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풀어 읽기 · 10장

이 장의 자리 · 9–16장 · 예후와 왕조의 교체

바알을 없앤 왕과 온 마음의 충성

열왕기하 10장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평가가 나란히 등장합니다.

예후는 아합의 집안을 무너뜨리고 바알 숭배자들을 제거합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예후가 「아합의 집안을 다루었으므로」 올바른 일을 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본문은 예후가 「온 마음」으로 여호와야훼의 율법을 따르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올바른 일을 했다고 인정하신 왕이 어떻게 하나님께 온 마음을 드리지 않은 왕일 수 있을까요?

이 두 평가는 서로 모순되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사이의 간격이 예후라는 인물을 이해하는 열쇠입니다.

읽는 시간 21분소단락 610장 본문 읽기 →

편지 두 통으로 무너진 아합 왕조

열왕기하 10:1–11 본문 →

예후는 왜 새로운 왕을 세우라고 했을까?

예후는 이미 여호람 왕과 이세벨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왕 한 사람을 죽였다고 해서 왕조가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사마리아에는 아합의 아들 일흔 명이 남아 있었습니다. 더욱이 그들 곁에는 고관들과 장로들, 왕자들을 기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병거와 말, 무기와 요새 성읍도 있었습니다.

「너희 주인의 아들들 가운데 훌륭하고 올곧은 사람을 골라 그의 아버지의 왕좌에 앉히고, 너희 주인의 집안을 위해 싸워라.」열왕기하 10:3 · 본디새김

이 편지는 겉으로 보면 아합 왕조에 저항할 기회를 제공하는 제안입니다. 예후는 이미 이스라엘의 왕으로 선포되었고, 여호람을 죽였으며, 군대를 장악한 상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합의 후손을 왕으로 세우라는 말은 단순한 조언이 아니라 예후와 전쟁을 하겠느냐는 도전입니다.

기존 왕조를 지킬 것인가, 아니면 새 권력자에게 복종할 것인가?

그들은 몹시, 몹시 두려워하며 말했다. 「보아라, 두 왕도 그 앞에서 버티지 못했는데 우리가 어떻게 버티겠느냐?」열왕기하 10:4 · 본디새김

두려움의 정도를 나타내는 말이 반복됩니다. 그들은 예후의 제안을 신중하게 검토하기보다, 이미 벌어진 두 왕의 죽음 앞에서 자신들의 처지를 판단합니다. 그들이 언급한 두 왕은 이스라엘의 여호람과 유다의 아하시야입니다.

사마리아에는 여전히 왕의 후손들과 군사적 자원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지키고 왕조를 이어 갈 책임이 있는 지도자들이 싸울 뜻을 잃었습니다.

왕조는 후계자가 없어 무너지기 전에, 그 후계자를 지켜야 할 사람들의 충성이 사라지면서 무너집니다.

왕궁을 맡은 사람과 성읍을 맡은 사람, 장로들과 아들들을 기르는 사람들이 예후에게 전갈을 보냈다. 「저희는 당신의 종들입니다. 저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모두 하겠습니다. 아무도 왕으로 세우지 않겠습니다. 좋다고 여기시는 대로 하십시오.」열왕기하 10:5 · 본디새김

그들은 왕가의 후손을 보호하는 사람들이었지만, 이제 그 후손을 왕으로 세우지 않겠다고 약속합니다. 자신들이 맡은 사람들보다 새 권력자에게 충성하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두 번째 편지는 충성을 어떻게 증명하게 하는가?

예후는 그들의 답장을 받고 다시 편지를 보냅니다.

