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베오기 하권 풀어 읽기 · 13장

이 장의 자리 · 8–13장 · 되찾은 성전

왕들의 왕 앞에서 무너지는 권력

마카베오기 하권 13장은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시작합니다.

안티오코스 에우파토르와 리시아스가 대군을 이끌고 유대를 공격합니다. 보병은 십일만 명으로 기록되고, 기병과 전투 코끼리, 낫이 달린 전차들이 뒤따릅니다. 그들은 유다의 군대를 무너뜨리고 다시 유대를 장악하려 합니다.

그러나 이 장의 마지막 모습은 전혀 다릅니다.

왕은 유대 사람들에게 평화를 간청하고 그들의 정당한 권리를 지키겠다고 맹세합니다. 성전을 존중하고 유다를 받아들입니다. 결국 군대를 거두어 안디옥으로 돌아갑니다.

무엇이 왕의 마음을 바꾸었을까요?

그런데 13장은 왕의 침공 이야기로 곧장 들어가지 않습니다.

왕과 함께 온 메넬라오스가 먼저 죽습니다. 성전의 거룩함을 팔아 자신의 지위를 지키려 했던 사람이 재가 가득한 탑에 던져집니다. 그리고 저자는 그 죽음을 이야기하면서 하나님을 특별한 이름으로 부릅니다.

「왕들의 왕」입니다.

세상의 왕은 군대를 거느리고 다른 사람들을 심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왕 자신도 더 높은 권위 아래 있습니다.

읽는 시간 19분소단락 913장 본문 읽기 →

왕의 권력을 얻으려던 사람이 왕의 명령으로 죽다

마카베오기 하권 13:1–4 본문 →

거대한 군대를 따라온 메넬라오스

1–2절은 안티오코스 5세 에우파토르와 리시아스의 침공을 알립니다.

안티오코스 에우파토르는 앞서 죽은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의 아들입니다. 리시아스는 어린 왕의 후견인이자 국정을 맡은 실권자였습니다. 본문은 보병 십일만 명, 기병 오천삼백 명, 코끼리 스물두 마리, 낫이 달린 전차 삼백 대를 기록합니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그 군대의 막강한 위세입니다.

전투 코끼리와 낫이 달린 전차는 당시 대규모 정규군이 동원할 수 있었던 강력한 전력이었습니다. 그런데 3절에서는 이 군대에 합류한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메넬라오스도 그들에게 합류하여 온갖 위선을 부리며 안티오코스를 부추겼다. 나라를 구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권력의 자리에 앉게 되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마카베오기 하권 13:3 · 본디새김

앞서 4장에서 메넬라오스는 대제사장직을 얻기 위해 왕에게 더 많은 돈을 제시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성전 기물을 빼앗았고, 그 과정에서 오니아스의 죽음과도 연결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직분과 성전의 재물을 자신의 권력을 얻는 데 이용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는 다시 왕의 힘을 빌리려 합니다.

왕들의 왕이 움직이시다

그러나 4절은 이야기를 완전히 뒤집습니다.

그러나 왕들의 왕이 그 흉악한 자를 향한 안티오코스의 분노를 일으켰다. 리시아스가 이 사람이 모든 재앙의 원인이라고 지적하자, 안티오코스는 그를 베뢰아로 끌고 가 그곳의 관습대로 처형하라고 명령했다.마카베오기 하권 13:4 · 본디새김

고대 근동에서 왕들의 왕이라는 표현은 강대한 제국의 통치자에게 사용될 수 있었습니다. 여러 왕과 나라를 지배하는 최고의 군주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 칭호가 하나님께 사용됩니다.

안티오코스는 거대한 군대를 통솔하며 메넬라오스의 운명까지 결정할 수 있는 왕입니다. 그러나 저자는 그 왕의 분노가 하나님에 의해 움직였다고 설명합니다. 왕은 메넬라오스를 처벌하지만, 저자는 그 사건을 더 높은 차원에서 하나님의 심판으로 해석합니다.

왕의 권력을 이용해 자신의 지위를 높이려던 사람이, 바로 그 왕의 명령으로 죽음을 맞습니다.

