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풀어 읽기 · 18장

이 장의 자리 · 15–20장 · 압살롬의 반란

승리의 소식이 비극이 되는 순간

전쟁이 끝나면 승리한 왕에게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적군이 패했고, 반란이 진압되었으며, 왕의 목숨과 왕권이 보존되었다는 소식입니다.

사무엘하 18장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다윗의 군대는 압살롬의 군대를 무너뜨리고, 반란을 이끌던 압살롬도 죽습니다. 군사적으로 보면 다윗의 승리입니다.

그런데 이 장은 승리를 축하하는 장면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다윗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왕국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느냐가 아니라, 자신을 죽이려 했던 아들이 살아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군사들에게 압살롬은 반란의 지도자입니다. 그가 살아 있으면 전쟁이 다시 벌어질 가능성이 남습니다.

왕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반란을 끝내야 하지만, 아버지가 바라는 승리에는 아들의 생존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무엘하 18장은 바로 이 충돌을 따라 전개됩니다. 왕의 명령이 내려지고, 전쟁이 벌어지고, 압살롬이 죽고, 승리의 소식이 왕에게 전달되기까지 이야기의 모든 장면이 하나의 질문으로 모입니다.

무엇이 정말 기쁜 소식입니까?

읽는 시간 23분소단락 1118장 본문 읽기 →

왕은 나가겠다고 하지만, 백성은 왕을 남게 한다

사무엘하 18:1–4 본문 →

다윗은 마하나임에서 군대를 정비합니다.

그는 백성을 점호하고 천부장들과 백부장들을 세웁니다. 군대를 세 부대로 나누어 요압과 아비새, 잇대에게 맡깁니다.

요압과 아비새는 다윗의 오랜 군사 지휘관이며 서로 형제입니다. 반면 잇대는 가드 출신의 외국인으로, 다윗이 예루살렘을 떠날 때 돌아가도 좋다고 했지만 끝까지 그를 따르겠다고 맹세한 사람이었습니다(15:19–22). 다윗의 위기 속에서 드러난 충성이 실제 책임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다윗은 백성의 삼분의 일을 요압의 지휘 아래, 삼분의 일을 스루야의 아들이며 요압의 형제인 아비새의 지휘 아래, 삼분의 일을 가드 사람 잇대의 지휘 아래 내보냈다. 왕이 백성에게 말했다. 「나도 반드시 너희와 함께 나가겠다.」사무엘하 18:2 · 본디새김

다윗은 오랫동안 전쟁을 직접 이끌었던 왕입니다. 전투가 벌어지는데 자신만 안전한 성읍에 남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백성은 그를 만류합니다.

백성이 말했다. 「왕께서는 나가지 마십시오. 저희가 설령 달아나더라도 그들은 저희에게 신경 쓰지 않을 것입니다. 저희 가운데 절반이 죽더라도 그들은 저희에게 신경 쓰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왕께서는 저희 만 명과 맞먹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제 왕께서 성읍에서 저희를 도와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사무엘하 18:3 · 본디새김

이 말은 단순히 왕의 목숨이 일반 백성의 목숨보다 귀하다는 선언으로만 읽어서는 안 됩니다. 압살롬의 반란은 다윗의 왕권을 무너뜨리려는 전쟁입니다. 다윗을 따르는 군사 몇 사람이 죽거나 일부 부대가 달아나더라도 반란군은 계속 싸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죽으면 전쟁의 핵심 목적이 달성됩니다.

따라서 다윗이 직접 전장에 나가는 것은 군대 전체에 큰 위험을 가져옵니다. 「만 명과 맞먹는다」는 표현도 정확한 병력 수를 계산하는 말이 아니라, 다윗이라는 한 사람의 생존이 군사적으로 매우 큰 가치가 있다는 비교로 이해해야 합니다.

