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풀어 읽기 · 33장
이 장의 자리 · 33–35장 · 므낫세와 요시야
하나님께서 끝내 들으신 기도
하나님께서 끝내 들으신 기도 — 므낫세의 악행과 회복, 그리고 되돌릴 수 없는 흔적
역대하 33장은 독자를 불편하게 만드는 이야기입니다.
유다의 왕 므낫세는 하나님께서 금하신 일을 거의 빠짐없이 행합니다. 우상을 만들고, 성전 안에 다른 신들의 제단을 세우며, 자기 아들들을 불 속으로 지나가게 합니다. 점술과 마술을 행하고, 온 유다를 잘못된 길로 이끕니다.
그런데 이야기 중간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이 왕이 고난 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심지어 포로로 끌려간 그를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시고 왕위까지 되찾게 하십니다.
그토록 심각한 악을 저지른 사람이 곤경에 빠졌다는 이유로 기도하면, 하나님은 정말 그의 기도를 들어주시는가요? 그렇다면 그가 저지른 악과 그 악으로 상처 입은 사람들의 삶은 어떻게 되는가요?
역대하 33장은 이 두 질문에 성급하게 하나의 답을 내리지 않습니다. 므낫세가 실제로 돌아섰다는 사실을 기록하면서도, 그의 개혁이 완전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다음 왕에게 이어진 악행을 함께 보여 줍니다.
므낫세의 삶은 그가 자신을 낮추기 전과 후로 나뉩니다. 아몬의 삶은 그가 자신을 낮추지 않았다는 사실로 평가됩니다.
왕의 권력이나 통치 기간보다 하나님 앞에서 어떤 마음을 품었는지가 두 왕의 이야기를 가르는 결정적인 기준으로 등장합니다.
아버지가 허문 것을 아들이 다시 세우다
므낫세는 열두 살에 왕이 되어 쉰다섯 해 동안 유다를 다스렸습니다.
이는 역대기에 기록된 유다 왕들의 통치 기간 가운데 가장 긴 기간입니다. 그런데 그 오랜 통치의 첫 번째 평가는 다음과 같습니다.
그는 여호와야훼가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쫓아낸 민족들의 역겨운 행위를 따라, 여호와야훼의 눈에 악한 일을 했다.역대하 33:2 · 본디새김
역대기는 왕의 위대함을 오래 왕위에 머물렀는가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그가 어떤 길로 백성을 이끌었는지가 중요합니다.
히스기야의 개혁을 거꾸로 돌린 왕
그는 자기 아버지 히스기야가 허물었던 산당들을 다시 세웠다. 바알들을 위해 제단들을 세우고 아세라상들을 만들었으며, 하늘의 모든 군대에게 엎드려 절하고 그들을 섬겼다.역대하 33:3 · 본디새김
히스기야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제거했던 것들을 아들이 되살린 것입니다. 아버지가 잘못된 예배를 없애는 데 힘썼다면, 아들은 그 잘못된 예배가 돌아오도록 했습니다.
뒤이어 열거되는 그의 행위들은 점점 더 심각해집니다.
처음에는 산당을 다시 세우고 바알들을 위한 제단과 아세라상들을 만듭니다. 다음에는 하늘의 모든 군대에게 엎드려 절합니다. 이어 예루살렘 성전 안에 다른 신들을 위한 제단을 세우고, 마침내 하나님의 집 안에 직접 만든 신상을 가져다 놓습니다.
우상숭배가 지방의 산당에서 시작해 예루살렘의 중심으로, 그리고 성전 깊숙한 곳으로 들어오는 모습입니다.
왜 성전 안에 제단을 세운 일이 특별히 심각한가?
그는 여호와야훼의 집에도 제단들을 세웠다. 여호와야훼가 이 집에 관해 「내 이름이 예루살렘에 영원히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었다.역대하 33:4 · 본디새김
저자는 그 장소가 누구의 이름을 위해 선택되었는지 상기시킴으로써, 므낫세의 행동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드러냅니다. 5절에서는 그 장소가 ‘여호와야훼의 집 두 뜰’로 더욱 구체화됩니다.
