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풀어 읽기 · 34장
이 장의 자리 · 33–35장 · 므낫세와 요시야
율법책을 발견한 왕
율법책을 발견한 왕 —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무너진 마음이 어떻게 공동체를 다시 세우는가
역대하 34장에서 가장 놀라운 장면은 오래된 율법책이 발견되는 순간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책을 읽어 주었을 때 왕이 보인 반응입니다.
요시야는 이미 하나님을 찾고 있었습니다. 여러 해 전부터 우상의 제단을 허물고, 신상들을 부수고, 유다와 이스라엘의 예배를 바로잡으려 애썼습니다. 성전도 보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발견된 율법책을 듣자 자기 옷을 찢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 장에서 개혁은 율법책의 발견으로 처음 시작되지 않습니다. 요시야는 이미 하나님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발견한 뒤 개혁의 성격이 달라집니다.
처음에는 잘못된 예배를 제거하는 일이 중심이었습니다. 이후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께 묻고, 공동체 전체가 언약 앞에 다시 서는 일이 중심이 됩니다.
여덟 살에 왕이 된 아이가 다윗의 길을 걷다
요시야는 여덟 살에 왕이 되었습니다.
바로 앞 장에서 그의 아버지 아몬은 신하들의 음모로 살해되었습니다. 그 땅의 백성이 암살자들을 처벌하고 어린 요시야를 왕으로 세웠습니다(33:24–25).
그는 여호와야훼의 눈에 올바른 일을 했다. 자기 조상 다윗의 길을 걸으며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벗어나지 않았다.역대하 34:2 · 본디새김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벗어나지 않았다’는 표현은 신명기의 언어를 떠올리게 합니다. 신명기 5:32는 여호와야훼께서 명령하신 대로 행하며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벗어나지 말라고 합니다. 신명기 17:18–20에서는 왕이 율법을 가까이 두고 읽으며 그 명령을 지켜야 하고, 형제들 위에 마음을 높이거나 명령에서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벗어나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요시야는 다윗의 왕위를 계승한 사람이지만, 그의 올바름은 왕가의 혈통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왕에게 요구하신 길을 따르는 사람으로 평가됩니다.
요시야는 바로 앞 세대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역대기 저자는 그의 신앙적인 기준을 아몬이 아니라 다윗에게서 찾습니다. 여기서 ‘자기 조상 다윗’은 생물학적으로 가까운 아버지가 아니라, 왕조 전체가 따라야 할 신앙적 기준입니다.
하나님을 찾기 시작한 때와 개혁을 시작한 때
3절과 8절에는 요시야의 성장 과정이 세 단계로 기록됩니다. 그는 왕위에 오른 지 팔 년째에 하나님을 찾기 시작합니다. 십이 년째에는 우상들을 제거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8절에 이르면 십팔 년째에 성전을 보수합니다.
요시야는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된 개혁자가 된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3절은 두 번이나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본문은 개혁을 하루아침에 완성된 사건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발전한 행동으로 보여 줍니다.
특히 ‘아직 어린 나이였지만’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을 찾기 시작한 때가 그가 아직 성장 중이었던 시절임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그 마음은 개인적인 경건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요시야가 하나님을 찾기 시작한 뒤, 곧 나라의 예배 질서를 바꾸는 행동으로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우상들을 가루로 만들어 무덤 위에 뿌리다
요시야의 우상 철거는 상당히 과격한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사람들은 그가 보는 앞에서 바알들의 제단들을 허물었다. 그는 그 제단들 위에 높이 서 있던 태양 기둥들을 찍어 넘어뜨렸다. 또 아세라상들과 깎아 만든 우상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을 부수고 가루로 만들어, 그것들에게 제사를 지내던 사람들의 무덤 위에 뿌렸다.역대하 34:4 · 본디새김
5절에서는 제사장들의 뼈를 그들의 제단 위에서 불태웁니다. 실제로 이 행동에는 죽은 사람의 유해를 훼손하는 일이 포함되어 있으며, 본문이 묘사하는 종교적 정화는 현대적인 의미의 평화로운 종교적 관용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장면을 오늘날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묘지나 예배 장소를 훼손해도 된다는 일반적 명령으로 옮겨서는 안 됩니다. 역대기는 고대 유다 왕국이 자기 언약과 성전 질서에 따라 제의를 정비한 역사적 사건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신상과 제단을 다시 사용할 수 없게 하다
사람들은 그 형상 앞에 엎드려 절하고 제물을 바쳤습니다. 그러나 요시야는 그 형상을 신적인 힘을 가진 존재로 대우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만든 물건으로 취급하고 파괴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 아닌 것에 부여했던 종교적 권위를 부정하는 행동인 셈입니다.