예후는 그들에게 두 번째로 편지를 썼다. 「너희가 내 편이고 내 말을 듣는다면, 너희 주인의 아들들의 머리를 가지고 내일 이맘때 이스르엘에 있는 내게로 와라.」 왕의 아들 일흔 명은 그들을 기르는 성읍의 유력자들과 함께 있었다.열왕기하 10:6 · 본디새김

두 편지는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목적을 향합니다. 사마리아의 지도자들이 아합 왕조를 지키려는지, 아니면 예후에게 완전히 복종하려는지 드러내게 하는 것입니다. 예후는 충성을 마음속의 생각이나 말로만 인정하지 않습니다. 기존 왕조의 후손들을 죽이는 행동으로 증명하게 합니다.

지도자들은 왕의 아들 일흔 명을 붙잡아 죽이고, 머리를 바구니에 담아 예후에게 보냅니다. 그 일을 수행한 사람들은 바로 그들을 기르거나 보호하는 책임을 맡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보호자가 살해자가 되는 것입니다.

본문은 그들이 아합 집안의 죄를 깨닫고 회개해서 이 일을 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행동에 앞서 명시적으로 기록된 감정은 예후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따라서 이 사건을 자발적인 신앙 개혁으로 해석할 근거는 부족합니다.

성문 앞에 쌓인 두 무더기

왕자들의 머리가 도착하자 예후는 그것들을 성문 입구에 두 무더기로 쌓아 밤새 두라고 명령합니다.

아침이 되자 예후는 밖으로 나가 서서 온 백성에게 말했다. 「너희에게는 죄가 없다. 보아라, 나는 내 주인을 거슬러 반역을 모의하고 그를 죽였다. 그러나 이 사람들을 모두 쳐 죽인 것은 누구냐?」열왕기하 10:9 · 본디새김

그의 명령을 받아 사람들이 죽였다는 사실을 독자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후의 질문은 사건의 실제 경위를 몰라서 묻는 질문이 아닙니다. 그가 직접 왕자들을 죽인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죽음을 요구한 사람은 예후 자신이었습니다.

그는 왕을 죽인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왕자들의 죽음에는 다른 사람들이 관여했음을 드러냅니다. 동시에 이어지는 10절에서는 그 모든 일이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이루는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그러니 알아 두어라. 여호와야훼가 아합의 집안을 두고 한 말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여호와야훼는 자기 종 엘리야를 통해 한 말을 이루었다.」열왕기하 10:10 · 본디새김

첫째, 아합 집안의 멸망은 앞서 여호와야훼께서 엘리야를 통해 선포하신 심판과 연결됩니다. 열왕기상 21:21–24에는 아합 왕조가 끊어질 것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둘째, 그 심판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예후가 어떤 명령을 내렸고 사람들이 어떤 동기로 행동했는지는 별도로 살펴야 합니다.

여호와야훼의 말씀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사마리아 지도자들의 두려움이나 예후의 정치적 계산을 없애 주지는 않습니다.

예후는 이제 이스르엘에 남아 있는 아합의 집안 사람들과 그를 섬기던 고관들, 가까운 사람들, 제사장들까지 죽입니다. 이렇게 왕조의 후계자뿐 아니라 왕조를 지탱하던 관계망까지 무너집니다.

그리고 예후는 사마리아를 향해 출발합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아들」은 아합에게서 직접 태어난 아들들만이 아니라 왕가의 남성 후손들을 포함하는 표현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왕가의 정확한 족보와 각 사람의 나이는 본문에 나오지 않습니다.

마흔두 명의 죽음과 병거에 오른 여호나답

열왕기하 10:12–17 본문 →

아합 집안과 연결되어 있었다는 이유로

예후는 사마리아로 가는 길에서 유다 왕 아하시야의 형제들을 만납니다.

그들은 왕의 아들들과 태후의 아들들의 안부를 물으러 내려왔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아하시야의 친족이라고 밝힙니다.

