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풀어 읽기 · 11장

이 장의 자리 · 9–16장 · 예후와 왕조의 교체

성전에 숨어 있던 왕

열왕기하 11장에는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장소에 있습니다.

한 사람은 왕궁에서 나라를 다스리는 아달랴입니다. 그녀에게는 권력이 있고, 자신에게 맞설 왕족을 죽일 힘도 있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여호와야훼의 집에 숨어 있는 어린 요아스입니다. 그에게는 군대도, 왕좌도 없습니다. 그는 누군가의 보호 없이는 살아남을 수조차 없습니다.

그런데 열왕기는 이 두 사람의 위치를 뒤집습니다.

이 역전은 단순히 왕위를 빼앗고 되찾는 정치적 사건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다윗 왕조의 존속을 둘러싼 더 깊은 문제가 걸려 있습니다.

여호와야훼는 다윗에게 그의 후손을 위한 왕조가 이어지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삼하 7:12–16). 그러나 아달랴는 그 후손들을 모두 죽여 버리려 합니다.

왕가의 자손이 사라진다면 그 약속은 어떻게 됩니까?

읽는 시간 20분소단락 711장 본문 읽기 →

왕의 자손들을 죽이는 여자와 한 아이를 살리는 여자

열왕기하 11:1–3 본문 →

아달랴가 없애려 한 것은 누구인가?

이야기는 아달랴의 잔혹한 행동으로 시작합니다.

아하시야의 어머니 아달랴는 자기 아들이 죽은 것을 보고 일어나 왕가의 자손들을 모두 죽였다.열왕기하 11:1 · 본디새김

아하시야는 예후의 반란에 휘말려 죽었습니다. 아달랴는 아합 집안과 다윗 집안을 연결한 왕실의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아합 왕조가 무너지는 과정에서 자신의 아들까지 죽자, 유다의 왕위를 이을 사람들을 제거합니다.

그녀가 왕위를 독점하려는 목적에서 그렇게 했다는 해석이 자연스럽습니다. 실제로 3절은 이후 아달랴가 그 땅을 다스렸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녀의 내면이나 정치적 계산을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다윗의 후손들입니다.

열왕기하 8:19는 여호와야훼께서 다윗에게 그의 아들들을 위한 등불을 언제나 주겠다고 말씀하셨으므로 유다를 멸망시키지 않으셨다고 기록합니다. 아달랴가 왕위를 이을 자손들을 모두 죽였다는 말은 다윗 왕조의 미래가 인간의 눈에는 사라진 것처럼 보이게 합니다.

요아스는 죽은 아하시야의 아들입니다. 따라서 아하시야의 어머니인 아달랴에게 요아스는 손자입니다. 아달랴가 제거하려 한 왕족들 가운데는 자신의 손자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권력을 둘러싼 싸움이 가족의 생명보다 앞서는 상황입니다.

아달랴는 모두 죽였는데 어떻게 요아스가 살아남았는가?

바로 다음 절에서 예상 밖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요람 왕의 딸이며 아하시야의 누이인 여호세바는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데려다가, 죽임을 당하는 왕의 아들들 가운데서 몰래 빼냈다. 그녀는 요아스와 그의 유모를 침실에 두었다. 그들이 요아스를 아달랴에게서 숨겼으므로 그는 죽임을 당하지 않았다.열왕기하 11:2 · 본디새김

아달랴가 왕실의 지위를 이용해 왕족을 죽였다면, 여호세바는 왕실과의 관계를 통해 한 왕족의 생명을 구합니다.

아달랴는 죽입니다.

여호세바는 살립니다.

그녀가 다윗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얼마나 분명하게 의식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행동의 결과는 다윗 왕조의 존속과 직접 연결됩니다.

다윗 왕조의 미래는 왕의 군대가 아니라, 죽음의 현장에서 아이를 빼내는 여호세바의 손에 맡겨져 있었습니다.

침실에서 성전으로

여호세바는 요아스와 그의 유모를 침실에 숨깁니다.