왜 북쪽 이스라엘의 땅까지 찾아갔는가?
6–7절에서는 개혁의 범위가 유다를 넘어 북쪽으로 확장됩니다. 므낫세와 에브라임, 시므온의 성읍들에서 납달리에 이르기까지, 요시야는 산당과 우상들을 제거합니다. 이는 정치적으로 분열되고 상당 부분 아시리아의 지배를 겪었던 옛 북왕국의 지역까지 포함하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역대기는 이 지역들을 말할 때 단순히 다른 나라의 영토로 보지 않습니다.
7절은 ‘이스라엘 온 땅’이라고 부릅니다. 정치적인 왕국은 나뉘고 무너질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부르신 이스라엘이라는 백성의 역사와 정체성은 남아 있습니다. 요시야의 개혁은 남왕국 유다의 종교 정책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의 예배를 회복하려는 행동으로 그려집니다.
다만 이 구절만으로 요시야가 북쪽의 모든 지역을 완전하게 정치적으로 통치했다고 결론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그곳에서 행한 종교적 정화를 말할 뿐, 행정적인 지배 범위를 상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런 다음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그는 이미 많은 우상을 제거했지만, 아직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더욱 근본적인 문제와 마주해야 합니다.
조금 더 깊이
고대 이스라엘의 율법에서 죽은 사람과의 접촉은 의식적인 부정함과 연결됩니다(민수기 19:11–16). 따라서 사람의 뼈를 제단 위에서 불태우는 행위는 해당 제단을 더 이상 정당한 제의 장소로 사용할 수 없게 한다는 의미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열왕기하 23:15–20에는 요시야가 벧엘의 제단을 파괴하고 무덤에서 뼈를 가져와 그 제단 위에서 불태우는 장면이 더욱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열왕기상 13:1–2에서는 벧엘의 제단을 향해, 장차 요시야라는 이름의 다윗 가문 사람이 그 제단 위에서 제사장들의 뼈를 불태우리라는 예언이 등장합니다. 두 본문을 연결하면 요시야의 행위는 우상숭배의 장소를 폐기하는 것뿐 아니라, 오래전에 선언된 하나님의 심판이 실현되는 일로 묘사됩니다. 6절의 ‘그 주변의 폐허들에서도’라는 표현에도 원문상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히브리어 자음 본문에는 ‘그들의 집들의 산에서’로 읽힐 수 있는 두 낱말이 전해지지만, 전통적인 읽기인 케레는 베하르보테헴, 곧 ‘그들의 폐허들에서’라는 형태를 제시합니다. 본디새김은 이 읽기를 따랐습니다. 그렇다고 그 폐허들이 정확히 어느 지역의 어떤 유적을 가리키는지까지 확인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전을 고치다가 발견한 것은 건축 재료가 아니었다
18년째가 되자 요시야는 성전을 보수하도록 명령합니다.
그는 다스린 지 십팔 년째에 땅과 집을 깨끗하게 하려고, 아살리야의 아들 사반과 성읍 책임자 마아세야와 요아하스의 아들인 기록관 요아를 보내어 자기 하나님 여호와야훼의 집을 보수하게 했다.역대하 34:8 · 본디새김
요시야가 땅과 성전을 깨끗하게 하려는 목적 아래 성전 보수를 추진했다는 의미입니다. 앞에서는 우상을 제거하는 정화가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성전 건물 자체를 다시 세우는 일이 등장합니다.
