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베오기 하권 풀어 읽기 · 7장
이 장의 자리 · 6–7장 · 박해와 순교
누가 생명을 다시 줄 수 있는가
마카베오기 하권 7장에는 성경에서도 손꼽힐 만큼 고통스러운 이야기가 나옵니다.
일곱 형제가 어머니 앞에서 차례로 고문당하고 죽습니다. 왕은 그들에게 돼지고기를 먹으라고 강요하지만, 그들은 모두 거절합니다. 어머니는 하루 동안 일곱 아들의 죽음을 지켜보면서도 마지막까지 아들들을 격려합니다.
어머니가 자녀의 생명을 자기에게서 비롯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그녀는 바로 뒤에서 자신이 아들을 아홉 달 동안 품었고, 세 해 동안 젖을 먹였으며, 정성껏 길러 왔다고 말합니다(7:27). 누구보다 자녀의 생명을 가까이에서 돌본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아이의 생명을 돌볼 수 있었을 뿐, 그 생명 자체의 궁극적인 근원은 아니라고 고백합니다.
7장의 중심에는 누가 사람을 죽일 수 있는가보다, 누가 사람에게 생명을 줄 수 있는가라는 더 근본적인 질문이 놓여 있습니다.
앞 장에서 엘르아살은 금지된 음식을 먹는 척만 하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제안도 거절했습니다. 이제 7장은 비슷한 강요를 받은 가족의 이야기로 이어지지만, 질문의 중심은 달라집니다. 엘르아살의 이야기에서는 한 사람이 남길 본보기가 중요했습니다. 일곱 형제의 이야기에서는 죽음을 넘어 하나님이 어떻게 정의를 이루시고 생명을 회복하실 것인가라는 소망이 전면에 등장합니다.
고문은 계속되지만 신앙의 고백은 점점 깊어집니다.
저자는 잔혹한 장면을 일곱 번 자세히 반복하지 않습니다. 첫째 형제의 고문을 가장 구체적으로 묘사한 뒤, 다른 형제들에게서는 그들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진행합니다.
혀를 잘라도 서로의 고백을 멈추게 할 수 없다
일곱 형제와 어머니가 붙잡힙니다.
왕은 그들에게 율법이 금지한 돼지고기를 먹으라고 강요합니다. 그 가운데 한 형제가 대표로 나서서 말합니다.
그들 가운데 하나가 나서서 형제들을 대표해 말했다. 「저희에게 물어서 무엇을 알아내려 하십니까? 저희는 조상에게서 내려온 법을 어기느니 차라리 죽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마카베오기 하권 7:2 · 본디새김
왕에게는 이들이 끝까지 버틸 것인지, 어느 정도의 고통을 가하면 굴복할 것인지가 문제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형제들의 대답에 따르면 협상의 대상 자체가 없습니다. 그들은 무엇을 얻기 위해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조상에게서 받은 법을 어기는 것이 그들에게 허용 가능한 선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그들은 「저」가 아니라 「저희」라고 말합니다. 형제 가운데 한 사람이 입을 열었지만, 그는 모두의 입장을 대표합니다. 이 공동의 고백이 이후 일곱 번의 고문과 죽음을 하나의 이야기로 묶습니다.
왕은 몹시 화를 냅니다. 번철과 가마솥을 달구게 하고, 말한 형제의 혀를 자른 뒤 몸을 훼손하도록 명령합니다. 왕의 명령을 거절하는 말을 했던 사람의 혀가 먼저 잘립니다.
이것을 고백을 침묵시키려는 행동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왕은 단지 몸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신에게 맞선 목소리를 제거하려 합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예상과 다르게 이어집니다.
첫째 형제가 고문당하는 동안 다른 형제들과 어머니는 침묵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입을 열어 처음으로 함께 고백하는 것은 복수의 선언이 아닙니다.
「주 하나님께서 지켜보고 계시며, 참으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다. 모세가 면전에서 맞서 증언하는 노래에서 『또 그는 자기 종들을 불쌍히 여길 것이다.』라고 말하며 분명히 밝혔듯이 말이다.」마카베오기 하권 7:6 · 본디새김
그들은 하나님이 고문을 즉시 멈추게 하셨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고문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바로 그 순간 하나님이 자신들을 불쌍히 여기신다고 고백합니다.
