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스 풀어 읽기 · 3장

이 장의 자리 · 3–4장 · 이스라엘을 향한 고발

알려진 백성이 올바른 일을 알지 못하다

아모스 3장은 하나의 역설로 시작합니다.

보통 우리는 하나님께 특별히 알려진 사람들이라면 특별한 보호를 받을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하나님과 가까운 관계에 있다는 사실은 위로와 안전의 근거로 들립니다.

그런데 여호와야훼는 정반대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알았기 때문에, 너희의 죄를 묻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알려진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적용되는 기준에서 제외된다는 뜻인가? 아니면 자신을 알고 돌보신 하나님께 그만큼 책임 있게 응답해야 한다는 뜻인가?

2절에서는 여호와야훼가 이스라엘을 「알았다」고 말씀하시고, 10절에서는 이스라엘이 바르게 행할 줄 「모른다」고 선언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아셨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올바른 삶을 알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아모스 3장은 바로 그 간극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보여 줍니다.

읽는 시간 19분소단락 83장 본문 읽기 →

「나는 너희만 알았다」 — 선택이 심판의 이유가 되는 역설

아모스 3:1–2 본문 →

3장은 새로운 명령으로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아, 이 말을 들어라. 여호와야훼가 너희를 거슬러, 곧 「내가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올린 온 족속」을 거슬러 이렇게 말했다.아모스 3:1 · 본디새김

「이 말을 들어라」는 아모스서에서 새로운 심판 선언을 여는 역할을 합니다. 같은 부름은 4:1과 5:1에서도 반복됩니다.

여기서 「온 족속」은 이스라엘을 하나의 가족처럼 나타냅니다. 북이스라엘을 직접 겨냥한 문맥이지만, 표현 자체는 이집트에서 구출된 언약 백성 전체의 역사를 떠올리게 합니다.

여호와야훼는 이스라엘을 그들이 세운 왕국이나 군사력으로 규정하지 않으십니다. 자신이 이집트에서 이끌어 올린 백성으로 부르십니다.

그들의 정체성은 자신들이 성취한 것보다 먼저 하나님이 행하신 일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음 절에서 그 특별한 관계가 심판의 이유가 됩니다.

「땅의 모든 족속 가운데서 나는 너희만 알았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의 모든 죄악 때문에 너희를 벌하겠다.」아모스 3:2 · 본디새김

특별한 관계가 특별한 면책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관계에 합당한 책임을 요구합니다.

안다는 것은 단순히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 아니다

여기서 「알았다」는 것은 이스라엘을 특별한 관계 안으로 받아들이셨다는 의미입니다. 창세기 18:19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아신다고 말씀하시는 장면이 그 예입니다. 그 문맥에서 아브라함을 아신다는 것은 단순히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를 선택하시고, 그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어지게 하시는 관계를 가리킵니다.

아모스 3:2에서는 죄악을 대상으로 삼기 때문에 책임을 물어 벌하신다는 뜻이 적절합니다. 처음에는 이스라엘의 모든 죄악을 벌하겠다고 말씀하시고, 마지막에는 벧엘의 제단들까지 벌하겠다고 하십니다. 처음의 선언이 마지막의 구체적인 심판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는 무엇을 보장하는가

이 구절은 신명기 7:6–8과 함께 읽으면 의미가 더욱 분명해집니다. 거기서 모세는 여호와야훼가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이유가 그들이 다른 민족보다 수가 많거나 강했기 때문이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가 선택의 근거입니다.

그 선택은 이스라엘의 우월함을 증명하는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관계를 맺으신 사건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그 관계를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배우고, 그분의 가르침에 따라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선택받았다는 사실은 붙들면서, 선택하신 하나님의 뜻에는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이 이 관계를 저버렸다면, 여호와야훼의 심판 선언은 우연히 생겨난 일인가? 아모스는 무슨 근거로 자신이 하나님의 심판을 전한다고 말하는가?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본문은 갑자기 일곱 개의 물음으로 전환됩니다.

사자의 포효와 예언자의 입 — 왜 아모스는 말할 수밖에 없는가

아모스 3:3–8 본문 →

3절부터 6절까지는 평범한 생활의 장면들이 빠르게 이어집니다.

