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풀어 읽기 · 29장
이 장의 자리 · 29–32장 · 히스기야의 개혁
닫힌 성전에서 다시 울리는 노래
히스기야는 왕이 되자마자 여호와야훼의 집 문들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문이 열렸다고 해서 곧바로 예배가 시작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성전 안에는 치워야 할 부정한 것들이 있었고, 방치되었던 기물들은 다시 준비해야 했습니다.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도 자신을 거룩하게 해야 했습니다. 예배가 중단되었던 자리에 다시 제물을 올리기까지, 여러 사람이 자기 몫의 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일이 끝난 뒤 역대기 기자는 뜻밖의 결론을 내립니다.
「히스기야와 온 백성은 하나님이 백성을 위해 마련한 것을 두고 기뻐했다. 그 일이 갑자기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많은 준비와 수고가 필요했는데, 어떻게 그 일이 갑자기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히스기야와 백성이 기뻐한 것은 단지 성전이 다시 문을 열었기 때문이었을까요?
히스기야는 성전의 문을 열 수 있었지만, 그 문 안에서 하나님을 기쁘게 섬기는 일은 왕 혼자 만들어 낼 수 없었습니다.
새로운 왕이 가장 먼저 한 일
히스기야는 스물다섯 살에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스물아홉 해 동안 다스렸습니다.
그는 자기 조상 다윗이 한 모든 일을 따라 여호와야훼의 눈에 옳은 일을 했다.역대하 29:2 · 본디새김
히스기야의 아버지 아하스는 다윗과 달리 여호와야훼의 눈에 옳은 일을 하지 않았다고 평가되었습니다(28:1). 히스기야에게 주어진 평가는 그와 정반대입니다. 다윗과의 비교는 왕의 혈통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히스기야가 어떤 왕권의 본보기를 따랐는지를 평가하는 말입니다.
그는 다스리기 시작한 첫해 첫째 달에 여호와야훼의 집 문들을 열고 보수했다.역대하 29:3 · 본디새김
이 구절은 두 번이나 ‘첫’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통치가 시작되자마자 성전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이 결정이 중요한 이유는 앞 장에서 아하스가 성전의 문들을 닫았기 때문입니다(28:24). 히스기야는 아버지가 폐쇄한 장소를 다시 열었습니다.
고대 유다에서 성전은 여호와야훼께서 자신의 이름을 두시고 백성 가운데 거하시겠다고 하신 장소였습니다. 솔로몬의 성전 봉헌 기도는 이 장소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와 용서, 회복을 긴밀하게 연결합니다(역대하 6:20–21). 따라서 성전 문을 다시 연다는 것은 유다의 예배 생활을 본래의 자리로 돌려놓으려는 행동이었습니다.
다만 문을 연 일과 예배를 회복한 일은 아직 같지 않습니다.
건물의 출입을 허용하는 것만으로 성전이 거룩하게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과 예배의 질서도 함께 회복되어야 했습니다.
회복은 왜 사람을 먼저 거룩하게 하는 일에서 시작되는가
히스기야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동쪽 광장에 모읍니다.
그가 그들에게 말했다. 「레위 사람들아, 내 말을 들어라. 이제 너희 자신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야훼의 집을 거룩하게 하여라. 성소에서 부정한 것을 내다 버려라.」역대하 29:5 · 본디새김
히스기야는 건물의 상태만 문제 삼지 않습니다. 그 건물에서 하나님을 섬겨야 할 사람들의 상태도 문제 삼습니다. 성전이 오래 방치되었다면 기물과 공간을 정비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전 봉사를 맡은 사람들 자신도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도록 준비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장소를 회복하려면, 먼저 그곳에서 하나님을 섬길 사람들이 자신을 하나님께 다시 구별해야 했습니다.
성전을 버린 사람들은 어디로 얼굴을 돌렸는가
「우리 조상들이 배신을 저지르고 우리 하나님 여호와야훼의 눈에 악한 일을 하여 그를 버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여호와야훼의 거처에서 얼굴을 돌리고 등을 보였다.」역대하 29:6 · 본디새김
하나님을 향해 있어야 할 사람들이 하나님에게서 돌아섰습니다. 여호와야훼의 거처를 향하던 얼굴이 다른 방향으로 향했습니다. 누군가에게 등을 보인다는 것은 더 이상 그를 마주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드러냅니다.
