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베오기 상권 풀어 읽기 · 10장

이 장의 자리 · 9–12장 · 요나단이 이끈 때

왕들이 요나단을 높여 준 이유

마카베오기 상권 10장은 요나단의 운명이 놀랍게 바뀌는 이야기입니다.

얼마 전까지 그는 광야를 떠돌며 목숨을 지켜야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왕들이 앞다투어 그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 합니다. 한 왕은 군대를 모집하고 무기를 만들 권한을 주고, 다른 왕은 그를 대제사장으로 임명합니다.

왕들은 요나단이 귀해졌기 때문에 그를 높인 것이 아니라, 요나단이 필요해졌기 때문에 그를 높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요나단은 왕들의 이러한 필요를 이용하여 자신이 지키려 했던 공동체에 실제적인 변화를 가져옵니다. 인질로 잡혀 있던 아이들이 부모에게 돌아가고, 예루살렘의 성벽이 다시 세워지며, 사람들은 이전보다 안전하게 살아갈 기회를 얻습니다.

그러나 이야기의 마지막에는 또 다른 변화가 나타납니다. 이제 요나단 자신이 왕의 친구이자 대제사장으로서 전쟁을 수행하고, 도시와 신전을 불태우며, 그 공로로 새로운 영토를 받습니다.

자기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제국의 권력을 이용하던 사람이 점차 제국의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될 때, 무엇이 달라집니까?

읽는 시간 28분소단락 1110장 본문 읽기 →

데메트리오스는 왜 갑자기 요나단에게 평화를 제안했을까?

마카베오기 상권 10:1–6 본문 →

셀레우코스 왕조 기원 160년, 알렉산드로스가 돌레마이를 차지하고 왕으로 다스리기 시작합니다.

본문은 그를 「안티오코스의 아들 알렉산드로스 에피파네스」라고 소개합니다. 역사적으로 알렉산드로스는 발라스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안티오코스 4세의 아들이라는 혈통을 왕위 계승의 근거로 내세웠습니다. 다만 그의 실제 친자 관계까지 이 기록만으로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는 해안 도시 돌레마이를 점령했고, 주민들은 그를 왕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제 데메트리오스는 자신의 왕국을 두고 다른 왕과 싸워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데메트리오스가 처음 한 일 가운데 하나는 요나단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얼마 전까지 데메트리오스는 바키데스를 보내 요나단을 제거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에게 평화를 제안하며 권한을 부여합니다.

그가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그가 알렉산드로스와 손잡고 우리에게 맞서기 전에 우리가 먼저 그들과 평화를 맺자.」마카베오기 상권 10:4 · 본디새김

데메트리오스는 요나단이 알렉산드로스와 동맹을 맺는 것이 자신에게 위험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는 우리가 자기와 자기 형제들과 자기 민족에게 저지른 모든 악행을 기억할 것이다.」마카베오기 상권 10:5 · 본디새김

적어도 그 행동이 요나단에게 자신을 적대할 충분한 이유를 남겼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 인식이 곧 회개나 정의의 회복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왕은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요나단이 그 잘못을 기억하고 자신에게 복수하거나 경쟁자와 손잡을까 봐 평화를 제안합니다.

잘못을 인정하는 것과 그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마음은 반드시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그의 편지는 요나단에게 실제적인 기회를 제공합니다.

왕은 요나단에게 병력을 모으고 무기를 마련할 권한을 줍니다. 그를 동맹자로 인정하며, 성채에 잡혀 있던 볼모들도 돌려주라고 명령합니다.

요나단에게는 이미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었고, 실제로 군대를 이끌고 싸워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왕은 그가 군대를 모집하고 무기를 마련하는 일을 공식적으로 허용합니다. 이전까지 왕국에 저항하던 요나단의 세력이 이제 왕국과 동맹을 맺을 수 있는 정치 세력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이 가장 먼저 보여 주는 변화는 군대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입니다.

왕의 편지가 바꾼 첫 번째 현실 — 아이들이 부모에게 돌아오다

마카베오기 상권 10:7–14 본문 →

요나단은 예루살렘으로 가서 왕의 편지를 공개적으로 읽습니다.

온 백성뿐 아니라 성채에 있던 사람들도 그 말을 듣습니다. 요나단은 왕과 자신 사이에만 존재하는 비밀 약속으로 그 편지를 남겨 두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듣는 자리에서 내용을 알립니다.

그 결과 성채에 있던 사람들이 두려워하기 시작합니다.

이전에는 그들이 무기를 가지고 예루살렘의 주요 거점을 차지하고 있었고, 요나단 일행을 위협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왕이 요나단에게 군대를 모집할 권한을 주었습니다. 성채를 지키는 사람들에게는 왕이 더 이상 자신들의 일방적인 편이 아니라는 뜻이었습니다.

