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풀어 읽기 · 16장

이 장의 자리 · 12–16장 · 둘로 나뉜 나라

왕들은 사라져도 길은 남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일주일 만에 바뀔 수 있을까요?

열왕기상 16장에는 실제로 이레 동안만 왕위에 있었던 시므리가 등장합니다. 그는 왕을 죽이고 왕좌를 차지했지만, 불과 일주일 뒤 자신이 차지한 왕궁에 불을 지르고 그 안에서 죽습니다.

한 왕가가 멸망하면 새로운 왕가가 등장합니다. 그 새로운 왕가도 멸망하고, 다시 다른 왕이 권력을 차지합니다. 왕궁은 불타고 수도까지 옮겨집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격변 속에서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여로보암의 길」입니다.

여로보암은 이미 죽었습니다. 그의 아들도 죽었고, 그의 왕가도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새로 등장하는 왕들은 계속해서 그의 길을 걷습니다.

왕은 제거할 수 있었지만, 왕이 만들어 놓은 죄의 질서는 제거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전혀 뜻밖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왕도 장군도 아닌, 여리고 성읍을 건설한 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의 두 아들에게 일어난 일이 기록됩니다.

왜 왕들의 역사를 다룬 장이 한 건축가의 이야기로 끝나는 것일까요?

읽는 시간 21분소단락 616장 본문 읽기 →

바아사: 왕을 무너뜨린 사람이 같은 심판을 받다

열왕기상 16:1–7 본문 →

「내가 너를 티끌에서 일으켜」

16장은 예언자의 말로 시작합니다.

「내가 너를 티끌에서 일으켜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웠는데도 네가 여로보암의 길을 따르고, 내 백성 이스라엘이 죄를 짓게 하여 그들의 죄로 나를 분노하게 했으니,」열왕기상 16:2 · 본디새김

바아사는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을 죽이고 왕이 된 인물입니다. 앞 장에서 그는 여로보암의 온 집안을 전멸시켰습니다.

그런데 여호와야훼는 그런 바아사에게 「내가 너를 티끌에서 일으켜」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무엘상 2:8에서 한나는 여호와야훼께서 가난한 이를 티끌에서 일으키시고 궁핍한 이를 들어 높여 귀족들과 함께 앉히신다고 노래합니다. 그 노래에서 높은 자리와 낮은 자리는 인간이 영원히 소유한 신분이 아닙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 자리입니다.

그는 반역에 성공했기 때문에 왕이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언의 관점에서 그의 왕권은 자신의 힘만으로 얻은 절대적인 소유가 아닙니다.

이것이 바아사의 폭력적인 왕위 찬탈을 여호와야훼께서 명령하거나 승인하셨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권자이시라는 사실과 인간이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진다는 사실은 구별되어야 합니다.

여호와야훼는 바아사를 지도자로 세우셨다고 말씀하시면서, 이스라엘을 두 번이나 「내 백성」이라고 부르십니다. 이스라엘은 바아사의 소유가 아닙니다. 왕이 마음대로 다루거나 자신의 권력을 위해 이용할 수 있는 집단도 아닙니다.

따라서 바아사가 백성을 죄에 빠뜨린 것은 단순히 자신의 종교적 선택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에게 맡겨진 백성을 잘못된 길로 이끈 책임이 됩니다.

바아사의 집은 왜 여로보암의 집과 같아지는가

「보라, 내가 바아사와 그의 집안을 남김없이 쓸어 버리겠다. 네 집안을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안처럼 만들겠다.」열왕기상 16:3 · 본디새김

바아사는 여로보암의 왕가를 멸망시켜 왕권을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자신이 멸망시킨 바로 그 왕가와 같은 운명을 맞게 됩니다.

바아사는 여로보암의 아들을 죽였지만, 여로보암의 길은 버리지 않았습니다. 여로보암의 정치적 권력은 제거하면서도 그가 만들어 놓은 종교적 질서는 그대로 따랐습니다.