「또 현관의 문들을 닫고 등불들을 껐다. 성소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에게 향을 피우지도, 번제를 올리지도 않았다.」역대하 29:7 · 본디새김
문을 닫고, 등불을 끄고, 향을 피우지 않고, 번제를 드리지 않는 일은 각각 성전 예배의 중요한 요소를 중단한 행동입니다. 출애굽기 27:20–21은 성막의 등불을 관리하도록 명령합니다. 출애굽기 30:7–8은 향을 피우는 일을 규정합니다. 번제 역시 레위기 1장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의 중요한 형태로 설명됩니다.
건물은 남아 있었습니다. 제단과 기물도 적어도 일부는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이루어져야 할 예배는 중단되어 있었습니다.
성전이라는 건물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그곳에서 여호와야훼를 섬기는 삶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같지 않았습니다.
히스기야는 누구의 죄를 말하는가
히스기야는 이어서 나라가 겪은 재앙을 설명합니다.
「보아라. 이 때문에 우리 조상들은 칼에 쓰러졌고, 우리의 아들딸과 아내들은 포로가 되어 있다.」역대하 29:9 · 본디새김
앞 장에 기록된 유다의 참사가 배경에 놓여 있습니다. 북이스라엘이 잡아 갔다가 돌려보낸 포로들도 있었지만, 아람과 에돔에 잡혀간 사람들 역시 있었습니다(28:5, 17). 히스기야의 발언은 이러한 전쟁과 포로의 현실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런데 그는 이 재앙을 설명하면서 ‘그들의 하나님’이나 ‘그들의 죄’라는 말만 사용하지 않습니다. ‘우리 조상들’, ‘우리 하나님’, ‘우리의 아들딸과 아내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그 실패의 결과 속에 살아가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말합니다. 자신이 그 잘못을 직접 시작하지 않았더라도, 그로 인해 무너진 예배와 공동체를 회복해야 할 책임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제 나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와 언약을 맺으려 한다. 그의 타오르는 진노가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려는 것이다.」역대하 29:10 · 본디새김
이스라엘은 이미 여호와야훼와 언약 관계에 있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그 관계를 잊으셨다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백성이 하나님을 버리고 그분께 등을 돌렸다는 데 있었습니다. 따라서 히스기야의 결심은 기존의 언약 관계를 회복하고 그 관계에 합당하게 살겠다는 갱신의 의지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는 여호와야훼의 진노가 떠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 진노를 피하기 위해 다른 신을 찾거나 외세에 도움을 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이 버렸던 하나님께 돌아가려고 합니다.
「내 아들들아, 이제 소홀히 하지 마라. 여호와야훼가 너희를 선택하여 자기 앞에 서서 자기를 섬기고, 자기의 일꾼이자 제물을 태워 연기를 올리는 이들이 되게 했기 때문이다.」역대하 29:11 · 본디새김
이 권면에서 히스기야는 먼저 레위 사람들의 책임을 상기시키기보다 그들이 누구인지를 상기시킵니다. 그들이 해야 할 일은 왕이 갑자기 만들어 낸 새로운 임무가 아니었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맡기신 봉사를 다시 시작하는 일이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역대하 6:36–39에서 솔로몬은 백성이 죄를 지어 포로로 끌려간 상황을 가정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께 간구하면 그 기도를 들으시고 용서해 달라고 구합니다. 히스기야의 시대에는 그 기도가 떠올리게 하는 상황이 실제로 벌어졌습니다. 따라서 역대하 29장은 솔로몬이 성전에서 드렸던 기도와 주제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됩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무조건적인 안전을 보장하시는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백성이 하나님을 버릴 때 성전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심판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같은 성전은 백성이 다시 하나님께 돌아와 그분을 섬기는 장소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성전을 다시 세우다
히스기야의 말을 들은 레위 사람들이 일어납니다.
12–14절에는 열네 명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그핫, 므라리, 게르손, 엘리사반, 아삽, 헤만, 여두둔 계열에서 각각 두 명씩 소개됩니다.
왕이 성전 개혁을 선언했다고 해서 성전이 저절로 깨끗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 일을 실제로 수행하는 사람들이 필요했습니다. 특히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은 역대상 25장에서 성전 음악의 직무와 관련하여 등장하는 이름들입니다. 이들의 후손들이 정화 작업에 참여했다는 사실은, 성전을 깨끗하게 하는 일이 단순한 시설 관리에 그치지 않고 곧 회복될 예배를 준비하는 일이기도 했음을 보여 줍니다.
