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풀어 읽기 · 37장
이 장의 자리 · 33–39장 · 회복의 약속
마른 뼈들이 일어나고, 갈라진 백성이 하나가 되다
에스겔 37장에는 서로 전혀 다른 두 장면이 등장합니다.
첫 번째 장면에는 뼈들이 있습니다. 그것도 살이 조금 남아 있는 시신이 아니라, 오래전에 죽어 바싹 말라 버린 뼈들입니다. 하나님은 그 뼈들을 살아나게 하십니다.
두 번째 장면에는 막대기 두 개가 있습니다. 하나에는 유다의 이름이, 다른 하나에는 요셉과 에브라임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두 막대기를 하나로 만드시겠다고 하십니다.
죽은 뼈를 살리는 이야기와 막대기를 하나로 만드는 이야기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죽었던 백성이 살아나는 것과, 살아난 백성이 하나의 공동체로 살아가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단순히 나라를 잃은 백성이 아니었습니다. 오랫동안 서로 갈라져 있었고, 하나님을 떠났으며, 자신들의 지도자들 때문에 상처받은 백성이었습니다.
앞 장에서 새 마음과 하나님의 영을 약속하셨다면, 이번 장은 그 약속이 얼마나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까지 미치는지를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왜 에스겔을 뼈들 사이로 걷게 하셨는가?
여호와야훼의 손이 내 위에 있었다. 그가 여호와야훼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나가 골짜기 한가운데 내려놓았다. 그곳은 뼈로 가득했다.에스겔 37:1 · 본디새김
에스겔서에서 하나님의 손이 예언자에게 임한다는 표현은 특별한 계시 경험과 관련되어 있습니다(에스겔 1:3; 3:22; 8:1). 여기에서도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환상적 경험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에스겔을 골짜기에 내려놓으신 뒤 곧장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먼저 그를 뼈들 사이로 지나가게 하십니다.
그가 나를 그 뼈들 곁으로 두루두루 지나가게 했다. 보니 골짜기 바닥에 뼈가 아주 많았다. 보니 그 뼈들은 아주 말라 있었다.에스겔 37:2 · 본디새김
뼈가 많다는 것은 죽음이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 줍니다. 골짜기 전체를 채울 만큼 수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9절에서 이들은 「살해된 이들」이라고 불리므로, 전쟁이나 집단적인 살육을 연상시키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뼈가 아주 말랐다는 것은 죽음이 이미 상당히 진행되어 생명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정확히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는 본문이 말하지 않지만, 단순히 의식을 잃거나 죽어 가는 사람들의 모습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그가 내게 말했다. 「사람의 아들아, 이 뼈들이 살아날 수 있겠느냐?」 나는 말했다. 「주 여호와야훼, 당신이 아십니다.」에스겔 37:3 · 본디새김
에스겔은 뼈들이 살아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살아날 수 없다고 단정하지도 않습니다.
자신이 보고 있는 현실과 하나님의 가능성을 구별합니다.
사람의 경험으로 판단하면, 마른 뼈들은 살아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질문하시는 분은 그 뼈들을 창조하신 하나님입니다.
여기서 본문은 믿음을 불가능한 일을 무조건 가능하다고 선언하는 태도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에스겔은 자신이 모르는 것을 안다고 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아는 현실을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최종 판단으로 삼지 않습니다.
들을 수 없는 뼈들에게 말씀하라
그가 내게 말했다. 「이 뼈들을 향해 예언하고 그들에게 말하여라. 『마른 뼈들아, 여호와야훼의 말을 들어라.』」에스겔 37:4 · 본디새김
뼈들에는 귀도 없고, 뇌도 없으며, 반응할 생명도 없습니다. 들으라고 명령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에스겔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3장 7절에서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는 백성이라고 말합니다.
이제 그 말씀을 듣지 않던 백성은 환상 속에서 귀조차 없는 뼈들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이 명령의 핵심은 뼈들이 이미 들을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선포되는 말씀이 여호와야훼의 말씀이라는 데 있습니다.
5–6절에서 하나님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말씀하십니다. 힘줄이 생기고, 살이 돋고, 살갗이 덮이며, 그 안에 숨이 들어갈 것입니다.