왕이 바뀌었다고 나라가 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4절은 바아사의 집에 속한 사람들이 성읍과 들에서 죽어 개들과 새들의 먹이가 되리라고 선언합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시신이 제대로 매장되지 못하는 것은 극심한 수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단순히 죽음이 닥친다는 예고가 아니라, 왕가가 매장과 애도의 질서마저 지키기 어려울 만큼 철저하게 무너질 것이라는 심판의 언어입니다.

그러나 바아사 자신은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고 디르사에 묻힙니다(16:6).

본문이 선포한 심판의 대상은 바아사 개인만이 아니라 그의 집 전체입니다. 바아사는 살아 있는 동안 왕좌를 유지했고 아들에게 왕위까지 물려주었습니다. 겉으로는 왕조가 유지되는 듯합니다. 그러나 그 집의 미래에 대한 여호와야훼의 말씀은 이미 선포되었습니다.

예언의 성취와 인간의 책임

7절은 바아사가 심판받는 이유를 다시 밝히면서 한 가지를 덧붙입니다.

또한 하나니의 아들 예언자 예후를 통해 바아사와 그의 집안을 향한 여호와야훼의 말이 전해졌다. 바아사가 여호와야훼가 보기에 온갖 악을 행하고 자기 손으로 한 일로 여호와야훼를 분노하게 하여 여로보암의 집안처럼 되었기 때문이며, 또 그가 여로보암의 집안을 쳤기 때문이었다.열왕기상 16:7 · 본디새김

여로보암의 집이 멸망하리라는 말씀은 앞서 아히야를 통해 주어졌습니다(열왕기상 14:10–14). 바아사는 실제로 그 집을 멸망시켰습니다.

그런데 그 바아사가 여로보암의 집을 친 일 때문에도 심판받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예고하신 일이 이루어졌다는 사실과, 그 일을 실행한 사람이 의롭다는 판단은 같지 않습니다.

여로보암의 왕가가 멸망하리라는 여호와야훼의 말씀은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왕가를 멸망시킨 바아사도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엘라와 시므리: 왕좌를 차지한 지 이레 만에 왕궁이 불타다

열왕기상 16:8–20 본문 →

전쟁터에 없는 왕

바아사의 아들 엘라는 디르사에서 두 해 동안 다스립니다.

이스라엘 군대는 블레셋 사람들이 차지한 깁브돈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반면 왕 엘라는 수도 디르사에 남아 있습니다.

그의 신하 시므리, 곧 병거대 절반을 지휘하던 자가 그를 거슬러 음모를 꾸몄다. 그때 엘라는 디르사에 있었는데, 디르사의 왕궁을 맡아보던 아르사의 집에서 술을 마시며 취해 있었다.열왕기상 16:9 · 본디새김

본문은 엘라가 평소 술에 빠져 살았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왕이 취해 있는 때에 자신의 신하에게 살해되었다는 사실을 굳이 기록합니다. 그의 무방비 상태가 사건의 중요한 배경이기 때문입니다.

시므리는 병거대 절반을 지휘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왕실 가까이에 접근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고, 일정한 군사적 권한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군대 전체의 지지를 확보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시므리는 왕을 죽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왕을 죽이는 능력과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권력은 같지 않았습니다.

왕좌에 앉자마자 시작된 학살

그는 왕이 되어 왕좌에 앉자마자 바아사의 온 집안을 쳤다. 바아사에게 속한 자 가운데 벽에 오줌을 누는 자는 물론 그의 가까운 친족들과 벗도 하나도 남겨 두지 않았다.열왕기상 16:11 · 본디새김

여기서 「왕좌에 앉자마자」라는 표현은 시므리의 행동이 얼마나 즉각적이었는지 보여줍니다. 그는 새로운 정책을 발표하거나 백성의 지지를 얻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본문이 왕위에 오른 직후 그의 첫 행동으로 기록하는 것은 바아사의 집안에 대한 학살입니다.

