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베오기 하권 풀어 읽기 · 4장

이 장의 자리 · 4–5장 · 대제사장 자리 다툼

대제사장직이 팔리던 날

마카베오기 하권 3장에서 성전의 보물 창고를 빼앗으려던 헬리오도로스는 하나님의 능력 앞에 쓰러졌습니다. 막강한 왕의 명령도 성전의 재물을 빼앗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4장에서는 훨씬 심각한 일이 벌어집니다.

이번에는 외국 관리가 군대를 이끌고 성전에 침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섬겨야 할 사람들이 스스로 성전을 훼손하기 시작합니다.

앞 장에서 하나님이 지키셨던 재물을 이번에는 성전의 지도자들이 직접 빼돌립니다.

성전의 적이 성전 밖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면, 무엇이 성전을 거룩하게 지킬 수 있습니까?

저자는 이 질문에 쉽고 즉각적인 해답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거룩한 직무가 어떻게 권력의 거래 대상이 되고, 사람들의 가치관이 어떻게 바뀌며, 마침내 정의를 실현해야 할 재판까지 어떻게 돈으로 뒤집히는지를 차례로 보여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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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지키려는 사람과 도시를 팔아넘기는 사람

마카베오기 하권 4:1–6 본문 →

4장은 한 사람에 대한 고발로 시작합니다.

재물과 조국을 밀고했던, 앞서 말한 시몬은 오니아스를 헐뜯었다. 오니아스가 헬리오도로스를 부추겼으며 재앙들을 일으킨 장본인이라는 것이었다.마카베오기 하권 4:1 · 본디새김

앞 장에서 헬리오도로스가 성전의 재물을 빼앗으러 온 것은 시몬이 성전 금고의 정보를 외국 관리에게 전달하면서 시작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시몬은 이제 오니아스가 그 모든 혼란의 원인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는 도시의 은인이자 같은 겨레의 보호자이며 율법에 열심인 사람을 두고, 국정을 해치려 꾀하는 자라고 감히 말했다.마카베오기 하권 4:2 · 본디새김

도시의 은인이라는 말은 그가 공동체의 공적인 유익을 위해 일해 왔다는 평가입니다. 같은 겨레의 보호자라는 말은 백성에 대한 책임을 보여 줍니다. 율법에 열심이라는 말은 그의 행동이 하나님께 받은 명령을 기준으로 이루어졌음을 나타냅니다.

도시를 보호하는 사람이 도시를 해치는 사람으로 고발되고, 실제로 공동체의 재물을 외세에 넘기려 했던 사람은 자신을 고발자의 위치에 세웁니다. 부패가 깊어지는 순간에는 악을 행하는 것뿐 아니라, 선을 행하는 사람을 악인이라고 부르는 일까지 벌어집니다.

이 갈등은 말다툼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시몬이 신임하던 사람 가운데 하나가 살인을 저지를 정도로 사태가 악화됩니다(4:3).

왕에게 갔다. 동료 시민들을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라, 백성 전체와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익을 생각해서였다.마카베오기 하권 4:5 · 본디새김

시몬은 자신의 다툼에서 이기지 못하자 왕의 관료를 끌어들여 상대방을 해치려 했습니다. 반면 오니아스는 공동체 전체의 안정을 위해 왕의 개입을 구합니다.

두 사람 모두 외부의 권력에 접근합니다. 따라서 이 대목에서 문제는 외국 왕에게 도움을 구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닙니다. 누구의 이익을 위해, 어떤 목적으로 그 권력을 이용하는가가 중요합니다.

유대는 셀레우코스 왕국의 통치 아래 있었고, 지역의 갈등이 심각해지면 왕의 개입을 필요로 할 수 있었습니다. 본문은 오니아스가 그러한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사적인 복수가 아니라 공공의 평화를 추구했다고 평가합니다.

그런데 그가 왕에게 간 사이 왕위가 바뀝니다.

제사장이 되기 위해 돈을 바치다

마카베오기 하권 4:7–10 본문 →

셀레우코스가 죽고 에피파네스라 불리는 안티오코스가 왕위를 이어받자, 오니아스의 형제 야손이 대제사장직을 부정하게 가로챘다.마카베오기 하권 4:7 · 본디새김

성전 지도자의 지위를 둘러싼 부패가 전혀 관계없는 외부인에게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대제사장의 가족 안에서부터 권력 다툼이 벌어집니다.