조금 더 깊이

그리스어에는 「저마다」라는 표현이 있어 왕과 리시아스가 각각 이 규모의 군대를 거느렸다는 식으로도 읽힙니다. 그러나 이를 단순히 곱해서 전체 병력을 보병 이십이만 명으로 확정하는 것은 신중해야 합니다. 마카베오기 상권 6장 30절의 병력 기록과도 차이가 있으며, 이 숫자들을 실제 전투에 참여한 병력의 정확한 통계로 검증할 수는 없습니다. 다니엘서는 하나님께서 때와 시기를 바꾸시고 왕들을 세우거나 폐하시는 분이라고 선언합니다. 또한 지극히 높으신 분이 인간의 나라를 다스리신다고 말합니다. 마카베오기 하권의 저자도 그와 같은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거룩한 제단의 재를 더럽힌 사람이 재 속에서 죽다

마카베오기 하권 13:5–8 본문 →

왜 메넬라오스의 죽음을 이렇게 자세히 설명하는가

5–6절에서는 베뢰아의 처형 장소가 설명됩니다.

그곳에는 재가 가득한 탑이 있었습니다. 높이는 오십 규빗이었습니다. 탑에는 둥근 장치가 있었고, 사람들이 재 속으로 떨어지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성전의 물건을 훔치거나 중대한 악행을 저지른 사람들을 처형했다고 합니다.

메넬라오스도 그곳에서 죽습니다. 8절에서 그 죽음이 왜 그의 죄에 걸맞은 심판인지를 설명합니다.

참으로 마땅한 일이었다. 그는 불도 재도 정결한 제단을 두고 많은 죄를 저질렀으므로, 재 속에서 죽음을 받았다.마카베오기 하권 13:8 · 본디새김

거룩한 재와 죽음의 재

성전의 제단에는 불이 있었습니다.

희생 제물이 불타고 난 뒤에는 재가 남았습니다. 그런데 그 재는 단순한 쓰레기로 취급되지 않았습니다. 레위기 6장 10–11절에서는 제사장이 제단에서 나온 재를 거두고 정해진 방식에 따라 처리하도록 규정합니다. 그 재는 거룩한 제사와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메넬라오스는 바로 그 제단을 더럽히는 죄를 저질렀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성전의 기물을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이용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는 전혀 다른 재 속에서 죽습니다.

성전의 재는 하나님께 드린 제사에서 나온 것입니다. 베뢰아의 재는 죄인을 처형하는 장소에 쌓여 있었습니다. 저자는 「재」라는 같은 사물을 통해 메넬라오스의 죄와 그의 최후를 연결합니다.

거룩한 제단을 자기 이익을 위해 더럽힌 사람에게, 재는 더 이상 예배의 흔적이 아니라 자신의 죽음을 맞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땅에 묻히지도 못하다

7절은 메넬라오스가 땅에 묻히지도 못했다고 기록합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조상들의 무덤에 묻히는 일은 가족과 공동체에 속한 사람으로 기억되는 중요한 방식이었습니다. 앞 장에서 유다의 사람들은 전사자들을 조상들의 무덤에 묻으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전사자들의 숨겨진 죄를 발견했음에도 그들을 위해 속죄를 구했습니다.

그러나 메넬라오스에게는 그런 장례 장면이 없습니다.

그가 평생 추구했던 것은 높은 지위와 명예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에는 높은 지위도, 명예로운 장례도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 그 왕이 대군을 이끌고 유다를 공격합니다.

조금 더 깊이

오십 규빗은 고대의 규빗을 약 45센티미터로 가정하면 약 22.5미터에 해당하지만, 규빗의 실제 길이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으므로 이는 대략적인 환산입니다. 어떤 형태의 장치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리스어는 둥글거나 회전하는 장치를 가리키지만 구체적인 구조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메넬라오스가 실제로 어떤 고통을 얼마나 오래 겪었는지, 그 탑의 재가 계속 불타고 있었는지는 이 기록만으로 확정할 수 없습니다. 저자의 초점은 처형 기술의 자세한 과정이 아니라 죄와 죽음 사이의 상응 관계입니다.

겨우 숨을 돌린 사람들의 사흘 기도

마카베오기 하권 13:9–14 본문 →

그들이 다시 잃을까 두려워한 것들

9절에서 안티오코스는 아버지 때보다 더 지독한 일을 유대 사람들에게 겪게 하려는 마음으로 진군합니다.

메넬라오스를 처형했다고 해서 유대 사람들에 대한 적대감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소식을 듣자 유다는 공동체에 기도를 요청합니다.

