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풀어 읽기 · 3장
이 장의 자리 · 1–8장 · 엘리야에서 엘리사로
물은 주셨지만, 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세 나라의 왕이 군대를 이끌고 전쟁에 나섰습니다. 이스라엘과 유다와 에돔의 연합군이었습니다. 그러나 적을 만나기도 전에 군대는 전멸할 위기에 놓입니다. 광야에서 물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모압을 그들의 손에 넘겨주셨습니다. 그런데 왜 이야기는 승리의 선언이 아니라 연합군의 철수로 끝납니까?
이 장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말씀과 인간의 판단, 생명을 살리는 물과 생명을 앗아 가는 전쟁, 약속된 승리와 설명되지 않은 철수가 서로 맞물려 있습니다.
바알의 기둥은 없앴지만 여로보암의 죄는 붙들었다
열왕기하 3장은 이스라엘 왕 여호람에 대한 평가로 시작합니다.
그는 여호와야훼가 보기에 악한 일을 했다. 다만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만큼은 아니었다. 그는 자기 아버지가 만든 바알의 기둥을 없앴다.열왕기하 3:2 · 본디새김
여호람은 아합과 이세벨의 아들입니다. 그의 아버지 아합은 사마리아에 바알을 위한 신전을 세우고 제단을 만들었습니다(열왕기상 16:31–33). 왕가에서 후원하던 바알 숭배의 상징물을 왕 자신이 없앴기 때문입니다. 열왕기 저자는 이 행동을 인정하여 여호람이 아버지와 어머니만큼 악하지는 않았다고 평가합니다.
그러나 곧바로 다른 말이 이어집니다.
그러나 그는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을 죄짓게 한 그 죄들에 달라붙어 거기서 떠나지 않았다.열왕기하 3:3 · 본디새김
여로보암은 북이스라엘의 첫 왕이었습니다. 그는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세우고 그것을 중심으로 이스라엘의 예배 체계를 구성했습니다(열왕기상 12:26–33). 여호람은 아버지의 바알 기둥은 제거했지만, 북이스라엘 왕국의 기초에 자리 잡은 잘못된 예배는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전 세대의 잘못 가운데 일부를 바로잡았지만, 그 잘못의 더 깊은 뿌리에서는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독자는 모압과의 전쟁에서 여호람이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께 도움받는다는 사실을 곧바로 그의 통치 전체에 대한 하나님의 승인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모압 왕 메사의 반란
모압 왕 메사는 양을 기르는 사람이었다. 그는 이스라엘 왕에게 새끼 숫양 십만 마리와 함께 숫양 십만 마리의 털을 바치곤 했다.열왕기하 3:4 · 본디새김
모압은 사해 동쪽에 위치한 왕국이었습니다. 모압이 이스라엘에 많은 양과 양털을 바쳤다는 기록은 두 나라가 단순히 이웃한 관계가 아니었음을 보여 줍니다.
이 조공은 상당한 규모의 경제적 부담을 나타냅니다. 숫자가 관례적인 조공 규모를 표현한 것인지, 정확한 납부 수량인지는 본문만으로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매년 바쳤는지도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른바 메사 석비에는 모압 왕 메사가 이스라엘 왕 오므리의 지배와 자신이 이스라엘에 맞서 거둔 승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비문은 모압의 신 그모스가 자기 나라를 회복시켜 주었다는 모압 왕의 관점으로 사건을 설명합니다. 다만 비문의 승리 기록을 열왕기하 3장의 이 전투와 정확히 일치시키기는 어렵습니다.
이스라엘의 관점에서 메사는 반역한 왕입니다. 그러나 모압의 관점에서 그는 외세의 지배로부터 나라를 되찾으려는 왕이었습니다. 열왕기하는 이스라엘의 역사와 여호와야훼의 말씀이라는 관점에서 사건을 서술합니다. 그렇다고 모압 사람들이 자신들의 저항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였는지까지 지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합이 죽자 메사는 반란을 일으킵니다. 아하시야 시대에 시작된 반란을 여호람이 진압하려는 것입니다. 여호람에게 전쟁은 이스라엘의 지배력을 회복하고 잃어버린 조공을 되찾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 전쟁을 시작하라고 명령하셨다는 말은 아직 어디에도 없습니다.
