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풀어 읽기 · 9장

이 장의 자리 · 6–11장 · 예루살렘의 성전

성전을 완성한 왕에게 물으신 것

솔로몬은 마침내 자신이 원하던 모든 것을 이루었습니다. 여호와야훼의 집을 지었고, 자신의 왕궁도 완성했습니다.

바로 그때 여호와야훼께서 솔로몬에게 두 번째로 나타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기대와 사뭇 다릅니다. 성전의 완성을 인정하시고 솔로몬의 기도를 들으셨다고 말씀하시지만, 곧이어 그 성전을 내던지고 이스라엘을 땅에서 끊어 낼 수도 있다고 경고하십니다.

왜 성전이 완성된 순간에 성전의 파괴를 말씀하실까요?

이 질문을 품고 9장을 읽으면, 앞부분의 하나님의 말씀과 뒷부분의 건축·노역·무역 기록이 서로 관계없는 두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뒤의 기록들은 솔로몬이 이미 하나님의 경고를 모두 어겼다고 단정하는 판결문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어떤 삶을 요구하시는지 들은 독자가, 이제 왕의 실제 통치를 그 말씀에 비추어 살펴보게 만드는 기록입니다.

하나님께서 물으시는 것은 솔로몬이 무엇을 이루었느냐가 아니라, 그 모든 것을 이룬 뒤에도 어떤 길을 걸을 것이냐는 문제입니다.

읽는 시간 19분소단락 99장 본문 읽기 →

하나님께서 다시 나타나신 때

열왕기상 9:1–3 본문 →

기브온에서 시작된 왕의 길이 예루살렘에서 시험받는다

여호와야훼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신 것은 두 번째입니다. 첫 번째 만남은 기브온에서 이루어졌습니다(열왕기상 3:5–15).

그때 솔로몬은 왕이 된 지 오래되지 않았고, 자신을 큰 백성을 다스리는 데 부족한 사람으로 고백했습니다. 그는 장수나 부귀보다 백성을 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지혜를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기뻐하시고 지혜와 함께 부귀와 영광도 약속하셨습니다.

두 번째 만남에서 솔로몬의 형편은 달라져 있습니다.

그는 이제 거대한 성전을 지은 왕이며, 자신의 왕궁도 완성한 사람입니다. 처음에는 통치할 지혜를 구해야 했지만, 이제는 이미 커진 왕국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하는 문제 앞에 서 있습니다.

두 만남을 연결하는 것은 하나님의 조건부 약속입니다. 기브온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 다윗처럼 자신의 길을 걸으며 규정과 계명을 지키면 그의 날을 길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3:14). 이제는 왕조와 성전의 미래를 말씀하시며 같은 요구를 더욱 엄중하게 제시하십니다.

「내 눈과 내 마음이 언제나 그곳에 있을 것이다」

여호와야훼가 그에게 말했다. 「네가 내 앞에서 드린 기도와 간구를 내가 들었다. 나는 내 이름을 그곳에 영원히 두려고 네가 지은 이 집을 거룩하게 구별했다. 내 눈과 내 마음이 언제나 그곳에 있을 것이다.」열왕기상 9:3 · 본디새김

성전은 솔로몬이 지었지만, 그곳을 거룩하게 구별하신 분은 여호와야훼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그곳을 자신의 이름을 위한 장소로 받아들이셨습니다.

눈은 그곳을 살피고 돌보시는 하나님의 관심을 떠올리게 합니다. 마음은 하나님께서 그곳에 자신의 뜻과 관심을 두신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단순히 성전을 관찰하는 분이 아니라, 그곳에서 자신과 백성의 관계가 이루어지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시는 분으로 나타나십니다.

그런데 바로 뒤에서 그분은 그 집을 내던질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3절은 하나님께서 성전을 자신의 이름을 위한 거룩한 장소로 구별하셨다는 선언입니다. 반면 6–9절은 백성이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면 그 성전도 심판에서 예외가 되지 않는다는 경고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두신 장소이기에, 오히려 그곳에서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는지가 중요해집니다.