성전을 고치는 사람들도 신실해야 한다
9–13절에는 성전 보수에 필요한 은과 공사 담당자들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사람들은 성실하게 일을 했다. 그들을 지휘할 감독자로는 므라리 자손인 레위 사람 야핫과 오바댜, 크핫 자손인 스가랴와 므술람이 임명되어 있었다. 또 레위 사람들 가운데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사람들은 모두 짐꾼들을 맡고, 각각의 작업에 종사하는 모든 일꾼을 지휘했다. 레위 사람들 가운데는 서기관들과 관리들과 문지기들도 있었다.역대하 34:12–13 · 본디새김
이는 성전의 봉사가 찬양과 제사에만 국한되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건축 공사를 감독하고, 물품을 관리하며, 사람들을 조직하는 일도 성전을 회복하는 데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성실한 노동은 곧 예상하지 못한 발견으로 이어집니다.
율법책은 어떻게 발견되었는가?
사람들이 여호와야훼의 집에 들어온 은을 꺼내던 중에, 제사장 힐기야가 모세를 통해 전해진 여호와야훼의 율법책을 발견했다.역대하 34:14 · 본디새김
이 장면이 특별한 이유는 성전을 회복하려던 사람들이 성전의 존재 이유를 다시 일깨워 주는 책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입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예배는 건물 자체의 아름다움이나 제물의 풍성함만으로 올바르게 유지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 예배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사반의 보고에 담긴 뜻밖의 순서
15–18절에서 힐기야는 발견한 책을 서기관 사반에게 건넵니다. 사반은 그것을 왕에게 가져가지만, 처음부터 책에 관해 보고하지 않습니다.
사반은 그 책을 왕에게 가져갔다. 그는 또 왕에게 이렇게 보고했다. 「임금님의 종들은 자기들에게 맡겨진 일을 모두 수행하고 있습니다.」역대하 34:16 · 본디새김
그다음 은을 공사 감독자들에게 맡겼다고 보고합니다. 그리고 나서야 이렇게 말합니다.
서기관 사반이 왕에게 알렸다. 「제사장 힐기야가 저에게 책 한 권을 주었습니다.」 사반은 왕 앞에서 그 책을 읽었다.역대하 34:18 · 본디새김
처음에는 성전 보수에 필요한 은과 물품의 이동이 이야기의 중심이었습니다.
이제는 책 한 권의 이동이 중심이 됩니다.
힐기야에게서 사반에게, 사반에게서 왕에게 말씀이 전달됩니다. 그리고 왕은 그 말씀을 듣자 완전히 다른 행동을 보입니다.
조금 더 깊이
‘모세를 통해’에 해당하는 표현은 문자적으로 ‘모세의 손으로’라는 뜻을 지니지만, 반드시 모세가 직접 손으로 쓴 원본 문서라는 뜻으로 한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모세를 매개로 전해진 율법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이 오늘날의 신명기와 어느 정도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었는지에 관해서는 해석이 갈립니다. 한쪽에서는 요시야가 율법의 저주를 듣고 두려워했다는 사실, 이후 언약을 새롭게 한 일, 예배 장소에 대한 관심 등을 근거로 신명기 또는 그 핵심 부분을 떠올립니다. 다른 쪽에서는 ‘모세를 통해 전해진 여호와야훼의 율법책’이라는 표현과 율법 전체에 대한 관심을 근거로 보다 넓은 모세 율법의 문헌을 생각합니다. 본문은 발견된 책의 전체 내용이나 정확한 길이를 기록하지 않으므로, 그것이 오늘날의 신명기 전체였는지, 그 일부였는지, 더 넓은 모세 율법의 모음이었는지 확정할 수 없습니다. 다만 24절에서 이 책에 기록된 ‘모든 저주’가 언급된다는 사실은 신명기 28–30장과 같은 언약의 축복과 저주 전승이 이 사건을 이해하는 데 중요함을 보여 줍니다.
왕은 왜 옷을 찢고 하나님께 물었는가?
왕은 율법의 말을 듣자 자기 옷을 찢었다.역대하 34:19 · 본디새김
이 행동은 요시야가 율법책을 단순히 옛 시대의 귀중한 문서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는 그 말씀을 현재 자신과 백성에게 적용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었습니다.
자신이 아니라 조상들의 불순종을 말하다
21절에서 요시야는 신하들에게 하나님께 물으라고 명령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가서 나를 위해, 또 이스라엘과 유다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위해, 발견된 이 책의 말에 관해 여호와야훼에게 물어라. 우리 조상들이 여호와야훼의 말을 지키지 않고 이 책에 기록된 모든 것대로 행하지 않아, 우리에게 쏟아진 여호와야훼의 분노가 크기 때문이다.」역대하 34:21 · 본디새김
조상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왕은 그 결과를 ‘우리에게’ 닥친 문제로 받아들입니다.
