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풀어 읽기 · 71편

이 장의 자리 · 42–72편 · 둘째 권

백발에도 전하고 싶은 하나님의 이야기

시편 71편의 시인은 자신이 얼마나 오래 하나님을 믿어 왔는지 기억합니다. 젊었을 때부터 하나님을 의지했고, 어머니의 배 속에서부터 하나님께 기대어 살아왔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삶에 낯선 분이 아니십니다. 한평생 자신을 붙들어 주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바로 그 사람이 이제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제가 늙었을 때 저를 내던지지 마십시오. 제 힘이 다할 때 저를 버리지 마십시오.」

오랫동안 하나님을 의지해 온 사람이 왜 이제 와서 버림받을까 두려워할까요?

시인은 젊은 시절에는 하나님을 믿었으나 늙어서 믿음을 잃은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오랫동안 경험했기 때문에 그분께 더욱 절실하게 매달리는 사람입니다.

그의 두려움에는 구체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원수들은 그가 약해진 것을 보고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셨다고 말합니다. 그의 힘이 다했으니 이제는 구해 줄 사람도 없다고 판단합니다. 시인이 가장 의지해 온 하나님과의 관계를 원수들이 부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편에는 노년의 불안보다 더 깊은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시인은 자신이 다시 젊어지기를 구하지 않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버리지 말아 달라고 간구하는 데에는, 「다음 세대에 주님의 힘센 팔을 알리고 앞으로 올 모든 사람에게 주님의 능력을 전할 때까지」라는 특별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는 아직 전해야 할 이야기가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편 71편은 늙어 가는 사람이 과거의 은혜만을 회상하는 노래가 아닙니다. 지나온 세월을 통해 알게 된 하나님을 아직 오지 않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 하는 노래입니다.

읽는 시간 24분소단락 871편 본문 읽기 →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바위가 있다

시편 71:1–4 본문 →

시인은 하나님께 자신이 이미 어떤 관계 안에 있는지를 고백하며 기도를 시작합니다.

여호와야훼여, 나는 당신께 몸을 피했습니다. 끝내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시편 71:1 · 두루새김

그는 하나님께 피할 수 있는지 물어보지 않습니다. 이미 하나님께 피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상태에서 다시 구원을 요청합니다.

하나님께 피했다는 사실과, 여전히 위험에 놓여 있다는 현실이 함께 놓여 있습니다. 피했다는 말은 모든 어려움이 사라졌다는 보고가 아닙니다. 위험 속에서 자신이 누구를 의지하고 있는지를 밝히는 고백입니다.

이 시편은 앞서 불렸던 여러 기도의 언어를 품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기도한 사람은 자신의 처지를 표현하기 위해 언제나 새로운 말을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보다 앞선 사람들이 하나님을 불렀던 말로 다시 하나님을 부를 수 있습니다.

2절에서 시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원하셔야 할 근거를 말합니다.

당신의 의로움으로 나를 건져 내고 구해 주십시오. 내게 귀를 기울여 나를 살려 주십시오.시편 71:2 · 두루새김

여기서 「주님의 의로움」이라는 표현을 단순히 하나님께서 죄인을 벌하시는 공정함으로만 이해하면 문맥이 좁아집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의로움은 잘못을 올바르게 판단하시는 성품을 나타내지만, 동시에 억눌린 사람을 구원하고 자신의 백성에게 신실하게 행동하시는 의로운 행위와도 연결됩니다. 시편 98:2에서도 하나님의 구원과 의로움이 함께 나타납니다.

71편의 시인은 바로 그 의로움에 호소합니다.

그는 자신이 완전하게 의로운 사람이므로 구원받을 자격이 있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에 자신을 구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이어서 3절에서는 하나님을 특별한 장소에 비유합니다.