조금 더 깊이

‘영원히’라는 표현의 구체적인 적용 범위를 두고는 서로 다른 이해가 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그곳을 자신의 이름을 위한 영속적인 장소로 선택하셨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고, 그 선택의 뜻은 지속되지만 건물 자체의 보존은 백성의 순종과 별개의 문제라고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본문의 경고를 지워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성전을 거룩하게 하셨다는 사실은 그 성전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무조건 승인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왕좌를 영원히 세우는 길

열왕기상 9:4–5 본문 →

하나님께서는 성전에 관해 말씀하신 뒤 곧바로 솔로몬 자신에게 시선을 돌리십니다.

「네가 네 아버지 다윗이 걸었던 것처럼 온전한 마음과 올곧음으로 내 앞에서 걷고, 내가 네게 명령한 모든 것을 행하며 내 규정과 법도를 지키면,」열왕기상 9:4 · 본디새김

「온전한 마음」과 「올곧음」이라는 두 표현은 함께 왕의 내면과 행동을 가리킵니다. 두 표현이 나란히 놓인 까닭은 마음과 행동을 분리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충성은 내면의 생각만으로 완성되지 않으며, 외적인 행실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다윗이 모범으로 제시된다는 사실은 다윗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무엘하 11–12장은 다윗의 심각한 죄를 숨기지 않습니다. 이 문맥에서는 무엇보다 여호와야훼를 자신의 하나님으로 섬기며 그분의 뜻 앞에 서는 왕의 기본적인 방향을 가리킵니다.

「나는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네 왕좌를 영원히 굳게 세울 것이다. 네 아버지 다윗에게 『네 자손 가운데 이스라엘의 왕좌에 앉을 사람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한 대로다.」열왕기상 9:5 · 본디새김

그러나 이 약속은 4절의 조건과 이어져 있습니다. 다윗에게 주신 왕조의 약속이 있다고 해서 각 세대의 왕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솔로몬은 세상 어느 왕보다 큰 영광을 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큰 왕도 하나님 앞에서 걸어야 한다는 요구를 벗어나지는 못합니다.

성전의 영광이 조롱거리가 되는 날

열왕기상 9:6–9 본문 →

이제 하나님의 말씀이 급격하게 달라집니다.

솔로몬 한 사람에게서 그의 후손과 온 백성으로

4–5절까지는 솔로몬 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이어집니다. 그런데 6절에서는 「너희와 너희 아들들이」라는 복수형으로 바뀝니다. 하나님의 경고가 솔로몬 개인의 생애를 넘어 그의 후손들에게까지 확장됩니다.

하나님께서 경고하시는 것은 순간적인 실수 하나가 아닙니다. 그분을 따르던 방향에서 돌아서 다른 신들을 섬기는 일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움직임의 크기가 아니라 방향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땅에서 끊어 내시다

「나는 이스라엘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 위에서 끊어 내고, 내 이름을 위해 거룩하게 구별한 이 집을 내 앞에서 내던질 것이다.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사이에서 속담과 조롱거리가 될 것이다.」열왕기상 9:7 · 본디새김

이스라엘이 그 땅에 살게 된 것은 스스로 모든 것을 획득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약속하시고 그들을 그곳에 살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과 무관하게 영원히 누릴 수 있다는 생각은 여기서 무너집니다.

성전의 거룩함은 불순종을 덮어 주는 방패가 아닙니다.

높이 솟은 성전을 보고 사람들이 경악한다

「이 집은 높이 솟아 있을 것이다. 그 곁을 지나는 사람마다 경악하며 쉿쉿 소리를 내고, 『여호와야훼가 왜 이 땅과 이 집에 이렇게 했는가?』라고 말할 것이다.」열왕기상 9:8 · 본디새김

성전은 하나님의 이름을 널리 알리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백성이 하나님을 버리면 그 성전은 이스라엘의 불순종과 하나님의 심판을 알리는 증거가 됩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들이 자기 조상들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낸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붙들어 그들에게 절하며 그들을 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호와야훼가 이 모든 재앙을 그들에게 내렸다.』」열왕기상 9:9 · 본디새김

이것은 신명기 29:24–28의 장면과 가까이 연결됩니다. 그곳에서도 여러 민족이 황폐해진 땅을 보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묻고, 사람들이 이스라엘이 조상들의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버렸기 때문이라고 대답합니다.

물론 이것이 모든 나라의 재난이나 모든 개인의 고통을 특정한 죄의 결과라고 해석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으신 언약 안에서, 우상숭배에 따른 심판을 구체적으로 경고하시는 장면입니다.