그들은 자기 형제들을 모으고 자신을 거룩하게 했다. 그런 다음 여호와야훼의 말에 따른 왕의 명령대로 여호와야훼의 집을 깨끗하게 하러 들어갔다.역대하 29:15 · 본디새김
히스기야가 명령했지만, 그 명령의 기준은 여호와야훼의 말씀이었습니다. 왕의 열심만으로 성전 예배가 올바르게 회복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맞게 진행되어야 했습니다.
거룩하게 하는 일과 깨끗하게 하는 일
15–16절에서는 서로 구별되는 두 종류의 행위가 나타납니다. 하나는 자신과 성전을 ‘거룩하게 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성전을 ‘깨끗하게 하는’ 일입니다. 거룩하게 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구별하는 의미를 지닙니다.
성전 안에 부정한 것이 있다면 그것을 제거해야 합니다. 그러나 부정한 것을 제거하는 것만으로 하나님께 드릴 예배가 모두 갖추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성전과 기물은 그 목적에 맞게 준비되어야 하고, 그곳에서 봉사할 사람들도 하나님 앞에 설 준비가 되어야 했습니다.
제사장들은 여호와야훼의 집을 깨끗하게 하려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여호와야훼의 성전에서 발견한 부정한 것을 모두 여호와야훼의 집 뜰로 꺼내 왔고, 레위 사람들은 그것을 받아 성 밖 기드론 골짜기로 내갔다.역대하 29:16 · 본디새김
이것은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의 직무가 구별되어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성전 내부에서 일할 수 있는 권한과 성전의 다른 영역에서 수행하는 봉사는 같지 않았습니다. 히스기야는 이 구별을 없애지 않습니다. 각자가 맡은 일을 수행하는 가운데 성전이 깨끗해집니다.
기드론 골짜기는 예루살렘 동쪽에 위치한 골짜기입니다. 이곳으로 부정한 것들을 내보냈다는 것은 성전 안에서 발견한 것들을 다른 방으로 옮겨 보관한 정도가 아니라, 성전 영역 밖으로 제거했다는 뜻입니다. 역대하 15:16에서도 아사가 우상과 관련된 물건을 기드론 시내에서 불태운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두 기록은 기드론이 예루살렘의 종교 개혁 과정에서 부정한 물건이나 우상과 관련된 것을 제거하는 장소로 등장했음을 보여 줍니다.
다만 히스기야 시대에 발견된 부정한 것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는 본문이 밝히지 않습니다. 본문이 확실히 알려 주는 것은 성전을 깨끗하게 하는 일이 눈에 보이는 실제적인 행동이었다는 사실입니다.
회복에는 열엿새가 걸렸다
첫째 달 초하루에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달 여드레에는 여호와야훼의 집 현관에 이르렀습니다. 이어서 여드레 동안 성전을 거룩하게 했고, 십육일에 일을 마쳤습니다.
이 날짜는 다음 장과도 연결됩니다. 유월절은 첫째 달 열나흗날에 지켜야 했지만(민수기 9:2–5), 히스기야 시대의 성전 정화는 첫째 달 십육일에야 끝났습니다. 역대하 30:2–3은 왕과 지도자들이 유월절을 둘째 달에 지키기로 결정한 배경을 설명합니다.
그들은 안으로 들어가 히스기야 왕에게 말했다. 「저희가 여호와야훼의 집 전체를 깨끗하게 했습니다. 번제단과 그 모든 기물, 빵을 차려 놓는 상과 그 모든 기물도 깨끗하게 했습니다.」역대하 29:18 · 본디새김
번제단은 제물을 하나님께 바치는 장소입니다. 빵을 차려 놓는 상은 하나님 앞에 늘 빵을 두도록 마련된 성소의 기물입니다(출애굽기 25:23–30). 예배의 중요한 기능들이 다시 준비되었다는 뜻입니다.
이어 아하스 시대에 내버린 기물들도 마련하고 거룩하게 했다고 보고합니다. 앞 장은 아하스가 성전 기물을 훼손했다고 기록했습니다(28:24). 그러므로 여기서 모든 원래 기물이 완전한 상태로 발견되어 그대로 복구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그들이 필요한 기물들을 마련하고 거룩하게 하여 여호와야훼의 제단 앞에 두었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이제 성전은 다시 예배를 시작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정화 작업이 끝났다는 사실만으로 회복이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성전을 더럽혔던 죄의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가 남아 있었습니다.
깨끗해진 성전에서 가장 먼저 드린 것은 속죄였다
히스기야는 일찍 일어나 성읍의 고관들을 모읍니다.
