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가 자기 집을 짓고,
기둥 일곱 개를 깎아 세웠습니다.짐승을 잡고 포도주를 섞어 놓았습니다.
음식상도 차렸습니다.시중드는 여자들을 보내고,
성읍의 높은 곳에서 외쳤습니다.
「판단이 서툰 사람은 누구든 이리로 오너라.」
지혜는 분별이 모자란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와서 내 빵을 먹고,
내가 섞어 놓은 포도주를 마셔라.분별없는 삶을 버리고 살아라.
분별의 길로 곧게 나아가라.」
「비웃는 사람을 훈계하면 모욕을 당하고,
악한 사람을 꾸짖으면 해를 입는다.비웃는 사람이 너를 미워하지 않도록 그를 꾸짖지 마라.
지혜로운 사람을 꾸짖어라. 그가 너를 사랑할 것이다.지혜로운 사람을 가르쳐라. 그가 더욱 지혜로워질 것이다.
바르게 사는 사람에게 알려 주어라. 그가 더 많이 배울 것이다.」
「지혜의 시작은 여호와야훼를 두려워하는 것이며,
거룩하신 분을 아는 것이 분별이다.나를 통해 네가 사는 날들이 늘어나고,
네 삶의 햇수가 더해질 것이기 때문이다.네가 지혜로우면 그 지혜는 너 자신에게 이롭다.
네가 비웃으면 그 결과는 너 혼자 짊어질 것이다.」
어리석음이라는 여자는 소란스럽고,
분별이 없어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그 여자는 자기 집 문간에,
성읍의 높은 곳에 놓인 의자에 앉아 있습니다.길을 지나가는 사람들,
자기 길을 곧게 가는 사람들을 부르려는 것입니다.
그 여자가 외칩니다.
「판단이 서툰 사람은 누구든 이리로 오너라.」
그리고 분별이 모자란 사람에게 말합니다.
「훔친 물은 달고,
몰래 먹는 빵은 맛있다.」
그러나 그 사람은 그곳에 죽은 이들이 있다는 것을,
그 여자가 초대한 사람들이 스올 깊은 곳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9장 해설 모두 보기 69:6 지혜는 무엇을 버리라고 하나요?
원문의 표현은 ‘판단이 서툰 사람들을 떠나라’는 뜻으로도 읽을 수 있어요. 본문은 4절에서 초대받은 사람들에게 삶의 방향을 바꾸라고 권하는 말로 읽었어요. 사람들과의 어울림을 떠나라는 읽기와 분별없는 삶을 버리라는 읽기는 강조점이 달라요.
9:9 왜 어떤 사람은 꾸짖지 말고 어떤 사람은 꾸짖으라고 하나요?
7–8절의 비웃는 사람은 훈계하는 사람에게 모욕과 미움으로 반응해요. 반면 지혜로운 사람은 꾸짖는 사람을 사랑하고 더 많이 배워요. 이 대조는 지혜로운 사람도 가르침과 바로잡는 말을 받아야 한다는 점을 보여 줘요.
9:10 거룩하신 분은 누구인가요?
앞줄의 ‘여호와야훼를 두려워하는 것’과 뒷줄의 ‘거룩하신 분을 아는 것’이 짝을 이루어요. 원문의 ‘거룩한 이들’에 해당하는 표현은 복수형이지만, 여기서는 앞줄과의 관계에 따라 하나님 한 분을 가리키는 말로 읽었어요.
9:17 훔친 물이 달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요?
지혜는 자기가 준비한 빵과 포도주를 내어 주지만, 어리석음은 훔치고 숨기는 즐거움을 내세워요. 앞 장들에서 물과 남의 아내를 가까이하는 일이 함께 나온 점을 생각하면, 여기서도 부부의 약속을 깨뜨리는 유혹을 떠올릴 수 있어요. 다만 이 절은 그 뜻만으로 범위를 한정하지 않아요.
9:18 지혜와 어리석음은 왜 똑같은 말로 사람을 부르나요?
4절과 16절은 모두 판단이 서툰 사람을 부르며 같은 말로 시작해요. 지혜의 초대는 살아서 분별의 길로 나아가라고 권하지만, 어리석음의 초대 뒤에는 죽은 이들과 스올이 있어요. 마지막 절은 초대받은 사람이 그 위험을 모르고 있다는 점까지 밝혀요.
9:7 꾸지람에 관한 말도 지혜가 하는 말인가요?
7절부터는 잔치의 초대에서 꾸지람과 배움에 관한 말로 내용이 바뀌어요. 7–10절을 지혜 교사의 별도 가르침으로 읽을 수도 있어요. 본문은 11절의 ‘나를 통해’까지 지혜의 말로 이어 읽어, 7–12절에도 인용부호를 두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