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서 풀어 읽기 · 14장

이 장의 자리 · 1–23장 · 지혜의 시작

유한한 삶과 지혜의 그늘

재산을 많이 모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남에게도 쓰지 않고 자신에게도 쓰지 않습니다. 무엇이든 아끼며 살아가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재산은 그를 행복하게 하지 못합니다. 지혜자는 그런 사람을 가리켜 자기 자신에게까지 못되게 구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재산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요?

그런데 이 장은 재물을 잘 쓰는 방법만 가르치고 끝나지 않습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낡아 가는 겉옷 같고, 인간의 세대가 떨어지고 돋아나는 나뭇잎 같다는 사실을 이야기한 뒤, 갑자기 지혜를 찾아 나서는 한 사람을 등장시킵니다. 그는 지혜의 뒤를 쫓고, 지혜의 창문을 들여다보고, 지혜의 집 곁에 천막을 세웁니다. 마침내 지혜의 가지 아래에서 쉬며 뜨거운 햇볕을 피합니다.

왜 죽음과 재산에 관한 가르침이 지혜의 집과 나무 아래에서 끝나는 것일까요?

이 장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재산을 자기 곁에 붙들어 두려다가 삶의 기쁨을 잃는 사람과, 지혜를 얻기 위해 그 곁으로 다가가 마침내 좋은 거처를 발견하는 사람입니다.

두 사람 모두 무언가를 원하고 추구하지만, 그들이 얻는 결과는 전혀 다릅니다.

읽는 시간 19분소단락 814장 본문 읽기 →

복된 사람은 자기 마음의 책망을 피하지 않는다

집회서 14:1–2 본문 →

이 장은 두 번의 복 선언으로 시작합니다.

말로 실수하지 않고, 죄 때문에 생긴 슬픔에 마음이 찔리지 않은 사람은 복이 있다.집회서 14:1 · 두루새김
자기 마음이 자신을 책망하지 않고, 자기 희망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은 사람은 복이 있다.집회서 14:2 · 두루새김

집회서는 인간의 말이 얼마나 큰 결과를 가져오는지 여러 차례 강조합니다. 말을 함부로 내뱉으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힐 뿐 아니라 자신도 후회하게 됩니다. 여기서는 그 후회를 「마음이 찔리지 않은」이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죄를 지은 뒤에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마음이 아파지는 모습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잘못이 없다고 억지로 주장하는 태도가 아닙니다. 자신의 삶과 양심이 서로 어긋나지 않도록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람은 잘못된 행동 때문에 양심의 평안을 잃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살아갈 희망까지 잃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양심의 책망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도 앞으로의 좋은 것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지혜자는 복된 사람을 소개하면서 재산이나 성공을 말하지 않습니다. 먼저 마음의 평안과 희망을 말합니다.

그런데 곧이어 등장하는 사람은 재산은 많이 가지고 있지만 바로 그 평안과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자기 자신에게까지 인색한 사람

집회서 14:3–10 본문 →

쩨쩨한 사람에게 재산은 좋지 않다. 인색한 사람에게 재물이 무슨 소용이겠느냐?집회서 14:3 · 두루새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재산을 많이 가진 사람을 부유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혜자의 눈에는 재산을 아무리 많이 소유해도 그것을 제대로 사용할 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에게 재산은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수단이 아닙니다. 그저 계속 모아야 하는 대상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쓰지 않고 재산을 모으는 사람은 남들을 위해 모으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이 그 재산으로 즐거움을 누릴 것이다.집회서 14:4 · 두루새김

여기서 역설이 생깁니다. 자신의 재산을 누구에게도 주고 싶지 않았던 사람이 결국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남깁니다. 자신은 누리지 못했던 것을 다른 사람들이 누립니다.