성채 사람들은 요나단에게 볼모들을 넘겨주었고, 요나단 일행은 그들을 각자의 부모에게 돌려보냈다.마카베오기 상권 10:9 · 본디새김

앞서 바키데스는 유다 땅 지도자들의 아들들을 볼모로 잡아 예루살렘 성채에 가두었습니다(9:53). 부모들이 저항하지 못하도록 그들의 자녀를 붙잡아 두었던 것입니다.

그는 왕의 인정을 얻었지만, 그 인정을 단순히 자신의 지위를 높이는 데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인질로 잡힌 사람들을 돌려보내 공동체가 겪고 있던 고통을 덜어 주었습니다.

여기에는 앞서 9장에서 요나단이 바키데스와 평화를 맺으면서 포로들을 돌려받았던 일과의 연속성이 있습니다. 그의 군사적 능력은 적을 죽이는 일에만 사용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을 해방하고 공동체의 삶을 회복하는 데에도 사용됩니다.

그다음 요나단은 예루살렘에 거주하면서 도시를 다시 세우기 시작합니다.

그는 성벽을 네모반듯한 돌로 쌓고 시온산 둘레도 방어하도록 명령합니다. 「네모반듯한 돌」은 일정한 모양으로 다듬은 건축용 돌을 가리킵니다. 단순한 임시 방어 시설이 아니라 견고한 성벽을 세우려는 작업이었음을 보여 줍니다.

바키데스가 세운 요새들에 있던 다른 민족의 군사들은 자기 땅으로 달아납니다. 다만 벳술에는 율법과 명령을 버린 사람들 가운데 일부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그곳은 피난처였습니다.

왕은 경쟁자를 견제하려고 요나단에게 편지를 보냈지만, 그 편지가 공동체의 삶에 가져온 결과는 왕이 의도했던 정치적 계산보다 더 구체적이었습니다.

외교적 성공의 가치는 왕에게서 어떤 칭호를 받았는가만이 아니라, 그 결과 보호받게 된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통해서도 드러납니다.

왕은 친구가 필요했고, 요나단은 대제사장이 되었다

마카베오기 상권 10:15–21 본문 →

데메트리오스의 제안을 들은 알렉산드로스도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는 요나단과 형제들이 벌인 전쟁과 세운 무공, 그들이 겪은 고생에 관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가 말했다. 「이런 사람을 한 명이라도 찾을 수 있겠느냐? 이제 그를 우리의 친구와 동맹자로 삼자.」마카베오기 상권 10:16 · 본디새김

여기서 알렉산드로스가 요나단을 평가하는 기준은 그의 신앙이나 율법에 대한 충실함이 아닙니다. 그가 얼마나 강하고 유능한 사람인지, 동맹자로서 얼마나 가치 있는 사람인지를 판단합니다.

그는 편지에서 요나단을 「형제」라고 부릅니다. 이 호칭은 왕과 요나단 사이에 실제 혈연관계가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고대 왕실과 외교 관계에서 상대를 높여 부르며 친밀한 관계를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편지의 다음 내용은 단순한 외교적 우호 관계를 넘어섭니다.

「이제 우리는 오늘 너를 네 민족의 대제사장으로 세우고, 왕의 친구라 불리게 한다.」 그들은 그에게 자주색 옷과 금관을 보냈다. 「우리의 일에 마음을 두고 우리와의 우정을 지켜라.」마카베오기 상권 10:20 · 본디새김

요나단은 자신의 공동체를 보호할 힘을 얻었지만, 그 힘의 중요한 부분을 외국 왕의 임명과 인정에서 받고 있었습니다.

160년 일곱째 달 초막절에 요나단은 거룩한 예복을 입었다. 그는 병력을 모으고 많은 무기를 마련했다.마카베오기 상권 10:21 · 본디새김

왕이 보낸 자주색 옷과 성소에서 입는 거룩한 예복은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하나는 왕의 인정을 나타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 앞에서 수행하는 제사장 직무를 나타냅니다.

그런데 이제 그 두 종류의 옷을 같은 사람이 입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초막절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살았던 일을 기억하며 하나님 앞에서 기뻐하는 절기입니다(레위기 23:33–43). 요나단은 바로 그 절기에 거룩한 예복을 입습니다. 왕의 임명으로 얻은 지위가 이스라엘의 예배와 절기 안에서 실제로 나타나는 순간입니다.

거룩한 예복을 입는 일과 무기를 마련하는 일이 한 절 안에 나란히 놓입니다.

