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풀어 읽기 · 4장

이 장의 자리 · 1–8장 · 엘리야에서 엘리사로

빈 그릇과 닫힌 문, 되살아나는 생명

한 여자가 엘리사에게 찾아와 부르짖습니다. 남편이 죽었고, 빚을 갚을 수 없어 두 아들마저 노예로 빼앗길 처지입니다. 그녀의 집에 남아 있는 것은 기름 한 병뿐입니다.

또 다른 여자는 부족한 것이 없어 보입니다. 자기 집에 예언자가 머물 방까지 마련해 줄 만큼 여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녀에게는 아들이 없습니다. 엘리사는 그녀가 아들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실제로 아이가 태어납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어느 날 갑자기 죽습니다.

그다음에는 기근 속에서 먹을 것을 구하던 사람들이 독이 든 것으로 보이는 국을 끓입니다. 마침내 마지막 장면에서는 보리빵 스무 개를 백 명이 나누어 먹어야 하는 상황이 펼쳐집니다.

네 사건은 서로 다른 사람들에게 일어난 일입니다. 그러나 모두 같은 질문을 품고 있습니다.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이 사라졌을 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생명을 지키고 회복하시는가요?

앞 장에서 엘리사는 세 왕의 군대가 물이 없어 죽을 위기에 놓였을 때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제 이야기의 무대는 왕들의 전쟁터에서 이름 없는 사람들의 집과 식탁으로 옮겨갑니다.

이 장에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준비한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엘리사조차 중요한 순간에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부족함과 불확실함 한가운데서 생명이 보존되고, 회복되고, 마침내 먹고도 남습니다.

읽는 시간 24분소단락 84장 본문 읽기 →

남편을 잃은 여인이 두 아들마저 잃으려 한다

열왕기하 4:1–7 본문 →

이 장의 첫 번째 목소리는 가난한 과부의 절규입니다.

예언자 무리에 속한 한 사람의 아내가 엘리사에게 부르짖었다. 「당신의 종인 제 남편이 죽었습니다. 당신의 종이 여호와야훼를 경외했다는 것은 당신도 아십니다. 그런데 채권자가 제 두 아이를 자기 노예로 데려가려고 왔습니다.」열왕기하 4:1 · 본디새김

본문은 그가 어떤 잘못을 저질러 빚을 졌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왜 빚을 지게 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도 않습니다.

이 여인의 이야기를 보면 여호와야훼를 경외하는 사람에게도 경제적 파탄이 찾아올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경건함이 모든 불행을 예방한다는 식의 단순한 믿음은 이 본문에 맞지 않습니다.

빚 때문에 자녀를 데려갈 수 있었는가?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는 빚을 갚지 못하는 사람이 자기 자신이나 가족의 노동력을 담보로 제공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레위기 25:39–43은 가난해져 자신을 팔게 된 동족을 노예처럼 가혹하게 부리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신명기 15:12–18은 동족이 종으로 일하다가 정해진 때에 자유롭게 나갈 수 있도록 규정합니다.

느헤미야 5:1–5에서는 빚과 경제적 압박 때문에 자녀를 종으로 넘겨야 하는 가족들의 탄식이 등장합니다. 따라서 이 과부가 말하는 상황은 실제 사회적 관행과 연결되는 문제였습니다. 다만 열왕기하 4장은 채권자의 구체적인 법적 권리나 채무 조건을 알려 주지 않습니다. 그가 어떤 규정을 위반했는지까지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채무는 단순한 금전 문제가 아닙니다.

여인은 남편을 이미 잃었습니다. 이제 두 아들까지 빼앗긴다면 가족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이 무너집니다.

돈이 없어서 가족을 잃어버릴 위기에 놓인 사람이 가족을 지킬 길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말해 보시오」

엘리사가 그 여자에게 말했다. 「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해 주면 좋겠소?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말해 보시오.」 여자가 말했다. 「당신의 여종에게는 집에 기름 한 병 말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열왕기하 4:2 · 본디새김

여인의 형편에서 기름 한 병은 빚을 갚거나 가족의 미래를 보장할 만한 재산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사실상 아무것도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바로 그 남아 있는 기름을 사용하게 합니다.

그가 말했다. 「밖으로 나가 이웃 모두에게 그릇을 빌리시오. 빈 그릇을 조금만 빌리는 데 그치지 마시오.」열왕기하 4:3 · 본디새김

기름이 부족한 사람에게 기름을 구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돈을 구하라고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빈 그릇을 가능한 한 많이 빌려 오라고 합니다.