모세의 노래에서 가져온 한 문장
이것은 신명기 32:36을 직접 인용한 말씀입니다. 신명기 32장은 이스라엘의 배신과 하나님의 심판, 그리고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을 함께 노래합니다. 특히 32:36의 문맥에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힘이 다하고 스스로를 구할 능력이 사라진 때에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분으로 묘사됩니다.
지금 이 가족은 아무런 무력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왕의 병사들을 물리칠 수도 없고, 고문을 중단시킬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의 힘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하나님이 자신들을 버리셨다는 증거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고통이 없어서 하나님의 자비를 믿는 것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이 자신들을 보고 계신다고 믿습니다.
본문이 말하는 하나님의 긍휼은 이 순간에 즉각적인 구출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형제들이 고백하는 긍휼은 하나님이 이 고통을 모르시거나 외면하지 않으신다는 믿음과, 그분이 장차 행하실 일에 대한 기대 속에 놓여 있습니다.
왕은 현재의 생명을 빼앗지만, 세상의 왕은 다시 살리신다
첫째 형제가 죽자 둘째가 끌려 나옵니다.
그는 조상 대대로 쓰던 말로 대답했다. 「먹지 않겠습니다.」 그래서 그도 첫째와 마찬가지로 뒤이은 고문을 당했다.마카베오기 하권 7:8 · 본디새김
왕은 그들에게 조상의 법을 버리라고 강요합니다. 그런데 둘째 형제는 바로 그 조상들의 언어로 거절합니다. 말의 내용과 말을 전달하는 언어가 함께 그의 정체성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둘째 형제는 죽음 앞에서 첫째 형제보다 더 구체적인 고백을 남깁니다.
그는 마지막 숨을 내쉬려 할 때 말했다. 「저주받은 자여, 저희에게서 지금의 삶을 빼앗으시지만, 세상의 왕께서는 자신의 법을 위해 죽은 저희를 일으켜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 살게 하실 것입니다.」마카베오기 하권 7:9 · 본디새김
안티오코스는 셀레우코스 왕국의 통치자이지만, 형제들이 고백하는 하나님은 온 세계의 왕이십니다. 그런데 두 왕의 차이는 지배하는 영토의 크기에만 있지 않습니다.
안티오코스는 생명을 빼앗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생명을 다시 주실 수 있습니다.
죽음 이후의 삶이 아니라 죽은 사람의 부활
왕이 지금의 삶을 빼앗더라도 하나님이 죽은 사람을 다시 일으키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또한 육체는 사라지고 영혼만 계속 존재한다는 생각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여기서 부활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정의에 관한 믿음과 연결됩니다. 만약 왕이 사람들을 죽이는 것으로 모든 일을 끝낼 수 있다면, 그의 폭력은 최종적인 승리가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죽은 사람들을 다시 일으키실 수 있다면, 왕이 내린 죽음의 판결은 최종적인 판결이 아닙니다.
왕이 내릴 수 있는 마지막 형벌이 하나님이 내리실 마지막 판결은 아닙니다.
조금 더 깊이
「조상 대대로 쓰던 말」이 구체적으로 히브리어인지 아람어인지는 이 표현만으로 확정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부활의 소망은 다니엘 12:2와도 깊이 연결됩니다. 그곳에서는 땅의 티끌 속에서 잠자는 사람들이 깨어나 어떤 이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다른 이들은 영원한 수치와 혐오에 이르게 된다고 말합니다. 다니엘 12장과 마카베오기 하권 7장은 모두 극심한 박해와 고난을 배경으로 하며, 죽음이 하나님의 정의를 무효로 만들 수 없다는 소망을 드러냅니다. 다만 이 두 본문이 서로를 직접 인용한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습니다. 그보다는 박해를 경험하던 유대인들 가운데 개인의 부활과 하나님의 최종적인 심판에 관한 기대가 중요한 신앙의 언어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 주는 본문들입니다. 이사야 26:19에도 죽은 사람들이 다시 살아나는 소망이 나타납니다. 다만 구약 전체에서 죽음 이후와 부활에 관한 표현이 언제나 동일한 방식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시편과 욥기, 전도서의 여러 본문은 죽음의 어둠과 인간의 한계를 매우 진지하게 다룹니다. 에스겔 37장의 마른 뼈 환상은 일차적으로 포로로 흩어진 이스라엘 공동체의 회복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모든 구약 본문이 처음부터 마카베오기 하권 7장과 같은 형태의 개인적 부활 신앙을 명시했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빼앗기는 혀와 손을 다시 받으리라는 소망
셋째 형제는 고문당하기 전에 스스로 혀를 내밀고 두 손을 뻗습니다.
