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테르기 (그리스어) 풀어 읽기 · 2장
이 장의 자리 · 2장 · 왕후가 된 에스더
왕관과 감추어진 정체성
에스테르는 마침내 페르시아의 왕후가 됩니다. 부모를 잃고 다른 사람의 보호 아래 자란 유대인 소녀가 거대한 제국의 왕관을 쓰게 된 것입니다. 이 사실만 바라보면 에스테르기 2장은 가난하고 불우한 여인이 뜻밖의 행운을 얻어 높은 자리에 오르는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자세히 읽으면 이 성공담에는 이상한 점들이 있습니다.
에스테르는 제국에서 가장 높은 지위에 오른 여성 가운데 하나가 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의 삶을 얼마나 결정할 수 있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에스테르를 단지 무력한 사람으로만 그리지도 않습니다. 그는 주어진 환경에서 행동하고, 지시를 따르며, 자신의 정체성을 감추면서도 이전의 생활 방식을 지킵니다. 마지막에는 왕에게 중요한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의 삶에서는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보이지 않는 모습이 함께 움직입니다.
사람들은 에스테르의 아름다움을 보지만 그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은 모릅니다. 왕은 그를 사랑하지만 그가 어떤 역사를 가진 사람인지는 알지 못합니다. 에스테르는 왕후의 왕관을 쓰지만, 자신의 고향을 여전히 감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장의 처음과 마지막에는 ‘기억’이라는 문제가 놓여 있습니다. 처음에 왕은 와스디와 자신이 내린 판결을 기억하면서도 그를 더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에 왕은 모르드개의 충성을 잊지 않도록 왕실 기록에 남깁니다.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으며, 무엇을 감추는가요?
분노는 가라앉았지만, 판결은 남아 있다
왕이 기억하면서도 생각하지 않는 것
2장은 왕의 분노가 가라앉았다는 말로 시작합니다.
이 일들이 있은 뒤 왕의 분노가 가라앉았다. 왕은 와스디가 무슨 말을 했는지와 자신이 어떻게 그녀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는지를 기억하면서도, 더는 와스디를 생각하지 않았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2:1 · 본디새김
첫 장에서는 왕의 감정이 즉각적인 정치적 결정으로 이어졌습니다. 왕후가 명령에 따르지 않자 왕은 화를 냈고, 고관들의 제안에 따라 그를 폐위했습니다.
기억의 내용과 기억의 지속적인 관심을 구별하면 문장이 이해됩니다. 왕은 와스디가 관련된 사건과 자신이 내린 판결을 떠올리지만, 와스디 자신에게 더는 마음을 두지 않는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다만 그리스어에서는 ‘말했다’의 주어가 생략되어 있어 와스디가 한 말을 기억한 것인지 왕 자신이 한 말을 기억한 것인지가 해석상 갈립니다. 또한 왕이 후회하고 있었다고 명시하지도 않습니다.
감정은 지나갔지만, 그 감정 속에서 만들어진 판결은 계속 효력을 지닙니다.
해결책은 왕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새 여인을 찾는 것입니다
왕의 시중드는 사람들은 왕을 위해 아름다운 소녀들을 찾자고 제안합니다. 제국의 여러 지방에서 소녀들을 모아 왕궁으로 데려오고, 그들 가운데 왕의 마음에 드는 여자를 새 왕후로 세우자는 것입니다.
제안의 출발점은 왕의 필요입니다. 와스디가 없는 자리를 어떻게 채울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반면 소녀들이 왕궁에 들어오기를 원하는지, 그들의 가족과 생활은 어떻게 되는지는 묻지 않습니다.
2:3에서 시중드는 이들은 왕이 여러 지방에 관리들을 세워 소녀들을 선발하게 하자고 제안합니다. 첫 장에서 왕의 명령을 제국 전역에 전달하던 행정 체계가 이제는 여러 지방의 젊은 여성들을 왕궁으로 모으는 데 사용됩니다.
「그리하여 폐하의 마음에 드는 여자가 와스디 대신 왕후가 될 것입니다.」 왕은 이 지시를 마음에 들어 했고, 그대로 행했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2:4 · 본디새김
소녀들의 출신이나 인격, 공동체의 평가는 제시되지 않습니다. 왕의 마음에 드느냐가 최종 기준입니다. 와스디가 왕의 명령을 거절하여 왕후의 자리에서 밀려났다면, 새 왕후는 왕의 마음에 들기 때문에 그 자리를 얻게 됩니다.
