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새김 · 쉽게 읽는 성경 · V0.13 베타

마태복음 2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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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한 그리스어 저본(SBLGNT)에 없는 14절은 본문에 넣지 않았습니다. 절 번호는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지도자들의 말과 행동

그때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 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모두 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동을 본받지는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무겁고 지기 힘든 짐을 묶어 사람들의 어깨에 지우면서, 자기들은 손가락 하나로도 그 짐을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무슨 일이든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한다. 몸에 매는 성구함은 넓게 만들고, 옷자락에 다는 술은 크게 만든다. 잔치와 회당에서 가장 높임받는 자리를 좋아하고, 장터에서 인사받는 것과 사람들에게 랍비라고 불리는 것을 좋아한다.」

높은 호칭과 섬기는 자리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고 불리지 마라. 너희의 선생은 한 분뿐이고, 너희는 모두 형제이기 때문이다. 땅 위의 누구도 너희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너희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한 분뿐이시기 때문이다. 지도자라고 불리지도 마라. 너희의 지도자는 그리스도 한 분뿐이기 때문이다. 너희 가운데 가장 큰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될 것이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

하늘의 나라를 가로막는 사람들

「너희에게 화가 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위선자들아! 너희가 사람들 앞에서 하늘의 나라 문을 닫기 때문이다. 너희도 들어가지 않으면서 들어가려는 사람들도 못 들어가게 한다. 너희에게 화가 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위선자들아! 너희는 한 사람을 유대교 신자로 만들려고 바다와 땅을 두루 돌아다닌다. 그리고 그 사람이 신자가 되면 너희보다 두 배나 더한 게헨나의 자식으로 만든다.」

성소와 제단을 두고 하는 맹세

「너희에게 화가 있다, 눈먼 길잡이들아! 너희는 『성소를 두고 맹세하면 그 맹세는 지키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성소의 금을 두고 맹세하면 반드시 지켜야 한다』라고 말한다. 어리석고 눈먼 자들아! 어느 것이 더 중요하냐? 금이냐, 그 금을 거룩하게 한 성소냐? 또 너희는 『제단을 두고 맹세하면 그 맹세는 지키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제단 위의 예물을 두고 맹세하면 반드시 지켜야 한다』라고 말한다. 눈먼 자들아! 어느 것이 더 중요하냐? 예물이냐, 그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그러므로 제단을 두고 맹세하는 사람은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다. 성소를 두고 맹세하는 사람은 성소와 그 안에 사시는 분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다. 하늘을 두고 맹세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왕좌와 그 위에 앉아 계신 분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다.」

작은 것과 더 중요한 것

「너희에게 화가 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위선자들아! 너희는 박하와 딜과 커민은 열에 하나를 바치면서, 율법에서 더 중요한 정의와 자비와 믿음은 버렸다. 더 중요한 것들을 실천했어야 하며, 작은 것들도 버리지 말았어야 했다. 눈먼 길잡이들아! 너희는 모기는 걸러 내면서 낙타는 삼키는구나!」

잔과 무덤의 겉과 속

「너희에게 화가 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위선자들아! 너희는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하게 하지만, 그 속에는 남의 것을 빼앗는 탐욕과 절제하지 못하는 욕망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눈먼 바리새파 사람아! 겉도 깨끗해지도록 먼저 잔의 속을 깨끗하게 해라.」

「너희에게 화가 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위선자들아! 너희는 하얗게 칠한 무덤과 같기 때문이다. 무덤은 겉으로는 아름다워 보이지만, 속에는 죽은 사람들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이 가득하다. 너희도 이와 같다. 겉으로는 사람들에게 의롭게 보이지만, 속에는 위선과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일이 가득하다.」

예언자들의 죽음과 조상들의 죄

「너희에게 화가 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위선자들아! 너희가 예언자들의 무덤을 짓고 의로운 사람들의 묘를 꾸미며, 『우리가 조상들의 시대에 살았다면, 그들과 함께 예언자들의 피를 흘리는 일에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너희는 예언자들을 죽인 사람들의 자손이라고 스스로 증언하는 셈이다. 너희도 조상들이 채우던 죄의 분량을 마저 채워라! 뱀들아,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어떻게 게헨나의 심판을 피하겠느냐?」