그릇이 비어 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이웃 사람들이 기름을 채워서 빌려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아직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그릇을 제공합니다.

그리고 엘리사는 여인과 아들들에게 집 안에 들어가 문을 닫으라고 합니다. 왜 문을 닫아야 했는지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명령은 기적이 어떤 사람들의 시선을 위해 연출되는 공개적인 장관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 줍니다.

바깥에서는 채권자가 아들들을 데려가려 하고 있습니다. 안에서는 어머니와 아들들이 함께 기름을 붓게 됩니다.

아이들은 기적의 구경꾼이 아니다

여자는 그에게서 떠나와 아들들과 함께 안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아들들이 그릇을 가져오면 여자는 기름을 부었다.열왕기하 4:5 · 본디새김

이야기의 시작에서 두 아들은 채권자가 데려갈 대상으로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기름을 붓는 장면에서는 어머니를 도우며 행동하는 사람들로 나타납니다.

그릇들이 가득 차자 여자가 아들에게 말했다. 「그릇을 하나 더 가져오너라.」 아들이 여자에게 말했다. 「그릇이 더는 없어요.」 그러자 기름이 멎었다.열왕기하 4:6 · 본디새김

본문이 보여 주는 것은 그 가족이 준비한 모든 그릇이 채워졌다는 사실입니다.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 살아가라

여자는 하나님의 사람에게 가서 알렸다. 그가 말했다. 「가서 기름을 팔아 빚을 갚으시오. 당신과 아들들은 남은 것으로 살아가시오.」열왕기하 4:7 · 본디새김

여기에는 두 단계가 있습니다. 당장 두 아들을 노예로 잃을 위기에서 벗어나는 일과, 그 후에도 가족이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일입니다.

생명을 지키는 하나님의 일이 한 가족의 빚과 생계라는 현실 속에서 나타났습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기름이 멎은 이유를 여인의 믿음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해석을 종종 접할 수 있습니다. 더 많은 그릇을 빌려 왔다면 더 많은 기름을 얻었을 테니, 믿음의 크기만큼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여인이 적은 수의 그릇만 빌렸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녀는 엘리사의 지시에 따라 그릇을 빌려 왔고, 모든 그릇이 가득 찰 때까지 기름을 부었습니다. 따라서 그릇의 수를 여인의 믿음에 대한 점수로 이해할 이유는 없습니다.

모든 것을 갖춘 듯한 여인에게 없는 한 가지

열왕기하 4:8–17 본문 →

다음 이야기는 첫 번째와 정반대처럼 보이는 여인에게서 시작됩니다.

첫 번째 여인은 남편이 죽고 집에 기름 한 병밖에 남지 않은 과부였습니다. 두 번째 여인은 남편이 살아 있고, 엘리사가 머물 수 있는 별도의 방까지 마련해 줄 수 있는 수넴의 유력한 여인입니다.

어느 날 엘리사가 수넴을 지나갔다. 그곳에 유력한 여자가 하나 있었는데, 그를 붙들어 음식을 먹게 했다. 그 뒤로 엘리사는 그곳을 지날 때마다 들러 음식을 먹곤 했다.열왕기하 4:8 · 본디새김

이 여인은 예언자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특별한 기적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가 계속 자기 집에 들를 수 있도록 배려합니다.

여자가 남편에게 말했다. 「보세요. 늘 우리에게 들르시는 이분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겠어요.」열왕기하 4:9 · 본디새김

기적을 목격한 뒤 그에게 큰 능력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기록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자주 만난 엘리사를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으로 알아보고, 그를 위한 공간을 마련하자고 제안합니다.

「벽을 두른 작은 옥상방을 하나 만들어요. 거기에 그분을 위해 침대와 탁자와 의자와 등잔대를 놓아요. 그러면 우리에게 오실 때 그곳에 들르실 거예요.」열왕기하 4:10 · 본디새김

이 물건들은 특별한 종교적 상징물이라기보다 한 사람이 머물며 쉬고 생활하는 데 필요한 것들입니다. 여인은 엘리사가 잠시 들러 식사하는 손님에 머물지 않고, 편안히 쉴 수 있도록 실제적인 공간을 마련해 줍니다.

이것은 단순한 호의를 넘어 지속적인 돌봄입니다.