언제든 들어가 머물 수 있는 바위가 되어 주십시오. 당신은 나를 구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당신은 나의 바위, 나의 요새이시기 때문입니다.시편 71:3 · 두루새김

바위는 위험을 막아 주는 단단한 장소입니다. 튼튼한 성은 적의 공격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시인은 그곳이 자신이 언제나 들어가 머무를 곳이기를 구합니다. 잠시 숨어 있다가 떠나는 곳이 아니라, 필요할 때마다 돌아갈 수 있는 장소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이 의지하던 것들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자신의 힘으로 벗어날 수 있었던 위험도, 늙어서는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시인은 뒤에서 자신의 힘이 다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는 몸을 피할 새로운 성을 찾지 않습니다. 오래전부터 자신의 바위였던 하나님께 다시 돌아갑니다.

원문에서 「주님은 저를 구원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라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구원을 이루실 권위를 가지신 분임을 전제합니다. 다만 그 명령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내려졌는지를 본문은 밝히지 않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구원이 원수들의 허락이나 자신의 남은 힘에 달려 있지 않다고 믿습니다.

4절에서 그는 악한 사람과 잔인한 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구합니다. 그들이 정확히 누구인지, 어떤 사건으로 시인을 위협하는지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 시편의 관심은 원수들이 누구인지 밝히는 것보다, 자신의 힘이 약해져 가는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피할 수 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1절은 시편 31:1과 거의 같은 표현이고, 이어지는 2–3절에도 시편 31편과 매우 가까운 문장들이 등장합니다. 시편 71편에는 별도의 표제가 없으며, 앞선 시편 70편에서 들었던 서둘러 도와 달라는 간구도 12절에서 다시 나타납니다. 그렇다고 정확히 어느 시대에 누가 이러한 표현들을 하나로 모았는지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시인이 하나님께 호소하면서 이스라엘의 오랜 기도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노년이 되어서야 만난 분이 아니다

시편 71:5–8 본문 →

시인은 이제 자신의 지나온 삶을 돌아봅니다.

주 여호와야훼, 당신은 내 희망, 젊은 날부터 내가 의지해 온 분이시기 때문입니다.시편 71:5 · 두루새김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게 된 특별한 순간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대신 젊을 때부터 하나님을 의지해 왔다고 말합니다. 6절에서는 그 시간이 더욱 멀리 거슬러 올라갑니다.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나는 당신께 기대어 왔습니다. 어머니 몸에서 나를 끌어내신 분도 당신이십니다. 내 찬양은 언제나 당신을 향합니다.시편 71:6 · 두루새김

「어머니 배 속에서 저를 나오게 하신 분」이라는 표현은 태어나는 일을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바라보게 합니다. 시인은 자신의 탄생을 우연히 시작된 생애로만 바라보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을 의식하기 이전부터 하나님께서 자기 삶에 관여하셨다고 고백합니다. 아직 하나님을 부를 줄 몰랐을 때부터 자신은 하나님께 붙들린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지금 노년의 위기에서 갑자기 새로운 보호자를 찾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의 삶을 시작하게 하신 하나님께 그 삶을 끝까지 붙들어 달라고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7절에서는 뜻밖의 표현이 등장합니다.

많은 사람에게 나는 기이한 징표가 되었으나 당신은 내가 몸을 피할 든든한 곳이십니다.시편 71:7 · 두루새김

「놀라운 표징」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모페트(⁨מוֹפֵת⁩)는 특별한 표적이나 놀라운 사건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표징들을 묘사할 때 사용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시인이 많은 사람에게 「놀라운 표징」이 되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하나는 시인이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와 구원을 경험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놀라운 본보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의 고난이 너무 심하여 사람들이 그를 불길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으로 바라보았다는 것입니다. 바로 뒤에서 원수들이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셨다고 말하는 점을 고려하면, 이 가능성도 가볍게 넘길 수 없습니다. 본문은 어느 의미가 의도되었는지 명확하게 밝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인의 다음 고백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저의 든든한 피난처이십니다.」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바라보든, 그는 하나님을 자신의 피난처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시인은 자기 삶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를 마지막 판단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8절에서 그는 자신의 입이 온종일 하나님의 찬양으로 가득하기를 구합니다.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과 그가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찬양 사이에 대조가 생깁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어떤 표징으로 해석하든, 시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에서 어떤 분이셨는지를 찬양하려 합니다.