그는 성소의 대제사장이면서 동시에 군대를 조직하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이 결합이 공동체를 보호하는 힘이 될 수도 있지만, 종교적 권위와 군사적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된다는 새로운 문제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본문은 여기서 그 문제의 최종적인 판단을 내려 주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구약에서 제사장 직분은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맡겨졌습니다(출애굽기 28:1). 또한 에스겔 44:15는 성소를 충실하게 지킨 사독의 자손에게 특별한 제사장 직무를 부여합니다. 요나단은 제사장 가문 출신이었습니다. 마카베오기 상권 2:1은 그의 아버지 마타티아스를 요아립 계열의 제사장으로 소개합니다. 그러나 그가 전통적인 사독계 대제사장 가문의 후손이었다는 사실은 이 책에서 확인되지 않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를 대제사장으로 임명하는 사람이 이스라엘의 예언자나 제사장 공동체가 아니라 셀레우코스 왕위를 놓고 경쟁하는 알렉산드로스라는 점입니다. 이전의 알키모스 역시 외국 왕의 지원으로 대제사장 직분을 차지했습니다. 물론 두 사람을 동일하게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알키모스의 악행을 반복해서 비판하지만, 요나단의 대제사장 취임은 부정적인 평가 없이 기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임명을 직접 승인하셨다는 말씀은 기록되지 않습니다. 요나단이 대제사장이 되었다고 해서 그 지위가 지닌 모든 문제가 자동으로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외국 왕이 임명했다는 이유만으로 그가 수행한 모든 제사장 직무를 잘못되었다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본문은 그와 같은 최종 판결을 내리지 않습니다.

너무 많은 것을 약속하는 왕

마카베오기 상권 10:22–45 본문 →

알렉산드로스가 요나단을 대제사장으로 세웠다는 소식을 들은 데메트리오스는 당황합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한 것이냐? 알렉산드로스가 우리보다 먼저 유대 사람들과 우정을 맺어 자기 버팀목으로 삼았구나.」마카베오기 상권 10:23 · 본디새김

그의 반응은 자기 잘못을 돌아보는 것보다 정치적 기회를 놓쳤다는 후회에 가깝습니다. 알렉산드로스는 왕위를 안정적으로 차지하기 위해 유대인들의 지원을 필요로 합니다. 요나단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자 데메트리오스는 훨씬 더 큰 제안을 준비합니다.

25–45절은 거의 전부 왕의 편지로 채워져 있습니다. 왕이 요나단과 유대 민족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약속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먼저 왕은 유대 사람들에게 조세와 소금세, 왕관 헌납금을 면제하겠다고 선언합니다. 곡물 수확의 삼분의 일과 나무 열매의 절반에 해당하는 납부 의무도 없애겠다고 합니다.

왕국이 정기적으로 거두어 가던 수입을 포기하겠다는 약속입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 수확물의 일정한 비율을 바쳐야 하는 의무는 생활에 직접적인 부담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면제가 실제로 시행된다면 유대 주민들의 경제생활에 상당한 변화가 생길 수 있었습니다.

예루살렘과 그 지경을 거룩한 곳으로 인정하고 세금을 면제하겠다고 합니다. 안식일과 명절, 초하루와 특별히 지정된 날에도 유대 사람들이 세금 징수와 각종 의무로부터 면제되도록 하겠다고 합니다.

34절의 「면책」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아페시스(ἄφεσις)는 어떤 의무나 부담에서 풀어 주는 일을 나타냅니다. 이 단어는 다른 문맥에서 용서나 해방을 가리킬 수 있지만, 여기에서는 조세와 행정적 의무의 면제를 뜻합니다.

안식일과 절기를 지키는 일은 마음속으로만 이루어지는 행위가 아니었습니다. 노동을 멈추고, 공동체와 함께 모이고, 정해진 방식으로 하나님께 예배해야 했습니다. 따라서 왕국의 행정적인 요구가 줄어든다는 것은 종교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는 현실적인 여건이 개선된다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다음으로 데메트리오스는 예루살렘 성채에 대한 권한을 포기하고 대제사장에게 넘기겠다고 합니다. 성채는 오랫동안 예루살렘을 통제하는 셀레우코스 왕국의 거점이었습니다. 왕은 이제 그곳을 요나단에게 넘겨주고, 요나단이 직접 수비대를 선택하도록 허용하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동안 유다의 형제들이 여러 번 군사적으로 해결하려 했던 문제를 왕이 편지 한 장으로 해결해 주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왕은 유대인 포로들을 몸값 없이 풀어 주고, 성전에 피신하는 사람들의 채무를 면제하며, 성전과 예루살렘 성벽의 건설 비용을 왕국의 재정에서 지급하겠다고 합니다. 성소에 필요한 경비를 위해 돌레마이와 그 부속 지역을 주겠다는 약속도 포함됩니다. 또한 해마다 은 만 오천 세겔을 지급하고, 성전 봉사에 관련된 은 오천 세겔의 납부 의무도 면제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많은 혜택 속에 다른 성격의 조항 하나가 들어 있습니다.