시므리가 제거한 것은 단순히 왕위를 물려받을 직계 후손만이 아닙니다. 바아사의 집과 연결된 주변 인물들까지 포함됩니다. 그가 이들을 제거한 구체적인 동기를 본문은 밝히지 않지만, 왕권 교체가 얼마나 광범위한 폭력으로 이어졌는지는 분명합니다.

이렇게 바아사의 집은 예언자 예후를 통해 선포된 말씀대로 멸망합니다.

같은 깁브돈에서 되풀이되는 반역

깁브돈은 앞 장에서 바아사가 나답을 죽인 장소입니다(15:27). 당시에도 이스라엘 군대는 블레셋 사람들에게 속한 깁브돈을 포위하고 있었습니다. 바아사는 그곳에서 왕을 죽이고 권력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여러 해가 지난 뒤, 이스라엘 군대는 여전히 깁브돈에 진을 치고 있습니다.

그 사이 왕조가 하나 바뀌었지만, 블레셋을 상대로 한 군사적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습니다. 이번에는 수도에서 반역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그 진영으로 전달됩니다.

진을 치고 있던 백성은 「시므리가 음모를 꾸미고 왕까지 쳐 죽였다.」라는 말을 들었다. 그날 온 이스라엘은 진영에서 군대 지휘관 오므리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웠다.열왕기상 16:16 · 본디새김

시므리는 병거대 절반을 지휘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오므리는 군대 지휘관이었습니다. 그리고 시므리와 달리 오므리는 군영의 지지를 바탕으로 수도를 공격합니다.

17절에서 오므리는 「온 이스라엘」과 함께 디르사로 올라옵니다. 군대는 디르사를 포위합니다.

시므리의 왕권은 자신이 왕을 죽이고 차지한 바로 그 수도에서 무너집니다.

일주일의 끝에 불타는 왕궁

시므리는 성읍이 함락된 것을 보고 왕궁의 성채로 들어갔다. 그는 자신이 안에 있는 채로 왕궁에 불을 질러 태우고 죽었다.열왕기상 16:18 · 본디새김

그가 차지하려던 왕궁이 그의 무덤이 된 것입니다.

그의 통치는 이레였습니다.

그가 왕좌에 앉자마자 바아사의 집을 멸망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정작 자신의 왕조를 세울 기회는 얻지 못했습니다. 왕조를 없애는 일은 빠르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왕조를 세우는 일은 훨씬 어려웠습니다.

19절은 시므리 역시 여호와야훼께 악한 일을 했고 여로보암의 길을 따랐다고 평가합니다. 시므리는 바아사의 집을 멸망시켰지만, 그에게서 북왕국의 신앙적 방향을 바로잡는 변화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디르사에서 일어난 혼란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조금 더 깊이

본문의 「벽에 오줌을 누는 자」라는 거친 표현은 남자들을 가리키며, 한 사람도 남기지 않겠다는 철저함을 드러냅니다. 17절의 「온 이스라엘」은 군사적 상황에서 그를 따르는 이스라엘 군대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21절은 백성 전체가 실제로는 두 편으로 갈라졌다고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

오므리: 나라를 통일하고 새로운 수도를 세우다

열왕기상 16:21–28 본문 →

오므리는 처음부터 온 이스라엘의 왕이 아니었다

시므리가 죽자 오므리가 왕이 됩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이 둘로 갈라졌다. 백성의 절반은 기낫의 아들 디브니를 왕으로 세우려고 그를 따랐고, 나머지 절반은 오므리를 따랐다.열왕기상 16:21 · 본디새김

군대가 오므리를 왕으로 인정했다고 해서 모든 백성이 그의 왕권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디브니가 어떤 배경을 가진 인물이었고, 왜 많은 백성이 그를 지지했는지 본문은 설명하지 않습니다.

22절은 오므리를 따르는 사람들이 디브니를 따르는 사람들을 이겼다고 말합니다. 이후 디브니가 죽고 오므리가 왕이 됩니다. 본문은 디브니가 어떤 방식으로 죽었는지 밝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므리의 왕권이 정치적 경쟁과 충돌을 거쳐 확립되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수도를 옮긴다는 것

오므리에 관한 기록에서 가장 구체적으로 설명되는 업적은 새로운 수도의 건설입니다.