이제 이야기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말씀에서 솔로몬의 실제 통치로 옮겨 갑니다.

조금 더 깊이

본문의 「높이 솟아 있을 것이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엘욘(⁨עֶלְיוֹן⁩)은 ‘높은’, ‘높이 있는’이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다만 여기에는 본문 전승과 해석의 갈림이 있습니다. 히브리어 문면을 따라 높이 솟은 집으로 읽는 방식이 있고, 폐허가 된 집을 가리키는 것으로 읽는 방식도 있습니다. 병행 본문인 역대하 7:21은 성전이 높이 있었던 모습을 언급하면서 그곳을 지나는 이들이 경악하는 장면을 기록합니다.

스무 성읍을 주고도 만족시키지 못한 동맹

열왕기상 9:10–14 본문 →

하나님의 말씀이 끝나자 서술자는 다시 솔로몬의 건축 사업으로 돌아옵니다.

솔로몬은 여호와야훼의 집과 왕의 집을 짓는 데 모두 이십 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건물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 건물들을 짓는 데 필요한 자원을 어떻게 조달했는지가 이야기됩니다.

두로와 이스라엘의 협력은 성전 건축 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열왕기상 5:1–12에서 솔로몬은 히람과 협의하여 레바논의 목재를 공급받고, 그 대가로 두로 왕실에 식량을 제공하는 관계를 맺었습니다.

두로 왕 히람은 솔로몬이 원하는 대로 백향목과 사이프러스 목재와 금을 공급해 주었다. 그 이십 년이 끝났을 때 솔로몬 왕은 히람에게 갈릴리 땅의 성읍 스무 곳을 주었다.열왕기상 9:11 · 본디새김

그런데 히람의 반응이 예상 밖입니다.

그가 말했다. 「내 형제여, 그대가 내게 준 이 성읍들은 무엇이오?」 그는 그곳들을 가불 땅이라고 불렀고, 그 이름이 오늘까지 이어졌다.열왕기상 9:13 · 본디새김

「내 형제여」라는 호칭은 두 왕 사이의 우호적인 외교 관계를 보여 줍니다. 그러나 친근한 호칭 뒤에 이어지는 말은 불만입니다.

본문은 건축에 필요한 자원을 히람에게서 공급받았다는 사실을 먼저 제시합니다. 따라서 성읍의 양도는 두 왕 사이에 이루어진 큰 규모의 경제적 거래와 관련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본문은 이것이 정확히 어떤 채무를 정산한 거래였는지, 성읍들에 대한 권리가 어떤 형태로 이전되었는지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7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땅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이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땅에 속한 성읍들을 왕이 다른 나라 왕에게 넘깁니다. 본문도 이 거래에 대해 직접적인 비난을 덧붙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백성에게 주신 땅을 다스리는 왕은 그 땅을 자신의 건축 사업을 위한 자원으로 어디까지 사용할 수 있습니까?

성전의 화려함만 바라볼 때에는 떠오르지 않던 질문입니다. 이제 서술자는 건물의 완성에서 그 건물들을 지탱한 왕국의 운영 방식으로 시선을 옮깁니다.

조금 더 깊이

히람은 그 지역을 가불 땅이라고 부릅니다. 이 이름이 그의 불만과 연결된다는 것은 문맥상 분명하지만, 그 이름의 정확한 뜻이나 어원을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14절에는 히람이 솔로몬에게 금 백이십 달란트를 보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이 금이 어느 시점에 어떤 조건으로 제공되었는지 역시 본문만으로 완전히 재구성하기는 어렵습니다. 병행 본문인 역대하 8:2에는 히람이 솔로몬에게 준 성읍들을 솔로몬이 다시 지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이것을 앞서 넘긴 성읍들의 반환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두 기록이 동일한 거래의 어떤 단계를 각각 설명하는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왕이 원하는 모든 것을 짓다

열왕기상 9:15–19 본문 →

솔로몬 왕이 여호와야훼의 집과 자기 집, 밀로와 예루살렘 성벽, 하솔과 므깃도와 게셀을 짓기 위해 동원한 강제 노역의 내역은 이러했다.열왕기상 9:15 · 본디새김

성전의 건축 과정을 설명했던 앞선 장들에서는 재료와 구조, 장식이 중심이었습니다. 이제는 그 건축을 가능하게 한 사람들의 노동이 전면에 나타납니다.

