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풀어 읽기 · 30장
이 장의 자리 · 29–32장 · 히스기야의 개혁
돌아오는 사람들을 맞아 주시는 하나님
예루살렘에서 유월절을 지키자는 초대장이 북이스라엘의 여러 성읍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초대장을 가져온 전령들을 비웃고 조롱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명절 초대가 아니었습니다. 오랫동안 분열되어 서로 싸웠던 두 왕국의 백성이 한 성전에 모여 같은 하나님을 섬기자는 요청이었습니다. 게다가 북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는 이미 아시리아의 침략으로 가족과 터전을 잃은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예루살렘으로 오라는 유다 왕의 초대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몇몇 사람이 자신을 낮추고 예루살렘으로 왔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에 일어났습니다. 어렵게 모인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유월절을 지키기 위한 정결 규정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기록된 규정과 달리 유월절 제물을 먹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역대하 30장은 예배의 회복을 넘어, 하나님께 돌아오는 사람들을 그분이 어떻게 맞아 주시는지를 보여 줍니다.
왜 유월절을 둘째 달에 지키기로 했을까
히스기야는 예루살렘의 성전 예배를 회복한 뒤 유월절을 지키려고 합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예상하지 못한 결정이 내려집니다.
왕과 그의 고관들과 온 회중은 예루살렘에서 의논하여 둘째 달에 유월절을 지키기로 했다.역대하 30:2 · 본디새김
율법에서 유월절을 지키도록 정한 때는 첫째 달 열나흗날입니다(출애굽기 12:6; 레위기 23:5). 본문은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자신을 거룩하게 한 제사장이 충분하지 않았고 백성도 예루살렘에 모이지 않아, 정해진 때에 유월절을 지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역대하 30:3 · 본디새김
앞 장에서 성전 정화 작업은 첫째 달 십육일에야 끝났습니다(29:17). 이미 정해진 유월절 날짜가 지나 있었습니다. 중단된 예배를 회복하는 데 실제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광야에서 유월절을 지키려 할 때, 시체와 접촉하여 부정해진 사람들이 자신들도 유월절 제사를 드릴 수 있는지 모세에게 물었습니다. 여호와야훼는 부정하게 되었거나 먼 여행 중인 사람이 둘째 달 열나흗날 유월절을 지킬 수 있도록 허락하셨습니다(민수기 9:6–12). 히스기야가 둘째 달을 선택한 것은 이러한 율법의 규정과 연결하여 이해할 수 있습니다.
민수기 9장은 특정한 사유로 제때 유월절을 지킬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규정입니다. 역대하 30장에서는 제사장들의 준비와 백성의 집결이 충분하지 않아 공동체 전체가 절기를 연기합니다. 따라서 민수기 9장의 규정이 히스기야의 모든 결정에 그대로 적용되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자신의 백성이 부득이한 사정으로 정해진 때에 유월절을 지키지 못했을 때에도, 그분을 섬길 수 있는 길을 마련하셨습니다. 이 점에서 둘째 달의 유월절은 율법을 가볍게 여기는 결정이라기보다, 율법 안에서 허락된 가능성을 참고하여 예배를 회복하려는 시도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본문은 히스기야 혼자 날짜를 바꾸었다고 하지 않습니다. 왕과 고관들과 온 회중이 함께 의논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결정이 왕과 온 회중의 눈에 옳았다고 기록합니다(30:4).
왕의 주도로 시작된 개혁이 공동체의 숙고와 참여를 통해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왜 브엘세바에서 단까지 초대했을까
히스기야는 유월절을 지키기로 한 뒤 온 이스라엘에 소식을 알립니다.
그들은 브엘세바에서 단까지 온 이스라엘에 예루살렘으로 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위해 유월절을 지키라고 알리기로 결정했다. 그동안 기록된 대로 유월절을 지킨 사람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역대하 30:5 · 본디새김
브엘세바는 남쪽에, 단은 북쪽에 있었습니다. ‘단에서 브엘세바까지’라는 표현은 사사기 20:1과 사무엘상 3:20 등에서 이스라엘 전체를 나타내는 말로 사용됩니다. 여기서는 순서가 반대입니다. 브엘세바에서 단까지입니다.