그는 은 두 달란트를 주고 세멜에게서 사마리아 산을 샀다. 그는 그 산에 성읍을 건설하고, 산 주인 세멜의 이름을 따서 자기가 건설한 성읍의 이름을 사마리아라고 불렀다.열왕기상 16:24 · 본디새김

디르사에서는 왕이 살해되었습니다. 왕궁은 불탔고, 군대가 성읍을 포위했습니다. 그리고 그 왕궁에서 권력을 장악한 오므리는 새로운 장소에 수도를 건설합니다.

사마리아는 언덕 위에 자리한 도시였습니다. 이러한 입지는 방어와 통치에 유리한 조건을 제공할 수 있었습니다. 오므리가 사마리아 산을 선택한 구체적인 이유를 본문은 밝히지 않지만, 이전 왕조들의 중심지였던 디르사를 떠나 새로운 왕권의 중심을 마련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그가 땅을 빼앗았다고 하지 않고, 은 두 달란트를 주고 구입했다고 말합니다. 이는 새로운 수도의 건설이 토지 매입이라는 절차를 통해 이루어졌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성읍의 이름도 토지 소유자였던 세멜의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밝힙니다.

새로운 왕조의 수도가 탄생한 것입니다.

이후 열왕기서에서 사마리아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정치적 중심지로 계속 등장합니다. 북왕국이 멸망하는 열왕기하 17장에서도 사마리아는 마지막까지 왕국의 중심 도시로 남아 있습니다. 이 점에서 오므리의 수도 건설은 오래 지속되는 역사적 성과였습니다.

새로운 수도를 세웠지만, 새로운 길을 열지는 못했다

오므리는 여호와야훼가 보기에 악한 일을 했다. 그는 자기보다 앞선 모든 이보다 더 악하게 행동했다.열왕기상 16:25 · 본디새김

오므리는 이전 왕들에 비해 정치적 안정을 확보하는 데 상당한 성과를 거둔 인물로 나타납니다. 왕위 경쟁에서 승리하고 새로운 수도를 마련했으며, 왕조의 계승에도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열왕기서는 그 업적을 그의 신앙적 평가와 동일시하지 않습니다.

27절은 그의 행적과 무용이 이스라엘 왕들의 연대기에 기록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그의 정치적 업적이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는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길을 따르고, 여로보암이 이스라엘도 짓게 한 죄를 따르며, 그들의 헛된 것들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분노하게 했다.열왕기상 16:26 · 본디새김

그 우상들이 무엇인지 26절은 구체적으로 열거하지 않습니다. 다만 여로보암이 세운 제의 체계와의 연결 속에서 이해하도록 합니다.

오므리는 돌과 건축물로 새로운 도시를 세웠습니다. 그 도시는 오래도록 북왕국의 중심지가 됩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께서는 그들이 붙들고 있는 종교적 대상들을 「헛된 것들」이라고 평가하십니다.

도시는 견고해질 수 있었습니다. 군사력도 강화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을 향한 올바른 관계까지 보장하지는 않았습니다.

오므리는 나라의 중심을 옮겼지만, 나라가 걸어가는 길은 바꾸지 않았습니다.

열왕기서에서 왕이 어떤 길을 걷는다는 표현은 한 번의 행동만이 아니라, 그의 통치를 특징짓는 방향을 보여줍니다. 개인의 죄가 제도와 관습이 되고, 그것이 후대의 통치자에게 자연스러운 선택처럼 여겨지는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장은 그 구조가 인간에게 죄를 지을 수밖에 없도록 강요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각 왕이 그 길을 따랐다는 표현으로 그들의 책임을 분명하게 합니다.

물려받은 질서가 잘못되었다고 해서 그것을 이어 가는 사람의 책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다음에 등장하는 그의 아들은 그 길에서 더 멀리 나아갑니다.