왕이 그들에게 말했다. 「너희가 보기에 좋은 대로 하겠다.」 왕은 성문 곁에 섰고, 온 백성은 백 명씩, 천 명씩 나갔다.사무엘하 18:4 · 본디새김

다윗은 군대를 지휘하는 왕이지만, 이 순간에는 자신을 지키려는 백성의 판단을 받아들입니다. 다윗이 전장에 직접 나가지 않는다면, 전투 현장에서 무엇을 할지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사람은 지휘관들입니다.

그때 그는 마지막 명령을 내립니다.

모든 사람이 들은 명령 — 압살롬을 부드럽게 대해 주어라

사무엘하 18:5 본문 →

왕이 요압과 아비새와 잇대에게 명령했다. 「나를 생각해서 그 젊은이 압살롬을 부드럽게 대해 주어라.」 왕이 모든 지휘관에게 압살롬에 관해 명령할 때 온 백성이 들었다.사무엘하 18:5 · 본디새김

다윗의 명령은 지휘관들만 몰래 들은 말이 아닙니다. 전투에 나가는 백성도 들었습니다. 따라서 전투 중 압살롬을 발견한 사람이 그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은 아닙니다.

다윗은 왜 압살롬을 ‘그 젊은이’라고 부르는가

그는 「반역자 압살롬」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내 아들 압살롬」이라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 젊은이 압살롬」이라고 부릅니다.

이 호칭은 압살롬을 전쟁의 주범으로만 바라보지 않는 다윗의 태도와 어울립니다. 왕에게 그는 제거해야 할 정치적 적이지만, 아버지인 다윗에게는 여전히 보호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다윗은 압살롬을 살려 두는 것이 군사적으로 유리하다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반란을 진압한 뒤 그를 어떻게 재판할지도 말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생각해서 부드럽게 대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명령의 근거는 공적인 군사 전략보다 다윗 개인의 바람에 가깝습니다.

압살롬은 실제로 군대를 이끌고 다윗을 죽이려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 인물을 전투 중에 만나도 해치지 말라는 요구가 전술적으로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불확실합니다. 다윗의 명령을 아들을 향한 자비로 읽을 수 있지만, 그 명령이 군사들에게 아무런 위험도 주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더욱이 다윗은 이미 압살롬과의 관계에서 여러 번 실패했습니다. 다말에게 저질러진 폭력과 암논의 죽음, 압살롬의 도피와 귀환 과정에서 다윗은 정의와 화해의 문제를 충분히 해결하지 못했습니다(사무엘하 13–14장).

그런 아버지가 이제 아들을 살려 달라고 명령합니다.

따라서 이 명령은 단순히 자비로운 아버지의 아름다운 말이 아닙니다. 오랫동안 해결되지 못한 가족의 문제가 전쟁터 한가운데까지 따라온 장면입니다.

다윗은 압살롬을 잃고 싶지 않지만, 이미 압살롬을 보호할 수 있는 자리를 떠나 있습니다.

그리고 전투는 왕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벌어집니다.

숲이 칼보다 많은 사람을 삼키다

사무엘하 18:6–8 본문 →

다윗의 군대와 압살롬의 군대는 에브라임 숲에서 맞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곳에서 다윗의 종들에게 패했다. 그날 그곳에서 큰 살육이 벌어져 이만 명이 죽었다.사무엘하 18:7 · 본디새김

서술자는 이 승리를 화려한 언어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다윗의 군대가 얼마나 용감했는지, 어떤 전술로 이겼는지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대신 뜻밖의 사실을 기록합니다.

그곳의 전투는 온 땅에 흩어져 벌어졌다. 그날 숲이 삼킨 백성은 칼이 삼킨 백성보다 많았다.사무엘하 18:8 · 본디새김

여기서 숲은 단순한 배경이 아닙니다. 사람들을 삼키는 존재처럼 묘사됩니다. 숲이 칼보다 많은 사람을 삼켰다는 것은 전투 중 지형과 자연환경이 큰 피해를 일으켰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히도벨과 후새는 모두 병력을 어떻게 사용하면 승리할 수 있을지 계산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전투에서는 숲이라는 환경 자체가 예상하기 어려운 영향을 미칩니다.