어느 방향에서 시작하여 어느 방향으로 초대를 확대했는지에 대한 의도를 확정할 수는 없지만, 이 표현이 가리키는 범위는 분명합니다. 히스기야는 유다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이미 두 왕국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월절을 지키는 일에서 히스기야는 북이스라엘을 여호와야훼의 백성 밖에 있는 이방 민족처럼 취급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들 역시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돌아와야 할 백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구원받은 사건을 기억하는 절기입니다. 출애굽기 12–13장에서 이 절기는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을 종살이에서 이끌어 내셨다는 사실과 연결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의 민족으로 살아가기 전에, 그들은 먼저 여호와야훼의 구원을 경험한 백성이었습니다.
히스기야는 북왕국을 정치적으로 합병했다고 선언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왕좌를 빼앗으려는 군사적 행동도 이 장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들을 예루살렘으로 초대하여 같은 구원의 역사를 기억하게 합니다.
이것은 정치적 통일의 선언과 구별되는, 예배를 통한 공동체의 회복입니다.
돌아오라는 초대는 누구에게 주어졌는가
이제 왕의 편지를 가지고 전령들이 출발합니다.
그런데 편지의 첫 문장은 유월절 참석을 독려하는 말이 아닙니다.
전령들은 왕과 그의 고관들에게서 받은 편지를 가지고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니며 왕의 명령대로 전했다. 「이스라엘 자손들아,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에게 돌아와라. 그러면 그도 너희 가운데 아시리아 왕들의 손에서 살아남은 이들에게 돌아올 것이다.」역대하 30:6 · 본디새김
사람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일과, 하나님이 사람에게 다시 은혜를 베푸시는 일, 흩어진 가족이 땅으로 돌아오는 일이 하나의 희망으로 연결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들이 유월절에 참석하기만 하면 모든 포로가 즉시 석방된다는 기계적인 약속이 아닙니다. 왕의 편지는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 자비와 회복의 길임을 선포합니다. 이 장 자체가 모든 포로의 귀환이 실현되었다고 기록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시리아의 손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이 시기 아시리아는 북이스라엘에 심각한 피해를 입히고 있었습니다. 열왕기하 15:29는 아시리아 왕 디글랏빌레셀이 북왕국의 여러 지역을 점령하고 주민들을 사로잡아 간 일을 기록합니다. 열왕기하 17:3–6은 이후 사마리아의 함락과 주민들의 추방을 기록합니다.
역대하 30장의 초대가 사마리아 최종 함락 이전인지 이후인지, 역사적 사건들을 정확히 어느 순서로 배치해야 하는지는 논의의 여지가 있습니다. 본문만으로 그 시점을 확정할 수 없습니다. 히스기야가 초대한 북이스라엘 사람들은 아시리아의 침략과 포로 문제를 현실로 경험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유월절은 특별한 의미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조상들을 구원하신 여호와야훼를 기억하는 절기에, 이제 아시리아의 압박을 경험한 후손들이 초대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과거에 어떤 분이셨는지를 기억하면서, 지금도 그분의 자비를 구하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은 왜 얼굴을 돌리지 않으시는가
편지의 마지막에는 하나님을 설명하는 문장이 나옵니다.
「너희가 여호와야훼에게 돌아오면 너희 형제들과 자녀들이 그들을 사로잡은 이들 앞에서 긍휼을 입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는 은혜롭고 자비롭기 때문이다. 너희가 그에게 돌아오면 그는 너희에게서 얼굴을 돌리지 않을 것이다.」역대하 30:9 · 본디새김
이 문장은 출애굽기 34:6에서 여호와야훼께서 모세에게 자신의 성품을 선포하신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곳에서 여호와야훼는 자비롭고 은혜로우신 하나님으로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히스기야의 초대는 바로 그 성품에 근거합니다.
북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죄가 없기 때문에 돌아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의 조상과 형제들이 여호와야훼를 배신했으며, 그 결과 참혹한 처지에 놓였다고 분명하게 말합니다(30:7).
그런데도 돌아오라고 초대합니다.
하나님께 돌아올 자격이 충분한 사람들만 부른 것이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을 배신하여 심판의 결과를 겪은 사람들에게도 돌아올 길이 열려 있다고 선언합니다.