조금 더 깊이

시므리가 죽고 오므리가 옹립된 것은 유다 왕 아사 이십칠 년째였습니다(16:15–16). 그런데 23절은 오므리가 아사 삼십일 년째에 왕이 되었다고 기록합니다. 두 시점 사이에는 약 네 재위 연도의 간격이 있습니다. 이를 오므리와 디브니 사이의 왕위 경쟁 기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특히 21–22절이 두 세력의 대립과 오므리의 최종 승리를 기록한다는 점에서 자연스러운 읽기입니다. 다만 오므리의 총 통치 기간이 열두 해라고 기록된 점까지 고려하면, 왕의 즉위 연도를 계산하는 방식도 함께 살펴야 합니다. 따라서 이 구절만으로 분쟁이 정확히 몇 년 몇 개월 지속되었는지까지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아합: 여로보암의 죄가 하찮게 여겨지다

열왕기상 16:29–33 본문 →

이전 왕들보다 더 악한 왕

오므리가 죽자 아들 아합이 왕이 됩니다.

아합의 통치 기간은 스물두 해입니다. 아버지 오므리가 정치적 안정을 구축한 뒤였기 때문에 아합은 그 기반 위에서 왕국을 다스리게 됩니다.

오므리의 아들 아합은 여호와야훼가 보기에 자기보다 앞선 모든 이보다 더 악한 일을 했다.열왕기상 16:30 · 본디새김

25절에서 오므리는 앞선 모든 왕보다 더 악하다고 평가되었습니다. 그런데 아합은 그 오므리보다도 더 악하다고 평가됩니다. 열왕기서는 왕조가 바뀌고 시간이 흐르면서 악이 단순히 반복되는 것을 넘어 점점 심화되고 있다고 보여줍니다.

여로보암의 죄만으로는 부족했던가

31절은 특별한 표현으로 시작합니다.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들을 따르는 것이 그에게는 하찮은 일이기라도 한 듯, 그는 시돈 사람들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맞고, 가서 바알을 섬기고 그에게 엎드려 절했다.열왕기상 16:31 · 본디새김

이것은 여로보암의 죄가 실제로 가벼웠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아합이 그 죄를 마치 별것 아닌 일처럼 여겼다는 비판입니다.

여기까지 등장한 북왕국 왕들은 계속 여로보암의 길을 따랐습니다. 그런데 아합은 그 길을 따르는 데서 더 나아갑니다.

여로보암은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들을 세우고 이스라엘의 예배 체계를 바꾸었습니다(열왕기상 12:26–33). 그가 만든 금송아지가 여호와야훼를 표현하려는 것이었는지, 별도의 신적 대상을 나타낸 것인지에 대해서는 해석이 갈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정책이 여호와야훼께서 요구하신 예배에서 벗어났다는 것이 열왕기서의 분명한 평가입니다.

반면 아합의 경우에는 바알이라는 신의 이름이 직접 등장합니다.

그는 바알을 섬기고, 절하고, 제단을 세우고, 그를 위한 신전까지 건설합니다. 이는 다른 신을 위한 제의가 왕의 행동을 통해 왕국의 수도에 자리 잡는 단계입니다.

이세벨과 왕실의 결혼

아합은 시돈 사람들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과 결혼합니다.

고대 왕실에서 다른 나라의 왕가와 혼인하는 일은 외교 관계와 연결되곤 했습니다. 이 결혼 역시 그러한 정치적 관계 속에서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아합이 정확히 어떤 외교적 목적 때문에 결혼했는지는 밝히지 않습니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결혼 이후 이어지는 아합의 종교적 행동입니다.

그는 사마리아에 자기가 건설한 바알의 집에 바알을 위한 제단을 세웠다.열왕기상 16:32 · 본디새김

여기서 「바알의 집」은 바알 신전을 뜻합니다. 바로 앞에서 오므리는 사마리아라는 새로운 수도를 건설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의 아들 아합은 그 수도에 바알의 집을 건설합니다.

왕국의 중심에 무엇을 세울 것인가는 단순한 건축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왕이 어떤 신을 섬기며, 어떤 예배를 자신의 통치 아래에서 인정하고 지원하는가의 문제였습니다.

