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베오기 하권 풀어 읽기 · 2장

이 장의 자리 · 1–2장 · 이집트로 보낸 편지

감추어진 언약궤와 보존된 말씀

마카베오기 하권 2장에는 이상한 장면이 나옵니다.

예언자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언약궤와 장막과 분향 제단을 산속 동굴에 숨깁니다. 함께 갔던 사람들은 나중에 그곳을 다시 찾을 수 있도록 길을 표시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돌아가는 길을 찾지 못합니다.

그 소식을 들은 예레미야는 그들을 나무랍니다.

언약궤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나타내는 가장 거룩한 성물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것을 안전하게 보존하고, 언젠가 되찾을 수 있도록 위치를 기록해 두려는 행동은 충분히 이해할 만합니다. 그런데 왜 예레미야는 그들을 꾸짖었을까요?

이 이야기 뒤에는 뜻밖에도 오래된 문헌을 수집했다는 기록이 등장합니다. 느헤미야가 책들을 모았고, 유다 마카베오도 전쟁 중 흩어진 책들을 모았다고 합니다. 이어서 이 책의 저자는 자신이 다른 사람이 쓴 다섯 권의 역사를 한 권으로 줄였다고 설명합니다.

동굴에 숨겨진 성물, 흩어졌다가 다시 모인 문헌, 그리고 독자에게 전달하려고 간추린 역사책.

이 세 가지는 서로 관계없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모두 하나님의 백성이 위기 속에서 무엇을 보존해야 하며, 무엇을 기다려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2:1–18은 앞 장 1:10에서 시작된 두 번째 편지의 나머지 부분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이집트의 유대인들에게 축제를 함께 지켜 달라고 요청하는 글입니다. 반면 2:19부터는 편지를 보내는 사람들이 아니라, 마카베오기 하권을 편집하고 요약한 저자가 독자에게 직접 말합니다.

읽는 시간 23분소단락 122장 본문 읽기 →

제단의 불보다 먼저 지켜야 할 것

마카베오기 하권 2:1–3 본문 →

2장은 예레미야가 포로로 끌려가는 사람들에게 내린 명령으로 시작합니다.

기록들에는 예언자 예레미야가, 앞서 언급한 대로, 끌려가는 이들에게 불을 가져가라고 명령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마카베오기 하권 2:1 · 본디새김

이 문장은 앞 장에서 소개된 제단의 불 이야기를 이어받습니다. 하지만 곧바로 다른 문제로 시선을 돌립니다.

또 그 예언자가 끌려가는 이들에게 율법을 주면서, 주의 명령들을 잊지 말고 금과 은으로 된 신상들과 그것들을 두른 장식을 보고 생각이 그릇된 길로 빠지지 않도록 당부했다는 내용도 있습니다.마카베오기 하권 2:2 · 본디새김

포로로 끌려가는 사람들이 직면한 위험은 고향을 잃는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다른 신들을 숭배하는 사회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바벨론과 같은 고대 제국에서 신상은 단순한 개인적 종교 취향을 나타내는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신들의 형상은 왕권과 도시의 권위, 공적인 제의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화려한 신상과 장식은 그 신을 섬기는 종교가 지닌 힘과 영광을 보여 주는 수단이기도 했습니다.

금과 은의 장식은 눈을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언자가 경계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화려함을 진실의 기준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입니다.

이 장면은 신명기 4:15–19의 경고와 연결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어떤 형상을 만들어 숭배하지 않도록 경계하며, 특히 눈에 보이는 것에 이끌려 다른 신들을 섬기는 일을 조심하라고 당부했습니다.