세 왕은 모였지만, 물이 없었다
여호람은 군대를 소집하고 유다 왕 여호사밧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는 길을 떠나 유다 왕 여호사밧에게 사람을 보내 말했다. 「모압 왕이 나에게 반역했소. 나와 함께 모압으로 싸우러 가겠소?」 여호사밧이 말했다. 「올라가겠소. 나는 당신과 같고,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같으며, 내 말들은 당신의 말들과 같소.」열왕기하 3:7 · 본디새김
열왕기상 22:4에서 여호사밧은 아합이 아람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려 할 때에도 거의 똑같은 말로 협력을 약속했습니다. 그 전쟁에서 아합은 죽었고, 여호사밧은 가까스로 살아 돌아왔습니다(열왕기상 22:29–37).
그런데 이제 여호사밧은 아합의 아들 여호람과 다시 군사 동맹을 맺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한 가지 차이가 있습니다. 열왕기상 22장에서 여호사밧은 전쟁에 나서기 전에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구하자고 요청했습니다(22:5). 이번에는 전쟁에 나선 뒤 군대가 물 부족에 처하고 나서야 예언자를 찾습니다.
한 왕이 물었다. 「우리가 어느 길로 올라가겠소?」 다른 왕이 대답했다. 「에돔 광야 길로 가겠소.」열왕기하 3:8 · 본디새김
본문은 이 대화에서 누가 질문하고 누가 답했는지 이름을 밝히지 않습니다. 이 경로는 사해 남쪽을 돌아 모압에 접근하는 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북쪽에서 바로 접근하는 것과 달리 에돔 쪽에서 진격하면 모압의 남쪽 방면을 공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건조한 지역을 지나야 하는 위험도 있었습니다.
에돔 왕까지 합세하면서 전쟁에 참여한 왕은 셋이 됩니다. 당시 에돔은 유다의 영향 아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열왕기상 22:47은 여호사밧 시대 에돔에 독립된 왕이 없고 대리 통치자가 있었다고 기록하지만, 열왕기하 3장에서는 에돔 왕이 연합군에 참여합니다. 그 사이 정치적 지위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달라졌는지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왕이 세 명이나 모이고 각 나라의 군대가 합쳐졌음에도, 가장 기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왕과 유다 왕과 에돔 왕이 길을 나섰다. 그들은 칠 일 길을 돌아갔는데, 군대와 그들을 따라가는 가축에게 줄 물이 없었다.열왕기하 3:9 · 본디새김
이스라엘 왕이 말했다. 「아, 여호와야훼가 이 세 왕을 모압의 손에 넘기려고 불러 모았구나.」열왕기하 3:10 · 본디새김
하지만 독자는 앞에서 다른 내용을 읽었습니다. 세 왕은 여호람의 요청과 왕들 사이의 협의를 통해 모였습니다. 에돔 광야로 가는 길 역시 왕들이 선택했습니다.
여호람은 자신들이 내린 결정의 결과 앞에서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죽음으로 이끄셨다고 말합니다.
여호사밧은 다른 질문을 한다
여호사밧이 말했다. 「여기에 여호와야훼의 예언자가 없소? 그를 통해 여호와야훼에게 물어봅시다.」 이스라엘 왕의 신하 가운데 하나가 대답했다. 「엘리야의 두 손에 물을 붓던 사밧의 아들 엘리사가 여기 있습니다.」열왕기하 3:11 · 본디새김
한 사람은 위기에서 하나님의 뜻을 스스로 해석하고, 다른 사람은 그 뜻을 들으려고 합니다.
신하는 엘리사가 요단강을 갈랐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여리고의 물을 고쳤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의 예언자적 능력을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가 소개하는 것은 엘리야를 섬기던 시절의 모습입니다.
손에 물을 부어 주는 일은 누군가를 가까이에서 섬기는 행동입니다. 따라서 이 표현은 엘리사가 엘리야의 곁에서 직접 그를 섬긴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나타냅니다.
여호사밧이 말했다. 「그에게 여호와야훼의 말씀이 있소.」 이스라엘 왕과 여호사밧과 에돔 왕이 그에게 내려갔다.열왕기하 3:12 · 본디새김
앞에서는 왕들이 군대를 모으고 길을 결정했습니다. 이제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에게 가야 합니다. 군대와 왕권을 가진 사람들이지만, 자신의 생명을 살릴 대답을 얻기 위해서는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입니다.