그리고 3절은 요아스가 여호와야훼의 집에서 여섯 해 동안 숨어 지냈다고 말합니다. 2절의 침실이 처음 아이를 숨긴 곳이고, 이후 그를 여호와야훼의 집으로 옮겼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침실이 처음부터 성전과 연결된 방이었을 가능성도 있어 구체적인 이동 경로를 확정할 수 없습니다.

또한 2절의 「그들이 요아스를 아달랴에게서 숨겼으므로」라는 표현에는 복수 주어가 사용됩니다. 여호세바 외에 누가 함께 아이를 숨겼는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역대하 22:11은 여호세바를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내라고 소개합니다. 이는 그녀가 어떻게 성전 안에서 아이를 보호할 수 있었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정보입니다. 다만 열왕기하 11장은 그녀와 여호야다의 혼인 관계를 직접 밝히지 않습니다.

왕궁은 권력이 있는 곳이지만 생명을 지키지 못하는 장소가 되었고, 성전은 정치적 권력을 행사하는 장소가 아니지만 왕조의 미래가 보존되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여섯 해 동안 요아스는 여전히 숨어 있어야 했습니다. 성전 안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안전이 자동으로 보장된 것은 아닙니다. 여호세바와 그를 돌보는 사람들의 계속된 보호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아달랴의 통치는 겉으로 드러나 있었습니다.

다윗 왕조의 미래는 감추어져 있었습니다.

본문은 그동안 누가 무엇을 먹이고 어떤 방법으로 아이를 감추었는지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섯 해라는 시간 자체가 보호의 지속성을 보여 줍니다.

처음 요아스를 살린 것은 죽음의 현장에서 아이를 데려온 행동이었습니다.

그 생명을 지킨 것은 이어진 여섯 해의 숨겨진 돌봄이었습니다.

그리고 일곱째 해가 되자, 이 숨겨진 생명을 세상에 드러낼 준비가 시작됩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모두 죽였다」는 진술을 단순히 죽이려고 시도했다는 뜻으로 약화할 필요는 없습니다. 본문은 왕가의 자손들을 전면적으로 죽인 사건을 먼저 진술한 뒤, 그 살육 가운데서 한 아이가 어떻게 예외적으로 살아남았는지 설명합니다. 이 모습은 출애굽기 1–2장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이집트의 파라오는 히브리 남자아이들을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출 1:22). 그러나 모세의 어머니는 아이를 숨겼고, 그의 누이와 파라오의 딸도 모세가 살아남는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출 2:1–10). 두 이야기는 폭력적인 권력이 아이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한 아이가 여성들의 행동을 통해 살아남는다는 점에서 닮았습니다. 두 이야기 사이에 직접적인 인용이나 명시적인 예언 성취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생명을 위협하는 권력과 그 생명을 보호하는 사람들의 행동이라는 주제적 연결이 있을 뿐입니다.

여섯 해 동안 숨겨진 왕이 드러나다

열왕기하 11:4–11 본문 →

여호야다는 왜 군인들에게 먼저 맹세하게 했는가?

일곱째 해가 되자 제사장 여호야다가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칠 년째에 여호야다는 전갈을 보내 가리 사람들과 호위병들을 지휘하는 백부장들을 불러다가 여호와야훼의 집에 있는 자기에게로 데려왔다. 그는 그들과 언약을 맺고 여호와야훼의 집에서 그들에게 맹세하게 한 다음, 왕의 아들을 보여 주었다.열왕기하 11:4 · 본디새김

아달랴가 여전히 통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왕의 후손을 공개한다는 것은 그 아이를 다시 죽음의 위험에 노출하는 일이었습니다. 여호야다는 왕의 존재를 밝히기 전에 그를 지킬 사람들을 확보해야 했습니다.

여호야다는 단순히 놀라운 비밀을 공개하여 군인들의 흥분을 이끌어 내려 하지 않습니다. 그는 먼저 그들이 어떤 약속 아래 행동할 것인지 분명하게 합니다. 더욱이 이 언약과 맹세가 이루어진 장소는 여호와야훼의 집입니다. 이는 단순히 군사 지휘관들 사이의 비밀 협약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책임을 지는 약속의 성격을 띱니다.