포로로 끌려가는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이미 패배했습니다. 예루살렘은 무너졌고, 다른 민족의 신전과 신상은 여전히 화려하게 서 있습니다. 그 상황에서 이들은 자신들이 섬기던 하나님이 패배하셨다고 생각하거나, 강한 제국이 섬기는 신들에게 마음을 빼앗길 위험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는 그 밖에도 이와 같은 말을 하며 율법이 그들의 마음에서 떠나지 않도록 권고했습니다.마카베오기 하권 2:3 · 본디새김

그들이 잃어버린 땅과 성전은 마음대로 되찾을 수 없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그 뜻에 따라 살아가는 일까지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점에서 신명기 6:6–9의 가르침이 떠오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마음에 새기고, 자녀들에게 가르치며, 일상생활에서 되풀이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있을 때는 성전과 절기와 제사가 공동체의 삶을 형성했습니다. 이제 그들은 그 질서를 누릴 수 없는 곳으로 끌려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명령은 그들을 따라갑니다.

율법은 예루살렘을 떠난다고 사라져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세가 바라보기만 했던 산에 언약궤를 숨기다

마카베오기 하권 2:4–6 본문 →

그 기록에는 이런 내용도 있었습니다. 예언자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장막과 궤를 자기와 함께 가져가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올라가 하나님의 상속 재산을 바라보았던 산으로 떠났습니다.마카베오기 하권 2:4 · 본디새김

예레미야가 간 산은 신명기 34:1–4에서 모세가 약속의 땅을 바라보았던 느보산을 가리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낸 지도자였지만, 자신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는 산 위에서 그 땅을 바라본 뒤 죽었습니다.

그런데 마카베오기 하권의 전승에서는 예레미야가 바로 그 산으로 올라가 언약궤를 숨깁니다.

한 사람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약속을 바라보았고, 다른 한 사람은 무너진 삶의 회복을 기다려야 하는 시대에 서 있습니다. 이 연결은 본문이 명시적으로 설명하는 신학적 교훈은 아니지만, 산을 특정하는 방식에서 충분히 발견할 수 있는 문학적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상속 재산을 바라보았던 산」이라는 표현이 독자에게 약속의 땅과 모세의 마지막 순간을 기억하게 만듭니다.

그곳에 이른 예레미야는 동굴 같은 공간을 찾아, 장막과 궤와 분향 제단을 그 안으로 들여놓고 입구를 막았습니다.마카베오기 하권 2:5 · 본디새김

장막은 이스라엘이 광야를 지나던 때 하나님을 예배하던 장소였습니다. 언약궤는 언약의 증거를 간직하고 하나님의 임재와 연결되는 성물이었습니다. 분향 제단은 성소의 예배에 속한 기구였습니다(출애굽기 25:10–22; 30:1–10).

이스라엘은 성전이 건축되기 전에도 하나님을 예배하던 백성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장면은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로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모든 관계가 끝났다고 볼 수 없게 만듭니다. 성전보다 앞선 광야의 기억이 예루살렘의 멸망을 넘어 다시 소환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이 이야기는 곧바로 보물의 위치를 찾으려는 독자의 기대를 무너뜨립니다.

함께 따라갔던 이들 가운데 몇 사람이 길에 표시를 해 두려고 가 보았지만, 그 길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마카베오기 하권 2:6 · 본디새김

이것이 다음 장면의 질문을 만듭니다. 성물을 다시 찾는 일은 인간의 기억과 기술에 달려 있는가, 아니면 다른 무엇에 달려 있는가?

조금 더 깊이

예레미야가 장막과 언약궤를 느보산 동굴에 숨겼다는 이야기는 정경의 예레미야서나 열왕기하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마카베오기 하권은 별도의 기록에 이러한 이야기가 있었다고 소개합니다. 그것이 어떤 문헌이었는지, 이 사건이 실제로 어떻게 일어났는지는 독립적으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본문이 제시하는 것은 성물의 현재 위치를 알려 주는 역사적 증거라기보다, 성물의 상실과 장래의 회복을 이해하는 하나의 고대 전승입니다.

발견의 때를 결정하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마카베오기 하권 2:7–8 본문 →

예레미야는 길을 찾으려던 사람들을 나무랍니다.