전쟁에서 숲이 많은 사람을 삼켰다는 말을 들은 직후, 독자는 압살롬이 숲속의 나무에 걸리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전투의 전체적인 특징이 한 사람의 운명에 응축됩니다.

조금 더 깊이

정확히 어느 숲을 가리키는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앞 장에서 다윗과 압살롬의 군대가 요단강 동쪽으로 이동한 점을 고려하면, 전투 지역 역시 그쪽과 관련되어 있다고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구체적인 사망 원인을 나열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약속은 그의 왕권에 관한 약속이지만, 그 왕권의 목적은 왕 개인의 성공만이 아니었습니다. 사무엘하 7:8–11에서 여호와야훼는 다윗을 자신의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지도자로 세우셨다고 말씀하시며, 백성에게 안식과 안전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왕은 백성을 위해 존재해야 하지만, 이 장에서는 왕실의 갈등 때문에 백성들이 죽고 있습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 매달린 압살롬

사무엘하 18:9 본문 →

압살롬은 다윗의 종들과 마주칩니다.

압살롬은 다윗의 종들과 마주쳤다. 압살롬은 노새를 타고 있었는데, 노새가 큰 테레빈나무의 얽힌 가지 아래로 들어가자 그의 머리가 그 나무에 단단히 걸렸다. 그는 하늘과 땅 사이에 매달렸고, 그가 타고 있던 노새는 그대로 지나갔다.사무엘하 18:9 · 본디새김

압살롬은 왕이 되려고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예루살렘을 차지했고 온 이스라엘의 군대를 이끌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는 아무것도 지배하지 못합니다.

자기가 타고 있던 노새조차 멈추게 할 수 없습니다. 노새는 계속 지나가고, 압살롬은 나무에 매달린 채 남습니다.

하늘과 땅 사이

「하늘과 땅 사이」라는 표현은 그의 실제 상태를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그는 땅에 발을 디디지 못하고, 그렇다고 하늘로 올라갈 수도 없습니다. 나무에 매달려 움직이지 못합니다.

압살롬은 자신의 앞에 사람들을 달리게 하며 권력을 과시하던 사람이었습니다(15:1). 그런데 지금은 자신을 태우고 달리던 노새가 떠나 버리고, 혼자 나무에 매달려 있습니다.

남보다 높아지려 했던 사람이 높은 곳에 매달렸지만, 그 높이는 왕권이 아니라 무력함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를 발견한 사람이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의 생사가 결정될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고대 이스라엘에서 노새는 왕실과 관련된 운송 수단으로 등장합니다. 다윗의 아들들이 노새를 타는 장면이 이미 사무엘하 13:29에 나오며, 열왕기상 1:33에서는 솔로몬이 다윗의 노새를 타고 왕으로 선포될 장소로 향합니다. 많은 독자는 이 장면을 압살롬의 긴 머리카락이 나뭇가지에 걸린 사건으로 기억합니다. 사무엘하 14:25–26에서 압살롬은 아름다운 외모로 유명했고, 그의 머리카락이 무거울 만큼 풍성했다는 사실이 특별히 언급되었습니다. 따라서 그 머리카락 때문에 나무에 걸렸다고 이해하는 것은 문학적으로 자연스러운 연결입니다. 그러나 18:9의 원문은 머리카락이 아니라 「머리」(⁨רֹאשׁ⁩)가 걸렸다고 말합니다. 본문은 머리카락이 가지에 얽혔는지, 머리나 목이 나뭇가지 사이에 끼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압살롬의 머리카락이 그의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다고 확정해서는 안 됩니다. 다만 앞서 강조된 그의 외모와 지금의 굴욕적인 모습 사이에는 분명한 문학적 대조가 있습니다.