함께 걷는 두 사람, 숲의 사자, 굴속의 젊은 사자, 덫에 걸리는 새, 성읍에서 울리는 뿔나팔. 처음 읽으면 서로 관련 없는 수수께끼들을 모아 놓은 것처럼 보입니다.

약속하여 만나지 않고서야 둘이 함께 걸어가겠느냐?아모스 3:3 · 본디새김

문맥에서 중요한 것은 함께 걷는 일에 그에 앞선 만남이나 정해진 관계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흔히 생각하듯 두 사람이 모든 생각과 의견에서 완전히 일치해야만 함께할 수 있다는 일반적인 교훈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포효에는 이유가 있다

먹잇감이 없는데 사자가 숲에서 포효하겠느냐? 아무것도 잡지 않았는데 젊은 사자가 제 굴에서 소리를 내겠느냐?아모스 3:4 · 본디새김

그가 사용하는 논리는 단순합니다. 소리에는 그 소리가 발생하는 상황과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아모스 1:2에서 이미 들렸던 여호와야훼의 포효를 다시 떠올리게 합니다.

여호와야훼가 포효하셨다면, 그것은 까닭 없는 분노의 소리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에게 심판을 말씀하실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덫이 움직였다면 무언가 일어난 것이다

5절에서는 사자의 이미지가 덫으로 바뀝니다.

미끼가 없는데 새가 땅 위의 덫에 떨어지겠느냐? 잡은 것이 전혀 없는데 덫이 땅에서 솟아오르겠느냐?아모스 3:5 · 본디새김

앞의 질문과 마찬가지로 원인과 결과가 연결됩니다. 새가 덫에 걸리는 일에는 덫이 놓인 상황이 있습니다. 덫이 작동했다면 그것을 움직이게 한 사건이 있습니다.

아모스는 눈에 보이는 결과를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원인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다음 질문은 자연에서 인간의 성읍으로 옮겨 갑니다.

성읍에서 뿔나팔이 울리면 백성이 떨지 않겠느냐? 여호와야훼가 일으키지 않고서야 성읍에 재앙이 일어나겠느냐?아모스 3:6 · 본디새김

고대 성읍에서 뿔나팔은 위험을 알리는 경보로 사용될 수 있었습니다. 적군의 접근이나 전쟁의 위협을 알리는 소리라면 백성은 당연히 긴장합니다.

아모스가 말하는 것은 지금 선포되는 심판이 여호와야훼의 주권과 무관하게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여호와야훼가 심판하시는 분이라는 선언이지,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개인적 고난이 반드시 특정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직접적인 형벌이라는 일반 공식이 아닙니다. 아모스 3장의 문맥에서 심판의 대상은 이미 구체적으로 고발된 이스라엘의 사회적 불의입니다.

하나님은 왜 자신의 계획을 먼저 드러내시는가

주 여호와야훼는 자기 종들인 예언자들에게 자기의 계획을 드러내지 않고서는 아무 일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아모스 3:7 · 본디새김

앞뒤 문맥에서 논의되는 것은 성읍에 임할 재앙과 그 재앙을 알리는 예언입니다. 따라서 이 선언은 특히 하나님의 심판 계획과 예언자의 선포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으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예언자는 하나님의 판단을 듣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보면 3–7절의 질문들은 8절에서 하나의 결론에 도달합니다.

사자가 포효했는데 누가 두려워하지 않겠느냐? 주 여호와야훼가 말했는데 누가 예언하지 않겠느냐?아모스 3:8 · 본디새김

앞 장에서 여호와야훼는 이스라엘이 예언자들에게 「예언하지 마라」고 명령했다고 고발하셨습니다(2:12). 그런데 아모스 3:8은 그 요구가 왜 하나님의 뜻과 충돌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예언자의 권위는 자신이 가진 지위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말씀하신 분의 권위에서 나옵니다.