왕에게 부탁해 줄 일이 있습니까?

엘리사는 여인의 정성에 보답하고 싶어 합니다.

엘리사가 게하시에게 말했다. 「그 여자에게 이렇게 말해라. 『당신이 우리를 위해 이토록 정성을 다해 주었으니, 당신에게 무엇을 해 주면 좋겠소? 당신을 위해 왕이나 군대 지휘관에게 말해 줄 일이 있소?』」 여자가 말했다. 「저는 제 겨레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열왕기하 4:13 · 본디새김

이 질문은 당시 예언자가 사회적·정치적 관계를 통해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저는 제 겨레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라는 말이 정확히 어떤 뉘앙스를 담고 있는지는 하나로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자신은 공동체 안에서 안정적으로 살아가고 있으므로 왕이나 군대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또는 자신의 사람들 가운데 살아가는 현재의 처지에 만족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여인은 엘리사에게 특별한 청탁을 하지 않습니다.

엘리사가 말했다. 「그러면 그 여자에게 무엇을 해 주면 좋겠느냐?」 게하시가 말했다. 「사실 그 여자에게는 아들이 없고, 남편은 늙었습니다.」열왕기하 4:14 · 본디새김

고대 이스라엘에서 자녀는 가족의 지속과 상속, 노년의 보호에 중요한 의미를 지녔습니다. 특히 남편이 늙었다는 말은 앞으로 자녀를 얻을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는 상황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여인이 자신의 삶을 불행하게 여기고 있었는지, 자녀를 얼마나 간절히 원했는지에 대해서는 본문이 직접 말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녀가 요구하지 않은 것을 엘리사가 약속한다는 사실입니다.

엘리사가 말했다. 「내년 이맘때 당신은 아들을 안고 있을 것이오.」 여자가 말했다. 「안 됩니다, 주인님, 하나님의 사람이시여. 당신의 여종에게 거짓말하지 마십시오.」열왕기하 4:16 · 본디새김

여인의 반응은 기쁨이나 감사가 아닙니다.

결국 아이는 태어납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약속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후에 일어나는 일이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옵니다.

조금 더 깊이

본문은 그녀의 마음속 이유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반응이 단순히 기적을 믿지 못해서 나온 말이라고만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녀는 엘리사에게 아들을 달라고 요구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얻으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 약속되었습니다. 만약 그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녀는 원래 마음에 품지 않으려 했을지도 모르는 기대를 갖게 된 뒤 다시 잃게 될 것입니다. 「거짓말하지 마십시오」라는 말은 그런 희망이 헛되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반응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다만 이것은 그녀의 말과 이후 행동에 근거한 해석이지, 본문이 그녀의 과거 경험을 밝혀 주는 것은 아닙니다.

약속으로 얻은 아들이 죽었을 때

열왕기하 4:18–28 본문 →

아이는 자랍니다.

어느 날 아이가 추수꾼들과 함께 있는 아버지에게로 나갑니다. 그런데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고 외칩니다. 아버지는 일꾼에게 아이를 어머니에게 데려가라고 합니다.

일꾼이 아이를 안아 어머니에게 데려갔다. 아이는 정오까지 어머니의 무릎에 앉아 있다가 죽었다.열왕기하 4:20 · 본디새김

그는 여인이 원해서 요구한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엘리사가 약속했고, 그 약속대로 태어난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죽음은 단순히 소중한 자녀를 잃은 슬픔을 넘어, 이전에 주어진 약속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다시 묻게 만듭니다.

아이를 엘리사의 침대에 눕히다

여자는 올라가 아이를 하나님의 사람의 침대에 눕히고, 아이를 안에 둔 채 문을 닫고 나왔다.열왕기하 4:21 · 본디새김

그녀가 왜 그 자리를 선택했는지 본문은 명시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방은 아들이 태어나리라는 약속을 전했던 사람을 위해 마련한 공간이었습니다. 아이를 그곳에 눕히는 행동은 아이의 죽음을 그 약속과 연결하여 이해하려는 행동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여인은 죽음이라는 현실 앞에서 자신에게 그 아이의 탄생을 약속했던 하나님의 사람을 다시 찾으려 합니다.

「괜찮아요」라는 말은 무엇을 감추는가?

여인은 남편에게 일꾼과 암나귀를 보내 달라고 요청합니다.