요시야 자신은 아버지 아몬이나 할아버지 므낫세가 행했던 우상숭배를 그대로 따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것들을 제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조상들과 다르게 행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내세우며 안심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도 그 역사의 결과를 짊어진 공동체에 속해 있음을 깨닫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이었습니다. 그 언약에는 순종할 때의 복뿐 아니라 불순종할 때의 저주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신명기 28–30장).
앞서 요시야는 우상의 제단들을 제거했습니다. 그러나 율법책은 그 제단들이 왜 그렇게 심각한 문제였는지, 그 불순종이 공동체의 운명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더욱 깊이 드러냈습니다.
왕은 왜 스스로 판단하지 않았는가?
‘여호와야훼에게 물어라’는 말은 단순히 책의 어려운 문장을 해석해 달라는 요청보다 넓습니다. 왕은 자신과 공동체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어떤 처지에 있는지 하나님께 직접 묻고자 합니다.
요시야는 성전을 보수하고 전국적인 개혁을 추진할 만큼 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는 자신의 왕권을 해석의 최종적인 권위로 삼지 않습니다.
요시야에게 율법책은 자신의 개혁을 정당화해 주는 문서가 아니라, 자신의 개혁까지 다시 살펴보게 하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훌다가 전한 두 가지 말씀 — 심판은 오고, 왕의 기도는 들렸다
왕의 신하들은 예언자 훌다를 찾아갑니다.
힐기야와 왕이 보낸 사람들은 예언자 훌다에게 갔다. 훌다는 의복을 관리하는 살룸의 아내였고, 살룸은 다크핫의 아들이며 다크핫은 하스라의 아들이었다. 훌다는 예루살렘의 둘째 구역에 살고 있었다. 그들은 훌다에게 이 일을 이야기했다.역대하 34:22 · 본디새김
당시 예레미야처럼 잘 알려진 남성 예언자들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출애굽기 15:20의 미리암과 사사기 4:4의 드보라 역시 예언자로 소개됩니다. 훌다는 그 전통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인물입니다.
예언자의 권위는 왕궁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가가 아니라,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전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첫 번째 말씀: 심판은 철회되지 않는다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합니다. 『보아라. 내가 이곳과 그 주민들에게 재앙, 곧 유다 왕 앞에서 읽은 책에 기록된 모든 저주를 내리겠다.』」역대하 34:24 · 본디새김
요시야가 율법책을 듣고 두려워했던 내용이 확인됩니다. 25절에서 그 이유도 명시됩니다.
「『그들이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제물을 태워 바쳤으며, 자기 손으로 만든 온갖 것으로 나를 노하게 하려 했기 때문이다. 내 분노가 이곳에 쏟아져 꺼지지 않을 것이다.』」역대하 34:25 · 본디새김
‘그들이 나를 버렸다’는 말이 핵심입니다. 우상숭배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저버리는 행동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요시야가 이미 시작한 개혁의 한계를 드러냅니다.
우상을 제거하고 성전을 보수하는 일은 옳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오랜 불순종의 역사가 즉시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므낫세의 이야기에서는 악을 행한 왕이 자신을 낮추었을 때 어떤 자비를 받았는지가 중심이었습니다. 요시야의 이야기에서는 의롭게 행하는 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동체를 향한 심판이 왜 여전히 선언되는지가 중심입니다.
두 번째 말씀: ‘나도 들었다’
훌다는 이어서 유다 왕에게 전할 말씀을 따로 전합니다.
「『네 마음이 부드러워져서, 이곳과 그 주민들에 대한 하나님의 말을 듣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었으며, 내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네 옷을 찢으며 내 앞에서 울었으므로, 나도 들었다. 여호와야훼의 말이다.』」역대하 34:27 · 본디새김
그는 왕이었지만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을 방어하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행한 개혁을 내세우지도 않았고, 조상들의 죄를 자신의 문제와 무관하다고 주장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때 그의 눈물은 단순히 재앙이 무서워서 흘린 눈물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훌다의 신탁은 그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었다는 사실을 함께 강조합니다. 그가 들은 말씀을 자신과 공동체에 대한 하나님의 진실한 판단으로 받아들였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들으신 것은 왕의 지위나 업적에 대한 자랑이 아니라, 말씀 앞에서 낮아진 마음의 응답이었습니다.