여기에는 이스라엘을 향한 여호와야훼의 행동도 드러납니다. 하나님은 재앙이 임하기 전에 자신의 계획을 예언자를 통해 알리십니다. 그 말씀은 이미 선언된 심판의 정당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백성이 자신의 현실을 돌아볼 수 있도록 합니다.

다만 이것을 심판 선언이 반드시 철회될 것이라는 약속으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이 장은 심판의 계획이 드러났다고 말하지, 심판이 취소되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말씀은 이스라엘 내부의 청중만이 아니라 뜻밖의 증인들을 향합니다.

조금 더 깊이

3절의 두 사람을 읽는 한 가지 가능성은 여호와야훼와 이스라엘입니다. 1–2절에서 두 존재의 특별한 관계를 말씀하셨으므로, 함께 걷는다는 표현을 그 관계와 연결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이스라엘이 여호와야훼와의 관계에 합당하게 행동하지 않았다는 뜻이 강조됩니다. 다른 가능성은 여호와야훼와 예언자입니다. 7–8절에서 하나님이 자신의 계획을 예언자에게 드러내시고, 예언자가 말씀을 전한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아모스가 말하는 이유는 여호와야훼가 그를 부르시고 말씀을 맡기셨기 때문이라는 뜻이 됩니다. 3절은 두 사람이 누구인지 직접 밝히지 않습니다. 두 읽기 모두 문맥상의 근거가 있지만, 이어지는 질문들이 예언의 필연성으로 수렴한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3:6에서는 성읍에 일어나는 재앙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이 구절을 하나님이 인간의 모든 악한 행동을 직접 저지르신다는 뜻으로 읽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7절의 「계획」은 은밀한 의논이나 비밀스러운 회의, 친밀한 관계 안에서 나누는 속마음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23:18, 22에서도 여호와야훼의 회의에 서서 말씀을 듣는다는 이미지가 등장합니다.

이방 나라들을 불러 사마리아를 보게 하다

아모스 3:9–10 본문 →

9절은 새로운 명령으로 시작합니다.

「너희는 아스돗의 성채들과 이집트 땅의 성채들에 선포하고, 이렇게 말하여라. 『사마리아 산들 위로 모여라. 그 안의 큰 혼란과 그 한가운데의 억압을 보아라.』」아모스 3:9 · 본디새김

아스돗은 블레셋의 주요 성읍 가운데 하나이고, 이집트는 이스라엘이 과거에 억압받던 땅입니다. 아모스 1장에서 블레셋의 성읍들은 사람들을 강제로 끌고 가 넘긴 일로 고발되었습니다. 이집트는 출애굽 이야기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억압의 기억과 연결된 나라입니다.

이런 나라들이 이제 사마리아의 현실을 보도록 초청됩니다.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은 백성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외부 사람들이 와서 확인하라는 것입니다.

성채에서 성채를 바라보게 하다

성채는 원래 사람과 재산을 보호하는 곳입니다. 정치적·군사적 권력이 집중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다른 나라의 성채에 있는 사람들을 불러 이스라엘의 수도를 바라보게 합니다.

여기서 「혼란」은 단순히 사람들이 시끄럽거나 질서 없이 움직인다는 뜻에 그치지 않습니다. 뒤따르는 억압과 함께 읽을 때, 공동체의 질서가 심각하게 뒤틀린 상태를 나타냅니다.

특히 사마리아는 북이스라엘의 수도였습니다. 왕과 고관들이 거주하고, 나라의 중요한 결정이 내려지는 곳입니다. 그런데 여호와야훼는 바로 그 도시의 한가운데에서 억압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사회의 중심이 잘못되어 있다는 고발입니다.

하나님께 알려졌지만 올바른 일을 알지 못하는 백성

「그들은 바르게 행할 줄 모른다. 자기 성채들에 폭력과 약탈을 쌓아 두는 자들이다.」 여호와야훼의 선언이다.아모스 3:10 · 본디새김

2절과 10절은 같은 히브리어 동사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문맥상 그 의미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2절에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맺으신 특별한 관계를 가리키고, 10절에서는 올바른 일을 행할 줄 모르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가르침을 주지 않으셨기 때문에 올바른 일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앞 장에서 그들은 예언자들에게 예언하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2:12).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바로잡아 줄 말씀을 거부했습니다.