그다음에는 셋째가 조롱을 당했다. 그는 혀를 내밀라는 요구를 받자 재빨리 혀를 내밀고 담대하게 두 손을 뻗었다.마카베오기 하권 7:10 · 본디새김
첫째 형제의 혀와 손발은 왕의 명령으로 훼손되었습니다. 그런데 셋째 형제는 자신에게 가해질 일을 알면서도 혀와 두 손을 내밉니다. 왕의 위협을 이해하면서도 그것으로 자신의 결정을 바꾸지 않겠다는 태도를 드러냅니다.
그리고 의연하게 말했다. 「이것들은 하늘로부터 불려 나왔습니다. 저는 그분의 법 때문에 이것들을 아끼지 않으며, 그분에게서 이것들을 다시 받기를 바랍니다.」마카베오기 하권 7:11 · 본디새김
「이것들」은 바로 앞에서 내밀었던 혀와 손을 가리킵니다. 그는 자신이 가진 신체를 하나님에게서 온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잃더라도 다시 받으리라고 소망합니다.
셋째 형제가 자신의 혀와 손을 아끼지 않는 이유는 그것들이 무가치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신체의 근원이신 하나님이 다시 주실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넷째 형제는 왕의 미래를 묻는다
넷째 형제는 죽음을 앞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 손에 죽더라도, 하나님께서 다시 일으켜 주시리라는 희망을 품고 기다리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그러나 왕께는 생명으로 이어지는 부활이 없을 것입니다.」마카베오기 하권 7:14 · 본디새김
본문은 왕이 어떤 형태로도 다시 일으켜지지 않을 것이라고 명시하지 않습니다. 그가 누리지 못할 것은 「생명으로 이어지는 부활」입니다. 이것은 다니엘 12:2에서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수치가 구별되는 것과 연결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넷째 형제는 부활을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결과를 주는 사건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죽은 사람들을 일으키신다는 소망에는 하나님이 그들의 삶을 의롭게 판단하신다는 기대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 왕에게 패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패배가 자신들의 존재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이라고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7:11의 그리스어 본문에는 의미 있는 전승 차이가 있습니다. 본디새김이 따른 케클레타이는 부름받았다는 뜻으로, 신체의 부분들이 하늘로부터 존재하도록 불려 나왔다는 표현으로 읽힙니다. 다른 본문 전승의 케크테마이는 내가 얻었다, 가지고 있다는 뜻으로, 자신의 신체를 하늘로부터 받았다는 의미가 됩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이 존재하도록 부르셨다는 창조 행위를 더 강조하고, 두 번째는 신체가 하나님께 받은 선물이라는 사실을 더 직접적으로 나타냅니다. 어느 전승이 원래의 표현인지는 여기서 확정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두 읽기 모두 이어지는 고백, 곧 하나님에게서 다시 받기를 바란다는 말과 연결됩니다.
왕은 죽을 인간이지만,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신다
다섯째 형제부터는 고백의 방향이 달라집니다.
앞선 형제들이 죽음과 부활을 이야기했다면, 다섯째는 왕의 권력이 얼마나 제한되어 있는지를 지적합니다.
그는 왕을 바라보며 말했다. 「왕께서는 죽을 몸이면서도 사람들 사이에서 권력을 쥐고 원하시는 대로 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저희 민족을 버리셨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마카베오기 하권 7:16 · 본디새김
이 문장에서 가장 중요한 대조는 「죽을 몸」과 「권력」입니다. 왕의 권력은 실제로 강력하지만, 그의 존재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왕은 다른 사람들의 현재 삶을 통제할 수 있지만, 자신 역시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인간입니다.