‘평안히 묻힐 것이다’는 약속의 뜻
「『보아라. 내가 너를 네 조상들에게 거두어들이겠다. 너는 평안히 네 묘소에 묻힐 것이며, 내가 이곳과 그 주민들에게 내릴 모든 재앙을 네 눈으로 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왕에게 이 말을 전했다.역대하 34:28 · 본디새김
하나님의 심판이 철회되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요시야의 기도가 무의미한 것은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이 요시야의 반응을 들으셨다는 사실 때문에 유다의 오랜 불순종이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공동체의 죄를 심각하게 다루시면서도, 그분의 말씀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개인의 응답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조금 더 깊이
‘네 마음이 부드러워져서’라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마음이 굳어 있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셔도 듣지 않는 태도를 흔히 마음의 완고함과 연결합니다. 출애굽기의 파라오는 반복되는 말씀과 표징 앞에서도 마음을 완고하게 했습니다. 예레미야 7:24에서는 백성이 자기들의 완고한 마음을 따라 뒤로 물러갔다고 지적합니다. 27절을 자세히 보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었다는 말이 두 번 나옵니다. 먼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었으며’라고 말하고, 이어서 ‘내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라고 반복합니다. 히브리어에서도 같은 동사가 되풀이됩니다. 마지막에는 ‘나도 들었다’라는 하나님의 일인칭 선언으로 이어집니다. 역대하 7:14에서 하나님은 자기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백성이 자신을 낮추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찾고 악한 길에서 돌아서면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요시야의 행동은 바로 그런 태도를 보여 줍니다. 한편 역대하 35:23–24에 따르면 요시야는 훗날 전쟁 중에 화살을 맞고 부상을 입어 죽습니다. 그렇다면 ‘평안히 네 묘소에 묻힐 것’이라는 말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본문 자체는 그 의미를 뒤따르는 문장으로 설명합니다. ‘내가 이곳과 그 주민들에게 내릴 모든 재앙을 네 눈으로 보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이 약속은 요시야가 전쟁이나 고통을 전혀 겪지 않고 평온하게 죽을 것이라는 뜻보다는, 유다와 예루살렘을 덮칠 결정적인 재앙을 살아서 보지 않게 될 것이라는 의미로 이해하는 편이 문맥에 잘 맞습니다. 그러나 ‘평안히’라는 표현 자체와 그의 실제 전사 사이에 남아 있는 긴장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습니다. 장례가 조상들의 무덤에 합당하게 이루어진다는 의미를 강조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 말 하나만으로 모든 어려움이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왕이 들었던 말씀이 온 백성의 귀에 이르다
훌다의 신탁을 들은 뒤 요시야는 무엇을 할까요?
그는 자신이 재앙을 보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요시야는 그 말씀을 자신만 간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장로들을 모으고,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을 불렀으며, 높은 사람부터 낮은 사람까지 모든 백성이 여호와야훼의 집에 모이게 했습니다.
왕이 혼자 들었던 말씀을 모두가 듣게 하다
왕은 여호와야훼의 집으로 올라갔다. 유다의 모든 사람과 예루살렘 주민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모든 백성이 높은 사람부터 낮은 사람까지 함께 올라갔다. 왕은 여호와야훼의 집에서 발견된 언약책의 모든 말을 그들이 듣도록 읽었다.역대하 34:30 · 본디새김
하나님의 말씀은 왕이나 제사장 같은 특별한 사람들만 듣는 것이 아닙니다. 공동체의 여러 계층이 함께 모여 같은 말씀을 듣습니다.
이 장면에서는 율법책이 ‘언약책’이라고 불립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법과 명령이 기록된 책으로 소개되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규정하는 언약의 책으로 등장합니다.
율법은 단지 개인이 지켜야 할 종교적 규칙들의 모음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누구의 백성인지, 하나님과 어떤 관계 속에서 살아야 하는지를 밝히는 말씀입니다.