예후가 말했다. 「그들을 산 채로 붙잡아라.」 사람들이 그들을 산 채로 붙잡아 벳에겟의 구덩이 곁에서 마흔두 명을 도살했다. 예후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도 남기지 않았다.열왕기하 10:14 · 본디새김

아합의 후손들은 왕조를 이어 갈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따라서 아합 집안의 멸망이라는 심판 선언과 직접 연결됩니다. 그러나 아하시야의 친족들은 유다 왕실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유다 왕실은 아합 집안과 혼인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아하시야 자신은 아합 집안의 길을 따랐지만, 본문은 마흔두 명이 구체적으로 어떤 죄를 저질렀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또한 예후에게 주어진 첫 명령은 아합 집안을 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친족들까지 모두 죽이라는 별도의 말씀이 여기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살해를 아무런 구별 없이 하나님께서 직접 명령하신 심판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예후의 행동이 아합 집안과 연결된 정치적 세력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 마흔두 명의 살해에 대한 하나님의 구체적인 평가를 14절이 직접 제시하지는 않습니다.

여호나답은 왜 예후의 병거에 올랐을까?

이제 길 위에서 전혀 다른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예후는 그곳을 떠나 자기를 맞으러 오는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을 만났다. 그는 여호나답에게 인사를 건네며 말했다. 「내 마음이 그대의 마음을 향해 진실하듯, 그대의 마음도 진실하오?」 여호나답이 말했다. 「그렇소.」 「그렇다면 손을 내미시오.」 그가 손을 내밀자 예후는 그를 병거 위 자기 곁으로 끌어 올렸다.열왕기하 10:15 · 본디새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말과 몸으로 보여 주는 동행이 이어집니다.

예후가 말했다. 「나와 함께 가서 여호와야훼를 향한 내 열성을 보시오.」 그들이 여호나답을 예후의 병거에 태웠다.열왕기하 10:16 · 본디새김

열왕기하 10:16은 예후 자신이 자신의 열성을 어떻게 소개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이것은 아직 그 열성 전체에 대한 하나님의 최종 평가가 아닙니다.

그는 여호나답을 병거에 태우고 사마리아로 갑니다. 그리고 그곳에 남은 아합 집안의 사람들을 모두 죽입니다. 17절은 그 일이 여호와야훼께서 엘리야에게 하신 말씀대로 이루어졌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왕조에 대한 심판은 일단 완결됩니다.

하지만 예후의 열성은 멈추지 않습니다.

이번에는 아합 집안의 사람들을 제거하는 것을 넘어, 그 왕조와 깊이 연결되어 있던 바알 숭배 자체를 없애려 합니다.

조금 더 깊이

본문이 말하는 「형제들」이 정확히 어떤 친족 관계를 가리키는지는 구별해서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역대하 22:8의 대응 기록은 아하시야의 형제들의 아들들을 언급합니다. 따라서 열왕기하의 표현은 가까운 친족을 넓게 가리킬 가능성이 있습니다. 예레미야 35장에는 레갑의 아들 요나답이 후손들에게 포도주를 마시지 말고 집을 짓거나 밭을 소유하지 않으며 천막에서 살도록 명령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렘 35:6–10). 그의 후손인 레갑 사람들은 오랜 세월 그 명령을 지킨 사람들로 소개됩니다. 예레미야는 그들의 순종을 유다 백성의 불순종과 대조합니다. 열왕기하의 여호나답과 예레미야의 요나답은 이름의 형태에 차이가 있지만, 모두 레갑의 아들로 소개되는 같은 전승의 인물로 이해됩니다. 그러나 여호나답이 예후의 모든 폭력적 행동을 지지했는지, 예후의 정치적 계획을 얼마나 알고 있었는지는 본문에 나오지 않습니다. 예후의 표현은 엘리야가 여호와야훼를 위해 열심을 다했다고 말한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왕상 19:10, 14). 그곳에서도 같은 어근의 표현이 사용됩니다.

바알에게 큰 제사를 드리겠다는 왕

열왕기하 10:18–28 본문 →

예후는 왜 바알을 더 많이 섬기겠다고 했는가?

예후는 온 백성을 모아 놀라운 선언을 합니다.