다만 4절은 그들이 맺은 언약의 구체적인 문구를 기록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 맹세가 어떤 조항으로 이루어졌는지까지 재구성할 수는 없습니다.

여섯 해 동안 감추어져 있던 아이가 처음으로 왕권 회복을 준비하는 사람들 앞에 나타납니다.

안식일의 근무 교대를 이용하다

5–8절은 경비병들을 어떻게 배치해야 하는지 상세하게 설명합니다.

여호야다는 안식일에 근무를 시작하는 사람들과 근무를 마치고 나가는 사람들에게 각각 임무를 부여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왕궁을 지키고, 어떤 사람들은 성문을 지킵니다. 근무를 마치는 부대도 그냥 돌아가지 않고 여호와야훼의 집에서 왕을 보호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왕궁과 성전으로 연결되는 주요 장소들을 동시에 통제할 수 있습니다. 근무를 시작하는 사람뿐 아니라 근무를 마치는 사람까지 동원함으로써 왕을 보호할 병력이 확보됩니다.

「각자 손에 무기를 들고 왕의 둘레를 에워싸라. 대열 안으로 들어오는 자는 죽임을 당해야 한다. 왕이 나갈 때나 들어올 때나 왕과 함께 있어라.」열왕기하 11:8 · 본디새김

아직 공개적으로 왕좌에 앉지도 못한 아이를 이미 「왕」이라고 부릅니다. 그 아이는 지금 사람들의 보호 없이는 움직일 수 없지만, 여호야다와 경비병들은 그를 왕으로 대하고 있습니다.

아달랴에게는 이미 권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에게 참된 왕은 성전에 숨어 있는 아이입니다.

누가 지금 명령을 내리고 있는가와 누가 정당하게 왕위를 이어야 하는가는 같은 질문이 아닙니다.

성전에서 나온 다윗의 창과 방패

여호야다는 백부장들에게 무기를 나누어 줍니다.

제사장은 여호와야훼의 집에 있던 다윗 왕의 창과 방패들을 백부장들에게 주었다.열왕기하 11:10 · 본디새김

이제 다윗의 후손들이 거의 모두 죽임당한 상황에서 그 무기들이 다시 등장합니다. 성전에 감추어져 있던 다윗 왕조의 계승자를 보호하기 위해, 성전에 보관되어 있던 다윗의 무기들이 사용됩니다.

아달랴는 왕궁을 장악했지만, 다윗 왕조의 과거와 미래는 여호와야훼의 집에서 다시 연결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호위병들은 무기를 들고 제단과 성전 곁에 늘어서서 아이를 에워쌉니다. 본문은 무력 사용을 무조건 선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왕을 지키기 위해 무장한 사람들이 배치되고, 침입자를 죽이라는 명령도 내려집니다. 여호야다가 사용하는 군사력은 우선 그 아이가 다시 살해되는 일을 막기 위해 배치됩니다.

여섯 해 동안 숨겨져 있던 아이가 백성 앞에 나타날 순간입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가리 사람들」이 정확히 어떤 집단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왕실을 호위하는 군사 조직과 관련된 사람들로 이해할 수 있지만, 그들의 민족적 기원까지 이 구절만으로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호위병들」은 본래 달리는 사람들이라는 뜻을 가진 표현에서 나왔습니다. 왕의 명령을 수행하거나 왕실을 호위하는 사람들과 연결되는 명칭입니다. 그러나 여호야다가 특별히 안식일을 선택한 이유를 본문은 밝히지 않습니다. 경비병들을 효과적으로 모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군사적 설명이 가능하지만, 안식일 자체에 특별한 신학적 의미를 부여하려 했다고 확정할 근거는 없습니다. 또한 5–7절의 부대 구성은 완전히 명료하지 않습니다. 삼분의 일씩 배치하라는 명령과 근무를 마치는 두 부대에 대한 지시를 어떻게 계산해야 하는지에는 해석상 어려움이 있습니다. 물론 이 창과 방패들이 다윗의 손에서 직접 사용되었던 것인지, 그의 시대에 왕실이 소유했던 무기들인지까지는 알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본문이 그 무기들을 명시적으로 다윗과 연결한다는 사실입니다.