앞 장에서 히스기야는 조상들이 여호와야훼의 거처에서 얼굴을 돌리고 등을 보였다고 말했습니다(29:6). 그러나 이제 히스기야는 그들이 돌아온다면 하나님은 그들에게서 얼굴을 돌리지 않으실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사람의 배신에 똑같은 배신으로 응답하시는 분이 아니라, 돌아오는 사람을 자비로 맞아 주시는 하나님이 드러나십니다.
이것은 신명기 30:1–3에서 이스라엘이 흩어진 땅에서 하나님께 돌아오면 여호와야훼께서 그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다시 모으실 것이라는 말씀과도 긴밀하게 연결됩니다. 히스기야의 편지는 새로운 구원 원리를 만들어 내지 않습니다. 이미 율법 안에 주어진 회복의 약속을, 무너진 이스라엘의 현실 속에서 다시 들려줍니다.
조롱한 사람들과 자신을 낮춘 사람들
전령들은 에브라임과 므낫세 땅에서 스불론까지 성읍마다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본문은 그들이 왜 조롱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역대기 기자가 분명히 보여 주는 것은 초대가 거절당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다음 절은 짧은 접속사로 분위기를 뒤집습니다.
다만 아셀과 므낫세와 스불론의 몇몇 사람은 자신을 낮추고 예루살렘으로 왔다.역대하 30:11 · 본디새김
이 사람들의 이름은 기록되지 않습니다. 숫자도 알 수 없습니다. 그들은 그저 ‘몇몇 사람’입니다.
그들은 정치적인 분열이 사라졌기 때문에 온 것이 아닙니다. 북이스라엘의 어려움이 모두 해결되었기 때문에 온 것도 아닙니다. 자신을 낮추고 여호와야훼를 섬기려는 초대에 응답했기 때문에 왔습니다.
그런데 유다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손이 유다에도 미쳐 유다 사람들에게 한마음을 주어, 여호와야훼의 말에 따른 왕과 고관들의 명령을 실행하게 했다.역대하 30:12 · 본디새김
이 구절에서 유다 사람들의 일치는 단순히 왕의 정치적 영향력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각자 동일한 생각을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함께 행동할 수 있는 마음이 주어졌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일어난 행동들이 한곳으로 모입니다.
모인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한 일
둘째 달에 큰 회중이 예루살렘에 모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처음 한 일은 절기 음식을 먹거나 축제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일어나 예루살렘에 있던 제단들을 치웠다. 향을 피우는 제단들도 모두 치워 기드론 골짜기에 던졌다.역대하 30:14 · 본디새김
여기서 제단들은 여호와야훼의 성전에 있던 정당한 번제단이 아니라, 예루살렘 곳곳에 세워졌던 다른 제단들을 가리킵니다. 아하스는 자신을 위해 예루살렘 구석구석에 제단들을 만들었습니다(28:24). 이제 절기를 위해 모인 사람들이 그 제단들을 제거합니다.
앞에서는 히스기야 왕이 명령을 내리고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이 성전을 정화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모인 회중이 일어나 제단들을 치웁니다.
왕의 개혁이 백성의 행동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도착했다고 해서 자동으로 하나님께 돌아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곳에서도 여호와야훼를 거스르는 제단들이 제거되어야 했습니다.
사람들은 유월절을 지키기 전에 자신들이 버려야 할 것을 버립니다.
규정을 지키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기도
둘째 달 열나흗날, 마침내 유월절 제물을 잡습니다.
그러나 이 장면은 모든 준비가 완벽하게 끝난 상태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둘째 달 십사일에 유월절 제물을 잡았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은 부끄러워하며 자신을 거룩하게 하고, 여호와야훼의 집으로 번제물을 가져왔다.역대하 30:15 · 본디새김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은 예배를 이끌어야 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거룩하게 하는 일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들에게 부끄러움을 일으킨 것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부끄러움이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끝이 아니라, 자신을 준비하는 행동으로 이어졌습니다.
16절에서는 제사장들이 모세의 율법을 따라 자기 자리에 섭니다. 레위 사람들에게서 피를 받아 제단에 뿌리는 일도 기록됩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 또 하나의 문제가 등장합니다.