왕후를 고르는 일조차 왕의 독자적인 판단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됩니다. 왕은 최종 결정권을 가지고 있지만, 결정을 이끌어 내는 것은 계속 다른 사람들의 말입니다.
부모를 잃은 소녀가 제국의 명령에 휩쓸리다
모르드개의 보호 아래 있던 에스테르
이야기는 왕궁의 명령을 설명하다가 수산에 살고 있는 유대인 모르드개와 에스테르에게로 시선을 돌립니다.
모르드개의 족보와 포로 출신이라는 설명은 그리스어 도입부에서 이미 나왔습니다. 여기서는 같은 설명이 에스테르라는 새 인물을 소개하는 배경으로 사용됩니다.
모르드개에게는 기르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모르드개 아버지의 형제인 아미나답의 딸로, 이름은 에스더였다. 에스더의 부모가 죽자 모르드개는 에스더를 자기 아내로 삼으려고 가르쳐 길렀다. 그 소녀는 용모가 아름다웠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2:7 · 본디새김
히브리어 본문에서는 부모를 잃은 에스테르를 자기 딸처럼 받아들인 보호자의 모습이 강조됩니다. 그리스어 본문에서는 모르드개가 보호자이면서 장래에 에스테르를 자신의 아내로 삼으려 했다는 설명이 들어갑니다.
따라서 그리스어 본문을 그대로 읽으면 모르드개와 에스테르의 관계가 현대 독자에게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특히 성장 과정에서 돌보는 사람과 돌봄을 받는 사람 사이의 권력 차이를 생각하면 그렇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에스테르가 이 계획에 동의했는지, 실제 혼인 약속이 이루어졌는지, 모르드개가 그 관계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왕의 명령이 내려지면서 그 계획이 무너집니다.
모르드개는 에스테르를 자신의 가정 안에서 기르고 장래를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제국의 명령은 그의 의도와 상관없이 에스테르의 삶을 다른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에스테르는 자원해서 들어갔는가?
왕의 명령이 알려지자 많은 소녀가 수산 도성으로 모여 헤개의 관리 아래 놓였다. 에스더도 여자들을 관리하는 헤개에게 이끌려 갔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2:8 · 본디새김
여기서 에스테르가 스스로 왕궁에 들어가겠다고 지원했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물론 이 동사 하나만으로 구체적인 체포나 물리적 강제가 있었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에스테르의 이동이 왕의 명령에 따른 것이며, 그가 주도한 선택으로 묘사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에스테르를 왕후가 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든 아름다움은, 먼저 그를 왕궁으로 데려가게 한 이유였습니다.
이야기는 에스테르가 왕궁에 들어간 뒤 좋은 대우를 받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그 좋은 대우가 에스테르에게 처음부터 자유로운 선택권이 있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호의를 얻었지만, 자신이 누구인지는 감추다
에스테르에게 거듭 찾아오는 호의
왕궁에 들어간 에스테르는 곧 여자들을 관리하는 내시 헤개의 눈에 듭니다.
헤개는 그 소녀를 마음에 들어 했고, 소녀는 그의 호의를 얻었다. 그는 서둘러 에스더에게 몸을 씻는 향유와 몫의 음식, 그리고 왕궁에서 에스더를 위해 배정한 일곱 소녀를 주었다. 그는 여자들의 처소에서 에스더와 그 몸종들을 잘 대해 주었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2:9 · 본디새김
처음에는 헤개의 호의를 얻습니다(2:9). 이후에는 자신을 보는 모든 사람의 호의를 얻습니다(2:15). 마지막에는 왕의 호의를 다른 모든 소녀보다 더 크게 얻습니다(2:17).
왕궁이라는 낯선 공간에서 에스테르가 적응해 가는 과정이 ‘호의’라는 반복을 통해 드러납니다.
다니엘 1:9에서는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환관장의 호의와 긍휼을 얻게 하셨다고 분명히 기록합니다. 반면 에스테르기 2:9은 에스테르가 헤개의 호의를 얻었다고 말할 뿐, 그 원인을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두 본문 모두 이방 왕궁에서 살아가는 유대인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하나님의 활동을 서술하는 방식은 다릅니다.
에스테르에게 주어지는 호의가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관계있을 가능성은 이야기 전체를 읽으며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본문이 밝히지 않은 원인을 미리 확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 호의는 단순한 인기가 아닙니다. 왕궁의 엄격한 질서 속에서 그가 살아가고 새로운 위치를 얻는 데 실제로 영향을 미칩니다.
가장 중요한 정보는 감추어져 있다
그런데 에스테르가 좋은 대우를 받는 모습을 보여 준 직후, 본문은 뜻밖의 사실을 알려 줍니다.
