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풀어 읽기 · 22장
이 장의 자리 · 18–23장 · 홀로 남은 유다
성전에서 발견한 무너진 언약
성전은 보수할 수 있습니다. 갈라진 벽을 메우고, 낡은 목재를 바꾸고, 무너진 곳에 새 돌을 쌓으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관계가 무너졌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진심으로 돌이킨 왕이 있는데도, 왜 하나님은 심판을 거두지 않으시는가요?
열왕기하 22장은 오랫동안 하나님의 말씀에서 멀어진 백성과, 그 말씀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한 왕을 나란히 보여 줍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무엇을 심판하시며, 누구의 목소리를 들으시는지를 드러냅니다.
말씀을 발견하기 전부터 올바른 길을 걸었던 왕
요시야는 여덟 살에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여호와야훼의 눈에 옳은 일을 했고, 자기 조상 다윗이 걸었던 모든 길을 걸으며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벗어나지 않았다.열왕기하 22:2 · 본디새김
이 말은 신명기 17:18–20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곳은 이스라엘의 왕이 율법을 곁에 두고 평생 읽으며, 다른 형제들 위에 마음을 높이지 말고 명령에서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이스라엘의 왕에게 요구된 것은 단순히 능력 있는 통치가 아니었습니다. 왕 자신도 하나님의 말씀 아래 있는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열왕기하 22장의 독특한 점은 요시야가 아직 율법책을 발견하기도 전에 이런 평가를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율법책은 통치 십팔 년째에 발견됩니다(22:3, 8). 따라서 열왕기의 서술만 놓고 보면, 요시야의 올바른 행실이 그 책을 발견한 뒤에야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역대하 34:3–7은 이 점을 더 구체적으로 보여 줍니다. 그 기록에 따르면 요시야는 통치 팔 년째에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고, 십이 년째부터 우상을 제거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율법책을 발견한 십팔 년째보다 앞선 일입니다.
그러므로 책의 발견은 하나님을 전혀 모르던 왕이 처음 신앙을 갖게 된 사건이라기보다, 이미 하나님을 찾고 있던 왕이 자신과 백성이 서 있는 현실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더욱 깊이 깨닫게 된 사건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성전의 갈라진 곳을 고치다
요시야가 서기관 사반을 성전으로 보낸 목적은 분명했습니다. 성전에 들어온 은을 계산하고, 공사를 감독하는 사람들에게 맡겨, 성전의 손상된 부분을 고치려는 것이었습니다.
문지방을 지키는 사람들이 백성에게서 은을 모았고, 그 은은 공사 감독자들을 거쳐 목공과 건축공과 돌을 쌓는 사람들에게 전달되었습니다. 필요한 목재와 다듬은 돌도 구입했습니다.
앞 장에서 므낫세는 여호와야훼의 집 안에 다른 신들을 위한 제단을 세우고, 아세라 목상을 두기까지 했습니다(21:4–7). 예배의 중심이어야 할 성전이 다른 신들을 섬기는 장소로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역사를 지나 요시야는 성전을 다시 돌보고 있습니다.
「다만 그들의 손에 맡긴 은은 그들과 정산하지 않도록 하여라. 그들이 성실하게 일하기 때문이다.」열왕기하 22:7 · 본디새김
그러나 곧 발견될 책은 유다 전체가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얼마나 불성실했는지를 드러냅니다. 물론 본문이 공사 담당자들의 신실함과 유다의 불순종을 명시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두 장면이 이어지면서 독자는 서로 다른 차원의 성실함을 보게 됩니다.
성전의 건물을 돌보는 일과 하나님께 신실하게 살아가는 일은 연결되어 있지만 동일하지 않습니다. 하나의 일은 잘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다른 하나에는 훨씬 심각한 문제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 문제는 성전 안에서 발견된 책을 통해 드러납니다.
성전에서 발견된 책은 무엇이었는가?
