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새김 · 쉽게 읽는 성경 · V0.20 베타

이사야 61장

이 장 풀어 읽기

기쁜 소식과 위로를 전할 사명

주 여호와야훼의 영께서 내 위에 계십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억눌린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도록 내게 기름을 부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내가 마음이 부서진 사람들의 상처를 싸매고, 포로들에게 자유를, 갇힌 사람들에게 풀려남을 선포하도록 나를 보내셨습니다. 또 여호와야훼께서 은혜를 베푸시는 해와 우리 하나님께서 원수를 갚으시는 날을 알리고, 슬퍼하는 모든 사람을 위로하도록 보내셨습니다. 시온에서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재 대신 아름다운 머리쓰개를, 슬픔 대신 기쁨의 기름을, 낙심한 마음 대신 찬양의 겉옷을 주도록 보내셨습니다. 그들은 ‘의로움의 테레빈트나무들’, ‘여호와야훼께서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려고 심으신 나무들’이라고 불릴 것입니다.

그들은 오래된 폐허를 다시 세우고, 예부터 황폐했던 곳들을 일으켜 세울 것입니다. 무너진 도시들, 대대로 황폐했던 곳들을 새롭게 할 것입니다. 낯선 사람들이 나서서 여러분의 양과 염소 떼를 돌보고, 외국인들이 여러분의 밭을 갈고 포도밭을 가꿀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호와야훼의 제사장들’, ‘우리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라고 불릴 것입니다. 여러분은 민족들의 재물을 누리고, 그들의 영광을 자랑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수치 대신 두 배의 몫을 받을 것입니다. 모욕 대신 자기 몫을 두고 기뻐 외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자기 땅에서 두 배의 몫을 차지하고, 영원한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여호와야훼께서 그 까닭을 말씀하십니다.

「나 여호와야훼는 정의를 사랑하고, 남의 것을 빼앗아 번제로 바치는 일을 미워한다. 나는 내 백성에게 성실하게 보상하고, 그들과 영원한 언약을 맺겠다. 그들의 자손은 여러 민족 사이에 알려지고, 그들의 후손은 여러 백성 가운데 알려질 것이다. 그들을 보는 사람은 모두 그들이 나 여호와야훼가 복을 준 자손임을 알아볼 것이다.」

나는 여호와야훼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 내 하나님 안에서 마음껏 즐거워합니다. 그분께서 내게 구원의 옷을 입히시고 의로움의 겉옷으로 나를 감싸 주셨기 때문입니다. 신랑이 제사장처럼 아름다운 머리쓰개를 두르고, 신부가 보석으로 몸을 꾸민 모습과 같습니다. 땅이 싹을 내고 동산이 그 안에 뿌려진 씨를 싹트게 하듯, 주 여호와야훼께서 모든 민족 앞에서 의로움과 찬양이 싹트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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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1 여기서 ‘나’는 누구인가요?

1–3절은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보다 어떤 일을 맡았는지에 초점을 두어요. 억눌린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갇힌 사람에게 자유를 알리며, 슬퍼하는 사람을 위로하는 일이에요. 8절에서는 ‘나 여호와야훼’라는 말로 하나님 자신의 발언이 시작돼요. 10절에서 다시 나오는 ‘나’도 이름이 밝혀져 있지 않아요. 앞의 보냄받은 이가 하는 말로 읽을 수도 있고, 회복된 시온과 백성을 대표하는 목소리로 읽을 수도 있어요.

61:3 왜 재 대신 머리쓰개를 준다고 하나요?

재를 뒤집어쓰는 것은 깊은 슬픔을 나타내는 행동이에요. 여기서는 그 재를 아름다운 머리쓰개로 바꾸고, 슬픔을 기쁨의 기름으로 바꾸어요. 마지막에는 찬양도 겉옷처럼 입는 것으로 그려서, 낙심했던 사람들의 달라진 모습을 보여 줘요.

61:3 사람들을 왜 테레빈트나무라고 부르나요?

‘의로움의 테레빈트나무들’이라는 이름은 사람들이 실제 나무가 된다는 뜻이 아니에요. 여호와야훼께서 그들을 회복시키시고, 그들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신다는 말이에요. 앞 장의 ‘내가 심은 싹’이라는 표현과도 이어져요.

61:7 두 배의 몫을 받는다는 말은 무엇을 뜻하나요?

이 절은 ‘수치 대신’, ‘모욕을 당하던 대신’이라는 말로 백성의 처지가 달라질 것을 보여 줘요. 두 배의 몫이라는 표현은 그대로 나오지만, 무엇을 기준으로 두 배인지나 어떻게 나눌지는 설명하지 않아요.

61:8 빼앗은 것으로 번제를 바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히브리어 본문의 모음 표기를 따르면, 이 구절은 약탈을 ‘번제 안에서’라는 말과 연결해요. 이 번역은 이를 빼앗은 것으로 번제를 바치는 일로 풀었어요. 다만 약탈과 번제가 정확히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짧은 원문에 명시되어 있지 않아요. 같은 자음을 다르게 읽어 ‘약탈과 불의’로 옮기는 해석도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