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풀어 읽기 · 32장
이 장의 자리 · 29–32장 · 히스기야의 개혁
성벽을 지킨 믿음, 드러난 왕의 마음
성벽을 지킨 믿음, 드러난 왕의 마음 — 위기 앞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과 성공 뒤에도 그분을 기억하는 것
역대하 32장은 예상과 정반대되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이런 일들과 신실한 행실이 있은 뒤에 아시리아 왕 산헤립이 쳐들어왔다. 그는 유다로 들어와 요새 성읍들을 향해 진을 치고, 그곳들을 뚫고 들어가 자기 것으로 만들려 했다.역대하 32:1 · 본디새김
히스기야는 여호와야훼의 성전을 회복하고, 무너졌던 예배의 질서를 바로잡았으며, 하나님을 찾는 일을 온 마음으로 수행했습니다. 앞 장의 마지막은 그가 성공을 거두었다고 평가합니다(31:21).
그런데 바로 그다음에 아시리아 군대가 쳐들어옵니다.
역대기 저자는 이 사건을 히스기야가 신실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어난 불행으로 변명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그의 신실함에 대한 하나님의 벌이라고 설명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독자가 두 사실을 나란히 보도록 합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행했고, 그 뒤에 강대한 제국의 침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신실하게 찾는 삶과 심각한 위기를 겪는 삶은 서로 모순되지 않습니다.
이 장은 두 종류의 위기를 나란히 보여 줍니다. 하나는 밖에서 찾아오는 위협이고, 다른 하나는 안에서 자라나는 교만입니다.
첫 번째 위기에서는 누가 예루살렘을 구할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됩니다. 두 번째 위기에서는 구원받은 사람이 자신이 받은 은혜에 어떻게 응답하는지가 쟁점이 됩니다.
성벽을 보수하는 왕과 하나님을 신뢰하는 왕
산헤립의 침공은 단순히 국경에서 일어난 작은 충돌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아시리아는 고대 근동에서 강력한 군사력을 행사하던 제국이었고, 산헤립의 유다 침공은 일반적으로 기원전 701년의 군사 원정과 연결됩니다. 산헤립이 남긴 아시리아 왕실 기록은 자신이 히스기야의 요새화된 성읍 46곳을 점령했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히스기야를 예루살렘에 가두어 놓은 새에 비유합니다.
이 기록은 아시리아 측의 승전 기록이므로 그 주장들을 그대로 객관적인 전황 보고로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유다가 실제로 거대한 군사적 압박을 받았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중요한 동시대 자료입니다. 더욱이 아시리아 왕궁에 남겨진 라기스 전투 부조에는 성벽을 공격하는 병사들과 포로로 끌려가는 유다 사람들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역대하 32:9에 등장하는 라기스는 실제 전쟁의 참혹함을 보여 주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믿음은 준비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2–5절에서 히스기야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기도가 아닙니다.
그는 고관들과 용사들을 불러 대책을 의논합니다. 성읍 밖의 샘과 시내를 막고, 무너진 성벽을 다시 쌓으며, 바깥에 또 다른 성벽을 세웁니다. 다윗성의 밀로를 보강하고 무기와 방패를 준비합니다.
밀로는 예루살렘의 방어와 관련된 구조물로, 사무엘하 5:9와 열왕기상 9:15에서도 언급됩니다. 그 정확한 구조와 범위를 모두 확정하기는 어렵지만, 성읍을 방어하는 데 중요한 시설이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많은 백성이 모여 모든 샘과 그 땅 가운데로 흐르는 시내를 막으며 말했다. 「왜 아시리아 왕들이 와서 물을 넉넉히 얻도록 두겠는가?」역대하 32:4 · 본디새김
고대의 포위전에서는 성벽을 무너뜨리는 일만큼 물과 식량을 확보하는 일이 중요했습니다. 공격군은 장기간 주둔해야 했고, 방어하는 성읍은 외부로 나가기 어려웠습니다.
믿음은 아무런 준비 없이 결과를 기다리는 태도가 아닙니다.
히스기야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성실히 수행하면서도, 그 준비 자체를 자신들의 최종적인 구원자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우리와 함께하는 분’은 누구인가?
6절에서 히스기야는 군 지휘관들을 세우고 성문 광장에 백성을 모읍니다.