왕은 형제들을 고문하면서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셨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저항하던 사람들이 하나씩 죽어 가니 자기 권력이 그들의 신앙보다 우월하다고 여겼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섯째 형제는 그런 결론을 거부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고난받고 있다는 사실과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셨다는 주장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이어서 그는 왕과 그 후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닥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7:17). 지금 다른 사람을 고문하는 권력자도 언젠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섯째 형제는 한층 더 어려운 문제를 꺼냅니다.
그다음에는 여섯째를 끌고 왔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말했다. 「더는 착각하지 마십시오. 저희가 이런 일을 겪는 것은 저희 자신 때문입니다. 저희 자신의 하나님께 죄를 지어 놀라운 일들이 벌어진 것입니다.」마카베오기 하권 7:18 · 본디새김
이 말은 바로 앞선 6:12–16에서 저자가 설명했던 공동체의 고난에 대한 신학적 해석과 연결됩니다. 이스라엘이 겪는 재난을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관계 안에서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는 율법을 버렸기 때문에 고문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율법을 지키려 했기 때문에 죽임을 당합니다. 따라서 「저희 자신의 죄 때문입니다」라는 말을 여섯째 형제가 자신의 개인적인 잘못 때문에 고문당할 자격이 있다고 인정한 말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공동체의 재난에 관한 집단적인 고백입니다. 신명기 28–30장에서 이스라엘이 언약에 불충실할 경우 재난을 겪게 되지만, 하나님께 돌아오면 다시 자비를 베푸신다는 말씀과 연결되는 이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싸우려 드신 왕께서도 벌을 면하리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마카베오기 하권 7:19 · 본디새김
여섯째 형제는 이스라엘의 죄를 인정하면서도 왕의 책임을 조금도 줄여 주지 않습니다. 여섯째 형제에게 왕의 폭력은 여전히 하나님을 거스르는 악행입니다.
한쪽의 잘못이 다른 쪽의 잔혹함을 정당화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마지막 고백이 나오기 전에, 저자는 지금까지 형제들의 죽음을 지켜보고 있던 한 사람에게 시선을 집중합니다.
어머니입니다.
조금 더 깊이
이 점에서 여섯째 형제의 말은 하박국 1장의 질문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박국은 하나님이 유다를 심판하시는 과정에서 더욱 악한 민족이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을 삼킬 수 있는지 질문합니다. 마카베오기 하권의 여섯째 형제도 공동체의 죄에 대한 책임과 압제자의 악행에 대한 책임을 구별합니다.
어머니는 자신이 생명의 근원이 아니라고 말한다
어머니는 더없이 훌륭했고 훌륭한 기억으로 남을 만했다. 그는 하루 사이에 일곱 아들이 죽어 가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주에게 희망을 두었기에 꿋꿋하게 견뎠다.마카베오기 하권 7:20 · 본디새김
본문은 그녀가 고통을 느끼지 않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녀가 그 상황을 견딘 이유를 「주에게 희망을 두었기에」라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희망은 감정을 없애는 힘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어떤 판단을 유지하게 하는 근거로 제시됩니다.
그는 조상 대대로 쓰던 말로 아들 하나하나를 격려했다. 고결한 정신으로 가득 차서 여자의 마음을 남자의 기개로 일으켜 세우며 그들에게 말했다.마카베오기 하권 7:21 · 본디새김
어머니는 이 장에서 긴 신학적 설명을 제시하는 인물입니다. 형제들의 죽음을 해석하고, 창조 신앙과 부활의 소망을 연결하며, 마지막 아들이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지 가르칩니다.
이 가족이 무엇을 믿는지 가장 깊이 설명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생명을 준 것이 아니다」
「나는 너희가 어떻게 내 태 안에 생겨났는지 모른다. 너희에게 숨과 생명을 선물한 것도 내가 아니고, 너희 하나하나의 몸을 짜 맞춘 것도 내가 아니다.」마카베오기 하권 7:22 · 본디새김
그녀는 아이들을 품고 낳았습니다. 그러나 생명이 처음 어떻게 생겨났는지, 몸의 각 부분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자신이 전부 알고 결정한 것은 아닙니다. 그녀가 한 일은 이미 생명이 자라도록 돌보는 일이었습니다.
