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풀어 읽기 · 30장
이 장의 자리 · 29–32장 · 히스기야의 개혁
돌아오는 사람들을 맞아 주시는 하나님
예루살렘에서 유월절을 지키자는 초대장이 북이스라엘의 여러 성읍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초대장을 가져온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을 비웃고 조롱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명절 초대가 아니었습니다. 오랫동안 갈라져 서로 싸웠던 두 왕국의 백성이 한 성전에 모여 같은 하나님을 섬기자는 요청이었습니다. 게다가 북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는 이미 아시리아의 침략으로 가족과 터전을 잃은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예루살렘으로 오라는 유다 왕의 초대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이 자신을 낮추고 예루살렘으로 왔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에 일어났습니다. 어렵게 모인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유월절을 지키기 위한 정결 규정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기록된 규정과 달리 유월절 제물을 먹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역대하 30장은 예배의 회복을 넘어, 하나님께 돌아오는 사람들을 그분이 어떻게 맞아 주시는지를 보여 줍니다.
왜 유월절을 둘째 달에 지키기로 했을까
히스기야는 예루살렘의 성전 예배를 회복한 뒤 유월절을 지키려고 합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예상하지 못한 결정이 내려집니다.
왕과 지도자들과 예루살렘에 모인 모든 백성은 의논하여 둘째 달에 유월절을 지키기로 했습니다.역대하 30:2 · 두루새김
율법에서 유월절을 지키도록 정한 때는 첫째 달 열나흗날입니다(출애굽기 12:6; 레위기 23:5). 본문은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정해진 때에는 유월절을 지킬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거룩하게 구별한 제사장이 충분하지 않았고, 백성도 예루살렘에 모이지 않았습니다.역대하 30:3 · 두루새김
앞 장에서 성전을 깨끗하게 하는 일은 첫째 달 십육일에야 끝났습니다(29:17). 이미 정해진 유월절 날짜가 지나 있었습니다. 중단된 예배를 회복하는 데 실제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광야에서 유월절을 지키려 할 때, 시체에 닿아 부정해진 사람들이 자신들도 유월절 제사를 드릴 수 있는지 모세에게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부정하게 되었거나 먼 여행 중인 사람이 둘째 달 열나흗날 유월절을 지킬 수 있도록 허락하셨습니다(민수기 9:6–12). 히스기야가 둘째 달을 선택한 것은 이러한 율법의 규정과 연결하여 이해할 수 있습니다.
민수기 9장은 특정한 사유로 제때 유월절을 지킬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규정입니다. 역대하 30장에서는 제사장들의 준비와 백성의 모임이 충분하지 않아 공동체 전체가 절기를 미룹니다. 따라서 민수기 9장의 규정이 히스기야의 모든 결정에 그대로 적용되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이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정해진 때에 유월절을 지키지 못했을 때에도, 그분을 섬길 수 있는 길을 마련하셨습니다. 이 점에서 둘째 달의 유월절은 율법을 가볍게 여기는 결정이라기보다, 율법 안에서 허락된 길을 참고하여 예배를 회복하려는 시도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본문은 히스기야 혼자 날짜를 바꾸었다고 하지 않습니다. 왕과 지도자들과 예루살렘에 모인 모든 백성이 함께 의논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왕과 모인 모든 백성이 이 계획을 좋게 여겼다고 기록합니다(30:4).
왕이 이끌며 시작된 개혁이 공동체의 깊은 생각과 참여를 통해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왜 브엘세바에서 단까지 초대했을까
히스기야는 유월절을 지키기로 한 뒤 온 이스라엘에 소식을 알립니다.
그들은 브엘세바에서 단까지 온 이스라엘에 이 일을 알리기로 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위해 유월절을 지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기록된 규정대로 유월절을 지킨 사람이 많지 않았기 때문입니다.역대하 30:5 · 두루새김
브엘세바는 남쪽에, 단은 북쪽에 있었습니다. 「단에서 브엘세바까지」라는 표현은 사사기 20:1과 사무엘상 3:20 등에서 이스라엘 전체를 나타내는 말로 사용됩니다. 히스기야는 유다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이미 두 왕국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월절을 지키는 일에서 히스기야는 북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 밖에 있는 다른 민족처럼 취급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들 역시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돌아와야 할 백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구원받은 사건을 기억하는 절기입니다. 출애굽기 12–13장에서 이 절기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종살이에서 이끌어 내셨다는 사실과 연결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의 민족으로 살아가기 전에, 그들은 먼저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한 백성이었습니다.