야손은 왕에게 거액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는 왕에게 청원하면서 은 삼백육십 탈란톤과, 다른 수입에서 팔십 탈란톤을 바치겠다고 약속했다.마카베오기 하권 4:8 · 본디새김

그리고 더 큰 제안을 합니다.

그 밖에도 왕의 권한으로 자기가 체육관과 청년단을 세우고 예루살렘 사람들을 안디옥 시민으로 등록하게 해 준다면, 백오십 탈란톤을 더 내겠다고 약속했다.마카베오기 하권 4:9 · 본디새김

여기에는 두 가지 거래가 결합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대제사장직을 얻기 위한 돈의 거래입니다. 둘째는 예루살렘의 사회적·문화적 질서를 바꿀 권한을 얻기 위한 거래입니다.

야손은 대제사장이라는 종교적 직무만 원하지 않습니다. 그 직책을 이용하여 도시의 생활 방식까지 재편하려 합니다.

대제사장직은 누구에게 속한 것인가?

출애굽기 28–29장에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하나님께 제사장으로 구별됩니다. 민수기 18장에서도 제사장의 직무는 하나님이 맡기신 거룩한 봉사로 설명됩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께 속한 일을 수행하도록 부름받은 사람입니다. 그 직무의 권한과 책임은 왕에게 돈을 지급한 액수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야손은 왕과의 거래를 통해 대제사장직을 얻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직무가 왕에게서 사들인 권력이 됩니다. 이미 거래를 맺는 순간부터 대제사장은 하나님과 공동체를 섬기는 책임과 왕에게 이익을 제공해야 하는 의무 사이에 놓이게 됩니다.

체육관은 단순한 운동 시설이 아니었다

야손이 세우려 한 체육관은 오늘날의 헬스장과 다릅니다.

예루살렘의 젊은 세대를 그리스식 시민 교육과 문화 안에 편입시키려는 정치적·사회적 개편이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야손이 왕의 승인을 받아 예루살렘을 새로운 방식으로 조직하려 했다는 사실입니다.

안디옥은 셀레우코스 왕국의 주요 도시였습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안디옥 시민의 지위를 부여하거나 그 명칭을 갖는 시민 집단을 형성하는 일은 단순히 별명을 바꾸는 행위가 아니었습니다. 헬레니즘 도시의 시민적 특권과 제도, 정치적 정체성에 관계된 일이었습니다.

다만 이 제안이 예루살렘 주민 모두의 법적 신분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꾸었는지는 본문만으로 완전히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장에서 벌어지는 갈등은 단순히 유대인들이 외국 문화를 좋아했느냐 싫어했느냐는 문제가 아닙니다.

누가 공동체의 삶을 규정할 권한을 가지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율법입니까, 왕의 허락입니까?

조상들에게서 받은 언약의 질서입니까, 정치적 이익을 위해 도입한 새로운 제도입니까?

야손은 왕에게 돈을 바침으로써 그 결정을 내릴 권한까지 얻으려 했습니다.

제단보다 경기장이 중요해진 사람들

마카베오기 하권 4:11–17 본문 →

야손이 대제사장직을 차지한 뒤 처음 한 일은 공동체의 생활 질서를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에우폴레모스의 아버지 요한을 통해 유대 사람들에게 주어진 왕의 특혜를 폐기했다. 에우폴레모스는 로마 사람들과 우호와 동맹을 맺으러 사절로 갔던 사람이었다. 야손은 율법에 따른 생활 질서를 허물고 율법에 어긋나는 관습들을 새로 들여왔다.마카베오기 하권 4:11 · 본디새김

저자는 야손이 왕에게서 얻은 권한으로 기존의 율법적 질서를 폐기하고, 그에 어긋나는 관습을 도입했다는 사실을 문제 삼습니다. 그리스 문화는 언어와 학문, 철학과 예술, 도시 제도와 체육 활동을 포괄하는 넓은 세계였습니다. 그 가운데 무엇이 유대인의 율법과 충돌하는지, 어떤 것은 받아들일 수 있는지는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변화는 젊은 세대에게서 시작됩니다.