조금 더 깊이

6절은 시편 22:9–10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곳에서도 시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어머니 배 속에서 나오게 하시고 어머니의 품에서부터 의지하게 하셨다고 고백합니다. 「나오게 하신 분」으로 옮긴 원문의 말은 자르거나 떼어 내는 의미를 지닌 동사와 관련되어, 출생 과정에서 아이를 어머니의 배 속에서 분리하여 나오게 하신 하나님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를 구체적으로 탯줄을 자르는 행위와 연결하는 해석도 가능하지만, 본문 자체가 그 동작을 명시하지는 않습니다. 이사야 46:3–4에서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해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짊어지고 왔으며, 늙고 머리가 희어질 때까지 자신이 그들을 짊어지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사야서에서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삶 전체를 떠맡으시는 분으로 나타나시고, 시편 71편에서는 한 사람이 자신의 삶 전체를 돌아보며 바로 그 하나님께 버림받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사람의 힘은 세월에 따라 달라지지만,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는 관계가 사람의 힘에 의해 유지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늙어 가는 사람에게 가장 두려운 말

시편 71:9–13 본문 →

9절에서 시인은 노년의 두려움을 직접 드러냅니다.

늙을 때 나를 내던지지 마십시오. 힘이 다할 때 나를 버리지 마십시오.시편 71:9 · 두루새김

이것은 단순히 늙는 것이 싫다는 탄식이 아닙니다. 시인은 자신의 힘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하나님께 버림받는 일을 두려워합니다.

그 두려움에는 구체적인 사회적 현실이 놓여 있습니다. 「원수들이 저를 두고 말하며, 제 목숨을 노리는 자들이 함께 의논하기 때문입니다.」(10절) 원수들은 시인이 약해진 것을 기회로 삼고 있습니다. 그들이 내세우는 이유는 11절에서 드러납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셨다. 뒤쫓아 붙잡아라. 구해 줄 이가 없으니!」시편 71:11 · 두루새김

시인이 약해졌다는 사실을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증거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겹쳐 있습니다.

첫째, 그들은 시인이 약해진 틈을 이용합니다. 다른 사람의 힘없음을 공격할 기회로 삼습니다. 둘째, 그들은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하나님과 시인의 관계까지 판정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그를 버리셨으니 자신들이 그를 공격해도 막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조롱보다 무서운 말입니다. 원수들은 시인의 현재 상황만을 평가하지 않습니다. 그의 미래까지 결정된 것처럼 말합니다. 「구해 줄 사람이 없어.」 그 말은 시인의 남은 가능성을 모두 닫아 버리려는 선언입니다.

그런데 시인은 그들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하나님, 내게서 멀리 계시지 마십시오. 나의 하나님, 서둘러 나를 도와주십시오.시편 71:12 · 두루새김

원수들은 하나님께서 시인을 버리셨다고 말합니다. 시인은 하나님께 자신을 버리지 말아 달라고 기도합니다. 겉으로 보면 같은 가능성을 두고 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원수들의 말은 하나님과 시인의 관계가 이미 끝났다는 선언입니다. 시인의 기도는 그 관계를 계속 붙드는 요청입니다.

원수들이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셨어」라고 말하는 순간에도, 시인은 하나님을 「제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믿음은 자신이 약해졌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시인은 힘이 다해 간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믿음은 그 약해짐이 하나님과의 관계까지 끝내 버렸다는 원수들의 판단을 받아들이지 않는 데 있습니다.

13절에서 시인은 자신을 해치려는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고 끝장나기를 구합니다.

내 목숨에 맞서는 자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고 망하기를, 나를 해치려는 자들이 모욕과 수치를 뒤집어쓰기를 빕니다.시편 71:13 · 두루새김

이것은 앞선 시편들에서도 들었던 거친 심판의 기도입니다. 여기서는 특별히 원수들이 시인의 힘없음을 이용하여 그를 해치려 한다는 문맥에서 나옵니다. 시인은 그들의 판단이 옳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를 바랍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보호가 끝났다고 생각한 사람이 실제로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한다면, 그들의 조롱과 확신이 잘못되었다는 사실도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기도에는 원수들에 대한 심판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버리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기를 바라는 소망도 담겨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신약에서는 히브리서 13:5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신다는 구약의 약속을 다시 인용합니다. 이는 시편 71편을 직접 인용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의 관계를 신실하게 지키신다는 공통된 주제를 보여 줍니다. 그러나 시편 71편만의 목소리는 먼저 이스라엘의 오랜 신앙 경험 안에서 들어야 합니다.