나는 명령받은 대로 예언했다. 내가 예언할 때 소리가 났다. 보니 진동이 일어나고 뼈들이 저마다 제 짝인 뼈로 다가갔다.에스겔 37:7 · 본디새김
그 위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돋으며 살갗이 덮입니다. 방금 전까지 뼈들만 널려 있던 골짜기에 이제는 사람의 형체들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8절은 예상하지 못한 말로 끝납니다.
내가 보니 그 뼈들 위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돋았으며, 살갗이 그 위를 덮었다. 그러나 그들 안에는 숨이 없었다.에스겔 37:8 · 본디새김
하나님의 약속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왜 뼈들이 모이고 살이 돋는 일과 숨이 들어가는 일을 한 번에 일어나게 하지 않으셨을까요? 본문은 그 이유를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야기의 진행은 독자가 두 가지를 분명하게 구별하도록 만듭니다.
형체를 갖추는 것과 생명을 얻는 것은 같지 않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두 번째 예언을 명령하십니다.
사방의 바람에서 숨이 들어오다
그가 내게 말했다. 「숨을 향해 예언하여라. 사람의 아들아, 예언하고 숨에게 말하여라. 주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한다. 『숨아, 사방의 바람에서 와서 이 살해된 이들 안으로 불어 그들이 살아나게 하여라.』」에스겔 37:9 · 본디새김
에스겔 37장에서도 먼저 몸이 형성되고, 그다음 숨이 들어갑니다.
죽은 자들이 군대가 되다
나는 그가 내게 명령한 대로 예언했다. 숨이 그들 안으로 들어가자 그들이 살아나 자기 발로 일어섰다. 아주아주 큰 군대였다.에스겔 37:10 · 본디새김
이것을 이스라엘이 다시 무력을 얻어 다른 나라를 정복하리라는 명령으로 읽을 근거는 이 장에 없습니다. 환상의 강조점은 패배하고 흩어졌던 이들이 다시 일어서는 데 있습니다.
2절에서는 뼈들이 「아주 많았다」고 했고, 10절에서는 살아난 무리가 「아주아주 큰」 군대가 되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죽음의 규모가 컸습니다. 이제는 회복된 생명의 규모가 큽니다.
7절과 10절 모두 에스겔이 명령받은 대로 예언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에스겔이 직접 뼈를 연결하지 않았고, 자신의 숨을 그 안에 불어넣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생명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의 순종을 그 장면 안에 두십니다.
조금 더 깊이
루아흐는 문맥에 따라 바람, 숨, 영을 뜻할 수 있습니다. 1절에서는 「여호와야훼의 영」이 예언자를 골짜기로 데려가십니다. 5–6절에서는 죽은 뼈들 안에 들어갈 「숨」이 약속됩니다. 9절에서는 그 숨이 「사방의 바람」에서 오도록 명령받습니다. 그리고 14절에서는 하나님이 「내 영」을 백성 안에 두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이 네 표현을 모두 동일한 뜻으로 번역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서로 무관한 개념으로 나누어 버려서도 안 됩니다. 원문은 같은 낱말을 반복하면서 생명과 바람과 하나님의 영을 연결합니다. 이 장면은 창세기 2장 7절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합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지으신 뒤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셨습니다. 두 본문의 표현이 완전히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몸과 하나님의 생명 주시는 행동이 결합된다는 점에서 두 장면은 뚜렷하게 연결됩니다. 에스겔이 보고 있는 일은 죽은 백성을 다시 창조하시는 것처럼 묘사됩니다.
죽은 뼈들은 누구인가?
그가 내게 말했다. 「사람의 아들아,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집이다. 보아라, 그들이 말한다. 『우리 뼈들은 말랐고, 우리 희망은 사라졌다. 우리는 완전히 잘려 나갔다.』」에스겔 37:11 · 본디새김
이것은 하나님이 백성을 일방적으로 평가하시는 말이 아닙니다. 백성이 자기들의 처지를 설명하는 말입니다.
예루살렘이 무너졌고, 성전은 파괴되었으며, 왕국은 사라졌습니다. 많은 사람이 고향을 떠나 포로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상실한 것은 단순한 생활의 안정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백성이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수 있다는 희망 자체가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단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미래가 끊어졌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의 말을 반박하기 위해 희망적인 전망을 설명하시지 않습니다.