솔로몬이 지은 것은 종교 시설만이 아니었습니다.

하솔은 북쪽의 주요 거점이고, 므깃도는 이스르엘 평야 일대의 교통로와 연결되는 성읍이며, 게셀은 해안 평야에서 내륙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자리합니다. 이 성읍들은 왕국의 교통과 방어를 위해 중요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게셀을 얻은 방식에 담긴 불편한 장면

그런데 게셀을 소개하는 도중 서술자는 갑자기 이집트 왕 파라오의 행동을 설명합니다.

파라오는 게셀을 점령하고 불태웠으며, 그곳에 살던 가나안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게셀을 자신의 딸, 곧 솔로몬의 아내에게 혼인 선물로 주었습니다(9:16).

솔로몬에게 게셀은 왕국의 중요한 건설 대상이 되었지만, 그 성읍의 주민들에게는 전쟁과 파괴의 현장이었습니다.

본문은 파라오의 행동에 대해 별도의 도덕적 평가를 덧붙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저지른 살육을 단순한 외교적 성과로만 읽을 필요도 없습니다. 서술자는 솔로몬이 그 성읍을 건설하게 된 배경에 실제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록합니다.

특히 파라오의 딸과의 혼인은 열왕기상 3:1에서 이미 언급되었습니다. 그 결혼은 이집트 왕실과의 관계를 수반했고, 게셀의 이야기는 그 관계가 영토와도 연결되어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원하는 것을 모두 지을 수 있는 왕

또 자기에게 속한 모든 저장 성읍과 병거 성읍과 기병 성읍을 지었다. 솔로몬은 예루살렘과 레바논과 자기가 다스리는 온 땅에서 짓고 싶어 했던 모든 것을 지었다.열왕기상 9:19 · 본디새김

1절에서는 솔로몬이 「자기가 하고 싶어 했던 모든 일」을 마쳤다고 했고, 19절에서는 그가 「짓고 싶어 했던 모든 것」을 지었다고 합니다. 본문은 이 반복을 통해 한 왕의 놀라운 실행 능력을 드러냅니다.

왕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만큼 강해졌다는 사실은 왕의 삶을 평가할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더 중요해집니다.

그리고 다음 단락은 그 힘을 가능하게 한 노동 체계를 보여 줍니다.

누가 솔로몬의 왕국을 세웠는가

열왕기상 9:20–23 본문 →

솔로몬의 건축 사업에는 막대한 노동력이 필요했습니다. 서술자는 그 노동력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설명합니다.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 브리스 사람,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 가운데 이스라엘 땅에 남아 있던 사람들의 후손이 있었습니다.

그들 뒤를 이어 그 땅에 남아 있던 자손들을 이스라엘 자손은 전멸시킬 수 없었고, 솔로몬은 그들을 강제 노역꾼으로 삼았다. 그 상태가 오늘까지 이어졌다.열왕기상 9:21 · 본디새김

이 기록은 여호수아서와 사사기에 나오는 미완의 정복 상황과 연결됩니다. 여호수아 16:10은 게셀의 가나안 주민들이 쫓겨나지 않고 강제 노역을 했다고 기록합니다. 사사기 1:27–36에도 이스라엘이 정복하지 못한 주민들을 노역에 동원하는 모습이 반복됩니다.

솔로몬의 강제 노역 체제는 이전 세대부터 이어진 관계를 왕실의 건축 사업에 이용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들은 자신의 노동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왕의 권한 아래 강제로 동원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서는 아무도 노예로 삼지 않았다. 그들은 군인이었고, 그의 신하와 관리와 부관, 그의 병거대와 기병대의 지휘관들이었기 때문이다.열왕기상 9:22 · 본디새김

이 구절만 읽으면 솔로몬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강제 노동을 전혀 부과하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열왕기상 5:13–14에서는 솔로몬이 이스라엘 전체에서 삼만 명을 노역에 동원하여 한 달씩 돌아가며 레바논으로 보냈다고 기록합니다.