그는 기꺼이 성채 바로 아래에 체육관을 세우고, 우리 가운데 가장 뛰어난 사람들을 자기에게 복종시켜 챙 넓은 모자를 쓰게 했다.마카베오기 하권 4:12 · 본디새김

본문에서 이 모자는 단순한 패션 소품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적 소속을 드러내는 표지로 기능합니다. 특별히 야손이 끌어들인 사람들은 「우리 가운데 가장 뛰어난 사람들」입니다. 사회에서 영향력 있는 젊은이들이 새로운 문화와 제도에 먼저 편입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저자는 변화의 가장 심각한 결과를 청년들의 복장이 아니라 제사장들의 행동에서 발견합니다.

그 결과 제사장들은 더 이상 제단에서 섬기는 일에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성전을 업신여기고 제사를 소홀히 하며, 원반 경기에 나오라는 부름을 받고는 씨름터에서 마련한 율법에 어긋나는 행사에 참여하러 서둘러 갔다.마카베오기 하권 4:14 · 본디새김

저자는 이들의 가치관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변화가 몸의 움직임으로 드러나는 장면을 보여 줍니다. 본문은 제사장들이 운동을 했다는 사실 자체를 죄로 규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맡은 제사의 직무를 소홀히 하고 성전을 업신여기면서 새로운 사회적 영예를 추구한 일을 비판합니다.

가장 중요한 단어는 「명예」다

그들은 조상에게서 내려온 영예는 하찮게 여기고, 그리스의 명예를 가장 훌륭하게 여겼다.마카베오기 하권 4:15 · 본디새김

사람들은 단순히 새로운 생활 방식이 편리하거나 재미있어서 기존의 것을 버린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 자신을 명예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지에 대한 판단이 달라졌습니다.

제사장의 직무는 조상들에게서 내려온 거룩한 책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직무보다 그리스식 시민 사회에서 받는 인정과 명성이 더 매력적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성전은 아직 그 자리에 있었지만, 사람들의 마음에서 가장 영예로운 자리를 잃어 가고 있었습니다.

외부의 침략자는 성전의 문을 뚫고 들어와야 합니다. 그러나 성전을 섬겨야 할 사람들이 스스로 자기 직무를 하찮게 여기기 시작하면, 건물을 그대로 둔 채로도 공동체의 예배 질서는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리스 풍습과 유대교의 대립

문제는 어떤 교리를 머릿속으로 믿는가에 한정되지 않았습니다. 도시를 어떤 제도로 운영할 것인지, 청년들을 어떻게 교육할 것인지, 어느 명예를 추구할 것인지, 성전의 직무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길 것인지가 모두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저자는 야손의 행동을 매우 강하게 비난하면서 그를 「대제사장도 아닌 불경한 자」라고 부릅니다(4:13). 야손이 실제로 왕의 임명을 받지 않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는 왕의 허락을 받아 대제사장직을 차지했습니다. 저자는 그가 직책을 가졌지만 그 직책에 합당한 사람이 아니었다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앞으로 벌어질 일을 예고합니다.

그 때문에 그들은 혹독한 곤경에 휩싸였다. 그들이 생활 방식을 선망하고 모든 면에서 똑같아지려 했던 바로 그 사람들이 그들의 적이 되어 그들을 벌했다.마카베오기 하권 4:16 · 본디새김

그들은 강한 사람들의 생활 방식을 따라 하면 자신들도 인정받고 안전해질 것이라고 기대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닮고자 했던 세계의 권력자들이 오히려 그들을 위협하게 됩니다.

다만 이를 그리스 문화를 받아들인 모든 사람에게 반드시 재앙이 온다는 일반 법칙으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이 구절은 야손의 개혁과 그 이후의 박해를 연결하려는 저자의 역사적·신학적 해석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거슬러 불경한 짓을 하는 것은 가벼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일들은 앞으로의 시간이 밝혀 줄 것이다.마카베오기 하권 4:17 · 본디새김

독자는 아직 비극의 전모를 보지 못했습니다. 저자는 뒤에 이어질 사건들을 통해 지금 시작된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보여 주겠다고 예고합니다. 물론 이 구절이 모든 억울한 죽음의 이유를 뒤에 가서 반드시 알아낼 수 있다고 약속하는 것은 아닙니다.

헤라클레스에게 보낼 돈과 왕을 환영하는 횃불

마카베오기 하권 4:18–22 본문 →

이제 야손의 개혁이 예루살렘 밖의 세계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드러납니다.

