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빗기 풀어 읽기 · 6장

이 장의 자리 · 4–6장 · 길을 떠나는 토비야

두려움에서 사랑으로 이끄는 길

토비야는 아버지의 돈을 되찾으러 길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여행 도중 발을 씻으려고 강에 내려갔다가 커다란 물고기의 공격을 받습니다. 뜻밖의 위험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물고기의 몸속에, 아직 만나지도 않은 한 여자를 구하고 고향에서 기다리는 아버지의 눈을 고칠 수단이 들어 있었습니다.

이 장의 놀라움은 위험이 유익으로 바뀌었다는 데에만 있지 않습니다. 토비야가 무엇을 위해 준비되고 있는지 알기도 전에, 그에게 필요한 것들이 먼저 주어진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독자는 토비야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토빗기 3:16-17은 하나님께서 토빗과 사라의 기도를 들으시고, 두 사람을 고치기 위해 라파엘을 보내셨다고 이미 알려 주었습니다. 그러나 토비야는 함께 가는 아사랴가 천사 라파엘이라는 사실을 모릅니다. 물고기를 붙잡으라는 지시도, 내장을 따로 챙겨 두라는 명령도 그에게는 낯선 여행 동료의 조언일 뿐입니다.

위협에서 준비로, 예정하지 않은 만남에서 새로운 관계로, 두려움에서 사랑으로 나아가는 것이 이 장의 흐름입니다.

읽는 시간 16분소단락 76장 본문 읽기 →

물고기를 붙잡아요 — 위험이 예상하지 못한 준비가 되다

토빗기 6:1–6 본문 →

6장은 어머니의 눈물로 시작합니다. 1절의 「안나」는 앞서 아들을 떠나보내며 걱정하던 토비야의 어머니입니다. 안나가 울면서 말을 그치고, 이제 이야기는 집을 떠난 아들의 길로 옮겨 갑니다.

토비야와 라파엘이 떠날 때 개도 따라갑니다. 오히려 그 존재가 여행을 구체적인 일상의 장면으로 만듭니다. 아들과 동행자와 개가 함께 길을 걷고, 날이 저물면 강가에 머무는 평범한 여행입니다.

그 평범함이 갑자기 깨집니다.

토비야가 발을 씻으려고 티그리스 강으로 내려갔습니다. 큰 물고기 한 마리가 물에서 튀어 올라 그의 발을 삼키려 하자, 토비야는 소리를 질렀습니다.토빗기 6:3 · 두루새김

물고기가 발을 삼키려 한다는 묘사는 기묘할 정도로 구체적입니다. 토비야는 당황하여 소리 지르지만, 라파엘의 반응은 뜻밖입니다.

천사가 토비야에게 말했습니다. 「물고기를 붙잡아요. 놓치지 않게 꽉 잡아요!」 토비야는 물고기를 붙잡아 땅 위로 끌어 올렸습니다.토빗기 6:4 · 두루새김

라파엘은 물고기를 쫓아내거나 대신 붙잡아 주지 않습니다. 토비야 자신이 물고기를 붙잡도록 합니다. 하나님의 도움은 토비야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모든 일이 저절로 해결되는 방식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물고기를 붙잡은 다음 라파엘은 쓸개와 심장과 간을 꺼내 두라고 명령합니다. 나머지 내장은 버리고, 물고기의 일부는 먹고 일부는 소금에 절여 둡니다. 그 물고기는 한편으로 당장의 식사를 해결하고, 다른 한편으로 앞으로 필요한 치료의 수단을 제공합니다.

그러나 이 시점에 토비야는 세 장기를 어디에 쓰는지 알지 못합니다.

토비야는 이해했기 때문에 준비한 것이 아니라, 준비한 뒤에야 그 의미를 듣게 됩니다.

물고기의 세 장기 — 서로 떨어진 두 가정을 향한 하나의 준비

토빗기 6:7–9 본문 →

메디아에 가까워졌을 때 토비야는 마침내 물고기의 장기들이 어디에 쓰이는지 묻습니다.

심장과 간은 악한 영에게 시달리는 사람 앞에서 태워 연기를 내는 데 사용합니다. 쓸개는 눈에 낀 백태를 치료하는 데 사용합니다.

