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서 풀어 읽기 · 13장
이 장의 자리 · 1–23장 · 지혜의 시작
부자의 말과 가난한 사람의 지혜
두 사람이 같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한 사람은 부자이고 다른 사람은 가난합니다. 부자가 잘못했을 때에는 사람들이 달려와 그를 부축하고, 그의 말을 옳다고 인정합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이 잘못했을 때에는 그를 더욱 꾸짖고 밀쳐냅니다.
집회서 13장은 부와 가난에 관해 이야기하지만, 그 중심에는 재산보다 더 깊은 문제가 있습니다. 사람의 말과 행동이 옳은지 판단하기도 전에, 그가 가진 힘과 지위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는 세상입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힘없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권력 있는 사람과 가까워지는 것이 기회가 될까요, 아니면 위험이 될까요?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 사이에 진정한 우정이 가능할까요?
지혜자는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역청과 흙으로 만든 솥, 늑대와 어린양, 사자와 들나귀를 차례로 등장시킵니다. 비유들은 점점 날카로워지고, 마침내 인간 사회가 얼마나 불공평하게 움직이는지를 드러냅니다.
흙으로 만든 솥이 쇠솥과 부딪히면 누가 깨지는가
첫 구절은 사람이 맺는 관계의 영향을 경고합니다.
역청을 만지는 사람은 더러워질 것이고, 거만한 사람과 어울리는 사람은 그를 닮을 것이다.집회서 13:1 · 두루새김
역청은 검고 끈적한 물질입니다. 손으로 만지면 흔적이 남습니다. 지혜자는 이처럼 눈에 보이는 경험에서 시작해 사람 사이의 관계로 옮겨 갑니다.
단순히 길에서 마주치거나 한두 번 대화하는 일이 아니라, 서로 관계를 맺고 생활이나 활동을 공유하는 상황입니다. 그러한 관계에서는 상대방의 생각과 태도가 자신에게 스며들 수 있습니다. 거만한 사람과 가까워지면 그의 거만함을 당연하게 여기거나, 자신도 비슷한 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2절은 문제를 다른 차원으로 옮깁니다.
네 힘에 부치는 짐을 들지 말고, 너보다 힘 있고 부유한 사람과 어울리지 마라. 흙으로 만든 솥이 쇠솥과 무엇을 함께 나누겠느냐? 흙으로 만든 솥이 부딪혀 깨질 것이다.집회서 13:2 · 두루새김
이번에는 성품의 영향보다 힘의 차이가 문제가 됩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이 먼저 부딪혔는지가 아닙니다. 두 솥의 재료가 다르기 때문에 같은 충돌에도 피해가 다르게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부유하고 권력 있는 사람은 불리한 상황에서도 자신을 지킬 수단이 많습니다. 그러나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은 한 번의 갈등으로도 삶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같은 관계에 참여한다고 해서 두 사람이 같은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혜자는 힘센 사람을 악하게 묘사하기 전에 먼저 힘이 고르지 않은 관계 자체의 위험을 보여 줍니다. 상대방이 특별히 공격할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두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충격의 크기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부자는 부당한 짓을 하고도 도리어 호통을 친다. 가난한 사람은 부당한 일을 당하고도 간청까지 할 것이다.집회서 13:3 · 두루새김
가난한 사람은 자신이 옳다는 사실만으로 상황을 해결할 수 없을지 모릅니다. 상대방과의 관계가 끊어지면 생계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반면 권력 있는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도 버틸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옳고 그름보다 누가 더 큰 힘을 가졌는지가 관계를 좌우합니다.
「무엇이 필요하냐?」 — 친절한 말에 감추어진 계산
4절부터는 지혜자가 한 사람을 직접 상대하는 듯한 방식으로 말합니다.
네가 쓸모 있으면 부자는 너를 이용할 것이고, 네가 가진 것이 모자라면 너를 버릴 것이다.집회서 13:4 · 두루새김
관계가 유지되는 이유는 우정이나 신뢰가 아니라 상대방에게서 얻을 수 있는 이익입니다. 따라서 더 이상 얻을 것이 없어지면 관계도 끝납니다.