두로에서 체육 경기가 열리고 안티오코스 왕도 참석합니다.

더러운 야손은 예루살렘의 안디옥 시민 자격으로 참석할 사절들을 보내, 헤라클레스에게 바칠 제사에 쓰도록 은 삼백 드라크마를 가져가게 했다. 그런데 돈을 가져간 사람들은 그것을 제사에 쓰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고,마카베오기 하권 4:19 · 본디새김

헤라클레스는 그리스 세계에서 영웅이자 신적 존재로 숭배되었습니다. 경기 행사와 종교 제의는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그 돈은 삼단 노 배들을 만드는 데 사용됩니다(4:20). 이들은 야손의 정책 아래 새롭게 형성된 시민 집단에 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조차 야손이 요청한 종교적 행동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습니다.

새로운 제도에 참여하면서도 다른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일에는 거부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장면은 사람들의 선택이 단순히 친그리스와 반그리스라는 두 범주로 나뉘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이어서 안티오코스가 예루살렘에 도착합니다.

야손과 도시 사람들은 그를 성대하게 환영했고, 횃불 행렬과 함성으로 맞아들였다. 그 뒤 그는 페니키아에 진을 쳤다.마카베오기 하권 4:22 · 본디새김

그러나 독자는 바로 앞에서 야손이 어떻게 대제사장직을 얻었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는 왕에게 돈을 약속하고 율법에 따른 질서를 바꾸었습니다. 따라서 이 환영 행사는 단순한 외교적 예절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야손의 통치가 왕의 권위와 얼마나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런데 바로 그 왕의 권위가 얼마 지나지 않아 야손 자신에게 위협이 됩니다.

빼앗은 사람은 똑같은 방법으로 빼앗긴다

마카베오기 하권 4:23–29 본문 →

삼 년이 흐른 뒤 야손은 메넬라오스를 왕에게 보냅니다.

메넬라오스는 성전의 재물을 고발했던 시몬의 형제입니다. 야손은 그에게 돈과 중요한 보고를 맡겨 왕에게 보냅니다. 그런데 메넬라오스는 이 기회를 자기 권력을 얻는 데 이용합니다.

메넬라오스는 왕에게 소개되자 권세 있는 이의 풍모를 보이며 왕을 치켜세웠다. 그리고 야손보다 은 삼백 탈란톤을 더 내겠다고 하여 대제사장직을 자기 차지로 만들었다.마카베오기 하권 4:24 · 본디새김

야손은 왕에게 돈을 바쳐 오니아스의 대제사장직을 가로챘습니다. 이제 메넬라오스는 더 많은 돈을 약속하여 야손의 대제사장직을 가로챕니다.

자기 형제의 자리를 부정하게 가로챘던 야손은 다른 사람에게 자기 자리를 부정하게 빼앗기고, 암몬 땅으로 쫓겨나 도망자 신세가 되었다.마카베오기 하권 4:26 · 본디새김

야손은 자신이 만들어 낸 정치적 규칙의 희생자가 됩니다.

대제사장직을 왕에게서 돈으로 살 수 있다면, 왕은 언제든 더 많은 돈을 내는 사람에게 그 직책을 줄 수 있습니다. 야손은 그 방식으로 오니아스를 몰아냈지만, 그 방식 때문에 자기 자리도 지킬 수 없게 됩니다.

거룩한 직무를 돈으로 얻을 수 있는 자리로 바꾸면, 그 직무를 지키는 기준도 충실함이 아니라 돈이 됩니다.

그는 왕의 명령서를 받아 돌아왔다. 대제사장직에 걸맞은 것은 아무것도 갖추지 못한 채, 잔혹한 폭군의 격정과 사나운 짐승의 분노를 지니고 있었다.마카베오기 하권 4:25 · 본디새김

레위기 16장에서 대제사장은 속죄일에 백성과 성소를 위해 속죄하는 일을 수행합니다. 그는 공동체를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메넬라오스에게서 저자가 발견한 것은 백성을 위한 중재자의 모습이 아니라 폭군과 맹수의 모습입니다.

공식적인 임명장은 있지만, 거룩한 직무에 합당한 성품은 없습니다.

메넬라오스는 이제 대제사장직을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곧 그의 권력을 지탱하던 돈의 약속이 문제를 일으킵니다.