대제사장 힐기야가 서기관 사반에게 말했다. 「내가 여호와야훼의 집에서 율법책을 발견했소.」 힐기야가 그 책을 사반에게 주자 사반이 읽었다.열왕기하 22:8 · 본디새김
사반은 왕에게 돌아와 먼저 성전 공사에 필요한 은을 전달했다고 보고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입니다.
서기관 사반이 왕에게 알렸다. 「제사장 힐기야가 제게 책 한 권을 주었습니다.」 사반이 왕 앞에서 그 책을 읽었다.열왕기하 22:10 · 본디새김
사반은 그 책을 읽고도 왕에게 보고할 때는 단지 ‘책 한 권’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서술자는 이미 그것이 율법책이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왕은 책의 내용을 듣고 비로소 반응합니다.
조금 더 깊이
발견된 책에는 크게 두 가지 읽기가 있습니다. 하나는 신명기 또는 그 핵심 부분이었을 가능성입니다. 요시야가 책을 듣고 심판을 두려워하는 모습은 신명기 28–29장의 언약적 저주와 잘 어울립니다. 이어지는 23장의 언약 갱신과 우상 제거도 신명기의 요구들과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다른 하나는 그보다 넓은 모세 율법의 모음이었을 가능성입니다. 본문 자체는 발견된 책을 특정한 범위로 한정하지 않습니다. 언약을 어길 때 땅에 재앙이 닥친다는 경고도 신명기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레위기 26:14–39에도 나타납니다. 열왕기하 23:2에서는 이 책을 ‘언약책’이라고 부릅니다. 이 명칭은 그 책이 왕과 백성에게 단순한 종교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언약적 관계를 다시 확인하도록 요구했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따라서 발견된 책이 신명기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본문의 내용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그 책의 정확한 범위까지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왕은 왜 자기 옷을 찢었는가?
왕은 율법책의 말을 듣고 자기 옷을 찢었다.열왕기하 22:11 · 본디새김
요시야의 경우에는 조금 다릅니다. 그는 누군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것도, 적군이 성읍에 들이닥쳤다는 보고를 받은 것도 아닙니다.
13절에서 요시야가 직접 이유를 밝힙니다.
「가서, 발견된 이 책의 말에 관해 나를 위해, 백성을 위해, 온 유다를 위해 여호와야훼에게 물어라. 우리 조상들이 이 책의 말을 듣지 않고, 우리에 관해 기록된 모든 것대로 행하지 않아 우리를 향해 타오른 여호와야훼의 분노가 크기 때문이다.」열왕기하 22:13 · 본디새김
요시야는 책에서 단순히 지켜야 할 명령 몇 가지를 새로 발견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자기 백성의 역사를 다른 눈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조상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어 왔는지, 지금 유다가 어떤 위험 앞에 서 있는지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불순종한 것은 조상들이지만, 하나님의 분노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현재의 왕입니다. 그는 과거의 잘못을 자신과 무관한 역사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요시야가 조상의 모든 행위에 직접 책임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본문이 보여 주는 것은, 왕이 자신과 현재의 유다가 그 불순종의 역사에서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은 한 세대만의 계약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언약 안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백성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전 세대의 반복된 불순종은 다음 세대가 살아가는 현실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요시야가 이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자신의 경건만으로 안심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미 왕은 상당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성전을 보수하게 할 수 있었고, 공사에 필요한 은을 관리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뒤에는 자신의 권한만으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먼저 하나님이 이 상황을 어떻게 보시는지 묻습니다.
요시야의 위대함은 자신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여긴 데 있지 않습니다. 자신이 왕이어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는 들어야 할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한 데 있습니다. 이 태도는 2절에서 그가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벗어나지 않았다는 평가가 실제로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 줍니다.
그가 걸어야 할 길을 최종적으로 정하시는 분은 왕 자신이 아니라 여호와야훼였습니다.
훌다의 예언 — 왕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요시야가 보낸 사절들은 예언자 훌다를 찾아갑니다.