예레미야는 이를 알고 그들을 나무라며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백성을 한데 모으고 자비를 베풀 때까지 그곳은 알려지지 않을 것이다.」마카베오기 하권 2:7 · 본디새김

본문의 관심은 위치가 아니라 때입니다.

먼저 하나님이 백성을 모으십니다. 하나님이 자비를 베푸십니다. 그러면 감추어진 것들이 드러납니다.

사람들이 성물을 발견하여 하나님의 자비를 끌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이 순서를 놓치면 이야기의 의미가 뒤집힙니다. 언약궤를 되찾는 일이 구원의 조건이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성물의 회복은 하나님의 자비를 얻어 내는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비를 베푸시는 때에 속한 일입니다.

「그때 주가 이것들을 드러낼 것이며, 주의 영광과 구름이 나타날 것이다. 모세 때 드러났던 것처럼, 또 솔로몬이 그곳이 크게 거룩하게 되기를 청했던 것처럼 말이다.」마카베오기 하권 2:8 · 본디새김

이것은 출애굽기 40:34–35의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회막이 완성되었을 때 구름이 회막을 덮었고, 여호와야훼의 영광이 장막을 가득 채웠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할 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열왕기상 8:10–11과 역대하 5:13–14에서는 구름과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하여 제사장들이 서서 섬길 수 없었다고 전합니다.

장막은 사람들이 만들었습니다. 성전도 사람들이 건축했습니다. 그러나 그 장소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도록 인간이 명령할 수는 없었습니다.

언약궤를 감추거나 보존하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임재가 다시 나타나는 것은 하나님 자신의 행동입니다.

조금 더 깊이

예레미야 3:16–17에서는 장래에 사람들이 더 이상 언약궤를 기억하거나 찾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때는 예루살렘 자체가 여호와야훼의 왕좌로 불리고 여러 민족이 그곳에 모일 것입니다. 반면 마카베오기 하권 2장의 전승은 언약궤가 감추어져 있다가 하나님이 백성을 다시 모으실 때 드러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두 본문의 미래상은 완전히 같지 않습니다. 이 차이를 억지로 없앨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두 본문 모두 언약궤라는 물건 자체가 하나님의 임재를 인간에게 보장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만납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불 — 모세와 솔로몬의 봉헌

마카베오기 하권 2:9–12 본문 →

예레미야의 약속에 이어 편지는 모세와 솔로몬이 하나님께 제물을 드렸을 때의 일을 회고합니다.

모세가 주에게 기도하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제물을 태워 버렸던 것처럼, 솔로몬도 주에게 기도하자 불이 내려와 번제물들을 태워 버렸습니다.마카베오기 하권 2:10 · 본디새김

모세는 광야의 장막과 연결된 인물입니다. 솔로몬은 예루살렘 성전의 건축자입니다. 둘의 시대와 예배 장소는 달랐지만, 편지가 강조하는 공통점은 하나님이 제물을 받아들이시는 장면에서 불이 나타났다는 사실입니다.

레위기 9:23–24에서는 모세와 아론이 회막에 들어갔다가 나와 백성을 축복한 뒤, 여호와야훼 앞에서 불이 나와 제단의 번제물과 기름을 태웠다고 전합니다. 역대하 7:1에서는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번제물과 희생 제물을 태우고, 여호와야훼의 영광이 성전을 가득 채웠다고 기록합니다.

성전 봉헌은 단순히 건물이 완성되었다는 선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백성의 예배를 받아 주시는 사건입니다. 편지가 모세와 솔로몬의 이야기를 나란히 놓는 것은 마카베오 시대의 성전 정화를 이러한 예배 봉헌의 역사 안에서 이해하도록 돕기 위해서입니다.