히스기야는 북왕국을 정치적으로 합쳤다고 선언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왕좌를 빼앗으려는 군사적 행동도 이 장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들을 예루살렘으로 초대하여 같은 구원의 역사를 기억하게 합니다.
이것은 정치적 통일의 선언과 구별되는, 예배를 통한 공동체의 회복입니다.
돌아오라는 초대는 누구에게 주어졌는가
이제 왕의 편지를 가지고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이 출발합니다.
그런데 편지의 첫 문장은 유월절 참석을 권하는 말이 아닙니다.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은 왕과 지도자들에게서 받은 편지를 가지고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녔습니다. 그들은 왕의 명령에 따라 이렇게 전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아,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께 돌아와라. 그러면 그분께서도 아시리아 왕들의 손에서 벗어나 살아남은 너희에게 돌아오실 것이다.」역대하 30:6 · 두루새김
너희가 하나님께 돌아오면, 하나님도 너희에게 돌아오실 것입니다.
너희가 돌아오면, 사로잡힌 동족과 자녀들도 돌아올 수 있을 것입니다.
너희가 하나님께 돌아오면, 하나님은 너희를 외면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원문에서는 하나의 동사가 여러 방향으로 쓰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일과, 하나님이 사람에게 다시 은혜를 베푸시는 일, 흩어진 가족이 땅으로 돌아오는 일이 하나의 희망으로 연결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들이 유월절에 참석하기만 하면 사로잡힌 모든 사람이 즉시 풀려난다는 기계적인 약속이 아닙니다. 왕의 편지는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 자비와 회복의 길임을 선포합니다. 이 장 자체가 사로잡힌 모든 사람이 돌아왔다고 기록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시리아의 손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이 시기 아시리아는 북이스라엘에 심각한 피해를 입히고 있었습니다. 열왕기하 15:29는 아시리아 왕 디글랏빌레셀이 북왕국의 여러 지역을 차지하고 주민들을 사로잡아 간 일을 기록합니다. 열왕기하 17:3–6은 이후 사마리아가 함락되고 주민들이 쫓겨난 일을 기록합니다.
히스기야가 초대한 북이스라엘 사람들은 아시리아의 침략과 사로잡혀 가는 문제를 현실로 경험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조상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는 절기에, 이제 아시리아의 압박을 경험한 후손들이 초대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과거에 어떤 분이셨는지를 기억하면서, 지금도 그분의 자비를 구하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은 왜 얼굴을 돌리지 않으시는가
편지의 마지막에는 하나님을 설명하는 문장이 나옵니다.
「너희가 여호와야훼께 돌아오면, 너희 동족과 자녀들을 사로잡은 사람들이 그들을 불쌍히 여길 것이다. 그래서 너희 동족과 자녀들이 이 땅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는 은혜롭고 자비로우시다. 너희가 그분께 돌아오면 너희를 외면하지 않으실 것이다.」역대하 30:9 · 두루새김
이 문장은 출애굽기 34:6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자신의 성품을 선포하신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자비롭고 은혜로우신 분으로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히스기야의 초대는 바로 그 성품에 근거합니다.
북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죄가 없기 때문에 돌아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의 조상과 동족들이 하나님을 저버렸으며, 그 결과 처참한 지경에 놓였다고 분명하게 말합니다(30:7).
그런데도 돌아오라고 초대합니다.
하나님께 돌아올 자격이 충분한 사람들만 부른 것이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을 저버려 심판의 결과를 겪은 사람들에게도 돌아올 길이 열려 있다고 선언합니다.