왕관과 증언물 — 왕을 세우는 자리에서 함께 놓인 것

열왕기하 11:12 본문 →

왕관만 얹지 않은 이유

여호야다는 왕의 아들을 데리고 나옵니다.

여호야다는 왕의 아들을 데리고 나와 그에게 왕관과 증언물을 얹었다. 사람들이 그를 왕으로 세우고 그에게 기름을 부었다. 그들은 손뼉을 치며 말했다. 「왕께서 오래 사시기를 빕니다.」열왕기하 11:12 · 본디새김

왕관은 사람들에게 누가 왕인지를 드러내는 상징입니다. 요아스는 이제 더 이상 감추어진 아이가 아니라 공개적으로 인정받은 왕입니다.

요아스의 즉위식에서 왕권을 나타내는 왕관 외에 증언물이 함께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그의 왕위는 단순히 힘을 가진 사람들이 그를 선택했기 때문에 성립하는 것으로 제시되지 않습니다. 그는 다윗 왕조의 후손이며, 하나님과 그 백성의 역사 안에서 왕으로 세워지고 있습니다.

왕이 된 아이에게 사람들이 무엇을 빌었는가?

그들은 손뼉을 치며 외칩니다.

「왕께서 오래 사시기를 빕니다.」 이 말은 왕의 즉위식에서 사용될 수 있는 전형적인 환호입니다. 그러나 이 장에서는 특별한 울림을 갖습니다.

요아스는 죽임당할 뻔했던 아이이기 때문입니다.

왕의 장수를 바라는 일반적인 축원이 이 이야기에서는 실제로 죽음에서 살아남은 아이의 미래를 향한 말로 들립니다. 아달랴가 끊어 버리려 했던 생명 앞에서, 사람들은 이제 그 생명이 오래 이어지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환호가 커지자, 그 소리는 왕궁에 있던 아달랴에게까지 들립니다.

조금 더 깊이

이 구절에서 증언물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한 가지 해석은 왕에게 주어진 율법이나 언약의 말씀을 담은 문서로 이해합니다. 신명기 17:18–20은 왕이 율법의 등사본을 가지고 평생 읽으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을 지키도록 명령합니다. 그런 점에서 왕의 즉위식에 말씀을 상징하는 문서가 등장했다는 이해가 가능합니다. 다른 해석은 증언물을 왕권을 나타내는 특별한 증표나 왕위 계승의 정당성을 증명하는 물건으로 이해합니다. 원문은 왕관과 증언물을 함께 제시하지만, 증언물의 구체적인 모양이나 사용 방법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것을 반드시 왕의 머리에 얹은 율법책이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왕이 백성 위에 무제한으로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하나님의 말씀 아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요아스의 왕관과 증언물은 이러한 구약의 왕권 이해와 나란히 읽을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증언물을 신명기의 특정한 율법 문서와 동일시하는 것은 가능한 해석이지 확정된 사실은 아닙니다.

「반역이다」라고 외치는 아달랴

열왕기하 11:13–16 본문 →

누가 누구에게 반역했는가?

아달랴는 호위병들과 백성의 소리를 듣고 여호와야훼의 집으로 갑니다.

그녀가 보니 왕은 관례대로 기둥 곁에 서 있었고, 지휘관들과 나팔수들이 왕 곁에 있었다. 그 땅의 모든 백성이 기뻐하며 나팔을 불고 있었다. 아달랴는 자기 옷을 찢으며 외쳤다. 「반역이다. 반역이다.」열왕기하 11:14 · 본디새김

아달랴의 관점에서 보면 실제로 자신의 통치를 뒤집으려는 행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군대가 다른 사람을 왕으로 세웠고, 백성은 그를 환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녀가 이 사건을 반역이라고 부르는 것은 자신의 권력이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을 정확히 인식한 반응입니다.