세 왕이 찾은 예언자는 왕을 반기지 않았다
왕들이 엘리사에게 내려왔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환영의 말이 아니었습니다.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에게 말했다.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소? 당신 아버지의 예언자들과 당신 어머니의 예언자들에게 가시오.」 이스라엘 왕이 그에게 말했다. 「그러지 마시오. 여호와야훼가 이 세 왕을 모압의 손에 넘기려고 불러 모았소.」열왕기하 3:13 · 본디새김
여호람은 아버지의 바알 기둥을 제거했지만, 여전히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평소에는 하나님께 충실하지 않으면서 생명이 위태로워지자 여호와야훼의 예언자를 찾았습니다.
엘리야와 아합 왕가 사이의 갈등이 엘리사와 여호람 사이에서도 계속되는 셈입니다.
그는 엘리사의 책망에 직접 답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어떻게 섬겼는지 변명하지도 않습니다. 그 대신 자신들의 절망적인 상황을 다시 말합니다.
엘리사가 말했다. 「내가 그 앞에 서서 섬기는 만군의 여호와야훼가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오. 내가 유다 왕 여호사밧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당신을 쳐다보지도 않고 눈길조차 주지 않을 것이오.」열왕기하 3:14 · 본디새김
왕들에게는 군대가 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그 군대보다 높은 권위를 가진 분 앞에 서서 섬긴다고 말합니다. 그는 세 왕의 신하로서 그들이 원하는 신탁을 제공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도록 부름받은 사람입니다.
여호사밧은 이 전쟁에 참여했고, 물이 없는 위기에 함께 빠졌습니다. 그가 내린 모든 정치적 결정이 올바랐다고 평가할 근거는 없습니다. 하지만 엘리사는 그를 존중하기 때문에 왕들의 요청에 응답하겠다고 합니다.
엘리사는 왜 현악기를 요청했는가?
「이제 내게 현악기를 타는 사람을 데려오시오.」 그 사람이 현악기를 타자 여호와야훼의 손이 엘리사 위에 임했다.열왕기하 3:15 · 본디새김
엘리사는 왕들의 요구에 밀려 즉석에서 자신의 판단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손이 임한 후에 말씀을 전합니다.
이제 왕들은 자신들의 계산이나 두려움이 아니라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조금 더 깊이
여호람의 대답은 두 가지 방향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신들이 죽을 위기에 놓였으니 제발 도와 달라는 호소일 수도 있고,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멸망시키려 하신다는 원망을 반복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본문은 그의 어조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사무엘상 10:5–6에도 악기를 연주하는 예언자 무리와 하나님의 영이 임하는 사건이 함께 등장합니다. 역대상 25:1–3에서는 악기 연주가 예언과 연결됩니다. 그렇지만 음악 자체에 하나님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고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여호와야훼의 손」이라는 표현은 예언자에게 하나님의 강력한 작용이 임하는 것을 나타냅니다. 에스겔서에서도 이러한 표현이 예언적 경험과 연결되어 사용됩니다(에스겔 1:3; 3:14).
비가 내리지 않는데도 물이 가득할 것이다
엘리사가 전한 첫 번째 말씀은 이상합니다.
엘리사가 말했다.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했다. 『이 골짜기를 온통 웅덩이로 만들어라.』」열왕기하 3:16 · 본디새김
아직 비는 오지 않았습니다. 어디에서 물을 구할 수 있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물을 받을 자리를 마련하라고 하십니다.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오. 『너희는 바람을 보지 못하고, 비도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도 그 골짜기는 물로 가득 찰 것이며, 너희와 너희 가축과 짐승들이 마실 것이다.』」열왕기하 3:17 · 본디새김
그들에게 가장 급한 문제는 모압군의 전력이 아니라 물이었습니다. 군사들의 생명이 위태롭고, 군대를 움직이게 하는 가축들도 위험했습니다.
핵심은 사람들이 예상하고 확인할 수 있는 징후가 없어도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진다는 데 있습니다.