모세는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죄를 위한 제물은 먹히지 않았기 때문에 타 없어졌다.」마카베오기 하권 2:11 · 본디새김

이 문장은 레위기 10:16–20의 사건과 관련됩니다. 그곳에서는 죄를 위한 제물을 제사장들이 먹어야 했는데도 불에 태워 버린 일이 발생합니다. 모세는 처음에 그 일을 책망했으나, 아론의 설명을 듣고 받아들입니다.

따라서 마카베오기 하권 2:11의 표현을 레위기에 나오는 모세의 말을 그대로 옮긴 정확한 인용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레위기의 상황을 짧게 요약하거나 재구성한 표현에 가깝습니다. 레위기 9장의 제물을 태운 불과 10장의 먹지 않은 죄 제물은 같은 봉헌일의 사건에 속합니다. 다만 레위기는 그 죄 제물을 하늘의 불이 태웠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솔로몬도 마찬가지로 여드레 동안 축제를 지냈습니다.마카베오기 하권 2:12 · 본디새김

역대하 7:8–9는 솔로몬 시대의 성전 봉헌과 절기 행사를 전하면서, 일곱 날의 행사와 여덟째 날의 거룩한 모임을 언급합니다. 마카베오기 하권은 이를 여드레의 축제라는 방식으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카베오 시대의 성전 정화 축제와 연결됩니다. 마카베오기 하권 10:6–8에서도 성전 정화를 기념하여 여드레 동안 축제를 지켰다고 기록합니다.

이 축제는 그저 최근에 제정된 기념일이 아닙니다. 편지는 그것을 모세와 솔로몬의 봉헌 전통, 그리고 하나님이 예배를 받아 주셨다는 오래된 기억 속에 놓습니다.

사라진 언약궤와 다시 모인 책들

마카베오기 하권 2:13–15 본문 →

이제 전혀 다른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기록들과 느헤미야에 관한 회고록에도 같은 내용이 서술되어 있었습니다. 느헤미야가 서고를 세우면서 왕들과 예언자들에 관한 책들, 다윗의 글들, 봉헌물에 관한 왕들의 편지들을 모았다는 내용도 있었습니다.마카베오기 하권 2:13 · 본디새김

예레미야 이야기에서는 성물이 파괴되거나 빼앗길 위험에 놓였습니다. 느헤미야의 이야기에서는 공동체의 역사와 신앙을 전하는 문헌들이 보존의 대상이 됩니다.

왕들과 예언자들에 관한 책들은 이스라엘의 역사와 예언 전통을 떠올리게 합니다. 다윗의 글들은 찬양과 예배의 전통을 연상시킵니다. 봉헌물에 관한 왕들의 편지들은 성전과 관련된 공적 기록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다만 이것을 현재의 구약 정경 목록과 곧바로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이 기록은 느헤미야가 여러 문헌을 수집했다고 전할 뿐, 오늘날의 성경 목록이 그때 확정되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또한 정경의 느헤미야서에는 그가 이러한 서고를 설립했다는 명시적인 기록이 없습니다. 편지는 「느헤미야에 관한 회고록」을 그 출처로 제시하지만, 그 문헌의 정확한 내용과 실체를 독립적으로 확인하기는 어렵습니다.

유다도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닥친 전쟁 때문에 흩어진 이 책들을 모았으며, 지금 우리에게 있습니다.마카베오기 하권 2:14 · 본디새김

여기서 유다는 유다 마카베오를 가리킵니다. 그는 마카베오기의 전쟁 이야기에서 군사 지도자로 등장하지만, 이 편지에서는 흩어진 문헌들을 모은 사람으로 소개됩니다.

전쟁이 파괴하는 것은 건물과 생명만이 아닙니다. 한 공동체가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하게 해 주는 기록들도 사라지거나 흩어질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성물을 감추었습니다. 유다는 흩어진 책들을 모았습니다.