남편이 말했다. 「오늘은 초하루도 안식일도 아닌데 왜 그분에게 가려 하오?」 여자가 말했다. 「괜찮아요.」열왕기하 4:23 · 본디새김

여인이 남편에게 상황을 숨기려 한 것인지, 설명할 시간이 없어서였는지, 혹은 아직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후 장면을 보면 그녀가 엘리사에게 도달하기 전까지 상황을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으려 한다는 점은 확인됩니다.

그녀는 일꾼에게 속도를 늦추지 말라고 지시합니다. 갈멜산까지 달려갑니다. 멀리서 여인을 본 엘리사는 게하시를 보내 안부를 묻습니다.

「지금 달려가 그 여자를 맞으며 이렇게 물어라. 『당신은 괜찮소? 남편은 괜찮소? 아이는 괜찮소?』」 여자가 말했다. 「괜찮습니다.」열왕기하 4:26 · 본디새김

그녀는 여전히 엘리사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게하시의 질문에 길게 답하지 않고, 직접 엘리사 앞에 도달한 뒤 자신의 고통을 드러냅니다.

그녀가 반드시 아이의 부활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다고 해석할 근거는 없습니다. 오히려 본문이 강조하는 것은 그녀가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엘리사에게 직접 가려 했다는 점입니다.

엘리사의 발을 붙잡은 여인

마침내 여인은 엘리사에게 도착합니다.

여자는 산에 있는 하나님의 사람에게 와서 그의 발을 붙잡았다. 게하시가 여자를 밀쳐 내려고 다가가자 하나님의 사람이 말했다. 「그 여자를 내버려 두어라. 마음이 몹시 쓰라린 것이다. 여호와야훼가 내게 감추고 알려 주지 않았다.」열왕기하 4:27 · 본디새김

그는 여인의 고통을 알아보지만, 그 이유는 알지 못합니다. 엘리사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모든 사실을 알려 주시는 분이라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하나님의 모든 뜻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닙니다.

예언자의 권위와 예언자의 한계가 같은 장면에 나타납니다.

여자가 말했다. 「제가 주인님께 아들을 달라고 했습니까? 『저를 속이지 마십시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열왕기하 4:28 · 본디새김

처음 약속을 들었을 때 그녀는 「거짓말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아들이 죽자 같은 문제를 다시 제기합니다.

약속이 이루어졌다가 그 약속의 선물이 사라져 버렸다면, 그 약속은 도대체 무엇이었는가요?

그녀는 자신의 슬픔을 경건한 말로 덮지 않습니다. 엘리사가 전했던 약속과 지금 자신이 겪고 있는 현실 사이의 모순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그리고 엘리사는 그 질문에 즉시 설명으로 답하지 않습니다.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조금 더 깊이

본문은 아이가 무슨 병으로 죽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머리를 아파했다는 점과 추수 현장에 있었다는 점 때문에 일사병이나 열사병을 떠올릴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실제 사망 원인이라고 확정할 만한 의학적 정보는 없습니다. 남편의 질문을 보면 당시 사람들이 특별한 종교적 날에 예언자를 찾아가는 관행이 있었을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초하루와 안식일은 이스라엘의 예배와 관련된 날들이었습니다(민수기 28:9–15; 이사야 1:13). 그러나 이 구절만으로 예언자를 방문하는 공식적인 일정이나 제도가 있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지팡이는 아이를 깨우지 못했다

열왕기하 4:29–31 본문 →

엘리사는 즉시 게하시에게 명령합니다.

엘리사가 게하시에게 말했다. 「허리띠를 매고 내 지팡이를 손에 들고 가거라. 사람을 만나도 인사하지 말고, 누가 네게 인사해도 대답하지 마라. 내 지팡이를 아이의 얼굴 위에 놓아라.」열왕기하 4:29 · 본디새김

길에서 지체하지 말고 신속하게 가라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수넴 여인은 엘리사의 명령을 듣고도 떠나지 않습니다.

아이의 어머니가 말했다. 「살아 계신 여호와야훼와 당신의 목숨을 두고 맹세합니다. 저는 당신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그러자 엘리사가 일어나 여자를 따라갔다.열왕기하 4:30 · 본디새김

그녀는 지팡이가 가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아들의 탄생을 약속했던 엘리사가 직접 와 주기를 바랍니다.

이번에는 하나님의 사람이 여인을 따라갑니다.

이야기의 앞부분에서 여인은 엘리사가 자기 집에 머물도록 방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이제 그녀는 아들이 죽은 그 집으로 엘리사를 데려갑니다.