네게 가진 것이 있으면 그는 너와 함께 지내며 너를 털어먹을 것이고, 자신은 고생하지 않을 것이다.집회서 13:5 · 두루새김
관계의 겉모습은 함께 나누는 생활이지만, 실제로는 한쪽이 다른 쪽에게서 계속 가져가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착취가 처음부터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네가 필요해지면 너를 꾀고, 네게 웃어 보이며 희망을 줄 것이다. 네게 좋은 말을 하며 「무엇이 필요하냐?」 하고 물을 것이다.집회서 13:6 · 두루새김
이 말만 들으면 상대방을 배려하는 질문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지혜자는 그보다 앞서 부자가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 알려 줍니다.
그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상대방의 필요를 묻습니다.
그는 자기가 차려 준 음식으로 너를 부끄럽게 할 것이다. 너를 두 번이나 세 번 털어먹을 때까지 그렇게 하다가, 끝내 너를 비웃을 것이다. 그 뒤에는 너를 보고도 버려두고, 너를 향해 머리를 흔들 것이다.집회서 13:7 · 두루새김
「두 번이나 세 번」이라는 표현은 한 번의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반복적인 이용을 떠올리게 합니다. 6절의 「웃어 보이며」와 7절의 「비웃을 것이다」는 겉으로는 같은 웃음이지만 의미가 정반대입니다. 처음에는 상대방의 경계를 풀기 위한 웃음이었다면, 마지막에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고 상대방을 업신여기는 웃음입니다.
이 장면의 비극은 단순히 재산을 잃는 데 있지 않습니다.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 믿었던 사람이 오히려 자신을 이용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 있습니다. 그가 베푼 식사와 친절은 관계의 시작이 아니라 착취를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고대 사회에서 함께 식사한다는 것은 단순히 음식을 먹는 일만이 아니었습니다. 식탁은 친밀함을 표현하는 자리이면서, 누가 손님을 초대하고 누가 대접받는지에 따라 사회적 지위와 의무가 드러나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부유한 사람이 가난한 사람을 자기 식탁으로 초대한다면, 겉으로는 후한 대접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그 식탁은 오히려 상대방을 부끄럽게 만드는 도구가 됩니다.
가까이 가도 위험하고, 멀리 물러나도 위험하다
꾐에 넘어가지 않도록 조심해라. 즐거워하는 동안 네 처지가 낮아지지 않게 해라.집회서 13:8 · 두루새김
8절은 앞의 식탁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상대방의 초대와 친절을 즐기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불리한 관계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에는 수치와 손해만 남을 수 있습니다.
권력 있는 사람이 너를 부르면 물러서 있어라. 그러면 그가 너를 더욱 부를 것이다.집회서 13:9 · 두루새김
밀쳐지지 않도록 함부로 다가서지 말고, 잊히지 않도록 멀리 물러나지도 마라.집회서 13:10 · 두루새김
권력 있는 사람은 상대방을 가까이 부를 수도 있고 밀어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힘없는 사람은 그 관계의 거리를 자기 뜻대로 결정하기 어렵습니다. 상대방의 반응을 살피면서 자신의 위치를 조정해야 합니다.
이것은 이상적인 우정을 설명하는 말이 아닙니다. 불평등한 권력관계 안에서 살아남기 위한 현실적인 처신입니다.
지혜자는 독자에게 그런 관계를 완전히 통제할 수 있다고 약속하지 않습니다. 다만 상대방의 호의에 지나치게 기대거나, 자신의 지위를 착각하여 불필요한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권합니다.
11절에서는 특히 대화가 문제가 됩니다.
그와 대등하게 말하려 들지 말고, 그가 늘어놓는 많은 말을 믿지 마라. 그는 말을 많이 하며 너를 시험하고, 웃어 보이는 척하며 너를 캐물을 것이기 때문이다.집회서 13:11 · 두루새김
겉으로는 편안한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대방에게서 자신이 이용할 수 있는 정보를 얻으려는 것입니다. 12절은 그 위험을 더욱 심각하게 만듭니다.
네게서 들은 말을 지켜 주지 않는 그 사람은 자비가 없고, 너를 괴롭히고 묶어 두는 일도 결코 서슴지 않을 것이다.집회서 13:12 · 두루새김
여기서 「네게서 들은 말을 지켜 주지 않는」이라는 표현은 상대방이 한 말을 소중하게 간직하거나 비밀로 지켜 주지 않는 태도를 가리킬 수 있습니다. 앞 절의 캐묻는 행동과 연결하면, 편안한 대화 중에 털어놓은 말이 나중에 상대방을 해치는 데 이용될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권력 있는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을 실제로 억압할 수 있는 수단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와 나누는 말은 친구 사이의 사적인 대화와 같은 무게를 지니지 않습니다.