웅덩이를 만들라는 말씀은 무엇을 요구했는가?
물이 없는 광야에서 웅덩이를 만드는 것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상황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행동입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께서는 물이 올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웅덩이를 만드는 일은 그 말씀을 전제로 한 준비가 됩니다.
다만 20절은 실제로 군사들이 얼마만큼 웅덩이를 팠는지 자세히 기록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노동량이나 순종의 정도를 상상하여 설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것은 여호와야훼가 보기에 가벼운 일이오. 그는 모압도 당신들의 손에 넘겨줄 것이오.」열왕기하 3:18 · 본디새김
하나님께서 문제를 가볍게 여기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세 왕이 해결할 수 없었던 문제가 하나님께는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연합군에게 물과 군사적 승리라는 두 가지를 약속합니다.
아침에 흘러온 물
아침에 제물을 올릴 때가 되자, 보라, 에돔 쪽에서 물이 흘러왔다. 그 땅은 물로 가득 찼다.열왕기하 3:20 · 본디새김
여호람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모압의 손에 넘기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아직 모압군을 만나기도 전에 죽게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 구원은 연합군만 살리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같은 물이 뜻밖의 방식으로 전쟁의 흐름을 바꿉니다.
조금 더 깊이
본문은 물이 어떤 물리적 과정을 통해 흘러왔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20절에서는 물이 에돔 쪽에서 흘러왔다고만 합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아침 제물을 올리는 시간은 규칙적인 제사의 시간이었습니다(출애굽기 29:38–42). 본문은 물이 온 시각을 그 시간과 연결합니다. 하지만 이때 세 왕이 직접 제물을 바쳤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한쪽에는 물, 다른 쪽에는 피
모압 사람들도 세 왕의 연합군이 진격해 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싸울 수 있는 사람들을 모두 소집하여 국경에 배치합니다. 아침이 되자 모압 사람들은 연합군 쪽을 바라봅니다.
그들이 아침 일찍 일어났을 때 해가 떠서 물 위를 비추었다. 모압 사람들이 맞은편에서 보니 물이 피처럼 붉었다.열왕기하 3:22 · 본디새김
앞에서는 이스라엘 진영에서 물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제 독자는 모압 진영에서 같은 물을 바라봅니다.
그들이 말했다. 「저것은 피다. 왕들이 틀림없이 서로 싸워 서로를 쳐 죽인 것이다. 이제 약탈하러 가자, 모압아.」열왕기하 3:23 · 본디새김
모압을 공격하러 온 것은 한 나라의 군대가 아니라 세 나라의 연합군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왕들이 모인 군대라면 내부 갈등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본 것은 실제 피가 아니라 해가 비친 물이었습니다.
여호람은 물이 없다는 사실을 보고 여호와야훼께서 자신들을 죽음에 넘기셨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그 판단을 뒤집었습니다. 모압 사람들은 붉게 보이는 물을 보고 연합군이 이미 자멸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물이 흘러와 연합군이 살아남은 상태였습니다.
여호람도 모압 사람들도 자신이 본 상황을 해석했지만, 그들의 판단은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이미 적이 서로를 죽였다고 생각하고 전투 준비보다 약탈을 기대하며 이스라엘 진영에 접근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군대는 살아 있었습니다.
그들이 이스라엘 진영에 이르자 이스라엘 사람들이 일어나 모압 사람들을 쳤다. 모압 사람들은 그들 앞에서 달아났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땅에서 모압을 계속 쳤다.열왕기하 3:24 · 본디새김
이렇게 17–18절의 두 약속이 함께 이루어집니다. 물은 연합군의 생명을 살렸고, 그 물을 잘못 본 모압군은 패배했습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좋은 나무와 좋은 밭이 파괴되다
모압군이 패배한 뒤 연합군은 그 땅으로 진격합니다.
그들은 성읍을 허물고, 밭에 돌을 던지고, 샘을 막고, 나무를 쓰러뜨립니다. 이 행동은 이미 엘리사가 예고한 내용이었습니다.