생명을 존재하게 하는 궁극적인 능력은 하나님에게 속한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그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그러니 인간의 생겨남을 빚으시고 만물의 생겨남을 마련하신 세상의 창조주께서 자비로 너희에게 숨과 생명을 다시 돌려주신단다. 너희가 지금 그분의 법 때문에 너희 자신을 아끼지 않기 때문이다.」마카베오기 하권 7:23 · 본디새김
형제들이 앞서 고백한 부활의 소망이 이제 창조 신앙과 직접 연결됩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인간을 존재하게 하신 분이십니다. 따라서 인간이 생명을 잃었다는 사실이 그분의 창조 능력까지 끝났다는 뜻은 아닙니다.
부활을 소망하는 근거는 죽음이 약하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처음 생명을 주신 하나님이 죽음보다 크신 분이라는 믿음에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21절의 표현은 당시의 문화적 관념을 반영합니다. 고대의 저자는 남성적인 기개를 용기의 표현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당시 사회에서 용기와 강인함을 남성성과 연결하던 수사적 관습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본문이 실제로 보여 주는 어머니의 행동은 남성의 성품을 빌려야만 용감해질 수 있다는 단순한 주장으로 환원되지 않습니다. 생명을 존재하게 하는 궁극적인 능력은 하나님에게 속한다는 고백은 시편 139:13–16에서 하나님이 사람을 어머니의 태 안에서 지으시고 형성하신다는 고백과 연결됩니다. 또한 전도서 11:5에서는 임신한 여인의 태 안에서 생명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인간이 모두 알 수 없듯이, 하나님의 일을 다 헤아릴 수 없다고 말합니다.
왕은 막내에게 부와 명예를 약속하지만, 어머니는 하늘과 땅을 보라고 한다
여섯 형제가 죽고 막내만 남자 왕은 전략을 바꿉니다.
지금까지는 고문으로 굴복시키려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약속으로 설득하려 합니다.
안티오코스는 자기가 업신여김을 받는다고 생각했고, 그 말이 자기를 모욕하는 말이라고 의심했다. 막내가 아직 살아 있었으므로, 그는 말로만 그를 설득하지 않고 맹세로도 다짐했다. 조상 대대로 내려온 것들에서 돌아서면 부유하고 남들의 부러움을 사는 사람이 되게 해 주고, 자기 친구로 삼아 직무를 맡기겠다는 것이었다.마카베오기 하권 7:24 · 본디새김
왕은 막내에게 자신이 통제하는 세상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좋은 것들을 제안합니다. 여기에는 앞선 대제사장직을 둘러싼 권력 거래와도 의미 있는 대비가 있습니다. 야손과 메넬라오스는 권력을 얻기 위해 왕에게 돈을 약속했습니다(4:8–9, 24).
조금 더 깊이
헬레니즘 왕국에서 왕의 친구라는 명칭은 단순한 사적인 친분을 넘어 궁정의 지위와 권력에 연결될 수 있었습니다.
왕의 회유와 어머니의 격려
그러나 이제 왕은 한 젊은이가 조상의 법을 버리기만 하면 그에게 돈과 권력을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앞에서는 사람이 왕의 권력을 얻으려고 신앙의 질서를 훼손했습니다. 여기서는 왕이 사람의 신앙을 무너뜨리려고 권력을 미끼로 사용합니다. 그러나 두 상황 모두 거룩한 것을 정치적 이익과 맞바꾸려 한다는 점에서는 닮아 있습니다.
막내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자 왕은 어머니를 이용하려 합니다.
그러나 그 젊은이가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자, 왕은 어머니를 불러 아들이 목숨을 건지도록 조언해 주라고 권했다.마카베오기 하권 7:25 · 본디새김
왕은 어머니의 사랑을 자신의 설득 도구로 삼으려 합니다. 여섯 아들을 잃은 어머니라면 마지막 아들만큼은 살리고 싶을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설득하겠다고 대답합니다.
아홉 달과 세 해를 기억하게 하는 이유
어머니의 말은 매우 인간적인 기억으로 시작합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몸을 굽히고, 잔인한 폭군을 비웃으며 조상 대대로 쓰던 말로 이렇게 말했다. 「아들아, 너를 아홉 달 동안 배 속에 품고 세 해 동안 젖을 먹였으며, 너를 길러 이 나이에 이르게 하고 먹여 키운 나를 불쌍히 여겨 다오.」마카베오기 하권 7:27 · 본디새김
이 말은 보통의 어머니가 자녀에게 할 수 있는 간절한 부탁처럼 들립니다. 왕이 기대한 것도 아마 이런 호소였을 것입니다. 어머니가 자신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하면서 아들에게 살아남기를 부탁하리라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다음 말은 정반대입니다.