자기 자신에게도 못되게 구는 사람이 누구에게 잘하겠느냐? 그는 제 재물로 결코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집회서 14:5 · 두루새김

무언가를 누릴 기회가 있어도 누리지 않고, 필요한 곳에 사용할 수 있어도 아까워합니다. 이러한 행동은 얼핏 절제와 비슷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혜자가 비판하는 것은 절제가 아닙니다. 절제는 더 중요한 것을 위해 자신의 욕망을 조절하는 태도입니다. 반면 여기의 인색함은 재산을 잃기 싫다는 마음 때문에 자신에게 필요한 좋은 것마저 거절하는 태도입니다.

절제하는 사람은 무엇을 위해 아끼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색한 사람은 아끼는 행위 자체에 사로잡혀 자신이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잊어버립니다.

자기 자신에게까지 인색한 사람보다 더 악한 사람은 없다. 이것이 그의 악에 대한 갚음이다.집회서 14:6 · 두루새김

그가 받는 벌은 재산을 잃는 것이 아닙니다.

재산이 있어도 그 재산으로 기뻐하지 못하는 삶 자체가 그의 벌입니다.

그는 가진 것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그 과정에서 가진 것이 줄 수 있는 좋은 것들을 이미 잃어버립니다.

7절은 그 사람이 가끔 선을 베풀더라도 그것이 무심결에 이루어질 뿐이라고 합니다. 이는 그의 모든 행동을 하나하나 판정하는 객관적인 기록이라기보다, 그의 인색한 성향이 얼마나 깊이 자리 잡았는지를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8–10절에서는 특별히 「눈」이 반복됩니다.

인색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악하다. 그는 얼굴을 돌리고 사람들을 업신여긴다.집회서 14:8 · 두루새김
욕심 많은 사람의 눈은 제 몫으로 채워지지 않고, 악한 불의는 마음을 바싹 말릴 것이다.집회서 14:9 · 두루새김
악한 눈은 빵을 아까워하고, 그 사람의 밥상에는 먹을 것이 모자란다.집회서 14:10 · 두루새김

세 구절에서 눈은 단순히 사물을 바라보는 신체 기관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과 재물을 바라보는 마음의 태도를 드러냅니다. 10절의 「악한 눈」은 고대의 지혜문학에서 인색함과 시기심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사용됩니다. 8절의 「인색한 눈」도 이런 태도를 보여 줍니다.

이 사람에게는 자기 몫이 주어져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바라보며 더 가지기를 원하고, 정작 자신이 가진 것은 내놓기 싫어합니다.

욕심은 단순히 재산을 늘리는 행동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마음을 메마르게 만듭니다.

그리고 10절에서 그 메마름이 식탁으로 옮겨집니다.

식탁은 본래 음식을 먹으며 기쁨을 누리고 사람들과 함께하는 장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색한 사람의 식탁은 누군가에게 음식을 내어 주기도, 자신이 충분히 먹기도 어려운 장소가 됩니다.

가난해서 먹을 것이 없는 사람과, 먹을 것이 있으면서도 아까워서 먹지 못하는 사람은 다릅니다. 지혜자가 지금 비판하는 사람은 후자입니다.

이제 지혜자는 인색한 사람을 묘사하는 일을 멈추고 독자에게 직접 말합니다.

자신에게 잘해 주고, 하나님께 드리고, 친구에게 나누어 주라

집회서 14:11–13 본문 →

얘야, 네가 가진 만큼 너 자신에게 잘해 주고, 주에게 예물을 합당하게 바쳐라.집회서 14:11 · 두루새김

이 구절에는 앞에서 묘사한 인색한 사람과 정반대의 삶이 나타납니다.

재산을 가지고도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이 아끼라는 명령이 아닙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적절하게 누릴 줄 배우라는 권고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표현은 「네가 가진 만큼」입니다. 자신에게 잘해 주라는 말은 능력을 넘어 사치하거나 욕망을 끝없이 만족시키라는 뜻이 아닙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형편 안에서 좋은 것을 누리라는 뜻입니다.

자신에게 잘해 주는 일과 하나님께 예물을 바치는 일이 나란히 놓입니다. 하나님께 드릴 것을 드리고, 자기 자신에게도 좋은 것을 허락하는 삶입니다.