아무 소리도 없고 듣는 기색도 없었다

게하시는 그들보다 앞서 가서 지팡이를 아이의 얼굴 위에 놓았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없고 듣는 기색도 없었다. 그는 엘리사를 만나러 돌아와 알렸다. 「아이가 깨어나지 않았습니다.」열왕기하 4:31 · 본디새김

엘리야의 겉옷으로 요단강이 갈라졌다고 해서 모든 예언자의 물건이 언제나 원하는 결과를 내는 것은 아닙니다. 게하시에게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라거나, 수넴 여인의 믿음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거나, 지팡이를 놓는 방법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근거는 없습니다.

그는 직접 아이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조금 더 깊이

열왕기하 2장에서 엘리사는 엘리야가 자신을 남겨 두고 떠나려 할 때마다 똑같은 맹세로 대답했습니다. 「저는 당신을 떠나지 않겠습니다.」(2:2, 4, 6) 그때 엘리사는 스승이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곁에 있고 싶어 했습니다. 이제는 수넴 여인이 같은 말로 엘리사를 붙듭니다. 엘리야와 엘리사의 이야기에서는 스승이 제자를 남겨 두고 떠나려 했습니다. 이번에는 엘리사가 자신의 시종을 먼저 보내려 하고, 아이의 어머니는 엘리사 자신이 함께 가기를 요구합니다.

닫힌 방에서 죽음과 마주하다

열왕기하 4:32–37 본문 →

엘리사가 집에 도착했을 때 아이는 여전히 죽은 채 침대에 누워 있습니다.

그는 안으로 들어가 둘만 안에 있도록 문을 닫고 여호와야훼에게 기도했다.열왕기하 4:33 · 본디새김

처음 이야기에서는 과부가 두 아들과 함께 문을 닫았습니다. 수넴 여인은 죽은 아들을 침대에 눕힌 뒤 문을 닫았습니다. 세 장면의 의미가 모두 같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문이 닫힐 때마다 바깥에서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곳에서 생명을 위한 일이 진행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입과 눈과 손을 맞대다

그는 올라가 아이 위에 누워 자기 입을 아이의 입에, 자기 두 눈을 아이의 두 눈에, 자기 두 손바닥을 아이의 두 손바닥에 대고 아이 위로 몸을 굽혔다. 그러자 아이의 살이 따뜻해졌다.열왕기하 4:34 · 본디새김

이 행동은 생명을 되찾기를 간구하는 예언자의 절박하고도 구체적인 관여를 보여 줍니다. 하지만 아이는 아직 눈을 뜨지 않았습니다.

이 장면에서 기적은 한순간에 완성되지 않습니다.

엘리사는 일어나 집 안을 이쪽저쪽으로 걷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아이 위로 몸을 굽힙니다. 그제야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를 하고 눈을 뜹니다.

죽은 아이가 살아나는 과정이 독자의 눈앞에 천천히 펼쳐집니다.

엘리사는 생명을 마음대로 다루지 못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권위가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아니며, 과거에 기적을 행했다고 해서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특히 이 이야기에서 죽은 아이가 살아나는 일은 엘리사의 능력만을 과시하는 사건으로 읽기 어렵습니다. 여호와야훼께 드린 기도가 이야기의 중심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지만 하나님 자신은 아닙니다.

「당신 아들을 안으시오」

엘리사가 게하시를 불러 말했다. 「이 수넴 여자를 불러라.」 게하시가 여자를 부르자 여자가 엘리사에게 왔다. 엘리사가 말했다. 「당신 아들을 안으시오.」열왕기하 4:36 · 본디새김

엘리사는 처음에 여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년 이맘때 당신은 아들을 안고 있을 것이오.」 첫 번째 말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들을 품게 될 것이라는 약속이었습니다. 두 번째 말은 죽었던 아들이 살아났으니 다시 품으라는 말입니다.

같은 ‘아들을 안는다’는 이미지가 두 장면을 연결합니다.

그녀가 「제가 주인님께 아들을 달라고 했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그 약속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이제도 왜 아이가 죽어야 했는지, 왜 다시 살아났는지 해석해 주지 않습니다.

단지 아들을 안으라고 말합니다.

여인은 엘리사의 발 앞에 엎드려 절합니다. 그리고 자기 아들을 안고 나갑니다. 처음에는 아들이 엘리사의 침대에 죽은 채 누워 있었습니다. 마지막에는 어머니가 살아 있는 아들을 품에 안고 그 방을 나갑니다.