그 결과 바르게 행하지 않는 일이 반복되면서, 이제는 바르게 행할 줄도 모르는 공동체가 되었다고 고발받습니다. 잘못을 되풀이하는 공동체는 결국 무엇이 올바른지 판단하는 능력까지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성채에는 무엇이 쌓이고 있는가

10절 후반부는 사마리아의 부를 바라보는 관점을 뒤집습니다.

성채 안에는 보통 값비싼 물건이나 귀중한 재산이 보관됩니다. 강력한 성벽은 그런 재산을 보호합니다.

그런데 아모스는 그 안에 금과 은이 쌓였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폭력과 약탈이 쌓였다고 말합니다.

사마리아의 부유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성채에 보관하고 있는 재산 가운데는 다른 사람을 억압하고 약탈함으로써 얻은 것이 있었다는 고발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부유하다는 사실 자체를 죄로 규정하는 말이 아닙니다. 재산이 형성된 방식과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일어난 일을 묻는 것입니다.

아모스 2:6–8에서 가난한 사람을 팔고 그들의 담보물을 이용하던 행동이 이제 수도의 성채 안에 축적된 부와 연결됩니다. 사람을 억압하여 얻은 재산이 권력의 중심에 모이고, 그 권력이 다시 그 재산을 보호하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성채들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폭력으로 채운 성채가 약탈당하다

아모스 3:11 본문 →

11절은 앞선 고발의 직접적인 결과를 선언합니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했다. 「적이 이 땅 사방에 있다. 그가 네게서 네 힘을 끌어내리고, 네 성채들은 약탈당할 것이다.」아모스 3:11 · 본디새김

다른 사람에게서 빼앗아 쌓아 올린 성채가, 이제는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는 장소가 됩니다.

사마리아의 권력자들은 성채가 자신들의 안전을 보장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높은 성벽과 강한 방어 시설, 그 안에 쌓인 재산은 그들의 지위를 뒷받침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안전하다고 믿었던 바로 그곳에 여호와야훼의 심판이 임합니다.

그렇다면 사마리아에 살던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12절은 목자였던 아모스의 삶과 가까운 장면으로 그 결과를 보여 줍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적」이 누구인지는 명시되지 않습니다. 역사적으로 북이스라엘은 훗날 아시리아의 공격을 받아 사마리아를 잃게 됩니다(열왕기하 17:3–6). 따라서 이 예언을 그 사건과 연결해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모스 3:11 자체는 아시리아라는 이름을 말하지 않습니다. 본문이 강조하는 것은 공격자의 정확한 정체보다 이스라엘이 의지하던 힘이 무너진다는 사실입니다.

사자 입에서 건져 낸 다리와 귀 한 조각

아모스 3:12 본문 →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했다. 「목자가 사자 입에서 다리 두 개나 귀 한 조각을 건져 내듯이, 사마리아에 살며 침대 모퉁이와 침상의 데메셰크에 앉아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도 그렇게 건져질 것이다.」아모스 3:12 · 본디새김

사자에게 잡아먹힌 양에게서 다리 두 개나 귀 한 조각을 건져 낸다면, 그것을 정말 구출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양은 이미 죽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목자가 되찾은 것은 양의 생명이 아니라 몸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목자는 왜 찢긴 조각을 가져오는가

「건져진다」는 말 자체만 보면 희망적인 선언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자 입에서 겨우 다리 두 개나 귀 한 조각이 건져지는 상황을 생각하면, 이 말은 오히려 심판의 철저함을 강조합니다.

이스라엘이 구출되는 모습은 온전한 양이 살아 돌아오는 장면이 아닙니다.

거의 모든 것이 사라진 뒤 작은 조각만 남는 장면에 가깝습니다.

사마리아의 침대에 앉은 사람들

그런데 비유의 후반부는 갑자기 사자 입에서 사마리아의 침대로 옮겨 갑니다.