에스더는 자기 민족도 고향도 밝히지 않았다. 모르드개가 알리지 말라고 명령했기 때문이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2:10 · 본디새김
왕궁에서 유대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질 경우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본문은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에스테르의 침묵은 조심스러운 행동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정확히 무엇을 우려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왕궁 사람들은 에스테르의 아름다움과 태도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어떤 민족의 사람이며 어디에서 왔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눈앞에 드러나는 모습에 호의를 보이지만, 그 사람의 배경 전체를 아는 것은 아닙니다.
매일 뜰을 거니는 모르드개
2:11은 왕궁 안의 에스테르에서 왕궁 밖의 모르드개로 시선을 옮깁니다.
모르드개는 날마다 여자들의 뜰을 거닐며 에스더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 살폈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2:11 · 본디새김
에스테르를 집으로 데려올 수도 없고, 왕의 선택을 대신 결정할 수도 없습니다. 그가 하는 일은 에스테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보는 것입니다. 본문에는 특별한 감정 표현이 없지만, 이 행동의 반복 자체가 그의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 줍니다.
에스테르가 받는 좋은 대우와 모르드개가 느끼는 염려는 서로 모순되지 않습니다. 안전해 보이는 곳에 들어갔다고 해서 그 사람의 미래가 안전해진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열두 달의 준비와 단 하룻밤의 선택
2:12–14는 소녀들이 왕에게 들어가는 절차를 설명합니다.
왕궁에 모인 소녀들은 열두 달 동안 몸을 가꿉니다. 여섯 달은 몰약 기름을 바르고, 나머지 여섯 달은 향품과 향유를 사용합니다. 소녀들은 정해진 과정을 거쳐야 왕에게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다음 과정은 놀랄 만큼 짧습니다.
소녀는 저녁에 들어갔다가 날이 밝을 무렵 여자들의 둘째 처소로 물러갔다. 그곳에는 왕의 내시이며 여자들을 관리하는 헤개가 있었다. 소녀는 자기 이름으로 부름을 받지 않으면 다시는 왕에게 들어가지 않았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2:14 · 본디새김
열두 달 동안 준비한 뒤 왕과 보내는 시간은 하룻밤입니다.
왕의 마음에 들지 않은 소녀가 이후 어떻게 살아갔는지는 이 장에서 설명하지 않습니다. 둘째 처소로 옮겨 간다는 사실은 알려 주지만, 그곳에서 평생 지냈다거나 외부로 나갈 수 없었다고까지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왕궁에 모인 소녀들은 처음에 아름다운 외모라는 공통된 조건으로 선발되었습니다. 왕 앞에 들어가는 절차도 거의 동일합니다. 그러나 다시 왕에게 들어갈 수 있는지는 개인의 이름이 불리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이름을 불러 주는 일이 특별한 의미를 갖는 이유는, 왕궁의 여성들이 왕의 부름에 따라 움직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이름을 부르는 권한을 가진 사람이 그들의 앞날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칩니다.
2:13에서 소녀가 동행할 사람을 지목할 수 있다는 설명은 이 제도 속에도 제한적인 선택의 여지가 있음을 보여 줍니다. 다만 이 그리스어 문장은 생략된 주어와 대명사의 연결 때문에 해석이 쉽지 않습니다. 히브리어 본문에서는 소녀가 원하는 물건을 받아 왕궁에 가지고 들어가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어느 읽기를 따르든 소녀가 왕에게 들어간다는 기본 절차는 바뀌지 않고, 다시 부름받을지 결정하는 권한은 그에게 있지 않습니다.
왕궁은 아름다움과 풍요가 넘치는 곳이지만, 그곳에 들어간 모든 사람에게 같은 자유가 주어지는 곳은 아닙니다.
에스테르는 거절하지 않았고, 왕은 그를 사랑했다
와스디의 거절과 에스테르의 순응
마침내 에스테르가 왕에게 들어갈 차례가 됩니다.
모르드개 아버지의 형제인 아미나답의 딸 에스더가 정해진 기간을 다 채우고 왕에게 들어갈 때가 되자, 에스더는 여자들을 관리하는 내시가 지시한 것을 하나도 거스르지 않았다. 에스더는 자기를 보는 모든 이에게 호의를 얻고 있었기 때문이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2:15 · 본디새김
와스디는 거절했습니다. 에스테르는 거스르지 않았습니다.
와스디가 왜 거절했는지도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고, 에스테르가 왜 헤개의 지시를 모두 따랐는지도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았습니다. 와스디는 이미 왕후였습니다. 에스테르는 왕궁에 들어와 자신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소녀였습니다.