「유대 사람 가운데 삼만 명을 왕의 군대에 등록하게 하라. 왕의 모든 군대에 지급하는 관례에 따라 그들에게도 급료가 지급될 것이다.」마카베오기 상권 10:36 · 본디새김

왕은 유대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주겠다고 하지만, 동시에 그들에게서 군사력을 얻으려 합니다. 삼만 명은 단순히 유대 공동체를 방어하기 위한 자치군이 아닙니다. 본문은 그들이 왕의 군대에 등록되어 왕국의 여러 지역에 배치되고 급료를 받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그 가운데 일부는 왕의 요새에 주둔하고, 일부는 왕국의 신임받는 직무를 맡게 됩니다. 이는 유대인들이 왕국의 행정과 군사 조직 안으로 깊숙이 편입될 수 있음을 뜻합니다.

그들에게는 새로운 지위와 수입을 얻을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왕국의 전쟁에 동원될 의무와 다른 지역에 배치될 가능성도 생깁니다.

왕이 주겠다고 약속하는 것과 왕이 얻으려 하는 것을 함께 읽어야 편지의 의미가 분명해집니다.

38절에 따르면 사마리아에서 유대에 더해지는 세 지역은 다른 권력에 복종하지 않고 대제사장 아래에 놓이게 됩니다. 대제사장의 권한이 성소의 예배를 넘어 지역을 관할하는 정치적·행정적 권한으로 확대되는 것입니다.

제사장 직분은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예배를 담당하는 자리였지만, 이제 왕국의 영토와 세금, 군사 조직까지 관할하는 권력의 중심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공동체를 보호할 힘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적 권위가 정치적 이해관계와 더욱 밀접하게 얽히는 변화이기도 합니다.

본문은 이 많은 약속들이 시행되었다고 기록하지 않습니다.

그가 세금 면제를 집행하거나 성채를 실제로 넘겨주었다는 장면도 이어지지 않습니다. 독자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이러한 조건을 제안했다는 사실입니다.

백성은 더 좋은 조건보다 자신들이 기억하는 역사를 믿었다

마카베오기 상권 10:46–50 본문 →

그토록 많은 혜택을 약속받았는데도 요나단과 백성은 데메트리오스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요나단과 백성은 이 말을 듣고도 믿지 않았고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데메트리오스가 이스라엘에서 저지른 큰 악행과 자기들을 몹시 괴롭힌 일을 기억했기 때문이다.마카베오기 상권 10:46 · 본디새김

왕이 제시하는 것은 미래의 약속이고, 백성이 판단의 근거로 삼는 것은 과거의 경험입니다. 데메트리오스는 이전에 요나단을 죽이려고 했고, 바키데스와 니카노르를 보내 유대 민족을 공격하게 했습니다. 그런 행동을 했던 왕이 갑자기 많은 혜택을 제안한다고 해서, 백성이 곧바로 그의 말을 믿을 수는 없었습니다.

본문은 「요나단과 백성」이 함께 그 말을 믿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기록합니다. 외교적 선택은 지도자 개인의 정치적 성공만을 위한 결정이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서술자가 보여 주는 이 장면에서는 공동체의 기억이 선택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좋은 약속의 크기만큼 중요한 것은 그 약속을 하는 사람의 신뢰성입니다.

그들은 알렉산드로스를 선택합니다.

47절은 알렉산드로스가 먼저 평화로운 말을 건넸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들은 이후에도 그의 동맹자로 싸웁니다.

마침내 두 왕이 전투를 벌이고, 데메트리오스가 쓰러집니다.

그를 괴롭히던 왕은 죽었고, 그를 대제사장으로 세운 왕이 승리했습니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에게도 자신의 왕권을 더욱 튼튼하게 만들어야 할 과제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는 이제 이집트 왕에게 손을 내밉니다.

조금 더 깊이

47절은 알렉산드로스가 먼저 평화로운 말을 건넸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다만 이것을 편지가 전달된 순서에 관한 단순한 진술로 이해하면 어려움이 생깁니다. 3절에서는 데메트리오스가 먼저 요나단에게 평화로운 편지를 보냈고, 그 뒤에 알렉산드로스가 대제사장 임명을 제안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47절은 알렉산드로스가 데메트리오스의 이번 대규모 제안보다 먼저 적극적으로 우호 관계를 형성했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특히 알렉산드로스는 요나단을 대제사장으로 임명하고 왕의 친구로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어 문장이 단순히 두 왕의 제안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진정성 있었는지를 명시적으로 구별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두 절의 선후관계에 약간의 서술상 긴장이 남아 있다는 점도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왕들의 혼인은 사랑보다 왕국의 안정을 위한 약속이었다

마카베오기 상권 10:51–58 본문 →

데메트리오스를 물리친 알렉산드로스는 이집트 왕 프톨레마이오스에게 사절을 보냅니다.