율법과 나라와 거룩한 성전을 빼앗길 처지에 놓인 이들을 도와 달라고, 이제 겨우 잠시 숨을 돌린 백성이 모독하는 이방 민족들의 손아귀에 들어가도록 내버려 두지 말아 달라고 간구하라고 명령했다.마카베오기 하권 13:11 · 본디새김

이들은 오랫동안 박해를 겪었습니다. 성전을 되찾고 다시 예배를 시작했지만, 그 회복을 충분히 누릴 시간도 갖지 못했습니다.

이제 또 다른 침공이 다가옵니다.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안정된 삶이 시작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다시 가족과 함께 살고, 농사를 짓고, 성전에서 예배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랐습니다.

14절에서는 여기에 도시와 생활 질서까지 덧붙입니다. 율법은 하나님께서 주신 삶의 규범이고, 성전은 예배의 중심입니다. 도시는 공동체가 모여 사는 장소이며, 나라는 조상들과 이어진 삶의 터전입니다. 생활 질서는 그 모든 것이 실제 사회 속에서 이루어지는 방식을 포함합니다.

따라서 이들이 잃을까 두려워하는 것은 단순한 땅의 일부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이 누구인지를 나타내며 살아갈 수 있는 삶 전체입니다.

사흘 동안 울고 금식하다

12절에서는 모든 사람이 사흘 동안 함께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그들은 울고 금식하고 땅에 엎드립니다. 엄청난 군대가 자기들을 향해 다가오는 상황에서 눈물을 흘립니다. 그런데 그 두려움을 감추거나 강한 척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그대로 가져갑니다.

위협은 공동체 전체를 향하고 있으므로, 그들은 함께 하나님께 자비를 구합니다. 그리고 기도가 끝나자 유다는 사람들을 격려하고 집결하라고 명령합니다.

두려워하던 사람들은 여전히 위험 앞에 있지만, 이제 함께 행동할 준비를 합니다.

기도하면서도 장로들과 의논하다

13절에서 유다는 장로들과 따로 모여 의논합니다.

그는 사흘 동안 공동체와 함께 기도한 뒤 곧바로 자기 판단만으로 군대를 움직이지 않습니다. 장로들과 상의합니다. 그리고 왕의 군대가 유대 안으로 더 깊이 들어와 도시를 장악하기 전에 먼저 공격하기로 결정합니다.

적군이 방어해야 할 도시를 점령한 뒤에는 되찾기가 더욱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14절은 그가 이 결정을 내린 뒤에도 하나님께 일을 맡겼다고 기록합니다.

기도와 의논, 전략적 결단이 함께 등장합니다.

하나님께 의지한다는 것은 판단을 포기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판단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인정하면서 책임 있게 행동하는 일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특별히 「세상의 주」라고 불리십니다.

조금 더 깊이

이 모습은 에스더 4장 15–17절에서 에스더가 왕 앞에 나아가기 전에 공동체에 사흘 동안 금식해 달라고 요청했던 사건과 주제적으로 연결됩니다. 두 이야기에서 하나님의 백성은 자기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위협 앞에 섭니다. 그러나 위기를 모른 척하지 않고 공동체가 함께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다.

「하나님의 승리」라는 암호 아래 벌어진 야간 기습

마카베오기 하권 13:15–17 본문 →

거대한 군대를 어떻게 공격했을까

유다는 모데인 부근에 군대를 배치합니다.

이어서 그는 가장 뛰어난 젊은이들을 뽑아 밤중에 왕의 숙영지를 기습합니다. 정면으로 맞붙으면 수적으로 압도적인 왕의 군대가 유리합니다. 그러나 밤에는 대규모 군대의 조직력과 이동이 오히려 제약을 받을 수 있습니다.

특히 숙영지에 갑작스러운 공격이 발생하면 적군은 상황을 파악하고 대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유다는 이러한 조건을 이용했습니다. 본문은 그가 왕의 진영에 큰 타격을 주었고, 코끼리 한 마리와 그 위의 망루에 있던 사람도 쓰러뜨렸다고 기록합니다.

그들은 진영을 두려움과 혼란으로 가득 채운 뒤 철수했습니다. 그리고 17절은 그 일이 동이 트기 전에 끝났다고 설명합니다.