「힘을 내고 용기를 내라. 아시리아 왕과 그와 함께 있는 모든 무리 때문에 두려워하거나 낙담하지 마라. 우리와 함께하는 분이 그와 함께하는 것보다 더 강하시기 때문이다.」역대하 32:7 · 본디새김
여기서 ‘힘을 내고 용기를 내라’는 말은 신명기 31:6–8에서 모세가 이스라엘에게, 또 여호수아에게 전했던 격려를 떠올리게 합니다. 여호수아 1:6–9에서도 같은 권면이 반복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하신다는 약속에 근거한 격려였습니다.
「그와 함께하는 것은 살로 된 팔이지만, 우리와 함께하는 분은 우리를 돕고 우리의 싸움을 싸워 주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야훼이시다.」 백성은 유다 왕 히스기야의 말에 의지했다.역대하 32:8 · 본디새김
그는 두 군대가 의지하는 힘의 성격 자체를 비교하고 있습니다. 아시리아 왕이 의지하는 것은 강력하지만 결국 인간의 힘입니다. 유다가 신뢰하는 분은 인간의 힘에 제한되지 않는 하나님입니다.
역대하 16:7–9에서 선견자 하나니는 아사 왕이 여호와야훼를 의지하지 않고 아람 왕을 의지했다고 책망합니다. 히스기야는 반대로 군사적 준비를 하면서도 자신의 궁극적인 의지처를 여호와야훼라고 고백합니다.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느냐와 그 힘을 궁극적으로 신뢰하느냐는 서로 다른 문제입니다.
시편 20:7은 어떤 사람들은 병거와 말을 의지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여호와야훼의 이름을 기억한다고 말합니다. 히스기야가 성문 광장에서 한 말은 이러한 신앙과 통합니다.
이제 전쟁은 성벽을 둘러싼 싸움이면서 동시에 누구의 말을 신뢰할 것인가 하는 싸움으로 전개됩니다.
조금 더 깊이
7절의 원문은 키 임마누 라브(רַב) 메임모입니다. ‘우리와 함께하는 쪽이 그와 함께하는 쪽보다 더 많다’는 뜻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라브는 많음이나 큼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러나 뒤이어 나오는 8절이 그 비교의 의미를 밝힙니다. 히스기야는 아시리아보다 유다의 병사 수가 많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살로 된 팔’에 ‘살’이라는 표현이 결합하면서 인간의 힘이 지닌 한계가 강조됩니다.
산헤립은 왜 하나님을 논쟁의 중심으로 끌어들였는가?
9절부터 이야기의 중심은 군사적 준비에서 말의 대결로 옮겨 갑니다.
산헤립은 라기스를 공격하면서 신하들을 예루살렘으로 보냅니다. 그들은 성벽 안에 갇힌 사람들에게 항복을 종용합니다. 아시리아의 사신들은 히스기야가 전한 신앙적 격려를 정면으로 공격합니다.
같은 현실을 전혀 다르게 설명하는 두 목소리
「아시리아 왕 산헤립이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무엇을 믿고 포위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느냐?」역대하 32:10 · 본디새김
이 질문은 앞서 히스기야가 했던 말을 겨냥합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이 자신들과 함께하신다고 말했습니다. 산헤립은 그 믿음의 근거가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히스기야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야훼가 우리를 아시리아 왕의 손에서 구해 주실 것이다』라고 말하며 너희를 꾀어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죽게 하려는 것이 아니냐?」역대하 32:11 · 본디새김
산헤립은 히스기야의 말을 완전히 무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말을 인용한 뒤 정반대의 의미를 부여합니다. 히스기야가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말하는 것은 백성을 살리는 일이 아니라 죽음으로 몰아가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굶주림과 목마름’이라는 표현은 포위된 성읍의 현실을 정확히 겨냥합니다. 아시리아 군대가 아무리 강해도 성벽 안의 주민들이 당장 눈앞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먹을 것과 마실 것이 부족해질 수 있다는 현실입니다. 사신들은 그 공포를 이용해 히스기야의 말을 거짓말로 보이게 만듭니다.
앞서 히스기야는 성 밖의 물 공급을 통제했습니다. 이제 아시리아는 성안의 주민들에게 목마름을 두려워하라고 말합니다.
물이 실제적인 생존의 문제인 동시에 사람들의 마음을 흔드는 심리적 무기가 된 것입니다.