다 헤아릴 수 없는 구원을 계속 이야기하겠다

시편 71:14–16 본문 →

14절에서 시인은 원수들의 말에서 자신의 고백으로 시선을 돌립니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희망을 품고 기다리며 당신을 향한 모든 찬양에 내 찬양을 더하겠습니다.시편 71:14 · 두루새김

「그러나 저는」이라는 표현이 앞의 장면과 뚜렷한 대조를 이룹니다. 원수들은 시인의 미래를 이미 결정된 것처럼 말합니다. 그러나 시인은 여전히 희망을 품고 기다리겠다고 말합니다.

그는 찬양을 멈추지 않겠다고 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시인은 자신이 이제까지 하나님을 찬양해 왔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하나님에 관하여 더 말하고 싶어 합니다.

오랫동안 하나님을 의지했으니 더 이상 배울 것도, 이야기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나온 세월이 길수록 하나님에 관하여 이야기할 것이 더 많아졌다고 느낍니다. 15절은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내 입은 당신의 의로움을 이야기하며 온종일 당신의 구원을 전합니다. 내가 다 셀 수조차 없으니.시편 71:15 · 두루새김

「다 헤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סְפֹרָה⁩)로 옮긴 원문의 말은 수를 세거나 헤아리는 일과 관련됩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의롭게 하신 일들과 구원의 행위가 자신이 셀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고 고백합니다. 시인은 한평생 하나님을 경험했지만, 그 경험으로도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다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가 하나님에 관하여 이야기할 것이 많은 이유는 하나님을 완전히 이해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다 헤아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의 시간이 길어진다고 해서 사람이 하나님의 모든 뜻을 알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시편 71편의 시인은 많은 세월을 살았지만, 현재의 고난 앞에서 여전히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고 있습니다. 오랜 신앙의 깊이는 하나님에 관하여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는 확신보다, 자신이 경험한 것보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더 크다는 깨달음에서 드러날 수 있습니다.

주 여호와야훼의 크신 힘에 기대어 나아가 당신의 의로움을, 오직 당신의 의로움만을 알리겠습니다.시편 71:16 · 두루새김

시인은 자신의 능력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그는 앞서 자신의 힘이 다해 간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나아가겠다고 선언합니다. 자신에게 충분한 힘이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하신 일들을 전하러 나아가려는 것입니다.

또한 그는 자신이 오랫동안 하나님을 잘 믿어 왔다는 이야기를 중심에 놓지 않습니다. 자신을 붙들고 구원하신 하나님의 의로움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이것이 다음 단락에서 더욱 분명해집니다.

조금 더 깊이

16절 앞부분은 원문에서 하나님의 강력한 행위들을 가지고 나아가거나, 그것들을 의지하여 앞으로 나아간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디로 나아가는지를 반드시 이동의 장면으로 확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께 배우던 사람이 다음 세대에게 전하는 사람이 되다

시편 71:17–18 본문 →

시편 71편의 중심을 이루는 장면입니다.

하나님, 당신은 젊은 날부터 나를 가르치셨고 나는 지금까지 당신의 놀라운 일들을 전해 왔습니다.시편 71:17 · 두루새김

시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호하셨고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넘어, 하나님께서 자신을 가르쳐 오셨다고 고백합니다. 그것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직접 음성으로 말씀하셨다는 뜻일 필요는 없습니다. 시인이 하나님의 말씀과 행하신 일을 통해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배워 왔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는 젊을 때부터 하나님께 배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배운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 18절에서 그는 노년의 소망을 말합니다.