9장 22절의 「노예로 삼지 않았다」는 진술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앞서 언급된 가나안 후손들과 동일한 노예 신분에 놓이지 않았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노동 동원이나 국가적 부담이 없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한 구분이 실제 노동의 부담을 얼마나 줄여 주었는지는 본문만으로 알기 어렵습니다.

솔로몬이 죽은 뒤 이스라엘 백성은 그의 아들 르호보암에게 아버지가 자신들에게 지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12:4). 솔로몬의 시대에는 왕국이 강해지고 건축 사업이 번성했지만, 그 과정에서 백성이 감당해야 했던 부담도 있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왕이 백성을 위하는가, 백성이 왕을 위해 존재하는가

이 장면은 사무엘상 8장의 오래된 경고를 떠올리게 합니다.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들처럼 왕을 세워 달라고 요구했을 때, 사무엘은 왕이 백성에게 무엇을 요구할지 설명했습니다. 왕은 아들들을 데려다가 병거와 말을 돌보게 하고, 자신의 밭을 갈고 추수하게 하며, 딸들을 여러 일에 동원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백성의 재산과 노동이 왕의 권력 아래 놓이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사무엘상 8:11–17).

성벽과 저장 성읍, 군사 거점은 왕국을 보호하고 운영하는 데 실제로 필요한 시설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왕국에 필요한 시설이라는 사실만으로 그 건설에 동원된 사람들의 처지가 중요하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이 장 앞부분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9:9). 이집트는 이스라엘을 강제 노동에 동원했던 나라입니다(출애굽기 1:11–14). 그런데 이제 이집트에서 해방된 백성의 왕국 안에서도 강제 노동을 통해 거대한 건축 사업이 이루어집니다.

이집트에서 이스라엘이 겪은 억압과 솔로몬 시대의 노동 체제를 아무런 구분 없이 같은 것으로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출애굽을 이스라엘의 정체성으로 거듭 상기시키는 열왕기의 문맥에서 강제 노역의 등장은 분명 생각할 거리를 남깁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백성을 종살이에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백성을 다스리는 왕은 다른 사람들의 자유와 노동을 어떻게 다루어야 합니까?

본문은 여기서 그 질문에 대한 직접적인 판결을 내리지 않습니다. 오백오십 명의 감독관이 공사에 종사하는 백성을 지휘했다는 기록으로 노역 체계의 규모와 조직을 보여 줄 뿐입니다.

그러나 독자는 이제 솔로몬이 지은 건물만이 아니라, 그 건물들을 세운 사람들까지 보게 됩니다.

파라오의 딸이 옮겨 가고, 성전에는 제사의 연기가 오른다

열왕기상 9:24–25 본문 →

강제 노역에 관한 설명 뒤에는 파라오의 딸이 다윗 성에서 자신을 위해 지은 집으로 올라갔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솔로몬이 지은 여러 건물 가운데 왕실의 생활 공간이 정비되는 과정을 보여 주는 기록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열왕기상 7:8에서도 솔로몬이 파라오의 딸을 위해 별도의 집을 지었다고 기록합니다.

뒤에 열왕기상 11:1–8에서는 솔로몬이 여러 외국인 아내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신들을 따르게 되는 문제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9장은 아직 그 결말을 말하지 않습니다. 현재의 기록을 그 사건과 곧바로 동일시할 수는 없지만, 이후의 이야기를 읽을 때 주목하게 되는 인물이 이미 왕실의 중심에 있다는 사실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다음 25절은 다시 성전으로 시선을 돌립니다.

솔로몬은 해마다 세 번씩 자기가 여호와야훼를 위해 쌓은 제단 위에 번제물과 화목 제물을 바쳤고, 그 제단에서 여호와야훼 앞에 연기를 올렸다. 그는 그 집을 완성했다.열왕기상 9:25 · 본디새김

해마다 세 번이라는 표현은 신명기 16:16에서 이스라엘 남자들이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여호와야훼 앞에 나아와야 한다고 명령한 것과 연결됩니다. 병행 본문인 역대하 8:12–13도 솔로몬의 정기 제사를 이러한 절기들과 연결합니다. 열왕기상 9장 자체는 그 세 절기의 이름을 명시하지 않지만, 솔로몬의 성전 제사가 일회적인 봉헌 행사가 아니라 반복되는 예배의 질서 안에 놓여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앞에서는 건축물의 완성을 이야기했습니다. 이제는 그 건물이 여호와야훼께 제사를 드리는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완성이 언급됩니다.