므낫세는 성전 바깥에서 다른 신들을 섬기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야훼께 예배하도록 구별된 공간 안에 다른 신들을 들여놓았습니다.
그는 자기가 깎아 만든 신상을 하나님의 집에 두었다. 하나님은 이 집에 관해 다윗과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말했었다. 「이 집과, 내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서 선택한 예루살렘에 내 이름을 영원히 두겠다.」역대하 33:7 · 본디새김
4절과 7절에는 같은 대조가 반복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그곳에 두시겠다고 하셨고, 므낫세는 자신이 만든 신상을 그곳에 두었습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신 장소를 왕이 자기 종교적 의지에 따라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원한 약속과 순종의 조건
하나님은 예루살렘에 자신의 이름을 영원히 두시겠다고 말씀하신 뒤 이렇게 덧붙이십니다.
「내가 모세를 통해 그들에게 명령한 모든 것, 곧 모든 율법과 규정과 법도를 그들이 지켜 행하기만 한다면, 이스라엘의 발을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마련해 준 땅에서 다시는 떼어 놓지 않겠다.」역대하 33:8 · 본디새김
하나님의 이름을 두시겠다는 약속과, 이스라엘이 그 땅에서 계속 살아가는 문제는 밀접하게 연결되지만 완전히 같은 진술은 아닙니다. 8절에서 그 땅에 계속 머무는 약속에는 분명히 율법에 대한 순종이 요구됩니다.
므낫세는 바로 그 율법을 정면으로 어기고 있습니다.
이것은 신명기 28–30장에서 반복되는 언약의 구조와 연결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땅은 선물이지만, 그 땅에서 누리는 삶을 하나님의 말씀과 무관하게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성전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백성의 불순종을 정당화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기념하는 장소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행위가 이루어지고 있다면, 그것은 성전의 존재 이유 자체를 훼손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거스르면서도 자신은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태도는 용납되지 않습니다.
벤힌놈 골짜기에서 벌어진 일
그는 벤힌놈 골짜기에서 자기 아들들을 불 속으로 지나가게 했다. 점을 치고 징조를 살피고 마술을 부렸으며, 초혼술과 영매술을 행했다. 그는 여호와야훼의 눈에 악한 일을 많이 하여 그를 노하게 했다.역대하 33:6 · 본디새김
여기서 므낫세의 우상숭배는 더 이상 성전 제도의 문제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의 자녀들까지 그릇된 종교 행위에 동원되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점술과 마술, 초혼술과 영매술 역시 신명기 18:9–14에서 금지된 행위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뜻을 따라야 할 왕이 다른 수단을 통해 자신의 운명과 미래를 통제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므낫세는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을 잘못된 길로 이끌어, 여호와야훼가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멸망시킨 민족들보다 더 악한 일을 하게 했다.역대하 33:9 · 본디새김
‘더 악한 일을 하게 했다’는 말은 단순히 개인의 잘못을 비교하는 통계적인 진술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그 땅에서 쫓아냈던 민족들의 행위를 이제 이스라엘 자신이 따라 하고 있다는 신학적 고발입니다.
므낫세는 혼자 악을 행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권력과 영향력을 통해 다른 사람들까지 그릇된 길로 이끌었습니다.
한 사람의 죄가 그 사람에게서 끝나지 않고 공동체의 삶에 뿌리내릴 수 있다는 사실이 므낫세의 통치에서 드러납니다.
조금 더 깊이
벤힌놈 골짜기는 예루살렘 남쪽에 있는 골짜기입니다. 열왕기하 23:10과 예레미야 7:31–32에서는 이 지역이 자녀들을 불로 바치는 제의와 관련된 장소로 등장합니다. 특히 예레미야는 이러한 행위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적도 없고 원하신 일도 아니라고 강하게 비판합니다. 역대하 33:6의 표현 자체는 아들들이 불 속을 지나가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 구절만으로 구체적인 의식의 절차나 모든 아들의 최종적인 운명까지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관련된 율법과 예언서의 증언을 보면, 이것은 단순히 무해한 불 통과 의식으로 가볍게 볼 행위가 아닙니다. 자녀를 불에 바치는 관습과 연결된 중대한 금지 행위입니다(레위기 18:21; 신명기 18:10; 예레미야 32:35).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던 왕이 하나님께 부르짖다
9절까지 므낫세는 끊임없이 행동하는 왕이었습니다.