하나님, 늙어 머리가 하얗게 세어도 당신의 팔을 다음 세대에, 당신의 힘을 앞으로 올 모든 이에게 내가 알릴 때까지 나를 버리지 마십시오.시편 71:18 · 두루새김

9절에서도 시인은 늙을 때 자신을 버리지 말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18절에서는 그 요청의 목적이 구체적으로 나타납니다. 그는 단지 오래 살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다음 세대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힘센 팔」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능력을 펼치시는 모습을 나타내는 구약의 익숙한 이미지입니다. 따라서 시인이 다음 세대에게 하나님의 힘센 팔을 알리고 싶다고 말하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께 힘이 많다는 막연한 지식을 전하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실제 역사 속에서 자신의 백성을 어떻게 구원하셨는지를 알리고 싶다는 것입니다.

젊었을 때는 하나님께 배웠습니다. 지금까지 그분의 놀라운 일을 알렸습니다. 그리고 머리가 하얗게 된 뒤에도 그 이야기를 계속 전하고 싶어 합니다.

여기서 시인의 노년은 단순히 지나간 삶의 마지막 단계가 아닙니다. 다음 세대와 이어지는 자리가 됩니다.

그는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을 자신의 생애 안에만 남겨 두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아직 태어나지 않았거나, 아직 하나님의 능력을 충분히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까지 그 이야기가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그의 몸은 약해지고 있습니다. 원수들은 그 약함을 보고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 판단합니다. 그러나 시인은 자신의 남은 삶에도 여전히 의미가 있다고 믿습니다. 그 의미는 자신이 과거에 얼마나 많은 일을 이루었는지가 아니라, 앞으로 누구에게 무엇을 전할 수 있는가에 있습니다.

시인은 젊은 시절의 힘을 되찾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백발이 된 자신에게도 하나님의 이야기를 전할 시간이 남아 있기를 구합니다.

조금 더 깊이

출애굽기 6:6에서 하나님께서는 뻗은 팔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신명기 4:34에서도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신 하나님의 행동이 강한 손과 편 팔로 묘사됩니다. 신명기 6:20–25에서 자녀가 하나님의 계명을 물으면, 부모는 단순히 계명의 목록을 알려 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신들이 이집트에서 종살이했으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끌어 내셨다는 이야기를 전해야 합니다. 시편 78:4–7에서도 조상들이 알게 된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을 자손들에게 전하여,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까지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신앙은 한 세대가 경험한 구원의 기억을 다음 세대가 배우도록 하는 일을 중요하게 여겼고, 시편 71편의 시인 역시 자신의 생애를 그 흐름 안에서 바라봅니다.

깊은 곳까지 내려간 삶을 다시 끌어 올리시는 하나님

시편 71:19–21 본문 →

19절에서 시인은 하나님의 의로움을 다시 찬양합니다.

하나님, 당신의 의로움은 하늘 높이 이릅니다. 그토록 큰일들을 하신 하나님, 누가 당신과 같겠습니까?시편 71:19 · 두루새김

시인의 시선이 자신의 줄어든 힘과 좁아진 가능성을 넘어 하나님의 크심을 향합니다. 「누가 주님과 같겠습니까?」라는 물음은 출애굽기 15:11의 승리 노래를 떠올리게 합니다. 이스라엘은 바다를 건넌 뒤 하나님과 같은 분이 누구냐고 노래했습니다.

그러나 곧이어 나오는 20절은 쉽게 지나칠 수 없는 긴장을 품고 있습니다.

많고도 쓰라린 고난을 내게 겪게 하신 당신은 나를 다시 살리시고 땅속 깊은 곳에서 나를 다시 끌어 올리실 것입니다.시편 71:20 · 두루새김

시인은 먼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많고도 혹독한 고난을 겪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이는 모든 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권한과 인간의 고난을 매우 밀접하게 연결하는 표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좋은 일만 주셨고, 나쁜 일은 하나님과 무관하게 일어났다고 정리하고 싶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이 겪은 고난마저 하나님 앞에서 이해하려 합니다.

그렇다고 각각의 고난이 왜 일어났는지 알고 있다고 주장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자신이 겪어 온 많고도 혹독한 고난을 하나님께서 아시며, 그 삶을 다시 일으키실 분도 하나님이라고 믿습니다.