산헤립의 가장 큰 오해
12절에서 산헤립은 뜻밖의 논리를 펼칩니다.
「바로 그 히스기야가 그 신의 산당들과 제단들을 없애고, 유다와 예루살렘에 『너희는 한 제단 앞에서 엎드려 절하고 그 위에서 제물을 태워야 한다』라고 말하지 않았느냐?」역대하 32:12 · 본디새김
히스기야는 여호와야훼께 대한 올바른 예배를 회복하기 위해 산당들을 제거했습니다. 그러나 산헤립은 그것을 히스기야가 자기 신의 예배 장소들을 파괴한 일로 해석합니다. 그가 보기에 신의 제단을 많이 없앤 왕이 어떻게 그 신의 보호를 기대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고대 근동의 다신교적 환경에서는 여러 지역에 신들의 성소와 제단이 있는 것이 자연스러웠습니다. 그런 관점에서는 제단을 많이 없애는 것이 오히려 신의 힘을 약화하는 행위처럼 보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율법은 달랐습니다.
신명기 12:5–14는 이스라엘이 자기 마음대로 제사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야훼께서 택하신 장소에서 예배해야 한다고 명령합니다. 그러므로 히스기야의 산당 철거는 여호와야훼를 배척한 행동이 아니라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려는 행동이었습니다.
산헤립은 히스기야가 무엇을 제거했는지는 알았지만, 왜 제거했는지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산헤립이 내세운 증거
13–15절에서 산헤립은 자신의 주장을 더욱 확대합니다.
그는 자신과 조상들이 여러 나라를 정복했다는 사실을 제시합니다. 다른 나라의 신들이 자기 백성을 구하지 못했으므로 유다의 하나님도 자기 백성을 구하실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 아시리아는 실제로 여러 민족을 정복한 제국이었고, 유다 주민들에게는 그 위력이 현실적인 공포였습니다.
「그러니 이제 히스기야가 너희를 속이거나 이처럼 꾀도록 두지 마라. 그를 믿지 마라. 어떤 민족, 어떤 왕국의 신도 자기 백성을 내 손과 내 조상들의 손에서 구해 낼 수 없다. 하물며 너희 하나님은 너희를 내 손에서 구해 내지 못할 것이다.」역대하 32:15 · 본디새김
여러 나라의 신들을 거론하던 그의 말은 결국 유다의 하나님 한 분을 향한 공격으로 집중됩니다. 산헤립은 여호와야훼를 다른 나라의 신들과 같은 범주에 넣고 판단합니다. 다른 신들이 실패했으므로 여호와야훼도 실패하실 것이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그들은 땅의 민족들의 신들, 곧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들을 두고 말하듯 예루살렘의 하나님에 대해서도 말했다.역대하 32:19 · 본디새김
산헤립은 하나님을 과소평가한 정도가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잘못된 범주 안에서 판단했습니다. 사람의 손으로 만든 신상과 살아 계신 하나님을 같은 종류의 대상으로 취급한 것입니다.
이 문제는 이사야 44:9–20에서 우상 제작의 모순을 드러내는 내용과 연결됩니다. 사람이 자기 손으로 만든 형상을 다시 신으로 섬기는 모습을 비판하는 대목입니다.
성벽 위의 사람들에게 왜 유다 말로 외쳤을까?
그들은 성벽 위에 있는 예루살렘 백성을 향해 유다 말로 크게 외쳤다. 그들을 두렵게 하고 겁에 질리게 하여 성읍을 점령하려는 것이었다.역대하 32:18 · 본디새김
열왕기하 18:26–28에서는 유다의 관리들이 아시리아 사신에게 아람어로 말해 달라고 요청하지만, 사신은 오히려 성벽 위의 백성에게 들리도록 유다 말로 크게 외칩니다. 왕의 지도력을 약화시키고 주민들의 마음을 흔들어 항복을 유도하려는 심리전입니다.
히스기야는 백성에게 하나님이 함께하시므로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아시리아 사신들은 바로 그 믿음을 버리지 않으면 굶주려 죽을 것이라고 협박합니다.
이제 독자는 두 말 가운데 어느 것이 참된 현실을 보여 주는지 확인하게 됩니다.
왕은 부르짖고, 하나님은 싸우십니다
긴 연설이 끝난 뒤, 역대기 저자는 매우 짧은 문장으로 히스기야의 반응을 전합니다.