이 장면은 신명기 31:10–13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곳에서 모세는 온 이스라엘을 모아 율법을 읽어 주고, 남자와 여자와 어린아이, 그들 가운데 사는 나그네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게 하라고 명령합니다. 요시야가 모든 사람에게 언약책을 읽어 주는 행동은 이러한 율법의 정신과 연결됩니다.
왕은 왜 언약을 맺었는가?
왕은 자기 자리에 서서 여호와야훼 앞에서 언약을 맺었다. 여호와야훼를 따르고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 그의 명령과 증언과 규정을 지키며, 이 책에 기록된 언약의 말들을 실행하겠다는 언약이었다.역대하 34:31 · 본디새김
여기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라는 표현은 신명기 6:5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명령할 때 사용하는 언어와 연결됩니다. 그는 자신의 마음과 삶 전체를 하나님께 향하게 하겠다고 다짐합니다.
이스라엘은 이미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입니다. 그러나 그 언약을 저버렸기 때문에 이제 그 말씀 앞에 다시 서서 언약에 대한 충성을 새롭게 확인하는 것입니다.
19절에서는 율법책의 말씀을 듣고 옷을 찢었습니다.
21절에서는 그 말씀을 지키지 않았던 조상들의 불순종을 고백했습니다.
이제는 그 말씀을 실제로 지키겠다고 언약합니다.
언약에 동참하게 했다는 말의 의미
그는 예루살렘과 베냐민에 있던 모든 사람이 그 언약에 동참하게 했다. 예루살렘 주민들은 자기 조상들의 하나님과 맺은 언약대로 행했다.역대하 34:32 · 본디새김
요시야가 모든 사람을 언약에 동참하게 했다는 사실만으로 백성 각자가 내면적으로 완전하고 자발적인 믿음을 갖게 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왕은 공동체의 지도자로서 그들을 언약 안에 세우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도록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는 본문이 모두 알려 주지 않습니다.
‘요시야가 살아 있는 동안 내내’
요시야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속한 모든 땅에서 역겨운 것들을 모두 없앴다. 또 이스라엘에 있던 모든 사람에게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섬기게 했다. 그들은 요시야가 살아 있는 동안 내내 자기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따르는 데서 벗어나지 않았다.역대하 34:33 · 본디새김
역대기 저자는 요시야의 개혁이 이후 모든 세대에 걸쳐 영원히 지속되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가 살아 있는 동안 백성이 여호와야훼를 따르는 데서 벗어나지 않았다고 기록합니다. 이 표현은 요시야의 지도력이 공동체에 실제로 큰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 줍니다. 동시에 그 변화의 지속성이 왕의 생애와 깊이 연결되어 있었다는 사실도 드러냅니다.
왕이 백성을 이끌 수는 있지만, 왕 한 사람의 신실함이 모든 세대의 순종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32절의 히브리어 바야아메드(עָמַד)는 ‘서다’라는 뜻의 동사를 사역형으로 사용한 표현입니다. 문맥에 따라 사람들을 서게 했다는 뜻으로도, 어떤 의무나 관계 안에 굳게 세웠다는 뜻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본디새김은 이를 언약에 동참하게 했다고 옮겼습니다.
결론 — 한 왕의 귀에서 온 백성의 귀로
요시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자신만을 안전하게 지켜 주는 약속이 아니라, 온 백성이 따라야 할 삶의 기준이었습니다. 요시야는 말씀을 통해 유다의 죄와 하나님의 심판을 깨달았습니다. 동시에 자신을 낮춘 사람의 반응을 하나님께서 들으신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심판의 예고를 들은 뒤에도 그는 개혁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장면의 마지막에는 왕과 백성이 함께 서 있습니다.
왕은 여호와야훼 앞에서 언약을 맺고, 백성은 그 언약에 동참합니다. 성전 보수 공사 중 발견된 책 한 권이 이제 온 공동체의 귀에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돌과 나무로 이루어진 성전 건물을 고치려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야기의 마지막에 이르러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들의 삶을 다시 세우고 있습니다.
율법책은 다시 성전 안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 말씀이 왕의 마음을 움직였고, 왕의 입을 통해 온 백성에게 전해졌으며, 그들의 삶을 이끄는 언약의 말씀이 되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