그러므로 이 책들이 필요하면 여러분에게 가져다줄 사람들을 보내십시오.마카베오기 하권 2:15 · 본디새김

언약궤의 위치를 찾으려던 사람들은 예레미야에게 꾸중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책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사람을 보내 가져가라고 권합니다.

감추어진 성물의 회복은 하나님의 미래에 맡겨집니다. 반면 보존된 문헌은 지금 다른 공동체에 전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하는 일이 있고, 기다리는 동안 사람들이 책임 있게 이어 가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기록을 통해 함께 기억하다

마카베오기 하권 2:13–15 본문 →

이것은 이집트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상황에서도 중요합니다. 예루살렘의 성전에는 직접 갈 수 없는 사람들이라도, 기록을 통해 공동체의 역사와 신앙을 함께 기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 8:1–12에서 귀환한 백성은 율법책의 말씀을 듣고 그 뜻을 이해하면서 자신들의 삶을 새롭게 정비합니다. 마카베오기 하권 2장의 문헌 수집 이야기 역시 말씀과 기록이 공동체의 회복에 기여한다는 더 넓은 전통 안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전은 정화되었지만 백성은 아직 모이지 않았다

마카베오기 하권 2:16–18 본문 →

두 번째 편지는 이제 마지막 요청으로 돌아옵니다.

우리는 정화 축제를 지내려 하므로 여러분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그날들을 지내 주시면 좋겠습니다.마카베오기 하권 2:16 · 본디새김
하나님은 자신의 온 백성을 구하고, 모든 이에게 자신의 상속 재산과 왕권과 제사장단과 거룩함을 돌려주었습니다.마카베오기 하권 2:17 · 본디새김

상속 재산은 하나님이 백성에게 주신 몫과 유산을 가리킵니다. 왕권은 공동체의 통치와 정치적 질서에 관련되고, 제사장단은 성전 예배의 직무에, 거룩함은 하나님께 구별된 공동체의 정체성과 관계됩니다.

이 네 가지는 단순히 재산을 되찾고 제사를 다시 드리게 되었다는 뜻을 넘어섭니다. 편지는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에게 속한 삶의 질서를 회복시키시는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다만 이 표현을 마카베오 시대에 독립 왕정과 제사장 제도가 완전한 형태로 모두 회복되었다는 역사적 보고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실제로 다음 절은 여전히 기다려야 할 일이 남아 있음을 보여 줍니다.

율법을 통해 약속한 대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곧 우리를 불쌍히 여기고 하늘 아래 온 땅에서 거룩한 곳으로 우리를 모아 주리라고 하나님에게 희망을 둡니다. 그가 우리를 큰 재난들에서 건져 내고 그곳을 깨끗하게 했기 때문입니다.마카베오기 하권 2:18 · 본디새김

이미 회복된 것이 있지만, 아직 회복되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백성을 모으시고 자비를 베푸실 때 감추어진 성물들이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편지의 마지막에서도 사람들은 하나님이 온 땅에서 흩어진 백성을 모으시기를 소망합니다. 이로써 감추어진 언약궤의 이야기는 단순한 과거의 일화가 아니라, 편지가 마지막까지 품고 있는 미래의 소망과 연결됩니다.

이 때문에 축제를 지키는 일은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가집니다. 이미 베푸신 구원을 기억하는 감사의 행위이면서, 앞으로 이루어질 더 온전한 회복을 기다리는 행위입니다.

성전은 정화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함께 기뻐하십시오.

그러나 백성은 아직 흩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비를 계속 기다리십시오.

조금 더 깊이

그리스어 문장에서도 2:17의 하나님을 설명하는 분사들은 2:18의 소망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곧, 이미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고 회복을 베푸신 하나님이 앞으로도 자비를 베푸실 것이라는 기대입니다.

이제 다른 사람이 말하기 시작한다

마카베오기 하권 2:19–23 본문 →

2:19에서 글의 목소리가 바뀝니다.