원문에서는 얼굴을 돌리지 않으신다는 말로 표현합니다. 앞 장에서 히스기야는 조상들이 하나님의 거처에서 얼굴을 돌리고 등을 보였다고 말했습니다(29:6).
사람들이 먼저 하나님께 등을 돌렸습니다.
그러나 이제 히스기야는 그들이 돌아온다면 하나님은 그들을 외면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사람의 배신에 똑같은 배신으로 응답하시는 분이 아니라, 돌아오는 사람을 자비로 맞아 주시는 하나님이 드러나십니다.
이것은 신명기 30:1–3에서 이스라엘이 흩어진 땅에서 하나님께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다시 모으실 것이라는 말씀과도 깊이 연결됩니다. 이미 율법 안에 주어진 회복의 약속을, 무너진 이스라엘의 현실 속에서 다시 들려줍니다.
조롱한 사람들과 자신을 낮춘 사람들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은 에브라임과 므낫세 땅에서 스불론까지 성읍마다 다녔습니다.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은 에브라임과 므낫세 땅에서 스불론까지 성읍마다 다녔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들을 비웃고 조롱했습니다.역대하 30:10 · 두루새김
본문은 그들이 왜 조롱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역대기 기자가 분명히 보여 주는 것은 초대가 거절당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다음 절은 짧은 접속사로 분위기를 뒤집습니다.
하지만 아셀과 므낫세와 스불론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자신을 낮추고 예루살렘으로 왔습니다.역대하 30:11 · 두루새김
이 사람들의 이름은 기록되지 않습니다. 숫자도 알 수 없습니다. 그들은 그저 「일부」입니다.
그들은 정치적인 분열이 사라졌기 때문에 온 것이 아닙니다. 북이스라엘의 어려움이 모두 해결되었기 때문에 온 것도 아닙니다.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을 섬기려는 초대에 응답했기 때문에 왔습니다.
그런데 유다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사람들에게도 힘을 미쳐 한마음을 품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여호와야훼의 말씀에 따라 왕과 지도자들이 내린 명령을 실행했습니다.역대하 30:12 · 두루새김
이 구절에서 유다 사람들이 하나가 된 일은 단순히 왕의 정치적 영향력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각자 같은 생각을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함께 행동할 수 있는 마음이 주어졌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일어난 행동들이 한곳으로 모입니다.
모인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한 일
둘째 달에 매우 큰 무리가 예루살렘에 모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처음 한 일은 명절 음식을 먹거나 축제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나서서 예루살렘에 있던 제단들을 치웠습니다. 향을 피우는 제단들도 모두 치워 기드론 골짜기에 던졌습니다.역대하 30:14 · 두루새김
여기서 제단들은 하나님의 성전에 있던 올바른 번제단이 아니라, 예루살렘 곳곳에 세워졌던 다른 제단들을 가리킵니다. 아하스는 자신을 위해 예루살렘 구석구석에 제단들을 만들었습니다(28:24).
앞에서는 히스기야 왕이 명령을 내리고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이 성전을 깨끗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모인 백성이 나서서 제단들을 치웁니다.
왕의 개혁이 백성의 행동으로 넓어지고 있습니다.
돌아옴은 단순히 장소를 옮기는 것이 아닙니다.
예루살렘에 도착했다고 해서 자동으로 하나님께 돌아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곳에서도 하나님을 거스르는 제단들이 치워져야 했습니다.
사람들은 유월절을 지키기 전에 자신들이 버려야 할 것을 버립니다.
규정을 지키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기도
둘째 달 열나흗날, 마침내 유월절 제물을 잡습니다.
그러나 이 장면은 모든 준비가 완벽하게 끝난 상태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둘째 달 14일에 유월절 제물을 잡았습니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은 부끄러워하며 자신을 거룩하게 구별하고, 여호와야훼의 성전으로 번제물을 가져왔습니다.역대하 30:15 · 두루새김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은 예배를 이끌어야 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거룩하게 구별하는 일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들에게 부끄러움을 일으킨 것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부끄러움이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끝이 아니라, 자신을 준비하는 행동으로 이어졌습니다.