이름 없는 군사는 왕의 명령을 기억하지만, 요압은 다른 판단을 한다

사무엘하 18:10–15 본문 →

압살롬이 나무에 매달린 것을 발견한 사람은 그를 공격하지 않습니다.

그는 요압에게 가서 보고합니다.

요압이 자기에게 알린 사람에게 말했다. 「네가 보았단 말이냐? 그런데 왜 거기서 그를 쳐서 땅에 쓰러뜨리지 않았느냐? 그랬다면 내가 네게 은 열 세겔과 허리띠 하나를 주었을 것이다.」사무엘하 18:11 · 본디새김

그러나 군사는 물러서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요압에게 말했다. 「제 손바닥에 은 천 세겔을 달아 준다 해도, 왕의 아들에게 손을 대지는 않겠습니다. 저희가 듣는 데서 왕께서 지휘관님과 아비새와 잇대에게 『누구든 그 젊은이 압살롬을 지켜 주어라.』 하고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사무엘하 18:12 · 본디새김

요압이 말한 은 열 세겔보다 백 배나 많은 은을 준다 해도 명령을 어기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서술자는 독자가 그 명령을 기억하도록 미리 강조해 두었습니다. 이제 이름 없는 군사는 그 명령을 요압 앞에서 다시 꺼냅니다.

지휘관보다 왕의 명령을 더 정확히 기억한 군사

군사의 대답에는 충성뿐 아니라 현실적인 판단도 들어 있습니다.

「혹 제가 제 목숨을 위태롭게 하면서 거짓되게 행동했다면, 왕께는 어떤 일도 숨겨지지 않으니 지휘관님은 멀찍이 서 계셨을 것입니다.」사무엘하 18:13 · 본디새김

왕의 명령을 어기고 압살롬을 죽이면, 나중에 왕이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때 요압은 자신과 거리를 두고 책임을 떠넘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왕의 명령에 대한 충성과 자신의 생명을 지키려는 현실적인 판단이 함께 나타납니다.

그는 자신에게 유리한 보상을 얻을 수 있었지만, 왕의 명령을 어기는 일을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요압은 대화를 끝냅니다.

요압이 말했다. 「너와 이렇게 지체하고 있지는 않겠다.」 그는 손에 막대기 세 개를 들고, 테레빈나무 한가운데서 아직 살아 있는 압살롬의 심장에 그것들을 꽂았다.사무엘하 18:14 · 본디새김

그리고 그의 무기를 나르는 젊은이 열 명이 압살롬을 둘러싸고 쳐 죽입니다.

압살롬의 죽음은 우연한 사고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는 나무에 걸려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지만, 그 상태에서 살아 있었습니다. 요압과 그의 사람들이 그를 죽였습니다.

요압은 왜 왕의 명령을 어겼을까

본문은 요압의 내면을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압살롬은 반란의 중심인물입니다. 그가 살아 있으면 반란이 계속되거나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요압은 그를 제거해야 전쟁이 끝난다고 판단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요압이 반드시 그런 이유 때문에 압살롬을 죽였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에서 확인되는 사실은 그가 왕의 명령을 알고 있었으며, 그 명령을 무시하고 압살롬을 죽였다는 것입니다.

그 판단이 전쟁을 끝내는 데 유리했을지는 별도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왕의 명령을 어긴 사실이나 압살롬을 죽인 책임을 지워 주지는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막대기」는 원래 막대기나 지팡이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이 장면에서는 사람을 찌르는 무기로 사용됩니다. 어떤 형태의 무기였는지는 정확히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사무엘하 11장에서 요압은 다윗이 보낸 편지의 지시에 따라 우리야를 위험한 전투 위치에 세워 죽게 했습니다(11:14–17). 그때 요압은 왕의 명령에 협력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다윗이 압살롬을 보호하라고 명령했음에도 그 명령을 따르지 않습니다. 두 사건이 서로 같은 상황은 아닙니다. 그러나 다윗과 요압이 사람의 생사를 결정하는 문제에서 얼마나 위험한 방식으로 얽혀 있는지 보여 줍니다. 한 번은 왕의 잘못된 명령을 실행함으로써 사람이 죽었고, 이번에는 왕의 명령을 어김으로써 사람이 죽습니다.