죽은 자들을 일으키는 환상을 먼저 보여 주십니다.
실제로 그들은 무너졌습니다. 땅을 잃었고, 나라가 사라졌으며, 그들의 공동체는 심각하게 훼손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현실을 인정하시면서도, 그 현실이 마지막이라고 받아들이지 않으십니다.
무덤을 연다는 약속은 개인의 부활을 뜻하는가?
「그러므로 예언하고 그들에게 말하여라. 주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한다. 『보아라, 내 백성아, 내가 너희 무덤들을 열고, 너희를 너희 무덤들에서 올라오게 하겠다. 내가 너희를 이스라엘 땅으로 데려가겠다.』」 「『내 백성아, 내가 너희 무덤들을 열고 너희를 너희 무덤들에서 올라오게 할 때, 너희는 내가 여호와야훼임을 알 것이다.』」에스겔 37:12–13 · 본디새김
이 환상에서 확실한 것은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미래를 완전히 끝난 것으로 여기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그 백성을 다시 일으키시겠다고 선언하신다는 점입니다.
죽은 백성을 향해 ‘내 백성’이라고 부르시다
그들은 자신들이 완전히 잘려 나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여전히 자신의 백성으로 부르십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눈에 끝난 백성이지만, 하나님께는 여전히 자신의 백성입니다.
「『내 영을 너희 안에 두겠다. 그러면 너희는 살아날 것이다. 내가 너희를 너희 땅에 자리 잡게 하겠다. 너희는 나 여호와야훼가 말하고 실행했음을 알 것이다. 여호와야훼의 말이다.』」에스겔 37:14 · 본디새김
이 말씀은 앞 장의 새 영에 관한 약속과 이어집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특히 죽음과 같은 상태에서 다시 살아나는 일이 강조됩니다.
하나님의 영은 단지 백성의 내면을 위로하는 데 그치지 않으십니다. 그들을 다시 일어서게 하고, 자신들의 땅에 자리 잡게 하시는 하나님의 생명 주시는 행동과 연결됩니다.
그렇게 마른 뼈의 환상은 끝납니다.
하지만 에스겔 37장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조금 더 깊이
먼저 11절은 뼈들이 이스라엘 온 집이라고 명시합니다. 12절 역시 무덤에서 일으키는 목적을 「이스라엘 땅으로 데려가겠다」는 말씀과 연결합니다. 따라서 이 환상의 직접적인 설명은 흩어지고 무너진 이스라엘의 공동체적 회복입니다. 그러나 본문이 실제 죽은 자가 살아나는 이미지를 사용한다는 사실도 가볍게 지나칠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이 장면은 죽은 자의 부활이라는 더 넓은 신학적 희망과도 연결될 수 있습니다. 다니엘 12장 2절은 땅의 티끌 가운데 잠든 사람들이 깨어나는 일을 보다 직접적으로 말합니다. 다만 에스겔 37장 자체가 개인의 사후 부활이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를 설명하는 본문은 아닙니다.
두 막대기에는 왜 서로 다른 이름이 적혀 있는가?
15절에서 새로운 말씀이 시작됩니다.
이번에는 골짜기의 환상이 아니라, 에스겔이 사람들 앞에서 직접 수행해야 할 상징 행동입니다. 하나님은 막대기 두 개를 가져오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나에는 유다와 그에게 속한 이스라엘 자손의 이름을, 다른 하나에는 요셉과 에브라임 및 그들에게 속한 이스라엘의 이름을 적게 하십니다.
이 이름들은 이스라엘의 오랜 분열을 떠올리게 합니다.
솔로몬 이후 왕국이 나뉘면서 북쪽에는 이스라엘 왕국이, 남쪽에는 유다 왕국이 형성되었습니다(열왕기상 12:16–20). 에브라임은 북왕국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중요한 지파였습니다. 요셉의 이름도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통해 북쪽 지파들과 연결됩니다. 남쪽 유다는 다윗 왕조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분열은 단순한 행정구역의 분리가 아니었습니다.