히스기야 왕과 아모스의 아들 예언자 이사야는 이 일 때문에 기도하며 하늘을 향해 부르짖었다.역대하 32:20 · 본디새김
산헤립은 계속해서 자신이 얼마나 강한지 설명합니다. 이전에 정복한 나라들을 열거하고, 다른 신들이 자기 손에서 사람들을 구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자신의 업적이나 군사적인 능력을 나열하지 않습니다.
말의 대결은 어디에서 끝나는가?
히스기야는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고, 이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입니다. 서로 다른 책임을 맡은 두 사람이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자리에서 함께합니다.
열왕기하 19:14–19에서는 히스기야가 아시리아 왕에게 받은 편지를 여호와야훼 앞에 펼쳐 놓고 기도하는 모습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열왕기하 19:19에서 히스기야는 다른 나라들도 여호와야훼만이 하나님이심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역대기는 그 기도의 내용을 반복하지 않고, 두 사람이 함께 하늘을 향해 부르짖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여호와야훼가 천사를 보냈고, 그 천사는 아시리아 왕의 진영에 있는 모든 용사와 지도자와 지휘관을 몰살시켰다. 아시리아 왕은 얼굴에 수치를 안고 자기 땅으로 돌아갔다. 그가 자기 신의 집에 들어갔을 때, 그의 친자식 몇이 거기서 그를 칼로 쳐 죽였다.역대하 32:21 · 본디새김
본문은 전투 장면을 길게 묘사하지 않습니다. 아시리아 군대가 어떤 진형으로 공격했고, 유다 군대가 어떻게 대응했는지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전쟁의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셨다는 사실만 전합니다.
자기 신의 집에서 죽은 산헤립
산헤립은 다른 나라의 신들이 자기 백성을 구하지 못했다고 자랑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의 마지막에서 그는 자기 신의 집 안에서도 자신의 목숨을 지키지 못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잔혹한 죽음의 기록이 아닙니다. 앞서 산헤립이 사용했던 논리가 그 자신에게 돌아오는 문학적인 반전입니다.
아시리아 제국은 유다보다 강했습니다. 산헤립은 여러 성읍을 무너뜨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군사적 능력이 자신의 생명과 왕권을 끝까지 지켜 주지는 못했습니다.
구원 이후에 달라진 예루살렘의 모습
여호와야훼는 히스기야와 예루살렘 주민들을 아시리아 왕 산헤립의 손과 모든 자의 손에서 구해 내고, 사방에서 그들을 돌보았다.역대하 32:22 · 본디새김
32:22의 표현에는 본문상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계속 보살피셨다는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주변의 위협에서 벗어나 평안을 누리게 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어느 쪽이든 구원의 주체는 여호와야훼입니다.
앞서 히스기야는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싸움을 싸워 주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역대기 저자는 실제로 그들을 구하신 분이 하나님이라고 밝힙니다.
23절에서는 여러 사람이 여호와야훼께 드릴 예물과 히스기야에게 줄 선물을 예루살렘으로 가져옵니다. 위협받던 예루살렘이 이제 여러 민족의 주목을 받는 장소로 바뀐 것입니다.
그러나 이 장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산헤립의 교만은 패배로 끝났습니다. 그런데 이제 구원받은 히스기야 자신도 교만의 위험 앞에 서게 됩니다.
조금 더 깊이
열왕기하 19:35는 이 사건을 더욱 구체적인 숫자로 묘사하지만, 역대기는 그 숫자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대신 용사와 지도자와 지휘관을 언급합니다. 이는 아시리아 군대의 전투력과 지휘 체계가 무너졌다는 이야기의 의미를 강조합니다. 다만 이 천사의 개입은 성경 본문이 제시하는 사건 설명입니다. 아시리아의 비문과 전쟁 유물은 산헤립의 유다 원정과 예루살렘에 대한 압박을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천사에 의한 군대의 파멸 자체를 독립적으로 확인해 주지는 않습니다. 아시리아 측 기록은 유다의 여러 성읍을 점령하고 히스기야에게 조공을 받았다고 주장하면서도, 예루살렘을 함락했다고 기록하지 않습니다. 반면 열왕기하 18:14–16은 히스기야가 아시리아에 조공을 바친 사실을 전합니다. 역대기 저자는 이 조공 이야기를 생략하고 여호와야훼의 구원에 초점을 맞춥니다. 산헤립의 암살은 기원전 681년의 일로 바빌로니아 연대기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원전 701년의 유다 원정으로부터 약 20년이 지난 뒤입니다. 역대기는 그 긴 시간 간격을 설명하지 않고 산헤립의 최후를 이 이야기의 결말에 배치합니다. 32:22의 히브리어 동사 바예나할렘(נָהַל)은 이끌거나 인도하는 일을 뜻하며, 양 떼를 보살피며 이끄는 장면에도 쓰입니다. 시편 23:2에서는 비슷한 형태의 동사가 목자의 인도와 관련해 등장합니다. 일부 전승과 번역은 자음이 비슷한 다른 동사로 읽어, 하나님께서 사방에서 그들에게 안식을 주셨다는 뜻으로 이해합니다. 본디새김은 전해진 히브리어의 동사 형태를 따라 ‘돌보았다’로 옮겼습니다.