암호는 「하나님의 승리」였다

15절에서 유다가 부하들에게 전한 암호는 「하나님의 승리」입니다.

유다는 실제로 사람들을 선발했습니다. 공격할 시간을 정했습니다. 왕의 숙영지에 들어가 적을 공격했습니다. 그러나 전투의 결과를 자기 능력만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17절에서 저자는 주의 보호가 그를 도왔기 때문에 기습에 성공했다고 기록합니다. 저자는 유다가 위험을 감수하며 행동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도움을 경험했다고 해석합니다.

하지만 그 성공은 곧 전쟁 전체의 종결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왕은 다시 공격 방법을 바꿉니다.

조금 더 깊이

모데인은 마카베오 가문의 출신지와 연결되는 장소입니다(마카베오기 상권 2:1). 코끼리의 등에 얹은 구조물은 병사들이 올라타 공격하거나 지휘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망루 형태였을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구절만으로 그 구조물의 정확한 모양이나 탑승 인원까지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15절의 사상자 수에는 그리스어 본문 사이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천 명가량」을 뒷받침하는 본문이 있는 반면, 다른 본문은 사천 명으로 기록합니다. 두 숫자 가운데 어느 것이 최초의 본문인지는 여기서 확정할 수 없습니다. 상권에는 유다의 형제 엘르아살이 왕이 타고 있을 것으로 여긴 큰 코끼리를 공격하다가, 그 코끼리 아래 깔려 죽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권 13장에서는 유다의 기습 부대가 코끼리를 쓰러뜨리고 철수했다고 말합니다. 두 기록의 코끼리 공격을 반드시 하나의 사건으로 합쳐 설명할 근거는 부족합니다. 상권과 하권은 왕의 원정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배열하고 서술합니다.

견고한 요새보다 위험한 것은 내부의 배신이었다

마카베오기 하권 13:18–21 본문 →

왕은 전략을 바꾸지만 여전히 성공하지 못한다

18절에서 왕은 유대 사람들의 대담함을 경험한 뒤 새로운 방법을 시도합니다.

그는 계략을 이용해 그 지역들을 공략하려 합니다. 그 과정에서 벳술을 공격합니다. 벳술은 예루살렘 남쪽의 중요한 요새였습니다. 적군이 예루살렘을 향해 나아갈 때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본문은 왕의 공격이 실패했다고 기록합니다. 그런데 20절은 유다가 요새 안의 사람들에게 필요한 물자를 보냈다고 덧붙입니다.

요새를 지키는 사람들에게는 용기와 무기뿐 아니라 식량과 보급품이 필요합니다. 견고한 성벽이 있어도 물자가 떨어지면 오래 버티기 어렵습니다. 유다는 전투에 나가는 사람들뿐 아니라 요새 안에 남아 방어하는 사람들의 필요도 살폈습니다.

로도코스가 비밀을 누설하다

21절에서는 유대 부대 안에 속한 로도코스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는 적군에게 비밀을 알려 줍니다. 그 비밀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본문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는 수색 끝에 붙잡혀 감금됩니다.

거대한 왕의 군대뿐 아니라 자기 부대 안에서 비밀을 넘기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메넬라오스는 자신의 지위를 위해 왕을 부추겼습니다. 로도코스는 적군에게 비밀을 넘겼습니다. 두 사람의 행동은 서로 다르지만,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신뢰를 훼손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어떤 동기로 행동했는지는 동일하지 않습니다. 메넬라오스의 권력욕은 3절에서 명시되지만, 로도코스의 동기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내부의 불안에도 유다는 방어를 이어 갑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다시 협상으로 옮겨 갑니다.

왕이 먼저 손을 내밀다

마카베오기 하권 13:22 본문 →

화해의 손을 내밀고도 다시 공격하다

22절에서 왕은 벳술 사람들과 다시 협상합니다.

그는 오른손을 내밀어 약속하고 상대방에게서도 약속을 받습니다. 이 행동은 고대 세계에서 신뢰와 합의를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앞서 12장 11–12절에서도 유다는 아라비아 사람들과 오른손을 맞잡으며 화해했습니다.

그런데 왕은 협상 뒤에 다시 유다의 군대를 공격합니다.