16절에서는 제사장들이 모세의 율법에 정해진 규정대로 각자 맡은 자리에 섭니다. 레위 사람들에게서 피를 받아 제단에 뿌리는 일도 기록됩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 또 하나의 문제가 등장합니다.
모인 백성 가운데 자신을 거룩하게 구별하지 않은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레위 사람들이 정결하지 않은 모든 사람을 대신해 유월절 제물을 잡아 여호와야훼께 거룩하게 바치는 일을 맡았습니다.역대하 30:17 · 두루새김
오히려 정결 문제가 실제로 중요했기 때문에, 그 문제를 고려하여 레위 사람들이 맡은 일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조치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습니다.
히스기야는 무엇을 근거로 용서를 구했는가
에브라임과 므낫세와 잇사갈과 스불론에서 온 많은 사람은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기록된 규정과 달리 유월절 제물을 먹었습니다. 히스기야는 그들을 위해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선하신 여호와야훼여,」 「성전에서 정한 대로 자신을 깨끗하게 하지 못했더라도, 조상들의 하나님이신 여호와야훼 하나님을 찾기로 마음을 굳게 정한 모든 사람을 용서해 주십시오.」역대하 30:18–19 · 두루새김
유월절을 둘째 달로 옮긴 결정에도 율법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모든 정결 규정을 자동으로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규정을 지키지 못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들이 하나님께 나아오려는 마음을 보시고 용서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단순히 실수를 눈감아 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잘못이 다루어지고, 그들이 받아들여지기를 구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찾기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에 비해 예배 의식을 위한 준비는 충분하지 못했습니다. 히스기야는 그들의 부족함이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대신, 그 부족함보다 더 근본적인 하나님의 선하심에 호소합니다.
여기에는 정결 규정이 요구하는 것과 하나님을 향한 마음의 방향이 함께 놓여 있습니다. 둘 중 하나를 없애는 방식이 아니라, 부족한 사람이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방식으로 그 긴장이 다루어집니다.
여호와야훼가 백성을 치유하셨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여호와야훼께서는 히스기야의 기도를 듣고 백성을 고쳐 주셨습니다.역대하 30:20 · 두루새김
여기서 하나님의 자비는 규정의 중요성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규정을 어긴 사람들이 다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도록 하는 은혜로 나타납니다.
왕은 사람들을 제외하는 대신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
여기서 왕은 자신이 모든 문제를 마지막으로 판단하는 사람인 것처럼 행동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사람으로 섭니다. 사람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최종 권한은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입니다.
그에게는 질서를 세울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질서를 세우는 일이 부족한 사람들을 하나님께 나아오지 못하게 막는 일과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그가 마지막으로 의지한 것은 자신의 판단이나 권한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이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두루새김의 「고쳐 주셨습니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동사는 라파(רָפָא)입니다. 병을 고치는 일에 사용되지만, 회복과 치유를 나타내는 더 넓은 문맥에서도 등장합니다. 본문은 그들에게 어떤 질병이 있었는지, 어떤 증상이 나타났는지, 어떤 방식으로 고쳐 주셨는지를 기록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치유는 적어도 정결 문제와 관련하여 백성이 하나님의 자비를 경험하고 예배 공동체 안에서 받아들여지는 회복을 포함한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몸의 병을 고쳐 주셨을 가능성을 아예 배제할 필요는 없지만, 본문만으로 그 구체적인 성격을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칠 일로 끝나지 않은 기쁨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신 뒤, 이야기는 기쁨으로 가득해집니다.
예루살렘에 모인 이스라엘 자손들은 7일 동안 크게 기뻐하며 무교절을 지켰습니다.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은 여호와야훼를 위해 악기를 힘차게 연주하며 날마다 여호와야훼를 찬양했습니다.역대하 30:21 · 두루새김
유월절 제물은 둘째 달 열나흗날에 잡았습니다. 이어지는 무교절은 칠 일 동안 지켜졌습니다. 이것은 출애굽기 12:15–20과 레위기 23:6–8에 규정된 절기의 짜임과 연결됩니다.
