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풀어 읽기 · 36장
이 장의 자리 · 33–39장 · 회복의 약속
무너진 땅에 새 마음을 심으시는 하나님
에스겔 36장은 뜻밖의 청중을 향한 예언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말하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산들을 향해 말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너, 사람의 아들아, 이스라엘의 산들을 향해 예언하고 말하여라. 『이스라엘의 산들아, 여호와야훼의 말을 들어라.』」에스겔 36:1 · 본디새김
산들이 무슨 잘못을 했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할까요? 산들은 죄를 지을 수도, 회개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장의 앞부분에서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하실 법한 말씀을 산들에게 하십니다. 산들이 모욕을 당했다고 말씀하시고, 그들의 편이 되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며, 다시는 사람을 해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그러다가 16절에 이르면 예언의 방향이 갑자기 달라집니다. 이제 하나님은 그 땅에 살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땅을 더럽혔다고 말씀하십니다. 땅은 다른 민족들에게 짓밟힌 피해자였지만, 동시에 자기 백성의 죄로 더럽혀진 곳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신다 해도, 그들이 이전과 똑같은 사람들로 살아간다면 무엇이 달라지겠습니까?
무너진 성읍을 다시 세우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성읍을 무너뜨린 삶의 방식까지 바뀌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땅을 회복시키시겠다고 약속하신 뒤, 그 땅에 살아갈 사람들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땅에서 시작한 예언이 사람의 마음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사람이 가득한 땅으로 돌아오는 구조입니다.
원수의 말과 하나님의 말이 맞서다
앞 장에서 에스겔은 세일 산을 향해 심판을 선포했습니다. 세일은 에돔을 대표하는 산이며, 에돔은 이스라엘이 무너졌을 때 그 땅을 차지하려 했습니다(35:10).
이제 예언자는 이스라엘의 산들을 향해 얼굴을 돌립니다.
두 장의 시작은 의도적으로 닮아 있습니다. 35장에서는 세일 산을 향해 예언하라고 하셨고, 36장에서는 이스라엘의 산들을 향해 예언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두 산이 듣는 말씀은 정반대입니다.
세일 산에는 황폐의 선언이, 이스라엘의 산들에는 회복의 약속이 주어집니다.
「『주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한다. 원수가 너희를 두고 「아하, 옛적부터 있던 높은 곳들이 우리 소유가 되었다.」라고 말했으므로,』」에스겔 36:2 · 본디새김
‘오래된 높은 곳들’이라는 뜻으로, 이 문맥에서는 이스라엘의 유서 깊은 산지와 영토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반드시 우상 숭배의 제단이 있던 산당들을 뜻한다고 볼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의 말에서 잘못된 전제를 발견하십니다.
5절에서 하나님은 그 땅을 「내 땅」이라고 부르십니다. 원수들은 ‘우리 소유’라고 말했지만, 하나님은 ‘내 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은 그 땅을 잃었고, 다른 민족들은 그 땅을 차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땅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땅이 짊어진 모욕
3–6절에는 모욕과 약탈을 묘사하는 표현이 거듭 등장합니다.
산들은 황폐해졌고, 성읍들은 버려졌으며, 다른 민족들은 그것을 약탈했습니다. 사람들은 그 땅을 두고 비웃는 말을 주고받았습니다.
4절에서 하나님은 산들과 언덕들만 아니라 물길들과 골짜기들, 폐허들과 버려진 성읍들까지 하나하나 부르십니다. 마치 사람이 살지 않는 땅의 곳곳을 찾아다니며 그곳이 겪은 일을 들어 주시는 것 같습니다.
5절에서 에돔과 주변 민족들은 「온 마음으로 기뻐하고 마음 깊이 멸시하며」 하나님의 땅을 자기들의 소유로 삼았습니다. 그들이 정죄받는 이유는 단순히 이스라엘의 땅을 차지하려 했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이미 고난을 겪고 있는 백성의 몰락을 기뻐하고, 그들의 땅을 약탈물처럼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내 손을 들어 맹세했다. 너희 둘레에 있는 민족들, 바로 그들이 참으로 자기들의 모욕을 짊어질 것이다.』」에스겔 36:7 · 본디새김
지금까지 모욕을 짊어진 것은 이스라엘의 땅이었습니다. 이제 그 모욕이 그것을 즐기던 자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하나님은 무너진 백성에게 가해진 멸시를 방관하지 않으시며, 그 땅을 마지막으로 규정할 권한이 원수들에게 있지 않음을 밝히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원수들에 대한 심판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다음 순간, 황폐한 산들을 향해 전혀 다른 말씀이 들려옵니다.