생명을 돌려받은 왕은 왜 교만해졌는가?
24절에서 이야기는 전쟁터를 떠나 히스기야 개인의 삶으로 들어갑니다.
그 무렵 히스기야는 죽을 지경으로 병들어 여호와야훼에게 기도했다. 여호와야훼는 그에게 응답하고 표징을 주었다.역대하 32:24 · 본디새김
앞에서는 예루살렘이라는 성읍이 죽음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이번에는 히스기야 자신이 죽음의 위협을 받습니다. 아시리아 왕을 상대로 싸울 때에는 성벽을 보수하고 군사들을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기 몸에 찾아온 질병 앞에서는 왕의 군사력이나 정치적 권력이 아무런 해결책이 되지 못합니다.
역대기 저자의 관심은 사건들의 상세한 시간표보다는 히스기야가 하나님의 은혜에 어떻게 응답했는가에 있습니다.
받은 은혜와 돌아온 응답의 차이
그러나 히스기야는 자기가 받은 은혜에 걸맞게 보답하지 않았다. 그의 마음이 교만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노가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을 향했다.역대하 32:25 · 본디새김
여기서 ‘보답하지 않았다’는 표현을 하나님께 받은 은혜의 값을 치르지 않았다는 뜻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히브리어 표현은 받은 것에 상응하는 반응을 돌려주지 않았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문제는 은혜를 계산해서 갚을 수 있느냐가 아니라, 받은 은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가느냐입니다.
23절에서는 히스기야가 모든 민족 앞에서 높아졌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부여한 명예였습니다. 그런데 25절에서는 그의 마음이 높아졌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그의 내면에 생긴 문제였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높아지는 것과 마음이 높아지는 것은 서로 다른 일입니다. 그러나 앞의 일이 뒤의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문제는 높아진 지위가 아니라 높아진 마음입니다.
교만한 왕이 자신을 낮추다
26절에서는 다시 반전이 일어납니다.
히스기야는 마음이 교만했던 일로 자신을 낮추었고, 예루살렘 주민들도 그렇게 했다. 그래서 히스기야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여호와야훼의 진노가 그들에게 닥치지 않았다.역대하 32:26 · 본디새김
히스기야는 교만해졌지만 그 상태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마음이 높아졌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자신을 낮추었습니다.
역대기에서 자신을 낮추는 태도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잘못과 한계를 인정하는 일과 깊이 연결됩니다. 역대하 7:14에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자신을 낮추고 기도하며 악한 길에서 돌아서면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역대하 12:6–7에서는 르호보암과 유다 지도자들이 자신을 낮추었을 때 하나님께서 멸망을 막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가 위대한 왕이었던 이유는 한 번도 교만해지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교만해졌을 때 자신을 낮출 줄 알았다는 사실이 그의 마지막 평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히스기야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닥치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진노의 문제가 영원히 사라졌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 표현에는 자비와 함께 아직 끝나지 않은 긴장도 남아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열왕기하 20:1–11과 이사야 38:1–8에는 이 사건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죽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듣고 기도하며, 하나님은 그의 생명을 연장해 주시고 그림자의 움직임과 관련된 표징을 주십니다. 또한 ‘그 무렵’이라는 표현은 정확한 발생 순서를 확정하지 않습니다. 열왕기하 20:6에서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병을 고쳐 주시겠다는 약속과 함께 그와 예루살렘을 아시리아 왕의 손에서 구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질병 사건이 반드시 아시리아의 위협이 완전히 끝난 뒤에 발생했다고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모든 일에 성공한 왕을 하나님이 시험하시다
27절부터는 히스기야의 재산과 업적이 길게 열거됩니다.