왕이 달랐고, 정치적 이해관계가 달랐으며, 예배의 중심도 갈라졌습니다. 북왕국은 결국 아시리아에 의해 무너졌고(열왕기하 17장), 남왕국 유다도 바벨론에 의해 멸망했습니다(열왕기하 25장).
두 막대기에는 각각에 속한 이스라엘 사람들도 함께 언급됩니다. 하나님이 회복하시려는 것은 두 왕실만의 관계가 아닙니다. 그들과 함께 살아왔던 지파들과 백성 전체의 관계입니다.
예언자의 손에서 하나가 되다
「그것들을 서로 가까이 대어 막대기 하나로 만들어라. 그것들은 네 손에서 하나가 될 것이다.」에스겔 37:17 · 본디새김
백성들은 그것을 보고 무슨 뜻인지 묻습니다. 이 질문은 우연한 대화가 아닙니다. 18절에서 하나님은 사람들이 물을 것이라고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상징 행동의 목적은 사람들이 그 뜻을 묻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19절에서 결정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들에게 말하여라. 주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한다. 『보아라, 내가 에브라임의 손에 있는 요셉의 막대기와 그의 동료들인 이스라엘 지파들을 가져다가 유다의 막대기에 붙이겠다. 내가 그것들을 막대기 하나로 만들면, 그것들은 내 손에서 하나가 될 것이다.』」에스겔 37:19 · 본디새김
17절에서는 막대기들이 에스겔의 손에서 하나가 됩니다.
19절에서는 하나님의 손에서 하나가 됩니다.
에스겔은 사람들 앞에서 두 막대기를 하나로 만드는 행동을 하지만, 그 행동이 가리키는 실제 회복은 하나님이 이루실 일입니다.
첫 번째 환상에서 뼈들은 저마다 제 짝인 뼈로 다가갔습니다. 흩어진 것이 다시 연결되어 몸들을 이루었습니다. 두 번째 장면에서는 갈라진 이스라엘이 다시 하나의 민족이 됩니다.
그러나 두 번째 장면에는 새로운 질문이 뒤따릅니다.
하나가 된 백성이 또다시 분열하지 않으려면 무엇이 달라져야 할까요?
조금 더 깊이
여기서 19절의 히브리어 표현은 요셉의 막대기를 유다의 막대기에 붙이는지, 두 막대기를 함께 결합한다는 뜻인지 문법적으로 다르게 이해할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쪽으로 읽든 본문의 중심은 변하지 않습니다. 분리되어 있던 두 부분이 하나님의 손에서 하나가 됩니다.
한 민족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은 두 막대기의 의미를 직접 설명하십니다.
「그들에게 말하여라. 주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한다. 『보아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그들이 가 있는 민족들 사이에서 데려오겠다. 그들을 사방에서 모아 그들의 땅으로 데려가겠다.』」에스겔 37:21 · 본디새김
이스라엘의 회복에는 두 종류의 흩어짐이 해결되어야 합니다.
하나는 땅에서의 흩어짐입니다. 백성들이 다른 민족들 사이에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민족 내부의 분열입니다. 하나였던 이스라엘이 두 왕국으로 갈라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흩어진 사람들을 다시 모으실 뿐 아니라, 모인 사람들이 더는 두 민족으로 나뉘지 않도록 하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22절은 이 점을 세 번에 걸쳐 강조합니다. 하나의 민족이 되고, 한 왕이 그들을 다스리며, 다시는 두 왕국으로 나뉘지 않을 것입니다.
나라를 잃기 전의 이스라엘로 단순히 돌아가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라를 잃기 전의 이스라엘 자체가 이미 갈라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분열까지 극복하는 새로운 질서를 약속하십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 하나님은 정치적 통일과 직접 관계없어 보이는 문제를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더는 자기들의 우상들과 역겨운 것들과 온갖 범죄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들이 죄를 지으며 살던 모든 거처에서 그들을 구해 내고, 그들을 깨끗하게 하겠다.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에스겔 37:23 · 본디새김
열왕기상 12장에서 북왕국을 세운 여로보암은 정치적 분리를 유지하기 위해 별도의 예배 중심지를 마련했습니다. 왕국의 분열은 예배의 분열과 긴밀하게 연결되었습니다. 에스겔 역시 이스라엘이 다시 하나가 되는 문제를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문제와 분리하지 않습니다.