이 두 장면 사이에 있는 모든 긴장과 고통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어머니와 아들이 다시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로 마무리됩니다.

조금 더 깊이

이 모습은 열왕기상 17장에서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렸던 일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때 엘리야도 아이 위에 몸을 펴고 여호와야훼께 생명이 돌아오기를 간구했습니다(열왕기상 17:20–22). 두 예언자의 행동은 서로 비슷하지만, 세부적인 방식은 다릅니다. 이 행동을 오늘날의 인공호흡이나 특정한 의학적 소생술과 동일시할 근거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신비한 주문이나 정해진 의식이라고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엘리사는 앞서 여호와야훼께 기도했습니다. 열왕기상 17장에서 엘리야는 사르밧 과부를 만났습니다. 그 여인에게는 밀가루 한 움큼과 병에 든 기름 조금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의 말씀에 따라 그 집의 밀가루와 기름은 기근 동안 떨어지지 않았습니다(열왕기상 17:8–16). 열왕기하 4장에서는 이 두 사건이 서로 다른 여인에게 나타납니다. 첫 번째 여인에게는 기름이 늘어나는 일이 일어납니다. 두 번째 여인에게는 죽은 아들이 살아나는 일이 일어납니다. 사르밧 과부는 자신과 아들이 먹을 음식이 없었습니다. 수넴 여인은 엘리사에게 음식을 제공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엘리야를 통해 생명을 보존하고 회복하셨던 하나님께서 엘리사를 통해서도 그렇게 일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먹어야 사는데, 먹을 수 없는 국

열왕기하 4:38–41 본문 →

다음 장면에서는 엘리사가 길갈로 돌아옵니다.

그 땅에는 기근이 들었습니다. 앞의 두 사건이 각각 한 가족의 위기였다면, 이제 문제는 더 많은 사람이 함께 겪는 식량 부족입니다.

예언자 무리가 엘리사 앞에 앉아 있고, 엘리사는 시종에게 말합니다. 「큰 솥을 불 위에 얹고 예언자 무리가 먹을 국을 끓여라.」 사람들이 먹을 것을 마련하는 평범한 일입니다. 그러나 기근이 든 상황에서는 그 평범한 일이 쉽지 않습니다.

그들 가운데 하나가 나물을 모으러 들에 나갔다가 야생 덩굴을 발견했다. 그는 거기서 야생 박을 따서 옷자락 가득 담아 돌아와 국솥에 썰어 넣었다. 그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이다.열왕기하 4:39 · 본디새김

먹을 것이 풍족할 때에는 익숙하고 안전한 재료를 고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먹을 것이 부족하면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는 식물까지 식량으로 삼으려 할 수 있습니다.

기근은 단지 음식의 양을 줄이는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안전하지 않은 선택을 하게 만드는 조건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먹도록 국을 퍼 주었다. 사람들이 국을 먹다가 부르짖었다. 「솥 안에 죽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시여.」 그들은 먹을 수가 없었다.열왕기하 4:40 · 본디새김

살기 위해 먹어야 하는 음식이 오히려 생명을 위협합니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집에 기름 한 병밖에 없었습니다. 여기서는 큰 솥에 음식이 담겨 있지만 먹을 수가 없습니다.

부족함의 모습이 달라진 것입니다.

엘리사가 넣은 가루는 무엇을 했는가?

엘리사가 말했다. 「가루를 가져와라.」 그는 가루를 솥에 던져 넣고 말했다. 「사람들에게 퍼 주어 먹게 해라.」 솥 안에는 해로운 것이 없었다.열왕기하 4:41 · 본디새김

기근 속에서 어렵게 모은 식재료로 만든 음식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버리지 않고 먹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결말은 실제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엘리사를 통한 하나님의 일은 죽은 아이를 일으키는 놀라운 장면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기근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저녁 식사를 안전하게 먹을 수 있게 되는 일에서도 나타납니다.