뿔나팔 소리와 두 개의 기념물

사무엘하 18:16–18 본문 →

압살롬이 죽자 요압은 뿔나팔을 붑니다.

요압이 뿔나팔을 불자 백성은 이스라엘을 뒤쫓다가 돌아왔다. 요압이 백성을 제지했기 때문이다.사무엘하 18:16 · 본디새김

전쟁을 계속할지 멈출지를 결정하는 것도 요압입니다. 압살롬을 죽인 후에도 적군을 끝까지 쫓지 않았다는 점에서, 요압이 반란의 지도자를 제거하는 일을 전쟁의 중요한 목표로 보았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가 정확히 어떤 이유로 추격을 중단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제 압살롬의 시신이 처리됩니다.

그들은 압살롬을 가져다가 숲속의 큰 구덩이에 던지고, 그 위에 아주 큰 돌무더기를 쌓았다. 온 이스라엘은 저마다 자기 천막으로 달아났다.사무엘하 18:17 · 본디새김

왕자의 장례식은 없습니다. 아버지가 시신을 맞이하는 장면도 없습니다.

그런데 서술자는 바로 다음 절에서 전혀 다른 기념물을 소개합니다.

자신을 기억하게 하려던 압살롬

압살롬은 살아 있을 때 자신을 위해 왕의 골짜기에 기둥을 마련해 세워 두었다. 그는 「내 이름을 기억하게 해 줄 아들이 내게 없다.」 하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 기둥에 자기 이름을 붙였고, 그것은 오늘날까지 압살롬 기념비라고 불린다.사무엘하 18:18 · 본디새김

한곳에는 자신의 이름을 새긴 기념비가 있고, 다른 곳에는 그의 시신을 덮은 큰 돌무더기가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 오래도록 기억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그 이름은 왕국을 차지한 위대한 왕의 이름이 아니라, 아버지에게 반란을 일으켰다가 비참하게 죽은 왕자의 이름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압살롬은 이름을 남기는 데는 성공했지만, 자신이 원했던 방식으로 그 이름을 남기지는 못했습니다.

압살롬의 죽음을 기록한 뒤, 이야기는 다시 다윗에게 돌아갑니다. 이제 가장 어려운 일이 남았습니다. 왕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합니다.

조금 더 깊이

고대 이스라엘에서 돌무더기는 사건을 기억하는 표지가 되기도 했고, 죄를 범한 인물의 죽음과 관련하여 나타나기도 합니다. 여호수아 7:26에서 아간 위에 큰 돌무더기를 쌓았고, 여호수아 8:29에서는 아이 왕의 시신 위에도 돌무더기를 쌓았습니다. 그러나 돌무더기 하나만으로 압살롬에게 내려진 특정한 율법적 형벌이나 하나님의 저주가 선포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사무엘하 14:27은 압살롬에게 아들 셋과 딸 하나가 태어났다고 기록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압살롬이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게 해 줄 아들이 없다고 말합니다. 아들들이 일찍 죽었기 때문에 기념비를 세웠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또는 아들들이 있었지만 자신의 이름을 보존해 줄 후계자로 남아 있지 않았다고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아들들의 죽음이나 그 이후의 상황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압살롬의 아들들이 모두 죽었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서술자가 「오늘날까지 압살롬 기념비라고 불린다」고 기록한 것은 그 이름이 이야기의 서술 시점까지 전해지고 있었음을 뜻합니다. 그렇다고 오늘날 예루살렘에서 ‘압살롬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특정 건축물이 바로 이 기념비라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누가 이 소식을 기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사무엘하 18:19–23 본문 →