그들은 절기의 시작이나 끝에만 잠깐 찬양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칠 일 동안 계속 하나님을 높였습니다.
히스기야는 여호와야훼를 섬기는 일을 잘 아는 모든 레위 사람에게 격려의 말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7일 동안 명절 음식을 먹으며 화목 제물을 바치고,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야훼께 감사를 드렸습니다.역대하 30:22 · 두루새김
왕이 직접 모든 일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잘 아는 사람들이 맡은 일을 충실하게 하도록 돕습니다.
그런데 칠 일이 끝나자 예상하지 못한 결정이 내려집니다.
모인 백성은 모두 의논하여 명절을 7일 더 지키기로 했습니다. 그들은 그 7일도 기쁘게 지냈습니다.역대하 30:23 · 두루새김
처음에는 절기를 지키기 어려웠습니다.
이제는 절기를 끝내기가 아쉬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처음에 둘째 달로 날짜를 정할 때도 왕과 지도자들과 모인 백성이 의논했습니다. 이제 절기를 연장할 때도 모인 백성이 모두 의논합니다.
절기의 진행에 공동체가 실제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기쁨이 계속될 수 있었던 현실적인 이유
히스기야가 수소 천 마리와 양과 염소 칠천 마리를 내주었고, 지도자들도 수소 천 마리와 양과 염소 만 마리를 내주었습니다. 이 숫자는 그 규모를 보여 줍니다. 동시에 왕과 지도자들이 백성의 절기 참여를 위해 실제로 필요한 것을 제공했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이것은 공동체의 기쁨이 단순히 마음속 감정만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절기를 함께 지키기 위해서는 실제적인 준비와 필요한 물품이 있어야 했습니다.
또한 24절 마지막은 많은 제사장이 자신을 거룩하게 구별했다고 기록합니다. 앞에서는 준비된 제사장들의 수가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회복이 진행되면서 예배를 위한 준비도 더욱 충실해지고 있습니다.
부족한 상태에서 시작된 회복의 과정 속에서 사람들이 변화하고 준비되어 갔습니다. 그들의 정결과 봉사, 모인 백성의 참여와 기쁨이 함께 자라났습니다.
누가 이 기쁨에 참여했는가
25절은 이 절기에 참여한 사람들을 다시 소개합니다.
유다에서 모인 모든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이스라엘에서 온 모든 백성이 기뻐했습니다. 이스라엘 땅에서 온 외국인 주민들과 유다에 살던 외국인 주민들도 함께 기뻐했습니다.역대하 30:25 · 두루새김
유월절을 지키는 공동체가 혈통으로 보아 한 지역에만 속한 사람들로 한정되어 있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정치적으로 갈라진 백성이 한자리에 모였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던 외국인 주민들도 기쁨에 참여했습니다.
이것은 역대기에서 계속 강조되는 「온 이스라엘」이라는 주제가 실제 장면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솔로몬 시대 이후 이런 일이 없었다는 말
예루살렘에는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 다윗의 아들인 이스라엘 왕 솔로몬 때부터 예루살렘에 이런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역대하 30:26 · 두루새김
이 표현을 솔로몬 이후 유월절을 한 번도 지킨 적이 없었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비교의 중심은 예루살렘에 모인 큰 무리와 그들이 경험한 특별한 기쁨에 있습니다.
역대하 7:8–10에서 솔로몬은 성전을 하나님께 바치는 일과 관련하여 큰 무리와 함께 절기를 지켰습니다. 그때에도 칠 일 동안 절기를 지키는 일이 기록되며, 백성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선한 일들 때문에 기뻐하며 돌아갔습니다. 히스기야 시대의 절기 역시 큰 무리가 모였고, 칠 일의 절기를 추가로 지켰으며, 기쁨이 특별히 강조됩니다.
두 사건이 같은 절기였다는 뜻은 아닙니다. 솔로몬 시대의 봉헌과 절기는 일곱째 달에 성전을 하나님께 바치는 일과 관련되어 있고, 히스기야의 유월절은 둘째 달에 지켜졌습니다. 그러나 역대기는 두 장면을 예루살렘 성전에서 온 이스라엘이 함께 하나님을 섬기며 기뻐하는 사건으로 연결합니다.