산들이 먼저 열매를 준비하다
「『그러나 너희 이스라엘의 산들은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해 너희 가지를 뻗고 너희 열매를 맺을 것이다. 그들이 올 때가 가까워졌기 때문이다.』」에스겔 36:8 · 본디새김
아직 백성들이 돌아왔다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성읍에 사람이 가득하다는 말도 없습니다. 마치 오랫동안 비어 있던 집에서 주인이 돌아오기도 전에 식탁을 준비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백성이 돌아올 땅을 미리 준비하십니다.
8절에서는 산들에 열매가 맺히고, 9절에서는 경작과 파종이 시작되며, 10절에서는 사람이 늘어나고 성읍들이 다시 세워집니다. 11절에서는 사람뿐 아니라 짐승도 번성합니다.
「『참으로 보아라, 나는 너희 편이다.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서겠고, 너희는 경작되고 씨가 뿌려질 것이다.』」에스겔 36:9 · 본디새김
35장 3절에서는 하나님이 세일 산을 향해 대적하는 뜻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36장 9절에서는 이스라엘의 산들을 향해 호의적으로 돌아서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히브리어에서 ‘보아라, 내가 너를 향한다’는 기본 표현은 유사하지만, 뒤따르는 하나님의 행동이 그 의미를 정반대로 만듭니다.
땅의 운명을 바꾸는 결정적인 사건은 사람이 돌아오는 것보다 먼저, 하나님이 그 땅을 향해 돌아서시는 것입니다.
사람을 먹어 치우는 땅
13절에 이르면 뜻밖의 비난이 등장합니다.
「『주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너희에게 「너는 사람을 먹어 치우고 네 민족들이 자식을 잃게 해 왔다.」라고 말하므로,』」에스겔 36:13 · 본디새김
사람들이 살기 어려운 땅을 두고 사용하는 강렬한 의인화입니다. 이스라엘 땅에서는 전쟁이 벌어졌고, 사람들이 죽었으며, 가족들이 흩어졌습니다. 자녀를 낳아 기르고 다음 세대에게 땅을 물려주어야 할 곳에서 오히려 자녀를 잃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너는 더는 사람을 먹어 치우지 않고, 네 민족들이 더는 자식을 잃게 하지 않을 것이다. 주 여호와야훼의 선언이다.』」에스겔 36:14 · 본디새김
땅이 다시 열매를 맺는 이유는 사람이 안전하게 살아가기 위해서입니다. 도시가 재건되는 이유도 사람이 그곳에서 삶을 이어가기 위해서입니다.
자녀를 잃던 땅이 자녀를 기르는 땅으로 바뀌는 것, 그것이 하나님이 약속하시는 회복의 중요한 모습입니다.
이스라엘의 땅은 억울하게 짓밟히기만 한 것일까요? 그 땅에 살던 백성에게는 아무 책임이 없었을까요?
바로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예언은 방향을 바꿉니다.
조금 더 깊이
민수기 13장 32절에서도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사람들이 그 땅을 주민들을 삼키는 곳으로 묘사합니다. 두 본문이 같은 역사적 상황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을 먹어 치우는 땅이라는 이미지가 공통으로 나타납니다.
땅을 더럽힌 것은 누구였는가?
16절에서 새로운 말씀이 시작됩니다.
이전까지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산들이 당한 모욕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는 그 땅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이 무엇을 했는지 밝히십니다.
「사람의 아들아, 이스라엘 집은 자기들의 땅에 살면서 자기들의 길과 행위로 그 땅을 더럽혔다. 그들의 길은 내 앞에서 월경의 부정함과 같았다.」에스겔 36:17 · 본디새김
이스라엘의 산들은 다른 민족들에게 약탈당했습니다. 그러나 그 땅의 오염은 외부의 침략으로만 시작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신이 이미 그 땅을 더럽히고 있었습니다.