토빗은 눈에 백태가 생겨 앞을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2:10). 사라는 악한 귀신 아스모대오스 때문에 일곱 남편을 잃었습니다(3:8). 둘 다 깊은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나님은 두 사람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3:16-17).

그런데 6장에서 토비야가 건져 올린 물고기에는 이 두 문제에 대응하는 수단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토빗은 니느웨에 있고, 사라는 메디아의 엑바타나에 있습니다. 토비야는 지금 그 사이를 이동하고 있습니다. 한 물고기에서 나온 것들이 서로 떨어져 있는 두 가정의 회복에 쓰이게 됩니다. 그동안 서로 별개의 불행처럼 보였던 사건들이 한 여행 안에서 만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물고기 장기의 약효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물고기의 쓸개를 눈에 바르고, 심장과 간을 태워 악한 영을 쫓는다는 설명은 현대 독자에게 낯섭니다. 본문의 말을 보면 라파엘은 이 장기들을 「약」으로 소개합니다. 그러나 「약」이라는 말이 등장한다고 해서 본문에 제시된 방법들의 현대 의학적 효과가 입증되는 것은 아닙니다.

악한 영을 쫓는 데 연기와 냄새를 사용한다는 생각은 고대의 주술과 치료 관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실제로 본문은 귀신이 냄새를 맡고 달아날 것이라고 설명합니다(6:17-18). 따라서 이 장면을 단순히 현대적인 의미의 의약품 사용으로 바꾸어 이해해서도 안 됩니다.

그렇다고 토빗기가 인간의 기술만으로 악을 물리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 장기들을 쓰는 법을 가르치는 존재는 하나님이 보내신 라파엘이며, 뒤이어 신혼방에 들어갈 두 사람에게 하늘의 주님께 기도하라고 명령하는 존재 역시 라파엘입니다.

이야기 속에서 치료 행위와 하나님께 드리는 간청은 분리되지 않습니다.

여기서 아직 해결되지 않은 질문이 하나 남습니다. 물고기의 간과 심장이 귀신에게 시달리는 사람을 위해 필요하다면, 토비야는 대체 누구를 만나게 될 것입니까?

오늘 밤은 라구엘의 집에서 — 돈을 찾는 여행이 혼인의 길로 넓어지다

토빗기 6:10–13 본문 →

토비야가 메디아에 들어서서 엑바타나에 가까워졌을 때, 라파엘은 새로운 제안을 합니다.

토비야가 길을 떠난 원래 목적은 아버지가 맡겨 둔 돈을 찾아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라파엘은 그 목적을 향해 가는 도중 라구엘의 집에서 묵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독자는 이미 사라를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토비야는 그녀의 이름과 사정을 이제야 듣습니다.

「라구엘에게는 사라 말고는 아들도 딸도 없어요. 형제는 사라와 가장 가까운 친척이니, 누구보다 먼저 사라를 아내로 맞을 권리가 있어요. 사라의 아버지 재산도 형제가 물려받는 것이 마땅해요. 사라는 지혜롭고 용감하며 아주 아름다워요. 아버지도 훌륭한 사람이고요.」토빗기 6:12 · 두루새김

사라는 앞서 일곱 남편의 죽음 때문에 사람들의 비난을 받았고,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해 자기 생명을 끊으려 하기까지 했습니다(3:7-10). 그럼에도 아버지에게 불명예를 안기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그 생각을 거두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라파엘은 그런 사라를 불행한 여자나 위험한 여자라고 소개하지 않습니다. 그녀의 지혜와 용기를 먼저 말하고, 아름다움도 덧붙입니다. 이것은 이후 토비야가 전하는 소문과 중요한 대조를 이룹니다.

한 사람을 둘러싼 불행이 그 사람에 대한 모든 설명이 될 수는 없습니다.

상속권이 혼인의 근거가 되는 이유

이 설명의 배경에는 이스라엘의 가족과 토지 상속에 관한 전통이 있습니다. 민수기 27:1-11에서 슬로브핫의 딸들은 아들이 없는 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을 수 있다는 판결을 얻습니다. 이어지는 민수기 36:6-9는 유산을 물려받는 딸이 아버지 지파에 속한 가문 안에서 혼인하도록 규정합니다. 그렇게 해야 한 지파의 땅이 다른 지파로 넘어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민수기 36장은 상속받는 딸이 자신의 조상 지파 안에서 혼인하도록 규정하지만, 반드시 가장 가까운 남자 친척 한 사람과 결혼해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36:6은 지파 안이라는 조건 아래 딸들이 원하는 사람과 혼인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라파엘이 말하는 토비야의 우선적인 권리는 민수기의 규정을 당시의 가족 관습과 연결하여 적용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토빗기의 설명과 모세 율법에 분명히 적힌 규정을 완전히 같다고 보아서는 안 됩니다.