은과 금, 보석과 향료, 방패와 귀중한 물건들을 보관할 창고가 마련됩니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저장하는 창고도 있었고, 가축을 위한 축사와 많은 가축 떼도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위해 성읍들까지 세웁니다.
풍성한 재산은 축복인가, 위험인가?
그는 자기를 위해 성읍들을 세우고 양과 염소와 소 떼를 많이 마련했다. 하나님이 그에게 매우 많은 재산을 주었기 때문이다.역대하 32:29 · 본디새김
그런데 바로 앞에서는 그가 교만해졌다고 기록했고, 이어지는 31절에서는 하나님께서 그를 시험하셨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이 부분의 핵심은 재산 자체가 선한지 악한지 판단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좋은 것을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있습니다.
신명기 8:11–18에서 모세는 이스라엘이 좋은 땅에 들어가 배불리 먹고, 집을 짓고, 가축과 재물이 많아질 때 하나님을 잊을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특히 신명기 8:17–18은 자신의 능력으로 재산을 얻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재산을 얻을 능력을 주신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가르칩니다.
잠언 30:8–9에서 화자는 가난하게 되거나 부유하게 되는 양극단을 경계하며, 배부른 뒤 하나님을 부인하게 될 위험을 언급합니다. 히스기야가 겪었던 일과 주제적으로 연결되는 대목입니다.
그러나 풍성함은 자동으로 감사와 겸손을 만들어 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 자신의 위대함을 확인하는 근거로 변할 위험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은 좋은 것이지만, 그 선물을 받은 사람의 마음이 언제나 올바른 것은 아닙니다.
성벽 밖의 물을 성안으로 끌어들이다
30절은 히스기야의 중요한 업적 하나를 따로 소개합니다.
기혼 물의 위쪽 출구를 막고 그 물을 아래쪽으로, 서쪽을 향해 다윗성으로 곧게 흘려보낸 이도 바로 히스기야였다. 히스기야는 자기가 하는 모든 일에서 성공을 거두었다.역대하 32:30 · 본디새김
예루살렘의 기혼 샘은 고대 도시의 중요한 수원이었습니다. 그러나 샘이 성읍의 방어 체계 밖에 노출되어 있다면 적군이 접근하거나 물 공급을 차단할 수 있는 위험이 있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물길을 내부로 연결하는 공사는 예루살렘 방어에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고대 예루살렘에서 발견된 실로암 터널과 그 안의 비문은 이러한 수로 공사의 실제적인 모습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실로암 비문은 터널의 양쪽에서 작업하던 사람들이 서로의 소리를 듣고 마침내 암벽을 뚫어 만났으며, 물이 수원에서 저수지까지 흘러갔다고 기록합니다. 비문에는 물길의 길이가 1,200규빗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 비문은 역대하 32:30에서 묘사하는 종류의 수로 공사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보여 주는 중요한 고대 자료입니다. 다만 오늘날 ‘히스기야 터널’이라고 부르는 수로의 정확한 건설 시기에 관해서는 논의가 있으므로, 비문 자체가 히스기야의 이름이나 산헤립의 침공을 직접 언급한다고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이 수로는 히스기야의 실질적인 통치 능력을 보여 줍니다. 그는 단순히 기도만 하는 왕이 아니었습니다. 위기에 대비하고, 사람들을 조직하며, 기술적인 공사를 수행할 수 있는 지도자였습니다.
그러나 바로 다음 절이 그런 인상을 뒤집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내버려 두셨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또 바벨론의 고관들이 그 땅에서 일어난 표징을 알아보려고 그에게 보낸 사절들을 대할 때, 하나님은 그를 내버려 두었다. 그를 시험하여 그의 마음속에 있는 모든 것을 알기 위해서였다.역대하 32:31 · 본디새김
히스기야는 8절에서 하나님께서 자신들과 함께하시며 싸움을 도와주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31절에서는 하나님이 그를 홀로 두시고 시험하셨다고 기록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와의 관계를 영원히 끊으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본문이 설명하는 목적은 분명히 ‘시험’입니다.