예후는 온 백성을 모아 그들에게 말했다. 「아합은 바알을 조금 섬겼다. 예후는 그를 많이 섬길 것이다.」열왕기하 10:18 · 본디새김

앞서 예후는 여호와야훼를 향한 자신의 열성을 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다음 절에서 서술자는 곧바로 그의 의도를 밝힙니다.

「그러니 이제 바알의 모든 예언자와 그를 섬기는 모든 사람과 그의 모든 제사장을 내게 불러 모아라. 한 사람도 빠져서는 안 된다. 내가 바알에게 큰 제사를 드리려 한다. 누구든 빠지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예후는 바알을 섬기는 사람들을 없애려고 속임수를 썼다.열왕기하 10:19 · 본디새김

바알 숭배자들은 예후가 자신들의 종교를 더욱 적극적으로 후원할 것이라고 믿도록 유도됩니다. 하지만 독자는 그가 정반대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참석자들이 얼마나 자발적으로 모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본문은 그들이 종교적 기대와 왕의 강압적인 명령 아래 모였음을 보여 줍니다. 예후는 이제 아합 왕조를 제거할 때 사용했던 방식을 종교적 영역에서도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는 먼저 자신에게 필요한 반응을 이끌어 내고, 상대방이 한곳에 모이거나 특정한 행동을 하도록 만든 다음, 그 상황을 자신의 목적에 이용합니다.

신전이 가득 찼다는 말의 의미

예후의 명령을 듣고 바알을 섬기는 사람들이 모입니다.

예후가 온 이스라엘에 전갈을 보내자 바알을 섬기는 사람들이 모두 왔다. 오지 않고 남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들이 바알 신전으로 들어가자 바알 신전이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가득 찼다.열왕기하 10:21 · 본디새김

아합은 사마리아에 바알을 위한 신전을 세우고 그 안에 제단을 만들었습니다. 이제 예후는 바로 그 바알 숭배의 중심을 공격하려 합니다. 아합 시대에 왕의 후원을 받아 세워진 종교적 중심지가 새로운 왕에 의해 무너지는 것입니다.

이어서 예후는 옷 보관소를 맡은 사람에게 바알 숭배자들이 입을 옷을 내어 주라고 명령합니다.

예후는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과 함께 바알 신전으로 들어가 바알을 섬기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여기 너희와 함께 여호와야훼의 종이 있는 것은 아닌지 샅샅이 살펴보아라. 오직 바알을 섬기는 사람들만 있어야 한다.」열왕기하 10:23 · 본디새김

이것은 예후의 계획이 단순히 신전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바알을 섬기는 사람들을 특정하여 제거하려는 것임을 보여 줍니다. 그렇다고 이 구별을 오늘날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죽여도 된다는 원칙으로 확대해서는 안 됩니다. 이 본문은 고대 이스라엘의 왕권과 아합 왕실의 바알 숭배를 둘러싼 특정한 정치·종교적 사건을 기록합니다.

신전 안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을 위한 큰 제사가 시작될 것으로 기대하는 동안, 신전 밖에서는 전혀 다른 준비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제사가 끝나자 살육이 시작되다

예후는 신전 밖에 여든 명을 배치합니다.

그들이 희생제물과 번제물을 바치러 들어갔다. 예후는 밖에 여든 명을 배치하고 말했다. 「내가 너희 손에 넘기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라도 달아나면, 그를 놓친 사람은 달아난 사람의 목숨 대신 자기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열왕기하 10:24 · 본디새김

이 명령은 단순한 경계 지시가 아닙니다. 명령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경비병 자신이 죽는다는 위협입니다. 집회에 빠진 사람은 죽는다고 위협했고, 이제 집회에서 누군가 도망치게 두는 사람도 죽는다고 위협합니다.