앞부분의 편지들은 이미 완성된 자료로 제시됩니다. 반면 2:19–32는 앞으로 이어질 역사 서술에 관한 저자의 머리말입니다.

유다 마카베오와 그의 형제들에 관한 일, 지극히 위대한 성전의 정화와 제단의 봉헌,마카베오기 하권 2:19 · 본디새김

이어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와 그의 아들 에우파토르를 상대로 벌인 전쟁, 유대교를 위해 싸운 사람들에게 나타난 하늘의 표징, 성전과 도시와 율법의 회복을 열거합니다. 저자는 유다 마카베오와 형제들의 이야기를 영웅들의 전쟁담으로만 소개하지 않습니다. 그 이야기의 중심에는 성전의 정화와 제단의 봉헌이 있습니다.

또한 승리의 원인을 군사적 능력에만 돌리지 않습니다.

주가 온전히 너그러운 마음으로 그들에게 자비를 베푼 가운데, 온 세상에 이름난 성전을 되찾고 도시를 해방하며 폐지될 처지에 있던 율법들을 다시 세우게 된 일들을,마카베오기 하권 2:22 · 본디새김

전쟁에서 싸운 것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그들이 승리하고 성전과 율법을 회복한 일을 하나님의 자비와 분리하지 않습니다.

왕의 이름과 하늘의 나타나심

저자는 유대인들이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와 싸운 일을 소개한 뒤, 그들을 위해 하늘에서 모습을 드러낸 일들을 언급합니다. 안티오코스의 칭호 「에피파네스」(ἐπιφανής)는 그리스어 에피파네스로, 드러난 자 또는 빛나게 나타난 자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통치자의 신적 권위를 표현하는 칭호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의 「하늘에서 모습을 드러낸 일들」에도 같은 어근에서 나온 에피파네이아이(ἐπιφάνεια), 나타남들이라는 말이 사용됩니다. 한쪽에는 스스로를 에피파네스라고 부르는 왕이 있습니다. 다른 한쪽에는 그 왕에게 맞서는 사람들을 위해 하늘에서 나타난 일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의도된 언어유희인지는 확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독자는 이 나란한 표현에서 두 종류의 권위를 비교하게 됩니다. 왕은 자신의 이름을 통해 특별한 위엄을 드러내려 합니다. 저자는 하늘로부터 나타난 표징들을 통해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도우셨다고 전하려 합니다.

저자의 대답은 이미 2:22에 들어 있습니다. 왕의 권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가 이야기의 결말을 결정합니다.

「유대교를 위해」 싸웠다는 말의 의미

2:21은 싸운 사람들의 목적을 「유대교를 위해」라고 표현합니다. 오늘날 「유대교」라는 말을 들으면 교리와 종교 제도를 갖춘 하나의 종교를 떠올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이 말은 조상들의 율법과 관습에 따라 살아가는 유대인의 생활 방식과 정체성을 폭넓게 가리킵니다.

이 책이 다루는 갈등은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어떤 교리를 믿느냐는 문제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일, 율법에 따라 음식을 먹는 일, 할례를 행하는 일, 성전을 예배의 중심으로 인정하는 일처럼 공동체의 삶을 실제로 형성하는 관습들이 문제였습니다. 그런 삶을 지키려는 행동이 당시의 정치적 권력과 충돌할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이 표현은 저자가 어느 편에서 역사를 이야기하는지도 보여 줍니다. 그는 유대인들의 신앙과 삶의 방식을 지키려는 사람들을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그들을 위협한 적들은 「야만적인 무리」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고대 전쟁 서술의 대립적인 언어입니다. 따라서 적들을 묘사하는 이러한 표현을 모든 외국인에 대한 객관적 평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다섯 권을 한 권으로 만들다

구레네 사람 야손이 다섯 권의 책에 밝혀 놓았습니다. 우리는 이를 한 권의 책으로 요약해 보려 합니다.마카베오기 하권 2:23 · 본디새김

구레네는 북아프리카의 그리스 문화권 도시였습니다. 이곳 출신의 야손이 어떤 경로로 마카베오 시대의 역사를 조사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가 남겼다는 다섯 권도 현재 전하지 않으므로, 지금의 마카베오기 하권과 원본을 직접 비교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언급되는 야손은 뒤에 4장에서 정치적 혼란을 일으키는 대제사장 야손과는 다른 인물입니다.