그는 자신이 조상들의 왕좌에 앉았고, 경쟁자를 무너뜨려 왕국을 장악했다는 사실을 알립니다. 그리고 혼인을 제안합니다.

「그와 우정을 맺읍시다. 이제 그대의 딸을 내 아내로 주시오. 내가 그대의 사위가 되어 그대와 그 딸에게 그대의 지위에 걸맞은 선물을 주겠소.」마카베오기 상권 10:54 · 본디새김

알렉산드로스는 요나단에게 편지를 보내 그를 왕의 친구로 삼았습니다. 이제 이집트 왕에게는 혼인을 통해 가족이 되자고 제안합니다. 둘 다 정치적 관계를 안정시키기 위한 방법입니다.

고대 왕국에서 왕실의 혼인은 개인과 개인의 결합일 뿐 아니라 왕조와 왕조 사이의 관계를 맺는 수단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특히 경쟁 왕을 물리친 알렉산드로스에게는 자신의 왕권을 다른 강대국이 인정하고 지원해 주는 일이 중요했습니다.

본문은 이 혼인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신부의 의사를 기록하지 않습니다. 알렉산드로스가 청하고, 프톨레마이오스가 승낙합니다. 딸의 혼인은 두 왕 사이의 정치적 협상의 일부로 다루어집니다.

사람들은 가족이 된다는 언어를 사용하지만, 실제로는 왕국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있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알렉산드로스의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그는 돌레마이에서 만나 혼인을 이루자고 합니다. 162년에 프톨레마이오스는 딸 클레오파트라를 데리고 돌레마이에 도착합니다.

이 클레오파트라는 역사적으로 클레오파트라 테아로 알려진 인물로, 훗날 로마 시대의 이집트 여왕으로 유명해진 클레오파트라 7세와는 다른 사람입니다. 왕들의 만남과 혼인 잔치는 매우 성대하게 진행됩니다.

그런데 이 장은 그 혼인 잔치에 요나단이 초대되는 사건으로 이어집니다.

알렉산드로스가 다른 왕과 왕실의 관계를 맺는 중요한 행사에 요나단을 부른다는 것은, 그를 자신의 정치적 동맹 관계 안에 공식적으로 포함시키려 한다는 뜻입니다. 요나단은 이제 유다 땅의 군사 지도자라는 신분을 넘어 두 왕이 만나는 외교적 무대에 등장하게 됩니다.

왕 앞에서 고발당하던 사람이 왕의 곁에 앉다

마카베오기 상권 10:59–66 본문 →

알렉산드로스는 요나단에게 자신을 만나러 오라는 편지를 보냅니다.

요나단은 위풍당당하게 돌레마이로 가서 두 왕을 만납니다. 그리고 은과 금, 많은 선물을 주어 그들의 호의를 얻습니다.

그는 예전처럼 왕의 군대에게 쫓기는 사람이 아닙니다. 왕들의 초청을 받아 공식적인 만남에 참석하고, 외교적인 선물을 주고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두 왕이 요나단의 지위를 인정하는 관계이지만, 권력의 크기에는 여전히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도 요나단을 고발하려는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이스라엘에서 나온 해로운 자들, 곧 율법을 어기는 자들이 그를 고발하려고 그에게 맞서 모여들었다. 그러나 왕은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마카베오기 상권 10:61 · 본디새김

그동안 왕 앞에서 누군가를 고발하는 행동은 유다인들에게 매우 위험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알키모스가 데메트리오스에게 유다를 고발하자 바키데스와 니카노르가 파견되었습니다.

알렉산드로스는 그들의 말을 듣는 대신 요나단에게 새로운 영예를 베풉니다. 왕은 요나단의 옷을 벗기고 자주색 옷을 입히라고 명령합니다.

왕은 요나단을 자기 곁에 앉히고 자기 관리들에게 말했다. 「이 사람과 함께 도시 한가운데로 나가서, 아무도 어떤 일로든 이 사람을 고발해서는 안 된다고 선포하라. 아무도 무슨 일로든 이 사람을 괴롭혀서는 안 된다.」마카베오기 상권 10:63 · 본디새김

그동안 요나단과 형제들을 위험에 빠뜨렸던 주요한 방법 가운데 하나가 왕에게 그들을 고발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바로 그 길이 차단됩니다.

본문은 고발자들이 요나단의 영예를 보고 달아났다고 기록합니다.

요나단을 왕에게 고발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왕 앞에서 요나단을 두려워합니다.