이 장면은 한가롭게 앉아 있는 부유층의 생활을 연상시킵니다. 특히 아모스 6:4에서는 상아로 꾸민 침상에 누워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직접 고발됩니다. 따라서 3:12의 침대도 사마리아의 유력자들이 누리던 안락한 생활과 연결해서 읽을 근거가 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의지하던 안락함과 부유함은 그들을 보호하지 못합니다.

사자에게 잡힌 양이 자신의 몸을 지키지 못하듯, 그들도 심판 앞에서 무력해집니다.

처음의 포효가 마지막에는 현실이 된다

4절에서는 사자가 먹잇감을 앞에 두고 포효하는 모습을 묻습니다. 8절에서는 사자가 포효했는데 누가 두려워하지 않겠느냐고 말합니다. 그런데 12절에서는 이미 사자에게 잡힌 짐승의 몸이 찢겨 나간 뒤의 장면을 보여 줍니다.

소리로 시작한 경고가 심판의 결과로 이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심판의 선언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에는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안전을 보장한다고 여겼을 법한 두 장소가 함께 등장합니다. 제단과 집입니다.

조금 더 깊이

출애굽기 22:13은 맡아 기르던 짐승이 다른 짐승에게 찢겨 죽었을 때, 그 찢긴 것을 증거로 가져오면 배상 책임을 면할 수 있다고 규정합니다. 그 조각은 살아 있는 양을 구해 냈다는 증거가 아닙니다. 맹수에게 잡아먹혔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아모스가 이 법적 상황을 직접 설명하지는 않지만, 당시 목자가 짐승의 남은 조각을 가져오는 장면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배경이 됩니다. 이 비유를 소수의 사람이 실제로 살아남는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남은 자들이 어떤 조건으로 살아남을지, 이후 어떤 삶을 살게 될지는 이 구절에서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장면을 곧바로 영광스러운 회복의 약속으로 바꾸는 것은 본문이 보여 주는 충격을 약화시킬 수 있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데메셰크」라는 말의 정확한 의미는 불확실합니다. 철자가 비슷한 다마스쿠스라는 지명과 연결하거나, 침상의 천이나 장식 또는 일부를 가리키는 말로 이해하는 읽기들이 있습니다. 또한 문장 전체가 침상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현재 모습을 묘사하는지, 심판 이후 침상의 일부만 남는 장면을 묘사하는지도 해석이 갈립니다. 첫 번째로 읽으면 부유한 사람들이 편안한 침상에 앉아 있지만 결국 사자에게 잡힌 양처럼 처참하게 건져질 것이라는 뜻입니다. 두 번째로 읽으면 사람이 아니라 침대의 조각들까지 포함하여, 심판 이후 남는 것이 얼마나 적을지를 보여 주는 이미지가 됩니다.

제단의 뿔이 잘려 땅에 떨어지다

아모스 3:13–14 본문 →

13절은 새로운 명령으로 시작합니다.

「너희는 듣고, 야곱의 집안을 거슬러 증언하여라.」 주 여호와야훼, 만군의 하나님의 선언이다.아모스 3:13 · 본디새김

누구에게 이 명령이 내려지는지는 분명히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앞서 9절에서 사마리아의 현실을 보도록 부름받은 외국의 증인들과 연결해서 읽을 수도 있고, 심판 선언을 듣고 전해야 하는 다른 청중을 가리킨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의 죄가 공개적으로 드러나고 증언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뒤에는 여호와야훼의 호칭이 길게 등장합니다. 이는 심판을 선언하시는 분의 권위를 강조합니다.

이제 여호와야훼가 심판하실 장소는 벧엘입니다.

「내가 이스라엘의 범죄 때문에 그를 벌하는 날, 벧엘의 제단들도 벌할 것이기 때문이다. 제단의 뿔들이 잘려 땅에 떨어질 것이다.」아모스 3:14 · 본디새김

제단의 거룩함과 그곳에서 기대하던 보호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제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제단이 있다고 해서 자신들의 불의가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제단은 하나님을 조종하거나 심판을 막아 주는 물건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가기 위해 세운 장소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아도 안전하다는 보증이 될 수는 없습니다.

마지막 절에서는 심판의 대상이 제단에서 부유한 사람들의 집으로 옮겨 갑니다.