그가 번제 드리기를 마치자 예후는 호위병들과 부관들에게 말했다. 「들어가 그들을 쳐라. 한 사람도 빠져나가게 하지 마라.」 그들이 사람들을 칼날로 쳐 죽였다. 호위병들과 부관들은 시체들을 내던지고 바알 신전의 성채까지 들어갔다.열왕기하 10:25 · 본디새김

여기서 종교적 집회로 시작한 사건은 집단 살해로 끝납니다.

그러나 본문이 그의 계획을 성공적으로 묘사한다는 사실과 그가 사용한 모든 방법을 윤리적으로 칭찬한다는 것은 구별해야 합니다. 서술자는 예후가 속임수를 썼다고 명시합니다. 그리고 그 속임수와 살육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는지 숨기지 않습니다.

신전이 변소가 되다

살육이 끝난 뒤 예후의 사람들은 바알 신전의 기둥들을 끌어내어 불태웁니다.

그들은 바알의 기둥을 헐어 버리고 바알 신전도 헐어 버려 그곳을 변소로 만들었다. 그곳은 오늘까지 변소로 남아 있다.열왕기하 10:27 · 본디새김

신전은 신을 섬기는 거룩한 공간으로 여겨지던 곳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거룩하다고 여기던 곳을 가장 낮고 불결하게 취급받는 장소로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이는 바알의 권위를 철저하게 부정하는 상징적 행동입니다.

예후는 이스라엘에서 바알을 없애 버렸다.열왕기하 10:28 · 본디새김

이 말은 예후의 종교 정책에 대한 분명한 성과 평가입니다. 그는 아합과 이세벨의 시대에 왕실의 후원을 받던 바알 숭배의 중심을 제거했습니다.

그런데 열왕기 저자는 여기서 예후의 이야기를 끝내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21절의 「오지 않고 남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는 표현은 예후가 소집한 바알 숭배자들이 모두 모였음을 강조하는 이야기의 서술입니다. 바알 숭배자들에게 옷을 지급한 이유를 본문은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특별한 제의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입을 옷을 준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27절의 「오늘까지」라는 표현은 사건의 흔적이 이야기의 서술 시점까지 남아 있었다는 뜻입니다. 신전이 사라졌다는 사실은 한순간의 사건이 아니라 오랫동안 기억되는 변화로 제시됩니다. 바알 숭배가 이스라엘 역사에서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는 뜻으로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28절은 예후가 당시 이스라엘에 자리 잡고 있던 바알 숭배 체제를 무너뜨린 일을 가리킵니다.

바알은 없앴지만 금송아지는 남겨 두었다

열왕기하 10:29–31 본문 →

무엇을 제거했는가보다 무엇을 남겨 두었는가

28절과 29절 사이에는 강한 반전이 있습니다.

다만 예후는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을 죄짓게 한 그 죄들에서 떠나지 않고, 벧엘과 단에 있는 금송아지들을 계속 따랐다.열왕기하 10:29 · 본디새김

여로보암은 북이스라엘 왕국을 세운 뒤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가면 다시 다윗 왕조로 마음을 돌릴 것을 두려워했습니다(왕상 12:26–27). 그래서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세우고 독자적인 예배 장소와 제사 체계를 마련했습니다(왕상 12:28–33).

그런데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를 세울 때 사용한 말은 출애굽 사건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백성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온 신과 관련하여 금송아지들을 소개했습니다. 이는 북이스라엘의 금송아지 예배가 단순히 바알 숭배와 동일한 것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금송아지가 여호와야훼 자신을 형상화한 것인지, 여호와야훼의 보이지 않는 임재를 상징하려는 것이었는지에 관해서는 해석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열왕기의 평가는 분명합니다.

여로보암이 세운 금송아지 예배는 이스라엘을 죄짓게 한 일이었습니다. 예후는 바알 숭배를 없앴지만 이 체제를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앞서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를 세운 정치적 이유를 생각하면, 예후 역시 북이스라엘의 독자적인 예배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왕권에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예후의 동기를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가 왕권을 지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금송아지를 남겨 두었다고 확정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왜 예후를 칭찬하셨는가?