그러나 독자는 아달랴가 모르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녀가 왕가의 후손들을 죽였고, 요아스는 그 학살에서 살아남은 아하시야의 아들입니다. 따라서 아달랴가 반역이라고 부르는 사건은 이야기 전체에서는 다윗 왕조의 정당한 계승자를 왕위에 세우는 사건으로 제시됩니다.

그녀는 자기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을 반역자로 규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열왕기가 독자에게 제시하는 왕권의 정당성은 그녀가 현재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왜 아달랴를 성전 밖으로 끌어냈는가?

여호야다는 군대를 지휘하는 백부장들에게 아달랴를 대열 밖으로 끌어내라고 명령합니다.

제사장 여호야다는 군대를 지휘하는 백부장들에게 명령하며 말했다. 「그 여자를 대열 밖으로 끌어내라. 그 여자를 따라오는 자는 칼로 죽여라.」 제사장이 「여호와야훼의 집에서 그 여자를 죽여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열왕기하 11:15 · 본디새김

성전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장소이지, 정치적 적을 처형하는 장소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구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달랴는 결국 말들이 드나드는 입구를 지나 왕궁에 이르고, 그곳에서 죽임당합니다.

요아스는 왕실에서 죽임당할 위험에 놓였다가 성전으로 옮겨져 살아남았습니다. 아달랴는 성전에서 새로운 왕을 발견한 뒤 왕궁으로 끌려가 죽습니다.

두 사람의 움직임이 반대 방향을 향합니다.

요아스에게 성전은 생명을 보호받은 곳입니다.

아달랴에게 성전은 자신의 왕권이 끝났음을 확인한 곳입니다.

왕위가 바뀌었지만, 나라가 누구에게 속하는가라는 질문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여호야다는 그 질문에 언약으로 대답합니다.

조금 더 깊이

열왕기하 9장에서 이세벨은 예후를 시므리라고 부르며 반역자로 비난했습니다. 이번에는 아달랴가 요아스의 즉위식을 보고 반역이라고 외칩니다. 두 장면 모두 권력을 잃어 가는 왕실의 여인이 자신에게 맞서는 행동을 반역으로 규정합니다. 요아스는 단순히 힘으로 왕권을 빼앗으려는 장군이 아닙니다. 그는 죽임당할 뻔했던 다윗의 후손이며, 여섯 해 동안 감추어져 있던 왕위 계승자입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의 집에서 그 여자를 죽여서는 안 된다」는 규정을 모든 경우에 성전 안에서 피를 흘리는 것을 절대적으로 금지하는 일반 원칙으로 확대하기는 어렵습니다. 바로 다음 단락에서는 바알 신전의 제단 앞에서 맛단이 죽임당하기 때문입니다. 여호야다가 특정하게 보호하려는 장소는 여호와야훼의 집입니다.

왕을 세운 다음, 나라가 누구에게 속하는지 선언하다

열왕기하 11:17–18 본문 →

두 언약은 왜 따로 기록되었는가?

여호야다는 왕과 백성이 여호와야훼의 백성이 되도록 여호와야훼와 그들 사이에 언약을 맺었다. 또 왕과 백성 사이에도 언약을 맺었다.열왕기하 11:17 · 본디새김

첫 번째 언약은 왕과 백성이 누구에게 속하는지를 밝힙니다. 이 말은 왕이 백성의 최종적인 주인이 아니라는 뜻을 포함합니다.

왕과 백성은 모두 여호와야훼께 속합니다.

왕이 백성 위에 서 있다고 해서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있는 언약보다 더 높은 위치에 놓이는 것이 아닙니다. 왕 자신도 여호와야훼의 백성으로서 하나님께 충성해야 합니다.

두 번째 언약은 왕과 백성 사이의 관계를 다룹니다. 본문은 이 언약의 구체적인 조항을 기록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어떤 통치권과 의무가 합의되었는지 세부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왕권은 단순히 왕이 백성에게 명령하는 일방적인 힘으로만 제시되지 않습니다. 왕과 백성의 관계 역시 약속과 책임으로 규정됩니다. 왕과 백성 사이의 관계는 먼저 그들이 여호와야훼의 백성이라는 정체성 안에서 이해됩니다.