레위기 15장 19–24절에서 월경에 따른 부정함을 다루는데, 이는 월경 자체를 도덕적 죄로 규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에스겔은 정결과 부정의 언어를 빌려 이스라엘의 삶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심각하게 더럽혀졌는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들이 땅 위에 쏟은 피 때문에, 또 자기들의 우상들로 그 땅을 더럽혔기 때문에, 나는 그들 위에 내 격분을 쏟았다.」에스겔 36:18 · 본디새김
이 두 가지는 에스겔서에서 반복적으로 고발되는 죄입니다. 특히 22장에서는 피 흘림, 권력자들의 착취, 약자에 대한 압제와 성소를 더럽히는 행위가 함께 등장합니다.
이스라엘의 땅이 거룩하다는 것은 그곳에 성전이 있기만 하면 된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그 땅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가가 중요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하면서 이웃의 피를 흘리고, 거룩한 땅에 살면서 그 땅을 우상 숭배의 장소로 만드는 삶은 서로 양립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그들을 여러 민족 사이로 흩으셨습니다.
19절에서 하나님은 그들의 길과 행위에 따라 심판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의 포로 생활은 아무 이유 없이 닥친 불행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20절에서 더 깊은 문제가 드러납니다.
「그 집은 여러 민족에게로 갔고, 그들이 간 그곳에서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혔다. 사람들이 그들을 두고 『이들은 여호와야훼의 백성인데도 그의 땅에서 나왔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에스겔 36:20 · 본디새김
그들의 눈에 이 상황은 이상하게 보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야훼의 백성이라면서 어떻게 여호와야훼의 땅에서 쫓겨날 수 있었을까요? 본문은 그 민족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부정하는 말을 직접 했다고 기록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 말에는 충분히 그런 의문이 담길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죄 때문에 심판받았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공의를 보여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심판의 결과를 바라보는 다른 민족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을 오해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신다면, 이제 두 가지 문제가 함께 해결되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죄를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영원히 버림받은 모습으로 남게 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은 누구를 위해 회복시키시는가?
에스겔 36장의 신학적 중심은 22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집에게 말하여라. 주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한다. 『이스라엘 집아, 내가 행하는 것은 너희를 위해서가 아니다. 너희가 간 민족들 사이에서 너희가 더럽힌 내 거룩한 이름을 위해서다.』」에스겔 36:22 · 본디새김
본문이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아끼지 않으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여기서 「너희를 위해서가 아니다」라는 말은 회복의 이유가 이스라엘의 공로나 자격에 있지 않음을 강조합니다.
회복의 근거는 이스라엘의 변화 가능성보다 더 깊은 곳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과 약속, 그리고 하나님 자신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문제입니다.
에스겔서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닙니다. 그 이름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세상 가운데 어떤 분으로 알려지시는가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불의한 백성을 심판하신다면 그분의 공의가 드러납니다. 그런데 그들을 다시 깨끗하게 하시고 회복시키신다면, 하나님의 거룩함은 심판만이 아니라 새롭게 하시는 행동을 통해서도 드러납니다.
「『민족들 사이에서 더럽혀진 내 큰 이름, 너희가 그들 가운데서 더럽힌 그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하겠다. 그들의 눈앞에서 너희를 통해 내 거룩함을 드러낼 때, 민족들은 내가 여호와야훼임을 알 것이다. 주 여호와야훼의 선언이다.』」에스겔 36:23 · 본디새김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리신 채 자신의 위대함만 증명하시겠다고 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실패한 이스라엘을 다시 세우시는 일을 통해 자신의 거룩함을 드러내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들은 회복을 자기 공적으로 주장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실패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이 영원히 끝났다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이제 그 회복이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가 밝혀집니다.
깨끗한 물, 새 마음, 하나님의 영
24–28절은 이 장에서 가장 잘 알려진 부분입니다.