본문은 그가 패배했다고 기록합니다. 벳술 사람들과 맺은 약속이 유다의 군대와의 전쟁 전체를 종결시키지도 않았습니다. 평화의 범위는 제한적이었고, 군사적 충돌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23절에서 상황이 갑자기 바뀝니다.

왕이 유대 사람들에게 굴복한 까닭

왕은 안디옥에서 빌립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빌립은 왕국의 국정을 맡고 있던 인물로 소개됩니다. 왕은 유대에서 전쟁을 계속하려고 했지만, 안디옥에서 자신의 권력이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이제 왕에게는 새로운 선택이 필요합니다.

유대에서 전쟁을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평화를 맺고 돌아가 왕국 내부의 위기를 해결할 것인가. 본문은 왕이 당황했다고 기록합니다. 그리고 유대 사람들에게 간청하며 그들의 정당한 권리를 지키겠다고 맹세합니다.

유대 사람들을 굴복시키려고 왔던 왕이, 이제 자기 왕국을 지키기 위해 그들에게 굴복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어떤 경로로 이루어졌는가

유다의 사람들은 사흘 동안 하나님께 구원을 간구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용감하게 싸웠습니다. 왕의 진영을 기습했고, 요새를 지켰으며, 공격을 견뎌 냈습니다.

하지만 왕의 철수를 이끌어 낸 결정적인 요인 가운데 하나는 안디옥에서 발생한 정치적 위기였습니다. 그것은 유다의 군대가 직접 일으킨 사건으로 기록되지 않습니다. 또한 저자는 하나님께서 빌립에게 반란을 일으키도록 명령하셨다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이야기 전체에서 저자는 유대 공동체가 하나님의 도움으로 위기를 이겨 냈다고 해석합니다. 유다의 사람들은 전쟁에서 싸웠지만, 최종적인 결과에는 그들이 직접 통제할 수 없었던 사건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할 일을 하면서 세상의 주께 결과를 맡겼습니다.

조금 더 깊이

열왕기하 7장에서는 아람 군대가 갑자기 진영을 버리고 달아나면서 사마리아의 포위가 풀립니다. 그곳에서는 하나님께서 적군에게 병거와 말과 큰 군대의 소리를 듣게 하셨다고 설명합니다. 마카베오기 하권 13장은 그와 동일한 사건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백성을 위협하던 군대가 예상하지 못한 이유로 물러난다는 주제적 연결은 있습니다.

왕이 성전에 제물을 바쳤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마카베오기 하권 13:23 본문 →

23절에서는 왕이 유대 사람들과 화약을 맺은 뒤 특별한 행동을 합니다.

그는 유다와 그의 부하들을 공격했으나 패배했다. 국정을 맡겨 두고 온 빌립이 안디옥에서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자 그는 당황했다. 그는 유대 사람들에게 간청하고 그들에게 굴복했으며, 그들의 정당한 권리를 모두 지키겠다고 맹세했다. 또 화약을 맺고 제물을 바쳤으며, 성전과 그곳을 존중하고 호의를 베풀었다.마카베오기 하권 13:23 · 본디새김

메넬라오스는 성전의 거룩함을 훼손했습니다. 그런데 왕은 이제 성전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장소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정치적 합의의 핵심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성전을 존중하는 정치적 행동과 하나님을 진실하게 예배하는 신앙은 서로 연결될 수 있지만, 동일한 것은 아닙니다. 왕국의 권력자가 이전의 강압적인 정책을 거두고 성전에 대한 존중을 표현했다는 사실은 유대 공동체에 실제적인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계속 예배드리며 살아갈 수 있는 길을 확보했습니다.

조금 더 깊이

물론 이것을 왕이 유대의 통치권을 완전히 포기했다고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협상에서 왕이 이전보다 불리한 위치에 놓였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본문은 왕이 제사를 드렸다고 기록합니다. 그러나 그가 유대교로 개종했다거나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을 섬기기로 했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또한 그 제사의 구체적인 절차나 참여한 제사장이 누구였는지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행위는 적어도 왕이 성전에 대한 존중을 공개적으로 표현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그의 내면적인 신앙까지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9장에서 아버지 왕은 성전을 회복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약속을 실행하지 못한 채 죽었습니다. 13장에서 아들 왕은 실제로 유대 사람들과 화약을 맺고 성전을 존중하는 행동을 합니다. 그러나 두 경우 모두 왕의 행동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향한 참된 신앙 고백으로 완성되었다고 말할 근거는 부족합니다.