같은 땅에서 같은 왕의 통치를 받는다고 해서 곧바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일치가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같은 죄를 반복한다면, 통일된 왕국도 이전의 문제를 되풀이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의 정치적 단위가 되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한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으로 회복됩니다.
하나됨의 중심은 단순히 경계를 없애는 데 있지 않습니다. 함께 누구에게 속해 있는가에 있습니다.
'내 종 다윗'은 누구인가?
「『내 종 다윗이 그들 위에 왕이 되고, 그들 모두에게 한 목자가 있을 것이다. 그들은 내 법도들을 따라 걷고, 내 규정들을 지키며 실행할 것이다.』」에스겔 37:24 · 본디새김
이스라엘이 무너진 이유 중 하나는 지도자들의 실패였습니다.
에스겔 34장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목자들을 강하게 책망하셨습니다. 그들은 양들을 먹이지 않고 자신들만 먹었습니다. 약한 양들을 돌보지 않았고, 흩어진 양들을 찾지 않았으며, 오히려 힘으로 그들을 다스렸습니다(34:2–4).
그 결과 양들은 흩어졌습니다.
하나님은 그 장에서 자신의 양들을 직접 찾으시겠다고 말씀하신 뒤, 한 목자를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그들 위에 한 목자를 세우겠다. 내 종 다윗이다.」(에스겔 34:23의 핵심 표현)
죽은 백성이 살아나고 분열된 왕국이 하나가 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백성을 이끌 지도자가 달라져야 합니다.
에스겔은 왕권을 목자의 역할과 연결합니다.
34장에서 비판받았던 목자들은 백성을 이용하고 흩어지게 했습니다. 새롭게 세워질 목자는 하나가 된 백성을 돌보는 목자입니다.
한 왕이 다스린다는 것은 단지 중앙집권적인 정치 체제를 뜻하지 않습니다. 백성을 다시 흩어지게 하지 않을 통치를 약속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내가 내 종 야곱에게 준 땅, 너희 조상들이 살던 그 땅에서 살 것이다. 그들과 그들의 자손과 그 자손의 자손이 영원히 그 땅에서 살 것이며, 내 종 다윗이 영원히 그들의 통치자가 될 것이다.』」에스겔 37:25 · 본디새김
앞서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희망이 완전히 끊어졌다고 말했습니다(37:11). 그런데 이제 하나님은 다음 세대와 그다음 세대까지 이어지는 삶을 약속하십니다.
희망이 끊어졌다고 말하던 백성에게, 하나님은 끊어지지 않을 미래를 말씀하십니다.
다시는 나라가 무너지고, 백성이 흩어지고, 지도자가 그들을 배신하는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시겠다는 약속의 표현입니다.
그런데 이 영속적인 회복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약속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마지막 세 절에서 하나님은 왕과 땅을 넘어, 자신이 그 백성과 함께 거하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조금 더 깊이
에스겔 시대에 역사적 인물 다윗은 이미 오래전에 죽었습니다. 한 가지 읽기는 다윗이라는 이름 자체를 강조하여, 역사적 다윗이 다시 통치하게 될 것이라는 미래의 희망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다른 읽기는 다윗 왕조에 주어진 약속을 배경으로, 다윗의 계통을 잇는 미래의 왕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사무엘하 7장 12–16절에서 하나님은 다윗의 집과 왕권에 관한 지속적인 약속을 주셨습니다. 에스겔 34장과 37장의 다윗에 관한 예언은 이 약속과 연결되어 읽힙니다. 본문은 다윗이라는 인물이 미래에 어떤 방식으로 나타날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다윗의 이름을 통해 하나님이 세우실 왕의 통치가 어떤 전통에 속하는지 분명히 합니다. 신약에서는 요한복음 10장 16절에 나타나는 「한 무리」와 「한 목자」라는 표현이 에스겔 34장과 37장의 목자 약속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것은 에스겔 37장에 대한 명시적인 직접 인용이라기보다, 한 목자 아래 백성을 모으신다는 구약의 주제가 예수의 말씀에서 새롭게 나타나는 연결입니다. 그러나 에스겔 37장 자체의 중심은 먼저 포로로 흩어진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회복 약속입니다.