메넬라오스는 권력을 잡고 있었으나, 왕에게 약속한 돈은 하나도 제때 내지 않았다.마카베오기 하권 4:27 · 본디새김

성채 수비대장 소스트라토스가 납부를 독촉하고, 두 사람은 왕에게 소환됩니다. 왕에게는 대제사장의 경건함이나 백성의 신뢰보다 약속한 수입이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메넬라오스가 그 직책을 유지하는 데에도 제사장으로서의 충실함보다 재정적 의무가 결정적인 압력으로 작용합니다.

그는 자신의 형제 리시마코스에게 직무를 맡기고 왕에게 갑니다. 이제 대제사장직은 돈으로 사고파는 데서 그치지 않고, 권력자가 자리를 비우는 동안 가족에게 맡겨 두는 지위처럼 취급됩니다.

그리고 바로 이 상황에서 성전의 금 기물들이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조금 더 깊이

4:26의 그리스어에서는 야손이 남의 자리를 빼앗았다는 동사와, 다른 사람에게 빼앗겼다는 동사가 같은 어근으로 맞물립니다. 자기가 행한 일이 그대로 자기에게 돌아오는 듯한 문장 구조입니다.

성전의 금으로 침묵을 사고, 맹세한 손으로 사람을 죽이다

마카베오기 하권 4:30–32 본문 →

메넬라오스가 왕에게 불려 간 동안, 왕국의 다른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납니다.

다소와 말로스의 주민들은 자신들의 도시가 왕의 첩 안티오키스에게 선물로 넘겨진 데 반발합니다(4:30). 안티오코스는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떠나면서 안드로니고를 자신의 대리인으로 남겨 둡니다.

왕은 자신이 지배하는 도시를 개인에게 선물할 수 있는 재산처럼 취급합니다. 예루살렘에서는 대제사장직이 왕에게 돈을 바치는 사람에게 넘어갔고, 다른 지역에서는 도시 자체가 왕의 사적인 선물이 됩니다.

메넬라오스는 왕이 자리를 비운 상황을 기회로 삼습니다.

메넬라오스는 알맞은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하여, 성전의 금 기물 몇 개를 빼돌려 안드로니고에게 선물했다. 다른 것들은 이미 두로와 그 주변 도시들에 팔아 놓기도 했다.마카베오기 하권 4:32 · 본디새김

대제사장직을 돈으로 얻으려던 사람이, 마침내 대제사장직을 이용하여 성전의 물건을 자기 돈처럼 다루게 된 것입니다.

제사장은 성전을 관리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관리한다는 것이 소유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성전의 기물은 제사장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사유재산이 아닙니다.

메넬라오스는 맡겨진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불가침의 장소에서도 안전하지 않았던 오니아스

마카베오기 하권 4:33–38 본문 →

오니아스는 이 일을 알고 고발합니다.

그 일을 분명히 알아낸 오니아스는 안디옥 근처 다프네에 있는 불가침의 피난처로 물러나, 그 일을 고발했다.마카베오기 하권 4:33 · 본디새김

예루살렘의 정당한 대제사장이었던 사람이 이제 자신의 동족이 저지르는 악행을 피하려고 외국의 성역에 의지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지키려던 사람이 정작 자신을 지키기 위해 다른 곳으로 피신해야 합니다.

그런데 메넬라오스는 그곳에서도 오니아스를 그냥 두지 않습니다. 그는 안드로니고를 설득하여 오니아스를 죽이게 합니다.

그 과정에서 사용되는 수단은 무력보다 먼저 신뢰입니다.

그러자 메넬라오스는 안드로니고를 따로 만나 오니아스를 처치해 달라고 부탁했다. 속임수에 가담하도록 설득된 안드로니고는 오니아스를 찾아가 맹세하며 오른손을 잡고 또 오른손을 내밀어 약속했다. 그는 의심을 받으면서도 오니아스를 설득해 불가침의 피난처에서 나오게 했다. 그리고 정의를 아랑곳하지 않고 곧바로 그를 죽였다.마카베오기 하권 4:34 · 본디새김

이 장면에서 무너지는 것은 한 사람의 생명만이 아닙니다.