그리고 여호와야훼의 집으로 올라갑니다. 20절의 ‘일찍 일어나’라는 표현은 히스기야가 성전 정화 완료 소식을 들은 뒤 예배를 회복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섰음을 보여 줍니다.
그들은 수소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와 어린양 일곱 마리, 그리고 나라와 성소와 유다를 위한 속죄제물로 숫염소 일곱 마리를 가져왔다. 왕은 아론의 자손인 제사장들에게 그것들을 여호와야훼의 제단 위에 바치라고 명령했다.역대하 29:21 · 본디새김
22절에서는 수소와 숫양과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제단에 뿌리는 절차가 기록되고, 23–24절에서는 숫염소들이 별도로 속죄제물로 등장합니다.
왕과 회중이 제물 위에 손을 얹다
그들은 속죄제물인 숫염소들을 왕과 회중 앞으로 데려왔다. 왕과 회중은 그 위에 손을 얹었다.역대하 29:23 · 본디새김
히스기야는 아버지의 잘못을 비난하며 자신만 정결한 사람으로 서지 않습니다. 그는 나라와 성소와 백성의 죄를 다루는 의식에 함께 참여합니다. 왕과 회중이 제물 앞에 서는 장면은 이 회복이 건물을 수리하는 일만이 아니라 공동체의 관계를 바로잡는 일임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다음 절에서 속죄의 범위가 예상보다 넓어집니다.
제사장들은 그 숫염소들을 잡고, 온 이스라엘을 위해 속죄하려고 그 피를 제단에 바쳐 속죄 의식을 행했다. 왕이 온 이스라엘을 위해 번제와 속죄제를 드리라고 명령했기 때문이다.역대하 29:24 · 본디새김
히스기야가 다스리는 나라는 남유다였습니다. 앞서 북이스라엘과 유다는 별도의 왕국으로 나뉘어 오랜 갈등과 전쟁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성전 예배를 회복하면서 속죄의 범위를 유다에만 한정하지 않았습니다. 역대기 기자는 ‘온 이스라엘’이라는 표현을 두 번 사용하여 이 점을 강조합니다.
여기서 실제로 북왕국의 모든 사람이 예배에 참석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본문은 왕이 온 이스라엘을 위해 제사를 드리도록 명령했다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온 이스라엘’이라는 표현은 히스기야의 관심이 정치적으로 분열된 유다의 경계를 넘어섰음을 보여 줍니다. 이 점은 다음 장의 유월절 초청으로 이어집니다.
속죄는 무엇을 회복하는가
성전은 여호와야훼께 예배드리는 장소였으나, 백성의 배신으로 더럽혀지고 방치되었습니다. 성전을 깨끗하게 하는 일은 그 장소에 있는 부정한 것들을 제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속죄 의식은 그보다 깊은 문제, 곧 하나님을 버린 공동체가 다시 그분 앞에 설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역대기는 하나님께 돌아가는 일이 단순히 이전의 종교 활동을 재개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그 활동이 중단되게 만든 죄의 문제도 하나님 앞에서 다루어져야 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성경에서 일곱이라는 수는 창조의 일곱째 날과 같은 본문을 통해 완성과 충만함의 의미와 연결되곤 합니다. 여기서도 반복되는 일곱이 예배 회복의 온전함을 암시한다고 읽을 수 있습니다. 다만 본문은 왜 일곱 마리씩 선택했는지 직접 설명하지 않으므로 상징적 의미를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21절의 문법만으로는 속죄제물이라는 말이 네 종류 전체에 걸리는지, 바로 앞의 숫염소에 특별히 연결되는지 논의의 여지가 있습니다. 따라서 숫염소를 특별히 속죄 의식과 연결하는 본디새김의 번역은 이어지는 서술과 잘 맞습니다. 레위기 4장은 죄를 위한 제사를 드릴 때 제물의 머리에 손을 얹는 의식을 여러 경우에 규정합니다. 손을 얹는 행위의 의미를 모든 경우에 하나로 단순화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 장면에서는 왕과 회중이 속죄 의식에 참여한다는 사실이 분명합니다. 신약의 관점에서는 이러한 성전과 속죄의 주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연결됩니다. 히브리서 9–10장은 성전 제사와 속죄의 문제를 그리스도의 사역에 비추어 새롭게 설명합니다. 이것은 역대하 29장의 직접적인 예언이나 인용이라기보다, 이후 성경에서 성전과 속죄의 의미가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보여 주는 신학적 연결입니다.