압살롬이 죽은 뒤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가 요압에게 말합니다.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가 말했다. 「부디 제가 달려가 왕께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해 주십시오. 여호와야훼께서 왕을 원수들의 손에서 건져 신원해 주셨다는 소식입니다.」사무엘하 18:19 · 본디새김

여기서 「건져 신원해 주셨다」는 표현은 단순히 위험에서 구출하셨다는 뜻을 넘어, 다윗의 편에서 판결하여 적의 손에서 벗어나게 하셨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군사적 결과를 보면 아히마아스의 판단은 이해할 만합니다.

그러나 요압은 그를 막습니다.

요압이 그에게 말했다. 「오늘은 네가 기쁜 소식을 전할 사람이 아니다. 다른 날에 전하여라. 오늘은 기쁜 소식을 전하지 마라. 왕의 아들이 죽었기 때문이다.」사무엘하 18:20 · 본디새김

그는 왕의 명령을 어기고 아들을 죽였으면서, 왕이 그 죽음을 슬퍼할 것이라는 사실은 정확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요압은 다윗의 마음을 몰랐던 사람이 아닙니다.

그 마음을 알면서도 다른 판단을 내렸던 사람입니다.

아히마아스는 왜 그렇게 달리고 싶어 하는가

요압은 구스 사람을 전령으로 보냅니다.

그가 구스 출신이라는 사실 외에 개인적인 배경은 알려지지 않습니다. 여기서 그의 역할은 전투의 결과를 왕에게 보고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히마아스는 다시 자신도 가겠다고 요청합니다.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가 다시 요압에게 말했다. 「어찌 되든 저도 구스 사람 뒤를 따라 달려가게 해 주십시오.」 요압이 말했다. 「내 아들아, 왜 굳이 달려가려 하느냐? 네게 보상을 가져다줄 소식도 없는데.」사무엘하 18:22 · 본디새김

여기서 전령이 승전보를 전하고 보상을 받는 관습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는 다릅니다. 왕의 아들이 죽었기 때문에 전령이 좋은 대접을 받으리라고 보장할 수 없습니다.

아히마아스는 그래도 달리겠다고 합니다.

자신이 왕에게 승리를 전하고 싶었을 수 있습니다. 전령으로서 역할을 수행하려는 열망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정확한 동기를 알려 주지 않습니다.

그는 평지 길을 따라 달려 구스 사람을 앞지릅니다.

조금 더 깊이

사울이 죽었다고 보고한 사람은 다윗에게 좋은 소식을 전한다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의 죽음을 기뻐하지 않았고, 자신이 사울을 죽였다고 주장한 사람에게 책임을 물었습니다(사무엘하 1:1–16). 이스보셋을 죽인 사람들도 다윗에게 왕권의 장애물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들의 행동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4:5–12). 두 사건 모두 다윗이 왕권을 얻는 데 유리한 사람의 죽음을 무조건 기뻐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이번에 죽은 사람은 경쟁 왕조의 왕이 아니라 자기 아들입니다. 그러나 앞선 사건들과 달리 지금은 다윗 자신이 압살롬과 직접 전쟁을 벌인 당사자이기도 합니다.

성문에서 기다리는 왕 — 그는 무엇을 듣고 싶어 하는가

사무엘하 18:24–27 본문 →

다윗은 두 성문 사이에 앉아 있습니다.

전투에 나가지 않고 성읍에 남았던 왕은 이제 소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파수꾼이 성벽 쪽 성문 지붕에 올라가 멀리 바라봅니다. 한 사람이 혼자 달려옵니다.

파수꾼이 소리쳐 왕에게 알렸다. 왕이 말했다. 「혼자라면 그의 입에 기쁜 소식이 있겠구나.」 그 사람은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사무엘하 18:25 · 본디새김

전투에서 패한 군사들이 흩어져 도망오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목적을 가지고 달려오는 모습이기 때문에 공식적인 소식을 전달하는 전령이라고 판단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다윗의 기대가 반영된 해석입니다.