알렉산드로스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그는 요나단을 으뜸 친구들의 명단에 올리고, 군사령관과 지방 장관으로 세웁니다. 「으뜸 친구」는 개인적인 친분이 깊다는 뜻만을 가진 표현이 아닙니다. 헬레니즘 왕국의 궁정에서 왕과 가까운 고위 인사들에게 부여되는 공식적인 지위를 나타냅니다.

그동안 왕국의 결정에 저항해야 했던 공동체의 지도자가 이제 왕국의 정책과 군사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리를 얻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요나단은 더 큰 권한을 얻었습니다. 동시에 왕국의 이해관계에 더 깊이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평안과 기쁨 가운데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그 평안은 오래 지속되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자주색 의복은 왕실과 고위 관료의 권위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요나단이 왕 앞에서 자주색 옷을 입는다는 것은 그가 특별한 정치적 지위를 가진 사람으로 공개적으로 인정받았다는 뜻입니다. 이때 64절의 본디새김 문면에는 작은 수정이 필요합니다. 「그가 베옷을 걸친 모습」이라고 되어 있지만, 그리스어는 포르퓌라, 곧 자주색 옷을 가리킵니다. 바로 앞 62절에서 왕이 입히라고 명령한 옷과 같은 것입니다. 따라서 「베옷」보다는 「자주색 옷」이 문맥과 원문에 맞습니다.

「평야로 내려와라」 — 적이 원하는 곳에서 싸우라는 도발

마카베오기 상권 10:67–79 본문 →

165년에 또 다른 데메트리오스가 등장합니다.

그는 앞서 전사한 데메트리오스의 아들입니다. 역사적으로 데메트리오스 2세로 알려진 인물입니다. 그는 크레타에서 돌아와 조상들의 왕국을 되찾으려 합니다.

알렉산드로스는 이 소식을 듣고 안디옥으로 돌아갑니다. 그 역시 자신의 왕권이 새로운 경쟁자에게 위협받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이 장의 시작에서 알렉산드로스가 데메트리오스에게 도전했던 일이 이번에는 반대 방향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왕들이 바뀌고, 동맹이 새로 맺어지고, 전쟁이 다시 시작됩니다.

새로운 데메트리오스 편의 지휘관 아폴로니오스가 그에게 도전장을 보냅니다. 아폴로니오스는 코일레 시리아를 맡고 있던 인물로, 야브네에 군대를 모은 뒤 요나단을 도발합니다.

「너 혼자 우리에게 맞서 우쭐거리는구나. 나는 너 때문에 웃음거리와 모욕거리가 되었다. 어째서 너는 산에서 우리 위에 권세를 부리느냐?」마카베오기 상권 10:70 · 본디새김

그동안 유다의 형제들은 산지와 광야의 지형을 이용하여 더 큰 군대와 싸웠습니다. 산지의 좁은 길과 험한 지형은 기병대를 앞세운 강대국 군대에 불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너는 평야에서 기병대와 이런 군대를 당해 낼 수 없을 것이다. 거기에는 돌도 자갈도 없고, 달아날 곳도 없다.」마카베오기 상권 10:73 · 본디새김

전장의 조건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려는 전략적 도발입니다. 아폴로니오스는 자신에게 기병대가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평탄하고 넓은 지역에서는 기병이 빠르게 이동하고 대열을 바꾸며 공격하기 쉽습니다.

그는 과거 유다인들이 패배했던 일까지 꺼내어 조롱합니다.

「나와 우리를 돕는 다른 이들이 누구인지 물어서 알아보아라.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우리 앞에서 발을 붙이고 설 수 없다. 네 조상들이 자기 땅에서 두 번이나 패하여 달아났기 때문이다.』」마카베오기 상권 10:72 · 본디새김

여기서 「조상들」이 가리키는 정확한 전투들을 본문만으로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아폴로니오스가 유다인들의 과거 패배를 이용하여 요나단에게 심리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요나단은 이 말을 듣고 마음이 격해집니다.

그는 병사 만 명을 골라 예루살렘을 떠나고, 형제 시몬도 합류합니다. 여기서 요나단의 반응을 무조건 냉정하고 지혜로운 판단이었다고 미화할 필요는 없습니다. 적장의 모욕적인 말이 그의 행동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이후의 전투 전개는 요나단이 단순히 분노에 이끌려 무모하게 돌진하지는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그는 먼저 욥바를 공격합니다.

욥바는 지중해 연안의 항구 도시입니다. 이곳을 장악하면 유다 산지와 해안 지역을 연결하는 중요한 거점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요나단은 도시 사람들이 성문을 닫자 공격을 시작합니다. 결국 주민들은 두려워하여 문을 열고, 요나단은 욥바를 장악합니다.