여기서 지혜자가 가르치는 것은 비굴하게 행동하라는 명령이 아닙니다.
오히려 관계의 성격을 정확하게 알아보라는 요구입니다. 상대방이 웃으며 친절하게 말하더라도, 두 사람이 가진 권한과 위험 부담이 같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스스로를 지키고 아주 조심해라. 너는 네 파멸과 함께 걷고 있기 때문이다.집회서 13:13 · 두루새김
사람은 자신이 위험한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수 있습니다. 좋은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하며 걸어가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몰락을 향해 가고 있을 수 있습니다.
지혜자는 독자가 그 위험을 미리 알아차리기를 바랍니다.
늑대와 어린양은 무엇을 함께 나눌 수 있는가
15–16절은 비슷한 것들이 서로 모인다는 관찰에서 시작합니다.
모든 짐승은 저와 비슷한 것을 사랑하고, 모든 사람은 제 이웃을 사랑한다.집회서 13:15 · 두루새김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제 종류끼리 모이고, 사람은 저와 비슷한 사람에게 달라붙을 것이다.집회서 13:16 · 두루새김
비슷한 경험을 하고 비슷한 형편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를 이해하기 쉽습니다. 그들에게는 공통의 관심과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비슷한 사람」이라는 말이 단순한 친밀함을 넘어 사회적 지위의 차이와 연결되기 시작합니다.
늑대가 어린양과 무엇을 함께 나누겠느냐? 죄인과 하나님을 정성껏 섬기는 사람도 그와 같다.집회서 13:17 · 두루새김
늑대는 어린양을 잡아먹을 수 있는 동물입니다. 어린양에게 늑대와의 만남은 평화로운 사귐이 아니라 생존의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삶의 방향이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가까이할 때, 한쪽이 다른 쪽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그런데 18절에서는 비교 대상이 달라집니다.
하이에나와 개 사이에 무슨 평화가 있겠느냐? 부자와 가난한 사람 사이에 무슨 평화가 있겠느냐?집회서 13:18 · 두루새김
하이에나와 개는 먹이나 영역을 두고 충돌할 수 있는 동물들입니다. 지혜자는 이들의 적대적인 관계를 부자와 가난한 사람 사이의 관계에 비유합니다.
19절에서는 비유가 더욱 날카로워집니다.
광야의 들나귀는 사자의 사냥감이다. 그처럼 가난한 사람은 부자의 먹이다.집회서 13:19 · 두루새김
사자는 들나귀를 잡아먹을 수 있지만, 들나귀는 사자를 같은 방식으로 위협하지 못합니다. 한쪽은 사냥하는 자이고 다른 한쪽은 사냥당하는 자입니다. 가난한 사람의 노동과 재산과 필요가 부유한 사람의 이익을 위해 이용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자와 들나귀의 비유는 착취를 자연스럽고 정당한 질서로 인정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착취적인 관계가 얼마나 일방적이고 위험한지를 생생하게 보여 주는 표현입니다.
다만 지혜자는 여기서 불평등한 사회를 바꿀 제도적 방법까지 제시하지는 않습니다. 그보다는 힘없는 사람이 그러한 현실을 알고 신중하게 행동하도록 가르칩니다.
거만한 사람은 자신을 낮추는 태도를 역겨워한다. 그처럼 부자는 가난한 사람을 역겨워한다.집회서 13:20 · 두루새김
첫 번째는 태도에 대한 거부감입니다. 두 번째는 낮은 형편에 있는 사람에 대한 거부감입니다. 이 둘을 연결함으로써 지혜자는 거만함이 어떻게 인간관계를 뒤틀어 놓는지 보여 줍니다.