파수꾼은 또 다른 사람이 달려오는 것을 보고 문지기에게 소리쳐 말했다. 「보게. 한 사람이 혼자 달려오네.」 왕이 말했다. 「저 사람도 기쁜 소식을 전하는 자로구나.」사무엘하 18:26 · 본디새김

그는 두 전령이 달려오는 것을 모두 좋은 징조로 해석합니다. 그리고 파수꾼이 앞선 사람의 달리는 모습을 알아봅니다.

파수꾼이 말했다. 「제가 보기에 앞선 사람의 달리는 모습은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가 달리는 모습과 같습니다.」 왕이 말했다. 「그는 좋은 사람이다.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올 것이다.」사무엘하 18:27 · 본디새김

이 장면에는 앞선 시바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가 있습니다. 다윗은 누가 소식을 전하는가를 근거로 그 소식의 내용까지 판단합니다. 하지만 좋은 사람이 언제나 기쁜 소식만 전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 서술자는 달려오는 모습을 이렇게 오래 보여 주는가

전쟁의 결과를 모르는 다윗에게 전령은 희망의 대상입니다. 전쟁의 결과를 아는 독자에게 전령은 고통스러운 진실을 가져오는 사람입니다. 같은 전령을 다윗과 독자가 전혀 다른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독자가 기다리는 것은 단순한 전투 결과가 아닙니다. 다윗이 자신이 가장 두려워했던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히마아스가 왕 앞에 도착합니다.

첫 번째 전령 — 평안하다고 말하면서 가장 중요한 질문을 피하다

사무엘하 18:28–30 본문 →

아히마아스는 다윗에게 소리칩니다.

아히마아스가 왕에게 소리쳐 말했다. 「평안합니다.」 그는 왕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한 뒤 말했다. 「왕의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찬양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분께서 제 주인이신 왕을 거슬러 손을 든 사람들을 넘겨주셨습니다.」사무엘하 18:28 · 본디새김

그의 말은 군사적인 승리를 정확하게 전달합니다. 아히마아스는 이를 여호와야훼께서 다윗을 위해 행하신 일로 고백합니다.

그러나 왕의 첫 질문은 승리의 규모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왕이 말했다. 「그 젊은이 압살롬은 평안하냐?」 아히마아스가 말했다. 「요압이 왕의 종과 왕의 종인 저를 보낼 때 큰 소동이 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는 알지 못했습니다.」사무엘하 18:29 · 본디새김

전령은 왕국의 평안을 말하지만, 왕은 아들의 평안을 묻습니다.

아히마아스의 대답은 모호합니다. 그는 승리의 소식을 전할 수 있었지만, 압살롬의 죽음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말하지 않습니다.

아히마아스가 도착했지만 다윗은 가장 중요한 질문의 답을 듣지 못했습니다.

왕은 그를 옆으로 물러나게 합니다. 이미 전쟁은 끝났습니다. 압살롬은 죽었습니다.

그러나 왕에게 그 사실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조금 더 깊이

아히마아스는 「평안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다윗은 「압살롬은 평안하냐」고 묻습니다. 두 문장에는 같은 히브리어 샬롬(⁨שָׁלוֹם⁩)이 사용됩니다. 이 말은 단순히 싸움이 없다는 뜻만이 아니라 평안, 안녕, 온전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인사로도 사용되지만, 이 장면에서는 전투의 결과를 알리는 말로 들립니다. 앞에서 요압은 압살롬이 죽었기 때문에 아히마아스가 그날 기쁜 소식을 전할 사람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18:20). 그러므로 아히마아스가 압살롬의 죽음 자체에 관해 전혀 몰랐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가 요압이 전령들을 보낼 때 목격한 특정한 소동의 내용을 자세히 알지 못했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따라서 아히마아스가 의도적으로 거짓말했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대답이 왕이 가장 알고 싶어 하는 사실을 전달하지 않고 피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왜 그랬는지는 본문이 설명하지 않습니다. 왕의 슬픔을 염려했을 수도 있고, 자신이 그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두 번째 전령 — 기쁜 소식의 마지막 문장

사무엘하 18:31–32 본문 →

이제 구스 사람이 도착합니다.