「『내가 너희를 민족들 사이에서 데려오고, 너희를 모든 땅에서 모으며, 너희를 너희 땅으로 데려가겠다.』」에스겔 36:24 · 본디새김
새 마음의 약속은 고향으로 돌아갈 백성에게 주어진 약속입니다. 다시 말해, 개인의 영적 체험만이 아니라 무너진 공동체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문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깨끗한 물 — 죄의 흔적을 씻으시다
「『내가 너희 위에 깨끗한 물을 뿌리겠다. 그러면 너희는 깨끗해질 것이다. 너희의 모든 부정함과 너희의 모든 우상으로 인한 더러움에서 내가 너희를 깨끗하게 하겠다.』」에스겔 36:25 · 본디새김
앞에서는 사람이 땅을 더럽혔고, 여기서는 하나님이 사람을 깨끗하게 하십니다.
땅의 오염을 해결하려면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달라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스스로 더러움을 씻는 일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그들을 깨끗하게 하십니다.
그뿐 아니라 깨끗해져야 할 대상도 단순한 의례적 부정에 머물지 않습니다. 우상 숭배로 더럽혀진 삶 전체가 정결하게 되어야 합니다.
이전에 죄를 지었던 사람이 깨끗해져도, 그 마음이 그대로라면 다시 같은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가십니다.
돌로 된 마음에서 살로 된 마음으로
「『내가 너희에게 새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새 영을 두겠다. 너희 몸에서 돌로 된 마음을 없애고, 너희에게 살로 된 마음을 주겠다.』」에스겔 36:26 · 본디새김
성경의 히브리어에서 마음은 생각하고, 판단하고, 의지를 결정하는 인간 내면의 중심을 가리킵니다. 사람이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판단하며, 어떤 길을 선택하는가에 관한 약속입니다.
돌은 단단하지만 반응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두드려도 스스로 움직이지 않고, 마음을 열지도 않습니다. 반면 살은 살아 있는 몸의 일부입니다. 느끼고 반응하며 움직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살로 된 마음’은 육체적인 욕망에 사로잡힌 마음이라는 부정적 의미가 아닙니다. 돌처럼 굳어 버린 마음과 달리 살아서 반응할 수 있는 마음을 뜻합니다.
이스라엘은 반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듣지 않았습니다. 여러 차례 경고를 받았지만 돌아서지 않았습니다. 에스겔 3장 7절에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는 백성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경고만이 아니었습니다.
말씀을 들어도 반응하지 않던 마음 자체가 달라져야 했습니다.
새 영과 ‘내 영’은 어떻게 다른가?
26절에서는 「새 영」을 주시겠다고 하시고, 27절에서는 「내 영」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다만 본문이 의도적으로 표현을 바꾸면서, 인간 안의 새로운 상태와 그것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현존을 함께 말한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내 영을 너희 안에 두겠다. 너희가 내 규정들을 따라 걷고, 내 법도들을 지키고 실행하게 하겠다.』」에스겔 36:27 · 본디새김
여기서 하나님의 규정과 법도를 따르는 삶은 새로운 마음과 대립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새 마음이 나타나는 구체적인 방향입니다. 이스라엘이 과거에 실패했던 삶, 곧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섬기며 이웃에게 폭력을 행사했던 삶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에스겔은 앞서 18장 31절에서 이스라엘에게 새 마음과 새 영을 가지라고 촉구했습니다. 11장 19–20절에서는 하나님이 새 마음과 새 영을 주시겠다는 약속도 등장했습니다.
사람에게 요구되었던 변화가 하나님의 회복 약속 가운데 놓입니다.
그렇다고 인간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27절에서 사람들이 하나님의 규정에 따라 걷고 실행해야 한다는 사실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다만 그 순서가 달라집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들 안에 거하시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삶이 가능해집니다.
「『너희는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살 것이다.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에스겔 36:28 · 본디새김
출애굽기 6장 7절과 레위기 26장 12절에 나타나는 언약의 약속이 다시 들려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들과 함께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제 포로 생활 가운데 있는 백성에게 그 관계의 회복을 약속하십니다.
이스라엘은 땅만 다시 얻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백성으로 다시 세워집니다.