가난 자체를 싫어하는 것을 넘어 가난한 사람까지 업신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지혜자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관계가 본래 이렇게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에서 실제로 그렇게 되어 있는 관계를 묘사하는 것일까요? 앞뒤 문맥을 보면 후자에 무게가 실립니다. 3절에서는 부자가 부당한 짓을 저지르는 모습을 비판했고, 4–7절에서는 힘없는 사람을 이용하는 행동을 경고했습니다. 뒤따르는 21–23절에서도 부자에게 유리하게 이루어지는 사회적 판단을 비판합니다.
부자는 틀린 말을 해도 옳다고 하고, 가난한 사람은 옳은 말을 해도 듣지 않는다
여기에는 더 이상 동물 비유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사람들이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실제로 어떻게 대하는지 묘사합니다.
부자는 흔들려도 친구들의 부축을 받지만, 낮은 처지의 사람은 넘어지면 친구들에게 더 밀쳐진다.집회서 13:21 · 두루새김
친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어려울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친구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가 중요합니다. 부자는 어려움이 생겨도 자신을 지탱해 줄 관계와 자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은 어려움이 생길수록 자신을 도와줄 관계마저 잃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같은 실수나 불행이 두 사람에게 같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습니다.
부자가 발을 헛디디면 돕는 사람이 많다. 입에 담지 못할 말을 해도 사람들은 그가 옳다고 한다. 낮은 처지의 사람이 발을 헛디디면 사람들은 그를 더 꾸짖는다. 그가 깨달음이 담긴 말을 해도 사람들은 그에게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집회서 13:22 · 두루새김
사람들이 판단의 기준을 말의 내용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의 지위에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는 그의 말이 받아들여질 기회나 인정받을 여지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혜로운 말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지혜로운 말을 들을 자리가 마련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부자가 말하면 모두 잠잠해지고, 그의 말을 구름에 닿도록 높인다. 가난한 사람이 말하면 사람들은 「이 사람은 누구냐?」 하고 말한다. 그가 발을 헛디디기라도 하면 사람들은 그를 더 넘어뜨린다.집회서 13:23 · 두루새김
구름은 사람의 손이 쉽게 닿지 않는 높은 곳에 있습니다. 그곳까지 말을 높인다는 것은 그 말에 지나친 권위와 가치를 부여한다는 과장된 표현입니다.
그들은 그의 말이 옳은지 틀린지 묻지 않습니다. 먼저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문제 삼습니다. 이 질문에는 그가 누구이기에 감히 말하느냐는 경멸이 담겨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지혜롭게 말해도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는 단순히 그 사람에게 불친절한 사회가 아닙니다. 진실을 분별하는 능력 자체가 손상된 사회입니다.
전도서 9:13–16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가난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이 자신의 지혜로 성읍을 구했는데도, 사람들은 그를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전도자는 지혜가 힘보다 낫지만 가난한 사람의 지혜는 업신여김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레위기 19:15는 재판할 때 가난한 사람이라고 편들지도 말고, 권력 있는 사람이라고 두둔하지도 말며 공정하게 판단하라고 명령합니다. 그 명령은 재산이나 지위와 무관하게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웁니다. 집회서 13:21–23은 그러한 원칙이 무너진 사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여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명기 10:17–18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차별하거나 뇌물을 받지 않으시며, 고아와 과부를 위해 공의를 행하시는 분이라고 말합니다. 잠언 22:22–23은 가난하다는 이유로 가난한 사람을 억압하거나 성문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짓밟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여호와야훼께서 그들의 송사를 변호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약의 야고보서 2:2–6에는 부유한 사람에게 좋은 자리를 내주면서 가난한 사람은 낮은 자리에 세워 두는 장면이 나옵니다. 집회서를 직접 인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의 재산과 외모를 기준으로 존중의 정도를 달리하는 문제를 다시 다룬다는 점에서 중요한 주제적 연결이 있습니다.
재산이 악한 것인가, 재산을 판단하는 마음이 악한 것인가
이토록 강하게 부자를 비판한 뒤, 지혜자는 의외의 말을 합니다.
죄가 없는 재산은 선한 것이고, 하나님을 정성껏 섬기는 사람은 가난을 나쁜 것이라고 말한다.집회서 13:24 · 두루새김
현재 제공된 문면대로 읽으면 하나님을 정성껏 섬기는 사람조차 가난을 나쁘다고 평가한다는 뜻이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어 본문에 따르면 가난을 나쁘다고 말하는 쪽은 하나님을 정성껏 섬기지 않는 사람입니다.