와스디에게는 왕의 명령을 거절하는 행동이 있었고, 에스테르에게는 왕궁 관리자의 지시를 따르는 행동이 있었습니다. 둘을 비교할 수는 있지만, 그 행동 하나만으로 두 사람의 인격과 신앙을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에스테르의 행동은 주어진 환경을 조심스럽게 헤쳐 나가는 태도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결정권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관리자의 지시를 따르고, 주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호의가 왕의 사랑으로 이어지다
왕은 에스더를 사랑하게 되었고, 에스더는 다른 모든 처녀보다 더 큰 호의를 얻었다. 왕은 에스더에게 왕후의 왕관을 둘러 주었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2:17 · 본디새김
앞에서 살펴본 ‘호의’의 반복이 여기서 절정에 이릅니다.
이제 에스테르는 단순히 궁정에 들어온 소녀가 아닙니다. 제국의 공식적인 왕후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가 왕후가 되는 순간에 그의 유대인 정체성이 밝혀졌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왕은 에스테르가 누구인지 충분히 알지 못하면서도 그에게 가장 높은 지위를 줍니다.
아달월에 쓰인 왕관
2:16에 따르면 에스테르는 왕의 통치 칠 년째, 열두째 달인 아달월에 왕에게 들어갔습니다.
왕의 기쁨이 제국 전체에 전달되다
왕은 에스테르와의 혼인 잔치를 성대하게 엽니다.
잔치는 이레 동안 이어지고, 왕의 측근들과 군대가 참여합니다. 왕은 자기 다스림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 면제까지 허락합니다.
왕후를 폐위할 때에도 왕의 결정은 제국 전체에 전해졌습니다. 새로운 왕후를 맞이할 때에도 왕의 기쁨이 잔치와 면제의 형태로 확산됩니다.
왕의 개인적인 삶과 제국의 공적인 질서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그리스어 본문의 아달월은 히브리어 에스더기 2:16의 열째 달 데벳월과 다릅니다. 따라서 어느 달에 왕후가 되었는지는 두 판본을 구별해서 읽어야 합니다. 그리스어 에스테르기에서 아달월은 특별히 기억해 둘 만한 달입니다. 뒤에서 유대 민족의 존망과 구원의 기억이 이 달과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2:18의 면제는 이 문맥에서는 세금이나 부역과 같은 부담을 덜어 주는 조치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본문은 정확히 무엇을 얼마나 면제했는지 밝히지 않습니다.
왕후가 된 뒤에도 바꾸지 않은 생활 방식
2:19–20은 얼핏 보면 이미 알려진 사실을 반복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모르드개는 궁정에서 일하고 있었고, 에스테르는 자기 고향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앞부분에 없던 중요한 설명이 덧붙습니다.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명령에 따라 자기 고향을 밝히지 않았다. 모르드개는 자기와 함께 지낼 때처럼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명령들을 행하라고도 에스더에게 일렀다. 에스더는 자기 생활 방식을 바꾸지 않았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2:20 · 본디새김
알리지 않은 것과 버리지 않은 것
히브리어 에스더기 2:20에서는 에스테르가 모르드개의 지시를 따랐다는 사실이 강조되지만, 그리스어 본문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행하는 삶을 명시합니다. 이 차이 덕분에 그리스어 본문에서 에스테르의 신앙은 훨씬 직접적으로 드러납니다.
에스테르는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말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잊지 않았습니다.
본문이 에스테르가 구체적으로 어떤 계명들을 어떻게 지켰는지 설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왕궁에서 제공받은 음식을 먹지 않았다거나 특정한 식사 규정을 엄격하게 지켰다는 사실은 이 장에서 확인할 수 없습니다.
다니엘 1장에서 다니엘은 왕의 음식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구체적인 행동을 취합니다(다니엘 1:8–16). 그러나 에스테르기 2장은 그런 세부적인 행동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두 인물의 경건을 같은 방식으로 설명해서는 안 됩니다.
높은 지위가 곧 새로운 정체성은 아니다
부모를 잃은 소녀였던 그는 왕후가 되었습니다.
모르드개의 보호 아래 있던 그는 왕궁으로 들어갔습니다.
궁정의 한 사람이던 그는 제국의 왕이 사랑하는 여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이 모든 지위의 변화 뒤에도 그가 생활 방식을 바꾸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이 절이 민족적 정체성을 영원히 감추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가르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장은 특정한 위험과 불확실성 속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언제 침묵하는 것이 지혜로운지, 언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야 하는지는 아직 이야기 속에서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곧 단순히 보호받는 사람의 위치를 넘어, 중요한 사건을 전달하는 역할을 맡게 됩니다.
