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새김 · 쉽게 읽는 성경 · V0.14 베타

예레미야 20장

이 장 풀어 읽기

예레미야를 가둔 바스훌

임멜의 아들인 제사장 바스훌은 예레미야가 이 말을 예언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는 여호와야훼의 성전 일을 감독하는 책임자였습니다. 바스훌은 예언자 예레미야를 때렸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야훼의 성전에 있는 위쪽 베냐민 문에서 그에게 차꼬를 채웠습니다.

사방의 공포라는 이름

이튿날 바스훌이 예레미야를 차꼬에서 풀어 주었습니다. 예레미야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네게 붙이신 이름은 바스훌이 아니라 사방의 공포다. 여호와야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보아라, 내가 너를 너 자신에게도, 너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공포가 되게 하겠다. 그들은 원수들의 칼에 쓰러지고, 너는 그것을 직접 보게 될 것이다. 내가 온 유다를 바벨론 왕의 손에 넘기겠다. 그는 그들을 바벨론으로 끌고 가고 칼로 죽일 것이다.』 『내가 이 성읍의 모든 재산과 사람들이 수고해서 얻은 모든 것과 모든 귀중품을 원수들에게 내주겠다. 유다 왕들의 모든 보물도 그들의 손에 넘기겠다. 그들은 이것들을 약탈하고 빼앗아 바벨론으로 가져갈 것이다.』 『바스훌아, 너와 네 집에 사는 모든 사람이 포로로 끌려갈 것이다. 너는 바벨론으로 갈 것이다. 너와 너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 곧 네가 거짓 예언을 전해 준 사람들이 거기서 죽고 거기서 묻힐 것이다.』」

억누를 수 없는 말씀

나는 여호와야훼께 말했습니다.

「여호와야훼, 주님께서 저를 속이셨고 저는 속았습니다. 주님께서 저를 힘으로 누르고 이기셨습니다. 저는 온종일 웃음거리가 되었고, 모두 저를 비웃습니다. 제가 말할 때마다 소리를 지르며 『폭력이다! 파괴다!』라고 외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야훼의 말씀 때문에 저는 온종일 모욕과 조롱을 당합니다. 저는 『그분을 입에 올리지 않겠다. 더는 그분의 이름으로 말하지 않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제 마음속에서 타오르는 불 같고, 제 뼛속에 갇혀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억누르느라 지쳤고, 더는 억누를 수 없습니다.」

나는 기도를 이어 갔습니다.

「저는 많은 사람이 저를 헐뜯는 말을 들었습니다. 『사방의 공포다! 고발해라! 우리도 그를 고발하자!』 저와 평화롭게 지내던 사람들은 모두 제가 넘어질 때를 노립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그가 속아 넘어갈지도 몰라. 그러면 그를 이기고 복수하자.』」

그러나 여호와야훼께서는 두려운 용사처럼 나와 함께하십니다. 그러므로 나를 뒤쫓는 자들은 넘어지고, 나를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은 뜻을 이루지 못해 크게 수치를 당할 것입니다. 그 영원한 치욕은 잊히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기도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야훼, 주님은 의로운 사람을 시험하시고 속생각과 마음을 보십니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보복하시는 것을 제가 보게 해 주십시오. 제 억울한 일을 주님께 털어놓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말했습니다.

「여호와야훼께 노래해라. 여호와야훼를 찬양해라. 그분께서 가난한 사람의 목숨을 악한 자들의 손에서 구해 내셨다.」

내가 태어난 날이 저주받기를 바랍니다. 내 어머니가 나를 낳은 날이 복을 받지 않기를 바랍니다. 내 아버지에게 소식을 전한 그 사람이 저주받기를 바랍니다. 그는 「아들이 태어났어요!」 하고 전하여 아버지를 몹시 기쁘게 했습니다. 그 사람은 여호와야훼께서 뒤엎고도 마음을 돌이키지 않으신 성읍들처럼 되기를 바랍니다. 아침에는 비명을, 한낮에는 전쟁의 함성을 듣기를 바랍니다. 그 사람이 나를 어머니의 태에서 죽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랬다면 어머니가 내 무덤이 되고, 어머니의 태는 영원히 나를 밴 채로 있었을 것입니다. 나는 왜 어머니의 태에서 나와 고통과 슬픔을 겪습니까? 왜 내 날들이 수치 속에서 다해 갑니까?

20장 해설 모두 보기 5
20:2 차꼬는 무엇인가요?

바스훌은 예레미야를 때린 뒤 성전의 문에 있는 차꼬에 채워 두었다가 이튿날 풀어 줘요. 본문은 이 기구의 정확한 모양이나 몸을 고정한 자세를 설명하지 않아요.

20:7 예레미야는 왜 하나님께 속았다고 하나요?

1:7–8에서 하나님은 명령하는 말을 전하라고 하시며 함께하겠다고 약속하셨어요. 1:19에서는 사람들이 예레미야와 싸울 것이라고도 말씀하셨어요. 예레미야는 지금 말씀 때문에 모욕을 당하면서도 그 말씀을 전하는 일을 그만둘 수 없다고 호소해요. 히브리어 동사는 꾀거나 설득한다는 뜻으로도 읽을 수 있지만, 여기서는 강한 항변을 살려 ‘속이셨다’로 옮겼어요.

20:10 ‘사방의 공포’라는 말이 왜 다시 나오나요?

바스훌에게 전한 말은 그와 가까운 사람들에게 닥칠 재앙을 경고했어요. 10절에서는 예레미야와 평화롭게 지내던 사람들까지 그가 넘어지기를 노려요. 여기서는 ‘사방의 공포’를 그들이 하는 말에 포함했지만, 예레미야가 자기 처지를 표현한 외침으로 읽을 여지도 있어요.

20:17 왜 자기 생일과 탄생 소식을 전한 사람까지 저주하나요?

17절의 히브리어 원문은 자신을 죽이지 않은 이가 누구인지 명사로 밝히지 않아요. 이 번역은 앞 절의 소식 전달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읽어 ‘그 사람이’라고 옮겼어요.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으로 읽을 여지도 있어요. 이 말은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겠다는 바람을 극단적으로 표현한 탄식이에요. 예레미야는 자신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어머니의 태가 무덤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해요. 마지막 절은 그 탄식을 고통과 슬픔, 수치로 설명해요. 앞의 구원에 대한 찬양과 이 탄식이 어떻게 시간상 이어지는지는 본문이 따로 밝히지 않아요.

20:4 바벨론은 어떤 나라인가요?

1:14–15와 6:22–23에서는 북쪽에서 오는 침략자들을 말해요. 여기서는 유다를 넘겨받을 왕을 ‘바벨론 왕’이라고 불러요. 4~6절은 유다가 그 왕에게 넘어가고, 백성과 재산이 바벨론으로 옮겨질 것이라고 경고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