여기서 솔로몬은 단순히 오래전의 위대한 왕으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갈라지기 이전의 이스라엘이 성전에서 함께 하나님을 섬기던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인물입니다.
북이스라엘과 유다의 정치적 분열이 사라진 것도 아니었고, 아시리아의 위협이 끝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잠시나마 갈라지기 이전의 이스라엘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으로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그 중심에는 왕의 권력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있었습니다.
나라의 경계는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하나님께 함께 나아오는 사람들의 기쁨은 그 경계를 넘어섰습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게림(גֵּר)은 자신이 속한 본래의 공동체나 땅을 떠나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문맥에 따라 외국에서 와서 사는 사람들을 가리킬 수도 있고, 다른 지역에서 옮겨 와 사는 사람들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언급된 외국인 주민들의 정확한 출신과 신분을 모두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출애굽기 12:48–49에서도 유월절에 참여하려는 외국인 주민에 대한 규정이 등장합니다. 그곳에서는 할례를 비롯한 언약 공동체의 규정을 지키는 문제가 중요하게 다루어집니다. 따라서 역대하 30장의 외국인 주민 참여를 모든 사람이 아무 조건 없이 유월절 제물을 먹을 수 있었다는 뜻으로 넓혀서는 안 됩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기도가 하늘에 이르다
이 장의 마지막 장면은 뜻밖에도 제사나 음식이나 노래가 아닙니다.
축복입니다.
레위 사람인 제사장들이 일어나 백성에게 복을 빌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셨고, 그들의 기도는 하나님의 거룩한 거처인 하늘에 이르렀습니다.역대하 30:27 · 두루새김
지금까지 30장의 이야기는 예루살렘 성전으로 모여드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따라왔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여러 곳에서 하나의 중심, 곧 예루살렘의 하나님의 성전을 향해 왔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는 방향이 달라집니다.
이제 성전에서 드려진 기도가 하늘로 올라갑니다.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여든 것으로 이야기가 끝나지 않습니다. 그들이 드린 기도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졌다는 사실로 끝납니다.
하나님은 성전에만 계시는 분인가
역대기에서 성전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두신 거룩한 장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성전 건물 안에 가둘 수는 없습니다.
솔로몬은 성전을 하나님께 바치면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당신을 담을 수 없는데, 제가 지은 이 집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역대하 6:18의 내용)
그리고 성전을 향해 드리는 기도를 하늘의 거처에서 들으시고 용서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역대하 6:21). 역대하 30장의 마지막은 이 기도를 떠올리게 합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레위 사람인 제사장들」이라는 표현은 아론의 자손인 제사장들이 레위 지파에 속한다는 사실을 함께 나타낸 것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히브리어 원문에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사이에 접속사가 없습니다. 따라서 두 집단을 따로 나열한 것으로 이해하는 읽기도 있지만, 제사장들을 레위 사람들 가운데 속한 집단으로 설명하는 읽기가 문법적으로 자연스럽습니다. 민수기 6:22–27에서 하나님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이스라엘 자손을 축복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백성을 축복했고, 실제로 복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맺음 — 흩어진 사람들이 모여 기도하는 소리
역대하 30장은 편지에서 시작하여 기도로 끝납니다.
히스기야는 두 태도 가운데 어느 하나를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율법의 규정을 존중하면서도, 그 규정을 충분히 지키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의 자비를 구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처음에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사람들에게 조롱당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제사장들의 목소리는 하나님께 받아들여졌습니다.
사람들에게 거절당했던 돌아오라는 초대가, 마침내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는 축복의 기도로 이어진 것입니다.
그날 예루살렘에는 유다 사람들과 북이스라엘에서 온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던 외국인 주민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서로 다른 곳에서 왔고, 서로 다른 사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자리에서 하나님을 찬양했고, 제사장들은 그들 모두를 위해 복을 빌었습니다.
그 기도가 하늘에 이르렀습니다.
역대하 30장은 바로 그 장면에서 끝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