불가침의 장소가 지닌 보호의 의미가 짓밟힙니다. 맹세의 신뢰가 파괴됩니다. 오른손을 내미는 약속이 살인의 도구가 됩니다.

거룩한 것을 사유화하는 사람은 마침내 신뢰마저 자기 이익을 위한 도구로 만들 수 있습니다.

누가 오니아스의 죽음을 슬퍼했는가?

이 때문에 유대 사람들뿐 아니라 다른 민족 사람들도 많이 그 사람의 부당한 죽음에 분개하고 괴로워했다.마카베오기 하권 4:35 · 본디새김

이어 4:36에서는 그리스 사람들까지 유대인들과 함께 그 악행을 미워했다고 전합니다. 이것은 책의 갈등을 유대인 대 그리스인이라는 단순한 민족적 대립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유대인인 메넬라오스는 성전의 기물을 훔치고 오니아스의 살해를 사주했습니다. 반면 그리스인들 가운데는 오니아스의 죽음을 부당하다고 판단하고 정의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민족에 속했는가만으로 그 사람의 도덕성이 결정되지 않습니다.

이에 안티오코스는 진심으로 슬퍼하고 가엾게 여겼다. 죽은 사람의 절제와 더없이 단정했던 행실 때문에 눈물을 흘렸고,마카베오기 하권 4:37 · 본디새김

저자는 안티오코스를 모든 순간에 악한 판단만 내리는 인물로 그리지 않습니다. 이 장면에서 왕은 오니아스가 부당하게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의 행실을 높이 평가합니다.

분노로 불타올라 곧바로 안드로니고의 자주색 옷을 벗겨 내고 속옷들을 찢어 벗겼다. 그를 온 도시로 끌고 다닌 뒤, 그가 오니아스에게 불경한 짓을 저지른 바로 그곳에서 그 살인자를 없애 버렸다. 주가 그에게 마땅한 벌을 내린 것이었다.마카베오기 하권 4:38 · 본디새김

왕이 처형을 명령했지만, 저자는 그 결과를 주께서 행하신 정의로운 심판으로 이해합니다. 하나님이 정의를 이루시는 일은 언제나 하늘에서 특별한 존재가 나타나는 방식으로만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 장에서 저자는 인간 통치자가 살인자를 처벌한 사건도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안드로니고는 처형되었지만, 그에게 오니아스를 죽이도록 부탁한 메넬라오스는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성전의 기물을 훔친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곧이어 또 다른 성전 약탈이 벌어집니다.

조금 더 깊이

다프네는 안디옥 인근의 장소로, 그리스 종교의 성역이 있던 지역입니다. 고대의 성역 가운데는 그곳으로 피신한 사람에게 일정한 보호를 제공한다고 여겨진 곳들이 있었습니다. 오른손을 내미는 행동은 신뢰와 합의를 확인하는 몸짓입니다. 여기에 맹세까지 더해졌습니다. 출애굽기 20:7과 레위기 19:12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 맹세를 하는 일을 경계합니다. 구체적인 맹세의 내용은 여기서 밝혀지지 않지만, 안드로니고가 맹세를 이용해 상대방을 속였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자주색 옷은 고위 관리의 신분과 권위를 드러내는 의복입니다. 따라서 옷을 벗기는 행동은 단순한 모욕이 아니라 그가 지녔던 권력과 명예를 공개적으로 박탈하는 행위입니다.

성전의 재물을 지키려는 사람들에게 무기가 향하다

마카베오기 하권 4:39–42 본문 →

오니아스가 죽은 뒤 메넬라오스의 악행은 계속됩니다.

한편 리시마코스가 메넬라오스의 동의를 얻어 도시에서 성물을 여러 차례 훔치고 그 소문이 밖으로 퍼지자, 군중이 리시마코스에게 맞서 모여들었다. 이미 많은 금 기물이 밖으로 실려 나간 뒤였다.마카베오기 하권 4:39 · 본디새김

이제 성전의 재물을 빼돌리는 일이 한 사람의 은밀한 범죄를 넘어섭니다. 대제사장과 그 직무를 대신 맡은 형제가 함께 성물을 훔치는 일에 연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막으려는 사람들은 제사장들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입니다.

성전의 질서를 보호해야 할 지도자들이 오히려 성물을 약탈하고, 그 약탈을 막으려는 사람들이 거리로 나옵니다.