회중 가운데 자신을 거룩하게 하지 않은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레위 사람들이 정결하지 않은 모든 이를 대신하여 유월절 제물을 잡아 여호와야훼에게 거룩하게 바치는 일을 맡았다.역대하 30:17 · 본디새김
이것은 규정을 무시했다는 이야기와 다릅니다. 오히려 정결 문제가 실제로 중요했기 때문에, 그 문제를 고려하여 레위 사람들이 봉사를 수행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조치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습니다.
히스기야는 무엇을 근거로 용서를 구했는가
백성의 큰 무리, 곧 에브라임과 므낫세와 잇사갈과 스불론에서 온 많은 사람은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들은 기록된 규정과 달리 유월절 제물을 먹었다. 이 일에 대해 히스기야가 그들을 위해 이렇게 기도했다. 「선한 여호와야훼여,」 「성소의 정결 기준에 맞지 않더라도, 하나님, 곧 자기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찾으려고 마음을 굳게 정한 모든 이를 용서해 주십시오.」역대하 30:18–19 · 본디새김
규정을 지키지 못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들이 하나님께 나아오려는 마음을 보시고 용서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단순히 실수를 눈감아 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잘못이 다루어지고, 그들이 받아들여지기를 구합니다.
기도의 근거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여호와야훼의 선하심입니다. 히스기야는 ‘선한 여호와야훼여’라고 부르며 기도를 시작합니다.
다른 하나는 그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그들은 ‘자기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찾으려고 마음을 굳게 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에 비해 의식적인 준비는 충분하지 못했습니다.
히스기야는 그들의 부족함이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대신, 그 부족함보다 더 근본적인 하나님의 선하심에 호소합니다.
여기에는 정결 규정의 객관적인 요구와 하나님을 향한 마음의 방향이 함께 놓여 있습니다. 둘 중 하나를 없애는 방식이 아니라, 부족한 사람이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방식으로 그 긴장이 다루어집니다.
여호와야훼가 백성을 치유하셨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여호와야훼는 히스기야의 말을 듣고 백성을 치유했다.역대하 30:20 · 본디새김
이것은 하나님의 거룩함과 자비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이 그분께 나아올 때 정결을 요구하십니다. 그러나 그 요구를 완전하게 충족하지 못한 사람들이 진심으로 그분을 찾으며 나아올 때, 하나님은 그들을 회복시키실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자비는 규정의 중요성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규정을 어긴 사람들이 다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도록 하는 은혜로 나타납니다.
왕은 사람들을 제외하는 대신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
그러나 규정을 충족하지 못한 사람이 나타났을 때, 그들을 무조건 쫓아내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사람으로 섭니다. 사람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궁극적인 권한은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입니다.
그에게는 질서를 세울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질서를 세우는 일이 부족한 사람들을 하나님께 나아오지 못하게 막는 일과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그가 마지막으로 의지한 것은 자신의 판단이나 권한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이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본문은 그들에게 어떤 질병이 있었는지, 어떤 증상이 나타났는지, 어떤 방식으로 치유가 이루어졌는지를 기록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이 육체적인 질병에서 치료받았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문맥에서 직접 제기된 문제는 정결 규정을 충족하지 못한 사람들이 유월절 제물을 먹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이 치유는 적어도 정결 문제와 관련하여 백성이 하나님의 자비를 경험하고 예배 공동체 안에서 받아들여지는 회복을 포함한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육체적인 치유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배제할 필요는 없지만, 본문만으로 그 구체적인 성격을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칠 일로 끝나지 않은 기쁨
여호와야훼께서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신 뒤, 이야기는 기쁨으로 가득해집니다.
예루살렘에 모인 이스라엘 자손들은 칠 일 동안 크게 기뻐하며 무교절을 지켰다.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은 여호와야훼를 위해 악기들을 힘차게 울리며 날마다 여호와야훼를 찬양했다.역대하 30:21 · 본디새김
유월절 제물은 둘째 달 열나흗날에 잡았습니다. 이어지는 무교절은 칠 일 동안 지켜졌습니다. 이것은 출애굽기 12:15–20과 레위기 23:6–8에 규정된 절기 구조와 연결됩니다.