조금 더 깊이
물 뿌림은 이스라엘의 정결 의식을 떠올리게 합니다. 민수기 19장 17–19절에서는 부정하게 된 사람을 정결하게 하는 과정에 물을 사용하는 의식이 나옵니다. 에스겔은 이러한 정결의 언어를 사용하지만, 여기서는 사람이 물을 뿌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그렇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레미야 31장 31–34절은 하나님의 가르침이 사람들의 마음에 새겨질 새 언약을 말합니다. 에스겔은 같은 방향의 희망을 새 마음과 하나님의 영이라는 이미지로 표현합니다. 두 예언은 각각의 방식으로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새로워져야 한다는 문제에 응답합니다. 신약의 요한복음 3장 5–8절에서 물과 영에 관한 예수의 말씀은 이러한 구약의 정결과 새롭게 하심의 약속과 주제적으로 연결해 읽을 수 있습니다. 다만 에스겔 36장의 본래 장면은 먼저 포로로 흩어진 이스라엘이 새로운 공동체로 회복되는 약속 안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회복된 사람들이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다
새 마음을 받은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까요?
29–30절에서 하나님은 곡식을 풍성하게 하시고, 나무의 열매와 밭의 소출을 늘리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 나타납니다.
「『너희는 너희의 악한 길들과 좋지 않았던 행위들을 기억하고, 너희 죄악들과 너희 역겨운 짓들 때문에 너희 자신을 역겨워할 것이다.』」에스겔 36:31 · 본디새김
이 단락에서는 먼저 하나님이 그들을 깨끗하게 하시고, 새 마음과 자신의 영을 주시며, 풍요로운 삶을 약속하십니다. 그런 다음에 그들이 과거의 악한 길을 기억하고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과거의 죄를 가볍게 여기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새롭게 보게 됩니다.
과거의 죄를 기억한다는 것은 영원히 자신을 정죄하며 살아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들은 이미 깨끗하게 되었고, 새로운 삶을 선물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전의 삶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는지 인정할 수 있습니다.
「『내가 행하는 것은 너희를 위해서가 아니다. 주 여호와야훼의 선언이다. 너희는 이것을 알아 두어라. 이스라엘 집아, 너희 길들 때문에 부끄러워하고 수치를 느껴라.』」에스겔 36:32 · 본디새김
22절에 등장했던 선언이 반복됩니다. 앞에서는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해 회복시키시겠다고 선언하셨고, 여기서는 그 회복을 받은 백성이 자기들의 과거를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인간의 공로에서 비롯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인간의 책임을 가볍게 만들지 않습니다.
그렇게 새로워진 사람들은 이제 새로운 땅에서 살아갑니다.
조금 더 깊이
물론 이 순서가 회개와 용서의 모든 관계를 하나의 공식으로 규정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에스겔 18장과 33장에서는 악한 길에서 돌아서라는 촉구가 강하게 나타납니다.
폐허가 에덴의 동산처럼 되다
33절부터 예언의 시선은 다시 땅으로 돌아갑니다.
「『주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한다. 내가 너희의 모든 죄악에서 너희를 깨끗하게 하는 날, 성읍들에 사람들이 살게 하겠고, 폐허들은 다시 세워질 것이다.』」에스겔 36:33 · 본디새김
이제 하나님은 사람을 깨끗하게 하시는 일과 성읍을 다시 세우시는 일을 하나로 묶으십니다.
34절에서는 사람들이 지나가며 보던 황무지가 다시 경작되는 모습을 그립니다. 이전에는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폐허를 바라보고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같은 땅을 바라보며 놀라게 됩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황폐했던 바로 이 땅이 에덴의 동산처럼 되었다. 폐허가 되고 황폐해지고 무너졌던 성읍들에 방비가 갖추어지고 사람들이 살게 되었다.」』」에스겔 36:35 · 본디새김
그들이 보는 것은 실제로 경작되는 땅과 다시 세워진 성읍들입니다. 그 모습이 너무도 달라져 에덴의 동산처럼 되었다고 말합니다.
여기 등장하는 사람들은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은 첫 인간들이 아닙니다. 이미 죄를 지었고, 심판을 받았으며, 땅에서 쫓겨났던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다시 생명이 풍성한 땅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은 단순히 과거로 돌아가는 회복이 아니라, 죄와 심판을 겪은 뒤 하나님이 새롭게 시작하게 하시는 삶입니다.