번제가 시작되자 노래도 시작되었다
속죄 의식 이후 본문은 성전의 음악과 찬양으로 시선을 옮깁니다.
왕은 제금과 하프와 리라를 갖춘 레위 사람들을 여호와야훼의 집에 세웠다. 다윗과 왕의 선견자 갓과 예언자 나단의 명령에 따른 것이었다. 그 명령은 여호와야훼에게서 나와 그의 예언자들을 통해 전해진 것이기 때문이다.역대하 29:25 · 본디새김
다윗은 성전 예배를 위한 음악과 레위 사람들의 직무를 정비한 왕으로 묘사됩니다(역대상 23–25장). 갓과 나단은 다윗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던 인물들입니다. 역대기 기자는 이러한 예배 전통이 단순히 다윗 개인의 취향이나 왕궁의 문화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여호와야훼의 명령과 연결되어 있다고 설명합니다.
히스기야는 새로운 종교적 열광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 하나님을 섬기도록 마련된 질서를 회복하고 있었습니다. 레위 사람들의 노래와 악기 연주는 성전 봉사의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제단과 노래가 동시에 시작되다
히스기야는 제단에 번제를 올리라고 명령했다. 번제를 드리기 시작하자 여호와야훼를 향한 노래도 시작되었으며, 나팔 소리가 이스라엘 왕 다윗의 악기들과 함께 울렸다.역대하 29:27 · 본디새김
여기서 ‘시작하다’라는 말이 반복됩니다. 제단에서 제물이 바쳐지는 일과 레위 사람들의 찬양이 하나의 예배 안에서 함께 진행되는 것입니다. 아하스 시대에는 등불이 꺼지고 향이 중단되었으며 제사가 끊어졌습니다. 이제 제단에서 다시 번제가 시작되고, 성전에는 노래와 나팔 소리가 울립니다.
온 회중은 엎드려 경배했고, 노래가 불리고 나팔이 울렸다. 이 모든 일은 번제를 마칠 때까지 이어졌다.역대하 29:28 · 본디새김
음악은 회중이 하나님 앞에 서고 그분을 경배하는 예배와 함께 이루어집니다. 노래는 하나님을 향한 것이었고, 회중의 행동 역시 하나님 앞에서의 경배였습니다.
번제가 끝나자 왕과 함께 있던 모든 사람이 다시 무릎을 꿇고 엎드립니다.
히스기야 왕과 고관들은 레위 사람들에게 다윗과 선견자 아삽의 말로 여호와야훼를 찬양하라고 명령했다. 그들은 기쁨에 넘쳐 찬양하고, 몸을 숙여 엎드려 경배했다.역대하 29:30 · 본디새김
역대기 기자는 이 기쁨을 무너진 현실을 외면하는 감정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죄를 인정하고, 잘못된 것을 제거하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다시 시작된 자리에서 나타나는 기쁨입니다.
회중은 몸을 낮추어 경배합니다.
그리고 그 낮아진 자리에서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 울립니다.
조금 더 깊이
아삽은 역대상 16장과 25장에서 찬양과 음악의 직무를 맡은 인물로 등장합니다. 이 장은 그들이 정확히 어떤 시편을 불렀는지는 밝히지 않습니다. 다만 이미 전해져 온 다윗과 아삽의 찬양 전통을 따라 하나님을 높였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명령으로 시작된 일이 자원하는 예배로 이어지다
성전 정화와 속죄 의식은 왕의 주도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왕이 명령한 의식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히스기야가 말을 이었다. 「이제 너희는 자신을 여호와야훼에게 바쳤다. 가까이 와서 여호와야훼의 집으로 희생제물과 감사제물을 가져와라.」 회중은 희생제물과 감사제물을 가져왔고, 자원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모두 번제물도 가져왔다.역대하 29:31 · 본디새김
이 장면은 왕의 명령으로 시작된 회복이 백성의 자발적인 참여로 확대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앞에서는 왕이 성전 정화를 명령했고, 레위 사람들은 그 명령에 따라 움직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회중은 자원하여 제물을 가져옵니다.
예상보다 많은 제물
번제물은 소 칠십 마리, 숫양 백 마리, 어린양 이백 마리였습니다. 이어서 거룩하게 바친 제물로 소 육백 마리와 양과 염소 삼천 마리가 기록됩니다. 이 숫자들은 회중의 참여 규모가 상당했음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많은 제물이 가져와지자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생깁니다.