마카베오기 하권은 단순히 사건들을 시간 순서대로 빠짐없이 나열한 기록이 아닙니다. 기존의 방대한 역사를 선택하고 줄여서 새로운 독자에게 전달하려는 목적을 지닌 저작입니다.

그러므로 저자가 어떤 사건을 길게 설명하고 어떤 사건을 짧게 지나가는지, 어떤 장면을 전환점으로 삼고 어떤 말을 반복하는지가 중요합니다. 사건의 내용뿐 아니라 사건을 배열한 방식도 이 책이 전달하려는 의미에 참여하기 때문입니다.

역사가가 아니라 잔치 준비하는 사람이 되다

마카베오기 하권 2:24–27 본문 →

저자는 요약 작업을 설명하면서 독자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드러냅니다.

읽기를 원하는 이들에게는 즐거움을, 기억에 담으려고 즐겨 힘쓰는 이들에게는 수월함을, 이 책을 접하는 모든 이에게는 유익을 주고자 마음을 썼습니다.마카베오기 하권 2:25 · 본디새김

저자는 단순히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많이 전달하려 하지 않습니다. 독자가 그것을 읽고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도록 만들려 합니다. 이것이 2:24에서 많은 숫자와 방대한 자료가 주는 어려움을 언급한 이유입니다.

역사적 사실이 많다고 해서 모든 독자가 그 역사를 잘 이해하는 것은 아닙니다. 세부 사항들이 너무 많으면 중요한 사건의 흐름을 놓칠 수도 있습니다.

요약하는 고생을 떠맡은 우리에게 이 일은 쉽지 않습니다. 땀을 흘리며 밤을 새워야 하는 일입니다.마카베오기 하권 2:26 · 본디새김

무엇이 중요한지 판단해야 하고, 서로 연결된 사건 가운데 어떤 것을 남길지 결정해야 합니다. 짧은 글 안에서 독자가 역사 전체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도록 구성해야 합니다.

잔치를 준비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로움을 주려고 애쓰는 사람에게 그 일이 쉽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많은 이의 감사를 위해 이 고생을 기꺼이 견디겠습니다.마카베오기 하권 2:27 · 본디새김

잔치를 준비하는 사람은 자신이 모든 음식을 먹으려고 수고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즐겁게 먹도록 준비합니다. 손님은 마련된 음식을 먹으면서 기쁨을 누리지만, 준비하는 사람은 재료를 고르고 요리하고 차리는 수고를 감당합니다.

그가 생각하는 좋은 역사 서술은 독자에게 유익을 주는 작업입니다. 저자의 수고가 독자의 이해와 기쁨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역사를 보존하는 일은 과거의 자료를 쌓아 두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그 역사를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일까지 포함합니다.

전쟁으로 흩어진 기록들을 모으는 일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기록이 보존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기록의 의미가 모든 사람에게 전달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새집을 짓는 사람과 꾸미는 사람

마카베오기 하권 2:28–31 본문 →

이어서 저자는 또 하나의 비유를 사용합니다.

새집을 짓는 책임자는 전체의 기초를 놓는 일에 마음을 써야 하고, 새로 꾸미고 그림을 그리는 일을 맡은 사람은 장식에 필요한 것들을 살펴야 합니다. 우리에게도 이와 같다고 나는 생각합니다.마카베오기 하권 2:29 · 본디새김

저자는 구레네 사람 야손과 자신의 역할을 이러한 차이로 설명합니다. 야손은 방대한 역사를 처음 서술한 사람입니다. 현재의 저자는 그 역사를 간추려 새로운 형태로 제시하는 사람입니다.