그들은 절기의 시작이나 끝에만 잠깐 찬양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칠 일 동안 계속 하나님을 높였습니다.
히스기야는 여호와야훼의 일을 잘 이해하는 모든 레위 사람에게 격려의 말을 했다. 그들은 칠 일 동안 절기의 음식을 먹으며 화목제물을 바치고 자기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야훼에게 감사를 드렸다.역대하 30:22 · 본디새김
왕이 직접 모든 일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잘 이해하는 사람들이 자기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도록 돕습니다.
그런데 칠 일이 끝나자 예상하지 못한 결정이 내려집니다.
온 회중은 의논하여 칠 일을 더 지키기로 했다. 그들은 그 칠 일을 기쁘게 지냈다.역대하 30:23 · 본디새김
처음에는 절기를 지키기 어려웠습니다.
이제는 절기를 끝내기가 아쉬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처음에 둘째 달로 날짜를 정할 때도 왕과 고관들과 회중이 의논했습니다. 이제 절기를 연장할 때도 온 회중이 의논합니다.
절기의 진행에 공동체가 실제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기쁨이 계속될 수 있었던 현실적인 이유
24절은 이 절기가 연장될 수 있었던 이유도 알려 줍니다. 히스기야가 수소 천 마리와 양과 염소 칠천 마리를 내주었고, 고관들도 수소 천 마리와 양과 염소 만 마리를 내주었습니다.
왕은 백성에게 함께 예배하자고 초대만 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예배와 공동 식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필요한 것을 내주었습니다. 고관들도 그 일에 참여했습니다.
또한 24절 마지막은 많은 제사장이 자신을 거룩하게 했다고 기록합니다. 앞에서는 준비된 제사장들의 수가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부족한 상태에서 시작된 회복의 과정 속에서 사람들이 변화하고 준비되어 갔습니다. 그들의 정결과 봉사, 회중의 참여와 기쁨이 함께 자라났습니다.
누가 이 기쁨에 참여했는가
25절은 이 절기에 참여한 사람들을 다시 소개합니다.
유다의 온 회중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이스라엘에서 온 모든 회중, 이스라엘 땅에서 온 이주민들과 유다에 살던 이주민들이 기뻐했다.역대하 30:25 · 본디새김
이 구절에서 언급된 이주민들의 정확한 출신과 신분을 모두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역대기 기자는 그들이 이스라엘과 유다에서 모인 회중과 함께 기뻐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기록합니다. 유월절을 지키는 공동체가 혈통적으로 한 지역에만 속한 사람들로 한정되어 있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출애굽기 12:48–49에서도 유월절에 참여하려는 거류민에 대한 규정이 등장합니다. 그곳에서는 할례를 비롯한 언약 공동체의 규정을 지키는 문제가 중요하게 다루어집니다. 따라서 역대하 30장의 이주민 참여를 모든 사람이 아무 조건 없이 유월절 제사를 먹을 수 있었다는 뜻으로 확대해서는 안 됩니다.
정치적으로 분열된 백성이 한자리에 모였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던 이주민들도 기쁨에 참여했습니다. 이것은 역대기에서 계속 강조되는 ‘온 이스라엘’이라는 주제가 실제 장면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솔로몬 시대 이후 이런 일이 없었다는 말
예루살렘에 큰 기쁨이 있었다. 다윗의 아들인 이스라엘 왕 솔로몬 때부터 예루살렘에 이 같은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역대하 30:26 · 본디새김
이 표현을 솔로몬 이후 유월절을 한 번도 지킨 적이 없었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비교의 중심은 예루살렘에 모인 큰 회중과 그들이 경험한 특별한 기쁨에 있습니다.
역대하 7:8–10에서 솔로몬은 성전 봉헌과 관련하여 큰 회중과 함께 절기를 지켰습니다. 그때에도 칠 일 동안 절기를 지키는 일이 기록되며, 백성은 여호와야훼께서 베푸신 선한 일들 때문에 기뻐하며 돌아갔습니다. 히스기야 시대의 절기 역시 큰 회중이 모였고, 칠 일의 절기를 추가로 지켰으며, 기쁨이 특별히 강조됩니다.