조금 더 깊이

이 야생 박이 현대 식물 분류상 정확히 어떤 종이었는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특정한 독성 식물이었다고 제안할 수는 있지만, 본문 자체는 식물의 이름이나 독성 성분을 알려 주지 않습니다. 여기서 가루가 독성 성분을 화학적으로 중화시켰다고 설명할 근거는 없습니다. 본문은 어떤 가루였는지, 식물의 독성이 무엇이었는지, 그 가루가 어떤 자연적인 작용을 했는지 밝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장면을 실제로 독이 든 음식을 가루로 해독하는 방법을 알려 주는 이야기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스무 개의 빵으로 백 명을 먹이다

열왕기하 4:42–44 본문 →

마지막 이야기는 앞의 기근 이야기와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어떤 사람이 바알살리사에서 와서 하나님의 사람에게 첫 수확으로 만든 보리빵 스무 개와 자기 옷자락에 담은 햇곡식을 가져왔다. 엘리사가 말했다. 「사람들에게 주어 먹게 해라.」열왕기하 4:42 · 본디새김

이스라엘의 율법에서는 첫 수확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관습이 있었습니다(레위기 23:9–14; 신명기 26:1–11). 첫 수확물은 땅의 소산이 자기 힘만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임을 인정하는 의미와 연결됩니다.

이 사람이 왜 첫 수확물을 엘리사에게 가져왔는지, 어떤 종교적 관행에 따라 그렇게 했는지는 본문이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가 가져온 음식은 곧 예언자 무리의 식사가 됩니다.

그런데 시종은 망설입니다.

그의 시종이 말했다. 「제가 어떻게 이것을 백 명 앞에 내놓겠습니까?」 엘리사가 말했다. 「사람들에게 주어 먹게 해라.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먹고도 남길 것이다.』」열왕기하 4:43 · 본디새김

시종은 자신이 가진 음식의 양을 알고 있습니다. 엘리사는 그 음식에 관하여 여호와야훼께서 하신 말씀을 전합니다.

시종이 그들 앞에 내놓자, 그들은 여호와야훼의 말대로 먹고도 남겼다.열왕기하 4:44 · 본디새김

음식이 얼마나 늘어났는지, 빵이 어떤 순간에 불어났는지, 사람들이 어떻게 나누어 먹었는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본문이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결과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첫 번째 기적과 마지막 기적

이 마지막 사건은 장의 첫 번째 사건을 떠올리게 합니다.

두 사건 모두 부족한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필요한 것이 채워질 뿐 아니라 남는 것으로 끝납니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남은 기름은 한 가족이 앞으로 살아갈 수 있는 자원입니다. 마지막 이야기에서 남은 음식은 많은 사람이 함께 먹고도 충분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조금 더 깊이

이 장면은 앞 장의 광야 이야기와 연결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군대가 물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에도 여호와야훼께서는 물이 가득 찰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3:16–20). 신약에서 예수님께서 적은 양의 빵으로 많은 사람을 먹이신 사건(마가복음 6:30–44; 요한복음 6:1–14)은 이 장의 마지막 이야기와 주제적으로 연결됩니다. 특히 먹을 사람이 많다는 제자들의 걱정과 음식을 나누어 준 뒤 남았다는 결말은 공통된 특징입니다. 다만 신약이 열왕기하 4:42–44를 직접 인용한다고 설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두 본문은 부족함 속에서 하나님께서 생명을 위한 양식을 공급하신다는 주제를 공유합니다.

먹고도 남긴 식탁에서

열왕기하 4:1–44 본문 →

열왕기하 4장은 빈 그릇에서 시작해 남은 음식으로 끝납니다. 이 부족함의 장면들에서 하나님께서는 여러 방식으로 일하셨습니다. 때로는 남아 있는 기름을 통해, 때로는 죽은 아이를 위한 기도에 응답하심으로, 때로는 해로운 음식을 먹을 수 있게 하심으로, 때로는 적은 양의 빵을 나누어 먹고도 남게 하심으로 생명을 지키셨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하나님께서 믿는 사람의 모든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시고, 모든 병든 사람을 반드시 살리시며, 모든 배고픔을 기적으로 없애 주신다는 보편적인 약속으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네 사건을 기록합니다. 모든 가난한 가족에게 같은 방식으로 기름이 늘어났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모든 죽은 아이가 살아났다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시종은 보리빵을 사람들 앞에 내놓습니다. 처음에는 도저히 충분하지 않을 것 같았던 빵이 사람들에게 나누어졌습니다.

그들은 먹었습니다.

그리고 남겼습니다.

열왕기하 4장이 마지막으로 보여 주는 것은 기적을 행한 예언자의 모습이 아니라, 여호와야훼의 말씀대로 음식을 먹고도 남긴 사람들의 식탁입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