조금 더 깊이

벧엘은 북이스라엘의 중요한 종교 중심지였습니다. 열왕기상 12:28–33에 따르면 여로보암 1세는 나라가 분열된 뒤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두고 독자적인 예배 체제를 마련했습니다. 벧엘이라는 이름 자체는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창세기 28:19에서 야곱은 하나님을 만난 뒤 그곳의 이름을 벧엘이라고 불렀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제단에는 네 모퉁이에 뿔처럼 돌출된 부분이 있었습니다. 출애굽기 27:2는 번제단을 만들 때 네 모퉁이에 뿔을 만들라고 규정합니다. 열왕기상 1:50–53에서는 아도니야가 솔로몬을 두려워하여 제단의 뿔을 붙잡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곳에서 제단의 뿔은 보호를 요청하는 행위와 연결됩니다. 그러나 아모스 3:14가 제단의 뿔을 붙잡은 특정한 사람이 보호받지 못했다는 사건을 묘사하는 것은 아닙니다. 본문은 제단 자체가 심판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겨울 집과 여름 집, 그리고 상아 집의 몰락

아모스 3:15 본문 →

「내가 겨울 집을 여름 집과 함께 치겠다. 상아 집들이 무너지고, 많은 집들이 사라질 것이다.」 여호와야훼의 선언이다.아모스 3:15 · 본디새김

겨울 집과 여름 집은 계절에 따라 사용하는 거처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는 한 집에서 사계절을 보내야 하는 사람들과 달리, 계절에 따라 거처를 달리할 수 있는 부유한 사람들의 생활을 보여 줍니다.

상아 집은 상아로 집 전체를 만들었다는 뜻이라기보다 상아 장식으로 화려하게 꾸민 건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열왕기상 22:39는 아합이 지은 상아 집을 언급합니다. 이는 사마리아의 왕실 문화에서 상아 장식이 부와 권력의 상징으로 사용되었음을 보여 주는 본문입니다.

이 집들은 이미 앞서 등장한 사마리아의 성채들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10절에서 그들은 폭력과 약탈을 성채에 쌓아 두고 있었습니다. 15절에서 그들의 호화로운 주거 공간이 무너집니다.

집이 많다는 것이 안전의 증거는 아니다

겨울 집과 여름 집을 가진 사람은 하나의 건물이 무너져도 다른 집으로 옮겨 갈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상아로 화려하게 꾸민 집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높은 지위에 있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의 심판은 그들의 소유가 많다는 사실 때문에 멈추지 않습니다.

겨울 집과 여름 집이 함께 무너집니다.

상아 집도 무너집니다.

많은 집이 사라집니다.

14절에서는 벧엘의 제단이 무너집니다. 15절에서는 사마리아의 호화로운 집들이 무너집니다. 한쪽은 종교적인 안전을 대표하고, 다른 한쪽은 경제적·사회적인 안전을 대표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자신들이 누리는 번영을 통해 안전을 확인하려 했지만, 하나님께서 정작 요구하시는 올바른 삶을 외면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아모스 3장은 제단과 집이 함께 무너지는 장면에서 끝납니다.

결론 — 사자의 입에 남은 조각

아모스 3:1–15 본문 →

아모스 3장의 처음에서 여호와야훼는 이스라엘에게 「나는 너희만 알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을 자신들의 안전을 보증하는 것으로만 이해한다면,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됩니다. 하나님께 알려진 사람은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자신을 아시는 하나님의 뜻에 응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선언 사이에 사자 입에서 건져 낸 다리 두 개와 귀 한 조각이 놓여 있습니다.

아모스는 양을 살려 낸 목자의 기쁜 모습을 보여 주지 않습니다. 그는 사자가 지나간 뒤 겨우 남은 조각을 손에 들고 있는 목자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 조각은 한때 양이 살아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그러나 이제 그 양의 생명과 힘은 사라졌습니다. 사마리아가 자랑하던 성채와 침상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에게 남아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를 보고 안전하다고 생각했지만, 여호와야훼는 그들이 무엇을 잃어버리고 있는지를 보고 계셨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