그때 구스 사람이 도착했다. 구스 사람이 말했다. 「제 주인이신 왕께서는 기쁜 소식을 받으십시오. 오늘 여호와야훼께서 왕을 거슬러 일어난 모든 자의 손에서 왕을 건져 신원해 주셨습니다.」사무엘하 18:31 · 본디새김

이 말은 아히마아스가 전한 소식과 거의 같은 내용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다시 묻습니다.

왕이 구스 사람에게 말했다. 「그 젊은이 압살롬은 평안하냐?」 구스 사람이 말했다. 「제 주인이신 왕의 원수들과 왕을 해치려고 일어난 모든 자가 그 젊은이처럼 되기를 바랍니다.」사무엘하 18:32 · 본디새김

왕의 원수들도 압살롬과 같은 운명을 맞기를 바란다는 말은 압살롬이 죽었다는 사실을 전달합니다. 이 대답은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평가를 포함합니다. 구스 사람에게 압살롬은 왕의 원수이며, 왕을 해치려고 일어난 사람입니다.

다윗에게는 보호해야 할 아들인 사람이, 전령에게는 제거된 적의 우두머리인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사무엘하 17:14에서는 여호와야훼께서 아히도벨의 좋은 조언을 좌절시켜 압살롬에게 재앙을 내리려 하셨다고 직접 서술했습니다. 따라서 압살롬의 반란이 실패한 것은 사무엘서 전체의 흐름에서 하나님의 뜻과 무관하게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압살롬의 반란을 무너뜨리셨다는 사실이 요압의 모든 행동을 정당화하지는 않습니다. 본문은 여호와야훼께서 요압에게 압살롬을 죽이라고 명령하셨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또한 다윗이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사실이 그가 그동안 저지른 잘못들을 무효로 만들지도 않습니다. 사무엘하 12장에서 나단은 다윗의 죄 때문에 그의 집안에서 칼이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12:10). 지금 벌어진 사건은 그 심판의 무거운 현실과 맞닿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승리를 단순히 의로운 왕에게 내리신 보상으로 읽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단순히 어떤 정치 세력이 승리하는 결과와 동일시할 수 없습니다.

맺음 — 왕은 여전히 성문에 앉아 있다

사무엘하 18:1–32 본문 →

왕에게 기쁜 소식으로 전해진 말이, 아버지에게는 무엇보다 듣고 싶지 않았던 소식이었습니다. 다윗이 원한 것은 압살롬이 살아 있는 승리였지만, 실제로 그에게 도착한 것은 압살롬이 죽은 승리였습니다. 그 차이를 누구도 쉽게 없앨 수 없습니다.

압살롬은 실제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의 반란 때문에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러나 반란을 일으켰다는 사실이 그를 향한 모든 행동을 자동으로 정당화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압살롬의 죽음을 다윗의 명령에 따른 정당한 처형으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사무엘하 18장은 다윗이 압살롬의 죽음을 듣고 어떻게 반응했는지 보여 주기 전에 끝납니다.

우리는 아직 왕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두 전령이 모두 도착했고, 두 사람 모두 여호와야훼께서 왕을 구원하셨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왕이 거듭 물었던 한 가지 질문에 돌아온 마지막 대답은, 아들이 살아 있다는 소식이 아니었습니다.

성문에 앉은 다윗은 이제 자신이 살아남았다는 사실과 자기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함께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 장의 이야기는 바로 그 순간 멈춥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