돌레마이 사람들은 왜 화약을 반대했을까

마카베오기 하권 13:24–26 본문 →

왕이 떠난 뒤에도 모두가 평화를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24절에서 왕은 마카베오를 받아들이고 헤게모니데스를 지역의 지휘관으로 남겨 둡니다.

여기서 「마카베오를 받아들였다」는 표현은 유다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거나 우호적으로 대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다가 어떤 구체적인 관직을 받았는지는 본문만으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이어서 왕은 돌레마이로 이동합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합니다.

돌레마이 사람들은 왕이 유대 사람들과 맺은 화약을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그들은 그 조항들을 무효로 만들려 합니다. 왕이 화약을 맺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그 결정에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본문은 그들이 몹시 겁을 내고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그 두려움의 구체적인 이유까지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마지막 전투는 연설대 위에서 벌어진다

26절에서 리시아스는 단 위에 올라갑니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대로 변론합니다. 사람들을 설득하고 달래며 호의를 품게 만듭니다. 그런 다음 군대를 거두어 안디옥으로 떠납니다.

전쟁을 멈추는 결정을 내리는 것과, 사람들이 그 결정을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것은 서로 다른 일입니다. 리시아스는 이제 후자의 문제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조금 더 깊이

두 책 모두 안티오코스 에우파토르와 리시아스가 대군을 이끌고 유대를 공격한 일, 벳술을 둘러싼 전투, 그리고 왕국 내부의 위기 때문에 평화가 이루어진 일을 기록합니다. 마카베오기 하권 13장은 유다의 기습 성공과 왕의 거듭된 패배를 강조합니다. 반면 상권 6장 47절에서는 왕의 군대가 매우 강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유대 사람들이 물러났다고 기록합니다. 상권에서는 벳술이 식량 부족 때문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협상에 나서는 모습도 나타납니다(6:49–50). 그리고 상권 6장 62절은 더욱 중요한 사실을 전합니다. 왕이 화약을 맺은 뒤 예루살렘 성전 주변의 견고한 성벽을 보고, 자신이 맹세한 약속을 어기고 그 성벽을 허물도록 명령했다는 것입니다. 이 장면은 하권 13장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두 책을 읽을 때 한쪽의 전투 기록을 다른 쪽에 억지로 맞추려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두 기록 사이의 모든 차이가 단지 강조점의 차이라고만 볼 수는 없습니다. 전투의 결과와 화약 이후의 행동에는 실제로 서로 다른 서술이 존재합니다.

마지막에 무기를 내려놓게 한 것은 무엇이었나

마카베오기 하권 13:1–26 본문 →

처음에 왕은 자신이 유대 사람들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이르면 왕 자신도 자기가 통제할 수 없는 사건들 때문에 계획을 바꾸어야 했습니다. 왕들의 왕 앞에서는 가장 강한 군대를 거느린 왕도 자신의 뜻을 끝까지 관철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인간의 행동이 무의미하다는 뜻이 아니라, 인간의 행동이 결코 최종적인 권력이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 장은 단순히 강한 권력은 모두 악하고 약한 사람은 언제나 옳다는 구도를 제시하지 않습니다. 권력이 어떤 목적을 향해 사용되는지를 보여 줍니다.

유대 사람들은 일단 위기를 넘겼지만, 앞으로 모든 위협이 사라졌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따라서 이 장의 평화는 역사의 최종적인 완성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허락하신 또 하나의 회복의 기회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리시아스는 돌레마이의 연설대에 올라섭니다.

그는 이미 전쟁을 치렀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전쟁을 멈춘 이유를 설명해야 합니다. 그곳 사람들은 유대 사람들과 맺은 협약을 못마땅해했습니다. 그러나 리시아스는 그들을 설득하고 달랩니다.

결국 그는 사람들의 호의를 얻고 안디옥으로 떠납니다.

이 장의 마지막에는 코끼리의 발소리도, 전차의 굉음도 없습니다.

한 관리가 단 위에 올라가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거대한 군대를 움직여도 이루지 못했던 일을, 이제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말로 지켜야 했습니다.

그리고 마카베오기 하권 13장은 그 왕의 군대가 유대에서 물러나 안디옥으로 돌아가는 장면으로 조용히 끝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