어머니는 자신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말하면서 아들에게 죽음의 위협 앞에 굴복하지 말라고 권합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아들을 잃는 고통을 경험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녀는 하나님이 다시 생명을 주실 수 있다는 믿음 안에서 아들이 조상의 법을 버리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이것은 부모가 자녀의 죽음을 원해야 한다는 교훈이 아닙니다. 박해자가 부모와 자녀에게 강요한 참혹한 상황에서, 어머니가 어떤 믿음으로 아들을 격려했는지를 보여 주는 이야기입니다.
하늘과 땅을 보아라
어머니는 아들에게 자신이 그를 품었던 시간만 기억하게 하지 않습니다. 더 넓은 곳을 바라보게 합니다.
「얘야, 네게 부탁한다. 눈을 들어 하늘과 땅을 보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살펴서,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이미 있는 것들로 만드신 것이 아니며 인류도 그렇게 생겨난다는 것을 알아라.」마카베오기 하권 7:28 · 본디새김
처음 존재하지 않던 것을 있게 하신 하나님이 생명을 잃은 사람에게도 다시 생명을 주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창조 신앙이 부활 소망의 근거가 됩니다.
왕은 아들의 눈을 자기 권력에 붙들어 두려 했지만, 어머니는 아들의 눈을 창조주께로 향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소망을 말합니다.
「이 사형 집행인을 두려워하지 마라. 네 형들에게 걸맞은 사람이 되어 죽음을 받아들여라. 그리하여 내가 자비 안에서 네 형들과 함께 너를 되찾게 해 다오.」마카베오기 하권 7:29 · 본디새김
일곱 아들 모두를 잃어 가는 어머니에게 부활의 소망은 추상적인 신학 개념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다시 함께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입니다. 다만 본문은 그 만남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인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비 안에서 아들들을 되찾으리라는 소망입니다.
조금 더 깊이
「이미 있는 것들로부터가 아니라」는 표현은 후대에 ‘무로부터의 창조’를 설명하는 중요한 성경적 근거 가운데 하나로 사용되었습니다. 본문은 하나님이 이미 존재하는 재료에 의존해서만 세계를 만드신 분이 아니시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매우 강한 창조 신앙의 표현입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여기서 철학적으로 물질의 영원성이나 창조의 과정을 상세히 논증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지막 형제는 왕의 명령보다 모세의 명령을 따른다
어머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막내가 대답합니다.
어머니가 아직 말을 마쳐 가고 있을 때 젊은이가 말했다. 「무엇을 기다립니까? 저는 왕의 명령에 따르지 않습니다. 모세를 통해 저희 조상들에게 주어진 율법의 명령을 따릅니다.」마카베오기 하권 7:30 · 본디새김
왕은 자신이 지배하는 사람들에게 복종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막내는 왕에게 그 요구가 자신의 삶을 규정하는 최종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왕의 명령을 거부하는 이유는 자신이 아무에게도 순종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조상들에게 주신 율법에 순종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징계와 왕의 악행을 구별하다
막내는 곧이어 이스라엘의 고난과 왕의 책임을 함께 말합니다.
「저희가 고난을 겪는 것은 저희 자신의 죄 때문입니다.」마카베오기 하권 7:32 · 본디새김
「살아 계신 저희 주께서 저희를 꾸짖고 가르쳐 바로잡으시려고 잠시 노하셨다 해도, 자신의 노예들과 다시 화해하실 것입니다.」마카베오기 하권 7:33 · 본디새김
이것은 여섯째 형제의 고백을 이어받는 말입니다. 막내는 민족 전체가 겪는 재난을 언약에 대한 불충실함과 연결해 이해합니다. 왕의 폭력은 공동체를 파괴하고 있지만, 막내는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관계가 회복될 수 있다고 기대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살아 계신 저희 주」라고 부릅니다. 죽음을 명령하는 왕 앞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왕께서는 전능하시며 모든 것을 살피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아직 벗어나지 못하셨기 때문입니다.」마카베오기 하권 7:35 · 본디새김
막내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다시 받아들이실 것이라고 믿는 동시에, 왕의 폭력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으실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자비는 고난받는 백성을 영원히 버리지 않으신다는 소망의 근거입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권력을 남용하여 무고한 사람들을 죽인 왕이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소망의 근거입니다.