산당을 세우고, 제단을 만들고, 신상을 성전에 두고, 백성을 잘못된 길로 이끕니다. 그러나 10절에서는 지금까지와 다른 주체가 등장합니다.
여호와야훼는 므낫세와 그의 백성에게 말했지만, 그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역대하 33:10 · 본디새김
무엇을 말씀하셨는지는 여기서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지만, 18절에는 여호와야훼의 이름으로 므낫세에게 말한 선견자들이 등장합니다. 따라서 10절의 말씀은 예언자들을 통한 경고와 관련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제 그들이 무시했던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 속에서 현실이 됩니다.
왕을 끌고 간 사람들은 누구였는가?
그래서 여호와야훼는 아시리아 왕에게 속한 군 지휘관들이 그들을 치러 오게 했다. 그들은 갈고리로 므낫세를 사로잡고 청동 족쇄로 묶어 바벨론으로 끌고 갔다.역대하 33:11 · 본디새김
자기 백성을 잘못된 길로 이끌던 사람이 이제는 자신의 발걸음조차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갈고리와 청동 족쇄
왕은 자신이 세운 성벽이나 군대의 보호를 받는 사람이 아니라 결박당한 포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율법을 지켜 행한다면 조상들에게 주신 땅에서 그들의 발을 다시는 떼어 놓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므낫세는 바로 그 말씀을 거스르다가 자기 땅에서 끌려갑니다.
33장은 이 사건을 단순한 정치적 불운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 아래 일어난 일로 묘사합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던 왕이 하나님께 매달리다
므낫세는 곤경에 빠지자 자기 하나님 여호와야훼에게 호의를 간청하고, 자기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크게 낮추었다.역대하 33:12 · 본디새김
앞에서는 므낫세가 여러 신들을 섬겼습니다. 바알과 아세라상, 하늘의 군대, 사람이 깎아 만든 신상들을 예배했습니다.
그러나 곤경에 빠졌을 때 그는 자기 조상들의 하나님께 돌아옵니다.
그동안 므낫세가 살아온 방식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세우고,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예배하며, 백성에게 자신의 길을 따르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포로가 된 그는 자신에게 아무런 권리가 없다는 사실을 경험합니다.
그는 하나님께 명령하지 않고 간청합니다.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지 않고 자신을 낮춥니다.
가장 놀라운 반전은 하나님이 들으셨다는 사실이다
그가 하나님에게 기도하자, 하나님은 그의 간구를 받아들이고 그의 애원을 들었다. 하나님은 그를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여 왕위를 되찾게 했다. 그제야 므낫세는 여호와야훼가 하나님임을 알았다.역대하 33:13 · 본디새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그 사람이 자신을 낮추고 드린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가 왕위를 되찾았다는 사실을 모든 회개한 사람이 이전의 지위와 재산을 반드시 되찾는다는 일반적인 약속으로 바꾸어서도 안 됩니다. 역대기는 여기서 특정한 왕에게 일어난 특별한 회복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 사건이 보여 주는 것은 하나님께서 극단적인 죄를 범한 사람의 간구에도 응답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제야 므낫세는 여호와야훼가 하나님임을 알았다’
므낫세가 그전까지 여호와야훼라는 이름을 몰랐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는 히스기야의 아들이었고, 예루살렘의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름을 아는 것과 그분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은 같지 않습니다.