「당신들은 모든 요새 성읍과 모든 빼어난 성읍을 칠 것이오. 좋은 나무를 모두 쓰러뜨리고, 물 샘을 모두 막고, 좋은 밭을 모두 돌로 망가뜨릴 것이오.」열왕기하 3:19 · 본디새김
이어서 25절은 그 예고와 거의 동일한 내용이 실제로 이루어졌다고 기록합니다. 좋은 나무는 오랜 시간 자라서 열매를 맺습니다. 물 샘은 사람과 가축이 살아가는 데 필수적입니다. 좋은 밭은 식량을 생산하는 기반입니다.
연합군은 모압의 군사력을 약화시키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땅이 앞으로 생산하고 회복할 수 있는 능력까지 파괴하고 있었습니다.
돌이 많은 지역에서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땅에서 돌을 골라내야 합니다. 이미 경작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진 밭에 다시 돌을 가득 채우는 행동은 오랫동안 이루어 온 농경의 수고를 무너뜨리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목마른 군대에게 물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살아남은 군대는 이제 다른 나라의 물 샘을 막습니다.
이것이 3장의 의도적인 문학적 대조인지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같은 장에서 물을 얻는 장면과 물을 없애는 장면이 이어진다는 사실은 놓치기 어렵습니다.
연합군은 계속 진격하여 길하레셋에 이릅니다. 돌팔매꾼들이 성읍을 에워싸고 공격합니다.
이제 모압 왕에게 남은 선택은 많지 않았습니다.
조금 더 깊이
신명기 20:19–20은 이스라엘이 성읍을 포위할 때 열매 맺는 나무를 베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나무는 사람들이 먹을 것을 제공하므로 무분별하게 파괴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입니다. 그런데 열왕기하 3장에서는 좋은 나무를 모두 쓰러뜨렸다고 말합니다. 두 본문 사이에는 분명한 긴장이 있습니다. 신명기의 전쟁 규정과 이 모압 원정의 구체적인 관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해석이 갈릴 수 있습니다. 신명기 20장의 규정이 어떤 범위의 전쟁에 적용되는지, 모압에 대한 전쟁이 그 규정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살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본디새김이 옮긴 것처럼 19절은 엘리사가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고하는 문장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좋은 나무를 파괴하라고 직접 명령하신 문장과 동일시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본문이 그 파괴를 단순히 불법적인 전쟁 행위로 규정하고 비난한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25절은 길하레셋에 돌들만 남았다고 말합니다. 그 표현이 정확히 어떤 구조물을 가리키는지에는 어려움이 있지만, 연합군이 그곳까지 몰아붙였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왕이 자기 아들을 성벽 위에 올리다
모압 왕 메사는 전쟁을 더는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는 칼을 든 사람 칠백 명을 이끌고 에돔 왕 쪽으로 돌파하려 합니다. 모압 왕은 성읍을 벗어나지 못했고, 연합군의 포위는 계속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끔찍한 결정을 내립니다.
그는 자기 뒤를 이어 왕이 될 맏아들을 데려다가 성벽 위에서 번제로 바쳤다. 그러자 이스라엘을 향해 큰 진노가 일어났다. 그들은 모압 왕에게서 물러나 자기 땅으로 돌아갔다.열왕기하 3:27 · 본디새김
맏아들은 단순히 왕의 여러 자녀 가운데 한 명이 아닙니다. 본문은 그가 「자기 뒤를 이어 왕이 될」 아들이었다고 명시합니다.
처음에 모압 왕은 외세의 지배에서 벗어나 나라의 미래를 되찾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미래를 이어 갈 사람을 자기 손으로 죽입니다.
전쟁이 얼마나 극단적인 상황에 이르렀는지를 보여 주는 장면입니다.
본문은 모압 왕이 아들을 번제로 바쳤다고 말하지만, 그 제사를 누구에게 바쳤는지는 밝히지 않습니다. 또한 이 제사를 여호와야훼께서 요구하신 희생이라고 이해할 근거는 없습니다. 오히려 신명기는 자녀를 불살라 신에게 바치는 행위를 금지합니다(신명기 12:31; 18:10). 따라서 이 장면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헌신의 본보기로 읽을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큰 진노’는 누구의 것인가?