왕의 희망과 형제들의 희망
34절에서는 왕의 교만이 특별한 표현으로 묘사됩니다.
「그러나 불경하고 모든 사람 가운데 가장 더러운 자여, 하늘의 자녀들에게 손을 치켜드신 채, 불확실한 희망에 기대어 기세를 부리며 헛되이 우쭐대지 마십시오.」마카베오기 하권 7:34 · 본디새김
왕은 자신의 권력이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자신이 사람들을 마음대로 죽일 수 있으므로 앞으로도 아무런 심판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막내는 그것이 불확실한 희망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두 희망의 차이는 어떤 것이 지금 당장 실현되는가에 있지 않습니다.
왕의 기대는 현재의 권력에 근거합니다.
형제들의 기대는 하나님이 생명의 창조주이자 의로운 심판자이시라는 믿음에 근거합니다.
「저희 형들은 잠시 고통을 견딘 뒤 이제 영원한 생명에 관한 하나님의 언약 아래 쓰러졌습니다. 그러나 왕께서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교만에 대한 정당한 벌을 받으실 것입니다.」마카베오기 하권 7:36 · 본디새김
형들의 죽음과 하나님의 언약이 한 문장 안에 놓여 있습니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형들이 죽지 않았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죽음이 하나님의 언약을 끝내지 못했다는 믿음입니다.
조금 더 깊이
왕의 명령과 모세를 통해 주어진 율법의 명령의 대립은 다니엘 3장에서 느부갓네살 왕의 신상에 절하기를 거부한 세 사람의 이야기와 주제적으로 연결됩니다. 그들도 왕의 명령이 하나님의 뜻과 충돌할 때 왕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니엘 3장과 마카베오기 하권 7장의 결말은 다릅니다. 다니엘 3장에서 세 사람은 불가마에서 살아 나옵니다. 마카베오기 하권 7장에서 형제들은 살아 나오지 못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이 박해 앞에서 충실함을 지켰을 때 언제나 같은 결과를 경험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구출받았고, 어떤 사람은 죽임을 당했습니다. 마카베오기 하권 7장은 바로 그 두 번째 현실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소망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보여 줍니다.
마지막 간구 — 우리에게 닥친 분노를 멈추어 주십시오
막내의 마지막 말은 앞선 형제들의 말 가운데서도 특별합니다.
그는 자신 역시 형들처럼 몸과 운명을 내놓겠다고 선언합니다. 그런데 그 이유와 소망을 설명하면서 자기 자신을 넘어 민족 전체를 위해 기도합니다.
「저도 제 형들처럼 조상에게서 내려온 법을 위해 몸과 운명을 내놓습니다. 저희는 하나님께 속히 이 민족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를, 또 왕께서 고문과 채찍질을 겪으며 오직 그분만 하나님이심을 고백하시기를,」마카베오기 하권 7:37 · 본디새김
두 번째 간구에는 왕이 고문과 채찍질을 겪으리라는 가혹한 심판의 언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를 현대적인 관점에서 무조건 순화하거나, 본문이 폭력을 넘어서는 온화한 화해만을 이야기한다고 설명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심각한 박해를 당한 사람이 압제자를 향해 하나님의 심판을 요청하는 장면입니다.
지금 왕은 하나님의 율법을 폐지하고 그분의 백성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막내는 그가 결국 자신보다 높은 주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기를 구합니다.
그런데 마지막 절은 더욱 뜻밖입니다.
「그리고 저희 온 민족에게 정당하게 닥친 전능하신 이의 분노를 저와 제 형들에게서 멈추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마카베오기 하권 7:38 · 본디새김
처음에 형제들은 모세의 노래를 인용하며 하나님이 자신의 종들을 불쌍히 여기실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마지막에는 그 자비가 자기 민족 전체에 속히 나타나기를 구합니다.
이야기는 한 가족의 죽음에서 출발했지만, 마지막 기도는 온 백성의 회복을 향합니다.