감추어야 할 정보와 반드시 알려야 할 정보
모르드개의 높아진 지위를 시기한 사람들
2장의 마지막에는 왕을 살해하려는 음모가 등장합니다.
왕의 경호대장인 두 내시는 모르드개가 높은 자리에 오른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합니다. 그들은 왕을 죽이려 합니다.
불만의 대상은 모르드개인데, 죽이려는 대상은 왕입니다.
본문은 그들이 왜 모르드개의 승진을 계기로 왕을 죽이려 했는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모르드개를 높여 준 왕에게 분노했을 가능성은 있지만, 그들의 정확한 동기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왕궁의 지위와 명예를 둘러싼 경쟁은 왕의 생명을 위협하는 음모로 이어집니다.
에스테르의 침묵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침묵이 아니었다
이 일이 모르드개에게 알려졌다.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알렸고, 에스더는 그 음모에 관한 일을 왕에게 밝혔다.에스테르기 (그리스어) 2:22 · 본디새김
모르드개는 궁정에서 일하고 있지만, 왕의 암살 음모를 이번에는 에스테르를 통해 전달합니다. 에스테르는 왕후이므로 왕에게 중요한 정보를 전할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앞에서는 에스테르가 자신의 고향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왕의 생명과 관계된 음모를 밝힙니다.
에스테르는 모든 것을 감추는 사람이 아닙니다. 어떤 정보는 감추고, 어떤 정보는 전달합니다. 본문은 이 선택에 관하여 명시적인 도덕적 해설을 붙이지 않지만, 적어도 에스테르가 왕궁에서 단순히 아름다움으로 선택받은 사람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은 보여 줍니다.
에스테르의 존재는 이제 왕에게 사랑받는 대상에서, 왕에게 필요한 사실을 전달하는 사람으로 확장됩니다.
기록된 충성,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왕은 두 내시를 심문하고 그들을 매답니다. 그리고 모르드개의 충성을 왕실 서고에 기록하도록 명령합니다.
왕은 처음에 와스디에 관한 일을 기억하면서도 더는 와스디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모르드개의 충성을 기억하기 위해 공식 기록을 남깁니다.
한 사람은 왕의 기억에서 멀어지고, 다른 한 사람의 행동은 기록되어 기억의 대상이 됩니다.
이 대조는 왕궁의 기억이 얼마나 권력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왕의 판단에 따라 어떤 사람의 지위는 사라지고, 어떤 사람의 충성은 영예롭게 기록됩니다.
조금 더 깊이
이 대목은 그리스어 도입부 1:112–117에 이미 등장한 사건과 매우 비슷합니다. 두 곳 모두 왕의 내시들이 왕을 해치려 하고, 모르드개가 그 음모를 알아내어 왕에게 알리며, 사건이 기록됩니다. 도입부에서는 모르드개가 직접 왕에게 알리지만, 2장에서는 에스테르를 통해 왕에게 알립니다. 도입부에서는 하만이 두 내시의 사건 때문에 모르드개에게 적의를 품었다고 말하지만, 여기서는 내시들이 모르드개의 승진에 불만을 품습니다. 그리스어 본문에 이처럼 비슷한 사건이 두 차례 등장하는 것은 앞에 덧붙여진 도입부와 기존 에스더 이야기의 내용이 중첩되기 때문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반드시 서로 다른 두 차례의 암살 음모가 역사적으로 발생했다고 볼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본문의 두 서술을 모든 세부까지 완전히 같은 사건으로 조화시킬 수도 없습니다.
맺으며: 왕실 서고에 남은 한 사람의 이름
이 장은 사람들의 눈에 드러난 왕관과 아직 드러나지 않은 정체성, 그리고 서고에 보관된 충성의 기록을 남깁니다. 에스테르가 왕후가 된 것이 앞으로 무엇을 의미할지, 모르드개의 충성을 기록한 문서가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이 장은 아직 설명하지 않습니다.
에스테르기 2장을 신앙의 관점에서 읽을 때 중요한 것은 에스테르의 성공 자체를 곧 하나님의 뜻이나 축복의 증거로 단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에스테르가 왕후가 되었으므로 그가 겪었던 모든 과정이 선하고 정당했다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에스테르의 침묵과 순응을 언제나 따라야 할 절대적인 모범으로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본문도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중요한 것들이 이미 왕궁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에스테르는 왕관을 쓰고 있고, 모르드개의 이름은 왕실 서고에 남아 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