「땅속 깊은 곳」은 땅의 깊은 곳을 가리키는 말로, 죽음의 영역을 떠올리게 할 수도 있고, 죽음에 가까운 절망과 고난을 묘사하는 시적 이미지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시편 71편 자체는 시인이 실제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건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문맥에서 가장 직접적인 의미는 죽음의 깊이에 이른 것 같은 위기에서 다시 생명을 얻고 회복되리라는 소망입니다.

시인은 많은 고난 때문에 아래로 내려간 듯한 삶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다시 위로 끌어 올리실 것입니다. 처음에는 자신이 들어가 피할 수 있는 단단한 장소를 구했습니다. 이제는 땅속 깊은 곳에서 자신을 다시 끌어 올려 주실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자기 힘으로 올라올 수 없는 깊은 곳에서도 하나님의 구원은 미칠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21절은 그 회복을 더욱 개인적인 말로 표현합니다.

나를 더욱 높여 주시고 다시 돌아와 나를 위로해 주십시오.시편 71:21 · 두루새김

여기서 「저를 더욱 높여 주시고」라는 말을 반드시 사회적 지위나 권력이 커진다는 뜻으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원문의 이 말은 크기나 위대함, 존귀함과 관련된 말입니다. 원수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하고 하나님께 버림받은 사람처럼 취급받은 문맥에서, 이 고백은 잃어버린 존귀함을 회복시키실 것이라는 기대와 연결하여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시인은 자신이 겪었던 고난의 시간을 없었던 일로 만들지 않습니다. 그 고난을 겪은 바로 그 사람이 다시 살아나고 위로받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단순히 젊은 시절의 상태로 돌아가는 회복이 아닙니다. 많은 고난을 통과한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서 다시 일으켜 세우실 것이라는 소망입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본문의 기록된 형태에는 20절 앞부분에 「우리에게 보이신」, 「우리를 다시 살리실」이라는 복수형 표현이 남아 있습니다. 반면 전승된 낭독 형태는 「제게 보이신」, 「저를 다시 살리실」이라는 단수형으로 읽습니다. 두루새김은 단수형을 따라 옮겼습니다. 이는 시편 전체가 한 사람의 삶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같은 절 마지막에도 「저를 다시 끌어 올려 주실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흐름과 잘 어울립니다. 다만 복수형 기록도 고대 본문 전승에 남아 있다는 점은 기억할 만합니다. 21절의 「다시 저를 위로해 주실 것입니다」에는 하나님께서 다시 그에게 향하시거나, 거듭 위로하신다는 의미가 담길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동작을 확정하기는 어렵지만 하나님의 돌보심이 회복되리라는 기대는 분명합니다.

늙어 가는 몸과 계속 노래하는 입술

시편 71:22–24 본문 →

마지막 세 절에서는 시인의 입술과 악기가 등장합니다.

나의 하나님, 나도 하프를 타며 당신의 진실하심에 감사하겠습니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리라를 타며 당신께 노래하겠습니다.시편 71:22 · 두루새김

네벨과 리라는 고대 이스라엘에서 사용한 현악기를 가리킵니다. 정확한 형태와 구조를 현대의 특정 악기에 완전히 대응시키기는 어렵습니다.

시인은 단지 하나님께 마음으로 감사하겠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하는 모습을 그립니다. 앞에서는 자신의 힘이 다해 간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사용합니다.

몸의 약해짐과 찬양의 생동감이 함께 놓입니다.

내가 당신께 찬양 노래를 부를 때 내 입술이 기뻐 외칠 것입니다. 당신이 구해 내신 내 목숨도 함께 기뻐 외칠 것입니다.시편 71:23 · 두루새김

「영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네페시(⁨נֶפֶשׁ⁩)는 사람의 생명이나 자기 자신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표현을 몸과 분리된 어떤 영적인 부분만이 노래한다는 뜻으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시인은 자신이 살아 있는 존재 전체로 하나님을 찬양할 것을 말합니다.