여기서 ‘안다’는 말은 하나님이 필요한 정보를 모르셨다가 뒤늦게 알아내셨다는 뜻으로만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성경에서 시험은 사람이 자신의 마음속에 무엇을 품고 있는지를 실제 행동으로 드러내는 과정과 연결됩니다. 신명기 8:2에서도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시험하신 목적이 그들의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기 위한 것이었다고 기록합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은 부족함을 경험하면서 시험받았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풍성함과 성공을 누리는 자리에서 시험받습니다.
바벨론 사절단은 무엇을 보았는가?
31절에서는 사절들이 ‘그 땅에서 일어난 표징’을 알아보려고 왔다고 기록합니다.
이 표징이 24절에서 히스기야에게 주어진 표징을 가리킨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문맥상 자연스러운 연결이지만, 역대기 자체는 두 표현의 관계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으므로 완전히 확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열왕기하 20:12–19와 이사야 39:1–8에는 바벨론 사절단이 찾아온 사건이 더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기록에 따르면 바벨론의 왕은 히스기야가 병들었다가 회복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사람들을 보냈습니다. 히스기야는 그들에게 자신의 보물 창고와 무기고, 나라의 재산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이사야는 장차 그 모든 재물이 바벨론으로 옮겨지고 히스기야의 후손 가운데 일부도 끌려가게 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역대하 32장은 이 장면을 길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 사건이 히스기야의 마음을 시험하는 기회였다고 해석합니다.
그는 다른 민족의 사절들에게 보여 줄 것이 많았습니다. 창고에는 귀중한 물건들이 있었고, 성읍에는 방어 시설이 갖추어져 있었으며, 나라에는 풍성한 재산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역대기 저자가 관심을 두는 것은 그 모든 물건 뒤에 있는 히스기야의 마음입니다.
본문은 그의 마음에서 일어난 모든 생각을 상세하게 알려 주지 않습니다. 다만 25절에서 교만을 지적하고, 31절에서 바벨론 사절단을 맞이하는 일이 마음을 드러내는 시험이었다고 설명합니다. 이 두 구절을 함께 읽으면, 히스기야의 문제가 단순히 외교적으로 경솔한 행동을 했다는 데에만 있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많은 것을 받은 사람이 그 선물 앞에서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지키느냐가 시험의 핵심이었습니다.
히스기야는 어떤 왕으로 기억되는가?
32절에서 역대기 저자는 히스기야의 남은 행적과 선한 일들이 이사야의 환상에 기록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히스기야는 자기 조상들과 함께 잠들었다. 사람들은 그를 다윗 자손들의 무덤으로 올라가는 곳에 묻었다. 그가 죽었을 때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이 그에게 경의를 표했다. 그의 아들 므낫세가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역대하 32:33 · 본디새김
본문은 그의 교만을 언급했다고 해서 앞서 행한 신실한 일들을 모두 부정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백성에게 존경받았다는 사실 때문에 그의 교만을 감추지도 않습니다.
히스기야의 이야기는 끝났지만, 그가 섬겼던 하나님 앞에서 유다 왕국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이사야의 환상’과 ‘유다와 이스라엘 왕들의 책’의 관계는 문법적으로 다르게 이해할 여지가 있습니다. 하나의 기록 안에 이사야의 환상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뜻일 수도 있고, 서로 관련된 기록들을 함께 가리킨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본문의 표현만으로 그 기록물의 정확한 형태와 범위를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우리가 세우는 성벽과 우리가 지켜야 할 마음
역대하 32장은 성벽을 튼튼히 세운 왕의 이야기이면서, 하나님 앞에서 자기 마음을 낮추어야 했던 왕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아시리아 군대 앞에서 하나님을 신뢰했고, 풍성함 가운데 교만해졌으며, 다시 자신을 낮추었습니다.
히스기야가 죽자 백성은 그에게 경의를 표했고, 그를 다윗 자손들의 무덤으로 올라가는 곳에 장사했습니다. 그곳에 묻힌 왕은 강대한 제국 앞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뒤 교만해졌다가 다시 자신을 낮춘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역대기 저자는 어느 한쪽도 지우지 않습니다.
그렇게 히스기야의 이야기는 한 왕의 영광을 과장하지도, 그의 실패만을 기억하지도 않은 채 끝납니다. 그가 의지했던 여호와야훼의 구원과, 그분 앞에서 끝까지 살펴야 했던 인간의 마음을 함께 남겨 놓으면서 말입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