라파엘은 라구엘이 사라를 다른 사람과 약혼시키면 모세의 책에 따라 죽음의 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관련 규정인 민수기 36장에는 그러한 사형 조항이 없습니다. 본문이 무엇을 근거로 이처럼 강한 벌을 말하는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이를 실제 모세 율법에 기록된 벌로 받아들이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또한 원문에서 사라를 아내로 맞는 일을 상속의 말로 설명하는 것은 고대의 가문 중심적인 혼인 제도를 반영합니다. 두루새김은 이 자리를 「사라를 아내로 맞을 권리」로 풀어 옮겼습니다. 이것을 오늘날의 혼인 관계에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소유물이 된다는 의미로 일반화할 수는 없습니다.

라파엘에게는 이 혼인이 적절한 일입니다. 그러나 토비야에게는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조금 더 깊이

이 점에서 창세기 24장과의 연결이 눈에 띕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이삭의 아내를 찾으러 떠나면서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고, 여행 가운데 리브가를 만납니다. 혼인 상대를 찾는 일이 한 가정의 결정을 넘어 하나님의 인도에 대한 신뢰와 연결됩니다. 토빗기에서도 여행과 친척 관계와 혼인의 가능성이 연결됩니다. 다만 창세기 24장의 종은 의식적으로 기도하며 배우자를 찾지만, 토비야는 처음부터 배우자를 찾으러 떠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아버지의 돈을 찾으러 떠났다가 자신이 미처 몰랐던 가족의 미래와 마주합니다.

나는 아버지의 외아들이에요 — 혼인에 대한 두려움 속에 담긴 부모를 향한 사랑

토빗기 6:14–15 본문 →

라파엘이 사라와의 혼인을 제안하자 토비야는 곧장 두려움을 털어놓습니다.

그는 사라가 이미 일곱 남자와 결혼했고, 그들이 모두 신혼방에서 죽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귀신이 그들을 죽였다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덧붙입니다.

토비야는 자신이 목격한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가 가진 정보는 다른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독자는 3장에서 악한 귀신이 사라의 남편들을 죽였다는 서술을 이미 읽었지만, 토비야는 소문을 통해 그 사실을 접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여종은 사라가 남편들을 죽였다고 몰아세웠습니다(3:8-9). 토비야는 그와 달리 귀신을 죽음의 원인으로 지목합니다. 적어도 이 장에서 그는 사라를 남편들의 죽음에 책임 있는 사람으로 비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두려워요. 귀신은 사라를 해치지 않지만, 사라에게 가까이 가려는 사람은 누구든 죽인대요. 나는 아버지의 외아들이에요. 내가 죽으면 아버지와 어머니도 나 때문에 괴로워하시다가 무덤으로 내려가실까 봐 두려워요. 부모님에게는 돌아가셨을 때 묻어 드릴 다른 아들이 없어요.」토빗기 6:15 · 두루새김

이 대목에는 앞서 아버지 토빗이 당부한 책임이 담겨 있습니다. 토빗은 4:3-4에서 자신의 장례를 치르고 어머니를 공경하라고 아들에게 명령했습니다. 그가 사라와의 혼인을 두려워하는 것은 단순히 용기가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자신이 죽으면 부모를 향한 책임을 감당할 수 없게 된다는 걱정 때문입니다.

여기서 두 가정의 처지가 맞물립니다.

사라는 라구엘의 하나뿐인 자녀입니다. 토비야는 토빗과 안나의 외아들입니다. 사라의 일곱 혼인이 죽음으로 끝났다는 사실은 그녀의 혼인과 가문의 장래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토비야는 자신이 죽으면 부모를 돌보고 묻어 드릴 사람이 없어진다고 걱정합니다.