「구해 내신」(⁨פָּדָה⁩)이라는 표현은 원문에서 값을 치르거나 필요한 행동을 통해 누군가를 속박이나 위험에서 되찾아 오는 행위와 관련됩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그렇게 되찾아 주시는 분으로 묘사되십니다(출애굽기 6:6; 이사야 43:1). 시인은 자신이 단순히 위험을 피해 운 좋게 살아남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되찾아 주신 생명을 지닌 사람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렇게 자신의 생애를 이해하는 사람에게 찬양은 자신이 이룬 업적을 자랑하는 행동이 아닙니다. 자신을 붙들고 구원하신 분께 감사하는 행동입니다.

내 혀도 온종일 당신의 의로움을 읊조릴 것입니다. 참으로 나를 해치려던 자들이 부끄러움을 당했습니다. 참으로 그들이 수치에 휩싸였습니다.시편 71:24 · 두루새김

앞에서 시인은 원수들이 수치를 당하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절에서는 그들이 이미 부끄러움을 당했다고 말합니다. 이것을 실제로 원수들이 패배한 뒤 시인이 감사하는 장면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반면 시편에 구원의 구체적인 사건이 보고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앞으로 이루어질 구원을 확신하며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노래하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본문만으로 시인의 상황이 어느 시점에서 바뀌었는지를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마지막에 남는 목소리입니다.

처음에는 원수들이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셨어」라고 시인을 두고 말합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시인의 혀가 하나님의 의로움을 읊조립니다. 이 장면에서 중요한 것은 단지 누가 마지막에 옳았는가가 아닙니다.

누구의 말이 마지막까지 남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편을 읽는다는 것

시편 71:1–24 본문 →

시편 71편은 나이가 들어 가는 사람에게만 필요한 본문이 아닙니다.

젊은 사람도 자신의 힘이 줄어드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이전에는 당연하게 여겼던 능력을 잃거나,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구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사람은 자신의 가치까지 줄어들었다고 느끼기 쉽습니다. 시편 71편의 원수들이 바로 그런 판단을 내립니다.

그러나 시인은 자신의 가치와 미래를 원수들의 판단에 맡기지 않습니다. 그는 힘이 줄어드는 현실을 인정하지만, 그 현실이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증거라고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 시편에서 나이가 든 사람은 단지 누군가의 보호를 받는 사람으로만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는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동시에 전해 줄 이야기가 있는 사람입니다.

누군가가 오랫동안 병들거나, 늙어서 힘을 잃거나, 이전과 같은 일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의 삶을 무엇으로 평가합니까?

그가 전하려는 것은 자신의 위대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움과 구원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실패와 상처와 고난까지도 그 이야기에서 빼놓을 필요가 없습니다. 시편 71편의 시인은 모든 문제에 답을 얻은 뒤 다음 세대에게 말하려는 사람이 아닙니다. 여전히 버림받지 않기를 기도하고, 구원을 기다리고,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그가 전하는 믿음의 힘은 고난이 없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고난이 많았음에도 하나님께 계속 말을 걸어 왔다는 데 있습니다.

시편 71편의 마지막 장면을 다시 바라봅니다.

처음에 시인은 자신의 힘이 다해 간다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셨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는 늙고 머리가 하얗게 되는 동안에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붙들어 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시인은 더 이상 자신의 약함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는 악기를 연주합니다.

네벨과 리라의 소리가 들리고, 그의 입술은 기뻐 외칩니다. 그의 혀는 온종일 하나님의 의로움을 읊조립니다. 노년의 몸은 여전히 늙은 몸입니다. 시편은 그 몸이 다시 젊어졌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에게는 여전히 노래할 입술이 있고, 전해야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가장 간절하게 바라던 일도 여전히 우리 앞에 남아 있습니다. 「다음 세대에 주님의 힘센 팔을 알리고 앞으로 올 모든 사람에게 주님의 능력을 전할 때까지 저를 버리지 마십시오.」

그리하여 그의 백발은 지나간 세월의 흔적일 뿐 아니라, 아직 전해지지 않은 하나님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시간이 됩니다.

한평생 하나님께 배우던 사람이 이제 다음 세대에게 그 하나님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시편 71편은 그 늙은 사람의 입술에서 울려 나오는 찬양으로 끝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