회복의 마지막은 왕궁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처다
「『내가 그들과 평화의 언약을 맺겠다. 그들과 맺는 영원한 언약이 될 것이다. 내가 그들을 자리 잡게 하고 불어나게 하며, 내 성소를 영원히 그들 가운데 두겠다.』」에스겔 37:26 · 본디새김
에스겔서에서 평화의 언약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속에서 안전하게 살아가는 상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37장에서는 그 약속이 영원한 언약으로 이어집니다.
왜 성소가 마지막에 등장하는가?
예루살렘이 무너졌다는 것은 이스라엘에게 단순히 정치적 중심지를 잃었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성전을 잃었습니다.
에스겔 8–11장에는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 벌어지는 우상 숭배의 모습과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서 떠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특히 10장 18–19절과 11장 22–23절은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과 성읍을 떠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성전이 파괴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뒤, 하나님은 자신의 성소를 백성 가운데 두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예루살렘에는 이전에도 성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전이 있다는 사실은 백성의 죄를 막아 주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보여 주신 것은 성전 안에서 벌어지는 심각한 오염이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단순히 무너진 건물을 다시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깨끗하게 하신 백성 가운데 자신의 거처를 두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들 ‘위에’ 그리고 그들 ‘가운데’
「『내 거처가 그들 위에 있을 것이다.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다.』」에스겔 37:27 · 본디새김
26절에서는 성소를 「그들 가운데」 두시겠다고 하셨습니다. 27절에서는 거처가 「그들 위에」 있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28절에서는 다시 성소가 「그들 가운데」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의 삶 전체가 하나님의 임재와 관계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민족들은 무엇을 알게 되는가?
「『내 성소가 영원히 그들 가운데 있을 때, 민족들은 나 여호와야훼가 이스라엘을 거룩하게 하는 이임을 알 것이다.』」에스겔 37:28 · 본디새김
에스겔서에서 이스라엘의 죄는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는 문제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이제 그들이 다시 살아나고 하나가 되어,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거하시게 될 때, 주변 민족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스스로 거룩해졌기 때문에 하나님을 모실 자격을 얻었다는 설명이 아닙니다. 본문은 하나님이 그들을 깨끗하게 하시고, 하나로 만드시며, 그들 가운데 거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고 말합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조금 더 깊이
에스겔 34장 25–29절에서도 하나님은 평화의 언약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곳에서는 백성이 안전하게 살고, 짐승의 위협에서 벗어나며, 기근과 다른 민족들의 모욕을 더는 당하지 않는 모습이 이어집니다. 26–28절의 「그들 가운데」(תָּוֶךְ)와 「그들 위에」(עַל)는 히브리어에서도 이 전치사들은 구별됩니다. 본문은 거처의 구체적인 공간 구조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서로 다른 표현이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임재를 단순히 성전 건물의 한 지점에만 한정하지 않도록 이끕니다. 이 장면은 출애굽기 25장 8절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성소를 만들게 하시면서 그들 가운데 거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레위기 26장 11–12절에서는 자신의 거처를 그들 가운데 두시고, 그들 사이를 다니시며,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에스겔 37장의 마지막 부분은 이러한 언약의 약속을 다시 들려줍니다. 그리고 에스겔서 뒤편의 성전 환상, 특히 43장 1–5절에서는 여호와야훼의 영광이 성전으로 돌아오는 모습이 등장합니다. 그러므로 37장의 성소 약속은 이후 에스겔서에서 전개될 중요한 주제를 미리 보여 주기도 합니다.
맺으며 — 골짜기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어디에서 끝나는가?
에스겔 37장의 두 장면은 서로 다른 문제를 다루면서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은 죽음에서 벗어나 살아남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생명은 하나님과 함께하며 서로 더는 갈라지지 않고 살아가는 공동체를 향합니다.
마지막 장면에는 더 이상 마른 뼈도, 갈라진 막대기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곳에는 함께 살아가는 백성이 있고, 그들 가운데 하나님의 성소가 있습니다.
처음에 에스겔은 죽은 뼈들로 가득한 골짜기 한가운데 내려놓였습니다. 마지막에 하나님은 살아난 백성 한가운데 자신의 거처를 두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