저자는 원저자와 요약자가 맡은 작업의 범위가 다르다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처음 역사를 쓰는 사람에게 요구되는 세밀한 조사와 설명을, 이를 요약하는 사람에게 똑같이 요구할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요약해 다시 쓰는 이에게는 간결한 표현을 추구하고 세세한 설명을 생략하는 일을 허용해야 합니다.마카베오기 하권 2:31 · 본디새김

마카베오기 하권에 어떤 사건의 세부 사항이 생략되어 있다고 해서, 저자가 반드시 그것을 몰랐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반대로 원본에 있었던 모든 사실이 지금의 책에도 정확히 보존되어 있다고 주장할 수도 없습니다. 저자 자신이 선택과 생략의 과정을 거쳤다고 밝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설명은 마카베오기 상권과 하권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을 줍니다. 두 책은 겹치는 시대와 사건을 다루지만 서술 방식과 강조점이 다릅니다. 마카베오기 하권은 구레네 사람 야손의 다섯 권을 요약한 책이라고 밝히며, 마카베오기 상권을 단순히 이어 쓰거나 그 내용을 그대로 줄인 책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한편 2:28의 「힘이 부칩니다」에는 그리스어 본문 전승의 차이도 있습니다. 어떤 본문에서는 힘이 빠지거나 지친다는 뜻의 동사가, 다른 본문에서는 힘써 애쓴다는 뜻의 동사가 사용됩니다. 앞뒤 문맥을 고려하면 어느 쪽이든 저자가 요약 작업의 어려움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은 같습니다. 다만 전자는 작업의 부담을, 후자는 그 작업에 들이는 노력을 더 직접적으로 드러냅니다.

서론을 길게 쓰지 말고 역사를 시작하자

마카베오기 하권 2:32 본문 →

그러니 앞서 한 말에 이만큼만 덧붙이고, 이제 이야기를 시작합시다. 역사 앞에 놓는 말은 길게 늘이면서 역사 자체는 줄이는 것이 어리석기 때문입니다.마카베오기 하권 2:32 · 본디새김

저자는 긴 역사를 짧게 줄여 독자를 돕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작업이 얼마나 힘든지, 어떤 의도로 책을 썼는지, 어떤 비유로 설명할 수 있는지를 계속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자신의 말을 멈춥니다.

이 문장은 단순한 겸손의 표현 이상입니다. 지금까지 자신이 설명한 글쓰기 원칙을 실제로 적용하는 장면입니다. 독자를 위해 간결하게 쓰겠다면, 이제 설명을 마치고 독자가 읽으러 온 역사 자체를 시작해야 합니다.

마지막의 「이제 이야기를 시작합시다」는 말도 친근합니다. 저자는 독자를 멀리서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역사를 따라가도록 안내하는 사람처럼 말합니다.

맺으며 — 길을 찾지 못한 사람들과 책을 전하려는 사람들

마카베오기 하권 2:1–32 본문 →

예레미야는 감추어진 것을 억지로 드러내려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반면 요약자는 이미 전해 받은 것을 독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드러내려 합니다. 하나님께 속한 때를 존중하면서, 자신에게 맡겨진 기억과 말씀은 다음 사람에게 충실하게 전하는 것입니다.

동굴의 길은 찾지 못했습니다. 언약궤가 언제 드러날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기억할 수는 있습니다. 흩어진 기록을 모을 수는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읽을 책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요약자는 독자에게 자신이 준비한 책을 내놓으려 합니다.

그는 잔치를 준비하는 사람처럼 수고했고, 집을 꾸미는 사람처럼 받은 자료를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더 설명하지 않기로 합니다. 독자를 위해 준비한 역사를 실제로 읽게 할 차례이기 때문입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