본문은 훌다를 ‘예언자’라고 분명히 부릅니다. 그녀는 살룸의 아내였고 예루살렘의 둘째 구역에 살고 있었습니다. 대제사장 힐기야와 서기관 사반을 포함한 왕의 공식 사절단이 예언자 훌다에게 갑니다.
그녀가 여성이어서 그 권위를 의심하거나, 제사장이 아닌 사람에게 말씀을 물을 수 없다고 문제 삼는 장면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본문에서 훌다는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로 인정받습니다.
훌다의 대답은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첫 번째는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선언이고, 두 번째는 요시야 개인에 대한 선언입니다.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합니다. 『보아라, 내가 유다 왕이 읽은 책의 모든 말대로 이곳과 그 주민들에게 재앙을 내리겠다.』」열왕기하 22:16 · 본디새김
요시야가 책을 듣고 두려워했던 이유가 옳았다는 확인입니다.
「『그들이 나를 버리고, 자기 손으로 한 모든 일로 나를 분노하게 하려고 다른 신들에게 제물을 태워 바쳤기 때문이다. 내 분노가 이곳에서 타올라 꺼지지 않을 것이다.』」열왕기하 22:17 · 본디새김
가장 먼저 제시된 이유는 ‘그들이 나를 버리고’라는 말입니다. 여기에는 관계의 문제가 담겨 있습니다.
므낫세는 성전 안에 다른 신들을 위한 제단을 세웠고,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했으며, 점술과 주술을 행했습니다(21:4–6). 여호와야훼를 섬겨야 할 장소에서 다른 신들을 섬기고, 여호와야훼의 가르침과 충돌하는 행위들을 제도적으로 확대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분노는 근거 없는 격정으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백성과 맺은 언약이 오랫동안 무너져 온 역사에 대한 반응입니다.
훌다가 전한 심판은 율법책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새롭게 생겨난 심판이 아닙니다.
바로 앞 장에서 여호와야훼는 예언자들을 통해 예루살렘과 유다에 재앙을 내리겠다고 이미 선언하셨습니다(21:10–15). 그 이유도 므낫세가 행한 악과 유다 백성의 불순종이었습니다.
율법책의 발견은 하나님이 심판하실 이유를 만들어 낸 사건이 아니라, 이미 경고되어 온 심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왕이 깨닫게 된 사건입니다.
그러나 훌다의 예언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는 이 백성을 이집트에서 건져 내시고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시나이에서 맺은 언약은 그 구원의 역사 위에 세워졌습니다(출애굽기 19:4–6). 그런데 백성은 자신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제물을 바쳤습니다.
"네가 들었으므로, 나도 들었다"
훌다는 유다의 운명에 대한 선언에 이어 요시야에게 전할 말씀을 따로 전합니다.
「『이곳과 그 주민들이 황폐해지고 저줏거리가 되리라고 내가 한 말을 듣고 네 마음이 부드러워져, 네가 여호와야훼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옷을 찢으며 내 앞에서 울었으므로, 나도 들었다. 여호와야훼의 말이다.』」열왕기하 22:19 · 본디새김
앞에서는 요시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요시야의 반응을 들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13절에서 요시야는 조상들이 책의 말을 ‘듣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소리를 귀로 받아들이는 일이 아닙니다. 말을 받아들여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까지 포함합니다.
반대로 요시야는 말씀을 듣고 즉시 자신을 낮춥니다.
그는 하나님의 경고를 자신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자기 통치를 정당화하려고 말씀의 의미를 축소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말씀을 자기 자신과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참된 평가로 받아들였습니다.
성경에서 왕의 마음이 높아지는 것은 반복해서 위험한 일로 나타납니다. 신명기 17:20은 왕이 형제들 위에 마음을 높이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합니다. 반면 요시야는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지만 스스로 낮아집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부드러운 마음은, 자신의 권력이나 확신보다 하나님의 판단을 더 무겁게 받아들이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여호와야훼는 그런 사람의 울음을 들으십니다.