아세라까지 만들다

아합은 아세라를 만들었다. 아합은 자기보다 앞선 모든 이스라엘 왕보다 더 많은 일을 저질러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분노하게 했다.열왕기상 16:33 · 본디새김

여기서 아세라는 여신의 이름과 관련된 제의적 형상을 가리킵니다. 「만들었다」(⁨עָשָׂה⁩)는 동사가 사용되므로 이 문맥에서는 물질적인 상징물이나 제의 대상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형태와 재료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앞선 유다 왕 아사는 왕실 안에 있던 아세라 형상을 제거했습니다(15:13).

그러나 북왕국의 아합은 아세라를 만듭니다.

이러한 행동은 개인적인 경건의 차이를 넘어, 왕이 자신의 권력을 어떻게 사용했는가를 보여줍니다. 왕의 권력이 어떤 신앙적 방향을 향하는가에 따라 백성이 살아가는 종교적 환경도 달라질 수 있었습니다.

왜 여호와야훼께서는 분노하시는가

16장에서는 여호와야훼께서 분노하셨다는 표현이 여러 차례 반복됩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야훼께서 이집트에서 건져 내시고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신 공동체입니다. 출애굽기 20:2–3에서 여호와야훼는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신 하나님으로 자신을 밝히시며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신명기 6:4–5는 이스라엘이 여호와야훼를 사랑하고 그분께 충실해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이러한 언약 관계 안에서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은 단순한 종교적 다양성의 문제가 아닙니다. 자신들을 구원하시고 백성으로 삼으신 여호와야훼를 떠나는 일입니다.

열왕기상 16장에서 반복되는 여호와야훼의 분노는 바로 이 언약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특히 왕이 백성 전체를 그러한 길로 이끄는 일이기 때문에 더욱 심각하게 평가됩니다.

그런데 저자는 이 위기를 설명한 뒤, 아합의 행동을 더 나열하지 않습니다.

갑자기 여리고를 건설한 히엘이라는 인물을 등장시킵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본문은 여로보암의 죄를 따르는 일이 가벼운 것이었느냐는 물음의 성격을 지닌 표현으로 시작합니다.

히엘과 여리고: 오래전 말씀이 다시 들리다

열왕기상 16:34 본문 →

왜 왕의 기록 끝에 건축 이야기가 붙어 있는가

그의 시대에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설했다. 그는 맏아들 아비람을 대가로 그 기초를 놓았고, 막내아들 스굽을 대가로 그 성문들을 세웠다. 여호와야훼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통해 한 말대로였다.열왕기상 16:34 · 본디새김

아합은 이스라엘 왕입니다. 히엘은 벧엘 출신입니다. 왕위 계승이나 반역과도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히엘이 여리고를 건설한 일을 아합의 시대를 특징짓는 사건으로 기록합니다.

그 이유는 마지막 문장에 있습니다. 「여호와야훼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통해 한 말대로였다.」 이 문장은 독자를 여호수아서 6장으로 돌려보냅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남긴 경고

여호수아 6장은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간 뒤 여리고를 함락하는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여리고가 무너진 뒤 여호수아는 그 성읍을 다시 건설하는 사람에게 저주가 임하리라고 선언했습니다. 여호수아 6:26에 따르면 그 성읍을 재건하는 사람은 맏아들을 대가로 기초를 놓고, 막내아들을 대가로 성문을 세우게 될 것입니다.

열왕기상 16:34는 그 선언과 정확히 대응하는 구조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수아 6:26의 여리고 재건에 대한 경고는 맏아들과 기초, 막내아들과 성문을 연결합니다. 열왕기상 16:34의 히엘의 건축에 관한 기록은 아비람과 기초, 스굽과 성문을 연결합니다.

히엘의 두 아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본문에서 확실한 것은 성읍의 기초와 성문의 건설이 두 아들의 상실과 연결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저자가 그것을 여호수아를 통해 주어진 여호와야훼의 말씀의 성취로 이해한다는 사실입니다.