므낫세는 오랫동안 여호와야훼의 집에 다른 신들의 제단을 세웠습니다. 그의 행동은 여호와야훼를 자기 뜻대로 다룰 수 있는 존재처럼 취급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포로가 된 그는 아무런 힘도 없는 자리에서 여호와야훼께 부르짖었고, 하나님은 그를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그제야 므낫세는 자신이 누구 앞에 서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에스겔 18:21–23에서는 악인이 자신이 행한 죄에서 돌아서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고 올바른 일을 행한다면 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가 자신의 길에서 돌이켜 사는 것을 기뻐하신다고 밝히십니다.
므낫세의 이야기는 이 말씀과 깊이 연결됩니다. 그는 심각한 악을 저질렀지만, 그 악이 하나님께 돌아올 가능성을 처음부터 완전히 차단하지는 않았습니다.
조금 더 깊이
므낫세가 통치하던 기원전 7세기에 바벨론은 아시리아 제국의 지배와 깊이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아시리아 왕 에살핫돈은 바벨론도 다스렸으며, 뒤이어 바벨론에는 아시리아 왕가의 일원이 왕으로 세워졌습니다. 따라서 아시리아 왕의 군 지휘관들이 유다 왕을 바벨론으로 데려갔다는 이야기는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양립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에살핫돈의 왕실 비문에는 ‘유다의 왕 므낫세’가 아시리아에 종속된 여러 왕 가운데 하나로 등장합니다. 다만 아시리아 비문이 역대하 33:11의 체포와 바벨론 압송, 이후의 석방까지 확인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이 사건의 정확한 시기와 경위는 독립적인 고대 기록으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히브리어 바호힘(חוֹחַ)은 갈고리나 가시와 관련하여 해석될 수 있는 표현입니다. 고대 아시리아의 포로 행렬을 묘사한 부조에는 포로를 고리나 줄로 통제하는 장면들이 나타나므로, 이 문맥에서 갈고리로 이해하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원문은 그 갈고리가 므낫세의 코에 걸렸는지, 다른 신체 부위에 걸렸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돌아온 므낫세가 가장 먼저 바꾼 것들
14절부터는 므낫세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뒤 무엇을 했는지를 기록합니다.
먼저 성벽을 세우다
14절에서 므낫세는 다윗성의 바깥 성벽을 쌓고, 오벨을 둘러 성벽을 높이며, 유다의 요새 성읍에 군 지휘관들을 배치합니다.
기혼은 예루살렘의 중요한 수원이고, 오벨은 성전 산지와 다윗성 사이의 지형과 연결되는 지역입니다. 물고기 문은 예루살렘의 성문 가운데 하나로, 느헤미야 3:3과 12:39에도 등장합니다.
포로가 되어 끌려갔던 왕이 이제 나라의 방어를 정비합니다. 하지만 역대기 저자의 관심은 군사적인 공사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이어서 므낫세는 자신의 과거와 정면으로 반대되는 행동을 합니다.
자신이 세운 것을 자신이 없애다
그는 여호와야훼의 집에서 외국 신들과 그 신상을 치우고, 또 여호와야훼의 집이 있는 산과 예루살렘에 자기가 세운 모든 제단을 없애고, 그것들을 모두 성읍 밖으로 내던졌다.역대하 33:15 · 본디새김
3–7절에서는 그가 우상의 제단과 신상을 세웠습니다. 15절에서는 그가 그것들을 없앱니다.
본문의 앞부분과 뒷부분이 의도적으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회개는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므낫세의 이야기에서는 그 변화가 외적인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이전에는 옳다고 여기며 만들었던 것을 이제는 잘못된 것으로 인정하고 제거합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은 이전의 잘못을 인정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그 잘못으로 만들어 놓은 것을 가능한 범위에서 바로잡는 일로 이어집니다.
제단을 회복하고 감사의 제물을 드리다
그는 여호와야훼의 제단을 쌓고, 그 위에서 화목 제물과 감사 제물을 바쳤다. 또 유다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섬기라고 명령했다.역대하 33:16 · 본디새김
화목 제물은 하나님과의 관계 및 공동체의 교제와 관련된 제사이고, 감사 제물은 하나님께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와 연결됩니다(레위기 3장; 7:11–15). 그는 자신이 돌아올 수 있었던 일을 하나님 앞에서 기억하는 예배를 드립니다.