첫 번째는 여호와야훼의 진노가 이스라엘을 향해 일어났다는 해석입니다. 두 번째는 모압 사람들의 격렬한 분노가 이스라엘을 향해 일어났다는 해석입니다. 세 번째는 이 끔찍한 제사로 인해 연합군 내부에 격렬한 반감이나 충격이 일어났다는 해석입니다. 또 다른 가능성은 모압 사람들이 그모스의 진노가 이스라엘에 임했다고 이해했으며, 본문이 그러한 사건의 결과를 서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이 세 사건을 연결하지만, 그 진노가 정확히 누구에게서 비롯되었는지는 말하지 않습니다.
이 여러 해석 가운데 어느 하나를 본문만으로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인가?
엘리사는 분명히 모압이 연합군의 손에 넘겨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연합군은 마지막에 철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연합군은 모압군을 크게 무찔렀습니다. 모압의 성읍들과 농경지가 파괴되었고, 메사는 마지막 요새에서 돌파를 시도해야 할 만큼 궁지에 몰렸습니다. 따라서 군사적 승리에 관한 예언은 이야기 속에서 실제로 상당 부분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모압 전체가 완전히 정복되거나 메사가 포로가 되었다는 결말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어떤 범위까지 성취되었다고 이해해야 하는지, 왜 전쟁이 이 지점에서 끝났는지는 여전히 남는 문제입니다.
왕들이 처음 기대했던 완전한 승리나 모압의 복종을 선언하지 않은 채 이야기는 끝납니다.
조금 더 깊이
모압의 주요 신은 그모스였습니다. 민수기 21:29는 모압을 그모스의 백성이라고 부르며, 열왕기상 11:7은 그모스를 모압의 신으로 소개합니다. 앞서 언급한 메사 석비에서도 메사는 그모스에게 승리와 영토 회복을 돌립니다. 따라서 이 제사가 그모스를 향한 것이었을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그러나 열왕기하 3:27 자체는 신의 이름을 적지 않습니다. 여기서 케체프는 격렬한 분노나 진노를 뜻합니다. 구약의 여러 본문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가리키는 데 사용됩니다(민수기 1:53; 18:5; 여호수아 9:20). 특히 본문이 단순히 사람들이 화를 냈다고 말하지 않고, ‘큰 진노가 일어났다’고 표현한 점을 중요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마지막에 왜 이스라엘을 향해 진노하셨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군대가 지나치게 잔혹한 행동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셨다는 설명을 덧붙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본문에 명시된 이유가 아닙니다. 모압 사람들의 분노라는 해석은 모압 왕의 제사 직후 이스라엘이 물러났다는 사건의 흐름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다만 본문에는 모압군이 다시 공격을 시작했다거나 반격에 성공했다는 구체적인 기록이 없습니다. 연합군 내부의 반감이라는 해석은 모압 왕이 자기 아들을 죽음에 내모는 모습을 보고, 전쟁의 참혹함에 대한 분노와 반감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왜 그 반응을 「이스라엘을 향해」 일어난 진노라고 표현했는지 충분히 설명해야 합니다. 하지만 열왕기하 3장은 그모스가 실제로 이스라엘에 힘을 행사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모압의 종교적 관점과 성경 서술자의 신학적 판단을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승리와 인간이 만든 비극
물을 주신 일은 분명히 여호와야훼께서 하신 일이라고 밝힙니다. 모압에 대한 군사적 승리 역시 예언을 통해 미리 알려집니다. 그러나 아들을 바친 모압 왕의 행동을 하나님께서 명령하셨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진노의 주체도 밝히지 않습니다.
성벽 위에서 모압 왕이 자신의 맏아들을 번제로 바쳤습니다. 이스라엘을 향해 큰 진노가 일어났고, 연합군은 그곳에서 물러났습니다.
성읍을 포위했던 군대가 자기 땅으로 돌아가는 동안, 이야기는 더는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하셨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왕들이 승리를 기념했다는 말도 없습니다.
처음에 물이 없던 골짜기는 가득 찼지만, 마지막 성벽 위에서 벌어진 일은 어느 누구의 승리로도 쉽게 설명되지 않습니다.
열왕기하 3장은 목마른 군대를 살린 물에서 시작해, 한 왕이 자기 아들을 바친 성벽 앞에서 끝납니다. 그리고 그 결말은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과 인간이 만들어 낸 전쟁의 참혹함을 결코 가볍게 하나로 묶지 못하게 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