이어지는 13절에서는 그 삶이 다른 사람에게까지 넓어집니다.

네가 죽기 전에 친구에게 잘해 주고, 네 힘이 닿는 대로 손을 내밀어 그에게 주어라.집회서 14:13 · 두루새김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 자신을 학대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에게 좋은 것을 누리기 위해 친구에게 인색해져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지혜자는 자신이 가진 것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삶을 가르칩니다.

특히 13절의 「손을 내밀어」라는 표현은 앞의 인색한 사람과 좋은 대조를 이룹니다. 앞에서 인색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얼굴을 돌렸습니다. 그는 자기 빵을 내놓기 싫어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손을 뻗어 다른 사람에게 줍니다.

한 사람에게 재산은 잃지 않기 위해 붙들어야 하는 대상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재산은 자신과 다른 사람의 삶에 좋은 것을 이루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선물입니다.

그렇다면 지혜자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재산을 사용하라고 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답이 12절에 있습니다.

죽음이 늦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라. 하데스의 약정은 네게 알려지지 않았다.집회서 14:12 · 두루새김

우리가 모르는 것은 죽음이 언제 찾아올지입니다.

따라서 죽음이 늦어지지 않는다는 말은 모두가 곧 죽는다는 예측이 아니라, 죽음을 자신의 계획에 맞춰 미룰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재산을 모으는 사람은 언젠가 그 재산을 사용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삶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남아 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지혜자는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행동 자체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위해 현재 누릴 수 있는 모든 좋은 것을 끝없이 미루는 삶을 경계합니다.

여기서 죽음에 대한 기억은 삶의 즐거움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금의 삶을 소중하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조금 더 깊이

「하데스」는 히브리어 성경의 「스올」에 대응하는 표현으로 자주 사용되며, 여기서는 후대의 지옥 개념보다는 인간의 죽음과 죽은 사람들의 세계를 가리키는 말로 이해해야 합니다.

좋은 날을 놓치지 마라 — 유한한 삶을 누리는 지혜

집회서 14:14–16 본문 →

좋은 날을 놓치지 말고, 네가 바라는 좋은 것의 몫이 너를 비껴가지 않게 해라.집회서 14:14 · 두루새김

성경에서 욕망은 탐욕이나 죄와 연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지혜자는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 자체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원문에서는 여기에 「좋은」(ἀγαθός)이라는 말이 붙어 그 욕망의 성격을 분명히 합니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바라는 좋은 것은 무엇일까요?

본문은 구체적인 목록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앞뒤 문맥은 그 범위를 이해하게 합니다. 자신을 잘 돌보는 일, 하나님께 합당하게 드리는 일, 친구에게 좋은 것을 나누어 주는 일, 자신에게 주어진 좋은 날을 누리는 일입니다.

지혜자가 권하는 즐거움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거나 자신을 파괴하는 욕망이 아니라, 하나님과 자신과 이웃 사이에서 바르게 누릴 수 있는 좋은 것입니다.

15절은 다시 한번 유산을 이야기합니다.

네가 애써 얻은 것을 결국 남에게 남겨 주지 않겠느냐? 네가 수고해서 모은 것도 다른 사람들이 나누어 물려받지 않겠느냐?집회서 14:15 · 두루새김

4절에서는 인색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 재산을 모으고 있다고 했습니다. 15절은 같은 사실을 다시 언급하지만, 이번에는 독자가 그 결과를 미리 생각하도록 만듭니다. 결국 남기게 될 재산이라면, 살아 있는 동안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생각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주고받아라. 그리고 네 마음을 달래라. 하데스에서는 즐거움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집회서 14:16 · 두루새김

앞에서는 인색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주지도 않고 자신도 누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혜로운 사람은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일도 좋고, 자신에게 주어지는 좋은 것을 받아 누리는 일도 좋습니다.

지혜자는 이것을 마음을 달래는 일과 연결합니다.