지혜자는 재산이 언제나 악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죄와 관련되지 않은 재산은 선한 것이라고 인정합니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재산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보다 그 재산이 어떤 삶과 연결되어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따라서 이 장은 부자를 무조건 악인으로, 가난한 사람을 무조건 의인으로 나누는 단순한 구도를 취하지 않습니다.
재산이 많은 것은 곧 죄라는 뜻이 아니지만, 재산이 많다는 사실이 그 사람의 의로움을 증명하지도 않습니다. 사람들이 부자의 말이라면 무조건 옳다고 인정하고 가난한 사람의 말이라면 무시하는 것은, 재산의 많고 적음을 사람의 가치와 지혜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재산 자체가 그 사람의 도덕성을 결정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판단에는 아무런 정당한 근거가 없습니다.
25절은 시선을 사람의 내면으로 옮깁니다.
사람의 마음은 좋게든 나쁘게든 그의 얼굴을 바꾼다.집회서 13:25 · 두루새김
기쁨이나 슬픔, 선한 뜻이나 악한 생각이 사람의 얼굴에 나타날 수 있다는 관찰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사람의 얼굴만 보면 그 마음을 정확히 알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앞의 6절에서는 부자가 웃어 보이며 상대방을 속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실제 속마음과 다른 표정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밝은 얼굴은 좋은 일을 누리는 마음의 흔적이고, 비유는 애써 생각하여 찾아내는 것이다.집회서 13:26 · 두루새김
첫 행과 둘째 행의 관계는 한눈에 분명하지 않습니다. 밝은 얼굴이 마음의 상태를 드러내는 것과 비유를 찾아내기 위한 수고가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여러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사람의 얼굴에 나타나는 흔적은 비교적 쉽게 볼 수 있지만, 사물과 사건에 담긴 의미를 알아내는 일에는 깊은 생각이 필요하다는 읽기입니다. 다른 하나는 앞에서 사용된 여러 비유를 이해하고 삶에 적용하려면 애써 돌아보아야 한다는 뜻으로 보는 읽기입니다. 두 읽기 모두 가능하지만, 본문이 어느 하나를 분명하게 확정하지는 않습니다.
사람의 겉모습을 보는 일은 쉽지만, 그 사람이 맺는 관계와 행동의 참된 의미를 이해하려면 깊이 살펴야 합니다. 이것이 이 장 마지막의 지혜에 관한 말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발견입니다.
조금 더 깊이
제공된 두루새김의 후반부에는 「하나님을 정성껏 섬기는 사람」이라고 되어 있지만, 그리스어 원문은 아세부스(ἀσεβής)로, 「경건하지 않은 사람의」라는 뜻입니다. 원문 표현 엔 스토마티 아세부스는 「경건하지 않은 사람의 입에서」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제공된 번역의 「하나님을 정성껏 섬기는 사람」은 원문과 반대되는 뜻이며, 「하나님을 정성껏 섬기지 않는 사람」으로 바로잡아야 합니다. 다만 가난을 나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실제 가난의 고통에 대한 평가로 볼 수도 있고, 가난한 사람을 멸시하는 그릇된 가치판단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앞 단락에서 가난한 사람을 업신여기는 태도가 집중적으로 비판받았다는 점에서는 후자의 의미가 특히 자연스럽습니다.
구름까지 높아진 말과 자리를 얻지 못한 지혜
지혜자는 그러한 세상을 피하는 방법만 알려 주지 않습니다. 그 세상이 무엇을 잘못 보고 있는지도 드러냅니다. 사람의 가치를 재산과 지위로 판단하는 사회에서는 진실조차 제대로 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한 장면 앞에 섭니다.
부자가 입을 열자 모두 잠잠해집니다. 그의 말은 구름에 닿도록 높아집니다.
이윽고 가난한 사람이 입을 엽니다. 그는 깨달음이 담긴 말을 하지만, 사람들은 그 말을 제대로 듣지도 않은 채 묻습니다.
「이 사람은 누구냐?」
그에게는 지혜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그 지혜를 들을 자리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집회서 13장은 그 자리에 머뭅니다. 누군가가 말할 때 그의 재산이나 지위가 아니라, 그가 실제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들을 수 있는 사람을 찾는 듯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