그들의 만남에는 한 사람의 혼인보다 더 큰 문제가 걸려 있습니다. 서로 다른 두 가정의 삶이 계속 이어질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라파엘은 그가 걱정하는 부모의 문제를 하찮게 취급하지 않습니다. 대신 아버지의 명령을 다시 떠올리게 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해결의 길을 구체적으로 알려 줍니다.

두려움에 대한 라파엘의 대답은 위험을 모른 척하라는 명령이 아니라, 그 위험을 넘어설 수 있도록 이미 준비된 도움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먼저 둘 다 일어나 하늘의 주님께 기도하며 — 두 사람이 함께 맞이하는 새로운 시작

토빗기 6:16–17 본문 →

라파엘은 토비야에게 아버지의 명령을 기억하라고 한 뒤, 사라를 아내로 맞으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신혼방에 들어갔을 때 해야 할 일을 설명합니다. 먼저 물고기의 간과 심장을 향을 태운 재 위에 올려놓습니다. 토비야가 강가에서 붙잡아 두었던 물고기의 장기들이 이제 구체적인 용도를 얻습니다.

그러나 라파엘의 설명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귀신은 그 냄새를 맡고 달아나 영원히 다시는 사라 곁에 나타나지 않을 거예요. 사라와 잠자리를 같이하려 할 때는 먼저 둘 다 일어나 하늘의 주님께 기도하며, 두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고 구해 주시도록 간청해요. 두려워하지 말아요. 사라는 영원 전부터 형제와 혼인할 사람으로 정해져 있었어요. 형제가 사라를 구할 것이고, 사라는 형제와 함께 갈 거예요. 내 생각에 두 사람 사이에서 자녀들이 태어나고, 그 아이들은 토비야 형제에게 형제 같은 존재가 되어 줄 거예요. 걱정하지 말아요.」 토비야는 라파엘의 말을 듣고, 사라가 자기 아버지 집안의 친척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사라를 몹시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사라에게 굳게 매였습니다.토빗기 6:18 · 두루새김

사라는 앞서 혼자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사람들의 비난과 연이은 죽음 속에서 그녀가 할 수 있었던 일은 하나님께 자신의 처지를 아뢰는 것이었습니다(3:11-15). 이제 라파엘은 토비야에게 두 사람이 함께 기도할 것을 가르칩니다.

그들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는 관계로만 소개되지 않습니다. 두 사람 모두 하나님께 불쌍히 여기시고 구해 주시도록 간청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토비야는 귀신의 위협에서 보호받아야 하고, 사라도 그 위협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여기서 구원은 추상적인 종교 개념이 아닙니다. 죽음의 위협 속에 있는 두 사람이 생명을 지키고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의 자비가 임하는 일과 연결됩니다.

혼인이라는 기쁜 사건을 앞두고도 그들이 먼저 인정해야 하는 것은 자신의 연약함입니다.

라파엘은 토비야에게 사라를 구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앞서 토빗기 3:17은 사라를 구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라파엘을 보내셨다고 밝혔습니다. 따라서 토비야는 하나님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과정에 참여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물고기를 붙잡고, 지시받은 것을 챙겨 두고, 사라와 함께 기도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와 토비야의 참여가 함께 나타나지만, 이야기의 더 깊은 출발점은 두 사람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 있습니다.

「영원 전부터 형제와 혼인할 사람으로 정해져 있었어요」

본문은 토비야의 혼인과 사라의 구원이 하나님의 오래된 뜻과 무관한 우연한 만남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한 구절을 근거로 모든 사람의 배우자가 창조 이전부터 한 사람으로 정해져 있다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본문은 모든 사람의 혼인이 미리 정해져 있다는 이론을 설명하지 않고, 지금 죽음이 두려워 혼인을 주저하는 토비야에게 하나님이 준비하신 길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라파엘은 토비야에게 평생 일어날 모든 일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지금 두려움 때문에 나아가지 못하는 그에게, 다음 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 이유를 알려 줍니다.