성전은 단지 세워진 건물이 아니라 실제 예배가 이루어지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정기적인 예배는 그 삶의 중요한 부분이지만, 삶 전체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본문은 솔로몬이 제사를 드리는 주체로 말하지만, 그가 제사장의 모든 직무를 직접 수행했다는 뜻까지 확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왕의 주도로 제사가 이루어졌다는 서술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본디새김이 「연기를 올렸다」고 번역한 표현을 특정한 향을 피우는 행위로만 제한할 필요도 없습니다. 제물을 바치고 그 연기가 여호와야훼 앞에 오르는 예배의 모습이 함께 제시되어 있습니다.

먼바다에서 금이 들어오다

열왕기상 9:26–28 본문 →

마지막 장면은 뜻밖에도 바다로 옮겨 갑니다.

솔로몬은 에돔 땅의 홍해 바닷가, 엘롯 곁에 있는 에시온게벨에서 선단을 만듭니다. 에시온게벨은 홍해의 북쪽 끝에 해당하는 아카바만 일대와 연결되는 항구로 이해됩니다. 이 위치에서 바다로 나간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교역 활동이 지중해 연안과 주변 내륙에만 머무르지 않고 홍해 항로로도 확장되었다는 뜻입니다.

다시 히람이 등장합니다.

히람은 바다를 잘 아는 뱃사람들인 자기 종들을 솔로몬의 종들과 함께 그 선단에 태워 보냈다.열왕기상 9:27 · 본디새김

히람은 성전 건축을 위한 목재 공급자로 등장했지만, 이제는 먼바다 항해를 위한 협력자로 나타납니다. 이스라엘은 육지에 기반한 왕국이었고, 두로는 바다를 통한 교역에 필요한 전문 인력을 제공했습니다.

선단은 오빌로 가서 금 사백이십 달란트를 가져옵니다. 이 장의 앞부분에서 히람이 제공한 금 백이십 달란트가 언급되었는데, 마지막에는 훨씬 많은 금 사백이십 달란트가 왕에게 들어옵니다. 금의 양은 솔로몬의 왕국이 가진 경제적 역량과 교역의 범위를 보여 줍니다.

조금 더 깊이

오빌의 정확한 위치는 본문만으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곳이 어디인지에 대한 여러 견해가 있지만, 열왕기상 9장은 오빌이 금을 가져오는 먼 항해의 목적지였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춥니다. 신명기 17:14–20에서 왕에게 주어진 규정과도 이어집니다. 그곳에서 왕은 말과 아내와 은금을 자신을 위해 지나치게 늘리지 말고, 율법을 가까이 두며, 마음이 형제들 위로 높아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열왕기상 9장에는 병거와 기병을 위한 성읍, 파라오의 딸, 거대한 금의 유입이 등장합니다. 이러한 요소들이 그 자체로 곧 신명기의 명령을 위반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독자가 왕의 부와 권력, 외국과의 관계를 신명기가 제시한 기준에 비추어 보도록 만드는 것은 분명합니다.

무엇이 왕국을 지켜 주는가

열왕기상 9:1–28 본문 →

하나님께서는 왕좌를 굳게 세우겠다고 약속하시면서도 왕에게 온전한 마음과 올곧음을 요구하셨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두신 성전조차 백성의 불순종을 감추는 장소가 되도록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솔로몬은 자기가 원하는 성읍을 지을 수 있고, 노동력을 동원할 수 있으며, 외국 왕과 협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뜻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하나님의 뜻까지 이루어지고 있다고 선언할 수는 없습니다.

열왕기상 9장은 이 문제를 성급한 판결로 마무리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에 보이는 것은 에시온게벨에서 떠난 선단입니다. 두로에서 온 숙련된 뱃사람들이 솔로몬의 종들과 함께 먼바다를 항해했고, 마침내 많은 금을 가져왔습니다. 왕의 창고는 더욱 풍성해지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원했던 일들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전을 완성한 왕에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토록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는 왕이, 과연 하나님께서 걸으라고 하신 길도 끝까지 걸을 것입니까.

금은 이미 솔로몬에게 도착했습니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