조금 더 깊이
막내는 자신과 형제들에게서 하나님의 분노가 멈추기를 간구합니다. 이것을 형제들의 죽음이 민족의 죄를 대신 짊어지며 속죄의 역할을 한다는 기대와 연결해 읽을 수 있습니다. 특히 고대 유대교의 다른 순교 전승에서는 의인들의 죽음이 공동체를 위한 속죄의 의미를 지닌다고 더욱 분명하게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마카베오기 하권 7:38 자체는 그러한 속죄가 이미 이루어졌다고 선언하지 않습니다. 막내는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자신들과 형제들의 고난을 끝으로 민족에게 닥친 분노가 멈추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구절을 근거로 형제들의 죽음이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제거했는지까지 확정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이 분명하게 보여 주는 것은 막내가 자신의 죽음을 공동체 전체의 운명과 분리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왕에게 남은 것은 분노뿐이었다
막내의 말이 끝나자 왕은 더욱 화를 냅니다.
왕은 몹시 화가 나서 다른 형제들보다 그를 더욱 모질게 다루었다. 그 비웃음을 몹시 견디기 힘들어했기 때문이다.마카베오기 하권 7:39 · 본디새김
왕은 그들의 몸을 고문할 수 있지만, 그들의 고백을 바꾸지 못합니다. 왕은 끝까지 명령할 수 있는 사람으로 남아 있지만, 동시에 자신의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으로 나타납니다.
이렇게 그도 주를 온전히 신뢰하며 더럽혀지지 않은 채 죽었다.마카베오기 하권 7:40 · 본디새김
여기서 「더럽혀지지 않았다」는 말은 몸이 상처받지 않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는 심한 고문을 당했습니다. 그것은 율법을 버리도록 강요받았으나 그 요구에 굴복하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막내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아들들 뒤에 마지막으로 죽었다.마카베오기 하권 7:41 · 본디새김
저자는 어머니가 어떤 방식으로 죽었는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에 무슨 말을 했는지도 기록하지 않습니다. 아들들에게는 길게 말했던 그녀가, 정작 자신의 죽음 앞에서는 아무런 긴 연설을 남기지 않는 것입니다.
제물의 내장을 먹는 일과 극심한 고문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밝혀 두겠다.마카베오기 하권 7:42 · 본디새김
여기서 책의 저자는 자신이 다루던 박해와 고문에 관한 이야기를 일단 마무리합니다. 더 말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라기보다, 이만큼의 기록으로 자신이 보여 주려던 것을 충분히 드러냈다는 문학적 마무리입니다. 그는 비극을 더 길게 묘사하여 독자의 충격을 키우려 하지 않습니다.
맺으며 — 어머니가 마지막 아들에게 보여 준 하늘과 땅
어머니는 바로 그 창조주께서 자녀들에게 생명을 다시 주실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일곱 형제와 어머니가 끝까지 붙잡은 것은 자신들의 생명이 왕의 손에 달려 있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생명의 궁극적인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는 믿음이었습니다.
일곱 형제와 어머니가 겪은 고문은 악행입니다. 형제들의 신앙이 훌륭했다는 사실 때문에 그 폭력이 좋은 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형제들이 죽음을 받아들였다는 이유로, 신앙을 지키려는 모든 사람이 언제나 생존보다 죽음을 선택해야 한다는 일반적인 명령을 끌어내서도 안 됩니다.
이 장은 국가 권력이 사람들의 양심과 신앙을 부정하도록 강요하던 상황에서 특정한 가족이 내린 결정을 기록합니다. 본문의 가장 먼저 드러나는 도덕적 사실은 왕이 사람들에게 잔혹한 강요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 뒤에야 그 강요에 맞선 형제들과 어머니의 충실함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어머니가 눈을 들어 보라고 했던 하늘과 땅을 떠올려 보게 됩니다.
왕의 명령은 고문대에 묶인 사람들의 몸에 미쳤습니다.
그러나 그 하늘과 땅은 왕의 명령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저자는 어머니의 죽음을 마지막으로 기록한 뒤, 더는 고문의 장면을 늘어놓지 않습니다. 「제물의 내장을 먹는 일과 극심한 고문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밝혀 두겠다.」
그 한 문장으로 이야기를 닫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