「『너희 둘레에 남아 있는 민족들은 나 여호와야훼가 무너진 곳들을 세우고 황폐한 땅에 초목을 심었음을 알 것이다. 나 여호와야훼가 말했고, 내가 실행하겠다.』」에스겔 36:36 · 본디새김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제 그 거룩함이 무너진 곳을 세우시고 황폐한 땅에 초목을 심으시는 행동으로 드러납니다.
처음에 다른 민족들은 이스라엘의 폐허를 보고 하나님에 대해 의문을 품었습니다. 이제는 회복된 땅을 보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게 될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따라서 이 표현을 창세기 2장의 에덴이 문자 그대로 다시 나타난다는 예언으로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황폐했던 땅이 생명과 풍요를 되찾는 모습을 설명하는 강렬한 비교입니다. 창세기 2장에서 하나님은 사람이 살아갈 동산을 마련하시고 그곳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셨습니다(창세기 2:8–15). 에스겔 36장에서도 하나님은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을 회복시키십니다. 나무에 열매가 맺히고, 밭이 경작되며, 사람들이 성읍에 모여 살아갑니다. 처음 창조 때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삶은 땅과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람이 양 떼처럼 가득한 성읍
지금까지 하나님은 반복해서 자신이 하실 일을 선언하셨습니다. 그런데 37절에서는 이스라엘 집이 하나님께 요청하는 일이 언급됩니다.
「『주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한다. 이 일에 대해서도 나는 이스라엘 집의 요청을 받아 그들을 위해 행하겠다. 내가 이스라엘 사람들을 양 떼처럼 불어나게 하겠다.』」에스겔 36:37 · 본디새김
새 마음과 새 영을 받게 될 백성은 하나님의 행동을 수동적으로 구경하기만 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나아가고, 구하며, 하나님의 뜻에 응답하는 공동체가 됩니다.
「『거룩한 양 떼처럼, 절기 때 예루살렘의 양 떼처럼, 그렇게 폐허가 된 성읍들이 사람들로 된 양 떼로 가득해질 것이다. 그들은 내가 여호와야훼임을 알 것이다.』」에스겔 36:38 · 본디새김
여기서 ‘거룩한 양 떼’와 절기 때의 예루살렘이라는 표현은 절기에 모여드는 제물용 양 떼의 광경을 떠올리게 합니다. 정해진 절기에 예루살렘으로 모여든 양들이 많았던 것처럼, 한때 텅 비었던 성읍들에도 사람들이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13절에서 이스라엘의 땅은 사람을 먹어 치우는 곳이라는 비난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는 그 땅이 사람들로 가득해집니다.
사람을 잃던 땅이 사람을 품는 땅으로 바뀐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에서 이 구절의 동사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묻도록 허락하시거나 자신에게 문의하게 하신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사람들의 기도가 만나는 자리입니다. 이 구절을 하나님이 먼저 약속하신 일이라도 사람이 요청하지 않으면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조건문으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본문은 그러한 조건을 명시하지 않습니다. 또한 에스겔 34장에서 하나님은 흩어진 자신의 양들을 찾고 돌보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은 백성에게 새로운 목자를 세우시는 일까지 포함했습니다. 36장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그 백성이 이제 다시 성읍에 모여 살아가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여기서 양 떼라는 이미지는 단순히 인구가 늘어나는 숫자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돌보시는 백성이 다시 모여 안전하게 살아간다는 약속과 이어집니다.
에스겔 36장이 보여 주는 하나님의 회복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위해 일하십니다. 그런데 그 이름을 위해 하시는 일이란 무너진 백성을 깨끗하게 하시고, 굳어진 마음을 살아 있는 마음으로 바꾸시고, 버려진 땅을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으로 회복시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너진 성읍만 다시 세우시는 분이 아니라, 그 성읍을 다시 무너뜨릴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마음까지 새롭게 하시는 분입니다.
폐허가 된 집들이 다시 세워지고, 버려졌던 길에 사람들이 다니기 시작합니다. 오랫동안 비어 있던 성읍에 가족들이 돌아오고, 사람들이 모여 살아갑니다.
처음에 하나님은 텅 빈 산들을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에는 그 산들 아래 무너졌던 성읍들이 사람들로 가득해집니다.
그리고 그 광경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알게 됩니다. 「그들은 내가 여호와야훼임을 알 것이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