군중이 들고일어나 분노로 가득 차자, 리시마코스는 삼천 명가량을 무장시켜 부당한 폭력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아우라노스라는 자가 앞장섰는데, 나이도 많았지만 어리석음도 그에 못지않은 자였다.마카베오기 하권 4:40 · 본디새김

성물을 지켜야 할 직무를 맡은 사람이 이제 성물 도난에 항의하는 사람들에게 무력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시민들이 가진 무기는 초라합니다.

사람들은 리시마코스의 공격을 알아채고, 더러는 돌을, 더러는 굵은 나무토막을 움켜잡았으며, 어떤 이들은 곁에 있던 재를 한 움큼씩 집었다. 그들은 이것들을 리시마코스의 무리에게 마구 던졌다.마카베오기 하권 4:41 · 본디새김

이 사람들은 처음부터 정규 군대처럼 무장한 것이 아닙니다. 바로 곁에 있는 것들을 집어 들어 자신들을 공격하는 사람들에게 맞섰습니다.

그리하여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을 다치게 하고 일부는 쓰러뜨렸으며, 모두 달아나게 했다. 성물을 훔친 그자도 보물 창고 곁에서 처치했다.마카베오기 하권 4:42 · 본디새김

그가 약탈의 대상으로 삼았던 성전의 보물 창고 곁에서 그의 삶이 끝납니다. 그러나 이 장면을 일반 시민들의 모든 폭력을 정당화하는 본문으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저자는 리시마코스가 먼저 부당한 무력을 행사했다고 기록하고, 시민들의 대응과 그 결과를 서술합니다.

시민들은 무력 충돌에서 이겼지만, 이제 왕의 법정에서 정의가 실현될 것인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죄인은 풀려나고 변호인은 처형되다

마카베오기 하권 4:43–50 본문 →

4장의 마지막 장면은 앞선 모든 사건보다 더 깊은 절망을 보여 줍니다.

메넬라오스를 상대로 재판이 열립니다. 왕이 두로에 도착하자 원로회가 보낸 세 사람이 왕 앞에서 변론합니다. 이들은 도시와 주민들과 성전의 기물들을 위해 나선 사람들입니다(4:44, 48).

처음에는 정의가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미 변론에서 밀린 메넬라오스는 도리메네스의 아들 프톨레마이오스에게 많은 돈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왕을 설득해 달라는 것이었다.마카베오기 하권 4:45 · 본디새김

그가 선택한 방법은 다시 돈입니다.

대제사장직을 얻을 때도 돈을 사용했습니다. 권력을 유지하는 과정에서도 성전의 기물을 뇌물로 제공했습니다. 이제 자신을 향한 재판의 결과까지 돈으로 바꾸려 합니다.

그러자 프톨레마이오스는 바람을 쐬게 한다는 구실로 왕을 어느 주랑으로 따로 데려가, 그의 마음을 돌려놓았다.마카베오기 하권 4:46 · 본디새김

공적인 재판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고발자들은 왕 앞에서 변론했습니다. 그런데 재판의 결론은 공개적인 변론이 아니라 왕을 따로 데리고 나가 나눈 대화에 의해 바뀝니다.

정의의 판단이 공적인 논증의 영역에서 사적인 영향력의 영역으로 옮겨 간 것입니다.

왕은 모든 악행의 원흉인 메넬라오스에게는 고발된 혐의를 벗겨 주고, 그 불행한 사람들에게는 사형을 선고했다. 그들은 스키티아 사람들 앞에서 변론했더라도 죄 없다고 풀려났을 사람들이었다.마카베오기 하권 4:47 · 본디새김

처음에는 선한 사람을 악인이라고 부르는 거짓 고발이 있었습니다. 마지막에는 그 뒤집힌 판단이 실제 판결로 확정됩니다.

정의를 실현해야 할 제도가 오히려 정의를 파괴했습니다.

두 번의 왕의 판단

앞에서는 왕이 오니아스의 억울한 죽음을 슬퍼하며 안드로니고를 처형했습니다. 그때 저자는 주께서 그에게 마땅한 벌을 내리셨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뒤에서는 같은 왕이 메넬라오스의 뇌물에 영향을 받아 무죄한 사람들을 처형합니다.