아폴로니오스는 이 소식을 듣고 기병 삼천 명과 많은 병력으로 진을 쳤다. 그는 지나가는 듯이 아소도로 향하면서 한편으로 평야로 나아갔다. 많은 기병을 거느리고 있었고 그 기병대를 믿었기 때문이다.마카베오기 상권 10:77 · 본디새김

또한 그는 뒤쪽에 기병 천 명을 몰래 남겨 둡니다. 요나단이 자신을 뒤쫓으면 그 군대가 후방을 공격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것은 정면의 주력 부대와 후방의 매복 부대를 이용해 상대를 에워싸려는 전술입니다.

그리고 그 계획은 어느 정도 성공합니다.

요나단의 군대가 적에게 포위됩니다.

이기기 위해 먼저 해야 했던 일은 버티는 것이었다

마카베오기 상권 10:80–82 본문 →

요나단은 자기 뒤에 매복한 군대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립니다.

그러나 이미 적군은 그의 군대를 에워싸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화살을 쏩니다.

그러나 병사들은 요나단이 명령한 대로 버티고 섰고, 적의 말들은 지쳤다.마카베오기 상권 10:81 · 본디새김

요나단의 보병들은 움직이지 않고 대열을 유지합니다. 아폴로니오스의 기병들은 움직이며 공격을 반복합니다. 처음에는 움직이는 기병대가 유리해 보입니다. 그들은 상대를 포위하고 사방에서 공격할 수 있습니다.

요나단은 적이 처음부터 의지했던 강점을 시간이 지나면서 약점으로 바꿉니다.

아폴로니오스가 믿었던 것은 기병의 수와 기동력이었습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자기 병사들이 흩어지지 않고 버티게 함으로써 그 이점을 소모시킵니다.

그리고 적군의 기병대가 지쳤을 때 시몬이 움직입니다.

시몬은 자기 군대를 이끌고 적의 대열에 맞붙었다. 기병대가 지쳤기 때문이다. 적들은 그에게 격파되어 달아났다.마카베오기 상권 10:82 · 본디새김

전투는 단순히 한 사람의 영웅적인 돌격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군사들의 인내와 지도자의 판단, 형제들의 협력이 함께 작용합니다.

그는 공격할 줄 아는 사람일 뿐 아니라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승리는 곧바로 또 다른 어려운 질문을 남깁니다.

적군이 달아난 뒤 요나단은 무엇을 했습니까?

조금 더 깊이

특히 이 장면은 앞서 9장에서 유다가 마지막 전투를 벌였던 장면과 중요한 차이를 이룹니다. 유다는 적의 우익을 공격하여 무너뜨렸지만, 다른 부대가 뒤쪽으로 돌아오면서 포위당했습니다. 여기서는 요나단 역시 적의 매복으로 포위당합니다. 그러나 그는 병사들을 흩어지지 않게 하고, 적군의 힘이 소모될 때까지 버팁니다. 그리고 시몬의 반격으로 위기를 넘어섭니다. 본문이 두 전투를 의도적으로 직접 비교한다고 명시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연속된 이야기 속에서 두 장면을 함께 읽으면 요나단의 지도력이 어떤 방식으로 발전했는지 볼 수 있습니다.

다곤의 신전이 불타다 — 승리의 영광과 전쟁의 참혹함

마카베오기 상권 10:83–89 본문 →

적군은 아소도로 달아나고, 그 가운데 일부는 자신들의 신전인 벳다곤으로 들어갑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목숨을 구하려 합니다. 벳다곤은 다곤의 신전을 가리킵니다.

요나단은 아소도와 그 둘레의 도시들을 불사르고 그들의 노획물을 빼앗았다. 또 다곤 신전과 그 도시의 신전을 불로 태웠다.마카베오기 상권 10:84 · 본디새김

그러나 확인되는 그리스어 본문에는 「다곤의 신전과 그곳으로 함께 피신한 사람들」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요나단이 신전이라는 건축물을 불태웠다는 것과, 그 안으로 피신한 사람들까지 불태웠다는 것은 독자가 사건을 이해하는 방식에 큰 차이를 만듭니다.

85절은 칼에 쓰러진 사람들과 불에 타 죽은 사람들을 합하여 약 팔천 명이었다고 기록합니다. 이것을 단순히 우상숭배를 없앤 영광스러운 사건이라고만 설명하면, 본문에 실제로 기록된 죽음과 폭력을 놓치게 됩니다.