두 사건이 동일한 절기였다는 뜻은 아닙니다. 솔로몬 시대의 봉헌과 절기는 일곱째 달의 성전 봉헌과 관련되어 있고, 히스기야의 유월절은 둘째 달에 지켜졌습니다. 그러나 역대기는 두 장면을 예루살렘 성전에서 온 이스라엘이 함께 하나님을 섬기며 기뻐하는 사건으로 연결합니다.
여기서 솔로몬은 단순히 오래전의 위대한 왕으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분열 이전의 이스라엘이 성전에서 함께 하나님을 섬기던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인물입니다.
북이스라엘과 유다의 정치적 분열이 사라진 것도 아니었고, 아시리아의 위협이 끝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잠시나마 분열 이전의 이스라엘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으로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그 중심에는 왕의 권력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향한 예배가 있었습니다.
나라의 경계는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하나님께 함께 나아오는 사람들의 기쁨은 그 경계를 넘어섰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기도가 하늘에 이르다
이 장의 마지막 장면은 뜻밖에도 제사나 음식이나 노래가 아닙니다.
축복입니다.
레위 사람인 제사장들이 일어나 백성에게 복을 빌었다. 그들의 목소리가 받아들여졌고, 그들의 기도가 하나님의 거룩한 거처인 하늘에 이르렀다.역대하 30:27 · 본디새김
민수기 6:22–27에서 여호와야훼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이스라엘 자손을 축복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 축복은 제사장이 자기 능력으로 복을 만들어 내는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제사장은 여호와야훼의 이름으로 백성을 축복했고, 실제로 복을 주시는 분은 여호와야훼셨습니다.
지금까지 30장의 이야기는 예루살렘 성전으로 모여드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따라왔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여러 곳에서 하나의 중심, 곧 예루살렘의 여호와야훼의 집을 향해 왔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는 방향이 달라집니다.
이제 성전에서 드려진 기도가 하늘로 올라갑니다.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여든 것으로 이야기가 끝나지 않습니다. 그들이 드린 기도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졌다는 사실로 끝납니다.
하나님은 성전에만 계시는 분인가
역대기에서 성전은 여호와야훼께서 자신의 이름을 두신 거룩한 장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성전 건물 안에 가둘 수는 없습니다.
솔로몬은 성전을 봉헌하면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당신을 담을 수 없는데, 제가 지은 이 집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역대하 6:18의 내용) 그리고 성전을 향해 드리는 기도를 하늘의 거처에서 들으시고 용서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역대하 6:21).
히스기야가 정결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했을 때, 여호와야훼는 그 말을 듣고 백성을 치유하셨습니다(30:20). 이제 절기가 끝날 때 제사장들이 백성을 위해 기도하자, 그 기도 역시 하나님의 거룩한 거처에 이르렀습니다.
두 번의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이 이 장의 후반부를 감싸고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레위 사람인 제사장들’이라는 표현은 아론의 자손인 제사장들이 레위 지파에 속한다는 사실을 함께 나타낸 것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히브리어 원문에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사이에 접속사가 없습니다. 물론 두 집단을 별도로 열거한 것으로 이해하는 읽기도 있지만, 제사장들을 레위 사람들 가운데 속한 집단으로 설명하는 읽기가 문법적으로 자연스럽습니다.
맺음 — 흩어진 사람들이 모여 기도하는 소리
역대하 30장은 편지에서 시작하여 기도로 끝납니다.
히스기야는 율법의 규정을 존중하면서도, 그 규정을 충분히 지키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의 자비를 구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의 부족함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기도를 들으셨기 때문에, 그들은 함께 예배하고 기뻐하며 축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 전령들의 목소리는 사람들에게 조롱당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제사장들의 목소리는 하나님께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날 예루살렘에는 유다 사람들과 북이스라엘에서 온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던 이주민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서로 다른 곳에서 왔고, 서로 다른 사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자리에서 하나님을 찬양했고, 제사장들은 그들 모두를 위해 복을 빌었습니다.
그 기도가 하늘에 이르렀습니다.
역대하 30장은 바로 그 장면에서 끝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