맏아들은 자녀들 가운데 가장 먼저 태어난 아들입니다. 막내아들은 가장 나중에 태어난 아들입니다. 성읍의 건축도 기초에서 시작해 성문 설치로 이어집니다.

건축의 시작과 끝에 가족의 맏아들과 막내아들이 등장합니다.

그 결과, 히엘이 성읍을 세우는 동안 그의 가족에게는 회복할 수 없는 상실이 일어납니다.

여호수아의 말씀이 아합의 시대에 다시 살아나다

열왕기상 16장은 예언자 예후에게 여호와야훼의 말씀이 임하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12절에서는 시므리가 바아사의 집을 멸망시킨 일이 여호와야훼께서 예후를 통해 하신 말씀대로 이루어졌다고 기록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34절에서는 여호수아를 통해 하신 말씀이 히엘의 시대에 이루어졌다고 기록합니다.

하나는 비교적 가까운 시기에 주어진 예언이고, 다른 하나는 가나안 정복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오래된 경고입니다.

하지만 두 말씀은 모두 성취됩니다.

왕이 몇 번이나 바뀌었는지, 수도가 어디로 옮겨졌는지, 어떤 군대가 승리했는지는 여호와야훼의 말씀이 사라졌는가를 결정하지 못합니다. 이것을 아합의 이야기 끝에 히엘의 건축 기록이 놓인 중요한 이유로 읽을 수 있습니다.

본문은 히엘 개인이 여호수아의 경고를 알고 있었는지, 아합이 그 건축 사업에 어떤 방식으로 관여했는지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건을 아합이 직접 명령한 범죄처럼 서술할 수는 없습니다.

조금 더 깊이

여호수아 18:21은 여리고를 베냐민 지파의 성읍 가운데 하나로 언급하고, 사무엘하 10:5도 여리고에 사람들이 머물 수 있었음을 전제합니다. 따라서 히엘이 여리고를 건설했다는 말은 그 지역에 역사상 처음으로 다시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는 뜻이라기보다, 성읍의 기초와 성문을 갖춘 본격적인 재건 사업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두 아들의 죽음에는 크게 두 가지 읽기가 가능합니다. 하나는 히엘이 건축 과정에서 자녀들을 희생 제물로 바쳤다고 보는 읽기입니다. 고대 근동의 건축과 제의 관습을 고려하여 이해하려는 방식입니다. 다른 하나는 여호수아의 경고에 따라 건축 과정에서 두 아들이 죽는 재앙을 겪었다고 보는 읽기입니다. 히브리어 본문은 두 아들과 건축 행위를 같은 전치사로 연결하지만, 두 아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히엘이 의도적으로 자녀들을 제물로 바쳤다고 확정해서는 안 됩니다.

맺음말 — 기초를 놓고 성문을 세우는 동안

열왕기상 16:1–34 본문 →

여로보암의 왕가는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그가 열어 놓은 길은 남았습니다. 왕들은 자기 왕국을 세우고 지키려 했지만, 그들이 무엇을 세우고 있는지는 여호와야훼의 말씀 앞에서 평가받아야 했습니다.

히엘은 여리고에 새로운 성읍을 세우고 있습니다.

기초를 놓고, 성벽과 문을 갖추어 갑니다. 성읍을 완성하는 일은 인간의 눈으로 보면 하나의 업적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그 건축물의 규모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 성읍의 기초에서 맏아들 아비람의 이름을 말하고, 성문에서 막내아들 스굽의 이름을 말합니다.

도시는 세워졌지만 두 아들이 상실되었습니다.

여리고를 무너뜨릴 때 선포되었던 말씀이, 여리고를 다시 세우는 시대에 기억됩니다. 그 사이에 수많은 왕이 등장했고, 왕국은 분열되었으며, 여러 왕조가 일어났다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오래된 여호와야훼의 말씀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성읍은 완성되어 가고 있었지만, 그 돌과 문짝 사이에는 오래전 여호와야훼께서 하신 말씀의 무게가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