9절에서 그는 유다를 잘못된 길로 이끌었습니다. 16절에서는 그들에게 여호와야훼를 섬기라고 명령합니다.
같은 왕이지만 이제 공동체를 이끌려는 방향이 달라졌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므낫세가 달라졌는데 왜 백성은 산당에 남아 있었는가?
그러나 백성은 여전히 산당들에서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야훼에게만 제사를 지냈다.역대하 33:17 · 본디새김
따라서 이 구절을 백성이 전혀 변화하지 않았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예배의 대상에는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배의 장소와 방식에서는 여전히 문제가 남았습니다.
신명기 12:11–14는 여호와야훼께서 택하신 곳에서 제사를 드리도록 요구합니다. 역대기의 관점에서 예루살렘 성전이 바로 그 중심입니다.
올바른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과 그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식에 따라 예배하는 것은 구별될 수 있습니다.
므낫세의 개혁은 분명한 변화를 가져왔지만, 완전한 회복까지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왕이 방향을 바꾼다고 해서 백성의 오랜 습관과 삶의 질서가 즉시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므낫세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러나 그가 저지른 일의 결과까지 단번에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제단을 쌓고’에 해당하는 표현에는 두 가지 히브리어 전승이 있습니다. 하나는 바이벤, 곧 ‘그가 세웠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바야켄, 곧 ‘그가 준비하거나 바로 세웠다’는 뜻입니다. 어느 표현을 따르든 이 장면의 중심 의미는 같습니다. 므낫세는 여호와야훼의 제단을 예배할 수 있는 상태로 회복하고, 그 위에서 하나님께 제물을 바쳤습니다.
므낫세의 회개와 유다의 심판은 모순되는가?
18–19절은 므낫세의 나머지 행적과 기도, 그리고 선견자들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고 알려 줍니다.
19절은 므낫세의 기도와 그 기도가 받아들여진 사실을 언급하면서, 동시에 그의 모든 죄와 신의를 저버린 행위, 우상을 세웠던 장소들까지 함께 기록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본문은 므낫세가 하나님께 돌아왔다는 사실을 기록하면서도 그의 과거를 감추지 않습니다.
그의 기도와 그의 죄악이 나란히 기억됩니다.
므낫세의 기도는 어떤 내용이었을까?
역대하 33장은 므낫세가 기도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하지만, 그 기도의 구체적인 내용은 전하지 않습니다.
18절은 이스라엘 왕들의 기록을, 19절은 ‘호새의 기록’을 언급합니다. 19절의 호자이는 사람의 이름 ‘호새’로 읽을 수도 있고, 선견자들을 가리키는 표현과 연결하여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고대 번역 전승에서도 인명과 선견자들을 가리키는 말 사이에 차이가 나타납니다.
어느 쪽이든 이 구절이 언급하는 원래 기록의 정확한 범위와 내용은 오늘날 확인할 수 없습니다. 또한 후대에 전해지는 므낫세의 기도라는 문헌이 있지만, 그것이 역대하 33:12–13에서 실제 므낫세가 드렸던 기도를 그대로 보존했다고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이 강조하는 것은 기도의 문장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낮아진 사람의 태도와, 그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의 행동입니다.
열왕기는 왜 므낫세의 회개를 말하지 않는가?
열왕기하 21장은 므낫세를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합니다. 특히 21:16은 그가 무고한 피를 많이 흘려 예루살렘을 가득 채웠다고 기록합니다.
이어서 열왕기하 23:26과 24:3–4는 므낫세의 죄가 유다의 멸망과 연결된다고 말합니다. 예레미야 15:4에서도 므낫세가 예루살렘에서 저지른 일 때문에 유다가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그런데 역대기는 므낫세가 자신을 낮추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셨다고 말합니다.