왕이 어떤 사건에서 정의로운 판단을 내렸다고 해서 언제나 정의롭게 행동하는 것은 아닙니다. 왕에게 항의할 수 있는 절차가 있다고 해서 그 절차가 반드시 올바른 결과를 보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정의가 한 사람의 기분과 사적인 이해관계에 좌우된다면, 그 정의는 언제든 뒤집힐 수 있습니다.

외국인들이 장례를 치러 주다

이 때문에 두로 사람들까지도 그 악행을 미워하여, 그들의 장례에 필요한 비용을 아낌없이 댔다.마카베오기 하권 4:49 · 본디새김

이것은 앞서 오니아스의 죽음을 유대인뿐 아니라 그리스인들도 슬퍼했던 장면과 연결됩니다. 이 행동이 죽은 사람들을 되살리거나 정의를 완전히 회복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권력의 판결과 별개로 사람들이 그 판결의 부당함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메넬라오스는 권력자들의 탐욕 덕분에 여전히 권력을 쥐고 있었다. 그는 악행을 더해 가며 시민들을 해치려 꾀하는 무서운 적이 되어 있었다.마카베오기 하권 4:50 · 본디새김

대제사장은 백성을 위해 하나님 앞에 서야 할 사람입니다. 그러나 지금 그 직무를 차지한 사람은 백성을 해치려는 적이 되었습니다.

직책의 이름은 그대로 남았지만, 그 직책이 수행해야 할 역할은 정반대로 바뀌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스키티아 사람들은 그리스계 문헌에서 종종 문명 세계의 바깥에 있는 거친 민족의 이미지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표현에는 당시의 민족적 편견을 반영한 수사가 담겨 있습니다. 따라서 이를 스키티아 사람들의 실제 사법 제도에 관한 객관적인 역사적 평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자신들이 미개하다고 여겼을 사람들조차 무죄를 인정했을 이들에게, 왕의 법정은 사형을 선고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신명기 16:19의 가르침과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그곳에서 모세는 재판을 굽게 하지 말고, 사람을 차별하지 말며, 뇌물을 받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뇌물은 지혜로운 사람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사람의 말을 뒤집기 때문입니다.

맺으며 — 장례를 치른 사람들과 권력을 지킨 사람

마카베오기 하권 4:1–50 본문 →

같은 재물이 누군가의 권력을 유지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고, 억울하게 죽은 사람의 존엄을 지키는 데 쓰일 수도 있습니다. 무엇을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보다, 그것을 누구를 위해 사용하는가가 중요합니다. 어떤 직책을 차지했는가보다, 그 직책을 통해 누구를 보호하는가가 중요합니다.

3장에서는 하나님이 하늘의 존재들을 통해 헬리오도로스를 쓰러뜨리시고 성전의 재물을 지키셨습니다. 그런데 4장에서는 성전의 지도자들이 재물을 훔치고 의로운 대제사장이 살해되는데도 비슷한 장면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본문은 그 이유를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오니아스가 죽은 것은 하나님이 그를 버리셨기 때문이라거나, 공동체가 타락했으므로 더는 보호받을 자격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이 지금 성공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가 옳다는 증거는 아니며, 어떤 사람이 부당한 고통을 겪었다는 사실이 그가 잘못했다는 증거도 아닙니다.

두로의 사람들이 부당하게 처형된 사람들의 장례 비용을 마련해 주는 장면입니다. 그들은 대제사장직을 차지하지도 않았고, 왕의 판결을 바꾸지도 못했습니다. 다만 죽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처형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들의 장례를 위해 자신들의 돈을 내놓았습니다.

오니아스는 죽었고, 그를 위해 나선 사람들도 죽었습니다. 메넬라오스는 여전히 권력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4장은 이 뒤집힌 현실을 바로잡지 않은 채 끝납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뒤집히지 않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저자의 판단입니다.

그는 권력을 가진 메넬라오스를 의로운 사람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부당하게 죽은 사람들을 죄인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왕의 판결이 내려졌다는 이유로 그것을 정의라고 인정하지도 않습니다.

도시의 권력은 부패했고 재판은 뒤집혔지만, 무엇이 악이고 무엇이 부당한지는 끝까지 분명하게 기록합니다.

그리고 메넬라오스가 여전히 권력을 쥐고 있었다는 사실을 마지막에 남깁니다. 아직 정의가 회복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독자가 잊지 못하도록 말입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