30절에서 여호와야훼는 예후에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야훼가 예후에게 말했다. 「네가 내 눈에 올바른 일을 잘 해냈고, 내 마음에 있는 모든 뜻대로 아합의 집안을 다루었으므로, 네 자손들이 사 대까지 이스라엘의 왕좌에 앉을 것이다.」열왕기하 10:30 · 본디새김

그는 아합 왕조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실제로 수행했고, 여호와야훼는 그 일을 인정하셨습니다. 또한 그에게 보상으로 왕조의 지속을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은 이후 열왕기의 기록에서 구체적으로 확인됩니다. 예후의 뒤를 이어 여호아하스, 요아스, 여로보암 2세, 스가랴가 왕이 됩니다(왕하 13:1, 13:10, 14:23, 15:8–12).

그런데 30절의 칭찬은 범위가 분명합니다.

즉, 이 평가는 예후의 특정한 사명 수행에 관한 것입니다. 그가 평생 하나님께 충실했다는 선언이 아닙니다.

왜 온 마음이 중요했는가?

31절은 말합니다.

그러나 예후는 온 마음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의 율법을 따라 걷는 데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는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을 죄짓게 한 그 죄들에서 떠나지 않았다.열왕기하 10:31 · 본디새김

신명기 6:5는 이스라엘에게 마음과 생명과 힘을 다해 여호와야훼를 사랑하라고 명령합니다. 그 사랑은 신명기의 문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실제 삶에서 지키는 충성과 연결됩니다. 열왕기하 10:31에서도 온 마음은 곧바로 여호와야훼의 율법을 따라 걷는 일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에게는 열성이 있었습니다.

그는 스스로 여호와야훼를 위한 자신의 열성을 보라고 말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행동했습니다. 그러나 그 열성이 하나님의 말씀 전체에 대한 충성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예후는 여호나답에게 자기 마음이 진실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서로 마음이 일치하는지를 확인한 뒤 그를 병거에 태웠습니다.

하지만 31절에서 열왕기 저자는 예후의 마음을 다른 기준으로 평가합니다.

다른 사람이 예후의 마음을 인정했는가가 아닙니다.

예후가 하나님의 말씀을 온 마음으로 따랐는가입니다.

여호나답과 예후는 특정한 목적에서 마음이 일치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일치가 예후의 삶 전체에 대한 하나님의 인정과 같지는 않습니다.

사람들과 뜻을 같이하는 것과 하나님께 온 마음을 드리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닙니다.

열왕기 저자는 예후가 이룬 일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그 성과 때문에 그의 불순종을 눈감아 주지도 않습니다.

그의 순종은 실제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온전하지 않았습니다.

호세아는 왜 이스르엘의 피를 다시 언급하는가?

예후에 대한 평가를 이해할 때 호세아 1:4도 함께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여호와야훼는 예후의 집안에 「이스르엘의 피」에 대해 책임을 묻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열왕기하 10:30에서는 예후가 아합 집안을 다룬 일을 인정하시는데, 호세아 1:4에서는 예후 집안에 피의 책임을 물으시는 것입니다.

한 가지 읽기는 하나님이 명하신 아합 집안의 심판 자체는 정당했지만, 예후가 그 과정에서 저지른 과도한 살육이나 그 후손들의 폭력이 별도의 심판 대상이 되었다고 이해합니다. 다른 읽기는 호세아의 말씀이 이스르엘에서 시작된 예후 왕조의 피 흘림 전체를 새롭게 평가한다고 봅니다. 이 경우 열왕기의 긍정적 평가와 호세아의 부정적 평가 사이에 서로 다른 강조점이 있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호세아 1:4는 「이스르엘의 피」에 포함되는 사건들을 하나하나 열거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 말이 열왕기하 9–10장의 특정한 살해 가운데 어느 것을 가리키는지 완전히 확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행동을 인정하셨다는 사실이 그 사람의 모든 행동과 후대의 역사까지 정당화하지는 않습니다.