「네 마음을 달래라」(ἀπατάω)의 원문은 문자적으로 「네 마음을 속이라」는 뜻이며, 이 문맥에서는 마음을 달래거나 흡족하게 한다는 의미를 나타냅니다. 따라서 이 표현은 단순히 평안을 유지하라는 말보다는 자신에게 즐거움을 허락하라는 적극적인 권고로 읽을 여지가 있습니다.

인간은 살아 있는 동안 먹고 마시며 친구와 함께하고, 좋은 것을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 이후의 세계를 지금처럼 즐거움을 누리고 재산을 사용할 수 있는 곳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데스에서는 즐거움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라는 표현은 고대 지혜문학에서 인간의 현재 삶과 죽음을 대비하는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죽은 사람들의 상태에 관한 모든 신학적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전도서 5:18–20에도 비슷한 통찰이 나옵니다. 사람이 수고하며 살아가는 동안 먹고 마시며 자기 수고의 좋은 것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몫이라는 것입니다. 전도서 3:12–13은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기뻐하고 선을 행하며 자기 수고 가운데 좋은 것을 누리는 일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지혜자는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는 이제 죽음이라는 사실을 더욱 직접적으로 바라봅니다.

낡아 가는 옷과 떨어지는 나뭇잎

집회서 14:17–19 본문 →

살아 있는 모든 것은 겉옷처럼 낡아 간다. 예로부터 내려온 약정은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라는 것이기 때문이다.집회서 14:17 · 두루새김

앞에서는 죽음의 시간이 알려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죽음 자체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말합니다.

새 옷도 시간이 지나면 해지고 낡습니다. 처음에는 아무리 튼튼하고 아름다워 보여도 그것을 영원히 처음 모습 그대로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의 몸도 그렇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몸이 자라고 힘이 생기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약해지고 낡아 갑니다. 지혜자는 인간의 몸을 예외적인 존재로 보지 않습니다.

18절에서는 비유가 옷에서 나무로 바뀝니다.

잎이 무성한 나무가 어떤 잎은 떨어뜨리고 다른 잎은 돋게 하듯, 살과 피를 지닌 세대도 한 세대는 죽고 다른 세대는 태어난다.집회서 14:18 · 두루새김

떨어진 잎과 새로 돋아난 잎은 서로 다릅니다. 그러나 나무는 계속해서 잎을 내며 자라납니다. 이 비유는 인간의 세대가 이어지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한 사람에게 자신의 죽음은 세상의 끝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그가 떠난 뒤에도 다른 사람들의 삶은 계속됩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을 삶의 모든 중심으로 생각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모은 재산을 다른 사람이 사용하게 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세대의 흐름 속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19절에서는 사람뿐 아니라 사람이 만든 것까지 시야에 들어옵니다.

사람이 만든 것은 모두 썩어 사라지고, 그것을 만든 사람도 그것과 함께 떠날 것이다.집회서 14:19 · 두루새김

사람은 무언가를 만들고 남기려고 애씁니다. 집을 짓고 재산을 모으며, 자신이 이룬 일이 오래도록 남기를 바랍니다. 문맥은 인간의 수고와 그 결과물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쇠퇴한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지혜자는 또다시 복된 사람을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앞에서는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찾아온다고 말했습니다. 이제는 그 유한한 삶을 어떤 방향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조금 더 깊이

특히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라는 표현은 창세기 2:17의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창세기에서는 에덴동산에서 주어진 명령과 죽음의 경고가 등장합니다. 집회서는 그 표현을 인간 모두에게 적용되는 죽음의 현실을 설명하는 데 사용합니다.

지혜를 뒤쫓는 사람 — 복을 얻기 위해 찾아 나서다

집회서 14:20–23 본문 →

지혜 안에서 삶을 마치고, 자기 깨달음으로 생각을 나눌 사람은 복이 있다.집회서 14:20 · 두루새김

이 구절은 1–2절의 복 선언과 연결됩니다.