「그러므로 보아라. 내가 예언자들과 지혜로운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을 너희에게 보낸다. 너희는 그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죽이고 십자가에 못 박을 것이다. 또 어떤 이들은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쫓아다니며 박해할 것이다. 이는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사람들의 모든 피에 대한 책임이 너희에게 돌아가게 하려는 것이다. 의로운 아벨의 피부터, 너희가 성소와 제단 사이에서 죽인 바라기야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말이다. 내가 너희에게 분명히 말한다. 이 모든 것이 이 세대에 닥칠 것이다.」

예루살렘을 향한 탄식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너에게 보내진 사람들을 돌로 치는 도시야! 암탉이 병아리들을 날개 아래 모으듯, 내가 얼마나 자주 네 자녀들을 모으려 했느냐! 그런데 너희는 원하지 않았다. 보아라. 너희 집이 텅 빈 채로 너희에게 남겨진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제부터 너희는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십니다!』라고 말할 때까지 나를 결코 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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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 모세의 자리에 앉았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요?

바로 다음 절에서 예수께서는 이들이 말하는 것을 지키되 행동은 본받지 말라고 말씀하셨어요. 가르치는 자리와 실제로 그 가르침을 따르는 삶을 구별하는 말이에요.

23:5 성구함과 옷자락의 술은 무엇인가요?

예수께서는 이것들을 크게 만드는 행동을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는 일의 예로 드셨어요. 이어지는 높은 자리와 인사, 호칭 이야기도 다른 사람에게 높임받으려는 태도와 연결돼요.

23:7 랍비는 무슨 뜻인가요?

이 장에서는 그 호칭으로 불리기를 좋아하는 태도가 문제로 나와요. 예수께서는 이어서 제자들이 모두 형제라는 점을 강조하셨어요.

23:9 왜 남을 아버지라고 부르거나 자신이 지도자라고 불리는 것을 금하나요?

앞에서는 높은 자리와 호칭을 좋아하는 태도를 지적하고, 뒤에서는 큰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말해요. 이 흐름에서 보면, 자신을 다른 사람들 위에 세우는 권위와 호칭을 경계하는 말로 읽을 수 있어요. 일상에서 쓰는 모든 호칭에 어떻게 적용할지는 이 대목에서 따로 설명하지 않아요.

23:13 너희에게 화가 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예수께서는 이 말을 반복하시면서 지도자들의 잘못을 구체적으로 지적하셨어요. 뒤의 33절과 36절에서는 피할 수 없는 심판과 이 세대에 닥칠 일을 말씀하셨어요.

23:16 성소는 성전과 다른 곳인가요?

예수께서는 성소의 금보다 그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소가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어요. 21절에서는 성소를 두고 하는 맹세가 그 안에 사시는 하나님과도 연결된다고 설명하셨어요.

23:23 박하와 딜과 커민은 무엇인가요?

지도자들은 이런 식물까지 열에 하나를 바치면서도 정의와 자비와 믿음은 버렸다고 지적받아요. 예수께서는 더 중요한 일을 반드시 실천했어야 하며, 작은 일도 버리지 말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다음 절의 작은 모기와 큰 낙타도 이 뒤바뀐 중요도를 보여 주는 과장이에요.

23:25 잔 속에 탐욕이 가득하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요?

이렇게 읽으면 잔의 겉과 속은 이어지는 무덤의 겉과 속처럼 사람의 겉모습과 내면을 드러내요. 원문의 표현은 잔과 접시가 탐욕과 무절제로 얻은 것들로 가득하다는 뜻으로도 읽을 수 있어요. 본문은 사람의 내면을 드러내는 쪽에 무게를 두었어요.

23:32 왜 죄의 분량을 마저 채우라고 하나요?

지도자들은 조상들과 달리 예언자들을 죽이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해요.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이 앞으로 보내질 사람들도 죽이고 박해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마저 채워라’는 말은 그들의 주장과 실제 행동이 얼마나 어긋나는지 드러내는 표현으로 읽을 수 있어요.

23:38 텅 빈 채로 남는다는 집은 어디인가요?

앞서 21장 13절에서는 성전을 ‘내 집’이라고 부르는 말씀을 인용했고, 바로 앞 절에서는 예루살렘 전체를 불렀어요. 그래서 성전에 초점을 둘 수도 있고 예루살렘의 운명까지 넓게 연결할 수도 있어요. 본문에는 집이 무엇인지 대신 확정해서 넣지 않았어요.

23:35 ‘바라기야’는 다른 성경에서 어떻게 적나요?

이 절에서 사가랴의 아버지로 나오는 이름이에요. 두루새김의 ‘바라기야’와 개역개정의 ‘바라갸’는 같은 그리스어 이름을 다르게 적은 것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