영토가 잘려 나가기 시작하다

열왕기하 10:32–36 본문 →

바알 신전은 무너졌지만 나라의 경계도 무너졌다

예후에 대한 평가가 끝나자 본문은 그의 통치 기간에 일어난 또 다른 사건을 기록합니다.

그 무렵 여호와야훼가 이스라엘의 영토를 잘라 내기 시작했다. 하사엘은 이스라엘의 온 영토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쳤는데,열왕기하 10:32 · 본디새김

예후가 적들을 제거하고 권력을 확고히 했지만, 이스라엘의 땅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세력이 약해지고 영토가 축소되는 과정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말입니다.

이전에 엘리사는 하사엘이 이스라엘에 심각한 해를 끼칠 것이라고 예고했습니다(왕하 8:12). 이제 그 예고는 구체적인 영토 상실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하사엘은 요단강 동쪽의 갓과 르우벤과 므낫세 사람들이 차지한 지역을 공격합니다. 본문은 아르논 골짜기 곁의 아로엘에서부터 길르앗과 바산에 이르는 지역을 언급합니다.

요단강 동쪽의 이 지역은 민수기 32장에서 르우벤과 갓 자손들이 정착하기를 원했던 땅이며, 므낫세 지파의 일부도 그곳에 자리 잡았습니다(민 32:33–42).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부터 중요한 정착지로 자리 잡은 지역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땅이 아람의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영토 상실은 예후의 불순종 때문인가?

31절은 예후가 온 마음으로 여호와야훼의 율법을 따르지 않았다고 말하고, 32절은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의 영토를 잘라 내기 시작하셨다고 말합니다.

이 순서는 두 사건을 연결해서 읽게 합니다. 그렇지만 본문이 직접 「예후가 금송아지를 따랐기 때문에 하사엘을 보내셨다」라고 설명하지는 않는다는 점도 기억해야 합니다. 따라서 예후 개인의 특정한 행동 하나를 하사엘의 모든 공격에 대한 직접 원인으로 확정하기보다는, 이스라엘의 지속적인 불순종 속에서 하나님의 심판이 나라의 영토 상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이해하는 편이 본문의 흐름에 더 잘 맞습니다.

열왕기하 13:3은 이 관계를 더욱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그곳에서는 이스라엘이 여호와야훼의 눈에 악을 행하자 여호와야훼의 분노가 그들을 향해 타올랐고, 이스라엘이 오랫동안 하사엘과 그의 아들 벤하닷의 손에 넘겨졌다고 기록합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예후의 후손들에게 사 대까지 왕좌를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은 왕조의 지속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왕조가 다스리는 나라의 영토와 국력이 항상 보존되리라는 약속은 아니었습니다.

왕조의 존속이 곧 백성의 평안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이십팔 년의 통치가 남긴 것

예후는 이십팔 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그리고 죽어 사마리아에 묻혔습니다.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왕위를 잇습니다. 열왕기는 그가 보인 용맹과 나머지 행적들이 이스라엘 왕들의 연대기에 기록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맺음 — 무너진 신전과 잘려 나간 땅

열왕기하 10:1–36 본문 →

이 두 장면 사이에 예후의 통치가 남긴 성취와 한계가 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맡겨진 심판을 수행했습니다. 하지만 그 일을 수행한 왕 자신도 여호와야훼의 말씀 아래 살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사실까지 온전히 받아들이지는 못했습니다.

예후는 여호나답에게 자신의 열성을 보라고 말했습니다. 열왕기는 그 열성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이야기를 끝내지 않았습니다.

사마리아에서 바알의 신전은 사라졌지만, 벧엘과 단에는 여전히 금송아지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요단강 동쪽에서는 이스라엘의 땅이 하나씩 잘려 나가고 있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