처음에는 양심의 책망과 희망이 문제였습니다. 이제는 지혜가 문제가 됩니다. 모든 사람은 죽지만, 지혜 안에서 삶을 마치는 사람은 복되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지혜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할까요?

그는 마음속으로 지혜의 길들을 생각하고, 지혜의 숨은 것들에서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집회서 14:21 · 두루새김

지혜자는 지혜를 단순히 머릿속에 넣어 두는 지식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지혜에는 「길들」이 있습니다. 사람이 그 길을 살펴보고 따라갈 수 있습니다. 또한 지혜에는 「숨은 것들」이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아서는 이해할 수 없는 깊은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지혜를 한 번 듣고 모든 것을 알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의미를 되새기고 자신이 경험하는 삶과 연결하면서 더 깊이 이해하려 합니다.

22절에서는 이 탐구가 더욱 적극적인 행동으로 표현됩니다.

발자국을 쫓는 사람처럼 지혜를 뒤따라 나서고, 지혜의 집 입구에서 숨어 기다려라.집회서 14:22 · 두루새김

그는 자신이 찾는 대상을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지 않습니다. 흔적을 살피고, 길을 따라 움직이고, 그 대상이 나타날 만한 곳에서 기다립니다.

악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해치기 위해 기회를 기다리지만, 지혜를 찾는 사람은 깨달음을 얻을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기다립니다.

적극적인 추구와 끈질긴 기다림이 함께 등장합니다.

지혜의 창문으로 몸을 굽혀 들여다보는 사람은 지혜의 문간에서 귀를 기울일 것이다.집회서 14:23 · 두루새김

지혜가 집 안에 사는 사람처럼 묘사됩니다. 그런데 지혜를 찾는 사람은 아직 집 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는 지혜의 집을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안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 살피고, 무슨 말이 들리는지 귀를 기울입니다. 지혜를 얻으려면 가까이 다가가고, 오래 살피며, 계속 들으려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이 사람은 아직 자신이 지혜를 완전히 소유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문 앞에서 배우려는 사람입니다.

앞의 인색한 사람은 이미 재산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더 많이 가지려고 했습니다. 반면 지혜를 찾는 사람은 자신에게 아직 부족한 것이 있음을 인정합니다.

한 사람은 가진 것을 잃지 않으려고 움켜쥐고, 다른 사람은 아직 얻지 못한 것을 배우기 위해 마음을 엽니다.

조금 더 깊이

두루새김은 한 그리스어 전승의 텔류세이, 곧 생을 마친다는 표현을 「삶을 마치고」로 옮겼습니다. 다른 그리스어 전승에는 멜레테세이, 곧 숙고하거나 묵상한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삶을 마친다는 말로 읽으면 앞에서 묘사한 인간의 죽음과 바로 연결됩니다. 묵상한다는 말로 읽으면 뒤따르는 21–23절과 더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어느 전승을 따르더라도 지혜와 깊이 관계를 맺는 사람이 복되다는 중심 메시지는 같습니다.

지혜의 집 곁에 장막을 세우다

집회서 14:24–27 본문 →

이제 지혜를 찾아 나선 사람은 새로운 행동을 합니다.

지혜의 집 가까이에 묵는 사람은 지혜의 담에 말뚝을 박을 것이다.집회서 14:24 · 두루새김

그는 지나가는 방문객으로 남지 않습니다.

고대의 천막은 말뚝을 박아 세웠습니다. 천막을 세운다는 것은 잠깐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머물며 생활하겠다는 행동입니다. 따라서 지혜의 집 가까이에 말뚝을 박는다는 표현은 지혜를 일시적인 관심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삶의 가까운 곳에 두겠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는 지혜 곁에 자기 천막을 세우고, 좋은 것들이 있는 곳에서 묵을 것이다.집회서 14:25 · 두루새김

지혜는 그가 가끔 찾아가서 도움을 받는 대상만이 아닙니다. 그가 머무는 곳, 삶을 함께하는 자리가 됩니다.

여기서는 더 많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것 가까이에 머무는 것이 복으로 묘사됩니다.