왕이 백성을 다스리기 전에, 왕과 백성 모두 여호와야훼께 속한 사람들입니다.

아달랴의 권력은 왕가의 후손들을 제거하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요아스의 왕권은 여호와야훼와 백성 앞에서 언약을 맺는 일로 자리 잡습니다.

왜 바알 신전을 헐었는가?

언약이 맺어지자 백성은 바알 신전으로 갑니다.

그 땅의 모든 백성이 바알 신전으로 가서 그것을 헐었다. 그들은 그곳의 제단들과 형상들을 산산이 부수고, 바알의 제사장 맛단을 제단들 앞에서 죽였다. 제사장은 여호와야훼의 집에 감독들을 두었다.열왕기하 11:18 · 본디새김

여기서 바알 신전의 파괴는 단순히 정치적 정권 교체에 뒤따른 보복으로만 읽기 어렵습니다. 앞 절에서 왕과 백성이 여호와야훼의 백성이 되기로 언약을 맺었기 때문입니다. 바알 신전의 파괴는 그 언약에 따라 다른 신의 숭배를 거부하는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출애굽기 20:3–5는 이스라엘에게 여호와야훼 외에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신명기 6:4–5도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신 여호와야훼께 온 마음으로 충성할 것을 요구합니다.

북이스라엘에서는 예후가 바알 숭배를 제거했습니다. 예후의 경우에는 왕이 자신의 열성을 내세우며 바알 숭배자들을 속여 모으고 제거했습니다. 여기서는 먼저 왕과 백성이 여호와야훼께 속한다는 언약이 맺어지고, 그다음 백성이 바알 신전을 무너뜨립니다.

그렇다고 유다의 사건이 폭력에서 자유롭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바알의 제사장 맛단은 제단 앞에서 죽임당합니다. 다만 서술의 중심이 왕 개인의 열성을 과시하는 데 있지 않고, 공동체가 여호와야훼께 속한다는 언약을 회복하는 데 놓여 있다는 차이를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이 바알 신전이 언제, 누구에 의해 세워졌는지는 11장에서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아달랴의 왕실이 아합 집안과 연결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그 집안의 종교적 영향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지만, 이 구절만으로 아달랴가 신전을 건축했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성전의 감독들을 세운 이유

바알 신전을 허무는 장면에 이어 여호와야훼의 집을 관리할 사람들을 세우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바알 신전을 무너뜨리는 것은 기존의 잘못된 종교적 질서를 제거하는 행동입니다. 여호와야훼의 집에 감독들을 세우는 것은 예배의 질서가 앞으로도 유지되도록 책임자를 두는 행동입니다.

한 번의 극적인 사건으로 바알 신전은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의 집을 돌보고 예배의 질서를 유지하는 일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역대하 23:18–19는 이 부분을 더 자세히 설명하며, 여호야다가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 성전의 직무를 맡기고 문지기들을 세운 일을 기록합니다. 열왕기하 11장은 그 모든 세부 사항을 길게 설명하지 않지만, 감독들을 세웠다는 한 문장으로 새로운 질서를 유지하려는 조치를 보여 줍니다.

이제 언약이 맺어졌고 예배의 질서도 정비되었습니다.

그다음 왕이 마침내 왕궁으로 들어갑니다.

조금 더 깊이

요아스가 왕위에 올랐다는 사실만으로 그의 앞으로의 통치가 모두 올바를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윗 왕조를 보존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그 왕조에 속한 왕들이 얼마나 충실하게 살아가는가는 구별되는 문제입니다. 요아스는 다윗의 후손이라는 이유로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왕이 된 뒤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가는 여호와야훼와 백성 사이의 언약에서 규정됩니다. 이러한 왕권 이해는 구약의 왕에 대한 기대를 형성합니다. 다윗의 후손이 왕위를 잇는 것 자체가 마지막 목표가 아니라, 그 왕이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따라 다스리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23:5–6은 훗날 다윗에게서 의로운 후손이 일어나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을 말합니다. 신약에서 예수를 다윗의 후손으로 소개하는 말씀들(눅 1:32–33 등)은 이러한 왕권의 기대와 연결됩니다. 이는 열왕기하 11장이 예수를 직접 예언한다는 뜻이 아니라, 다윗 왕조의 보존과 의로운 왕에 대한 구약의 기대가 신약에서 이어진다는 정경적 연결입니다.