같은 하나님이 심판도 선언하시고, 사람의 울음에도 응답하십니다. 이 둘은 서로 모순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백성의 실제 행위에 대한 응답이듯, 요시야에게 주어진 말씀도 그의 실제 반응에 대한 응답이기 때문입니다.
평안히 묻힐 것이지만, 재앙은 사라지지 않는다
마침내 요시야에게 주어지는 약속이 선언됩니다.
「『그러므로 보아라, 내가 너를 네 조상들에게로 거두어들이겠다. 너는 평안히 네 무덤에 묻힐 것이며, 네 눈은 내가 이곳에 내리는 모든 재앙을 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왕에게 돌아가 보고했다.열왕기하 22:20 · 본디새김
하나님은 요시야의 겸손을 분명히 인정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한 사람의 겸손이 이전 세대부터 지속되어 온 유다 전체의 불순종과 그 결과를 모두 없애지는 않습니다.
열왕기하 23:25–27은 이 긴장을 더욱 분명하게 만듭니다. 다음 장에서 요시야는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여호와야훼께 돌아선 왕으로 평가됩니다. 그럼에도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는 거두어지지 않았다고 서술됩니다.
이는 개인의 회개가 무의미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반대로 요시야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그 회개가 실제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본문은 한 사람의 진실한 돌이킴과 공동체 전체의 역사적 책임을 구별합니다.
요시야에게 주어진 약속의 중심에는 유다에 닥칠 재앙에서 그가 구별된다는 선언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은 심판 자체가 사라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심판을 선언하셨고, 자신의 생애에는 그 재앙을 보지 않게 하시겠다고 하셨다면, 앞으로도 백성을 돌이키려 애쓸 이유가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그의 실제 대답은 다음 장에 나타납니다. 그는 백성을 모아 언약책을 읽어 주고, 여호와야훼 앞에서 언약을 새롭게 하며, 유다의 우상숭배를 제거하는 일을 계속합니다(23:1–24).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좋은 결과를 보장받은 뒤에만 순종하는 일이 아닙니다.
조금 더 깊이
하나님은 요시야가 평안히 무덤에 묻힐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열왕기하 23:29–30에서는 요시야가 므기또에서 이집트 왕 느고에게 죽임을 당하고, 그의 신하들이 시신을 예루살렘으로 옮겨 묻었다고 기록합니다. 역대하 35:23–24에는 그가 전투 중 활에 맞아 죽음에 이르는 장면이 더 자세히 전해집니다. 한 가지 읽기는 이 말이 고통 없는 죽음을 보장하기보다, 요시야가 예루살렘에 닥칠 멸망을 보지 않은 채 조상들의 무덤에 안장된다는 의미에 무게를 둔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20절은 평안한 매장에 이어 그가 재앙을 보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다른 읽기는 이 표현을 죽음의 평안함에 관한 약속으로 받아들이고, 요시야의 전사와 그 약속 사이에 해결되지 않는 긴장이 남아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어느 경우든 본문이 그 문제를 명시적으로 풀어 주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어려움이 사라지는 것처럼 설명해서는 안 됩니다.
맺음 — 찢어진 옷과 들으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신실함은 죄를 가볍게 넘기는 데 있지 않고, 하나님의 자비는 죄가 심각하지 않다고 선언하는 데 있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죄라고 말씀하시면서도, 그 말씀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사람의 울음을 들으십니다.
요시야는 그 책을 듣고 자기 옷을 찢었습니다.
그에게는 왕궁도 있었고, 왕권도 있었고, 명령을 수행할 신하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신을 방어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옷을 찢고 울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예언자를 통해 「나도 들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전은 아직 보수 중이었고, 유다를 향한 심판도 거두어지지 않았습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왕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하나님도 왕의 울음을 들으셨습니다.
열왕기하 22장은 그 응답을 전한 사절들이 왕에게 돌아와 보고하는 장면에서 끝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