그는 지혜의 보호 아래 자기 자녀들을 두고, 지혜의 가지들 아래에서 밤을 지낼 것이다.집회서 14:26 · 두루새김

여기서 지혜는 두 가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보호를 제공하는 거처이고, 다른 하나는 가지를 펼친 나무입니다.

이는 지혜가 개인의 일시적인 성취로 끝나지 않고 다음 세대의 삶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가 지혜로운 삶을 선택할 때 그 영향은 자신의 생활과 판단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자녀들이 무엇을 보고 배우는지, 어떤 삶의 태도 안에서 자라는지에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앞에서는 잎이 떨어졌지만, 여기서는 사람이 가지 아래 머뭅니다.

18절의 나무는 한 세대가 계속 머무를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웁니다. 26절의 나무는 사람이 주어진 삶 동안 어디에서 보호와 쉼을 얻을 수 있는지 보여 줍니다.

그는 지혜의 보호를 받아 타는 더위를 피하고, 지혜의 영광 안에 머물 것이다.집회서 14:27 · 두루새김

뜨거운 햇볕 아래 있는 사람에게 그늘은 단순히 보기 좋은 풍경이 아닙니다. 강한 햇볕을 피해 몸을 보호하고 쉴 수 있는 장소입니다.

지혜는 인간이 삶의 모든 어려움을 피할 수 있게 해 준다는 보증이 아닙니다. 그러나 어려움 속에서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판단하고, 해로운 행동을 피하며, 좋은 것을 붙들도록 돕습니다.

쫓아가던 사람이 마침내 머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자신이 지혜를 얻기 위해 애쓰지만, 마침내 그 지혜가 자신의 삶을 지탱해 주는 보호가 됩니다.

처음에는 사람이 지혜를 찾아 나서지만, 마지막에는 지혜가 사람을 품어 줍니다.

조금 더 깊이

또한 잠언 3:13–18은 지혜를 얻는 사람의 복을 말하면서, 지혜를 붙드는 사람에게 지혜가 생명나무가 된다고 묘사합니다. 집회서 14장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지혜의 가지와 그늘은 이 모습과 주제적으로 깊이 연결됩니다.

무엇을 모으고, 무엇을 누리며 살아갈 것인가

집회서 14:1–27 본문 →

문제는 재산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자신과 다른 사람의 삶을 위해 사용할 줄 모르는 마음입니다. 다만 지혜는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사람이 죽기 전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칩니다. 살아 있는 동안 자신에게 주어진 좋은 것을 누리고, 친구에게 손을 내밀며, 하나님께 마땅히 드리고, 지혜를 가까이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집회서가 말하는 지혜를 단순히 오래 살거나 부유해지는 비결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이 장은 이미 살아 있는 모든 것이 낡아 가고 모든 세대가 죽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도 그 현실에서 예외가 아닙니다.

앞에서는 나무의 잎들이 하나씩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어떤 잎은 떨어지고, 다른 잎은 돋아났습니다. 그것이 살과 피를 지닌 모든 세대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한 사람이 나무 아래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는 지혜의 가지 아래에서 밤을 지내고, 뜨거운 햇볕을 피해 그늘 속에서 쉽니다. 그의 자녀들도 그 보호 아래에 있습니다.

떨어지는 잎의 운명을 없앨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잎이 아직 나무에 붙어 있는 동안, 그 나무 아래에서 좋은 것을 누릴 수는 있습니다.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은 좋은 것을 모두 잃게 된다는 선언만이 아닙니다. 아직 살아 있는 지금, 무엇을 누리고 누구에게 베풀며 어디에 머물러야 하는지를 묻는 초대이기도 합니다.

지혜를 찾던 사람은 마침내 그 가지 아래에 천막을 세웠습니다.

그곳에는 더위를 피할 그늘이 있고, 밤을 지낼 거처가 있으며, 자녀들이 함께 머물 자리가 있습니다.

집회서 14장은 그 장면에서 끝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