열왕기하 21장은 므낫세의 포로 생활이나 회개를 기록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역대하 33장은 그의 무고한 피 흘림을 열왕기하처럼 직접 언급하지 않으며, 회복의 사건을 길게 다룹니다.
이 차이가 왜 생겼는지, 각각의 저자가 어떤 자료를 이용했는지를 모든 부분에서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두 책이 전하려는 신학적인 관심은 본문의 내용에서 어느 정도 구별할 수 있습니다.
열왕기는 므낫세의 죄가 유다 왕국 전체의 운명에 남긴 결과를 강조합니다.
역대기는 그토록 악한 왕이라도 하나님께 자신을 낮추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 주셨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이 둘을 함께 읽으면 개인이 하나님 앞에서 돌이키는 문제와 공동체가 오랜 시간 쌓아 온 악의 결과를 구분할 필요가 생깁니다. 므낫세가 하나님께 돌아왔다는 사실은 그에게 실제로 일어난 변화입니다. 하지만 그의 통치 기간에 벌어진 죄악, 그가 백성에게 미친 영향, 무고하게 희생된 사람들의 죽음까지 없었던 일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회복을 경험했다는 사실과, 그의 통치가 유다 역사에 심각한 결과를 남겼다는 사실은 반드시 어느 하나만 참이어야 하는 명제는 아닙니다.
물론 성경은 이 모든 문제를 하나의 체계적인 이론으로 정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므낫세 개인의 죄가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용서되었으며, 공동체의 책임이 어떤 방식으로 남았는지까지 세부적으로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비가 실제라고 해서 악의 결과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악의 결과가 심각하다고 해서 하나님께 돌아올 가능성이 처음부터 닫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 긴장이 므낫세의 이야기를 값싼 회개의 이야기로 만들지 않도록 합니다.
한 왕의 귀환과 유다의 역사
므낫세가 바벨론으로 끌려갔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에는 역대기 전체의 흐름과 연결되는 측면도 있습니다.
역대하 33:8에서 하나님은 순종하는 이스라엘이 그 땅에서 쫓겨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므낫세는 불순종하다가 그 땅에서 끌려갑니다. 그 후 하나님께 돌아서자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이것은 이후 유다 백성이 겪게 될 포로 생활과 귀환을 떠올리게 하는 작은 이야기처럼 읽을 수 있습니다. 역대하 36장은 유다가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일을 기록하고, 마지막에는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귀환 명령을 전합니다(36:17–23).
따라서 므낫세의 이야기는 역대기 전체에서 포로 생활과 귀환이라는 큰 주제를 미리 보여 주는 문학적인 대응 관계를 이룹니다.
아버지의 악을 물려받고 회개는 거절한 아들
므낫세가 죽고 그의 아들 아몬이 왕위에 오릅니다.
아몬은 스물두 살에 왕이 되어 두 해 동안 다스렸습니다. 아버지의 쉰다섯 해와 비교하면 매우 짧은 통치입니다.
그런데 역대기 저자는 아몬에 관해 많은 내용을 기록하지 않습니다. 그가 어떤 정책을 펼쳤는지, 어떤 군사적인 일을 했는지는 거의 알려 주지 않습니다. 대신 그가 아버지에게서 무엇을 따랐고 무엇을 따르지 않았는지를 집중적으로 설명합니다.
아몬이 본받은 것은 아버지의 어느 모습이었는가?
그는 자기 아버지 므낫세가 했던 것처럼 여호와야훼의 눈에 악한 일을 했다. 아몬은 자기 아버지 므낫세가 만든 모든 우상에게 제사를 지내고 그것들을 섬겼다.역대하 33:22 · 본디새김
본문은 므낫세가 제거했던 우상들이 그대로 다시 돌아왔는지, 다른 곳에 남아 있었던 것인지, 같은 종류의 숭배가 재개된 것인지 상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몬이 아버지의 통치에서 어떤 모습을 계승했느냐입니다.
므낫세의 삶에는 두 모습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우상을 만들고 백성을 잘못된 길로 이끌었던 모습입니다. 다른 하나는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께 돌아와 우상을 제거했던 모습입니다.