조금 더 깊이

원문에서 몫으로 정해졌다는 말은 운명적인 관계를 표현합니다. 두루새김은 이를 「형제와 혼인할 사람으로 정해져 있었어요」로 풀어 옮겼습니다. 이 말을 사라가 토비야의 소유물이라는 신학적 선언으로 확대할 필요는 없습니다. 라파엘은 토비야가 사라를 구할 것이라고 말할 때에는 확신 있게 말합니다. 그러나 자녀를 얻게 될 일에 관해서는 「내 생각에」라고 표현합니다. 사라의 구원과 토비야의 보호에 관한 선언은 분명하지만, 뒤따르는 자녀에 관한 말까지 같은 방식으로 확정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처리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녀들이 「토비야 형제에게 형제 같은 존재가 되어 줄 거예요」라는 표현도 다소 낯섭니다. 그리스어 본문에도 이에 해당하는 표현이 있지만, 자녀들이 누구에게 어떤 의미에서 형제처럼 된다는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두루새김은 토비야에게 형제 같은 존재가 된다는 말로 풀어 옮겼습니다.

그의 마음은 사라에게 굳게 매였습니다 — 물고기의 심장에서 사람의 마음으로

토빗기 6:18 본문 →

이 장의 마지막 문장은 지금까지의 모든 장면을 새로운 빛 아래 놓습니다.

토비야는 아직 사라를 만나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얼굴을 본 적도 없습니다. 라파엘이 소개한 사라의 성품과 가문의 관계를 들었고, 그녀를 둘러싼 위험에 대해서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마음이 그녀에게 깊이 향하게 됩니다.

15절에서 토비야는 자신이 죽을까 봐 두렵다고 말합니다. 그때 그의 생각은 자신의 생명과 부모의 슬픔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그는 사라를 사랑하게 됩니다.

이것은 단순히 두려움이 사라졌다는 말보다 더 깊습니다. 토비야의 마음이 자기에게 일어날 수 있는 불행에서 벗어나, 이제 자신이 함께 살아가게 될 다른 한 사람에게 향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물고기의 심장은 사라를 위협하는 악을 물리칠 준비가 되었고, 토비야의 마음은 사라를 향한 사랑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토비야에게 사라는 더 이상 자기 목숨을 위험하게 만들지도 모르는 낯선 여자의 이름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의 마음이 향하는 한 사람이 됩니다.

조금 더 깊이

앞에서 물고기의 「심장」을 가리킬 때 사용한 그리스어는 카르디아였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토비야의 「마음」이 사라에게 매였다고 말할 때도 원문에서는 같은 단어가 사용됩니다. 물론 물고기의 심장은 실제 장기이고, 토비야의 마음은 그의 내면을 가리킵니다. 동일한 단어라고 해서 둘을 신비로운 인과관계로 묶을 필요는 없습니다. 마지막의 「굳게 매였습니다」라는 표현도 의미가 깊습니다. 그리스어 에콜레테는 달라붙다, 밀착되다, 결합되다는 뜻을 지닌 동사에서 나왔습니다. 이 동사는 칠십인역 창세기 2:24에서 남자가 아내와 결합하는 일을 표현하는 데 사용된 동사와 같은 계열입니다. 창세기에서는 남자가 부모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한 몸을 이룬다는 말이 나오는데, 토빗기는 아직 혼인을 하지 않은 토비야의 마음이 사라에게 깊이 매였다고 이야기합니다. 두 본문 사이에 직접적인 인용이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혼인을 향한 결합이라는 주제에서는 의미 있는 연결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어떻게 사람에게 도착하는가

토빗기 6:1–18 본문 →

토빗기 6장을 전체적으로 읽으면, 하나님은 이 장에서 직접 말씀하시거나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등장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의 이름보다 훨씬 많이 등장하는 것은 토비야와 라파엘의 대화입니다. 그런데 독자는 이 모든 대화가 앞서 하나님께서 두 사람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사실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모든 예상 밖의 사건이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라는 주장으로 일반화할 필요는 없습니다. 토빗기가 그렇게 읽을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는 이유는 3장에서 이미 하나님께서 라파엘을 보내셨다고 밝혔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본문을 통해 알게 되는 것은 우연한 사건마다 숨겨진 뜻을 마음대로 찾아내는 방법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은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어떤 방식으로 응답하고 계신가 하는 것입니다.

강에서 붙잡았던 물고기의 심장은 그의 짐 속에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 만나지 않은 사라를 향해 그의 마음이 굳게 매입니다.

토비야는 여전히 길 위에 있습니다. 사라를 만나지도 않았고, 아버지의 눈도 아직 고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이미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그의 여행이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