그들은 패배한 뒤 살아남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 피신은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본문은 요나단이 이 전투에서 승리했고 많은 적을 죽였다고 기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에게 신전으로 피신한 사람들을 불태우라고 명령하셨다는 말은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이 살상을 직접 기뻐하셨다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전투의 성공을 하나님이 그 모든 행동을 승인하셨다는 증거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 책은 이스라엘이 외세의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싸운 역사를 기록합니다. 그 과정에서 지도자들의 용기와 승리를 높이 평가합니다. 그러나 책에 기록된 모든 폭력적인 행동을 오늘날 독자가 그대로 반복해야 할 규범으로 제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더욱이 요나단은 이제 대제사장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섬기는 성소의 최고 제사장으로 세워진 사람이면서, 다른 민족의 신전을 불태우는 전쟁을 지휘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의 권력이 얼마나 확대되었는지를 보여 주는 동시에, 그 권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묻게 합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요나단의 행동에 대한 명시적인 도덕적 평가를 덧붙이지 않습니다.

요나단이 아스글론에 도착하자 주민들은 그를 크게 예우하며 맞이합니다. 그는 많은 노획물을 가지고 돌아갑니다. 그리고 알렉산드로스 왕은 이 승리의 소식을 듣고 요나단에게 더 큰 영예를 부여합니다.

왕은 요나단에게 금 죔쇠를 보내고 에그론과 그 부속 지역을 대대로 물려받을 소유로 줍니다. 금 죔쇠는 왕실과 가까운 고위 인사에게 주어지는 특별한 영예의 표지였습니다. 본문은 왕의 친척들에게 주는 관례에 따라 그것을 보냈다고 설명합니다.

그는 더 이상 제국의 힘을 피해 살아남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제국이 부여한 권한으로 다른 지역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다곤은 고대 블레셋 지역에서 숭배되던 신이었습니다. 사무엘상 5장에서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언약궤를 빼앗아 아소도의 다곤 신전에 두었습니다. 그러자 다음 날 다곤의 신상이 언약궤 앞에 엎드러져 있었습니다. 다시 세운 뒤에는 신상의 머리와 손목이 떨어져 나갔습니다(사무엘상 5:1–5). 사무엘상 5장에서는 인간이 전투를 벌이지 않아도 다곤 신상이 무너집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권능을 드러내시는 이야기입니다. 반면 마카베오기 상권 10장에서는 요나단의 군대가 실제로 도시와 신전을 공격합니다. 지리적 장소와 신의 이름이 연결되지만, 사건을 일으키는 방식은 분명히 다릅니다. 본문이 사무엘상 5장을 직접 인용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10:84의 그리스어에서 특히 투스 쉼퓌곤타스는 함께 피신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남성 복수 분사입니다. 따라서 이 부분을 또 다른 신전으로 옮기기는 어렵습니다. 그리스어 문면은 요나단이 다곤의 신전과 그 안으로 피신한 사람들을 불태웠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본디새김의 해당 번역과 번역 노트는 재검토가 필요합니다. 신명기 17:14–20은 이스라엘의 왕이 자신의 힘을 과도하게 키우거나 부와 권력을 쌓는 일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율법을 가까이 두며 백성 위에 스스로 높아지지 말아야 한다고 명령합니다. 요나단은 왕이 아니므로 이 규정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지도자의 권력이 하나님의 율법과 공동체의 삶에 종속되어야 한다는 주제는 그에게도 생각해 볼 만한 기준이 됩니다.

맺음말 — 자주색 옷과 거룩한 예복 사이에서

마카베오기 상권 10:1–89 본문 →

이제 요나단은 두 옷을 모두 입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왕은 자신의 왕국을 위해 요나단을 필요로 합니다. 대제사장인 요나단에게는 자신이 섬기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공동체를 향한 책임이 있습니다. 요나단은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해 권력을 얻었지만, 이제 그 권력 자체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책임도 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장을 단순히 요나단이 권력과 명예를 탐하게 된 이야기로만 읽어서는 안 됩니다. 그의 외교적 선택과 군사적 행동은 유다인들이 이전보다 더 큰 자율성을 확보하는 과정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알렉산드로스는 요나단에게 금 죔쇠를 보내고 에그론과 그 지경을 대대로 물려받을 소유로 줍니다. 하지만 이 장의 첫머리에서 그가 얻었던 성과를 다시 떠올리면, 마지막의 금 죔쇠가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처음에 왕의 편지가 도착했을 때 예루살렘에서 일어났던 일은 아이들이 부모에게 돌아온 사건이었습니다. 마지막에 왕의 선물이 도착했을 때 기록된 것은 요나단이 새로운 영토와 영예를 얻은 사건입니다. 둘 다 요나단의 힘이 커졌기 때문에 가능해진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힘이 향한 대상은 서로 달랐습니다.

왕들이 요나단에게 무엇을 주었는가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요나단이 그 권력으로 누구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입니다.

10장은 그 질문에 대한 최종 답을 내리지 않습니다.

다만 왕들의 선물로 금 죔쇠와 영토를 받은 요나단의 모습을 남겨 둡니다. 이제 거룩한 예복과 자주색 옷을 모두 입게 된 사람이, 그 두 권위 사이에서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갈지 지켜보게 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