아몬은 전자를 따릅니다.
그는 자기 아버지 므낫세가 자신을 낮춘 것처럼 여호와야훼 앞에서 자신을 낮추지 않았다. 오히려 아몬은 죄를 더욱 많이 지었다.역대하 33:23 · 본디새김
두 왕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차이는 누가 더 큰 죄를 저질렀는가가 아니라, 누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었는가입니다.
저자는 아몬이 아버지의 악행을 따르면서도 아버지에게 나타났던 변화의 길은 거절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그는 죄에서 돌아서는 대신 그 죄를 계속 쌓았습니다.
왕을 죽인 사람들과 새로운 왕을 세운 사람들
24절에서 아몬의 통치는 갑자기 끝납니다.
므낫세는 오랫동안 왕위에 머물렀지만, 아몬은 신하들의 음모로 목숨을 잃습니다. 이 사건은 열왕기하 21:23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의 마지막은 암살 자체가 아닙니다.
그 땅의 백성은 아몬 왕을 거슬러 음모를 꾸민 자들을 모두 쳐 죽였다. 그 땅의 백성은 아몬의 아들 요시야를 그의 뒤를 이을 왕으로 세웠다.역대하 33:25 · 본디새김
왕이 살해되고 정권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다윗 왕조의 계승이 계속됩니다.
히스기야처럼 신실한 왕에게서 므낫세처럼 악한 왕이 나왔습니다.
므낫세처럼 악을 행하다가 돌이킨 왕에게서 아몬처럼 돌이키지 않는 왕이 나왔습니다.
이 관계는 부모의 신앙이나 죄악이 자녀의 선택을 자동으로 결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왕위를 물려받는 것과 하나님을 찾는 마음을 물려받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입니다.
조금 더 깊이
그러나 역대기 저자는 아몬이 어떤 구체적인 정치적 갈등 때문에 살해되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의 암살을 특정한 종교개혁 세력의 행동이었다고 단정하거나, 하나님께서 암살자들에게 직접 명령하셨다고 해석할 근거는 없습니다. ‘그 땅의 백성’은 유다 왕국의 정치적 사건에서 집단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이들이 사회적으로 정확히 어떤 계층에 속했는지는 이 구절만으로 모두 알 수 없습니다.
결론 — 성전 밖으로 내던져진 신상들
회개는 자신이 잘못 걸어온 길을 인정하고 그 길에서 돌아서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므낫세의 변화를 가능하게 했고, 그의 변화는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행동으로 나타났습니다. 므낫세의 회복은 진실했지만, 그가 남긴 모든 흔적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역대하 33장은 죄를 저지른 사람에게는 하나님께 돌아올 가능성을 보여 주면서도, 그가 행한 악으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그 악을 잊어버리라고 요구하는 본문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비를 말한다는 이유로 잘못을 축소하거나, 피해의 결과를 무시하거나, 회개한 사람에게 모든 신뢰와 권한이 즉시 회복되어야 한다고 요구할 근거는 이 장에 없습니다.
므낫세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어 주신 뒤에야 여호와야훼가 하나님임을 알았습니다. 그가 돌아와 한 일 가운데 하나는 바로 그 하나님께 속한 자리를 다시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일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성전에는 더 이상 그가 직접 깎아 만든 신상이 놓여 있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 신상들은 성읍 밖으로 내던져졌습니다.
그리고 므낫세는 여호와야훼의 제단을 다시 세우고 그 위에서 화목 제물과 감사 제물을 바쳤습니다.
한때 하나님께 등을 돌렸던 왕이 이제 하나님 앞에 제물을 드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가 저지른 악도, 그가 받은 자비도, 그가 시작한 변화의 한계도 모두 다음 세대의 역사 속으로 이어집니다.
역대기 저자는 그것들을 지우지 않은 채 므낫세의 삶을 마무리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셨다는 놀라운 사실과, 그가 돌아온 뒤에도 여전히 바로잡아야 할 세상이 남아 있었다는 사실을 함께 남기면서 말입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