성전에서 왕궁으로 내려온 왕

열왕기하 11:19–20 본문 →

왕은 왜 이제야 왕좌에 앉는가?

요아스는 이미 12절에서 왕으로 선포되었습니다.

그런데 실제 왕궁의 왕좌에 앉는 장면은 19절에야 등장합니다. 그 사이에 아달랴가 죽었고, 언약이 맺어졌으며, 바알 신전이 무너졌습니다. 요아스의 왕권은 성전에서 공개적으로 선포되었지만, 그가 실제로 왕궁의 왕좌에 앉는 것은 공동체의 언약 회복 이후입니다.

제사장 여호야다는 백부장들과 가리 사람들, 호위병들과 그 땅의 백성을 데리고 요아스를 여호와야훼의 집에서 왕궁으로 데려갑니다. 왕은 호위병들의 문을 통해 왕궁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왕좌에 앉습니다.

여섯 해 동안 여호와야훼의 집에 숨어 있었던 아이가 이제 모든 사람 앞에서 왕궁으로 들어갑니다. 성전에서 숨겨져 있던 생명이 공개적으로 왕권을 이어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전과 왕궁을 단순히 선한 장소와 악한 장소로 나누어서는 안 됩니다. 왕궁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닙니다. 다윗의 후손이 왕좌에 앉는 일은 이 이야기에서 긍정적으로 그려집니다.

문제는 그 왕좌에 누가 어떤 방식으로 앉고, 누구에게 책임을 지며 다스리는가에 있습니다.

성읍이 조용해졌다는 말

그 땅의 모든 백성이 기뻐했고 성읍은 조용해졌다. 그들은 이미 아달랴를 왕궁에서 칼로 죽인 뒤였다.열왕기하 11:20 · 본디새김

여기서도 정치적 격변이 끝나고 성읍이 안정된 상태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용해졌다」는 말이 이후 모든 불의와 갈등이 사라졌다는 선언은 아닙니다.

성읍의 평온은 폭력적인 왕권 교체 이후에 찾아왔습니다. 따라서 이 장의 결말을 아무런 대가 없이 행복한 질서가 회복된 이야기로만 읽어서는 안 됩니다.

처음에는 죽음이 왕권을 결정했습니다.

마지막에는 보호받아 살아남은 생명이 왕권을 이어 갑니다.

그 사이에서 백성은 다시 자신들이 여호와야훼의 백성이라는 언약을 확인했습니다. 이 장에서 왕권의 회복은 한 아이가 왕좌에 앉는 것으로 완성되지만, 그 의미는 왕과 백성이 함께 여호와야훼께 속한다는 언약에서 드러납니다.

맺음 — 숨어 있던 아이가 왕좌에 앉기까지

열왕기하 11:1–20 본문 →

그 아이는 처음부터 아무런 힘도 없었습니다. 왕가의 학살에서 스스로 빠져나올 수도 없었고, 여섯 해 동안 자신의 생명을 지킬 수도 없었으며, 혼자 힘으로 왕좌를 되찾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가 살아남은 것은 사람들이 그를 보호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보호의 역사 안에서 다윗에게 하신 여호와야훼의 약속이 이어졌습니다.

왕궁의 권력은 여섯 해 동안 아달랴에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다윗 왕조의 미래는 여호와야훼의 집에 살아 있었습니다.

왕궁에는 왕좌를 차지한 사람이 있었지만, 성전에는 왕위를 이어 갈 아이가 숨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아이가 성전에서 나와 왕좌에 앉았을 때, 온 백성이 기뻐하고 성읍은 조용해졌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