한 것조차 부족합니다」로 풀어 옮겼습니다. 두 단어는 함께 사용되면서 물질적 빈곤뿐 아니라 보호와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의 처지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시편 70편의 화자가 실제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지는 본문만으로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가 자신을 스스로 보호할 힘이 없는 사람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그는 자신이 강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부족함을 하나님께 그대로 드러냅니다.
그런데 시편 40편의 마지막 구절과 비교하면 차이가 나타납니다.
시편 40:17에서는 가난하고 부족한 자신을 주께서 생각하신다고 말합니다. 반면 시편 70:6에서는 그 부분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 서둘러 달라는 요청으로 나타납니다. 시편 40편의 표현은 자신을 기억하고 돌보시는 주님에 대한 고백이고, 시편 70편의 표현은 지금 자신에게 다가와 주시기를 바라는 간구입니다.
자신을 돌보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과, 그 하나님께 지금 서둘러 달라고 구하는 것은 서로 충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자신을 돌보시는 분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그분께 더 절박하게 요청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제 도움이시며 저를 구해 내시는 분이십니다」라는 고백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드러냅니다. 「여호와야훼, 지체하지 마십시오」라는 요청은 아직 구원의 완성을 경험하지 못한 현실을 드러냅니다. 시인은 신뢰하기 때문에 더 이상 간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신뢰하면서도 간구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자신의 절박함을 부정하는 일이 아닙니다. 절박한 현실 속에서 누구에게 도움을 구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끝까지 응답을 요청하는 노래
시편 70편은 매우 짧지만 그 안에는 정교한 구성이 있습니다. 처음과 끝에는 하나님께서 서둘러 도와주시기를 바라는 간구가 놓여 있고, 그 사이에는 「아하, 아하!」라고 말하는 사람들과 「하나님께서 높임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시인은 다시 자신을 가난하고 필요한 것조차 부족한 사람으로 소개합니다.
하나님께서 높임을 받으시기를 바라는 기도와,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해 주시기를 바라는 기도는 서로를 밀어내지 않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기대하는 구원은 추상적인 이상이 아닙니다. 실제로 자신을 도와주시고, 자신을 해치려는 사람들이 물러나게 하시는 구원입니다. 동시에 그 구원은 자기 혼자만의 행복을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짧은 시편에서 인간의 도움 요청과 하나님의 영광은 경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시편은 아직 그 일이 이루어졌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시편 70편이 전하는 것은 고통 뒤에 곧바로 승리가 찾아온다는 단순한 공식이 아닙니다. 본문은 응답의 시점을 밝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불확실성 속에서도 계속 하나님을 부르는 사람의 모습을 보존합니다. 그것은 고통이 곧 은혜라는 뜻도 아니고, 응답이 늦어지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시인은 오히려 지체하지 말아 달라고 말합니다.
살다 보면 자신의 처지를 차근차근 설명할 수 없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런 순간에 시편 70편은 길고 정교한 기도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서둘러 저를 도와주십시오.」
그 말은 충분히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시편은 응답받은 뒤에야 비로소 하나님께 말할 수 있다고 하지 않습니다. 아직 구원받지 못한 사람의 호소도 예배의 노래가 됩니다.
시편 70편의 마지막 장면에는 여전히 가난하고 필요한 것조차 부족한 사람이 서 있습니다.
원수들이 사라졌다는 말은 없습니다. 그의 처지가 넉넉해졌다는 소식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도착하셨다는 선언도 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이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도움이시며, 자신을 구해 내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시인은 다시 한번 「여호와야훼, 지체하지 마십시오」 하고 하나님을 부릅니다. 그는 이 말을 끝으로 기도를 마칩니다.
시편은 하나님의 응답을 기록하지 않은 채 끝나지만, 시인의 마지막 말은 여전히 하나님을 향해 있습니다.
아직 도움을 받지 못한 사람이 자신을 도우실 하나님께 마지막까지 말을 건네고 있습니다.
시편 70편은 바로 그 다급한 목소리를, 줄이거나 덧붙이지 않고 한 편의 노래로 남겨 놓았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