다만 제사장들의 수가 적어 모든 번제물의 가죽을 벗길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의 형제인 레위 사람들이 일이 끝날 때까지, 또 제사장들이 자신을 거룩하게 할 때까지 그들을 도왔다. 자신을 거룩하게 하는 일에서는 레위 사람들이 제사장들보다 더 올곧은 마음을 지녔기 때문이다.역대하 29:34 · 본디새김
제사장들은 레위 사람들보다 높은 제의적 직무를 맡고 있었습니다. 성전 내부에서 수행할 수 있는 일도 달랐습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구별하여 준비하는 태도에서는 레위 사람들이 더 나았다고 평가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특정한 직무를 맡기셨다는 사실이 그 사람의 마음까지 자동으로 올곧게 만들어 주지는 않습니다.
완벽한 준비보다 중요한 것
많은 번제물과 함께 화목제물의 기름과 번제에 딸린 부어 드리는 제물도 바쳐졌다. 이렇게 여호와야훼의 집에서 하는 예배가 갖추어졌다.역대하 29:35 · 본디새김
부족함이 있었지만, 사람들이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수행하고 서로 도우면서 예배가 회복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점을 예배의 질서나 준비를 소홀히 해도 된다는 의미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히스기야는 처음부터 정화와 성별,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의 직무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본문이 보여 주는 것은 질서를 포기한 열심이 아니라, 질서를 회복해 가는 과정에서 드러난 사람들의 성실함과 협력입니다.
조금 더 깊이
‘자신을 여호와야훼에게 바쳤다’는 표현에는 특별한 히브리어 관용구가 사용됩니다. 이 표현은 출애굽기 29:9, 레위기 8:33 등에서 제사장의 임직과 관련하여 사용됩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회중 전체에게 제물을 가져오라고 하는 문맥입니다. 따라서 모든 백성이 제사장으로 임직되었다는 뜻으로 좁혀 읽기보다, 자신들을 여호와야훼께 봉헌한 상태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다만 33절의 거룩하게 바친 제물을 32절의 번제물과 동일한 종류의 제사로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원문에서도 구별하여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34절의 ‘올곧다’는 말은 마음의 바름과 성실함을 가리킵니다. 본문은 왜 제사장들이 충분히 준비되지 않았는지 구체적인 이유를 말하지 않습니다.
히스기야와 백성이 기뻐한 것은 무엇인가
29장의 마지막 구절은 지금까지의 모든 일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게 합니다.
히스기야와 온 백성은 하나님이 백성을 위해 마련한 것을 두고 기뻐했다. 그 일이 갑자기 이루어졌기 때문이다.역대하 29:36 · 본디새김
히스기야와 백성은 예배가 회복된 일을 자신들의 성취로만 여기지 않고,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신 일로 받아들였습니다. 특히 회중이 자원하여 많은 제물을 가져왔다는 사실은 왕의 명령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음을 보여 줍니다.
열엿새나 걸렸는데 왜 갑자기 이루어졌다고 할까
성전을 깨끗하게 하는 데만 열엿새가 걸렸습니다.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을 모아 직무를 수행하게 하고, 제물과 악기를 마련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갑자기’라는 말은 실제로 아무런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는 의미보다, 오랫동안 중단되었던 예배가 새 왕의 통치가 시작되자 예상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회복되었다는 의미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조금 더 깊이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마련하셨는지를 명시하지 않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백성을 위해 성전 예배의 회복을 마련하셨다는 읽기입니다. 이 경우 하나님이 마련하신 것은 성전이 다시 깨끗해지고 예배가 회복되어 백성이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된 일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백성의 마음을 준비시키셨다는 읽기입니다. 이 경우 강조점은 백성의 변화에 있습니다. 오랫동안 중단되었던 예배가 놀랍게도 다시 시작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준비시키셨기 때문이라는 뜻입니다. 원문의 문법과 문맥은 두 읽기를 모두 허용합니다. 어느 하나만이 확실한 뜻이라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맺음 — 꺼졌던 곳에서 다시 울린 노래
사람들은 성전의 문을 열고 부정한 것을 치웠지만, 그곳이 다시 하나님을 향한 찬양으로 가득하게 된 일을 하나님의 선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의 수고가 예배의 회복으로 이어진 뒤, 왕과 백성은 그 일의 근원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음을 인정합니다.
29장은 그 기쁨의 자리에서 끝납니다.
한때 굳게 닫혀 있던 성전의 문은 열려 있습니다. 제단에서는 제물이 드려졌고, 회중은 몸을 숙여 경배했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예배가 중단되었던 여호와야훼의 집에 다시 노래가 울렸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